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율법으로 멍에를, 복음은 은혜로 구원을 준다"
(행 15:6-11) (徒)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사람은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영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창3:15 예수그리스도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단, 하나님의 복음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육체로 전락시켜 네피림으로 우리를 완전히 장악해 놓은 사단을 무너뜨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이 사단에 의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하는 말은 ‘나를 붙잡아주시고 도와주시고 나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는 간청밖에 없다.
*생명의 복음인 기독교가 복음의 종교로 전락 되었고, 생명의 복음이 율법이 되어버렸다.
생명이 되고 능력과 권세, 환희와 기쁨이 되어야 하는 복음이 기독교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복음을 잃어버린 우물가 여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너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일평생 믿어보고 섬겼지만, 그것은 종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4:24 을 우물가 여인에게 직접 주셨다. “하나님은 창3:15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복음을 주셨다.” 복음은 동서남북 어디서나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선포되면 이 복음, 굿 뉴스, 엄청난 기쁨의 소식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증거 있는 증인이 된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예배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응답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몸에 있으면 진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을 마치시고 진리의 말씀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주셨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 예수님은 인간의 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진리의 영,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하고, 그를 보지도 못하지만 “너희는 그를 아나니” 말씀했다. “너희”가 누구인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너는 복이 있도다.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알게 하신 것이다. 이제는 네가 육신적으로 살면서 흔들리는 갈대로 살지 마라. 너는 이제 반석이 되었다. 이제는 네가 내 교회가 되고,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비밀을 갖게 되었다.
‘여자의 후손’ 이라는 말은 지구상에 단 한 분에게만 쓸 수 있다. 마1:21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자의 후손 이라는 말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창3:15을 말씀한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 곧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다. 우리 몸에 이것이 깨질 때 하나님이 나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그리스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삼위 하나님의 영을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창3:15 우리에게 여자의 후손 메시아를 주신 성부 하나님, 그 말씀대로 오신 성자 하나님, 인간의 모든 저주와 재앙, 죄의 권세와 사망권세,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제는 성령 하니님이 우리 몸에 임하는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 성자를 그리스도, 성부를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속에는 삼중직이 들어있다. 요일3:8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 속에 참 왕권이 들어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싸우시는 하나님” 이라고 한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천하를 꾀는 자, 사단을 멸하시려고 오셨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내가 당해야 하는 모든 저주와 재앙, 죽음까지 친히 한 몸으로 다 받으시고, 예수님 한 분이 다 해결하셨다. 조롱과 핍박, 침 뱉음을 받고 뺨을 맞아가면서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예수님이 한 몸으로 받으신 것이다.
요19:30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마지막 고백이 “다 이루었다” 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이루시고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요20:22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다는 말,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스스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은 지구상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밖에 없다. 우리 몸에 그리스도 이름 하나를 집어넣으라고 ‘영접’ 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요1;12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하나님 노릇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장난치지 않는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불신자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축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가져 보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한 채, 그냥 시들어가고 죽어가고 늙어가며 이상한 상태로 불신자들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주워먹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아집과 고집, 더러운 자아 중심을 무너뜨려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진리의 영이다. 보혜사 하나님이 지금 그리스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은 눅9:23이 언제나 심령에서부터 작동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자기 아집, 자아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갈2:20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백을 했다면 행동이 있어야 한다. 우리를 짓밟는 사단의 권세는 날마다 찾아오기 때문에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전과 다르게 싸가지가 없고 배은망덕하고 겸손할 줄 모르고 더 교만해지고 발악수준으로 가면 되겠는가?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중직을 알리는 머슴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는 강단에 있을 때만 복음의 말씀으로 권위가 있을 뿐이지, 강단에서 내려오면 섬기는 종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것이 안 되면 전도현장에서 사람 하나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겸손하고 낮아져야 하는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고전15:31이 날마다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허리를 동이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고, 자기가 무시를 당한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능하신 손으로 상대방을 알아서 해결해주신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창3:15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어쫓긴 자에 대한 영적 세계를 몰라서 창3:15을 놓쳤다.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땅에는 창1:2 혼돈과 공허, 흑암이 이 땅으로 내어 쫓겼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신다고 이미 말씀하셨다. 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창3:15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이다. 요1:4 “그 빛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영적인 것부터 가지고 있을 때 육신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영적인 것을 갖지 않고 육신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종교다. 응답받고 싶고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할례까지 받으려고 육신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참된 복음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변을 볼 때마다 창3:15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창3:15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우리의 육도 강건해 진다. 요삼1:2 너의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된다고 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를 모르고 육신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없다. 시14:1 결정적 순간에 사람은 얼이 썩고 얼빠진 자가 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육신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만 다닐 뿐이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부패되고 자범죄 속에 빠지게 되고 믿는 척하며 가증스러운 행실에 빠질 뿐이다. 자기를 전혀 갱신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종교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복음을 붙잡는 자는 “너는 영원히 살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의로운 손으로 붙들리라” 복음을 가지면 사43:1 “너는 나 여호와의 것이다.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여호와의 것이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자신이 부패되지 않도록 날마다 자기를 갱신하고 그리스도로 씻어내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어둠과 캄캄함이 너를 가리워있으니 너는 일어나 빛을 발해라!” 이런 사람은 빛의 행동이 나온다. 흑암과 싸우고 사단의 권세를 멸하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육신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해지는 것이다.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이런 사람은 유1:12~13 이런 사람은 열매 없는 가을 나무, 거친 물결이라고 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아집, 고집덩어리인 사단의 체질을 버리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사단은 지옥 가기로 작정하고 하나님과 대결해서 싸우는 놈이라고 계12:7~9 말씀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구원받는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종교는 그런 제도를 통해서 결국은 돈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고 사람을 속일 뿐이다. 그래서 교회는 제도와 법도, 율례와 교리가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다. 성경을 믿으면 되는데 왜 교리가 필요한가? 자기하고 맞지 않는 사람들을 다 찍어 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진리 때문에 왕따가 된다 하더라도 그 진리를 잡아야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케 되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보상을 받게 된다.
율법과 종교는 전도의 문을 막는 사단의 조직에 걸려드는 일이다. 그래서 할례를 강조하는 사람도 사단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 끝내셨음에도 그것을 믿지 못해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행15: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칼빈의 교리, 웨슬리의 교리… 수많은 교리 때문에 기도도 안 되고 예배 생활도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점점 복잡해지고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 불순종 가운데 역사하는 그의 영을 가지고 종교 노릇만 할 뿐이다. 베드로파, 바울파, 야고보파 이런 일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예수파 하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구원자,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뿐이다.
우리가 왜 ‘오직 예수’ 만해야 하는가? 그래야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5분 전에 한 말과 3분 전에 한 말이 달라도 얼굴 색 하나 바뀌지 않는다. 이런 무속의 영에 끌려다니면서 혼미케 되어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 영으로 ‘오직’ ‘유일성’ 하면 ‘재창조’ 의 역사 속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어둠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무속의 영들과 함께 놀고,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같은 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영이 달라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가져야 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를 이길 힘이 없어서 불신자들에게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가 가진 그 힘 앞에 복종하고, 심지어 썩어가는 자기 몸 하나 해결할 길 없어서 개가 와서 자기 몸을 핥을 만큼 연약해져 있었다. 우리는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힘, 그리스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힘을 가질 때 더럽고 가증스러운 영들에 이끌리지 않게 된다. 수많은 목사들이 사람을 섬기겠다고 사람에게 임명장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네피림 시대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피림은 사단에게 잡힌 자들을 말한다. 사단에게 잡히며 종교가 판을 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하며,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기에 모든 거짓 사상과 이념, 모든 거짓의 영들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렇게 선포해야 한다.
할례 같은 교리로 전도와 선교의 문을 막으면 안 된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리스도가 바로 전도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내 몸에 전도해야 우리 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에게 전도하지 못하니까 거짓의 영 그대로,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로 요8:44의 몸으로 장악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원죄를 제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범죄 속에 빠지게 된다. 너희 아비가 행하고자 하는 그 욕심을 따라, 욕망을 따라 계속 자범죄 속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중독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 중독의 상태를 멸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들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 능력이 됨이니라”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 그리스도로 지혜를 갖게 되고 능력을 갖게 되어 이 세상을 정복해가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져야 엡1:3~5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복 주시되”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힘,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져야 하늘의 신령한 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신 엄청난 존재들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가져야 한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다른 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 뿐이다. 막3:14~15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르신 자들에게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삼중직을 말해준다고 하셨다. 그래서 집안이 달라지는 것이다. 눅15:8 동전 하나를 잃어버린 과부가 그 동전을 찾기 위해서 온 집을 부지런히 치워가며 찾아냈듯이 영적인 힘을 얻으면 동전하나 때문에 온 집 안을 청소하는 힘, 흑암을 꺾는 힘이 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마4:19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지 진실하게 고민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율법과 종교는 모습에 빠지게 만들고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게 하는 재앙이며,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반항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반기를 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하셨다.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나를 굳세게 만들어라. 그리스도를 체험한 이후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선포했다. 이제는 우리가 사용할 이름이다. 나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너와 항상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는 세상을 이기어 놓았음이라” 죽는 문제가 있어도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있으라.” 하셨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니라” 약속하셨다.
율법과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늘 하나님을 시험할 뿐이다. ‘하나님, 한강을 홍해와 같이 가르는 역사를 내가 본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역사해 주옵소서!’ 하지만 한강은 이미 다리로 다 연결이 되어있다.
우리는 광야 백성처럼 살면 안 된다. 광야 백성은 99%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왜 광야라는 곳에 우리를 두셨는가? 물 한 방울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끌어다 놓고 우리의 체질을 바꾸고 갱신하라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광야가 두려운 존재로 보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데려놓으셨다는 것은 ‘하나님만 절대 바라보는 자에게는 은혜가 임한다’ 는 것이다. 나도 짊어질 수 없는 그 멍에를 다른 사림이 짊어지게 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비밀을 가르쳐주지 않고 성경을 어설프게 가르치고 멍에를 씌우는 것은 나쁜 짓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우리 몸에 영원히 남는 이름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항상 함께 있어야 그것을 ‘영원’ 이라고 한다. 롬16:25을 1인칭 했더니 그 안에 영원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곳에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고 죽은 자도 살아나고 병든 자도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병 고쳐주시옵소서’ 하는 자들이 아니다. 세계복음화 여정을 가면 어느 날 이상한 질병이 사라진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서 나를 따라와라. 어떤 환경에도 믿기만 해라.” 이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아침 저녁으로 먹여줘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하나님을 배신한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 같은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일어나 걷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남는 것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하나를 가지고 세계복음화 할 증인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하나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힘, 성령충만을 받아 땅 끝 까지 이르러 증인 되길 원하오니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몸에 왔다는 것이 바로 마12:28을 성취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몸에 임하면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더러운 저주의 영을 내어 쫓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 사람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더러운 동기, 더러운 이익, 강한 자가 움직이려고 하는 이 강한 자를 먼저 꺾어야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보좌의 축복과 하늘의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베드로와 바울이 시대와 미래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없어도 사도행전적 역사가 예수사랑교회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믿는 생명들에게 지금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창3:15을 가지고 뱀의 머리를 깨뜨린다면 내가 가죽옷을 지어 입혀줄 것이라고 하나님 나라의 보좌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창3:15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성취시키지 않으면 입혀준 것까지도 빼앗긴다. 그래서 자기가 부끄러우니까 이마에 땀이 날 만큼 일을 해서 겨우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해 입는 것밖에 없었다. 창3:15을 가지면 다 해결되는데, 창3:15이 없기 때문에 남자는 남자 대로 고통을 당하고 여자는 여자 대로 고통이 찾아와서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것이다. 창3:15을 가지면 옛사람의 아집과 자아,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다.
생각 하나만 바꿔도 인생이 즐거워진다. 가난해도 감사하는 생각으로 한 번만 바꿔봐라. ‘내가 죽은 후에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지만, 살아있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자체를 알게 되었고, 이 보좌의 비밀을 가진 축복을 받게 되었구나. 이것을 모르고 죽었다면 영원한 지옥에 갔었겠구나. 이 가난함이 진짜 축복 중 축복이 되었구나’ 진짜 가난하면 딱 한 분만 생각난다. 나를 지으신 아빠, 나를 태어나게 하신 아빠, 내가 왜 한국 땅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가 아버지 집에 가면 되겠구나’ 하는 것이다. 집 나간 탕자가 어설프게 배가 고팠을 때 돼지 쥐엄열매만 생각나다가 진짜 배가 고프니까 아버지가 생각났다. 정말 가난하면 역사의 주인공, 창조주 하나님, 나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생각난다. ‘그 하나님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까지 가난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왜 이런 무능 속에서 주저앉아있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진짜 성공자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 능력이 날이 되어 마10:1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게 되고 눅10:19 모든 원수를 제어하는 능력이 시작된다. 집 나간 탕자가 진짜 배고플 때 아버지 집을 향해 탈출했듯이, 방탕했던 나라에서 아버지 집을 향해 갈 때 자기 모든 자아를 사로잡아 내어버리고 결단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돈을 많이 들고 나와서 많은 여자를 만났던 것이 다 사라져야 한다. 타국에서 방탕하게 살았던 체질이 무너져야 한다. 진짜 배가 고프면 그런 것이 보이지 않고 오직 ‘내가 아버지 집을 향하여 가야겠다’ 결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권능이 나의 것이 되어 나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고 우리 가문을 살리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언약을 자신의 몸에 새겨 놓으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임재를 느끼며 동행하는 생각이 온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영원한 성공자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진짜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부자 중에 부자구나.’ 그분이 일용할 양식이 끊어지지 않게 도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기도하니까 땅을 정복하게 되고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을 복종케 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100% 우리 몸에 수용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마16:16 이 고백 속에서 17~18절의 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바른 하나님의 영을 고백할 때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이 없고 완전한 구원의 은혜라고 본문에 말씀하셨다.
창3:15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행2:36로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반드시 깨닫고 체험하고 확인해야 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하셨다” 여기에 집중할 때 진짜 성령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이상하고 혼미하고 분별력도 없고 판단력도 없이 늘 눈 감고 드리는 예배뿐이다. 그래서 온갖 이단에 장악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신천지 출입금지” 이런 말을 써놓지도 않는다. 자기들이 왔다가 오히려 도망간다. 고후4:4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게 하는 혼미하게 하는 세상의 영이 있다. 여기에 걸려들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인데도 그리스도에 1인칭이 안 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비유법, 요한계시록 이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상한 가르침을 따라서 자꾸 성경을 공부만 하려고 한다. 그리스도 없이 착한 사람은 마귀에게 쓰임 받는 체질이 되어서 결국은 사이비에 다 빠져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대 예수사랑교회에 왔다는 것이 축복 중 축복이고, 하나님의 절대 구속의 사랑을 받은 자이다. 예전에 태백에 유명한 보살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태백에 메세지를 하러 가는 길이라 그 집에 들렀다. 그런데 자기 집 앞을 빗자루로 쓸어놓은 자국이 있었다. 꼭 내가 올 것을 알고 쓸어놓은 듯했다. 그 집에 갔더니 조용했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오더니 나한테 인사를 했다. 자기 남편이 새벽 2시 쯤에 일어나서 큰 신을 받은 사람이 우리 집에 오시니 그 분을 잘 영접하고 보내라고, 그리고 자기 며느리들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 집에 며느리 둘이 3개월 드러누워 있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유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다. 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무기력증에 사용해봐라. 무능, 무기력, 저주, 재앙, 가난, 질병, 우리 몸에 이상한 것으로 장악된 나에게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10:38 마귀에게 묶인 것을 풀어내는 힘이 생긴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것을 고치는 능력,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행11:21 주의 손이 함께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복음의 말씀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행13:10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우리가 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우상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 샤머니즘, 미신 사상, 귀신 문화에 길들여진 자들로, 자기의 더러운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서로 나눌 줄도 모르는 사람들로, 이런 체질들이 장악된 자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만나지도 않았으면서도 만난 척하며 사람들을 의식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들을 사로잡아 복종시켜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만 믿는 척하고 집안에 들어가면 집을 완전 귀신 동네로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체질들을 빨리 꺾어버려야 한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선민의식과 혈통적 우월주의, 이런 것으로 살게 하는 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주 그리스도” 를 예수로 받는 구원이 우리 몸에 있어야 한다.
행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의 은헤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나의 노력, 나의 능력, 나의 공로나 나의 의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 공로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우리에게 은혜의 복음이 삶에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은혜의 복음’ 은 창3:15 곧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녕 죽으리라” 는 하나님의 법에서 자유와 해방을 받은 은혜의 복음이 창3:15이다. 그래서 창3:15은 성삼위 하나님의 영을 말한다.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있다. 어떤 역사인가? “뱀의 머리를 깨뜨려라” 이 말씀이 마12:28~29로 반드시 우리 몸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질 증거다. 행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삼중직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의 권세를 꺾어버리면 저주와 재앙, 멸망의 늪에서 해방을 받는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아야 성령의 역사가 우리 몸에 오는 것이다. 행10:44~45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할례만 강조했던 사람들이 놀라게 되었다. 행15:5~6 할례를 받아야 성령이나 믿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문제로 사도와 장로들이 의논하러 모였다. 이것이 창3:15을 놓친 이스라엘의 역사다.
행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그들의 논쟁에 많이 시달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과거의 성질 같았으면 “이 독사의 새끼들아!” 했을 그가, 온유하게 그들에게 말을 한다.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베드로와 같이 복음의 말씀이 우리 입에서 나오면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믿어지지 않는가? 복음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고 확신도 없고 쓸데없는 변론만 가지고 매일 논쟁만 하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을 가진 자’ 라는 뜻은, 하나님이 믿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택한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을 가진 자, 믿는 자가 되어 우리는 행1:8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거칠고 타락하고 이상한 이 현장에 오직 “그리스도” 하면 모든 것을 공급받고 부요케 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복음의 말씀 외에는 어떤 조직으로 묶어 놓거나 가둬 놓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만 가지면 되기 때문이다.
창3장 자기 우월감을 지키겠다고 하는 요8:44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의 말씀뿐이다.
이 세상 신으로 인해 복음을 끊임없이 부끄럽게 하는 사단의 대가리를 박살 내는 복음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몸속에 시기와 질투심으로 악이 살아서 발악하게 만드는 이 사단이 머리를 무너뜨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저주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말씀을 가지면 절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툴 이유가 없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움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다투는 것이다. 엡6:12 우리는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3:15로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라. 그러면 문화적인 모든 것을 복음으로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복음의 말씀이 우리 몸에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초월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이 온다. ‘오직’ 하면 ‘유일성’의 응답 속에 ‘재창조’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 땅에서 추상적 이론이나 변론은 다툼만 있고 원수 맺는 것만 있을 뿐 절대 결론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간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그 사실에 대한 자기 경험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이방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해 놓으신 것이 원시 복음이다. 그래서 내가 현장을 갈 때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확인했다. 행8:4~8 내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갔더니 빌립 집사가 오직 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증거 했을 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앉은뱅이와 중풍병자들이 일어나고 죽은 자들도 살아나고 각종 무능과 질병의 저주들이 해결 받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욥바에서도 그리스도를 말했더니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을 확인했고, 피장 시몬이 장로로 세워지면서 그 집이 지교회로, 미션홈으로 제자 공동체가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다. 가이사랴에 갔더니 사람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이름만 불렀는데도 무한한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을 나는 확인했고 안디옥에 가서 주의 손이 함께하는 그 축복을 나는 확인했다.” 현장을 뛰면서 체험하고 확인한 사실을 베드로가 복음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또한 마28:18~20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현장을 보았을 뿐 아니라 복음의 말씀으로 제자가 세워지는 그 현장 속에서 가난과 질병, 무능과 모든 저주가 사라지고 사람이 온전해 지는 것을 보았다고 증거했다. 그래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마가다락방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불렀다는 것을 확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증거했다.
또한,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다윗왕도 체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행2:26 다윗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 자기 마음이 기뻤으며, 그리스도를 알고 혀가 즐거웠고,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었다는 것으로 육체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행2:36의 메세지를 했을 때, 행5:42의 역사가 사람들의 몸에서 일어나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랬더니 행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연약한 사람들, 환란의 두려움 속에 빠져야 하고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흑암에 덮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이 우리 몸에 증거로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된다. 복음의 말씀, 그리스도의 마음이 바로 성령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슴 속에 충만해져야 한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구원에 이른다. 이것이 하나님과 직통하는 길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과 직통하는 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문제가 끝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일어나라! 마귀야 가라!” 불신앙을 내어쫓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계복음화”, 이 일을 위해 우리는 “성령충만” 을 받는 것이다.
행15:9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자기 속에 더러운 배설물이 나가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목사나 성도가 차별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곧 마12:28~29, 롬8:2의 역사가 있었고 고전12:3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게 되었다. 아무나 “예수를 그리스도” 라고 하지 않는다.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어야 “예수를 그리스도” 주로 칭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단에게 잡혀서 이단, 사이비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에 기분 나빠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발작증세를 일으킨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를 좋아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이 계시면 그리스도만 좋아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춤을 춘다. 그래서 우리는 누리는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차별할 것인가? 하나님이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는데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과거를 끄집어내고 과거에 잡혀서 슬픔과 고독, 이별과 욕지거리 속에 원수 맺는 일을 하고 성처로 살아가는가? 히11:1 믿음은 과거 사단의 함정에서 해방 받는 것, 상처로부터 완전 해방 받는 것, 미래에서 해방 되는 것이다.
행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갈2:16로 우리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과 종교는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매일 쓸데없이 육신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 노릇하는 아주 악질이다.
행15:10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매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창3:15이 오직이 안되면 자꾸 다른 길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다른 사람에게 멍에를 씌워줄 이유가 없게 된다. 자유와 해방 속에 한 주간 평안을 얻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종교는 율법으로 멍에를 씌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복음의 말씀은 은혜로 구원을 준다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우리 영혼 속에 복음의 말씀이 각인되게 하옵시고, 복음의 말씀이 뿌리 내려지고 체질화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성령이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가지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언제나 삼중직의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과거에 매여있지 말고 누구나 우리를 만나는 생명들에게 과거를 잊을 수 있도록 복음의 말씀이 저들 영혼 속에 오직이 되게 하셔서 유일성과 재창조의 축복을 받아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탄으로 인해 육신적으로 몸부림쳐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종교와 율법에 묶여 하나님 노릇만 하며 가난의 저주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나에게, 스스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생명의 복음, 창세기 3장15절 여자의 후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적인 변화를 갖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 은혜를 바라봐야 하는 곳이기에,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힘,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어둠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 나에게 먼저 전도하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한 시대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사람 낚는 어부로 나를 보내셨고, 내 입에 복음의 말씀을 가진 자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나를 부르시고 택하셨기에, 복음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고 오직 창세기 3장 15절 예수그리스도를 새겨 오늘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자기우월감, 문화적 편견을 꺾어 다른 사람에게 멍에를 씌우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주는 세계복음화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