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손이 함께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행11:19~30
예수사랑교회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오직’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모든 것을 부인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자가 되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으나, 없으나 어떤 것에도 문제 될 일이 없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주의 손이 함께 하는 힘 있는 그리스도인, 세계교회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거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우리 인생은 하룻밤과 같이 짧다. 모든 인생은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사단은 사망의 권세로 우리를 짓누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태어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가지라고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일을 가져야 사망권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하루에도 들숨과 날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출4:24 “모세가 인생의 길을 가다가 숙소에 하룻밤 잠이 들으려고 할 때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서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음에도 그가 언약을 놓쳤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인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창3:15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자가 되라. 그 때 보좌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지옥권세, 사망권세, 사단권세, 죄의권세를 무너뜨리신다.
*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문제와 환란 앞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누리지 못하면 죄의 권세가 우리를 순간 덮어버려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참 어리석은 육신의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육신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어린아이의 수준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 정신이 너무 어리다. 어리니까 영적인 문제가 그 사람을 휘감아 버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도 포럼하지 않고, 이간하는 사람으로, 분리시키는 사람으로, 사람의 말을 듣고 털썩 주저 앉아버린다. 어제 전도신학원에 중국에서 두 청년이 왔다. 교회와 목사님이 보고 싶어 자가격리 기간을 마치고 교회를 온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었던 청년들이 복음을 가지고 영적인 힘을 얻었더니 세상을 향해 도전하게 되고 제자를 양육할 서밋의 사람으로 성장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이 언약이 우리 몸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 몸에 믿고 새기고, 세상 말을 하지 않고 말씀으로만 포럼을 하고, 그리스도만 ‘오직’ 하면 반드시 우리 삶에 ‘유일성’의 응답이 온다. 그러면 우리 몸에 ‘영원’ 이라는 재창조의 체험이 온다. 이것이 안되면 늘 허공 속에 갈등하며 끊임없는 편견과 자기 기준, 자기 고집 속에 무너지는 것이다.
최초의 안디옥 교회가 무엇을 했는가? 오직 ‘그리스도’ 만 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에 모든 것을 부어주셨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유대종교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교단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장로교단이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교단으로 가야 한다. 유대 종교에서 빠져나온 안디옥교회로 오늘날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름을 받아야 한다. 왜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그들은 유대종교가 하는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신비주의, 인본주의, 박애주의, 율법주의를 하지 않았다. 방언을 한답시고 이상하게 떠들어대는 기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창3장에 걸린 인간의 근본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들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기독교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또라이, 사이코, 정신질환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자들로 본다.
‘창3장에 걸려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으로 인생을 마감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창3:15을 주셔서 내가 살게 되었구나’ 이렇게 인정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창3장을 신화로만 생각하지, 진짜 내 몸에 걸려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내 기준, 내 맘대로 사는 창3장, ‘돈 있으면 다야! 돈만 있으면 해결되!’ 하는 창6장 네피림, ‘성공하고 권력을 가져서 내가 가진 것으로 바벨탑을 쌓으면 되는거야!’ 하는 것이 창11장 바벨탑은 지금도 우리 몸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눈에보이지 않는 세력에 잡혀 망하고 무너지는 길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그래서 나에게 창3;15을 주셨구나. 아,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구나’ 깨닫고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입에서 그리스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소주 먹으면서 헛소리나 하려고 한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환란과 핍박을 통해 탄생되었다. 곧 우리에게 찾아오는 환란과 핍박 속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큰 계획과 축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문제 하나에 스스로 자기가 걸려버린다. 어떤 문제에도 그 문제에 걸려들면 우리만 손해다. 그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만나면 같이 죽는 것이다. 대 환란과 핍박, 인간관계의 문제들은 전부다 우리에게 영적 플랫폼이다. 영적으로 답을 주는 나루터가 되면 얼마나 귀하겠는가? 사람을 실어나르는 정거장이 되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문제는 우리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는 일이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숨을 쉬고 쉼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응답해주시는 그 날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다. 지금도 살아서 보좌에서 역사하시며, 나오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 하늘나라를 누리고 있다면 세계복음화 할 만한 증거를 반드시 주시기 때문이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으로 인해 큰 갱신을 시작했다. 큰 환란과 핍박, 죽음에 이르는 문제가 찾아왔을 때,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은 갱신을 하고 자신을 더 크게 변화 시켰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언약이 맞지 않아도 괜찮다. 그 언약을 새겨놓은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예수사랑교회 예배 속에 붙어있으면 반드시 시간이 지나 체험하는 날이 온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재산을 떼어줄 때 큰 갈등이 있었다. 그래도 언약을 새겨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수는 없어서 양보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네가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네가 밟는 땅을 내가 너에게 줄 것이다” 아브라함이 양보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돈 문제 앞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흉년이 들어도 그들이 가진 헌금으로 예루살렘 지역에 송금을 했다. 불신앙의 어둠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빛의 경제로 나오는 축복을 선택 한 것이다.
행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들이 “주,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할 때는 언제나 그 반대를 선포했다는 의미가 있다. “너희는 지금 창3,6,11장에 묶인 마귀의 자식들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사단이 너희 영혼을 잡고 있다. 하나님은 거기서 빠져나오는 길, 주,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주셨다. 주, 퀴리오스, 창3:15 그 예언대로, 하나님이 성취하시고 이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증거를 주셨다.”
주 그리스도를 전파했을 때 어떤 증거가 왔는가? 행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신다. 주의 손이 우리와 함께하면 우리를 막을 자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그냥 문제 속에 빠져버린다.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환란과 문제가 따라다니는 것은, 우리 삶에서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을 하지 않으면 헌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늘 하나님을 죽이려고만 한다. 우리 인생이 출4:24에 걸려 있으면 되겠는가?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언약을 버리려고 하면 인생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그냥 가는 것이다. 우리 삶에 복음이 맞지 않아도 ‘아멘’ 하고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예수에 대하여 말하면 주의 손이 함께 하신다. 창3:15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약속이다. 그 하나님이 요19:30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를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이루셨다. 그리고 행1:8 이제는 우리에게 증거를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너희가 성령 충만 받기를 구하면 나는 너희에게 성령의 권능을 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절대 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능력의 손으로 함께 하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언제까지 육신적 정욕과 육신의 안목, 이생의 자랑 속에 빠지려고 하는가? 이것은 마귀의 일이다. 요일2:16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세상 마귀로부터 온 것이 우리 몸에서 사라지지 않고 행1:8이 우리 몸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이 땅에 갇히는 사람이 된다. 사람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갈 수 있다. 벧전3:10~12 이 땅은 뜨거운 불, 사단이 갇힐 땅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땅에 것만 생각한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위로 올라와서 내 나라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보좌의 축복,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있음에도 누리지 못하면 이 세상의 것에 묶여버린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이 세상 것으로 함정을 파놓고 덫에 걸리게 하고 올무에 갇혀 파닥거리게 하는 사단의 일을 멸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말했다는 것은 사단의 일을 멸하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성령의 손이 붙잡아 주신다. 바울과 실리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 위협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했을 때 간수장에게 변화는 역사가 있었다. 만약 바울과 실라가 육신적인 말을 했다면 간수장에게 죽든지 아니면 간수장이 감옥에 가는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사람 살리는 가슴을 품고 살리는 언어를 사용했을 때 간수장이 안디옥 교회에서 중직자로 쓰임받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그 말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라.
능력의 손이 함께 하기를 원하면 그리스도 예수 그 이름을 가지고 반드시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누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하면 웃으면서 “예수는 그리스도” 말한다.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고 이 사람이 나를 인정하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여지없이 마귀가 개입한다. 사람의 말을 많이 들으면 듣는 만큼 치매 현상이 오고 귀신이 붙는다. 그래서 사람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는 떨어져야 한다. 그런 사람과 붙어있으면 희망, 소망이 없다. 언약을 새겨놓지 않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무가치한 말만 한다. 그러나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말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마귀의 일이 끊어지고 저주와 재앙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단의 권세가 깨지는 말이다.
이 말을 할 때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 되고, 영원한 생명 공동체, 복음 공동체, 렘넌트 살리는 공동체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죽으시면서 까지 주신 선물이, 운명, 사망, 죄의 권세와 지옥권세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겨놓고 기뻐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된다. 막8:26~27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을 이상한 능력이나 행하는 사람으로만 보면, 능력만 추구하고, 육신적 윤택함만 바라보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다. 우리는 단12:3 같이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어차피 멸망 받을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받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바꾸겠다고 개입하면 내가 손해다. 가만히 내버려두고 기도 속에만 있어야 한다.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한 생명으로 비추게 하신다고 약속했다.
눅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자기 유익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구원 받은 자는 생명 살리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재물을 그냥 던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약적 축복을 거부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이용해서 빼앗아 가려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의 주인이 내게 맡겨놓은 것을 탕진했다 할지라도 생명 쪽에 관심이 있었다는 동기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나에게 충성된 자라고 할 것이다. 사람을 얻는 청기지 역할을 했다면 거기에 더 큰 것을 주신다. 눅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좀 멍청하게 산 것처럼 보이지만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생명에 관심을 둔 사람은 이런 축복을 받게 된다. 행26:22 “내가 하나님의 절대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왜 주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메세지를 던지는지 빨리 눈치를 채고, 정신을 차리고 내가 가진 이 복음을 당신도 가져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행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창3:15 밖에 없다. 그리스도로 반드시 답을 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을 오직하기 시작하면 주의 손이 함께하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을 시작하면 행26:28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빛의 경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행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한다.” 창3:15은 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것을 가져야 우리도 예수님처럼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하나를 가지면 이 땅에서 좀 멍청하게 살아도 괜찮다. 행26: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 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회개한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게 된다.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재물도 던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의 길이다.
갈릴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몸에서 체험하게 되었다.
행1:8을 받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마가다락방에 들어가는 순종이 몸에 임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환란과 핍박이 찾아오고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억지로 흩어지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이 말씀이 이제는 내 영혼에 각인되길 원하오니 아버지여, 내게 성령충만을 주옵소서!’ 기도속에 도망을 갔는데 그 기도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주의 성도들에게 여러 핍박과 환란, 문제와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오는 것은 은혜와 축복, 그분의 사랑과 관심, 그분의 뜻이다.
행1:8이 내 몸에 딱 맞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돈부터 벌게 해주옵소서’ 하는 것은 네피림 사상이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내 뜻대로 인생을 좀 펼쳐보고 훗날 성공의 길에서 행1:8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문제를 던지시는 것이다. 모세도 행1:8을 거부해서 죽을 뻔했다. 몸에 맞지 않아도 ‘아멘’ 하고 일어나 행동해라. 큰 핍박과 환란, 죽음에 이르는 문제 앞에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안디옥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환란과 핍박, 죽음이라는 전략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신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원죄로 인해 온 몸에서 발작증세를 일으키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도 좋은 말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평안할지어다” 하면 ‘아멘’ 하지만, “네게 환란이 있을 것이다” 하면 ‘하나님, 그건 저 집사에게 가게 하옵소서’ 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환란과 문제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통해 큰 계획과 응답이 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 폭풍 치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각종 질병에 걸렸어도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나고 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 쌓아 놓았던 재물이 다 털려도 열방의 재물이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열방의 재물이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란과 핍박, 죽음에 이르는 문제를 통해 축복과 은혜를 주신다. 우리 몸에서 언약을 거부하고, 창3:15로 행동을 하라고 하는데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에 환란과 핍박이 오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죽기 전에 복음이라도 한 번 전해보자.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 말하고 살거야!’ 하고 억지로라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복음 운동, 생명 운동 속에 들어가야겠다고 결단하고 집을 버리고 순례자의 길을 떠난 것이다. 그 때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일어났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말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 그리스도 이름 하나 때문에, 친척과 살던 마을을 떠나 정처없이 떠나 흩어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존재다. 우리 집에 오래된 냉장고와 티비를 쓰고 있어도 이런 것에는 한 번도 원망, 불평을 해본적이 없다. 얼마든지 내 돈을 주고 구입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선교비를 쓰고 생명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갈 수 있는가? 천국은 티비가 없어도 재미있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이땅에 쌓아놓고 살려고 하는가? 우리가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을 조금씩 생각하고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실 것이다.
우리는 사실, 흩어진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전도의 일을 하기 원하여 하나님이 흩어놓으신 현실 속에서 핍박과 환란을 통해 얻어진 믿음에는 한이 있다. 한이 있는 믿음이 신앙 중 신앙이다. 한이 있는 믿음은 종말론적 신앙을 갖게 된다. ‘나는 어차피 가는 존재다. 가기 전에 마음껏 쓰고 가는 것이다. 가기 전에 마음껏 누리고 가는 것이다.’ 이런 가슴이 우리 영혼 속에 흘러야 한다.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환란으로 흩어져 안디옥으로 옮겨졌는데 여기서 선교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신분으로 하나님이 완전 바꿔버리셨다. ‘이제 내 남은 생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복음에 쓰임을 받는 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방향을 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나바를 통해 바울이 세워지고, 세계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파송받은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행11:22~23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되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예수 그리스도만 말하는 그들에게 은혜와 기쁨을 보았다. ‘안디옥 지역을 묶고 있는 흑암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무기력과 무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영혼을 잡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렇게 흑암을 꺾고 결박하고 내어 쫓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다.
언제 어디서나 은혜를 보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가진 자를 만나야 은혜가 온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자를 만나면 우리 몸에 있는 은혜마저 떨어져 나간다. 이간하는 사람과 하룻밤만 잠자리에서 속닥거리다가 자면 귀신이 떼거지로 들어간다. 달면 먹고 쓰면 뱉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이상해진다.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하나님이 한 날 밤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면 반드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욥의 세 친구들을 욥이 오랫동안 만났더니 결국 마누라까지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욥의 세 친구들이 굉장히 신학적, 논리적, 합리적, 객관적, 사실적으로 욥에게 말을 건냈지만, 그런 말쟁이들과 떠들어봐야 아무 은혜가 안 된다. 욥의 마누라는 결국 욥을 저주하고 떠났다. 욥의 세 친구들의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면 욥도 빨리 바뀌고 욥의 부인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의 말에는 귀신의 영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언약’ 을 주셨다. 그 언약적 말씀이 우리 몸에 들어갈 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영적싸움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상처와 미움, 시기, 질투, 이간자로 살아간다.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육으로만 맞으면 그 집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쌍묘의 비극이며 자녀들의 재앙을 막아줄 길이 없다. 부인이든 남편이든 반드시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의 재앙을 막아줄 수 있고, 가문의 저주를 끊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우선순위가 영적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은혜 충만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교회에서 늘 조는 사람 옆에 앉으면 어느 날 같이 졸게 되고,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늘 낙서만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순식간에 은혜가 사라진다. 또, 교회 와서도 늘 핸드폰만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 옆에 앉으면 같이 영적으로 몽롱해진다. 사람들이 이런 영적인 사실을 모른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눈에는 항상 은혜만 보인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말씀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실천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일이 온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인 족속이 있으니 이름이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은혜를 덧입은 바나바는 이렇게 행동이 달랐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나바가 본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축복을 보고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위해 쓰라고 이 모든 재물을 지금 나에게 주신 것이구나’ 깨달은 것이다. 이런 사람은 교회의 리더십을 갖게 된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뱀 대가리를 밟으면 착한 사람이 되고, 성령과 믿음에 충만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평신도가 전도자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다.
바나바는 악한 사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사울이 “내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였다” 이렇게 말했을 때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묵묵했지만 바나바는 그 때 ‘아, 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구나’ 하고 바울의 말을 담았다. 그런데 아무도 사울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자기 고향으로 간 것이다. 지날 날 과거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다는 그 죄목으로 인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 성도들에게 조차도 인생이 무가치하게 버림을 받게 되었다. 유대인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예수쟁이들한테 버림을 받았는데, 거기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바나바는 바울을 들여다보는 눈이 달랐다. 그래서 마음에 두고 기도 속에 있었다. 안디옥 교회에 왔을 때, 바나바가 헬라어를 잘하는 헬라 유대인 바울이 생각난 것이다.
행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래서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다소에 바울을 찾으러 갔다. 그를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 지도자로 세우면 딱 맞을 것 같다는 것을 가슴에 새긴 것이다. 그래서 다소에서 바울을 만나 팀사역을 계속 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팀사역을 했을 때 바울의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바울과 함께 손을 잡고 안디옥을 오게 된 것이다. 여기서 1년 동안 바울이 구약의 모든 사건을 그리스도로 다 풀어냈다. 그가 구약에 있는 성경을 얼마나 그리스도로 풀었던지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였다. 여기서 기독교가 탄생된 것이다.
“창1:1은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창1:2 하나님의 신이 운행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신이다. 이 땅에는 혼돈과 공허, 흑암이 장악하고 있지만, 이 땅을 운행하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던 그 하나님이 바로 생명의 빛, 우리의 주, 그리스도 시다. 그리스도가 창3장 사건을 통해 하나님 떠난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로 오시겠다고 주신 창3:15이 우리의 언약이 되었다. 그가 왜 오셨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의 근본문제를 성취하러 오셨다. 창1:27 하나님의 형상 속에 생기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생령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잃어버려서 육체로 전락하고 귀신, 악령이 들어갔다. 그것을 뽑아내고 새로운 영을 집어넣으라고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해야, 사람들 속에 영원한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영원한 생명으로 재창조 된다. 이것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나라, 에덴동산에 갈 수 있다.”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1년 동안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이 강론했다. 그리고 제자를 세우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5인 1조 전도팀을 구성해서 전도캠프로 떠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이후 4천년 만에 하나님의 절대 구원의 계획을 가슴에 새겨놓고 실천한 사람이 바울이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증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 유럽의 문화가 하나님의 나라로 엄청나게 바뀌게 되었다. 바나바는 사울을 추천하고 옹호하고 그를 도와서 제1선교사로 출발시키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앞장서서 진행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 높고 크게 보았던 바나바는 이렇게 사람 살리는 생명 공동체, 복음 공동체를 이뤄가는 증인이 되었다. 바나바는 상대가 가진 허물까지도 용서할 수 있었고, 질투, 미움, 이런 감정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이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 눈이 멀어 아나니아를 만나 복음을 듣고 세례까지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예루살렘 교회는 냉랭했고, 그를 옹호해주지도 않고 보호해주지도 못해 버림을 받게 되었지만,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저 사람도 구원에 이르는 축복을 얻게 되었구나’ 이것을 가슴에 새겨놓았더니 훗날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는 드라마틱한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의 기준으로 버림을 받고 묻혔던 바울이 바나바를 만나 선교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왜 흉년이 들었는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이 왜 바닥났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람에 대한 기준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보는 자가 되면, 어떤 문제에 덮인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자기의 틀을 깨뜨리고,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영적싸움의 군사가 되어 생명공동체를 일으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나바가 바울 한 사람을 세계복음화 선교사로 세웠더니 인류가 달라졌고, 유럽은 문화 혁명이 일어났다. 그래서 유럽은 모든 곳에 교회가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타락한 곳이 되어버린 이 현장에, 우리 예수사랑교회가 다시 한 번 일어나서 세계복음화의 생명 공동체, 복음 공동체, 렘넌트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증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안디옥교회 모든 성들은 예수그리스도밖에 모르는 예수쟁이, 예수에 미친 자들이라는 소리를 사람들에게 듣는 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 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스도가 무엇인가? 저주와 재앙을 막는 이름,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이름, 사망권세에서 빠져나오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불렀던지 유럽에 대혁명이 일어났다.
‘오직’의 말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유일성과 재창조의 축복을 주신다. ‘오직’을 하는 사람에게 보좌에 계신 하나님,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역사하신다.
시103:19~20 ‘오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오직’의 말을 시작하는 예수사랑교회, 중직자, 현장에 말씀을 운동을 펴는 교역자들에게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때부터 유대교라고 하는 종교의 한 분파에서 ‘기독교’를 독립시킨 것이다. 유대종파에서 빠져나온 그리스도인, 장로교회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그리스도인 이다. 우리는 장로교, 침례교… 이런 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오직 머리로 두는 교회, 복음의 생명공동체가 될 때, 우리 온 몸이 온전하게 된다.
이 땅에 율법주의자들은 자녀들에게 자꾸 율법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이 땅에 기성세대들은 자기 자녀들에게까지도 율법을 집어넣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팀사역을 한다. 바울은 율법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 고전15:56 말씀한다. 율법을 자녀들에게 집어넣는 것은 사망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녀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자꾸 힘들어진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왜 힘들다고, 어렵다고 하는가? 사람의 말이 자녀들에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은 심판하는 말, 정죄하는 말, 비아냥거리는 말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의 문제 앞에 자녀가 나를 찾아와서 위로를 해준다고 하면 어떤 위로도 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보려고 지금 기도 속에 있다. 내가 사람 문제 때문에 실족하면 되겠느냐. 사람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이 들어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내가 연약하고 실수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는 나에게 은혜를 주신다.” 이렇게 자녀에게 팀사역을 하면 자녀는 표시없이 변한다. ‘아, 내가 훌륭한 부모님을 두고 살고 있구나’ 깨닫게 된다.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주의 손이 능력으로 함께 하셨다.
우리는 예수밖에 몰라야 한다. ‘예수의 사랑밖에 난 몰라’ 언제나 노래를 불러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난 모른다고 고백하고 노래하면 문제가 사라지고 축복이 온다.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난 몰라’ 하는 것이 교회다. 기성세대들은 끊임없이 율법주의, 신비주의, 박애주의, 자신의 생각을 자녀들에게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환란과 핍박으로 인해 죽음의 문제가 찾아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눈을 열어야 한다. 그러면 다시는 실수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영원한 보좌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 축복 속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의 손이 함께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되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땅에 율법주의자들로 인하여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우리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하는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팀사역 당하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의 말만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우리 또한 영적 싸움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만끽하며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직 그리스도의 말을 시작하여, 가문을 살리고 개인을 살리고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한주간도 이젠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여 현장 속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만 믿고 그리스도를 몰라 창세기3장에서 시작된 내 마음과 기준에 잡혀 기구한 운명으로 인생을 마감하지만, 강단 말씀을 통해 내 몸에 언약이 맞지 않아도 언약을 새기는 자가 되어 주의 손이 함께 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위로부터 오는 창세기3장15절을 가진 자가 되었음에도, 땅의 것에 집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육신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내게 찾아오는 문제와 큰 질병, 환란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깨닫고, 모든 율법적 사고를 무너뜨려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영안이 열리게 하옵소서. 바울 한 사람을 세계복음화의 선교사로 세웠던 바나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손이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생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고 모든 감정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복종시키며, 항상 그리스도의 말을 시작하여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