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대항한 자, 헤롯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
행 12:20-25
신학생 때, 이 짧은 본문의 내용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 잡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본문이다. 난해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본문은 ‘복음을 대항하는 자에게는 결정적 순간이 온다’ 는 비밀이 숨어있다. 예수사랑교회 가족들은 복음에 대항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이 복음을 만나고 내 몸에 원죄, 창3장을 발견한 이후 30년 전쯤에 시를 쓴 것이 있다. ‘얼룩’ 이라는 시를 썼는데, 지금 이 내용이 다 성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룩’ 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사람이 그냥 태어나지 않고 원죄와 가문에 흐르는 저주로 얼룩되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점 모순으로 잉태된 그 처음이 이대로의 나중이 될 수는 없다” 로 시작한 시였다. 사람들은 모순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몸부림치면서 사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보고 싶고, 노력해보고 싶고, 이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고 죽음의 세월을 보며 차가워진 손가락을 가까스로 얽어맬 때 한순간 모두워진 짧은 기원은 곡식을 알찌우는 신의 은총이 되어, 난 한줄기 기류가 되고 청청한 대기가 되어 순백의 향연에 귀빈이 되었다” 이 시 마지막 구절 처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귀빈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복음을 찾고 두드리고 가진 자가 되었지만, 헤롯은 복음을 대항한 자였다. 이렇게 결말이 뚜렷하게 다르다. 복음을 만나면 행복한 시간들 속에 감사가 일어난다. ‘아, 축복의 발판이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전도 대열 앞에 세워주셨고, 나는 그분의 하신 일을 보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창3장의 사건, 마귀가 뿌려놓은 덫에 걸려들면 안 된다.
우울하거나 포악한 삶을 살지 말고 마16:16을 고백하는 자가 되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사람에게 마4:19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이 부르셨다. 그래서 언제나 전도와 기도 속에 무한한 하나님의 역사와 응답을 맛보게 하신 것이다. 내가 어떤 기도로 응답을 받아야 되는지를 알게 되고,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틀린 기도를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마24:15~16 가증한 것이 거룩한 것에 서거든 때가 온 줄로 알라고 하셨다. 오늘날 구원도 받지 않은 가증한 자들이 거룩한 곳에 서서 기도하는 척, 예배 하는 척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렇게 가증한 자들이 결정적 순간에 복음을 대항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창3:15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변화되지 않는다. 창3:15을 믿는 믿음 속에 있어야 내면 깊은 곳에 영적인 문제가 치유된다. 창3:15을 믿으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창3:15을 믿지 않는 가증한 자가 거룩한 곳에 서서 이상하게 사는 것이다. 귀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회당, 예배하는 곳이다. 막1:23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를 질렀다. 창3:15이 없으면 사람은 귀신들려 있는 것이다. 거룩한 것에 서서 기도하는 척, 하나님을 믿는 척, 노력하고 변화시켜 달라고 몸부림을 친다. 막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창3:15과는 아무 상관 없이 사는 자들이다. 창3:15은 옛 사람을 깨뜨리고 멸하는 분, 누구인지도 이들을 다 알고 있다. 막1:25 “예수께서 결국은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창3:15을 믿으면 더러운 것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성령충만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가 우리 몸속에 살게 된다.
구원의 본질은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악령, 귀신, 사단은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이름인데 이 실체를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우리 자신도 이것을 믿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정말 알고 있다면 창3:15을 우리 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창3;15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러운 것에 접신해서 종교 사상에 빠지게 된다. 각양각색의 종교를 받아들인다. 그것을 네피림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서 굿이나 제사 지내듯이 빌려고 하든지, 아니면 자기 몸 하나를 놓고 우상숭배 할 뿐이다. 결국 복음을 대항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삶을 기적으로 바꾸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한 점 모순으로 잉태된 이 몸뚱이 이대로 살면 안되는구나’ 나를 바꾸는 비밀은 창3:15이 바로 마16:16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19:30 내 인생의 모든 저주와 죄의 권세, 사망권세를 깨뜨리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와 함께 연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의 축복을 받은 자로 가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답을 찾은 이후 한 번도 내 영혼이 시달려 본 적이 없다.
악령에 잡히면 말씀을 거부하는 자가 된다. 예배를 드려도 졸게 되고 눈을 감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꾸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문제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굉장히 싫고 변화가 없는 것이다. 히4:1~2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않는다. 요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의 소속이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종노릇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그 말씀만 들으면 졸리고 눈이 감기고 이상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못하니까 행동 자체가 없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대로,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살면서 복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언약 속에 하나님의 약속과 생명, 영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히4:12 속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치유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비밀은 말씀을 통해서다. 그래서 골리앗 앞에서도 다윗은 떨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을 굳게 잡고 나아갔다. 삼상17:45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름을 믿고 말씀을 믿으면, 우리 몸에서 그 이름 하나로 능력이 나타난다. 말씀을 믿고 그 이름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바람과 같고 불과 같은 성령의 능력이 분명히 역사하신다.
*말씀을 가진 자가 어떻게 승리하는지를 초대교회 성도들은 알게 되었다.
교만한 헤롯의 죽음을 그들이 보게 되었다.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횡포하며 많은 어려움을 주는 왕이었다. 두로와 시돈 지역은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농산물이 없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에 나는 농산물을 수입해야 했다. 그 약점을 알고 헤롯은 그 지방 사람들에게 굉장한 횡포를 휘둘렀다. 헤롯은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이스라엘 왕이었지만, 로마 황제 앞에서는 벌벌 떠는, 정확히 말하면 정신병자 왕이었다. 이놈은 늘 이상한 짓을 했다.
허망한 말, 헛소리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같은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 생명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분명한 분별력이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 행12: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사람들이 이렇게 허망한 말을 지껄인다. 그 허망한 말을 듣고 헤롯은 죽게 되었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대 헤롯 가문에는 세 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이 형제들이 이스라엘을 각각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아그립바1세 헤롯이 로마의 힘을 빌려서 다른 형들을 다 쓸어버리고 자기가 통치를 했다. 로마 가이사랴 황제 앞에 충성을 다하는 아주 간사한 사람이었다. 로마 황제로부터 이스라엘 통치를 아그립바 1세, 헤롯의 손자가 통치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유대 땅에 계속 종교로 인한 내전이 일어나고 이제는 유대교와 초대교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진정한 메시아, 우리의 참 왕이라는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자, 대 헤롯의 손자 아그립바 헤롯이 초대교회 야고보 사도를 잡아가다 칼로 내리쳐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기 위해 감옥에 가두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많이 옥에 잡아두기도 하고 심문하고 횡포를 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 만큼 핍박과 위협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칼로 사람을 내리치는 광경을 보면 사람들이 잠잠할 줄 알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강한 힘으로 결집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사도 중 대표인 베드로를 잡아 옥에 집어넣었는데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고 헤롯은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던 아그립바 헤롯이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잡혀 예루살렘을 떠난 것이다.
초대교회는 말씀을 붙잡고 승리했다. 교회를 핍박한다면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교회에 대한 힘을 잃어버렸다. 세상 풍습을 좇고 세상과 타협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욕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예수사랑교회 만이라도 말씀으로 승리하는 교회로서, 이 시대 교회의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셨다.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움켜잡은 자들을 하나님은 지켜주셨다. 강한 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 상대 강한 자들을 깨쳐서 무너뜨리셨다,
행12:24 헤롯이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흥왕하였다. 교회는 어떤 문제가 오고 허망한 말들이 돌아다니고, 이상한 놈들이 살아서 핍박하고 몸부림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게 되는 것이다. 창3:15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 말씀의 승리가 시작되고, 교회 안에 하나님의 권위 속에 ‘그 날’ 이 온다. 그래서 “오순절 날이 이르매…”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교회의 권위 속에 교회는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창3:15 원시 복음을 가진 교회에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 뱀의 머리를 깨뜨려 주시고, 우리 앞에 사단의 모든 권세가 깨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자,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헤롯 왕은 권력에 눈이 멀어 결국은 황충에 의해 죽게 되었다. 로마 권력의 시스템은, 한 사람이 죽여서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아그립바가 이 시스템을 가지고 야고보를 칼로 쳐 죽였다. 전 세계 국가들도 운동권을 주도하는 자 하나를 색출해서 총으로 쏴 죽여서 잠잠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한 자는 오히려 잠잠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헤롯은 종교에 입 맞출 뿐, 복음에는 입 맞추지 않았다. 헤롯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기득권 종교 세력에 입을 맞춰버렸다. 종교지도자들과 입 맞춰, 호감을 얻고 환심을 사서 결국 야고보와 베드로를 죽이려 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너무나 기뻐한 것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과 분명 달랐다. 그들은 악령의 역사를 가지고 종교 지도자들이 된 자들이다. 종교의 무리들은 ‘헤롯왕 만세’ 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헤롯왕 만세! 헤롯왕의 소리는 신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서 헤롯이 ‘어, 이거 괜찮네?’ 하고 사람이 점점 이상해져 간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대표적인 인물을 색출해서 죽이려 한 것이다. 베드로는 감옥에 들어간 날이 유월절이라 당장 죽이지 못하고 유월절이 지난 후에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날 밤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게 되었다. 수많은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켰고, 옥문도 그대로 잠겨있었고, 착고에 채운 것들도 그대로인데 어떻게 베드로의 몸이 빠져나왔는지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있었음에도, 이 일에 대해 헤롯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군인들을 죽이고 벌을 내리고, 아무 관심도 없이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로 떠났다.
헤롯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유일신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유대인이었지만, 그에게 신앙적 이해는 단 1%도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신앙적 이해가 전혀 없는 자들이 가득 차 있다. 모든 권력은 위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있다는 것을 헤롯은 전혀 모르고 있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겸손도 없는 아주 비열한 자다. 악령에 완전 장악된 자였다. 딤전4:2 양심에 화인 맞은 자, 외식과 거짓말, 권력에 길들여진 자였다. 잠28: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사람의 피를 보고 웃는 자는 반드시 한계가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비를 내리고 가을을 주시고 농사를 지으면 알곡을 넉넉히 주시는 분임에도 이런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하는 자가 되고,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미움과 살인으로 가는 것이다. 창3:15로 깨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신앙적 이해가 없는 자라는 것이다. 행22: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바울이 과거에 자신이 신앙적 이해가 없었기에 사람을 죽인 자가 되었다고 했다. 유대 민족이 믿는 그 유일성, 유대민족이 믿는 그 선민 사상은 전혀 신앙적 이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행26:18, “창3:15 여호와 하나님을 내가 이해하지 못함으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둠에 갇혀 있었고, 사단의 권세에 종노릇 했고, 죄의 권세로 가면을 쓰고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것을 빼앗아 기업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창3:15을 가졌을 때 신앙적 이해를 가져 영적인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고백했다. 엡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신앙적 이해를 가졌을 때, 바울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어 편지를 받는 성도를 향해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생명 공동체 속에 있는 자들, 영혼을 사랑하는 신실한 자들’ 이라고 표현했다. 나의 고집을 꺾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나의 옛사람을 날마다 깨뜨리며 전도의 문을 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창3:15로 진실하게 들여다보고 창3:15을 내 몸에 가지면, 만왕의 왕, 그 왕권 아래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내 자신만 잘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영광을 받아야 하고 자신이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 점 모순으로 잉태된 사람이었다. 천대 받아야 하고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난 자들이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당신의 핏값을 지불해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영광이나 출세, 자기 향락에 빠진 삐뚤어진 생각을 버려야 한다.
*헤롯은 오직 자기 영광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의인을 죽이고, 죄 없는 사람을 목 베어 죽였는데도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려움, 미안함, 부끄러움도 없이 이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심판받는 날이 반드시 온다. 하나님이 그냥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받는 날을 맞이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이 없으면 아무 쓸모없는 자가 된다. 그래서 결정적 시간이 오는데 그것이 심판, 죽음이다. 자신이 영광을 받는 시간이 이미 심판을 받는 결정적 시간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운행되는지 전혀 감지하지도 못한 채 사는 자체가 재앙이다.
불의한 사람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은 성공도 아니고, 축하할 일도 아니다. 하나님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창3장의 저주가 그 사람의 몸에 덮어버린 것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네피림 사상에 묶여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부스러기 떨어지는 거라도 함께 먹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결국 성공이라는 바벨탑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자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네 때가 다 되었다’ 하신다.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창3장의 모습을 인정하고 창3:15로 깨뜨려야 한다. 나는 이 복음을 만나고 확인된 것이 행13:10이었다. 인문학과 철학, 신학, 이념과 사상,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하는 이런 것이 내 속에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거짓말, 초등학문, 철학으로 사람을 속이려고 했다. 결국 악행이 가득한 자가 된 것이다. 목사가 아니라 도둑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한 길을 가지 못하도록 막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학, 철학, 사상, 이념, 인문학, 이런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오직 길이요, 진리,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세계복음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했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온 교회의 식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행16:18 점쟁이 꼴이 된다. 점쟁이, 귀신들린 자, 구원을 받지 않고 점을 쳐서 귀신들린 채, 세상의 이익을 따라 사람을 속이는 자가 되려고만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예수그리스도를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가지고 내 유익을 따라 살려고 몸부림을 쳤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이런 것을 내어쫓기 시작했다.
행19:9 내가 그리스도를 비방하면서 이 훈련 속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에서 하는 훈련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훈련도 없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처럼 거짓말로 흉내를 내려고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훈련 속에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민감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사하는 자, 겸손한 자로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옛사람을 청산하고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명령한다. 내 속에서 더럽게 작동하고 있는 모든 어둠의 흑암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그리스도의 도가 무엇인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참 왕 되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목사에게는 성도들보다 마귀의 일이 수십 배 많다.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지 않고 마귀의 일을 멸하니까 만왕의 왕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제자로 자꾸 쓰시는 것을 보았다. 행13:48 영생주기로 작정 된 자들을 하나님이 이렇게 예수사랑교회로 보내주셨다. ‘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붙이는구나. 내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부흥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의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때 사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내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섬김을 받으려는 것보다는 섬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영생주기로 작정 된 성도들을 자꾸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만나면 돈도 주고 교회에 헌금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에서 해방을 받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에 사로잡히면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한다. 나의 몸속에는 막10:45이 작동되고 살아서 역사한다. 죄의 권세를 멸하지 않으면 사람은 이상해질 뿐이다. 지옥체질이기 때문에 굉장히 악하다. 이런 지옥체질을 하나님의 체질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내 몸속에 요14:6 참 선지자 되신 그리스도가 내 몸에 움직여지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 ‘예수그리스도, 당신은 나의 길이죠, 진리, 생명이십니다’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되어,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헤롯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셨음에도 자신의 영광과 형통함이 죽음의 심판이었음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에게 가난한 것이 복 중의 복이고, 어느 날 찾아온 질병도 큰 축복이며, 여러 역경과 실패들도 복중의 복,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그것을 통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었고, 수많은 과거의 상처와 얼룩들이 내 삶을 끊임없이 죽음으로 몰아갈 때마다 애통하는 것이 생겼고, 그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에 길들여지는 자가 되었더니 세상을 정복하는 자로, 땅끝까지 가는 전도제자가 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날마다 행복하게 되었다.
요세푸스에 헤롯의 마지막 고백이 쓰여있다. “사람들이 나를 신이라고 부를 때 나는 죽게 되었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경제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자랑하다가,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으려다가 어려움을 당했다는 것이 오늘 헤롯의 심판이다. 불의한 사람이 형통해지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길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하지 않는 사람이 형통해지는 것은 죽음이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가 탈옥을 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헤롯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신이라고 하는 그 소리를 듣고 황홀한 호칭을 듣고 침묵하고 수용하는 그 자리가 재앙의 자리인 것이다.
인생 사는 모든 문제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면에 똬리를 틀고 나를 장악한 창3장의 문제에서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한다. 창3:15이 우리 몸속에 있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에게는 창2:7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고전12:13 성령을 마시라고 말씀했고, 요20:22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성령을 불어넣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성령 받으라고 던져 주셨다. 생기를 마신 자, 성령이 있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을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대한 원망, 불평, 핑계를 가지며 안된다. 모든 문제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해라. 그리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내라.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신다.
행12:25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다가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 민감한 자들이 되라고 이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복음의 교회를 사수하고 붙어있는 자는 말씀으로 승리한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민감한 자들이 될 줄 믿고,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복음을 대항하는 헤롯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우리들이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행복한 시간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교회 속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먼저 우리 영혼 속에 복음의 승리가 각인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언제나 민감한 자들이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믿음의 일꾼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어떤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승리한다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생명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원죄로 인한 한 점 모순으로 잉태되어, 가문의 저주와 수많은 영적문제로 교회를 다녀도 신앙적 이해가 없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도 없이 자기 영광을 위해 종교와 입 맞추며 살아야하는 비참한 인생에서 빠져나와 복음을 만난 행복자로, 전도자의 대열 속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일이기에, 마귀가 뿌린 창세기 3장의 덫에서 빠져나와, 우울함과 포악함,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며 자기 문제 속에 갇히게 하는 가증한 마귀의 일을 무너뜨리고, 창세기3장15절을 믿는 믿음 속에 내면의 치유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불의한 자가 형통한 것은 창세기3장의 저주가 덮인 것임을 알고, 모든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복음의 교회에 붙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하고 감사와 겸손 속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찾으며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