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열매를 보면 내 자신이 보인다
마 7:15-23
인생의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마귀는 세상의 풍습, 이생의 자랑, 보고 들은 것을 마음에 심게 한다. 세상 것을 심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심길 바란다. 그러면 나중에 좋은 열매를 맺는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 사람들 중에는 버림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쁜 열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유 1:5 애굽에서 분명히 구원해 주셨는데 그 후 영적싸움을 하지 않아 멸망을 받았다는 말이다. 잡초제거를 안 하면 좋은 씨도 잡초에 묻혀서 사라져 버린다. 농사를 잘 짓는 부지런한 농부는 때를 정확히 보고 잡초제거를 잘 한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 1:10 이 땅에 내어 쫓긴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믿지 못하도록 흑암으로 역사하고 있다. 사탄(마귀), 악령, 귀신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비방을 한다. 그리고 육신의 생각으로 그냥 본능을 따라 산다. 요일 2: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 흑암으로 부터 온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사니까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유 1:11 창3:15 속에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가인은 어그러진 길로 갔다. 멸망의 길, 상처의 길, 쓸쓸하고 고독한 길, 고독사의 길로 걸었던 것이다. 운명대로. 또, 돈을 좋아했던 발람은 어그러진 길을 선택했다. 여기의 삯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을 돈 몇 푼 받고 판 것이다. 돈 때문에 영혼을 팔아먹는 사람이 많다. 그까짓 없어지는 돈 때문에, 죽어서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그 돈 때문에. 지금 은행에 돈을 맡겨 놓고 찾아가지 않는 돈이 수십조 원이라고 한다. 합니다. 주인이 없는 것이다. 돈 때문에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고 고라는 세상의 풍습을 좇다가 패역의 길로 가서 멸망을 받았다. 영원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놓친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둘째 사망은 영원한 무저갱에서 마귀하고 사는 것이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유 1:12 좋은 열매를 못 맺는 나무가 되면 멸망 받는 상태 자체를 모른다. 심판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감각하게 산다. 결국 영적 세계를 모르는 것이다.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결국은 무너진다는 것이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 하나님과의 이면계약 없이 사는 것이다. 교회를 다녀도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가 되어서 교회의 주인처럼 지내지만 헌신 하나도 없이 그냥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처럼 산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어야 될 것 아닌가. 그래야 좋은 나무가 될 것 아닌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제가 드린 십의 일조로 교회를 살게 하시고 드려진 헌신으로 인해 다음 세대의 제자들을 키우는 훈련센터장이 세워지게 하옵소서.” 자신의 자녀만 자녀인가? 하나님 믿지도 않는 자녀들에게 유산을 주려하고 사업장을 넘겨주려 하는 것은 재앙이다. 믿는 자녀들, 후대들에게 길을 열어주면 그들은 세계를 살리는 영적 서밋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들이 되니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창3:15이 몸에 살아서 역사하지 못하면 이렇게 가인처럼, 발람처럼, 고라처럼 물 없는 구름이 되어 늘 날아다니고 가뭄을 일으켜 다른 사람에게까지 재앙을 준다. 바닷가의 암초로 살면 매일 얻어맞고 배를 파선시켜 재앙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고 만다. 목마른 나무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말라 죽는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죽고 또 죽어서 뿌리까지 뽑혀 열매 없는 가지처럼 된다. 가인이 이것을 몰랐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트리라는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신다. 이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나쁜 나무로 자란다. 죽을 때쯤 되면 사망권세 잡은 자가 데리러 온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놀았으니 이제 나와 가자”고 한다. 그것이 흑암이다. 그 때는 온 몸이 굳어 손가락 발가락도 꼼짝 안한다. 공포에 휩싸여 그대로 영혼이 끌려간다. 장애인을 데리고 살 때 그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너무나 많이 봤다. 그래서 나는 진리를 더 찾고 두드리고 구했던 것이다. 내 속에 있는 들보를 뽑지 않고는 창3:15이 뿌리내리지 않는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좋은 나무로 뿌리 내릴 수 없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부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 가인은 운명대로 자기 길, 멸망의 길로 갔다.
*우리는 이 땅의 생존자로서, 남은 자, 남길 자로 하나님이 부르셨다
→ 안전지대가 없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마음에 심어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재앙의 시대, 안전지대가 없는 이 시대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통해 공중권세 잡은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시스템 속에서 사망권세로 둘러싸인 산업재해 시스템 속에서 생존자라면 나쁜 나무를 뽑아내고 그리스도의 나무를 심길 바란다. 그게 영접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런 사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가 된다.요1:13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나무가 몸에 심겨진다.요1:14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풍성한 과실을 맺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다. 그리스도가 몸에 심겨져 있기에 하나님은 양자의 영을 부어주셔서 아들들이라 부르시고 상속자가 된다. 이제 그리스도에게 접붙였으니 당신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심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 은혜와 진리, 자유가 살아서 역사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예수님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나무가 심겨지지 않은 나무에게 두드리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나무를 심으라고.’ 그래야 진액을 먹고 자라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리스도가 그에게 들어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먹고 그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죄의 권세를 멸하신 그리스도, 사망의 저주를 끊으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로 마음에 영접하시고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시고 나쁜 나무들을 뽑아내길 축복한다. 그러면 아무리 연약하고 실패해도 상관없다. 전과자도 괜찮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심겨지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자신이 의롭다고 착각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쪼그라든다. 심지어 죽을 때 예수님을 부인하고 육신적 유언을 남길 만큼 재앙의 길로 간다.
→ 그리스도를 귀납법적 사고로 깊이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러면 갱신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를 귀납법적으로 보면 모든 해답이 그 속에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나쁜 열매만 맺고 살았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꿀 수 있는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를 주었으니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은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나무를 심어야 되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것이 신앙이요, 신학이다.
미완성적인 인간들은 창3:15이 몸에 심겨져 그 능력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능력의 영광으로 주시는 수많은 엑기스들을 먹어야 멋있게 자라난다. 그 때부터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행동할 수 있는 힘, 결단하는 놀라운 지혜가 생긴다.
→ 안전지대가 없는 현실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산다
창세기 3장의 원죄, 창세기 6장의 네피림,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의 저주가 복의 근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리의 온 몸을 덮고 있다. 사60:1~2, 어둠과 캄캄함이 나를 덮고 있기에 하나님의 빛, 생명의 빛 되신 그리스도를 받아야 살 수 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다. 빛을 가져야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머물고 너를 살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다.
그래서 영적인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를 담아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런데 창세기 3장의 원죄는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나로 살도록 착각하게 만든다. “너로 살아, 교회도 믿지마, 부부 사이도 안 돼, 돌아서면 남이야!” 나로 살면 잔인해진다. 그 이유는 나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러면 육체로만 살아야 하는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롬 3:10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사망의 법에 묶여서 죄의 권세아래서 사람이 살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7 내 속에서 악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 잡은 마귀가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안전지대가 없는 지뢰밭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잘못 밟으면 터져서 한쪽 다리를 잃고 그러다가 남은 한쪽다리마저 잃는다. 인생을 이렇게 만드는 죄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하나님 떠남으로 인해 원죄가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그래서 남을 대접하기가 힘든 것이다. 자기 유익이 없으면 남을 대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에게 유익이 있어야 대접이라도 하려고 한다. 성경에는 대접하는 자가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완전한 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절대 신분과 권세를 상실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누구나 선지자처럼 나그네처럼 대접해 줄 수 있다. 자기 배만을 위하는 돼지 같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라는 진주를 던져주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세상 언어만 사용하는 개들을 삼가야 한다. 하나님이 장난치고 농담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로 부터 매질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양 손발에 대못이 찔리시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당해야 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또 죽었다가 왜 살아나야 하는가? 뭐하는데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가? 뭐하는데 굳이 성령으로 각 사람들에게 역사하신다고 하셨는가? 농담은 단회적이지만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는 말은 절대라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몸에는 나쁜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강가에서 예쁜 새들이 돌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숨어 있던 이리가 살며시 나와서 사정없이 새들의 목을 물어 버린다. 그런 것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누가 사랑 받으면 시기, 질투하고 비교의식과 열등감 속에 이간의 말을 늘어놓는다. 우리 속에는 이리 같은 존재가 있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이리, 남의 가정을 허물어뜨리는 이리,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이리. 또 어떤 이리는 태평양을 힘들게 건너온 새들이 둥지를 틀어서 거기에 알을 낳아 놓으면 그 알을 훔쳐 먹으러 올라간다. 얼마나 얄밉겠는가. 암놈과 수놈이 목 놓아 울어도 뒤도 안 돌아본다. 알을 훔친 이리들은 자기 새끼들에게 알을 먹인다. 그것을 먹고 눈알이 빨개지면서 또 잡아먹어야지 하는 모습을 띤다. 이런 것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창3:15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말씀이 없었다면 이단 곱하기 이단 사단이 되고, 육단, 팔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육성으로 남기신 말씀이고,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에게서 났으니. 그게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더러운 것을 뽑아내고 그리스도의 좋은 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에 충만한 것이다.
그 길로 안 가면 가져도 사는 게 너무나 공허하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있는 만큼 공허해진다. 또 돈이 너무 없어도 허무해진다. 결국은 혼돈과 공허로 사람을 장악하고 흑암으로 덮어 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생명의 빛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이것을 가져야 한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내 속에 있는 이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려고 몸부림친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살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일이다.
따라서 이런 것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내가 의로워서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창3:15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나무를 심었기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양의 옷을 입고 양들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하는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밥 먹는 타령하지 말라고 하셨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9 밥 먹는 타령 그만하고 이제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어떻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인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자아를 부인하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을 시인하면, 언제나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사람 것을 노략질 하는 이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제자는 사람의 미래를 보고 눈물을 가져야 한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딤후 1:3~4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는 눈물이 있다. 쓸쓸함, 억울함의 눈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눈물이 있어야 한다. 디모데 눈 속에는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진짜 그리스도의 눈물을 가진 자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새벽이슬과 같은, 별과 같은 자가 된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 교역자, 교사, 중직자들은 사람의 미래를 보고 눈물이 있어야 예수님 따라가는 제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디모데는 무엇을 알았는가? 사람 시스템 속에는 안전지대가 없는 재앙임을 알고 있었다. 이 땅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며, 죄의 권세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온 몸에 장애로 파고든다. 이미 와 있지 않은가. 육체로 살게 만드는 사망권세 잡은 자가 영원한 무저갱까지 멸망으로 우리를 끌고 가는 재앙을 본다면 눈물이 있어야 한다.
→ 은혜 속에 강한 영적군사,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영적 농부, 말씀으로 페어플레이 하는 영적 선수가 되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딤후 2:1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내 아들아, 눈물이 있는 내 아들아,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가족이 된 내 아들아, 사람들 영혼 속에서 저주와 재앙의 시스템을 알고 눈물을 가진 내 아들아, 어떻게 해서라도 한 생명이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기도 속에 있는 내 아들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덧입고 마귀의 궤계와 영적 전쟁을 하는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는 것이다. 절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사람의 소리에 영향을 받지 말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보좌에서 지금 통치하시고 무소부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우며, 사람을 장악한 강한 자를 결박하여 내어 쫓는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영적인 군사가 될 것이며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는 영적인 군사가 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교회당 지어 놓고 뭐 할 것인가? 복음 없는 교회당에는 귀신들만 모인다.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특히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자그마치 300만 명에 이르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디아스포라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2022년에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어린양을 먹이고 어린양을 쳐라. 우리 예수사랑교회가 할 수 있는 자격을 하나님이 주셨다. 이제 문화권 개혁, 종교 개혁, 인생 개혁이 일어나야 멋있는 영적 군사의 교회가 된다.
또한 믿음으로 언제나 씨를 심는 농부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응답해 주신다. 우리는 세계복음화의 씨를 심어야 한다. 디아스포라 미션의 씨를 심는 것이다. 내 어린양을 먹이기 위하여 씨를 심는 것이다. 심지도 않는 자가 뭘 거두려고 하는가? 그게 사기군, 이리, 도둑놈, 은근히 찾아온 강도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심은 대로 거둔다. 이제는 심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무슨 씨를 심어야 하는가? 사람 살리는 씨를 심어야 한다. 예수님을 위하여 눈물 흘리지 말고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자녀들에게 찾아올 재앙, 실패를 본다면 오늘도 씨를 심을 것이다. 후대를 위하여, 어린양을 위하여 씨를 심는 만큼 그들이 재앙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 자녀들을 위해 심지도 않고, 육신적 자녀만을 위하여 먹이고, 먹이고 먹여서 살찌워서 비만으로 무기력 무능으로 주저앉게 만들 것인가? 우선순위를 빨리 바꾸길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우리는 심는다면 하나님이 자녀들까지도 변화시켜 주신다. 우선순위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농부는 씨를 심어야 한다. 전도의 씨를 심으면 사람이 살아난다. 사람이 인정해주든 안 해주든 아무 상관이 없다. 섭섭할 것도 없다. 미래를 보는 눈물이 있어야 씨를 심는다. 진짜 농부는 가뭄하고 상관없이 씨를 심는다. 왜 그런가? 믿음을 따라 열매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하는 자는 페어플레이 해야 한다. 반칙을 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좋은 나무고 그 좋은 나무에서 열매를 맺게 된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창3:15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다.
먼저 내 속에 완악하고 더럽고 추잡하고 강한 그 놈을 결박해라. 내어 쫓아라. 깨트려라. 저는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 시작했다. 창3:15이 나의 하나님이고 나의 언약이며 나의 절대 약속이고 절대 믿음이다. 그랬더니 창6:14, 그리스도가 나의 방주가 되어 내가 구원을 받았더니 수면 위에 드러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증인으로 서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도망 다녔다. 목사 하지 않으려고 숨었었다. 수치심과 부끄러움도 많고 대인관계도 약하고 실력도 없었다. 너무 연약한 존재이기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창3:15이 내 구원의 방주로 만들었더니 하나님이 수면 위에서 나를 움직이셨다. 그 때 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끊임없이 발랐다. 그랬더니 자꾸만 유월되었다. 피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은 출애굽을 삶에 열매로, 응답으로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하셨다.
그때부터 임마누엘의 축복을 갖게 되었다.사7:14 그리스도를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나를 생존자로, 남길 자로 예비된 자로, 작정된 자와의 만남을 주시기 위하여 역사 속에 함께 하심을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고백해야 하는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나는 그 분을 보아야 하는구나. 그 분을 고백해야 되는 구나. 그 분을 시인해야 되는구나. 그 분을 사랑해야 되는구나. 그래야 음부의 권세가 나를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사랑교회가 복음을 따라 그리스도의 하나님 이름 천국 열쇠를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질병의 저주가 끊어지고 약한 자들이 강한 자가 되고 연약한 자들이 강국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된다. 천국 열쇠를 사용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일심 전심 지속하는 것이다. 몇 년 지난 뒤에 이것을 제가 확인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하시는 중요한 일들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복음화 걸어가는 여정 속에 렘넌트 운동이 터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작은 것을 제일 먼저 심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제는 하나님 저도 하나님과 이면계약 하기를 원합니다.’ 그 때 부터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때 하나님이 저에게 꿈을 주셨다. 디아스포라 미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 내 인생의 열매를 보면 내 자신이 보인다
좋은 나무든 나쁜 나무든 열매를 맺는다는 게 본문의 예수님의 메시지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경고하신다. 나무는 나무인데 좋은 나무냐 나쁜 나무냐 하는 것이다. 결국은 열매를 통해서 좋은 열매냐 나쁜 열매냐가 판가름 난다. 이것이 영원까지 심판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판가름 난다. 살았을 때 정리하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열매로 자신을 분석하고 정리하고 정신 차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오직 창3:15을 믿는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다. 창6:14을 믿는 믿음으로, 출3:18을 믿는 믿음으로, 사7:14을 믿는 믿음으로, 마16:16을 믿는 믿음으로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온다. 이것을 붙잡아야 한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 13:18
그랬더니 좋은 열매가 후손들, 이삭, 야곱, 요셉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하나님 당신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말씀을 가진 자는 성령께서 말씀을 이루시려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성삼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말씀을 주신 성부 하나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성자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자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 속에는 세 가지 직분이 있다. 만왕의 왕으로서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이름이다. 또, 죄의 권세로, 저주와 재앙과 사망과 지옥권세에 잡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참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 만나는 길이 그리스도로 열린 것이다. 그래서 참 선지자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
아브라함의 조카는 불신앙으로 몸부림 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육신적으로 잔머리 굴리다가 자기 삼촌을 배은망덕하게 배신하고 떠났다. 아브라함이 양보한 것이다. ‘좋은 나무로서 나는 심자. 내 몸에 언약을 심으면 하나님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래서 자기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그래 가져가라 나는 싸우는 것 싫다” 양보한 것이다. 왜 그런가? 좋은 나무가 좋으니까. 이것 하나 때문에 좋은 나무에 상처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은 대적의 문을 취하는 축복,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밟는 땅은 자손들이 갖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
요셉도 창3:15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에 충만하자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되어지고 그의 형들은 점점 쪼그라들어서 먹을 양식이 없어 이제는 애굽까지 내려와서 동생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쌀을 사가지고 가야 되고 결국 걸려들고 들통 나는 인생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요셉은 역사적 인물이 되었고 그의 형들은 찌질한 놈들로 기록되어 있다.
생각은 열매로 나타난다. 생각을 지금 언약으로 심느냐 세상의 방법으로 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복음의 씨를 심었다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농부가 씨를 심어 놓고 걱정하는 사람 보았는가? 씨를 심었다면, 복음의 씨를 내 몸에 심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복음의 룰을 지킨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복음의 영적 군사가 된다면 사탄의 머리를 밟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말씀의 열매는 분명히 맺는다.
→오늘 영혼 속에 말씀의 열매가 어떻게 맺혀 있는가를 점검하길 바란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우리가 지금 가져야 되는 일이 무엇인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이 즉 마귀가 주는 생각을 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방법을 몸에 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소리들을 심으면 죽는다. 그것은 나를 죽이는 이리다. 복 있는 사람은 사탄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몸에 창3:15을 심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심고 즐거워하고 창3:15을 주야로 묵상해 보라. 그러면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밟고 무엇을 쫓아내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나는 이것을 체험하고 맛을 보았기에 증인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이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 1:4
농부가 씨를 심어 놓고 왜 새싹이 안 나냐며 후벼 파는 농부는 농부가 아니다. 뽑아서 다른 논에 심으면 그게 살겠는가? 믿음이 있어야 한다. 훈련을 통해서 농부가 된다. 5월 말에서 6월 초가 되면 왜 아버지가 고추 옆에 작은 나무들을 심어서 그것을 짚으로 묶어 놓을까? 아, 바람이 불고 비바람이 치는 장마철이 오기 때문에 폭풍이 오면 쓸려갈까봐 농부들은 그것을 알고 수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좋은 나무를 심기 위해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 노력은 우리가 해야 한다.
→ 불신앙에서도 열매가 나온다
불신앙의 열매가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지금 사람들은 이것을 심고 있다. ‘내 아들이 혹시 친구들을 잘못 만나서 이상해지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 사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왜 이런 두려움이 생기는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안 심었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음이니라 세상을 이긴 만왕의 왕을 나의 구주로 나는 오늘도 영접하오니 내 영혼 속에서 두려움으로 요동케 하며 내 자녀들 때문에 오늘도 시달리게 만들어 내 삶을 장악하고 내 삶을 도둑질 하는 모든 질병의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지고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디아스포라 미션을 위하여 후대를 살리는 씨를 심을 지어다!” 이런 멋이 있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마 13:18~19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새겨지지도 않고 세상적인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만 늘어놓는다. 다른 것이 들어가서 그렇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 그래서 좋은 열매가 안 나오는 것이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22
참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진액을 빨아먹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진액을 먹어야 계속 승승장구하고 형통함이 온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23 여기에서 답이 나온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마 13:25 그래서 노력만 할 수 있지 열매가 없는 것이다. 사망의 잠을 자서 그렇다.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 일어나면 1분씩이라도 정시기도를 해보길 바란다. 점심 먹기 전, 음식 기다릴 때 30초만 기도해도 기적이 일어난다. 잠잘 때 잠이 안온다고 뒤척이고 온갖 잔머리 다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고 이간질 하지 말고 그 때 기도하길 바란다. 인생 앞에 악질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길 바란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이놈이 들어가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예수님을 팔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가자 나쁜 열매가 나오고 자살하는 열매가 나온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입으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 미소의 입으로 바꾸길 바란다.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긴다. 왜 그런가? 구원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을 받으라는 것이다. “나는 왕 중의 왕이다. 나는 모든 저주와 재앙을 멸할 참 제사장이시다. 나는 너에게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참 선지자 그리스도이시다”
→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말씀이 내 몸에 들어오면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경제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경제의 축복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과 이면계약을 맺길 바란다.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다. 심은 것을 거두어 심지도 않는 사람이 경제를 논하는 사람은 진짜 나쁜 사기꾼이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강도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두렙돈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가장 없는 것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농촌에 계시는 목사님들에게 가끔씩 가서 세미나를 할 때 꼭 부탁하는 게 있다. ‘목사가 십일조를 안 내면 경제관이 없다.’ ‘해결 안 된다.’ ‘죽는 날까지 가난하게 산다.’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나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라도 땅을 사게 하고 건물을 짓게 하고 제자를 보내고 세계복음화 갈 수 있을 만큼 경제관이 온다.’는 것을 늘 이야기 한다.
두렙돈을 드린 그 과부를 하나님이 기억하고 축복하신다. 오병이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드린 어린아이를 불러다가 축복하신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누가 막겠는가? 그들은 로마 복음화를 했을 것이다. 그 속에 제자가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기억하고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비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하면서도 심지도 않고 주시옵소서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강도다.
오늘 부터 다민족을 위하여 심어 보길 바란다. 예수사랑교회에 있는 다민족의 가슴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은혜를 내게 주옵소서.” 그리스도 복음의 씨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알게 되고 영적싸움 속에서 하늘 보좌의 축복을 받는다. 영적싸움을 왜 하는가? 욕심을 꺾기 위해 하는 것이다.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꺾는 것이다. 내 것이라고 붙잡고 몸부림치며 쓰지 못하고 망하게 하는 것과 싸우라는 것이다. 대접하기를 거부하는 거짓말쟁이, 욕심쟁이를 꺾어 버리라는 것이다. 영적싸움을 왜 하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꺾기 위해 하는 것이다.
* 복음의 씨를 심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는 좋은 열매를 맺자
창세기 3장, 요한복음 8장44절의 씨는 종교의 열매를 맺는다.
종교의 열매는 멸망이다. 노예, 포로, 속국 되는 게 종교의 열매다.
종교의 씨는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리교, 천주교가 다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씨는 절대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구원을 주시고 영원을 주셨고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살아서 보좌에서 지금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이 축복 받자는 것이다. 아멘!
종교의 씨는 죽을 때 나온다. 알 수 없는 두려움,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가 영혼을 사로잡아 미치게 만든다. 그래서 치매가 오고 온 몸이 틀어져 버리고, 어느 날 숨이 끊어져 버린다. 심장 마비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 온 몸을 짓누르기에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심장마비로 죽으면 호상이라고 하지만 눌려서 살려달라는 소리를 못해서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씨는 살아서 성령으로 활력 있게 역사하시며 어둠의 세력을 밀어내고 꺾고 죽이는 강력한 능력이다. 그 생명을 가슴에 심고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길 바란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내 인생의 열매를 보면 내 자신이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적으로 내 영혼 속에 임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의 바람을 날마다 전해 주시오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벗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능력이라고 말씀하였사오니 이제 부터 너는 행복자로 선언하고 이제는 그리스도 도움을 잊지 말고 쓸쓸함과 고독과 외로움 속에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심는 귀한 생명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복음의 씨를 깊게 심기면 하나님 끝이라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마음과 생각에 복음의 씨를 마음껏 심어서 시험이 찾아올 때 마다 갈등과 문제가 찾아올 때 마다 모든 문제 끝이라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구원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의 흑암과 공허와 혼돈으로 안전지대가 없는 시대 속에서 영적세계에 무감각하여 멸망 받는지도 모른 채, 육체의 본능을 따라 나 중심으로 살다 버림받을 나를 남은 자로 불러주시고, 그리스도의 빛을 영접하여 생명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내 몸에 말씀의 열매가 어떻게 맺혀있는지 내 인생의 열매로 나를 점검하여, 사망의 잠에서 깨어나 불신앙의 열매를 맺는 내 속의 나쁜 나무를 제거하고, 생각 속에 복음의 씨, 그리스도의 좋은 나무를 심는 부지런한 농부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미래와 사람에 대한 눈물이 있어, 하나님과 이면계약을 맺고 후대를 살리는 전도의 씨를 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실천하여, 심은 대로 좋은 열매를 맺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