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롬 10:16~21
2014.02.16 예수사랑교회 1부예배 말씀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인생에 문제가 찾아옵니까?”
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음을 몰라서다. 성도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껍데기만 잡고 헤매고 있다. 복음은 명쾌하게 답을 준다.
“너는 나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네가 산 게 아니라 네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다.” 오늘 당장에 육체를 죽이고 성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살려내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우리 예수님도 육신으로 오셔서 예수라고 하는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으신 후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를 체험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완성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고백을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도 신앙고백 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부활하신 만왕의 왕이 성령으로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어라
롬1:16, 복음은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를 부르지 않고 체험하지 않기에 인생의 문제가 찾아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다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릴 능력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고, 연약하다고 탄식할 필요가 없다.
고전1:18, 십자가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전1: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도 왜 성도들이 헤매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개인의 시간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개인 개인의 시간표를 가지고 계신다.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면 자기 자신을 전도할 수가 없다. 전도를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자신에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며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다.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문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저주의 악신과 약한 것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질찌어다!” 예수사랑교회 성도라고 자칭한다면 오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절대적 신앙으로 일어나라.
그리스도를 모르면 전도와 선교의 시간표가 사라진다.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시간표를 주셨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가난하면 부요할 때가 있고 탄식할 때가 있으면 만민 앞에 세우실 때가 있다. 약한 자를 통하여 강국을 부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일어나 빛을 발해라. 여호와가 속히 행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를 갖지 않으면 하나님의 시간표가 사라진다. 무한한 하늘 보고를 주시길 원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지 않으면, 권세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린다고 하셨다. 구원받은 사람은 벧전 2:9,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의 백성, 그의 나라를 선전할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얻고 영력, 지력, 체력, 경제력, 만남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왜 인생에 문제가 오느냐고 묻지 말고 믿음의 문제임을 알길 바란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에 와서 사람보고 속으면 안 된다. 성도들은 거의 사람 때문에 실패한다. 실컷,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라고 고백한 후에 시험 든다. 그런 성도는 예수 믿고 겨우 구원 받은 수준에 머물러, 육체를 사단에게 내어주고 사단을 웃게 한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길 바란다.
세계 영웅들,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로를 보자.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실패 속에 빠진다.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했다. “예수는 전쟁도 하지 않고도 전 세계를 장악했는데 나는 그렇게 싸우고도 한 평의 무덤도 차지하지 못하는구나……” 오늘 믿는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 구원을 받은 후 사단에게 묶여 길들여진 불신자 상태를 무너뜨리고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은 받지만 그 이상 영적인 것은 체험할 수 없다. 창세기 3장에 출현한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파고든다. 창세기 6장을 통해서 사람을 육체로 주저앉게 한다. 탐욕, 욕망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로 인해 우리 영혼에 공허, 혼돈, 흑암이 자리 잡았다. 실제로 우리 자신도 스스로를 알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존재로 전락되었다.
오늘날 불신자 상태로 살고 있다. 엡2:1~2, 죄와 허물로 죽은 너희를 살렸다고 하셨음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렸음에도, 구원하시고 생명을 넣어주셨음에도,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에게 잡혀 움직인다. 그래서 불신자 상태 속에서 마귀에게 질질 끌려간다. 그래서 예수 믿고 망하는 것이다. 그런 중직자의 말로가 비참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 왜? 안 풀리니까. 엡6:12, 정사와 권세 하늘의 악한 영을 볼 수 있는 눈이 안 열린 것이다. 지금도 중직자를 향해 악한 영들이 불화살을 쏘고 있다. 구원은 받았지만 늘 육체로 마귀의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금방 “아멘” 하고 “아이고” 하고, “아멘”하고 사람 말 듣고 금방 시험 들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하고선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행10:38, 사단에게 묶여 있고 요8:44, 거짓말쟁이 마귀가 아비인 상태가 불신자 상태다.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없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영적인 문제와 사탄과 귀신과 악령의 세력을 무너뜨리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부르면 쟁쟁거리지 않고 순간 찾아오는 육신의 생각을 밀어낸다. 사람의 말은 마음에 비수를 꽂을 수도 있다. 눈 빛 하나가 인생사는 동안 미움을 심기도 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깊은 상처를 갖거나 강한 자로 인해서 정신병에 걸리기도 한다. 차가운 눈빛과 싸늘한 말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영혼에 파고드는 창세기 3장, 세상 풍습을 좇게 하는 공중권세 잡은 마귀의 세력에 눈을 뜨고 싸우길 바란다.
바리새인들이 이 눈이 없어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오래 해도 자꾸 착각을 일으켰다. 신앙생활에 영적인 눈을 뜨지 않으면 육신적으로 율법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이 극히 주관적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자꾸 자기기준, 자기생각으로 정죄하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오늘의 상황은 알지 못한 채 지극히 주관적으로, 마귀가 뿌리는 대로 움직인다. 사람이 시달린다. 주관적 판단으로 사람을 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니까 죽이는 것 아닌가? 우리 영혼에 그렇게 이상한 것이 뿌리를 내린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전도하길 바란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자꾸 거역해서 엄청난 저주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제대로 헤아리길 바란다.
→하나님은 개인에 대한 시간표를 가지고 계시기에 말씀을 영혼에 담아야 그 시간표 속으로 들어 간다
행복은 불행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온다. 그러니 속지마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마라.
아브라함이 아무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의 시간표가 임했다. 나이는 들었는데 자식도 없는 불행해 보이는 가장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불행하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힘을 잃지 마라. 그리고 그런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헤아리길 바란다. 하나님은 힘 없는 아브라함을 향해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복의 근원으로 불렀다. 자손이 없는 아브라함을 향해 ”네 씨로 인해 창대케 하고 네 이름을 높이고 만민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믿음이기에 믿음을 회복하길 바란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대로 유대인들은 세계를 재패했다. 오늘날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우리도 믿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창세기 37장, 세계복음화의 꿈을 가진 요셉은 해와 달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요셉이 처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찾아왔었다. 창45:1~5에서 요셉은 왜 자신이 애굽의 노예가 되고 사람으로부터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고 형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는지 하나님의 숨은 계획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개인에 대한 시간표를 가지고 계신다. 지난날 모든 과거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한 축복의 발판이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인가? 부활하신 하나님이 감람산에서 엄청난 메시지를 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볼찌어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으리라. 오직 성령이 임하게 될 것이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다. 만민에게 가라, 내가 보좌에서 너를 통해 역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은 제자들에게 나타난 상황은 어떠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이라고 하자 로마 정치와 권력에서 난리가 났었다. 로마의 속국이면서 로마의 황제를 찬양하지 않고 예수를 만왕의 왕이라며 믿었기에 법적으로 사형시키라고 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같은 동족인 유대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 진실하게 제도, 전통, 율법으로 믿는 유대인들이 무식한 갈릴리 출신들과 절름발이가 일어나고 창기와 세리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모든 재산을 빼앗고 환란과 핍박, 돌로 처 죽는 상황에 있는 제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재림주로 오실 날까지 이루실 언약을 주셨다.
엄청난 고통과 환란 속에서도 죽음직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열렸다. 하늘과 땅의 권세라는 그 그리스도 이름을 다시 불러보자.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환경 앞에 덜덜 떨고 그리스도 능력으로 웃지 못하게 하는 불신앙은 산산이 무너질찌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감람산에 나타나 언약을 주셨음에도 그 언약을 영혼에 담지 못하고 언약의 말씀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로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능력되신 말씀으로 선포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만 되어진다고 하는데 시작해보자고 하여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로마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력한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뜨길 바란다.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계획을 본 자들을 기록한 것이 이 성경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믿음의 선조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세계를 정복하고, 작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정복하게 된 것을 성경에 기록했다. 세상이 감당치 못 할 만큼의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스도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눈이 없었던 유대인들, 오늘날 현대 교회들은 복음을 거역한다. 예수 믿으면 되지 왜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느냐,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건드리느냐고 한다. 그들은 껍데기만 가지고 몸부림치고 있다. 엉터리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 왜 예수가 그리스도 되어야 하는가? 인간의 원죄 근본 뿌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영접했어도 근본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 그래서 성령의 법과 육신의 법 두 가지가 우리 안에서 싸운다. 두 법이 싸울 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마귀의 일을 밟아야 한다. 도둑질을 하고 싶을 때 그리스도로 확 밟아버려라.
그런데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고 예수만 믿으면 도둑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올 때 도둑질을 해야 한다. 원뿌리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꾸 노래를 불러야 붙었던 더러운 귀신이 떨어져 나가고 앉은뱅이가 일어난다. 끊임없이 율법주의에 눌려 살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린다.
원죄의 가지가 거룩한 나무에 붙어있으면 되겠는가? 절대로 거룩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를 접붙이면 되겠는가? 거룩한 나무에 접붙여야 하는데 근본 마귀의 나무에 예수를 대는 것과 같다. 오늘 완전 자기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살려서 접붙이길 바란다.
오늘 본문 17~18절, 이미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다 증거하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모세 때부터 말씀하신 것 아니냐, 구원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사람을 자꾸 무시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알고 인생을 살지 않으면 바리새인, 유대인들처럼 경건하게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하기에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율법에 묶이기 때문에 영혼에 질투심으로 인해 미친다. 예수님이 오셔서 세리나 창기들과 먹고 마시고 대화하시는 것을 유대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보고 돌아버렸다. 어찌 하나님, 거룩한 분이 오셔서 메시아가 저런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저런 사람들과 잘 수 있느냐고 화를 냈다. 남편 다섯이나 두었던 창녀를 만나고 그가 떠주는 물을 마시기도 하셨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울화통이 터져서 미쳐있었다고 했다. 모세도, 이사야도 그렇게 말을 했다.
여자의 후손되신 그리스도를 영혼에 담지 않고 스스로를 전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만왕의 왕으로 영접하여 그 은혜 속에 거하지 않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용서함과 넉넉함을 닮지 않고 인생의 근본 생각을 바꾸지 않고 마귀 생각 그대로 예수님을 믿는 척 했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에 열 받게 하고 울화가 치밀게 하는 세력을 그리스도로 밟아라.
본문 마지막에 이사야가 담대히 고백했다. “날이면 날마다 하나님이 두 팔을 벌려서 이스라엘을 불렀고 내게 돌아오라고 그렇게 외치고 선포했거든, 냉대와 차가운 시선을 가지고 예수님을 맞이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렇게 고백해놓고도, 차가운 눈빛으로 냉냉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한다.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 있으련만 그리스도 그 말씀을 들어야 귀가 풀어지는데 그 말씀을 들어야 마음이 열리고 붙었던 영적 세력이 사라지고 묶였던 것이 풀어지는데 그리스도를 외치고 전하고 선포하는 자가 없었음이라.
복음을 자꾸 거역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불신자에게 조롱을 당하고, 교회를 다니지만 점점 무너지는 것이다.
*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로 우리 생각이 바뀌길 바란다. 우리의 육신적 행동이 복음을 막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외적인 환경, 여론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 예수를 확신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리스도 이름을 자꾸 부르고 그 이름을 듣게 되면 닫혔던 귀가 풀린다.
*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말씀으로만 되기에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고 있는 더러운 영을 결박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일어나자
복음의 유익을 따라 움직이길 바란다. 즉 마귀가 웃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응답이 오는데 왜 안 되는가? 오늘 본문에 오직 그리스도 말씀으로만 되어지는데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단 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되어있다. 사망권세 잡은 사탄의 권세가 무너지고 살아서 부활하시고 성령으로 항상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로 일어나는 최고의 날이 되길 바란다.
복음을 거역한 바리새인들과 유대인처럼 살고 망하지 말고, 오늘 풀어내라. 우리에게 귀를 열지 못하게 하는 자,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자, 그 이름을 가지고 결단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게 생각으로 찾아오기에 밀어내고 하나님의 참된 제자의 뜻을 이루길 바란다
14절,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모세로 부터 이사야로부터 메시지도 이미 주셨고 친히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런데도 귀를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영혼에 담지 못하도록 귀를 막고 있는 저주야 떠나가고 귀는 열릴 찌어다라고 명령해라.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영혼 속에 담고 들을 수 있는 영적인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자신에게 적용하는 날이 시작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절대적 시간표가 있음을 깨닫고 불행하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힘을 잃지 않고 그리스도로 내 자신을 전도하여 영력, 지력, 체력, 경제력과 만남의 축복 속에서 복음의 유익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 마귀가 웃지 못하게 하는 한 주간이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