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전통주의를 무너뜨린 바울의 종교개혁
행 13:13-16
본문은 짧은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속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탈한 자들은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보지 못한 채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메시지다. 죽었던 자를 살렸음에도 배은망덕하게 자기의 유익 앞에 다른 길을 떠나는 마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훗날 마가는 베드로와 동행 속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만나서 어떤 얘기를 많이 해주셨냐고 베드로를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얘기를 듣다가 마가복음을 쓰게 되었다. 결국 이탈자가 거듭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다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문제를 통과해야 한다.
* 영적인 존재인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3가지가 있다. 먼저, 국가가 인정하는 종교를 믿으면 안 된다. 이것은 우리 인생을 속이는 어둠이다. 국가 종교로 만들어 하나님을 불렀던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국가가 인정했다고 하는 하나님을 교회마다 부르고 있다. 그래서 천주교는 하느님이라고 하고 교회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내용도 모른 채 부르다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거부하다 죽거나,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 박수무당이 되고 점쟁이가 되고 귀신들린 자가 된다. 국가 종교를 만들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오늘날 가장 많이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국가종교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선택해서 그 나라에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을 종교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전통, 제도와 규례 속에서 그 후손들은 끊임없는 재앙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 결국 손으로 만든 우상 신들을 섬기게 된다. 그래서 절간이든 교회당이든 사람들은 손으로 만들어놓은 우상 신전에 비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건물과 우상 앞에서 절을 하며 이상한 행동을 한다. 하나님은 왜 우상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가? 우상 신들을 섬기면 자신도 모르게 귀신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에 집착하고 자기 영혼이 그곳에 끌려가게 된다. 이렇게 귀신들린 사람들은 늘 착각을 일으킨다. 영들의 세계 속에서 명상 같은 것을 하며 접신 하는 행위를 기도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각종 사상과 철학 속에 혼합종교로, 에큐메니칼(ecumenical movement, 종교일치)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네피림 시스템 속에서 바벨탑 운동으로 전개하다가 모든 인류는 무너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절대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이 3가지, 국가 종교, 우상숭배, 철학과 신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창3:15을 오직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말씀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되라. 창3:15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힘이 들어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비상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곤비치 않는 힘이 있다.”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국가 종교라고 만들어놓은 그 시스템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에서 ‘오직’이 없기 때문에 정신병자가 되거나, 귀신들린자, 아니면 이탈자, 배은망덕한 자가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만든 우상신을 섬기면 귀신들린다. 사40:8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해라” 우리는 이 힘이 있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요, 능력, 힘, 권세, 산성, 반석,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3:15을 언약으로 주셨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깨뜨리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는 마귀의 일을 멸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저주와 재앙을 밀어낼 뿐 아니라,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갖게 되고,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를 통해 성령은 역사하신다. 곧 창3:15 속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창3:15로 구원을 받아야 모든 저주와 재앙이 무너진다. 그러면 세계복음화의 능력이 우리 몸에 오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우리 몸이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교회를 다녀도 육신적인 사람이 된다. 육신적인 사람은 사단의 밥이다. 옛 뱀, 마귀는 흙을 먹고 사는 놈이다. 곧 우리의 육체를 먹고 사는 놈이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인 우리가 사단에게 육체를 내어주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를 상실하고 육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고 있다.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영적인 존재인 우리가 인생과 문화 종교를 개혁하는 일에 사실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음악도 영으로 하는 것과 육으로 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음악으로 영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문화사역은 굉장히 중요하다. 영적인 음악은 창1:27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도록 사람을 돕게 된다. 그래서 교역자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라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들이다. 창2:7 하나님의 생기가 사람 속에 들어가야 사람이 생령이 된다.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 속에 들어가야 생령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셨으며, 모태에 조성되기도 전에 우리를 구별하여 부르셨다고 렘1:5 말씀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창2:1~18 안식일, 예배의 축복을 알게 된다. 예배의 축복을 상실하면 사람은 매력이 없어진다. 또한 예배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 변화나 거듭남, 회개가 없다. 그래서 범죄만 가중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 시스템 속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모든 생명력을 회복 받아야 한다. 예배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몸에 작동되고 역사하면 엄청난 축복이 시작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수술용 칼 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영혼이 수술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암 덩어리가 제거된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고질적인 질병의 저주가 하나님의 말씀의 칼로만 가능하다.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흑암이 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지를 느끼는 사람은 멋있는 전도자가 되지만, 그 흑암을 숨겨놓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교회만 다니는 사람은 죽을 때 이상하게 죽게 된다. 남미에서 평생을 선교하신 목사님이 있었다. 4,50년을 남미에서 선교만 하셨는데 이분이 죽음에 이르러 병원에 누워계신다고 친척이 나에게 그분을 찾아가 달라고 부탁을 해서 병문안을 갔다. 그런데 “목사님 말이라면 듣기 싫습니다. 다 형식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했다. 그래서 내가 당신 예수 믿냐고 물었더니 “나는 이제 안 믿습니다”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 영혼을 덮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흑암이 우리 몸을 덮어버린다. 이분은 이미 엄청난 사망의 공포에 눌려있고 질려있었다. 그래서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그리스도 입니다” 했더니 내 말을 듣지도 않던 “그리스도가 사망에서 해방시킨다고요?” 하고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자기를 짓눌렀던 어둠이 확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정말 모른다. 우리 몸에 그리스도를 심지 않고 인생을 살면 사는 날 동안 나쁜 열매만 맺다가 죽는다. 국가 종교들이 불렀던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그리스도가 진짜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밥 먹을 때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24시간 그리스도가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변화와 증거, 응답과 은혜, 모든 것이 다 온다.
그런데 마가다락방 주인의 아들 마가가 이것을 못 잡았다. 그래서 전도팀을 제멋대로 따라갔다가 또 제멋대로 안 가고 배은망덕하게 살았다. 사람 속에 그리스도가 각인 뿌리 체질 되지 않으면 업다운이 심한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해서 사람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고 옛사람의 체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교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 심령 속에 그리스도가 뿌리내려지지 않으면 행13:10의 출신이 된다. 예수를 빙자하여 자칭 ‘바르 예수, 예수의 아들’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자에게 바울이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막지 마라 이 더러운 귀신아!” 선포했을 때, 마가가 이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서 바울을 비웃었다. 그래서 마가는 병에 걸린다.
내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왕 같은 제사장” 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깊이 묵상해야 한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고, 이미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저주와 재앙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으라고 제사장으로 부르셨으며, 또,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게 왔으니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고 하나님 나라의 대사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 유익에 따라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중심으로 멋있게 살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빛을 선전하는 증인이 된다. 그리스도를 선포했더니 선교사님의 눈이 탁 떠지더니 “밥 먹을 때만 불렀던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이 그런 의미였습니까?” 했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부터 흑암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나님이 이루어놓은 지옥권세, 사망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주었는데 그 이름 하나를 부르려고 하지도 않고 답답해하고 염려하는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감옥을 가도 괜찮고, 모함을 받아도, 실수를 하고 감옥을 가도, 핍박의 감옥을 가도 괜찮다. 바울도, 요셉도 감옥출신 이었고 모세는 도망자 출신이었다. 지구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뭐가 그렇게 잘났는가? 내 안에 들보도 뽑지 않고, 자신이 의인인 척 하며 남만 정죄하는 더러운 입을 가지고 있는 저주의 자식들, 막걸리 한 잔도 얻어먹지 않은 상태로 사람을 저주하고 끊임없이 이간하고 비판하는 존재, 거짓말을 보태서 사람을 짓누르는 인생,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 아닌가? 왜 이렇게 전락 되었는가? 내 몸, 내 배만 생각하는 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에게 좋은 복음을 주지 말라고 했고,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천부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삶에 반드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디아스포라 미션을 성취시키는 복음의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무소부재(無所不在) 하나님, 어디든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함께 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굉장히 경이롭게 찾는 척 하지만 이상한데 가서는 이상한 짓을 하고 또 다른데 가서는 다른 말을 한다. 그것은 귀신들린 자들이 부르는 하나님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으면 자신부터 쳐서 복종시키는 절대 훈련 속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우는 것이 체질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신앙과 신학을 배우지만, 그리스도 하나만 빼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배우는 곳에는 몇 백 만원씩을 내고 돌아 다니지만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 하나님, 그리스도를 몰라서 헤매고만 있다. 성경을 집에 다섯 권 씩 쌓아놓고도 다른 곳을 찾아다닌다. 이미 상태가 너무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 요1:14 창3:1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리스도 속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우리가 창3:15 그의 영광을 보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앙과 신학이 우리는 분명해야 한다. 잉카네이션 하나님, 성육신의 하나님 그분이 그리스도다. 그분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 사단에게 속지 말고, 세상 풍습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영의 세계를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지는, 이 축복을 우리가 날마다 누려야 함에도 놓치는 현실 상황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창3장이라고 모세가 폭로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국가 종교로 인정하고 국가 전체가 섬기는 그 하나님을 왜 믿지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늘에 전쟁을 일으킨 자가 있고, 그놈이 이 땅으로 내어 쫓겨 혼돈과 공허, 흑암으로 사람을 장악한 것이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참 목자 되신 그리스도는 수면 어디든지 운행 하신다. 이 그리스도를 가져야 하고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우상 신들 앞에 다양한 이름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 하나가 각인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 하나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고 그 이름이 체질화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이 안되고 유일성, 재창조가 안 된다. 우리는 일심, 전심, 지속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인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만든 종교, 우상을 섬기게 하는 종교, 모든 사상과 철학, 이념과 세상 초등학문은 자꾸 ‘나’로 살게 만든다. 그런데 그리스도 하나님은 너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나로 살면 재앙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망권세 잡은 지옥권세가 나를 매일 휘둘러 내던진다. 나로 살기 때문에 현실 상황에서 비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부터 깨뜨려야 한다. 내 속에 옛 사람으로 이미 장애를 입고 태어난 흔적들을 없애야 한다. 흑암으로 얼룩 된 것을 생명의 빛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스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늘 ‘하나님, 주여’ 찾지만 이상한 상태다.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 몸에 믿어지면 롬8:2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음이라” 우리 몸에 살고있는 무서운 동기가 욕망의 나비가 되어 날개 짓 하려고 하는 그 몸부림을 조금씩 밟고 깨뜨리기만 해도 우리는 조금씩 거듭나는 역사가 있게 된다. 창3:15 생명의 빛을 갖겠다는 거룩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세계복음화를 내가 갈 것이다!’
하나님은 21세기에 한국을 통해 디아스포라 미션을 주셨다. 행2:10 “여러 지방의 사람,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이 땅에는 복음의 나그네로 살고 싶어하는 자들이 있다. 돈을 쌓아놓고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지고 나그네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보는 눈이 열리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를 보는 눈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래를 보는 사람이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가 누구인가? ‘나’ 가 되어야 한다. 나그네로 사는 나. 그래야 우리는 행복해진다. 우리가 어디를 가도 복음의 시인이 되어 ‘한국에서 온 복음을 주는 복음의 나그네’ 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이렇게 위대한 이름이다. 바울에게,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미래가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하나님, 무소부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복음의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로마에서 온 나그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행9:15 그리스도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나의 택한 그릇인 바울을 만난 것이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행1:8을 들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가 누구를 만났는가? 그리스도를 전달하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를 만났다. 곧 영원한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른 자들은 행13:1~3로 연결된다. 그래서 나그네는 언제나 전도캠프가 있고 기도캠프가 있다. 그래서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5인 1조 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14:14~20 바울은 루스드라에 디모데라는 제자 때문에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복음의 나그네로 살고 싶어하는 하나님이 예비한 제자를 발견했을 때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갔다. 바울이 디모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고통의 때가 찾아올텐데 저 고통을 어떻게 모면하려고 사람들은 저렇게 살고 있을까?’ 디모데에게 있는 그 눈물을 보고 바울은 하나님이 예비해놓은 제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딤후3:1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그 돈을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사람들의 멸망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또, 행16:14 하나님이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다고 했다. 그리스도 하나님이 들어가지 않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돈을 주는 하나님이 들어가기 때문에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자랑하는 자가 되고, 교만한 하나님을 믿으니까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하나님이 들어가면 나그네로 살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나라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은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쳐서 복종시키시는 분, 나의 자아를 부인하게 하시는 분이다. 행16:15 그 루디아가 “… 나를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여기거든 내 집에 유하라”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행17:6에도 하나님은 야손과 같은 제자를 예비하셨다. 이런 다양한 만남을 통해 바울이 행18장,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을 만났을 때 바울은 사역에서 가장 힘을 잃었을 때다. 아덴에서 전도를 하고 굉장히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온 힘을 잃어버렸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학문의 하나님을 전달했지만 아테네 철학자들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힘을 잃고 이제는 밥이나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천막 치는 일을 하다가 그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 하나님만 좋아했다. 이것이 비밀이다.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비해놓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부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행18:1~4 그 만남을 통해 바울이 회당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식일마다 그리스도 하나님을 가지면 캠프가 일어난다. 회당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권면했다. 행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행17:2 바울은 이것을 자기 규례로 정해놓고 인생을 살았다. 그 때 우리 인생에 묶인 것이 풀린다. 눅13:16 사단에게 묶인 것을 푸는 것이 안식일의 비밀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을 안식일마다 들을 때 사단에게 매인 것이 풀어지고, 행10:38 사단에게 눌린 것에서 자유함을 갖게 된다. 그래서 예배는 가르침이 아니다. 묶인 것에서 풀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 이전의 것을 붙잡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각인된 것으로 삶을 사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다. 우리는 구원 이전의 것을 가지고 살면 안된다.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특히 선교역사 이래 최초의 이탈자, 분열을 일으킨 자가 마가 요한이다.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가 있었지만 마가는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자신과 영적싸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탈자, 분열을 일으키는 자, 배은망덕한 자가 되었다. 자신에게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가다락방 출신이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 마가는 어머니의 믿음을 따라 살았던 청년이었다. 초대교회 분위기에 휩쓸리며 따라다니기만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마가 개인에게는 ‘성령이 임했다’는 역사가 없었다. 창3:15 그리스도 하나님의 체험이 없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막14:51~52, 그리스도에 대해 체험이 없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록해놓았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이 땀방울 되도록 기도를 하시고, 잡히시는 것을 마가는 집에서 새벽까지 겟세마네 동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히시는 것을 보고 엉겁결에 이불을 두르고 뛰어나갔는데, 로마 군인들이 너도 그의 제자냐는 말에 자기는 아니라고 하면서 이불을 벗은 채 발가벗은 몸으로 다시 자기 집으로 도망쳐 올라갔다. 그래서 자기에 대해 ‘나는 도망자, 이탈자, 배은망덕한 놈,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고백한 것이다. 이탈하고 실컷 시간 낭비하고 그때 돌아와서 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때 마가의 심령이 어떠했겠는가? ‘국가 종교로 만들어놓고 불렀던 그 하나님을 내가 알지 못하고 살았구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내가 어떻게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을까 세상의 철학과 신앙, 신학들이 내 온몸을 휘두르고 그분에 대해 생각으로만 알았지, 내가 그분을 체험하지 못했던, 나는 아무 쓸모가 없던 사람이었구나’
마가에 대해 바울이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기록했다. 바울이 처음에는 마가를 내쫓았다. 선교사역에 분열을 일으키는 배은망덕한 자는 필요 없다고 2차 전도여행 때 함께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바울이 죽기 전에 자신도 이렇게 연약했음을 고백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멋이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사과할 줄도 알고,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런 아름다움,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했다. 마가를 통역자로 까지 두었는데, 이 사람이 도중에 하차했다. 행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그리고 행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사람 안에 더러운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옛 사람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너희는 악독이 가득한 자, 저주의 자식, 마귀의 자식이다” 라는 엄청난 메세지를 하니까 바울을 향해 알 수 없는 분노와 미움, 이상한 감정이 마가요한에게 들었던 것이다. 자기 삼촌 바나바는 바울을 데려다가 동역자로 삼았던 사람이고,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두고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던 사람이었고, 바울은 예수를 믿는 자를 옥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인데, 자기 삼촌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 거기서 설교를 하고 있으니까 너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예수님은 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나의 계명을 주노니 사랑하라, 이런 사랑 이야기를 하셨는데 더러운 귀신을 내어쫓고, 옛 사람의 저주를 무너뜨리고, 사망권세를 무너뜨리라는 이런 메세지를 하니까 마가의 속이 뒤집어 지는 것이다. 삼촌 바나바가 바울에게 메세지를 시키는 것에 굉장히 불쾌감을 느꼈다. 바나바는 사람을 만나면 늘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는데, 핍박자였던 바울은 사람을 향해 “더러운 귀신아” 하니까 계속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따라다닌 것이다. 예수를 핍박했던 저 바울이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위로의 설교, 사랑의 설교, 돈이나 바치라는 설교를 해야 하는데 행13:10 같은 메세지를 하는 것에 굉장히 화가 나고 불쾌감과 지루함, 원망, 불평을 가진 것이다. 삼촌도 이해할 수 없고 핍박자 바울 전도자도 너무 아니꼬운 상태였다. 엄청난 선교의 현장에서 마가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도 못한 채 옛사람의 체질로 사람만 정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는 이름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지면, 또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자세가 굉장히 낮아져야 한다. 내가 시골에 살 때, 사람들이 강가에 염소를 매달아 놓은 것을 많이 보았다. 염소들은 성질이 더러워서 자기를 매달아 놓은 말뚝을 결국 뽑아낸다. 그래서 목줄기에 늘 털이 빠져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염소는 항상 목줄을 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서로 자기들끼리 싸워서 흥분 상태가 되고 서로를 들이받는다. 그리고 사람이 건너는 다리 위에서 서로 건너겠다고 싸우다가 결국은 두 마리가 같이 떨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산양도 염소와 같이 성질이 더럽지만, 산양은 건너지 못하는 곳을 맞딱뜨리면 한 놈이 엎드려져서 다른 영이 그 산양 위를 폴짝 뛰어서 넘어간다. 그래서 산양은 자유한 것을 보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허리를 낮추라고 하신다.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다면 ‘나’ 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버림을 받아도 대속주로 오신 분이다.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속주가 되어주셨다. 내가 먼저 희생을 하는 것이다. 억울해도 희생당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종교개혁이다. 그래서 갈2:20을 바울이 어느날 발견하게 되된 것이다.
신앙생활 속에 누구나 난관은 기다리고 있다. 행13: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고지가 천 백 킬로미터가 넘는 그 지역까지 자신이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가요한은 전도할 사명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늘 불평과 불신앙 속에서 지내다가 한계와 찾아오니까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자기의 합리적이고 논리적 사고 속에 깊이 빠져들어 결국은 육체의 질병까지 찾아왔다. 그래서 배를 타고 내리자마자 말라리아 병에 걸린다. 그 당시 말라리아는 걸리기만 하면 일주일 안에 죽는 병이었다. 마가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바울과 그 팀이 마가를 위해 정성스럽게 수종을 들고 그 고통스러운 열기를 밤새도록 찬물로 몸을 씻어주면서 2주 동안 기도 속에 있었다는 마가에 대한 기록이 문헌에 남겨있다. 바울은 시체같은 마가를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청했다. 마가요한이 그렇게 살아났음에도 배은망덕하게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출신 부잣집 아들은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다. 전도와 선교 사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퇴보하는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마가는 버가에서 실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 마가가 2차 선교 여행에 다시 따라가겠다고 해서 바울과 분열을 일으키고 결국은 바나바까지 떨어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 마가요한은 베드로를 찾게 되었다. 베드로를 통해 “사람 속에 더러운 귀신들이 많다는 것을 예수님이 늘 말씀하셨다” 는 것을 듣게 되면서 마가복음 전체는 귀신에 관한 글을 많이 쓰게 된 것이다.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세력이다. 그래서 귀신과 영적 전쟁을 하고 영적싸움을 하는 자들은 보좌의 축복을 받게 된다” 마가가 이것을 마가복음에 기록해놓았다. 그 후 벧전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마가는 베드로의 아들이 되었다. 그래서 베드로를 섬기면서 예수님의 생애 때 하신 모든 메세지를 마가가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왜 복음을 시작하셨는가? 바로 우리의 옛사람을 바꾸라고 복음이 온 것이다.” 복음은 나를 바꾸라는 것이다. 롬1:16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우리 몸에 왜 능력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믿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왜 믿음이 오지 않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가가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베드로 복음이라고도 표현한다. 베드로를 통해, “내가 어디에 갔었을 때 예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귀신에 관한 메세지를 해주셨다. 내가 갈릴리에 갔을 때 내가 왜 부인하고 갔는지 너에게 말해줄 수 있다. 원래 나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싶지도 않고 부인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현실 상황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활동으로 인해 내가 흑암에 덮여 순간 입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이다. 내가 물 위를 걷다가 빠졌을 때 예수님이 내게 주신 메세지가 바로 흑암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문제는 결국 해결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떤 위협과 환란, 곤고함이 찾아와도 더욱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라.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는 자가 뒤로 물러서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게 하면 그리스도가 나를 인도해가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일 속에 낙오자가 되지 마라.” 이렇게 베드로가 마가에게 메세지를 전한 것이다.
우리 몸에 반드시 종교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절대 종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상 신들에게 절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섬길 필요도 없다. 각종 사상과 철학에 미혹당하면 안된다. 창3:15, 행1:8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낙오자가 되지 마라. 불평과 비판, 변명에 바쁘면 율법과 종교, 전통주의가 사람을 사로잡아 버리고 결국 중도 이탈자가 된다. 이탈해서 지낸 시간들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하나로 작품을 남기는 자가 되라. ‘나는 다시는 이탈하지 않겠다!’ 여기서 출발한다면 우리 영혼에 종교개혁은 시작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율법과 전통주의를 무너뜨린 바울의 종교개혁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비판 불평 변명하기보다는 이제는 쉬지 말고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그리스도께 충성하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날마다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신앙 생활 속에는 언제나 난관이라는 것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사도행전 1장 8절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 영혼 속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한주간도 주의 모든 백성들을 축복해 주옵시고, 저들이 머무르는 곳에 무소부재 그리스도는 어디든지 계신다라는 절대적 믿음 속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으니 침묵하고 그분이 말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국가종교에 길들여져 자기도 모르게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철학과 신학에 빠져, 모든 것을 배우나 그리스도 하나만 배우지 못하고 종교 속에 허덕이며 사는 이 시대에, 나에게는 종교에서 빠져나오는 비밀을 주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신 참 왕, 저주와 재앙을 꺾으신 참 제사장,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 되신 참 선지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셔서 하나님의 빛을 선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속에 ‘나’ 로 살게 하면서 사망권세, 지옥권세에 이끌려, 내 인생을 흑암으로 얼룩지게 하고, 창세기 3장 15절 성령의 역사를 개인이 체험하지 못하도록 분위기에 휩쓸려, 복음의 이탈자로, 분열을 일으키는 자로, 배은망덕한 삶을 살게 하는 마귀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고질병이 수술되고 모든 것이 풀리는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제는 매력적인 복음의 나그네로 살길 원하오니, 어디에나 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믿어 내 안에 꿈틀거리는 더러운 귀신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내어 쫓는 종교개혁이 날마다 내 안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세를 낮추고, 다시 오지 않은 오늘 속에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르신 영원한 가족을 찾는 전도캠프, 기도캠프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