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저주, 무능과 질병에서 해방되는 길, 그리스도
행 14:8-10
창3:15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유대종교를 만들어냈고, 창3:15을 가지고도 인간관계를 실패해서 이슬람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가 드디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기독교를 탄생시키셨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만’ 믿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원죄로 인해 찾아오는 자범죄를 차단하지 못하면 가문의 저주가 온다. 그래서 기독교는 선행과 구제,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닌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사단의 일을 멸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약속을 주셨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온 집안에 가문의 저주가 흘러넘쳐 재앙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무능의 시대 속에 기독교 조차도 무능해져 버렸다.
* 가문의 저주, 무능과 질병에서 해방되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 이것이 기독교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로 기독교가 탄생되었는데,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기독교를 해치고 죽이고 박해하는 것에 생명 걸고 공격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면 유대교와 모든 이단 사이비 종파들이 누명을 씌우고 오히려 기독교를 ‘이단’ 이라고 표현하고, 아니면 전염병을 퍼뜨리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말하면 전염병을 퍼뜨리고 재앙을 갖다 주는 자들이라고 오히려 뒤집어씌운다.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사야 하는 가치가 있다. 벧전2:1~3 “예수가 그리스도” 이 말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어야 한다. 창3:15 그리스도를 통해 운명을 바꾸는 ‘그날’ 을 ‘오늘’ 속에 주셨다. 사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은 이렇게 엄청난 그리스도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을 바꾸는 ‘그날’을 맞이하면 된다.
유월절이 무엇인가? 왜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통해 노예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 반드시 창3:15을 통해서만 옛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요19:30,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는가?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 그 비밀을 이 땅에서 갖지 못하면 재앙 속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살지 않으면 이 땅에서 무능 자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티비를 보면 많은 기부 단체에서 불쌍한 아이들을 모델 삼아서 후원금을 모집하는 것을 본다. 그 아이들의 가문의 저주, 무능을 끊어줘야 하는데, 기독교 단체 조차도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끝나고 새로운 운명으로 바뀐다.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바뀐다고 말씀했다. 옛사람, 옛 운명, 옛 틀을 바꾸는 것이 기독교인데, 가문의 저주 속에 어린아이들을 갇히게 만드는 것은 무시무시한 불법이며, 그 아이들에게 저주와 재앙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 새로운 운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 성경 내용이다. 고난의 여정을 걷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여정 속에 옛 운명을 바꿀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 가난과 무능의 저주에서 빠져나오는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을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가 위기 아동들을 한 사람씩 도와주고 복음을 준다면 엄청난 제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일들이다.
기독교는 나를 찾고 답을 얻는 생명, 능력 그 자체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로 인해 너무 많은 조난자들이 생기고 있다. 나를 찾아 떠나게 만드는 이상한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는 나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들이 아니다. 기독교는 나를 찾고 답을 얻는 생명, 능력 그 자체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묘자, 평안을 주는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평강의 하나님 그리스도가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고난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그 진리를 이 땅에서 누리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갈등이 생긴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속으로 ‘복음을 오해하고 사는구나’ 했다. 창3:15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작은 헌신 하나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기회 중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작은 헌신을 누가 알아주기를 원하고, 늘 원망, 불평 속에 이간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영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 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고, 빛을 발하는 증인이 되고, 열방의 사람들이 나 때문에 교회로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난다. 반드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나의 것으로 믿어야 한다. 교회의 것, 목사의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믿을 때, 하나님의 성령은 내주, 인도, 역사하신다.
딤후3:1~5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는데, 사람들이 전부 나밖에 모르는 교만에 빠져,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자기 몸 하나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고,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발걸음에 평안도 없이 슬픈 인생의 말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부모도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거역하는 자다. 감사하지도 않고 구별됨도 없이 거룩하지 못한 자가 된다. 이런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딤후3:16~17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교훈하고 가르침을 받으면 온전해지고, 우리 인생 여정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력을 갖는 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자들이 교만하거나 잘난 척하는 것은 매력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선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에게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시다.
* 내 몸에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말씀의 능력이 내 몸에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포럼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창3:15은 나를 복종시키는 비밀이다.
내 몸과 내 마음의 들보는 창3:15을 거부하는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눈이 밝아져서 세상만 보는 눈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크게 열려있어서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비난하고 마음이 굳어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창3장의 저주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려야 한다. 창3:15 복음을 거부했던 바울에게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행9:4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우리 속에 있는 창3장의 걸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교회를 다니고 있으나 복음을 거부하고 비난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데도 집중하지 않는다. 과거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3:15의 말씀을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이다. 사람은 창3:15을 통해서만 이 땅에서 살 수 있다. 과거의 바울은 유대 종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했다. 행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비밀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가장 완악한 자, 이 땅에 사는 것이 오히려 큰 재앙일 뿐이다. 그래서 바울은 롬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고백했다. 창3장의 원죄는 지금도 내 몸에 살아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내 몸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하나만 거부하는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롬7:2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원죄와 자범죄, 가문의 저주로 인해 사망의 몸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굉장히 쓸쓸하고 고독해진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메세지를 들으라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언제든지 유일성을 선포하고 있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마10:40,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런 큰 축복을 주신 것이다. “전도자의 메세지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5:14 심령이 가난한 자, 팔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길들여지는 자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요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그래서 사람 속에 마귀가 있다고 폭로하는 전도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자신이 부모님과 목사님을 이간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절대 자신은 비난하지 않고 세상이 악하다고 말하는 목사님을 비난한다. 나도 성도들에게 존경 받는 모습만 보여주고 미소만 지어주면 된다. 성도가 지옥을 가든 상관하지 않고, 절대 커피 한 잔도 같이 안 마시고 나 자신을 신비주의로 꾸며놓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인기는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생명을 지옥가게 만들 뿐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데, 자기가 의인인 척하며 살다가 다른 사람까지 멸망시키는 것이다. 거짓말로 인생을 살면 사람이 어설퍼진다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가 가진 정의, 공정 이런 것은 다 더러운 것이다. 공정과 정의라고 외치는 거짓말들은 다 말라 비틀어 버리는 잎사귀 같다고 말씀했다. 이 땅에 시들어버리고 새로운 새싹이 나지 않는 것, 생명도 없는 것이다. 이 땅에서 죄의 권세를 해결하지 못하면 죄악이 우리를 바람 같이 몰아가 버린다. 어설픈 의로움으로 비난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마귀를 깨뜨려라. 그래야 빛으로 다닐 수 있다. 요8:12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생명의 떡, 생명의 빛을 계속 공급받고 싶다면 어둠을 밀어내는 자가 되라.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사람에게 가장 가치 있는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 어떤 사람에게 꽃을 줬더니 “어머, 저는 꽃처럼 되고 싶었어요” 하길래 정신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꽃을 지어주셨는가? 꽃들이, 새들이 우리에게 하는 소리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믿어라.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라.’ 이런 소리가 들려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드신 이유는 나의 아빠, 창조주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와 꽃을 보고 오히려 우상숭배 하며 사단 짓만 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
사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여호와 그리스도가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의 의는 창3:15, 마16:16 그리스도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계속 집중하면 응답이 오면서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는 힘과 증거가 온다. 내 몸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 5분만 묵상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불신앙의 걸림돌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에 집중만 해도 응답은 계속 온다. 우리가 세계복음화 그 대열 속에 갈 수 있는 비밀을 가지게 되었다. 히4:12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에는 활력이 있어 좌우의 어떤 날 선 검보다 예리하여 우리의 영과 혼 모든 것을 치유시키는 능력이라고 말씀했다. 행10:38 “예수는 그리스도” 이름에 하나님이 기름붓듯 하셔서 마귀에게 눌린 것에서 해방받게 하셨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복음 앞에 위선자로 살면 안 된다. 사람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우리 몸이 이렇게 되지 않으면 고난의 여정이 온다. 사람의 말을 차단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쓸쓸하고 고독함에 갇히는 날이 온다. 잠14: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우리 몸을 찌르는 병이 시작된다. 잠11: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영적싸움은 죽음에서 나를 건지는 것이다. 공의가 있으려면 영적싸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운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속에는 영적인 복음 메세지가 영혼 속에 있어야 한다. 예배 때마다 복음의 메세지를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목사님, 나는 복음의 메세지를 10년 넘게 들었는데 왜 믿음이 안생겨요?” 묻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주위에 위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간자와 동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먼저 차단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복음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된다. 사는 길을 제대로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생명과 능력이 우리 안에 생긴다. 그리고 복음을 집중하고 끝까지 지속할 수 있는 인내가 온다. 이 체질이 우리 몸에 와야 변화도 오는 것이다.
* 예배 때 설교를 집중해서 들으면 많은 변화가 시작된다.
행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이 사람을 “주목” 했다. 강단에 서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집중하는지 다 보인다. 예배 때 설교를 집중해서 들으면 많은 변화가 시작된다.
마13:25 설교 때 마귀가 덧뿌리고 간다고 이미 알려주셨다. 사람들이 설교 때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시13:3 다윗은 “...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데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기도했다. 자신이 사망의 잠을 자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깨어 기도하고 영적인 눈을 밝혀달라고 성령충만을 달라고 간청했다. 또, 길가밭이 되면 설교 때 돈 빌려간 사람, 돈 주겠다는 사람, 만나야 할 사람…. 수 많은 생각들이 슉-하고 밀려 들어온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옥토가 되면 설교 때마다 들은 메세지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면 요6:48의 답이 온다. 생명의 떡을 먹기 때문에 능력, 힘이 생긴다. 요6:49~51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복음 있는 교회에서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생하게 된다. 예배 때 말씀을 먹고 성찬식을 하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에고 에이미, 예수님 외에는 이렇게 말한 자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코로나 감염병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교회 70세가 넘으신 분이 코로나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많이 불러서 자신이 살아나왔다고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생명의 떡 되신 그리스도는 영생이다. 모든 재앙을 막아주는 힘, 능력의 원천이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안에 생명의 씨로 들어왔다면, 내가 썩어 없어져야 거기서 새순이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씨가 들어왔음에도 옛것을 가지고 살면 안 된다.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옛사람의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 몸에 그리스도 생명의 새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히11:1 생명의 실상을 만나야 한다. 생명의 실상은 곧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행14:9 바울이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음이라. 은과 금이 없어도 괜찮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믿음의 결국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포하고 확신 갖고 믿으면 일어나 걸을 수 있다!” 행14:8 앉은뱅이가 이런 메세지를 들은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씨는 틀림없는데, 우리 마음 밭은 어떤가? 길가밭인가, 가시떨기나무 밭인가, 아니면 돌짝밭인가? 아니면 옥토밭인가? 우리 내면을 점검해야 한다.
고넬료가, 베드로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행10:44에 말씀했다. 말씀을 받을 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생선구이 한 번을 먹어도 고등어가 고래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에게까지 살아서 내 입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기적 중 기적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음식 자체가 존귀하게 느껴지면서 무엇이든지 맛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생명보다 더 위대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을 담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젓가락으로 늘 깨작거리면 음식이 아니라 독이 된다. 음식을 곱씹으면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에게 주시려고 이 피조물들을 움직여 내 입에까지 들어가게 하셨구나’ 감사함으로 먹는 것이다.
본문에 이적과 표적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설교를 통해서 일어났다. 이적이 곧 설교이고, 설교 속에는 이적으로 증거되는 진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설교는 진리 중 진리다. 요8:31~32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고니온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선포했다. 그래서 우리가 2박3일 동안 메세지에 계속 집중하면 많은 이적이 일어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중환자실에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합숙 메세지에 집중하면 몸이 강건해진다. 응답이 오고 증거를 가져야 세계복음화를 위해 걸을 수 있다.
본문에, 앉은뱅이의 믿음으로 가문의 저주, 무능의 질병에서 해방 받게 되었다.
강단 메세지를 듣다가 가문의 저주가 끊어지고 무능과 질병의 저주가 무너지고 새로운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영혼에 구원을 받고 생활의 구원도 받게 되었다. 고전5:4~5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영혼에 구원을 받지 못하면 생활의 구원도 받을 수 없고 결국 사단에게 내어주는 인생이 된다. 이런 자들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라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로 가문의 저주, 무능과 질병, 가난에서 완전 해방 받아야 한다. 영혼과 생활의 구원을 받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된다.
앉은뱅이의 믿음과 함께 말씀 앞에서의 순종이 행동으로 나타났다. “일어나라!” 했더니 “아멘” 한 것이다. 자기 기준에 묶여있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할 수 없다.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고 자기 말을 했다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5장,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누워있던 자에게 예수님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했을 때, “주여 38년 됐습니다” 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운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을 때, “그러하외다” 한 번의 고백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가” 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믿음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행동을 보여 하나님의 기적을 낳게 되었다. 앉은뱅이는 자신이 앉은뱅이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일어나라”는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작동되면 끝난다.
가능성만을 믿는 것은 종교, 철학이다. 복음은 굿뉴스, 언제나 내게 들리는 메세지에 ‘아멘’ 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의 이적은 시작된다. ‘가능성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굉장히 나쁜 불신앙이다. ‘안 될거야’ 말들만 늘어놓는 사람은 종교인이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다. 사람의 지식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면 절대 능력이나 표적, 이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말씀을 받아먹는 입을 가져야 한다. 제비 새끼들은 어미새가 먹이를 줄 것을 오직 믿음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해놓고 믿음의 입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몸뚱이가 움직이면 성장도 없고 날개 짓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처마 줄에 떨어져 죽는다.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다윗이 믿음의 입을 벌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채워준다고 고백했듯이 우리가 기도의 입을 열면 눅6:38 하나님이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마음과 생각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대로 임하게 된다. 아름다운 입을 벌리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더욱 주신다. 착한 행실을 위해 입을 벌리고 있으면 더욱 착한 행실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채워주신다. 그래서 살전5:16~18, 기뻐하는 입,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입, 감사하는 입을 벌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본문의 말씀은 한마디로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한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그릇이 어떤 것인지 본문을 통해 보았다면 앉은뱅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낫는 역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축복한다. 말씀을 집중해서 계속 듣고 있으면 응답은 저절로 온다는 것이다. 능력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것이다. 전도자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면 그 말씀 속에서 역사가 있고, 그 말씀 속에서 영적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설교를 통해 이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주간, 말씀을 놓치지 않는 승리가 있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내 몸에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메시지를 집중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주목해 보셨다가 그에게 하나님 역사하신다라는 하나님의 이적을 보았사오니,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러한 능력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운명을 바꾸라는 그 날을 주셨으니, 말씀이 주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자에게 살아있는 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공급해주신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생명의 실상을 오늘 만날 수 있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설교 속에는 이적으로 증거되고 있는 진리라는 것을 이젠 알았사오니, 가문의 저주, 무능의 질병들이 완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방되어지는 말씀을 받았사오니 믿음으로 결단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순종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우리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 귀한 날에 우리를 불러 주셨사오니, 가문의 저주 무능과 질병의 저주 가난의 저주에서 해방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세계 복음화할 수 있도록 치유시켜 주시고 서밋의 자리에 앉게 하옵소서. 그래서 잃어버렸던 성전을 재건할 수 있을 만큼 세계 복음화 할 수 있을 만큼 교회 안에서 헌신하게 하옵소서. 한주간도 성령의 역사를 보는 자 되게 하옵시고, 악령의 역사를 보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이 내 몸에 딱 맞는 언약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원죄로 인해 자범죄를 차단할 수가 없고, 종교로 인해 가문의 저주와 무능의 저주에 갇혀 나를 찾지 못하고 조난자로 사는 시대 속에, 창세기3장 15절,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을 만나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받고 모든 문제가 끝난 새로운 운명으로 바뀌는 오늘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보화 중 보화, 창세기3장 15절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는 자가 되었음에도 교회의 작은 헌신 앞에 불평하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 앞에서 인정받으려고만 하는 마귀의 일을 무너뜨리고, 구원얻는 믿음과 말씀의 능력이 내게 있는지 점검하여, 내 몸은 그리스도만 거부하고 비난하는 걸림돌인 것을 깨닫고 영적싸움 속에 내 삶에 올바른 포럼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배 때마다 선포되는 설교말씀은 이적이 나타나는 증거이며, 모든 저주와 재앙을 막는 능력의 원천인 생명의 떡, 영원히 사는 길이기에, 예배 때 마다 말씀을 받아먹고 집중, 지속하여 위선자들의 말을 차단하고 온몸에서 작동되는 불신앙을 무너뜨려 영혼과 생활에 구원을 받아 가문의 저주, 무능과 질병에서 해방되는 한주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