"교회의 유익에 우선순위를 둔 전도자 바울의 삶"
(행 21:17-2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사도행전 21장 17-26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신지를 정말 알았다면 우리는 그 이름에 모든 답을 내야 한다. 그분은 전쟁도 하지 않고, 단 한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도 전 세계를 정복한 분이다. “너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다른 사람이 오리를 가지고 하면 십리를 가줘라. 다른 사람이 너의 것을 빼앗으려고 너를 죽이기 전에 먼저 줘라” 이것이 그분의 방법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비밀을 알게 되면 우리 인생 여정에 전혀 부족함이 없게 된다. 특히, 복음을 위해 백만원을 잃어버린다면 하나님은 천억을 주실만큼 풍성하게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이 누구신가? “저들이 하는 죄를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해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소리를 내신 분이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주의 백성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천명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말씀을 가슴에 새겨놓고 전도자의 여정, 언약의 여정을 따라 살면 일평생 사는 날 동안 부족함 없는 축복을 갖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믿는 자를 통해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간증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지력과 부지런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역사를 남겼지만,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한다. 자신의 인생 여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고 하나님이 하셨다.’ 고 증거하는 증인으로 섰다. 행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하나님이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바울은 말씀한다. 그 사역에 자신이 종으로 쓰임을 받고 있다는 멋있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 사역의 역사 속에 내가 쓰임 받는다는 것이 가장 위대한 면류관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돈 몇 푼도 쓰지 못해 안달나 있는데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 속에 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고,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나친 욕심을 가지면 가지는 만큼 공허한 상태로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는 디아스포라 미션이 펼쳐져 있다. 디아스포라 237미션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우리가 여기에 동참할 때 부족함이 없는 축복이 시작된다. 디아스포라 뉴스, 디아스포라 방송국, 어학당이 일어났다. 사람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삶이 바뀌기 때문에 어학당을 통해 수 많은 사람이 기적의 현장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것에 눈치를 챈 사람만이 헌신에 동참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아이들의 상태가 정신분열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정신병동에 갇혀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40%가 넘었다. 이제 방송국을 통해 그들을 치유하는 선교원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갈 제자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게 될 것이다.
세상의 중간에 서 있지 말고,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그 자아를 깨뜨리고 언약의 여정의 흐름을 타야 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 그 언약의 여정 속에 있기 때문에 정말 구원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딱 하나다. 언약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믿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불신앙적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 끊임없는 시험, 갈등, 분노, 쟁쟁거림 속에 매력없는 자로, 슬프고 고독한 인생으로 몸부림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요1:12~14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보좌의 권능,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하셨고, 이런 자가 바로 보좌의 힘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엡2:6 하나님 보좌의 힘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보좌에 앉아있는 존재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신분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창3장 원죄를 가지고 세상의 것을 자꾸만 가지려고 하는 욕심쟁이로, 불편한 상태로 사는 것이다. 보좌의 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12:28~29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일을 도무지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나를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는 모든 불신앙을 내어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우리 몸에는 이미 강한 자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 이런 것으로 끊임없이 우리 몸을 종교화 시켜버렸다. 하나님의 사역 속에 바울 자신이 포함되어 쓰임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도 예루살렘에 있는 감독자 야고보와 그의 제자들은 이상한 말만 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때 교회를 위해서 타협하고 양보하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그냥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있고, 하나님은 분명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래 바울은 ‘복음이면 복음이지 왜 종교적 인본주의를 쓰고 사냐?!’ 하며 야고보를 향해 소리를 외치고 교회에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일에는 분쟁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핏 값을 통해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문제는 자신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타협과 양보가 없었지만 교회 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올바른 영적 분별력이다.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에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 세계에 정복한 전도자였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일을 보았다.
우리는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하나님 당신의 사역을 함께 진행하는 복음의 공동체다. 그래서 교회는 원네스가 되어야 한다. 기도도 원네스가 되어야 하고 전도와 선교도 원네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뚜렷해진다. 교회가 미션클럽으로서 하나가 될 때 렘넌트를 키우고 후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배경을 허락하셨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배경이 시작된다. 히1:14 구원 받은 자들을 위하여,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상속자들을 위하여 반드시 쓰임을 받고 심부름 하는 천군천사가 있다. 시103:19 언약의 여정을 따라 하나님 당신의 사역을 위해 이 속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자들을 향해 만유를 다스리는 엄청난 왕권과 보좌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병아리 눈꼽 만큼만 기도 속에 있어도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 시작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옛사람의 운명에서 탈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옛 람의 신분에서 탈출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로 탈출을 해야 한다. 출애굽의 역사가 있어야 우리에게는 홍해를 건너 광야를 넘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무너뜨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자신이 죄인이 되셨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무시무시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런 사랑을 받은 자, 사랑의 빚을 진 자가 배은망덕하게 살면 되겠는가. 고전9:22~23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모든 문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끝났기 때문에 자기 삶의 여정은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님 사역에 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자랑하고 싶고 떠들고 싶어도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 표적을 말하고 싶은 감정이 너무 많아도 고전9:27 복음을 전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여정이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말씀을 믿으면 반드시 우리 영혼에 치유함이 온다. 그래서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로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진다.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가진 자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살리는 힘이 필요하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 몸에 있는 죄와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말씀을 믿는 여정 속에 있을 때 해결된다.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지 않고, 말씀이 생각나지 않으면 재앙에 이르는 시간표 속에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상담 방송도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 성경 통독을 할 때 내게도 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교회 중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움의 역사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많은 누림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디아스포라 미션의 주역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는 기도가 시작될 때 우리의 영혼은 굉장히 맑아진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는 기도가 되어지면 온몸에 더러운 독소가 빠져나간다. 그렇게도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이 믿어지는 진짜 기쁨의 눈물도 맞이하게 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날들이 하나님의 기적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면서 자복할 날이 오게 된다. 우리 삶에 진짜 기적은 우리 삶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하며, 음부의 권세에 사로잡혀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운명으로 주저앉아있는 이 세상 속에,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는 기도를 시작한다면 말이 많던 내가 말이 사라진다. 불필요한 말들이 우리 몸에서 사라지면 우리 몸에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면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자가 되어 세상의 언어를 끊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책도 읽지도 않고 역사도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여자나 남자나 만나면 골프 이야기뿐이다. 다음 세대들에게 저들의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의 여정으로 믿어준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또 우리가 체험하는 상황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그래야 반복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요일3:8 진짜 마귀의 일을 멸하면 반복하는 일들이 사라진다. 창3:15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여정 속에 사람이 힘을 얻게 된다면 안되는 문제는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분을 만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 속에 늘 젖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젖으면 우리에게 없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악랄하고 발광했던 힘들이 사라진다. 지난날 나 역시도 무시무시한 힘들이 솟구쳤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다 사라졌다. 누가 나에게 와서 따지고 뭐라고 해도 양보하고,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발견했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일이 있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일이 있어야 한다.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창3:15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나님의 일인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요6:35 절대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는 자, 부족함이 없는 자로 바뀌게 된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써도 써도 부족하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운명에서 탈출하면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게 된다. 그래서 악한 힘도 사라지지만 착한 힘도 사라진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모르고 착하게 하는 것은 엄청난 사단의 힘을 공급받아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하는 것이다. 사단의 힘을 받은 자는 무엇이든지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착하든 악하든 다 똑같은 마귀 자식이다. 죄의식과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착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창3:15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 젖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그 안에서 큰 사랑의 빚을 진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에 이르게 하셨는데 내가 이 사랑을 지금까지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세상 속에만 젖어있었구나. 내가 여기서 탈출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겠다’ 하고 교회 작은 일 앞에 헌신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노래방 가면 남의 마이크까지 빼앗아가면서 노래하고 악을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어떻게 악다구니 없이 어설프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우리가 영적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영적인 지혜를 얻어야 한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을 믿은 바울은 교회의 일 앞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본문에, 바울의 타협으로 인해 복음이 체포되는 것 같고,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바울은 교회의 일에는 절대 도전하지 않았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율법 앞에, 종교의 체질화된 사람들 앞에 복음이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언약을 이루는 응답이 있다는 것과, 구원 사역의 연장선 상에서 하나님이 움직여 가고 계신다는 것을 바울은 보았다.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오순절 역사는 사라지고 전통과 제도, 형식에만 관심을 두는 과거의 습관 속에 옛사람으로만 묶여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전 지역은 재앙과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머무르는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함으로 어떤 기근에도 흥했다. 국가가 부도의 위기가 와도 예수사랑교회의 기업과 자녀는 모두 살아남게 되어있다. 예수사랑교회는 복음만 증거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유일성의 응답이 있고 재창조의 응답이 들어있다. 그래서 복음이 각인, 뿌리, 체질되면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은 전부 종교 체질로 전락되어버렸다. 과거 율법의 틀 속에 그대로 갇혀 출애굽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을 선동자로 몰아버리고, 모세를 배반한 자라고 모함했다. 모세도, 엘리야도, 바울도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만 남아야 한다. 이제는 할례도 끝났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누군가가 ‘바울이 전통과 규례를 지키지 말라고 선동을 했다’ 고 거짓말로 보고한 상태였다. 결국 초대교회는 인위적 사고,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근이 들고 재앙시스템에 갇힌 것이다. 인위적 사고는 끊임없이 대책만 세우기에 바쁘다. 그런 곳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역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당회장 목사인 나도 교회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자가 있어도 기도 속에만 있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거하시든지 데려가시든지 하신다.
행21:22~25, 예루살렘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대책만 세우고 있었다. 하나님이 교회 사역을 하고 계심에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인위적 사고를 가지고 대책만 세우는 것이다. “어찌할꼬, 큰일났다, 전도자 바울이 왔으니 이제는 어떻게 할꼬” 생각하다가 세운 대책이 바울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한다. “유대 종교로 돌아오겠다고 서원한 네 명의 사람이 있으니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해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바울까지 포함해서, 7일 동안 음식을 절제하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사단의 유혹은 이렇게 멈추지 않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움직여 간다.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교회의 일에 대책을 세우는 것은 사단이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가지고 복음의 일사각오가 된 사람은 이기지 못한다. 충성하는 자는 타협도 없고 오직 선택과 부르심 뿐이지만 교회 일에 대해서는 타협하는 것이다. 교회가 조용해지는 일이라면 양보하는 것이다.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겠다는것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행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사도행전에는 ‘그리스도인’ , ‘예수님의 제자’ 가 나오지만 여기는 ‘형제들’ 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인은 원네스를 이룰 수 있지만, 형제는 원네스를 이루지 못하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님의 때에는 ‘형제’ 로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구원을 받고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인이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형제일 뿐이다. 구원의 대상자, 양보해줄 수 있는 대상자. 인위적인 대책을 세워서 인본주의로 사는 자, 옛 자아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자, 종교심이 많은 자를 ‘형제’라고 한다.
그래서 바울이 행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바울은 그들을 형제여’ 라고 불렀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아니라 그냥 종교심을 가진 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동질성을 회복하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핏값으로 사셨고, 하나님이 사역하고 계시니 당신들은 그리스도 앞에 당당하게 서야 합니다. 전도의 현장마다 일어났던 수많은 하나님의 사역을 선포하는 자리가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인본주의자들은 “형제여, 그냥 교회의 동질성만 회복하자. 교회를 잠잠하게만 하자. 율법의 열성을 가진 자들이 달려들어 교회를 개판시키면 되겠는가. 공동체 의식을 위해 너의 행위를 좀 죽이면 된다” 고 말한다.
그 때 바울이 행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바울 자신의 존재는 없고 오직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인생 여정에 하나님만 계시고 자신의 존재는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그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들러리, 종에 불과했고, 심부름을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을 하나님의 역사로 보고했고, 모든 것을 신앙적 인식으로 고백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자기 봉사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셔서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수만 명,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나의 것을 필요로 하시기에 내 것을 내놓으라고 하신다. 눅9:23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 것을 내놓을 때 내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 내 것을 내놓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불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을 위해서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 문제를 만들어내는 생산공장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의 자아를 깨뜨리지 않고, 왜 자신이 십자가를 짊어지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는가. 예수사랑교회 성도들은 누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쪽도 돌려대주고, 누가 때리면 눈 부릅뜨고 싸우려고 하지 말고 ‘아 이것이 마귀구나’ 이렇게 생각해라. 누가 마귀인가를 빨리 발견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같이 육신으로 싸우면 같이 마귀가 된다. 누가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는 척이라도 하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내줄 만큼 그런 자세를 갖추면 절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배경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 배경과 보좌의 힘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가 가진 감정, 의식, 기준, 생각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킬 때 종교 체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너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사는 자가 맞다면, 너의 것을 내놓아라”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행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말로만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말쟁이가 되면 안된다. 우리는 말씀과 일치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 중에 믿는 자가 많고, 예루살렘 교회 수만명이 있으면 뭐할 것인가. 율법의 열성을 가진 자들 때문에 매일 인본주의적 대책만 세우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자기 것 하나도 내놓지 못하는 자들 때문에 전 세계 교회가 망가진 것이다. 구원을 받은 자는 나의 작은 자아, 욕심부터 내려놓는다. 그래야 보상을 받는다. 구원과 접속이 되면 무한한 하나님 나라의 세계를 모두 공급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나무에 접붙이면 절로 과실을 맺는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나무에 접붙이면 포도 한 송이만 나는 것이 아니라 뻗는 만큼 열매가 난다. 이것이 복음의 진리다. 많은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것이다. 세상적인 것을 많이 알면 말만 많아지고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죽이고 대책을 세우며 거짓말만 할 뿐이다. 교회 안에 이런 모습이 사라져야 한다. 이런 나쁜 버르장머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끝내야 한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라면 누명을 쓰는 것쯤은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누명을 쓰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타협보다 양보를 했다. 타협보다 더 위대한 비밀이 양보다. 양보는 보좌의 힘,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는 사람만 가능하다. 그런데 양보보다 더 큰 것이 충성이다. 교회는 하나님 당신의 사역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에 흠집을 내면 안되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이 내 몸에 젖어있기 때문에 나를 쳐서 내 몸을 복종시키는 것이 ‘충성’ 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여기에 답을 내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율법의 열성만 있을 뿐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왜 율법의 열심이 있는가? 창3장의 법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눈에 자꾸 창3장이 보이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린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지적질을 한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우리가 대책을 세우면 세울수록 문제 해결은 길어지고 결국 돌 하나 남지 않고 교회는 망가져 버린다. 우리가 대책을 세우지 않아야 하나님이 보낼 사람을 보내신다. 대책을 계속 세워나갔던 예루살렘 성전은 결국 무너졌다. 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사역이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를 하나님은 꺾으시고, 골치 아픈 자들을 하나님이 치유시켜 주실 것이다. 창3장에 걸린 고집스러운 자에게 창3:15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실 것이다. 극단적 율법 교회에 집착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을 멀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행13:10 우리에게 권능을 주셨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버려라. 그리고 행19:9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는 자들에게서 떨어지고 제자의 훈련 속에 들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신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채 끊임없이 오해하고 갈등하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는 자들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너는 따로 제자가 되라고 하신다. 수많은 편견을 가진 자들에게 길들여져서는 안된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정말 고백했다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끝내야 한다. 오해와 편견을 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본문에, 종교인들은 끊임없는 타협을 요구했다.
종교적 세계관은 무서운 사단의 전략이다. 종교의 세계관은 교회를 이용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피로 값주고 산 교회의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과거에 나는 교회가 굉장히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군선교를 위해 헌신했다. 그런데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선교의 문이 닫힐 수도 있었고 구원 사역에도 지장이 있었지만 끝까지 도우면서 기도만 했다. 그런데 그 개인과 가정에 엄청난 재앙이 들이닥쳐서 나에게 벌벌 떨며 무릎꿇고 용서를 빌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문제가 찾아오니까 항복했다. 교회는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천배로 주시려고 손해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언약의 여정 속에 있는 전도자가 맞는지 확인하면 된다. ‘구원받은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는 절대적 믿음과 확신 속에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생명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곳이 교회다. “수 만명이 지금 바울 당신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당신이 양보를 해야합니다” 고 유대인들이 말했다. 사실 바울 가슴에는 충성만 있을 뿐, 양보라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교회의 일이기 때문에 양보한 것이다. 교회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통해서 후대가 일어나고 국가가 새롭게 재건되고 민족이 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양보한 것이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렇게 멋있는 고백을 한 바울이다. 그는 갈1:7~8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는 강력한 메세지를 전하는 전도자였지만 교회 일 앞에는 양보하면서 충성했다. 교회를 향해 불평할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닫아야 한다. 우리의 목적과 목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교회가 말장난에 의해 놀아나면 안된다는 것 때문이라도 양보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타협해서 충성스러운 전도자의 길을 가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교회의 유익에 우선순위를 둔 전도자 바울의 삶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주시고 우리 마음 속에 새겨놓고 우리도 교회를 위하여 이제는 양보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는 가슴을 젖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율법보다 복음이 연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응답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진리 앞에 모든 것을 끝내고 오늘 종교 체질에서 탈출한 기쁨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인위적 사고를 가지고 대책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지금 하고 계시는 그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 부족함이 없는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이제는 자신의 존재를 없애고 우리의 모든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모든 것을 신앙적 인식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 앞에 잠잠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날마다 구원에 이르는 보좌의 능력의 힘이 공급되게 하옵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하여 흑암을 꺾고 내 몸에서 율법으로 작동되어지는 모든 창세기 3장의 체질이 산산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우리 몸에 임하게 하옵소서.
언약의 여정을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사오니, 그 믿음을 따라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창세기3장의 법에 걸려 “예수는 그리스도”에 답을 내지 못하고 인본주의적 사고와 율법의 열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만 할 뿐 자기 것 하나를 내놓지도 못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많은 이 시대에, 죄와 저주,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귀의 반복적인 일을 무너뜨리는 말씀을 믿는 여정 속에 나를 살리는 힘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기에, 나의 감정과 의지, 세상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아를 깨뜨리고 교회를 이용해서 살아보려는 종교적 세계관과 종교 체질에서 탈출하여, 오직 그리스도 구속의 사랑에 빚진 자로 하나님이 주신 천명을 담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는 곳은 교회뿐이라는 교회의 중요성을 알고 교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 교회의 일 앞에서는 타협하고 양보했던 바울과 같이,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입을 닫게 하시고, 복음의 일에 흠집 내지 않기 위해서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충성 속에 내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