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때 오는 만남의 축복"
(행 16:11-15)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이 본문의 말씀을 아주 오래 전 성취한 적이 있었고, 중국 사역에는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다. 교회가 없어서 동해기도원 나무 아래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하러 기도원에 오신 분이 제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아서 그분으로 인해 송이버섯을 해마다 선물로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곳에 있든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펼치면 하나님은 많은 응답과 은혜를 주신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나는 사람을 살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다’는 절대 소명을 가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은혜를 주신다. 말씀에 이끌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명이 되길 축복한다.
*창3:15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도, 세상과 달라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12:1~3에 말씀을 주셨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은 창22:17에 그대로 성취되어, 아브라함은 대적의 문을 취하는 축복을 받았다. 창3:15을 가진 자는 자기 아들 독자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절대 불신앙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축복은 시작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습관적 불평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늘 쟁쟁거리고 이상한 불평 속에 산다. 죄의 권세에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 에 장악되었다는 것은 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평안을 갖지 못하고, 평안이 와도 스스로 깨뜨려버린다. 무엇을 먹어도 만족이 없고, 하나님이 침대에 눕혀놓지 않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주셨는데도 감사가 없다. 우리 몸에서 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은 전부 분노, 짜증, 우울, 고독뿐이다. 감사가 없는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줘도 해결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인내심이 없는 결여 상태다. 끊임없이 나 중심으로 끌고 가서 스스로를 미치게 하는 창3장의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3:15을 가진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창3:15을 가진 자를 하나님의 중심에 담아놓고 보고 계신다.
언약을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이 보좌에서 함께 역사 하실 뿐 아니라,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지 않고 전부다 QT수준으로 전락시켰다. 말씀으로 QT하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변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거듭남과 회개는 없고 늘 합리화만 할 뿐이다. 나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는 다 무너져 가는 것이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복음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다. 정교회를 통해 가정마다 십자가를 다 가지고 있고 어디를 가도 십자가가 걸려있는 문화다. 그런데 모든 가정은 다 깨져버렸다. 러시아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자기는 아버지가 네 분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폭력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QT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변화는 없고, 광기와 약물 중독, 알콜 중독으로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나라 보다 복음을 더 빨리 받았던 나라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정신병의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은 큰 대륙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마약 중독으로 전쟁이 일어나 영국과 일본에 장악될 만큼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창3:15을 가지고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기 시작한다면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빛의 경제가 보인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내 몸과 함께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아브라함이 땅 문제로 조카 롯과 다투어야 했을 때, 그는 다투지 않고 양보해버렸다.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을 통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브라함은 했다. 단을 쌓고 여호와를 불렀을 때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내가 밟는 땅을 네게 주리라” 는 이 말씀이 그에게 성취되어, 그는 가병을 318을 두게 되었고, 그가 기른 318명의 군사가 단까지 쫓아가 포로로 끌려간 조카 롯을 구출했다. 소돔왕이 아브라함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이 가진 보화를 줄테니 언약을 맺자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불신자가 주는 돈은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이 준 것으로 거부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언약을 붙잡은 자를 통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때 멜기세덱 대제사장이 찾아와 아브라함을 위해 떡과 포도주로 잔치를 배설했고 아브라함은 자기의 얻은 것에 십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다. 언약을 가진 자는 이렇게 다른 것이다.
창3:15을 가진 자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고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창3:15 언약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늘 습관적 불평에 사로잡혀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망각해버린다. 창3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엡4:27, 우리 영혼에 늘 틈을 타고 들어오는 자, 벧전5:8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놈이 마귀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불신앙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때 하나님은 귀한 만남을 허락해주신다. 창3:15 언약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창3장을 가진 자들과 차이가 없다면 누구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세상보다 더 더럽고 수준이 낮다면 누가 우리를 만나겠는가?
사도바울과 실라, 디모데는 세상과 다르게 산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을 바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다. 롬1:16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가지고 세상과는 다르게 살았던 자들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선포한 자들이다. ‘습관적으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 너는 집중할 지어다!’ 이렇게 선포만 해도 ‘저를 좀 도와주세요’ 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매일 나 중심으로 미치게 하는 이 요물이 내 몸에서 작동하면서 그 요물대로 사는 것이다. 나 중심으로 나를 미치게 하는 요술쟁이가 우리 몸에는 있다. 늘 변덕스럽고 쟁쟁거리면서 스스로 미쳐가고 원망 불평 속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예수사랑교회만이라도 다르게 살아야 한다. 바울은 ‘나는 이제 다르다’ 고백했다.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래야 빛의 경제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너를 열방에서,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는 언약을 주셨다. 원죄를 가지고 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제자,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했다고 말씀하신 자이기에, 어떤 일에도 언약만 잡으면 반드시 응답이 온다.
행2:9~11 말씀과 기도에 애쓰고 힘쓴 제자들에게 하나님은 분명 응답을 주셨다. 그런데 그들에게 응답은 홍해를 가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만남 이었다. 사람 속에는 돈, 권력, 땅, 빌딩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래서 예수사랑 가족들은 ‘나는 이제 다르다’ 고 나를 바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를 바꾸려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 한다. 여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열린다.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만남을 통해 계속 나타나게 된다. 그래야 많은 사람에게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도 듣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된다. 예수사랑교회가 진행하는 다민족 사역은 굉장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기 때문에 다민족 사역이 쉽게 열리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 유치부 메세지가 전 세계 언어로 자꾸 확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빛의 경제가 흐르는 축복이다. 성령이 막으면 가지 않고, 성령이 열면 가고, 성령이 나를 멈추면 멈추고, 성령이 다른 길로 인도하면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비밀이고, 그 비밀이 창3:15이다.
본문에, 루디아에게 “주께서 마음을 열었다’ 말씀했다. 주께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예수사랑교회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이 자리는 찔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자리고 우리가 들통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죄의 권세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는데, 내 속에서 끊임없이 치밀어 올라오고 습관적 악행이 솟구치는 더러운 저주의 영을 해결하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찔림과 고통이다. 창3장을 말하지 않으면 절대 찔림과 고통은 없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 찔림이 왔다. ‘내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예수를 핍박하는 더러운 자로 전락해버리는구나’
창3장의 원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행9:4, 땅에 엎드러지는 날이 오고 눈이 머는 날이 오고 우리의 인생은 다 무너지는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원죄를 가지고 사는 인생 여정에는 더러운 악의 습성 밖에 없다. 롬7:17 내 속에 거하는 죄의 권세가 악행을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산다. “예수는 그리스도” 진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중직자가 되어도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으로 전락해 구원도 없이 죽는 것이다.
창3장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주께서 마음을 열어주신다. 창3:15 이 흐름, 메시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유럽 복음화를 위해 빌립보 첫 성에 자주 장사하는 루디아의 마음을 주께서 여셨다. 행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 지역을 통해, 동방권에서 세계관이 다른 서양에 복음이 전파되고 선교가 이뤄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예배를 상실했다. 그런데 바울팀은 집에서 절대 예배드리지 않았다. 안식일에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생명을 바치는 결단이 있었다. 사실, 집에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양이가 야옹하면 밥 주고 물주면서 예배드리고, 아들이 늦게 일어나서 밥 차려 달라고 하면 밥 차리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예배 인가? 악한 습관적 불평으로 늘 “하나님이 없도다” 하는 것이 잠재의식 속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를 발견한 이후부터 안식일을 생명처럼 지켰다. 그래서 자기가 머무르는 숙소에서 예배하지 않고 한적한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자세가 있었다.
예배하러 강가에 나가서 찬양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알아듣던 루디아의 마음을 성령이 여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메세지를 듣고 루디아의 마음을 성령께서 여신 것이다.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 요19:30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영원히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며 사단을 이기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불신앙하지 말고 악한 습관적 불평을 하지 말고 마귀의 일을 멸해라. 그러면 구원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을 타고 언약의 여정 속에 무한한 하나님의 축복과 승리를 안겨주신다.” 요14:6 예수그리스도는 길, 진리, 생명 되시고, 막10:45 우리이 대속주가 되어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은혜 가운데 성령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는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불신앙하면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요일3:8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아, 쟁쟁거리면 안 되는구나. 늘 불평과 불만 속에 잠겨서 더럽게 살면 안 되는구나.’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 쫓을 때, 영광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영적싸움을 진짜 하는 목사를 보지 못했다. 이것은 하면 할수록 멋있어지는 것인데, 목사들이 시기, 질투, 열등감과 비교의식이나 가지고 인생을 산다면 정말 매력 없다. 하나님이 나에게 한 사람이라도 붙여주셨다면 그 한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제자는 정말 복음을 누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느끼면서 지켜보는 눈이 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금방 느끼고 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중심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자가 되어 자유와 해방, 평안과 기쁨, 감사가 넘쳐야 한다. 그러면 눅18:10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이 찾으시고, 버림받은 자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이 건져내신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그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가슴에 새겨놓고 한 발 한 발 내딛고 입을 열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쁨과 평강이 시작 될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유대종교로 개종한 루디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공경한 자였지만 “예수는 그리스도” 이 비밀 하나를 몰랐다.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루디아가 안식일에 강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기 집에 유하라고 강권할만큼 힘을 얻게 되었다.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강권하는 여인으로 바뀌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웃들이 여러 말로 공격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중심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있다는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을 루디아가 정말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울이 설교할 때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요1:12을 영접하게 되었다. 요1:12에 집중하면 롬8:2의 축복이 시작된다. 이것이 우리 몸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습관적인 불평, 불만이 우리 영혼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사는 날만큼 사람을 지적질만 하다가 멸하는 자가 된다. 모세가 말년에 왜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했는가?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굉장히 못된 버르장머리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심판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이런 것이 우리 몸에 습관적으로 배어있으면 늘 하나님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칭 자신이 바리새인처럼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다가 자기가 무너지는 것이다.
예수사랑 성도들이라도 절대 복음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 막3:14 그리스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 영혼에서 “전도도” 가 나온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너는 내 몸에서 떠나가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의 흐름 속에 응답을 받을지어다!’ 그리스도 성령의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신다. 그래야 히4:12 우리 영혼이 치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육간에 강건해지는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새기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몸에 머무르면 맛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기도원 찾아 다니며 기도하려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가 품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나타내신다. 그래서 요1:29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표현하면서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영혼에서 찬양이 흘러넘치게 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어떤 환란을 당해도 담대하길 원하오니 내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 이 말씀을 내 영혼 속에, 내 심령 속에 머물러 있도록 한 주간만 버티면 하나님이 나타내신다.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너의 마음을 지키라.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는 큰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면 만인만사(滿人萬事)가 다 아름답게 보인다.
진짜 날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지구상에 누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자가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까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가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 사망권세와 지옥권세를 다 멸하시고,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다른 사람으로 살라는 그 언약까지 우리에게 주시고, 또 그 언약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지금 함께 계신다. 사랑하는 이성이 생겨도 그의 말을 담고 기억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하고 그리스도 주로 인정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음에도 왜 그 말씀은 믿지 않는가? 창3장의 원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3장 원죄를 유일하게 깨뜨리는 비밀은 창3:15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품지 못하고 새겨놓지 못하고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예수그리스도가 네 마음을 여셨으니 너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모든 저주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너는 침묵할지어다!’
우리 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를 바꿔야 한다. 요8:44를 요일3:8로 바꿔라. 롬6:17을 롬6:22로 바꿔라. 죄의 종으로 살지 말고 의에 종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과 정신,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삼중직을 사용하는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된다. 생명이 우리 몸속에서 자라나는 거룩함의 열매를 맺으면 담대함이 오고 두려워하지 않고 습관적 불평이 사라져버린다. 우리 몸에 요물단지 창3장 더러운 귀신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삼중직을 사용하는 실천이 우리 삶에 꼭 있어야 한다. 그러면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세계복음화, 하나님의 소원에 동참하게 된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릇으로 나를 바꾸면 우리의 육신 생활 상태가 달라진다. 진노의 자녀에서 성령충만을 간청하는 생명으로 바뀐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헛소리 잡소리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성령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술 취한 사람은 늘 횡설수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마시면 내 땅도 가져가라고 하고, 왕을 향해서도 삿대질하는 것이 문화로 젖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나는 비록 세상에 살지만 이제 창3:15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제부터 빛의 경제 속에 들어갈 것이다!’ 거울보고 한 번만 해봐라. ‘나는 오늘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런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가 왜 존재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을 향해 선포해라. ‘너는 세상에 살지만 이제부터 빛의 경제 속에 들어가리라!’ 거울보고 자신을 향해 선포하면 할수록 좋아지고 힘이 생긴다. 롬16:25 그리스도를 1인칭 했더니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한다. 그런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렇게 선포해라.
그리스도가 없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시달리고, 정신과 마음이 이상하고 육신의 생활 자체에 균형이 깨져서 무너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행복한 자가 되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 오늘도 예배하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한다. 요1:12을 아침, 점심, 저녁 세 번만 하고, 마16:16을 부르고 싶을 때 부르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계3:20에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문으로 출입하게 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는 반석과 산성, 시온의 그 절대 힘을 느끼는 자가 되어 ‘여호와를 향해 대적하는 자들은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선포하는 것이다.
행16:15 “…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세상과는 다른 표현 속에 “내 집에 유하라” 는 헌신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고 ,헌신을 해도 사람 앞에서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심령 자체가 아름답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알 수 없는 검은 동기와 이상한 것이 우리 몸에 작동하고 있다. 자원하는 마음이 와야 한다. 하나님 앞에 헌신을 자원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응답이다. 그래서 내 몸에 성령이 임하면 창세전에 예정되고 모태에 조성되기도 전에 하나님이 구별하신 만남이 시작된다.
루디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자마자 그 집을 다 세례 받게 했다. 우리의 헌신의 말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축복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므로 헌신을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결단하는 액션이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영광을 받으신다. 행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머뭇거리는 것이 많다. 성령이 우리 몸에 있다는 것을 믿고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성령께서 계시고 역사하신다면 나를 지금 일으켜 세워 보시옵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계셔서 심방을 간 적이 잇다. 그분에게 “이제 나았습니다. 일어나십시요” 했더니 누워있으면서 “안 나았는데요?” 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식사하는 것과,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았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구나’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다” 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다. 롬1:16~17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음을 들으면 즉각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오직 창세전에 예정된 자, 의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다.
믿음을 소유한 루디아 한 사람을 통해 빌립보 교회가 탄생되어졌다. 헌신적이고 용기 있는 여인, 즉각적으로 실천하는 여인, ‘나는 그리스도를 믿노라, 그런고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헌신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 일을 위해 모든 장애되는 것을 뛰어넘는 여인이 바로 루디아였다.
군사는 자기 생활과 의식주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놓고 우리는 전쟁 중에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보좌에서도 지금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령의 능력을 언제나 느끼며 살아야 하는 군사다. 편견, 망상, 불평, 불안, 염려, 낙심, 수군거림, 사람 눈치… 이런 것을 다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를 군사라고 한다. 남자들을 자기 집에 끌어들여 유하게 할 때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이었겠는가? 그런데 루디아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 “나를 주 믿는 사람으로 알거든 우리 집에 유하라” 이것이 교회의 탄생이다.
루디아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들었다. 불신자들이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 주위에 불신자들이 사방의 눈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얼굴 표정, 걸음걸이, 언어, 생각의 표현이 얼마나 다른지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무서운 의식주 문제 앞에 불신자가 늘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표시내지 말고 침묵하면서 기다려라.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뛰어넘어야 한다.
롬1:2 우리가 가진 창3:15,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롬1:3~4 부활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열방에서 나를 나오게 하시고, 열방은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이제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때 오는 만남의 축복을 알았사오니,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날마다 있게 하여 주옵시고, 오직 한주간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여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사 우리가 머무르는 그곳이 세계 복음화의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가족들을 구원시키고, 이웃들을 구원시키고, 더 나아가 국가를 구원시키는 귀중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창세기 3장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품지 못하고, 습관적 불평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망각하고 감사를 잃어버리며, 분노와 짜증, 우울의 감정 속에 나 중심으로 살아야 할 나에게, 창세기 3장 15절 복음의 능력을 주셔서 창세기 3장에서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시고,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불신앙을 무너뜨려 내면이 변화되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며 어떤 상황에도 예배에 결단하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것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어 ‘나는 이제 다르다’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릇으로 나를 바꾸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헌신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날마다 선포하고 오직 성령충만을 구하며 전도를 막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여, 하나님이 제자에게 주시는 응답인 만남을 통해 우리 가정이 세계복음화의 첫 성이 되고, 나를 만나는 자의 마음이 열리는 말씀의 성취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