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이 함께 하면, 위기 속에서도 선교의 지경을 넓힌다
행 14:1-7
복음이 우리의 영혼에 들어가면 성경 말씀이 우리 삶에도 그대로 성취된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 영혼에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우리 안에 이미 창3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무엇인가? 마4:6~11 의식주에 걸려있는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창3장, 선악과로 인해 모든 사람은 마4장 의식주 문제에 걸리게 되었다. 이 의식주 때문에 사람들은 신앙의 모든 근본을 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린다”(대하12:5) 말씀하셨다. 의식주 하나 때문에 인생에 갱신이 안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스며들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의식주 문제에 잡혀서 변명을 늘어놓고 핑계와 합리화, 원망과 불평, 시기, 질투하는 것이다. 자기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찌푸리고 있다. 그래서 예배를 집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예배를 우습게 여긴다.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영혼에 은총이 임하지 않으면 불화살을 맞는다. 어떤 분에게 여러 번 예배를 사수하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말을 듣지 않은 어떤 분은 굉장한 불화살을 맞아 그 사람을 의지하고 믿었던 사람들까지도 무너지게 되었다.
창3:15의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인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의식주 문제 앞에 갱신하지 못하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이름 하나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영혼에 소유하고 있을 때 영원한 생명이 된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기름 붓듯 하신 이유는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는 것, 곧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예배까지 결국 실패하게 된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쉬는 날로 주신 것이 아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의식주에 시달리지 않고 진정한 쉼이 온다. 자신의 썩어질 이름 하나를 내기 위해 몸부림칠 필요 없다. 하나님이 이미 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시겠다고 사인을 주신 것이 안식일이다. 육신적 일을 위해서는 온 힘을 기울이면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생을 어설프게 산다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비밀을 듣고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 행2:36 회개가 일어나야 예배에 성공할 수 있다. “너는 확실히 알아야 된다. 네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행2:38 회개 해야 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더 귀신들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 공황장애가 많다. 창1:2 이 땅으로 내어쫓긴 자가 사람의 영혼에 들어가 병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알 수 없이 슬프고, 두려움이 찾아와 예배 말고 다른 것으로 충만해지려고 몸부림을 치며 마약 같은 것에 중독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혼돈과 공허, 흑암의 세력이 무엇인지 몰라서 사람들이 육신적 중독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중독으로 자기 몸을 자꾸 다스리면 어느 날 한계가 온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고, 비극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신자를 따라다니고, 불신자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배 때마다 마음의 밭에 복음의 씨를 심는 자가 되라. 그 수고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추수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죄와 사망의 법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방법 밖에 없다. 우리는 마귀가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쉬지도 않고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고 의식주 문제에 빠져 육신적 쾌락을 추구하게 만드는 전략을 써서 우리를 속이고 있다. 그래서 반드시 요일2:16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을 자꾸 밀어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몸에 자꾸 찾아오는 장애물이 바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을 밀어내는 길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 곧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쫓는 길밖에 없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영적 전쟁을 시작하면 그 믿음 속에서 빛이 나타난다.
본문에, 창3:15이 복음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안디옥 지역에서 시작된 이 복음운동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고니온 지역에서 전도를 할 때 데클라(Thecla) 라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고 외경인 바울 서신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여자는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증거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겠다고 가장 먼저 손을 든 여자다. “나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내 몸에 믿겠다” 했을 때 군중은 깜짝 놀랐다. 젊고 예쁜 여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겠다고 일어나서 세례까지 받아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이다. 그래서 데클라고 인해 여기저기서 “나도 믿겠습니다” 하며 세례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인 유대종교자들이 이 사건을 보고 강력한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이름을 밥을 때나 부르는 이름으로 만들어버렸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예수는 그리스도” 인데 이것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복음의 능력이 사람 몸에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결국 기득권 유대 종교는 이 데클라를 화형시켜야 한다고 마녀사냥을 했다. 종교는 이렇게 잔인무도한 것이고, 귀신과 악령은 종교를 통해 역사하고 있다. 종교가 선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결국은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한 사단일 뿐이다. 고후11:14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다. 그 종교의 핵심은 바로 골2:8 철학, 세상 인문학이다. 결국 이것으로 사람을 사로잡아 속인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라고 했다. 골2:9~10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사단과 영적싸움을 시작해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반드시 우리 몸에 와야 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올 때, 지옥권세 잡은 자가 가자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사망 권세 잡은 자가 질병으로, 육체의 파괴자로 찾아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죄의 권세로 사람이 완전 묶여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도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죄의 권세,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복음이라고 외쳤더니, 데클라가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고니온 동네를 다니며 바울과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종교의 한계에서 벗어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받는 길이 예수는 그리스도다!” 그랬더니 종교 지도자들, 기득권세력들이 그 여자를 화형시키려고 결정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에게는 태형을 내려 엄청나게 두들겨 때린 후 그 성에서 쫓아내자고 결의했다. 결국 데클라를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피우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이 여자는 신이 죽이지 말라는 사인인가보다 해서 그 여자를 풀어준다. 그래서 데클라는 바울과 함께 전도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언약의 여정을 따라 인생을 사는 바나바,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렘1:5에 잇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구별하여 알았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야 행복한 것이다. 행13:48 영생주기로 작정 된 자들을 교회에서 만나야 복음이 증거된다.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음이니라” 마10:1 언약의 여정을 따라 진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을 주신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 병을 고치는 능력, 모든 약한 것들을 회복하고 무너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권능을 주셨다.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엄청난 신분과 권세를 주셨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가 전도를 위해 태어났다고 선언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가 세워진 목적이 있다. 이제 온라인 시대가 왔기 때문에 237나라에 복음 신학교를 세워야 한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지금까지 남은 자가 되었는가? 남길 자가 있기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쓰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막3:14~15 이 비밀 속에 들어가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셔서 부르셨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신앙생활 동기 중 동기가 바로 임마누엘이다.
이 임마누엘을 24시 누릴 수 있는 전도제자들을 우리는 찾아서 세우는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포럼을 하면 즉각 임마누엘이 사라진다. 말씀을 포럼이 아니라 사람을 들여다보고 사람 앞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자기 사정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 이간질의 눈빛으로 임마누엘을 놓치게 하는 체질을 빨리 없애고 임마누엘을 각인시켜야 뿌리가 바뀌고 체질이 바뀐다. 임마누엘이 되어야 우리 자신에게 전도가 시작된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고 내 어린양을 쳐라” 전도를 위해 오신 하나님이 우리와 임마누엘로 계신다면 언제나 내 몸에 전도하시지 않겠는가? 이 사실을 내 몸에 새기고 영혼에 담을 때 복음의 증인으로, 전도도가 일어난다. 막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임마누엘에서 벗어나게 하는 개소리, 이것이 바로 귀신이다. 그래서 2022년도 새해 메세지에 사람의 소리를 끊으라고 선포했다. 그래야 우리에게 멋있는 응답, 멋있는 축복, 멋있는 오력이 임하게 된다. 사람은 눈을 뜨고 있기때문에 눈빛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그래서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입으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정말 멋있어진다. 사람의 말을 듣기 좋아하던 그 귀가 바뀐다. 누군가 나에게 사람의 말을 하는 그 시간이 짜증스럽고, 상대에 대해 안타까움과 긍휼함으로 보게 된다. 믿음의 빛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수사랑교회 복음의 증인들은 믿음의 빛이 나타나야 한다.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다른 사람 앞에 하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한 번만 시인해봐라. 그러면 보좌의 축복을 즉각 받을 수 있고, 시공간의 초월의 능력을 맛보는 자가 된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능욕을 받아도 괜찮다는 고백과 감격이 있어야 한다. 높은데 올라갈 이유도 없고, 높은데 올라가서 뛰어내릴 이유도 없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할 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주신다.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사람을 만나서 나의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다. 변명, 신세타령하는 것은 천하의 악질, 비극 중 비극이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래서 육신으로도 망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임마누엘의 축복을 잃어버려서 아들과도 간음을 저지르는 타락의 늪에 빠져버렸다. 육신적 저주가 이렇게 영혼을 끌고 들어간다.
이고니온에서 먼지를 털어버리고 그 마을을 떠나는데 이런 상황에도 바울의 메세지를 듣고 따라온 사람이 있었다. 마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행14:5~7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그래서 우리는 계속 복음만 전하면 된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복음만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행13:51~52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팝박을 받고 매를 맞아도, 위협을 당하고 살인의 두려움을 느껴도 그들은 오히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성령충만인가? 마1:21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의 권세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자가 마1:23 임마누엘로 오셨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진짜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 때 어떤 일에도 마16:16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된다. 요1:14 우리 가슴에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마음과 생각, 뜻까지도 오직 그분으로 충만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행14:1 바울과 바나바는 늘 행하던 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그들의 틀린 종교를 바꿔주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했던 그 메세지를 계속 말한 것이다.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길 그리스도, 사망, 지옥권세에서 벗어나는 길이 그리스도, 눈에 보이지 않게 육신적으로만 인생을 살게 하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길이 그리스도다. 틀린 종교인 유대회당에 들어가서 삼중직을 가르치고, 3저주를 푸는 비밀을 선포했더니 허다한 무리가 믿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몸에 3저주가 어떻게 묶여있는지 알려주고 푸는 길만 알려주면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현장에서 이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괜히 교회나 데려가려고 하고 꼬시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롬8:2만 알려줘도 사람들은 금방 눈을 뜬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당신을 유일하게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그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막10:45 우리의 대속주가 되어주시고, 롬8:6 육신의 생각에 묶여 사망에 이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롬5:6 연약한 우리는 일평생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여 두려움과 염려, 낙심, 걱정 하나로 우리 몸이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하나님이 늘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푸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유대종교는 요8:43에 잡혀버렸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 생명의 떡, 선한 목자, 양들의 문, 참 포도나무라고 해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이 근본문제를 모르고 쓸데없는 종교 생활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삼중직 그리스도를 말해줘야 한다. 3 저주를 푸는 능력을 하나님이 임마누엘 그리스도로 주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이것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 비밀을 모르면 요8:44의 신세로 전락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로부터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욕심의 발광체, 살인의 발광체, 진리를 거부하는 발광체, 진리에 서지 않으려고 하는 몸부림으로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것이다. 요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무엇으로 발작증세가 일어나는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근본이 두려움으로 우리 영혼 속에 채워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권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우리 영혼을 장악해버렸다.
창3:7~8 그래서 세상 초점에 맞춰져 눈이 밝아져 버렸다. 그래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이 사라지고 이상한 것, 육체가 보인다. 신성이 보여야 하는데 육체가 보인다. 하와를 만들었을 때 아담 눈에는 신성이 보였다. 그런데 죄의 권세가 들어가니까 육체가 보인 것이다. 창3:8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우리의 영혼을 이렇게 차단시키는 것이다. 육체의 권세, 죄의 권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든다. 이것을 먼저 풀라고 임마누엘 그리스도를 주셨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자꾸 육체의 실상만 보는 것이다. 죄의 권세에서 자기 몸을 풀지 않는 사람은 육체의 실상을 보고 헛소리 잡소리, 하나님과 상관없는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것이나 보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으려고 하는 이런 것으로 예배도 성공하지 못하고 말씀도 들어가지 않는다.
육체의 실상을 보지 말고 믿음의 실상을 봐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혜사 하나님의 성령이 영원히 너와 진리의 영으로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로 함께하신 그리스도가 언제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를 통해 응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육신적 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사로잡아 내어쫓고 강한 자를 결박시켜라. 그러면 만물의 주,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네 앞에 복종케 하신다. 너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절대 언약의 백성이다. 말세지말, 이제 마지막 남은 자로 마28:18~20의 메세지를 성취시킬 이 시대 전도자다.’ 이 믿음의 실상을 봐야 한다. 히1:3보좌의 축복이 우리 인생 여정에 나타나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좌의 능력이 237 나라를 놓고 꿈을 꾸는 나에게 빛의 경제를 주신다.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그 믿음의 실상을 보았던 바울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바울이 고백했다. ‘우리 민족 누구나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도록 내가 그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는 이 절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각 부서에서 영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 하는 헌신은 절대 외상이 없다. 살아가는 날 동안 두고두고 받는 응답이다. 그래서 교회의 헌신 앞에 조금이라도 원망, 불평을 가지면 안 된다. 봉사나 헌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육신의 생각을 차단하고 끊임없이 육신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는 모든 육체의 실상을 완전히 무너뜨려 믿음의 실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 237나라에 복음 신학교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리스도를 전과 같이 전했을 때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누가 믿어주든, 안 믿어주든 우리는 할 일만 하면 된다. 사람이 따라오든지 따라오지 안든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서라도 이 복음이 끊임없이 전달되기를 원하신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 상황에는 여러 박해와 핍박이 함께 있었다. 분명 바울이 전도할 때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핍박과 환란, 매맞음, 쫓겨가고 도망가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래도 복음은 더욱 확장되었다. 237 나라에 복음을 전달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핍박이 아니라 축복이 시작된다. 행13:10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모든 사람들은 전부 이 속에 빠져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복음만 증거하면 된다. 행16:18 귀신들려 점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믿게 된다. 귀신들린 사람의 등허리만 한두대 두드려줘도 정말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의 실상을 가지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도 나가고, 흑암을 꺾으면 꺾인다. 행19:9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그리스도 이 도를 비방하지만 계속 그리스도를 불어넣으면 반드시 변화된다. 행26:18 영적인 눈을 뜨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넣어주고, 사단 권세에 묶인 자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 엡6:12 혈과 육의 싸움으로 인생을 늘 허비하는 사람에게 영적인 비밀을 집어 넣어줘야 한다. 엡6:16 불화살을 맞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집어 넣어줘야 한다. 그러면 엡6:18 무시로 성령 안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게 된다. 엡2:2~3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가 움직이고 있다. 끊임없이 불순종하게 만드는 사단의 영이 진노의 자녀로 우리를 끌고가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실상을 말할 때 기적이 시작된다. 사람의 소리를 끊고 차단할 때 우리의 영이 춤을 춘다.
행14: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이런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래전에 신학교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리더를 한 적 있다. 노트를 펼쳐봤더니 그래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열심히 가르친 흔적이 있었다. 훗날 “이제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했을 때 성경공부를 배우던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본문에 나타난 사람들처럼 악감을 품고 나를 이간하고 방해했다. 그때는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었지만, 창3장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단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 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보혜사, 진리의 영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믿음의 실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 속에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완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시기, 질투, 방해, 악감을 품게 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악한 영이 우리의 몸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특히 좀 믿어보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찾아가서 방해를 일삼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시기도를 통해 사람의 영혼을 놓고 반드시 흑암세력을 꺾어줘야 한다. 그러면 사람의 언어가 그치고, 불평과 원망이 끊어지고 거듭남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것이 기도의 비밀이다. 복음 앞에 역동적인 사람은 매를 맞아도, 고생을 해도 악감을 갖게 해도 비굴하지 않고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속에 나를 지키면 하나님이 보좌에서 움직이신다.
*내 개인에게 임한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는 것이 우리 몸에 24시 있어야 한다.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악감을 품는 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있어 그리스도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라” 내 몸에 은혜의 말씀을 증언할 수 있어야 그것이 임마누엘이다. 24 임마누엘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내게 임한 그 은혜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요16:33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음이라” 마1장,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 마1:23 임마누엘, 마3장 세례요한도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요2:30, 마3:1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다. 그에게 들어가려면 반드시 창3:15 속에 들어가 올바른 회개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마4장, 그 분이 직접 오셔서 경고하셨다.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에게까지 찾아와 시비를 건다. 테크닉을 써서 시험에 들게 하고 경배의 대상을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절대 우선순위를 바꾸면 안 된다. 마5장 심령이 가난한 자가 맞다면 이제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이다. 창3장에 걸려 애통한 자가 맞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라.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냥 따라가지 말고 이제 내가 그리스도로 인해 빛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빛이라고 인정하셨다는 것을 믿고 그 은혜 속에 따라오라는 것이다. 이런 은혜의 증언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나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세를 취하는 자가 은혜의 증언을 하는 자다.
늘 ‘왜’ 라는 편에서만 서서 생각을 가지면 이미 실패한 자가 된다. 우리는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메세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왜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까? 왜 믿지 않을까? 왜 우리를 핍박할까? 왜 우리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왜 나를 싫어하고 비방하는 걸까?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 사람은 일을 하는데 늘 원망, 불평, 투덜거리는 얘기를 할까?’ 안되는 사람들은 늘 탄식, 눈물, 답답함 속에 자기 몸에 은혜의 메세지가 없다. 창3장 속에 갇혀있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창3:15을 가진 영적 전쟁을 해주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왕권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참 제사장권, 참 선지자권을 가지고 움직일 때 흑암은 무릎을 꿇는다. 그리스도로 3저주와 싸우기 시작하면 위의 것을 생각하는 자가 된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 왜 나를 돌로 치게 그냥 두십니까? 왜 저들이 복음 전하는 저를 싫어합니까?’ 한탄하지 않았다. 내 몸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하늘보좌에 계신 그리스도를 향해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복종시키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으면 끝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내가 잘못했는가?’ 하면 일평생 답 없이 사는 사람이다. ‘왜’ 라는 답 없이 인생을 살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약해지고 쓰러지고 넘어진다. 마귀의 일을 멸하고 저주를 밀어내고 오직 길 되신 그리스도만 영원한 구주가 되게 해라. 사람들이 그리스도, 그리스도 라고 말을 하지만 감격과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남이 왜 해주지 않냐고 하지 말고 내가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많은 응답과 오력이 임하게 된다.
우리는 위에서 온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로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면, 믿음의 실상을 가졌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빌4:6~7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자다. 오직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구하는 믿음의 실상이 있어야 한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무 이유도 없이 복음 하나 때문에 나에게 핍박을 하는 것, 내가 저 사람보다 귀가 더 잘생겼다는 것 때문에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고, 비아냥 거리가 된다는 것, 열등의식, 비교의식… 이런 것이 땅의 것이다. 땅의 것을 생각하면 매일 시련, 허공, 고독, 억울함, 매맞음, 이간질 당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위의 것을 찾으면 “너는 세상의 빛이라, 너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보좌의 축복이 있어 복의 근원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메세지가 내 몸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를 힘입어 귀신을 내어쫓고 강한 자를 결박하는 믿음의 실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 받은 메세지가 우리 영혼 속에 살아서 작동하는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고백만 해도 하나님이 이렇게 엄청난 말씀을 주신다. 성경을 통해 말씀해주시고 강단의 말씀을 통해 언제나 우리를 일으켜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선포했다. “바울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한 것처럼 로마 황제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내게 임한 은혜의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 신령한 용기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원죄의 저주, 운명의 광풍에서 이길 수 있는 비밀을 허락해주신 그리스도, 가문의 저주에서 해방받는 그리스도, 자범죄에서 진리의 영으로 자유케 하는 그리스도, 영적문제로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영원히 가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를 깨뜨릴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이제 내 몸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나와 함께하신다는 절대적 은혜의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실 때 이적과 표적, 기사와 능력은 나타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나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더러운 저주를 명령하고 내어쫓고 결박사키고 무릎꿇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언약의 백성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이면 계약을 맺어 이제 영원히 사는 자가 되었다!’
주의 손이 함께하여 위기 속에서 선교의 지경이 넓혀지는 날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에게든지 말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과의 이면계약을 맺었다 라는 절대적 그 선언 속에서 로마서 16:20의 말씀이 성취되어지게 하시고 롬16:25-27의 말씀이 그대로 예수사랑 주의 백성들에게 함께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언제나 주의 손이 함께 충만한 역사가 있게 하옵시며, 위기 속에서도 악함 속에서도 핍박 속에서도 따돌림 속에서도 이간 속에서도 선교의 지경이 넓혀지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세계 복음화 237 참으로 복음 신학교를 세울 만큼 주의 백성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그래서 오천 미종족 생명들이 살아나는 축복을 저들의 후대들까지 볼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해 주옵소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장악할 수 있을 만큼 렘넌트들에게 무한한 지혜를 더하여 주옵시고, 주의 백성들이 머무르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공허와 혼돈, 흑암이 장악한 세상에서 예배가 아닌 다른 것을 채워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중독의 시대에, “예수가 그리스도”를 듣고 집중하여 예배의 성공 속에 회개가 일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창세기 3장으로 의식주 문제에 걸려 복음이 쉽게 내 몸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예배 때마다 내 마음 밭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내 이름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을 위해 능욕을 받아도 괜찮다고 하며 언제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위의 것을 생각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게 찾아오는 문제 앞에서 “왜” 라는 답 없는 질문을 하지 않고, 죄의 권세에서 빠져나와 내 몸에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는 임마누엘을 24시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유일한 동기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3중직으로 내 몸에 3저주를 풀어 언제든지 믿음의 실상을 보는 자 되게 하셔서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속에 나를 지키며 모든 헌신 속에 감격과 감사로 일하며 오직 237나라에 복음을 전달하겠다는 결단 속에 선교의 지경을 넓혀 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