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선교를 위한 바울의 일사각오"
(행 21:1-16)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21:13~14)
복음 훈련을 우습게 생각하는 그 자체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다. 나는 신학대원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신학자들을 초청하는 많은 세미나도 직접 개최했었지만, 복음을 만난 이후로는 한 번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복음에만 집중했다. 그 집중의 시간이 한두 해가 아니라 지금까지 30년이다. 필리핀에서 오신 목사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자신이 신학교 다닐 때 필리핀 사역을 떠났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교비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준 목사라고 표현해주셨다. 나는 만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복음을 만났고, 복음 가진 교회를 만났다면 생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작은 것에 치우치는 일이 많다. 그러면 큰 그릇이 되지 않는다. 작은 그릇이 되면 사람에게 정신문제가 올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하나님에 대해 스스로 배신감을 느끼는 식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고 개인의 변화가 오지 않으면, 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문은 열리지도 않고 전도 제자로 세워지지도 않는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 복음 운동 속에 전도 제자가 되겠다고 결단했다면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기도 응답이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정복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러면 분별력이 생기고 정신을 차리게 되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뚜렷해진다. 우리의 영혼 속에 반드시 ‘오늘의 말씀’ 이 각인되어야 한다. 세상 말은 잘하는데 영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는 그리스도”, 말씀이 곧 그리스도시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로 반드시 옛사람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성경의 첫번째 핵심은 “거듭나라”, “회개하라”, 곧 옛사람의 틀을 깨뜨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이것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 말씀이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각인되면,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혼과 육과 골수를 찔러 쪼개 치유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저주와 재앙, 흑암의 권세를 사로잡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뜨릴 때 영적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길, 진리, 생명이시다’ 는 뚜렷한 답을 가진 자는 기도 응답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나의 영적 세계 현주소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나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 염려와 두려움 속에 먹고 사는 문제에 걸려있는가? 돈을 모으는 문제 속에 잡혀있는가? 우리가 이런 현주소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에게 종노릇 하며 사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사단의 심부름을 하는 삶을 살면 영적 질병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옛사람의 틀 속에 잡혀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좁아지는 것이다. 이상한 말 조금만 들어도 마음이 속상하고, 나를 갱신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자꾸만 열등감과 비교의식, 분쟁과 분노 속에 빠지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말하다가 사람이 더 비참해진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고 말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지금 염려와 두려움을 현주소로 가지고 있는 자가 무슨 진리를 말할 수 있냐는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 속에 있다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 되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내 안에 성령 계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존재다. 내 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모든 불신앙적 습관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부리는 천사들을 주셨다!’ 우리의 현주소가 이렇게 되어있다면 응답은 당연히 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우리의 현주소가 늘 염려 속에 있다면 시달릴 수밖에 없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복음의 본질을 모르면 율법의 모양으로 자꾸 위선의 가면을 쓰는 사람이 된다. 더러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전부 비난, 원망, 불평 갈등뿐이다.
모든 것을 다 못해도 진짜 좋아해야 할 일, 내게 맡겨진 내 몫의 일이 있다. 눅9:23, 내가 이 시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맞다면 내 자아를 부인하고 날마다 내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명령한다. 내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 없이 만들고 세상 것만 관심을 가지고 거짓말 인생으로 살게 하는 더러운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삶에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내게 맡겨진 내 몫의 십자가는 내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갈2:20 옛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한다. 바울은 고전9:27,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게 맡겨진 내 몫은 바로 예수의 십자가에 나의 옛사람을 못 박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 머물지도 않고, 그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옛사람을 깨뜨릴 때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 우리 개인에게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름,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일 앞에서도 피하지 않고 핑계 대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너무 큰 일을 하겠다며 현재 일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울의 자세였다. 바울은 예언자가 말리고, 제자들이 말려도 자신의 상황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이름, 우리에게 그 이름 하나를 주셨음에도 자꾸 핑계대고 합리화하고 온갖 이유를 대면서 인생을 사는 것은 매력이 없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문을 닫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을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이미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 바울은 1,2,3차 전도캠프를 마치고 그동안 여러일을 만났고 또 예루살렘에서도 결박당할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이미 죽을 각오를 했다. 하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신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에 이제 매인바 되었기에 어떤 일을 당해도 피하지 않고 가겠다는 것이다. 핍박과 환란이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자신이 그것을 피한다면 유대 동족이 영원히 멸망을 받기 때문에 자신은 가야 한다고 말한다. 청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그 이름을 우리 동족이 놓쳤기 때문에 우상종교에 빠져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사단에게 심부름을 하는 종교 생활에서 그들을 건져내겠다는 것이 바울의 가슴이다. 창3:15 말씀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놓쳐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은 사단의 심부름이라는 것을 폭로하러 가겠다는 것이다. 행21~28장까지 전도자가 겪을 결박과 환란, 무시무시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교 앞에 오히려 이단의 누명을 쓰고 죄수의 몸으로 살게 되는 것이 바울 앞에 놓인 인생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종교 교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이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 증명되고 있다.
두로지방에 있었던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큰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 행21:1~3, 바울이 1차 전도캠프 때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까운 두로에 7일 동안 머물었다. 이 두로라는 지역은 예수님께서도 전도하셨던 현장이다. 여기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방 여자 하나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타하고 거부하니까 예수님이 이방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사단의 심부름을 하는 하나님의 종교인들은 영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만 못 알아 듣는 상태였다. 요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사이비, 이단 교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한다. 매일 성경공부만 시켜서 진리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 아는 척하며 너무 많은 말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혼미케 되어 혼미한 단체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유대 종교인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이방 여자는 자신과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들린 상태라는 것을 명확히 분별할 줄 알았다.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인정하고 창3:15 옛 것과 마16:16 새것을 불러준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방 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예수님을 불렀지만 예수님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여자는 계속 예수님을 불렀다.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 답이 있다는 것을 알면 끝까지 부르는 것이다.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개 취급을 당해도 이 여자는 답이 하나이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에 올인했다. 구원 받기로 작정, 예정, 선택되었다면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구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 자가 된 것이다. 자신이 개 취급을 당하고 버림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약4:7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겸손한 자는 마귀를 대적하면서 그리스도 이름을 끝까지 부르고 가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면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특이하게 대답한다. 자기와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옳소이다. 당신 뜻이면 할 수 있습니다” 한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당신의 이름은 인간 모든 문제 해결자이십니다 인정하고 고백할 때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다” 말씀하셨다.
우리의 믿음을 큰 믿음으로 키워야 한다. 앞으로 내가 가는 곳에 복음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진리를 알았다면 인물 자체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옛사람의 자아를 깨뜨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는 이제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늘 찌질하게 쟁쟁거리고 쫀쫀한 상태로 신앙생활하면 정신문제 온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은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외칠 수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요셉은 형들의 쫀쫀함과 쟁쟁거림의 틀 속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크게 키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선택하신 것이다. 다윗의 형들이 얼마나 쟁쟁거리고 쫀쫀하고 그릇이 작았는지 다윗을 향해 “저 교만한 놈”이라며 비아냥 거렸다.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는 그릇이 크고 생각이 커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다. 사단의 심부름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큰 믿음을 갖는 자가 되어야 한다. 비전과 꿈, 이미지를 가지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그 이미지가 기적을 이루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
수로보니게 여자는 자신에게 온 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내게 찾아온 십자가구속의 사랑을 놓치지 않았다. 내게 온 십자가를 피하지 않을 때 사단의 권세는 깨지고 무너진다.
내게 기회로 온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숨고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맞짱 떠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야 한다. 유혹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비켜가라고 한다. 그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비켜가지 말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맞짱떠서 승리해야 한다. 얼마 전 이란 전도사님이 아프간 지역에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후원할 수 있으면 하겠다고 했더니, 직접 그 현장을 부목사님이 가서 메세지를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열악한 현장에 내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았다. 나도 이제는 고생을 안 해도 되는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는 너에게 찾아온 십자가의 길을 왜 피하려고 하느냐’ 소리가 들리면서 회개가 되기 시작했다. 행20:24의 말씀이 온몸에서 움직였다. 그래서 내가 가야겠다는 결단이 섰다. 나는 원래 빠져 나가데는 전문인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까 하는 마음에 참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고난과 유혹 앞에 비켜가고 싶은 마음이다. 자기가 힘든 일이라는 유혹 앞에는 비켜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내게 맞짱뜨는 힘이 왔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바울은 두로에서 7일간 그리스도인을 찾았다. 예수님께서 전도했던 그 현장에 어떤 제자들이 존재하고 살아있고 남아있는지 찾고 싶었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에 강렬해지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이름에 강렬해질수록 모든 현장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리를 듣는 제자가 이 현장에 과연 있을까 하고 찾게 된다. 십자가구속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이 강렬해지면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시선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 기간에도 전도 합숙에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전도 합숙에 집중해야 한다. 갱신할 부분이 있다면 갱신해야 한다. 우리가 정시기도를 습관처럼 길러내면 우리에게 장수의 축복까지 올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에 강렬해지면 전도 제자의 시스템 속에서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정말 남은 생애 현장 속에서 제자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나이가 들수록 강렬해진다.
행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바울은 성령충만한 제자를 만나 멋있는 교제와 권면이 있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제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로 몰랐던 관계가 그리스도 이름 때문에 영원한 가족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만 보여야 한다. 행21: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놀라운 형제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영혼에 얼마나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각인시켰던지 성령의 감동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오직, 유일성, 재창조로만 가능한 일이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하나님을 알면 만남 자체가 영원한 것이다. 종교 체질은 절대 영원한 만남이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진짜 알 때 복음으로 일인칭 될 뿐 아니라 형제와도 일인칭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때는 만남 속에 기적, 표적을 맛보고만 헤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가진 이 시스템 속에 만남은 전부 영원한 만남으로 연결되었다. 세계복음화라는 시스템이 되어 지역 지역에 제자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237 디아스포라 미션이 가능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 만남이 영원한 것이다. 이 일이 예수사랑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랬더니 예수사랑교회를 돕는 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복음화의 시스템을 통해 현장에서 제자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보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동이다. 짧은 생애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이 시대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은혜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하나님을 알면 세계복음화의 시스템이 세워진다. 성령의 권능을 소유한 전도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의 만남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 몸에 하나님이 주신 예수그리스도, 이 복음이 일인칭이 되면 절대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이런 걱정이 사라진다. 온전한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생 주기로 작정 된 자를 만난다. 지난 주 1부 예배 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했더니 저에게 많은 사람이 부탁을 했다. 한두명 이었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텐데 다섯 사람이 넘으니까 이것은 필연이구나, 절대 해야 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씀을 자기 중심으로만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말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제자가 된다. 바울이 7일간 교제했는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관계로 발전을 했다. 우리 청년들은 정시기도 때마다 ‘강단의 말씀과 피가 통하고 영이 통하는 제자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늘 한다.
행21: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전도자 빌립과 그의 딸 네 명이 하나같이 복음을 가르치는 예언자들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 자녀들이 얼마나 이상한가.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아는 척하며 말만 했기 때문에 목회자 자녀들이 타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신도 전도자 빌립은 그의 네 명의 딸이 복음을 지키는 예언자가 되었다. 빌립은 행6:5 믿음과 지혜, 성령이 충만한 자였다. 그는 사마리아 현장에서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이 붙었다는 것을 아는 전도자였다. 막3:15 예수님의 말씀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자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몸에 전도도가 일어나서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사용하게 되어 영적 상태가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적용하는 사람은 2%도 안 된다. 그 2%의 사람들은 자신을 냉철하게 분별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쫓아낼 수 있다. 겉으로는 굉장히 젠틀맨처럼 보이지만 거울 앞에 서면 자신 안에 얼마나 더러운 것이 많은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보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리스도 이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후11:14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자는 매력이 없다. 젊은 날에는 매력이 있을 수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러워지고 귀신들린 형상이 나타난다.
행21: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바울의 띠를 풀러 자신의 몸을 묶어 바울 선생이 예루살렘에 가면 이렇게 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성령을 받고 예언한다고 하는 선지자가 바울을 오히려 유혹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자는 선지자가 아니다. 전도자 빌립의 네 딸은 예언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복음의 예언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유대에서 내려온 아가보 선지자는 자칭 성령으로 말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유혹하러 온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유혹을 피해가게 하는 합리주의 선지자들이 이 시대 가득하다. 그래서 교회가 더 지저분해지고 매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행21:12~13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아가보라는 모든 사람을 다 울게 만들고 바울이 떠나지 못하도록 매달리게 만들기만 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요동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현장을 정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세워주신 이유가 있다. 나는 87년부터 2002년까지 군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한 번도 게으르거나 힘이 들어 쉰 적이 없다. 현장을 정복할 때마다 많은 죽음의 고비도 넘겼다. 트럭이 내 차를 들이받기도 하고, 불교인 사단장이 들어오면 복음을 비아냥 거리고 무시하는 것도 당해야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내가 가진 이 복음 앞에 기죽어본 적이 없다. 내가 가진 이 진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에게 복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보호장치를 주셨다.
자기 마음을 약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이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길을 드디어 본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가게 된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을 뛰어야 한다.
롬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다음 세대를 위해 디아스포라 237 미션을 시작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디아스포라 뉴스 신문을 만들고, 후대를 찾아내기 위해 미라클 오케이 어학당을 전 세계 심는 것이다. 그래서 행2:36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것을 가져야 사단의 심부름을 하지 않고, 노예에서, 포로, 속국 신분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다. 이 땅에 아름다운 문화, 예술, 철학으로는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고 고백했고, 사람들의 눈물의 권면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성령 받은 사람은 이렇게 뚜렷한 분별력과 냉철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은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위하여 결박과 환란을 당하고 죽을 각오도 가지고 산다고 했다. 예루살렘 종교가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이 세 친구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어떤 유혹도 피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정면 대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으면 반드시 자신의 문제가 풀려지고 자유와 해방이 시작된다. “내가 가는 길을 창조주 하나님이 날 위해 구원 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아시나니 그리스도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는 것이 욥의 고백이다. 고후5:17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바울도 고백했다.
우리 안에 무서운 원죄의 틀이 있음을 보고 깨뜨려야 한다. 본부에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어떤 분이 나에게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있다고 한 분을 추천했다.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는데, 인생 여정에 힘든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힘든 일도 없고 예수님이 늘 믿어지고 감사하고 기뻐할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무 일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믿어지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냥 잘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3년 정도 근무하고 큰 사고를 쳤다. 그래서 우리 단체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추천을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그분을 추천했던 사람들이 훗날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인생 여정에 아무 일 없이 예수가 믿어진다면 나는 비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몸이 아팠다던가, 사고나 실패가 있었던가, 아니면 정신문제나 영적인 문제가 있던가 해야 “예수가 그리스도” 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인생 여정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인내심도 없고 진리도 없고, 체험과 기적을 맛 본적이 없다. 그래서 심심해서 일을 하려고 할 뿐이다.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기 위해, 쓸쓸함을 잊기 위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 안에 무서운 원죄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죄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유대에서 내려온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의 길을 완벽하게 막는 사단의 심부름꾼이었고 쇼를 하는 사람이었다. 뭔가 자신을 전도자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만 그는 진짜 바울의 길을 막는 자였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알아야 한다. 시련 없는 믿음은 없다. 시련이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 시련 속에서 믿음을 지킬 때 인내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 이것을 만들어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도 대상을 보고 진짜 꿈이 생기고 비전이 일어나고 이미지가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어느 현장에서든지 전도 대상을 찾아내야 한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내고, 한 사람이 시대를 바꿀 수 있다. 한 사람이 70억 인구 앞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런 축복 속에 믿음을 가진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범사에 본을 보인 바울은 그리스도 이름에 일사각오가 일어났다. 죽음을 내놓고, 내 목숨을 내놓고 시작해야 한다. 한 번 죽을 각오를 하고 도전해야 한다. 하나님이 왜 대한민국을 축복하셨는가? 그리스도 그 이름에 일사각오 했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싸웠다. 남쪽에 있는 많은 목사님들은 그렇게 순교를 당했다. 그런데 북한은 신사참배를 찬성했다. 그래서 북한은 공산주의가 되고 남한은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에 일사각오 했던 목사님들이 남한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남한을 축복하셨다. 그들은 죽었지만 영웅으로 남게 되었다. 신사참배를 찬성했던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는 영웅처럼 보였지만 죽어서는 비참한 자로 기록된 것이다. 진리 앞에 일사각오 하나면 죽어도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도전하지 못하고 비겁해지면 살아있을 때는 영웅처럼 보일 수 있으나 죽은 후에 비참한 자로 남게 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나는 로마를 못 가도 좋다. 그리스도 그 이름만 예루살렘 종교가 알게 된다면 나는 로마를 가지 않아도 좋다’ 할 정도로 바울은 일사각오가 있었다. ‘내가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만난 이 사람이 그리스도만 안다면 나는 어디를 가지 않아도 좋다’ 할 정도로 팀사역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한다.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오늘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전도와 선교를 위한 바울의 일사각오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진리에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젠 내게 찾아오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을 때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고 어떤 유혹도 피하지 않고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는 이 시대에 마귀의 일을 멸하는 전도제자로 축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하나님을 아는 자에게 만남의 축복을 주시고 세계 복음화 시스템을 하나님 펼쳐갈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디아스포라 237 나라를 놓고 오천 미종족 살리겠다고 결단한 우리 예수사랑 모든 주의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이제는 세계 복음화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사각오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대한민국 구원의 여망이 끊어진 이 현장을 정복하고 회복시키는 천국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내게 맡겨진 내 몫의 십자가를 통해서 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참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생명으로 나의 능력으로 믿는 자가 되어 큰 믿음이 저들 삶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과 그의 딸이 흉악함에서 해방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들의 영혼이 그런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복음의 본질을 몰라 구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도 모른 채 위선의 가면을 쓰며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진리를 아는 척하고 사람을 혼미케 하는 거짓 예언자가 가득한 이 시대, 나의 영적 세계 현주소가 의식주가 아닌 하나님의 일을 보는 자로 나를 부르시고, 자신을 부인하는 영적싸움으로 제자에게 맡겨진 몫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부르셨기에, 나의 그릇을 키우는 큰 믿음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로 도전하여 비전과 꿈과 이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증인이 되어 예수그리스도가 각인된 성령에 감동된 제자와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일 앞에 찾아오는 시련은 당연한 것임을 알고, 언제나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뚜렷한 분별력과 냉철함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일 중심으로 받아, 나의 발목을 잡는 사단의 유혹을 피하는 자가 아니라 맞서 싸우고 복음을 일인칭하여 세계복음화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