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다툼과 논쟁을, 복음은 구원과 기쁨을 준다"
(행 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최초의 기독교 총회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율법은 결국 다툼과 논쟁을 일으키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과 기쁨을 주신다는 절대적 고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하나만 각인되어도 많은 능력이 나타나고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아무리 이상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느냐? 그런데 왜 분노하는가? 왜 내가 하려고 몸부림치는가?’ 이렇게 분명한 사실 속에 자신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된다. 이 축복을 바울과 바나바, 그와 함께 한 제자들이 체험했다.
*구원의 하나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이 내 몸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율법과 종교는 끊임없는 갈등과 실족일 뿐이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거절하는 인생은 끊임없이 넘어지는 길 밖에 없다.
우리는 237 나라에 복음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심지를 뽑고 행동하는 시간표를 갖게 되었다. 예수사랑교회가 하나님의 분명한 복음의 계획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날마다 하나님의 역동적인 축복이 시작될 것이다. 예수사랑교회가 후대를 살리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반드시 전문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렘넌트들 중에는 세계적인 선수도 있고, 세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준비하는 자들이 벌써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성을 전문화하면 세계화가 되고, 세계화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몸에 있으면 복음화 되어 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왜 복음화의 비밀을 가져야 하는가? 빛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둠을 밀어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자녀가 되었기에, 각 나라별, 지역별로 예수 사랑 성도가 중심이 되어 전 세계 복음화의 조직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제자 중심으로 일을 하면 우리가 있는 지역에 지교회가 일어나고, 교회 중심으로 일을 하면 교회에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축복을 개인이 받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회 중심으로 일하지 않으면 음부의 권세에게 당하게 된다. 우리가 교회 중심으로 일하지 않으면 단회적 일이 될 뿐 지속할 수가 없다. 교회 중심으로 진행될 때, 지속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가 5만원씩이라도 디아스포라 통장에 헌금하면서 복음의 불씨가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 축복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믿는 자 되어야 한다. 디아스포라 미션을 위해 전 세계 문화권 개혁을 일으키고 캠프를 진행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본문은 기독교 세계대회가 시작된 날을 말씀한다. 바나바가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2년 동안 팀사역 하면서 일어난 일과, 1차 전도캠프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제자들의 중심으로 지역을 순회했더니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많은 은혜와 역사를,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다는 것을 보고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의 축복을 받고 그들이 기쁨을 누리는데 유대인들은 자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들이 먹는 음식은 가증스럽고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가서 음식은 먹지 말라고 한다. 이방인들에게 자꾸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첫 총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갈등을 넘어 자유를 맛 본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창3:15이 각인되면 모든 문제가 끝이라고 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이방인의 집에 가서 먹어도 문제 될 일이 없다고 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는 이제 복의 근원, 축복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몸에 임마누엘로 와 있다면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런데 내 몸에 그리스도를 임마누엘로 믿지 않기 때문에 작은 문제만 일어나도 갈등과 논쟁의 사건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가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몸에서 체험하고 맛을 보면 살전5:16이 나의 것이 된다. 어떤 사건에 의해 기분이 나빴다가도 “항상 기뻐하라” 꾸짖고 명령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다고 하는데도 교회에 대해 염려하며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너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다시 충만할지어다!’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임마누엘로 있다면 항상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 살전5:17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가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이 임마누엘로 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를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끝이다. 기도했다면 언제나 내 몸에서 응답을 느끼면서 그분이 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면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함께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기쁨을 빼앗기고 기도가 사라지고 무기력 속에 범사에 감사를 잃어버리게 된다. 엡5:5”너는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기업을 얻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사라지고 무기력에 빠져 기도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를 상실하는 것이다. 엡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결국은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율법과 다툼, 논쟁 속에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진노가 임한다고 했다. 엡5: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하는 자가 되지 말라” 함께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용납해버리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인본주의로 살아간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교묘하게 우리 영혼을 파고들어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멸망시키는 것뿐이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어느 날 사람이 교만해지고 진실하지 못하고 이상한 논쟁과 핑계, 쓸데없는 이유만 많아진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함께 하면 안될 사람들에게 심령이 빼앗기면 결과는 엄청나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엡5:10”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내가 십자가에 달려 당해야 하는 저주를 누가 대신 받으셨는가?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2:20을 언제나 고백했다. ‘나’로 사는 것은 거짓말쟁이, 율법 속에 다툼과 논쟁을 일삼는 육신덩어리 뿐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망이라고 말씀했는데, 왜 그리스도로 살려고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로 살지 못하면 함께해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모든 갈등을 넘어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본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10:10, 요8:44인 사단은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우리의 것을 훔치고 도둑질하고 빼앗는 강도, 절도라고 표현했고, 언제나 나쁜 것으로 공격해온다. 요8:44은 끊임없는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거짓말, 욕심쟁이로 공격해온다. 그래서 창1:27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 무너뜨리는 것이다. 고후4:4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우리 영혼 속에 임마누엘로 있지 못하게 하는, 혼미케 하는 이 세상 신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다. 율법과 다양한 다툼, 논쟁 속에 있으면 이 세상 신이 우리 영혼을 혼미케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끊임없이 창3장의 사단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자신감, 자만감, 시기심이 우리 몸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어 놓았음이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는 사람만이 사단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창2:7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생기가 우리 몸에 있어야 생령, 영적인 존재로서 영적인 것을 구분하고 영적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신약에 오셔서 요19:30 다 이루시고, 요20:2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셨다. 영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육신의 생각으로만 몸부림치며 시기심, 자존심으로만 살기 때문이다. 창3;5 선악과를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져 세상만 보게 되는 무서운 병에 걸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니, 시기심, 질투심, 자존심, 열등감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 노릇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율법과 다툼과 논쟁을 일삼는다. 이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려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요1:12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이름 속에 삼중직이 있기 때문에 삼중직으로 3저주를 멸해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졌으니 마귀의 일을 멸해라” 마귀의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에 관심 없이 사는 것, 세상 것에만 집중하는 것, 율법과 다툼, 논쟁을 일삼는 것… 이 마귀의 일을 멸하면 멸할수록 저주와 재앙이 무너진다. 그래서 롬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언제나 죄와 저주, 사망의 권세,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았기 때문에, ‘에고에이미’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요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아버지를 만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
이런 사람은 예배를 실패하지 않는다. 언제나 예배 때마다 창2:17~18을 알아듣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딱 붙잡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도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전도제자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것을 상실해버렸다. 그러니 사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육신적 상실감 때문에 슬퍼하고 상처받고 갈등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다. 우리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정말 내 자신을 시험해봐야 한다. ‘예배 때마다 내가 말씀을 놓치고 살았구나…’ 말씀을 상실하고 말씀을 놓치면 “정녕 죽으리라” 한대로 반드시 죽게 된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말씀을 놓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채워주신다. 우리 영혼 속에 이것을 맛보는 감탄사가 넘쳐나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자꾸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3:15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언약을 놓쳐버리니까 끊임없이 율법적 다툼, 논쟁으로만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놓고도 실족되고 넘어지는 이유를 사도바울이 롬11:11~12 기록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언약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가니까 그 복음의 언약을 붙잡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잘살고 잘되고 행복해지고 누리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고 시기심을 갖게 하였다. 그들의 더러운 고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실패하고 넘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잡지 않으면 극도의 실패와 실족함이 와서야 그 때 ‘나도 해봐야겠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게 된다. 그러기 전에, 빼앗기기 전에, 다른 사람이 다 먹고 난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미든 것이 아니라 다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고 누리는 것이다.
* 우리 몸은 전부 율법적이고 종교적이고 다툼 덩어리뿐이다.
그래서 복음을 거절하면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고 멸망하게 된다. 가인이 복음을 거절하니까 실패하고 넘어진 주제에 육신의 힘으로 자꾸 연약한 자기 동생을 못 살게 굴었다. 사람을 자꾸 괴롭히다가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동생을 쳐 죽였다. 그래서 아벨의 소리가 땅에서 호소한다고 했다. 결국 가인 마음에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실패할수록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넘어지고 자빠질수록 하나님과 변론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변론하자고 말씀하신다(사1:18). 문제가 오면 도망가지 말고 오히려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께 붙어야 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환란 날이 찾아왔다면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실패하는 사람들은 도망가고 숨고 변명하고 논쟁거리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다툼을 일삼는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다툼이 벌어졌을 때 창13:18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 곁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다. 결국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재앙의 시스템을 만들어버렸다. 복음의 언약을 잡은 자와 복음의 언약을 버린 자의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인생을 이끄는 삶의 법칙은 딱 세 가지, 그리스도의 삼중직 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임마누엘로 모셔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해라. 그래서 마귀의 일을 멸해라. 그런데 마귀는 이 세상 시스템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마귀의 일을 멸하면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서 축복하시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삼중직의 역사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자.
레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나의 아빠 하나님, 나의 구원자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한 성경이 레위기다.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우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믿는 하나님이 아니다. 구별된 하나님은 하나님이 구별시켜놓으신 복음으로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창3:15, 요14:6 “예수는 그리스도”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가 번제가 되어주셨다. 이렇게 엄청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경을 통해 내 몸에 받아놓고도 그 사랑을 버리고 세상 다툼과 논쟁, 문제 앞에 주저앉아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린양 예수가 우리의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되어주셨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이런 우리가 이제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 보이셨다.
그래서 레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언제나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 그런데 말씀이 심령 속에, 우리 영혼에 살아 움직이지 않고 오늘을 살면 오늘이 망하는 날이 된다. 말씀이 우리 영혼 속에서 들려야 한다. 내 안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어놓았음이라” 이렇게 말씀이 들리고, 내 자신을 향해 선포해야 한다. ‘너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망각하고 육신적 문제 앞에 쟁쟁 거리고 쫀쫀하며 답답해하고 잔머리를 쓰려고 바둥거리느냐.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민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왜 구원하셨는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새롭게 살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권세를 가졌다면 그 권세의 말씀을 가지고 사단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저주와 재앙에 떨지 말고 그리스도로 사로잡아 결박 시켜라. 답답해하지 말고 길이요 진리,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마28:18~20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 말씀이 각인되고 뿌리내려지고 체질화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야 한다. 그래야 마1:1 그리스도의 세계 속에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내가 이 계보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 계보 속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1:1에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말씀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다툼, 율법, 논쟁 속에 있지 말고 복음의 시작 속에 있어야 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이 임한 자로 나는 이제 디아스포라 미션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행1:8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임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제 땅 끝까지 이르러 세계복음화, 237 나라에 주역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게으르지 않는다. ‘내게 있는 것으로 나는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전문성을 회복할지어다!’ 그 전문성이 복음의 능력으로 접붙여지면 전문화가 되고, 전문화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면 세계화가 되고 세계화 속에 세계복음화의 주인공으로 결단 내리면 복음화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거룩하려면 마1:21이 살아서 우리 몸에 잉태되어야 한다. 내 몸에 그리스도가 잉태된 이유는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마1:23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본문에, 율법은 다툼과 논쟁밖에 없기 때문에 빨리 벗어나라고 말씀한다. 딛3:9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이 외에는 모두 헛된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신학 공부를 실컷하고 여러 신학사상에 젖어들어 결국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이런 것에 길들여진 자가 된다. 그래서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버렸다. 마귀를 대적할 줄도 모르는 신앙은 개보다 못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힘이 없어서 ‘마귀를 대적하라’ 는 영적싸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딤전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서 이렇게 더러운 것만 끊임없이 솟아난다. 딤후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갈5:20~21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불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이니라” 함께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있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영적싸움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여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거룩한 자, 구별된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경건은 곧 영적싸움을 말한다. 딤전6:4 더러운 것만 솟아난다.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우리 속에 있는 은사가 무엇인가? 삼중직을 받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중직자의 몸에서 사라지면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찾아온다.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그리스도 삼중직에 종이 되면 모든 사람에게 그 성숙함이 나타난다. 영적싸움에 전심전력하면 엄청난 성숙한 자가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 성숙함이 나타나게 된다. 딤전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렇게 멋진 전도자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중직자와 목사들이 할 일이다. 그래야 교회 성도들이 목사와 장로들의 성숙함을 보고 디아스포라 미션에 동참하는 것이다.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으로 오는 다툼과 논쟁을 끝내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생명들이 되어야 한다. 이제, 불신자 상태에서 벗어나는 예배의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단이 준 영적인 병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는 날이 되어야 한다. 비정상적인 자들이 율법과 다툼, 논쟁 속에 있는 것이다.
나 중심으로 살면 더러운 이익 때문에 네피림으로 전락해버린다. 네피림은 사단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 사단에게 잡힌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영적 결핍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모르고 내가 왜 돈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한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 충만을 받아 영적인 능력을 갖추고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거있는 증인이 되라” 하셨다. 그래서 한 주간 요16:33의 말씀을 내 안에서 살아있는 말씀으로 갖기를 축복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할지어다.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해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해라.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았음이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너와 같이 모자라는 사람을 부르러 왔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야 한다. 그래서 시23:1~6 속에서 누리는 축복을 갖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참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스도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그리스도가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그리스도가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 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성령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 기름 부음을 내 머리에 부으셔서 내가 축복의 사람이 되었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렇게 살아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세상을 정복해 가는 것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감격을 가지고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본문 핵심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문화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총회가 일어난 것이다. 전통 유대 기독교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식사문화도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갈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기에,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것이다. 넘어진 것도 끝내버리고 무너진 것도, 실수한 것도 끝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 답을 내려야 한다. 그리스도로 답을 내지 않으면 만남 자체 논쟁이고 다툼이고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뿐이다.
유대교에서는 이방인들을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당신 스스로가 번제로 드려져 우리를 구원 받게 하셨다. ‘모자라고 못난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셨다’ 는 이 은혜를 1초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단 1초도 이것을 믿지 않은 적이 없다. 그 은혜와 진리 속에 끊임없이 나를 살리는 충만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들 앞에 나를 증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절대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었다’ 는 증인이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 사랑에 빚을 진 자 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빚을 갚고 가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세계복음화, 이 구원의 열차를 타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그 열차에서 탈선하지 말고, 구원의 감격을 이루며 한 생명, 한 생명을 살리는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총회에 보수파, 중도파, 진보파가 나온다. 보수파는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임에도, 이들의 세계관과 육신적 생각의 틀은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야고보를 비롯한 중도파들은 이방사람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예수를 믿을 수는 있지만 식사 문제에 있어서는 유대인과 함께 먹는 것을 좀 삼가자는 자들이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는 필요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한 것이다. 모든 전도캠프를 통해서 일어난 이 기독교가, 유대 사람들의 종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세계 기독교가 될 것이냐는 중요한 시점에 바나바가 바울이 총회에서 선언하는 것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보파인 바울과 바나바로 인해 기독교가 세계화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유대사람들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으로 모든 문제를 끝내야 한다. 그래야 237나라를 복음화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237 나라를 능히 복음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 속에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신다. 중도파 사람들이 우상의 제물은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그마저도 끝났다고 선언했다. 할례를 영적으로 보면 다 끝난 것이다. 회개하면 끝이다. 그래서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내게 구원을 받도록 하셨기에, 내 몸에 삼중직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찢어 생각과 마음, 영혼을 깨끗케 하는 회개 속에 있으라고 베드로가 설교했다. 이것이 성령충만 받는 비밀이다. “마귀의 일을 멸해라. 저주와 재앙의 시스템 속에 갇혀 수군거리고 뒤통수 치고 거짓말하고 욕심쟁이로 살게 만드는 것들을 내어버려라.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려서 이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언제나 세례로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씻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게 되고 성령을 날마다 선물로 받아 충만케 된다. 마귀로부터 부여 받은 문화의 우월감 속에 빠지게 하는 종교 율법 사상을 정말 무너뜨려야 한다. 내 형식이 옳고, 내가 믿는 방식이 더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다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이 복음 속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임마누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만인 앞에 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15: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어도 이들에게 각인된 바리새 사상, 체질을 바꾸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자꾸 논쟁을 하고 다툼이 일어나고 율법으로 사람을 정죄하며 자꾸 따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옛 사람의 체질을 정말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북한, 서울 체질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 어떤 분은 예수사랑교회 처음 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엄청 은혜를 받았는데, 시간이 가니까 과거에 자신이 살았던 깡패 조직의 체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기가 보스가 돼서 장로님들 돈을 사기치고, 목사의 말도 안 듣더니 결국은 다 망해서 왔다. 자기의 체질을 버리지 않으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문제는 다시 찾아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주께 돌아왔지만 자신들의 바리새 사상과 체질을 버리지 않아서 결국은 이탈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완전 무너지게 된 사건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결국 ‘학살’ 이라는 멸망과 재앙의 시스템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진 더러운 육신적 기질은 사단이 틈타고 들어오는 사단의 역사다. 아무리 좋은 기질이라도 버리고 오직 예수 기질을 갖길 축복한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나의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의 기질을 가져야 이 땅에서 넘어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자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부요를 받는 자가 된다. 그러나 세상적 기질을 갖게 되면 그것이 사단의 역사가 된다. 현장 전도캠프에서 만난 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좋아했는데, 총회에 모인 바리새인들은 그 이름을 싫어했다.
행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바리새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은 전도캠프에서 일어났던 그 엄청난 하나님의 증거를 괜히 싫어하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말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었다. 그래서 “할례까지 받아야지! 이방인들과 먹으면 안되지!” 하는 것이다.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감격을 가지고 문화의 장벽을 다 뛰어넘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감격을 가지고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세계복음화 하겠다고 함께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서로 실수가 있고,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논쟁과 다툼, 율법이 아니라 감격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자신도 모르게 차별해오던 생활의 우월감, 창3장의 마귀의 병에서 완전 빠져나오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선민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 필요한 시간표 속에 있는 사람, 하나님이 절대 필요로 하는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필요로 하는 자들로 이방인 가운데서 뽑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 곧 그리스도 삼중직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귀의 일을 멸하는 종이 되라. 요일3:8, 막10:45, 요14:6, 이 세 가지만 우리 몸에서 무시로 살려내면 틀림없이 우리에게는 많은 은혜와 응답과 믿음이 있게 된다.
협소한 자신의 의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문화를 고집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감격하는 전도캠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예루살렘에서만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이 없었다. 그러나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흩어진 자들, 전도캠프를 체험한 자들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에 감격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감격한 사람은 기쁨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율법은 다툼과 논쟁을 만들지만 복음은 구원과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감격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오니 우리에게 날마다 전도캠프의 문이 열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생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그 말씀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기도로 연결해 응답 받고 전도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인생을 이끄는 삶의 법칙이 삼중직이라는 것을 알았사오니, 마귀의 일을 멸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게 하옵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 묶인 자들을 풀어주는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옵시며, 하나님 떠난 인간들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을 제시해주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몰라 율법과 종교에 실족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에게,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셔서 어둠을 밀어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237나라에 복음의 불씨를 지피는 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다툼과 논쟁만 일삼는 자들을 쉽게 용납하여 기쁨을 잃어버리고 기도할 수 없는 무기력과 감사하지 못하는 일 속에 자만과 자존심, 시기심만 가득하여 말씀을 상실하고, 마귀의 문화에서 온 종교적 율법 사상, 내 방법이 맞다고 하는 육신의 생각 곧 마귀의 병을 무너뜨리고, 예배의 축복 속에 창세기3장 15절의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 하심을 각인시키고 인생을 이끄는 법칙,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절대 시간표가 내게 임했고, 하나님이 나를 절대 필요로 하는 자가 되어 이방 가운데 선택하셨기에, 어떤 환란 앞에서도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듣는 자 되어, 이제 디아스포라 미션을 위해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결단을 내리고 제자 중심과 교회 중심으로 일하며 전문화 세계화 복음화의 축복 속에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전도캠프의 중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