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4 예수사랑교회 1부예배 말씀
복음을 만나기 전,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갈등했다. 그 이유는 스무 살이 지나자 세상을 보니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보면 잘 난 게 없어 열등감에 시달렸고, 세상 사람들을 봐도 특별할 게 없어보였다. 신앙생활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렸고 이대로 산다면 제 인생의 미래가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살다가 취직하고 돈 벌고 결혼해서 살다가 죽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살다가 죽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질병과 재앙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저는 제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운명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힘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 인생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별 것 없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인생 특별할 게 없다. 저는 질문했다. ‘신앙생활을 왜 해야 하는가?’ ‘어차피 뻔하고 평범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왜 내가 신앙생활 해야 하는가?’ 어느 새 신앙생활이 저에게 있어 손해라고 느껴졌고, 점점 신앙생활을 계속하기가 힘들어졌다.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면 사람의 생각 이상의 축복이 시작된다. 교회 나와도 뻔한 인생을 살 거라면 교회 나올 필요 없이 세상 방법대로 열심히 살면 된다. 한 번의 예배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가 그리스도인 복음의 비밀을 알고 예배를 드릴 때, 인생을 변화 시킬 수 있을 만큼 큰 응답이 예비 된 시간이다. 사람은 세상 방법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해진다.딤전4:5 한 번의 예배 시간에 말씀이 가슴에 부딪혀 올 때 갱신이 일어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 예배의 맛을 못 본 사람들의 변화는 이중인격의 산물이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작정한 날이다. 한 번의 예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소망이 없는 불신앙’을 밟아라. 왜 예배 때 말씀을 못 받고 기쁨과 소망이 생기지 않는가? 이미 마음에 세상 풍습에 의해 길들여진 다른 것 -이미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 신앙생활은 삶이 변화 된 증거가 있어야 계속 할 수 있다
→ 복음과 삶이 일치되어야 삶이 변한다
이 시대 필요한 제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예수사랑교회 제자들은 왜 이 시대 필요한가? 강단에서 가장 원색적인 성경적 복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메시지 핵심이 무엇인가?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고 영적싸움을 통해 인생이 변화된다는 내용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는데도 신앙이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분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알고 훈련을 계속 받았는데 어느 날 이상한 사이비 단체에 가서 앉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분의 대답은 ‘삶이 변하지 않기에 갈급한 나머지 변화 시킬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알면서도 앉아 있다’였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얼마나 많이 외치고 선포하고 듣는가? 그런데 그리스도로 인해 영혼과 삶을 변화되는 것을 맛보지 못하면 그리스도가 진리인 사실이 헷갈린다.
예수사랑교회 강단에서 성경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데 방황하는 이유는 개인의 삶에 그리스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복음을 듣고 따라가야겠다고 결단한 이유는 그리스도 복음이 제 삶과 일치 되겠다는 확신이 왔기 때문이다. 복음을 만나기 전, 제가 들은 복음은 죽어서 천국 가는 정도로만 이해되었기에 삶에 복음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제 인생을 죽이고 빼앗고 멸망시키는 마귀가 있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만났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복음으로 인생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변하는 맛을 보지 못하면 교회를 다녀도 방황한다. 삶과 그리스도가 일치되면 될수록 그리스도에 답을 내린다.
→ 그리스도에 우선순위를 둘 때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스도로 답 내는 게 무엇인가? 저는 ‘예수가 그리스도’로 답이 났다는 생각에 신학하고 목사까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아직 그리스도로 답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갖춰야 할 게 많다. 한 시대 목사로서 살아가려면 준비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리스도로 당당하지 않았다. 저를 보면 부족한 게 너무 많고 준비할 것도 많다. 그런데도 아직 도전할 수 없어, 아직 할 수 없어 하면서 주저앉아 시간만 보낸다. 그것이 그리스도로 답을 내지 않은 증거다. 누구나 세상에서 살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먼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 그리스도로 열어야 인생은 바르게 시작되고 모든 응답이 따라온다. 복음과 종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채워보려고 몸부림치는 게 종교다. 하다가 안 되기에 방황하고 좌절하고 낙심한다. 자존심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선 이것만은 수습하고 하나님을 믿고 훈련을 받겠다고 말들을 한다. 그러면 점점 세상에 끌려간다.
그리스도로 답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가 그리스도로 답을 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다. 그리스도로 답을 내는 게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우선을 두어야만 그리스도에 답을 낸 것이다. 모든 염려, 근심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 능력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가면 모든 응답은 시작 된다.
→ 그리스도 제자로서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표를 가져라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가? 이 시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필요한 제자의 길을 가는 모델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오히려 더 방황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세상 사람들은 목표를 정하면 악착같이 도전한다. 어차피 달리 길이 없기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지금 암 걸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달려간다. 오직 유일성이다. 그들은 왜 갈등하지 않고 가는가? 어차피 운명을 바꿀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 최고의 제자의 모델로 부르신 예수사랑교회 제자들이 방황한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과 복음의 두 갈래 길에서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제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따라왔는데 진정 올바른 제자의 삶을 살지 않고, 올바른 성도로서 이 시대 제자로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잘 몰라, 나름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인정받으려고 열심히 하나님의 길을 좇으려고 몸부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 수준은 하나님 수준은커녕 세상의 수준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연약했다. 삶의 증거가 안 나타나니 방황하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할지 몰라 과거에 길들여진 무기력, 무능의 체질이 찾아오고 갈팡질팡 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산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제자라면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표가 있어야 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이 이 시대 제자들에게 원하는 것, 바울이 최고의 제자 디모데에게 그것을 부탁한다. “네가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강한 군사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고 부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충성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목표를 가진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여기에 목표를 두지 않아 방황한다. 목사, 산업인,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이유는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장에 산다. 그럼 잠시 살다 가는 인생 속에서 의미 있는 게 무엇인가? 바로 개인이 구원 받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제자’가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이 시대에 필요한 제자의 모델
→ 현장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라
올바른 제자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은혜 속에 강한 군사로 살아가려면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야 한다. 군사는 삶에 얽매이지 않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한다. 한마디로 현장에 끌려가지 않고 군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킨다.
현장에서 제자의 삶이 시작된다. 오늘날 ‘세월호’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 현장에서 일하는 자가 없고 탁상공론만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현장에서 제자의 길이 시작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세상에 끌려가고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 복음을 따라가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몰라 방황한다면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가지고 부딪쳐야 한다. 뭔가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세상 방법이고 틀린 방법이다. 제가 알게 된 사실은 제가 실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작은 현장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는 것임을 알았다. 있는 현장에 그리스도를 던져봐야 사람을 알고 현장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 속는다. 세상 사람들은 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에서 낳기에 가면을 쓰고 인생을 살고 있다. 가정에 그리스도를 선포해봐라. 가정이 뒤집어진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으면 완전히 가지고 논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면 듣기 싫다며 일찍 집에서 나간다. 그런데 그리스도 말하지 않으면 생을 걸고 서로 싸우고 있다. 그리스도 전하려고 마음만 먹어도 집안 움직임이 다르다. 우리 교회 어떤 제자가 사랑하는 선생님에게 축복덩어리 야곱을 주었다. 부모자식처럼 지내는 사제 사이인데 다음날부터 원수가 되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목사님 말씀 시디를 주면 그 다음날부터 아는 척을 안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깊이 들어가면 다 숨어 버린다. 그리스도를 던져봐야 정체를 알고 현장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리스도로 답 난 것 같고 내가 모든 문제 끝난 것 같은데 무속인집 들어가려고만 해도 다르지 않는가?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데 삶에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싸우는 군사가 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눌린다. 제가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해 보니 이 세상 흑암 권세에 눌려 있어서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분명한 언약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창3:15 사단의 머리를 밟은 그리스도가 저의 언약이 되어야 흑암이 밟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현장을 덮고 있는 흑암을 실감 할 때 현장에 필요한 것을 알게 된다
현장에 그리스도를 던져봐야 현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지금 중국현장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 보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복음을 주고 무엇을 해주면 사람들이 재벌이 되고, 인생의 축복을 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그 현장에 어떤 영적 문제, 정신 문제가 찾아오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먼저 겪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느끼고 깨달았다. 모든 현장은 흑암 권세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 시간표대로 영적문제가 찾아온다. 현장에 활동하는 흑암권세를 알면 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지혜가 임한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는 누구인가? 미래를 예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예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 곧 이스라엘 멸망 받기에 복음을 회복해야 산다.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져야 재앙을 모면한다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현장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지자들은 현장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영적 문제에 무너질지 몰라 방황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현장에 선포하면 모든 산업과 모든 것이 열릴 것이다.
그런 현장에 대한 시급함이 와야 체질이 변한다. 누구든지 복음을 만나면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 저의 소원은 세계복음화 이전에 한번이라도 목사님 가슴을 시원케 하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목표는 세계복음화이다. 세계복음화를 하기 위해 제가 가졌던 개인적 꿈은 목사님보다 더 훌륭한 목사가 되는 거였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가능성이 희박하고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복음이나 변질 안 시키고 따라가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처음에 복음을 들으면 스스로가 세계복음화를 할 시대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적 복음, 시대적 전도자를 만나 역사에 기념비적인 축복이 시작되었다는 마음에 감격한다. 그런데 왜 점점 이런 꿈이 퇴색하고 먹고사는 수준으로 전락하는가? 체질 때문이다.
현장에 사람들이 흑암에 덮여있다는 것이 실감될 때 그리스도가 부딪혀 온다. 내 힘이 아닌 흑암권세를 느끼고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진행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음에 자리 잡은 패배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시작하라. 현장에 우리를 누르고 있는 흑암 때문에 시달리지 체질 때문이 아니다.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흑암권세에 눌려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흑암권세에게 눌려있기 때문이다. 흑암 권세가 있다는 게 삶에서 느껴질 때 그리스도가 영혼에서, 삶에서 시작된다.
→ 그리스도안에 담긴 삼중직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고 그리스도로만 경기해라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군사로 살 것을 권면했다. 군사는 세상 방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대로 경기한다.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는 제자의 특징이 뭔가? 복음 안에서 시작하려하지 않고 세상을 따라가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방법으로 인맥, 세상 실력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어떤 목사님들은 주보에 약력을 공개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 보고 교회 오라고. 다 세상 방법대로 간다. 분명한 제자의 기준은 뭔가? 현장에서 그리스도로 부딪히는 제자라면 하나님의 법대로 경기해야 면류관을 얻는다. 모든 능력과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런 농부가 되어야 열매를 당연히 맺는다.
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가? 빌립보서 3장,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최고의 지식임을 고백했다. 그리스도가 최고의 지식으로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 안 되는 사람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우는 현장이 없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 인본주의를 사용한다. 현장은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이 필요하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데 왜 싸우는 현장이 없는가? 분명한 내용을 가지고 싸워야 삶에 적용이 된다. 어떤 분은 십몇 년 동안 그리스도 이름으로 대적하는 기도를 했는데 왜 망하느냐고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개인의 인생을 막는 흑암을 밀어내야 한다. 목사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구호로 외쳐선 안 된다. 구호로 외치는 사람은 삶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분께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설명을 못했다. 여기서 문제가 온다. 그 사람이 온갖 응답을 받아도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 분은 마귀를 대적하는 기도를 했음에도 망했다고 했다. 사도행전 19장, 거짓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했지만 귀신이 그들을 향해, 사도바울도 알고 예수도 아는데 넌 누구냐고 말하면서 다 벗겨버린다.
한번은 비행기 안에서 ‘세월호 사건’ 이야기를 하며 그리스도를 전했다. 운명에서 빠져나와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말하자, 상대방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인생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명은 개척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다. 죄의 저주가 사망이고 사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묶인 운명이다. 그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신 분이 참 제사장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죄의 저주로 받아야할 운명을 해결하셨다. 성도가 세상에서 구별되었다는 확신이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참 제사장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면 정상의 자리에서 사단과 싸운다. 모든 것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능력 앞에서 마귀와 대결한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부르짖지 않고 마귀 저주에 망할 수 없는 하나님 자녀인 확신을 가지고 생각과 마음에 찾아온 두려움과 낙심에 속지 않는다. 찾아온 생각을 이길 수 있는 신분권세를 회복된다. “만왕의 왕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영혼을 나약하게 만드는 저주는 떠나갈 찌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았다는 정상의 자리에서 사단을 밟아야 한다.
그래야 담대히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간다. 어떤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모든 문제는 끝났다. 문제 앞에 모든 문제 끝이라고 선포하면 기도가 시작된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뛰어 넘을 수 있고 현장 정복하는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기도한다. 참 왕, 참 선지자,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의 내용을 가지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구호처럼 외치면 마귀의 타깃이 된다. 그리스도의 내용을 삶에 적용해야 그리스도를 찾을 수밖에 없는 신앙고백의 사람이 된다.
* 예배의 성공자, 현장에서 싸우는 기도의 사람만이 이 시대 필요한 제자의 모델이 된다
방황하는 제자가 있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 자신점검을 해라. ‘나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가? 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 “권세 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말씀을 막는 어둠의 영아 내 영혼에서 떠나갈찌어다!” 말씀 듣는 시간에도 마귀와 싸우고, 그리스도로 부딪히는 현장이 있다면 새롭게 시작된다. 가정, 학교, 산업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싸우고 선포하는가? 저는 자신과 현장에 그리스도를 던지지 않으면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가 삶에 들어가야 진정한 변화,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서야만 열매 맺는 농부로 인생을 마감한다. 삼중직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현장에서 싸울 때 축복이 시작된다.
혹시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방황하는 분이 있다면 예배와 기도에 도전하길 바란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시대의 진정한 모델은 세상에는 없고 오직 성경에 있다. 세상의 모델을 따라가면 반드시 방황한다. 진짜 응답의 모델은 누구인가? 우리 목사님과 응답 받는 제자들이다. 무엇으로 되는가? 예배의 성공자, 기도의 사람만이 된다.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리스도로만 된 증거를 가진 사람만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 세상의 성공은 하나님 앞에 의미 없다. 그리스도의 권세로 된 증인이야말로 이 시대 필요한 전도제자다.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로 도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전도제자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적용하여 삶이 변화될 수 있도록 성령 충만 주시고, 그리스도와 싸우는 현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언약을 붙잡고 오늘부터 그리스도로 도전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이 시작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