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는 종교와 정치의 음모
마27:57~66
2014.11.23 주일 2부 말씀
오늘,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를 통하여 만족하고 있는지 내 자신을 점검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반드시 예배를 통하여 풀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여러 가지 생각들로 묶여있다면 큰일 나는 것이다.
* 영안을 열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려지는 예배로 만족해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 눈에 보이도록 우리 앞에 보여주신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질고를 친히 담당하시고 갈보리 산에서 피 흘리시며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그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담당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그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도록 영원토록 항상 함께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겠다고 하신 그 하나님은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성령’으로 약속하셨다. 이런 증거를 가지고 이 자리에 와 있다면 예배를 통하여 만족하고 모든 인생 문제의 답을 얻고 돌아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영안이 어두워서 볼 것을 못 보기 때문에 그냥 답답하고 쪼그라든 심령상태로 눌려서 갇히게 된다.
→ 한 번의 예배를 통해서 영·혼·육을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하나 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아라
영적인 눈을 뜨고 다시 한 번 예배로 만족하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예배에 집중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예배를 통해 정신을 집중할 수 없으면 절대로 문제 해결은 안 된다. 마가다락방에서 그리스도에 집중했더니 별 볼일 없었고, 먹을 것조차 없었던 갈릴리 출신들이 세계를 정복했다. 이 한 번의 예배를 통해서 영과 혼과 육을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으면 그 말씀은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현장에서 성취될 뿐 아니라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말씀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 말씀을 가슴에 담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새롭게 용기를 갖고 도전하길 바란다. 흑암경제로 달려가는 이 시대에, ‘영적인 힘’을 얻으라고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무덤에 누우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무덤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음부까지 내려가서 사망권세를 깨뜨려버린 것이다. 이 엄청난 능력의 축복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와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롭게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예배’다.
→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로 만족감이 없다면 ‘창세기3장 저주’에 잡힌다
예배를 통한 만족감이 없다면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해봐라. ‘창3장 저주’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자꾸만 영안이 어두워지게 만든다. 그래서 성질이 더러워진다. 성질이 더러워지면 치매나 중풍, 자살로 가는 것이다. 지금 전쟁, 테러보다 더 많이 죽는 것이 자살이다. 창3장 저주에 잡혔기 때문에 성질이 더러워지면 자신도 모르게 ‘확, 죽어버릴 거야’하고 자살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장로님들이나 중직자들, 나이드신 분들이 성질이 더러워지면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이라고 결론내리고 만족하길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도 친히 무덤에 누워계시는데 여러분이 그렇게 움직여보려고 몸부림치면 되겠는가? 그냥 편안하게 관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누우시면 더러운 성질이 죽는다. 그리고 나이 먹으면서 머리가 나빠지는 것도 ‘창3장 저주’다. 나이가 먹을수록 하나님의 지혜가 와야 한다. ‘영원한 미래를 놓고 내가 무엇을 준비하면서 가야 될 것인지’나와야 하는데, 머리가 나쁘니까 오늘도 모르고 내일도 모르는 것이 ‘창3장 저주’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일 뿐 아니라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춰져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창3장의 저주가 끊어지고 그리스도로 만족하길 바란다. 아무나 알면 비밀이 아닌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비밀이 우리에게 열려있다.
‘창3장 저주’에 걸려있으면 나이가 먹을수록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먹어갈 수록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믿어져야 한다. 또한 나이가 먹어갈수록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창11장의 저주’에 걸려든 것이다.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다가 비참하게 다 털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내 영혼 속에서 틀림없이 무엇인가 방해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완전 무너뜨려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서 성령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지금 내 안에 거하신다. 그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 성령 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누릴 뿐 아니라 믿음이 생겨서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선포하게 된다. 예배를 통하여 인생이 풀어져야지 예배를 통하지 않고 무엇인가 풀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창1장,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안식일에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다. 소와 돼지는 절대 ‘예배 드려주세요’라고 칭얼거리지 않는다. 사람만 예배드릴 수 있다. 사람만 예배드릴 때 풀어진다.
* 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며 그리스도를 약화시키는 종교와 정치의 음모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말은, 예배당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다면 네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성령을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일어나야 만족감이 온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당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니까 예배를 드려도 만족감이 없다. 성질만 더 더러워진다. 머리가 더 나빠지고. 그래서 자꾸만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까 생사람 죽이는 사냥꾼들로 전락된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지도자의 더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길들여져서 그런 곳에 앉아있다.
우리 안에 성전 삼으시고 보혜사 성령으로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너희 속에 창3장 저주로 형성되었던 옛 사람을 사로잡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세상 신, 강한 자를 결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약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빼앗고 죽이는 사탄의 세력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것이 비밀인데 생사람 때려죽이는 사냥꾼들 때문에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늘 예수 죽였으면 되었지 생사람까지 때려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종교지도자를 봐야한다.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을 뿐 아니라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 죽음의 무덤이 터지고 땅이 진동한다는 그 메시지를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해방시키고 그리스도 하나로 만족하는 자를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유가 없는 삶. 오직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삶. 그래서 맘껏 그 이름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 성경에 예언대고 기록된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도 성취되었 던 그 말씀이 우리에게도 성취되었음을 믿고 기다려라
부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이미 사53:9,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700년 전에 예언되고 기록된 사람이었다. 700년 후에 예수님 앞에 나타나 예수님의 제자가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새 무덤을 내어주는 그 일이 그대로 기록되었다. 렘1:5, 우리를 모태에서 조성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열방의 선지자로 만드셨다고 하셨다. 엡1:3-5, 나를 창세 전에 예정하고 택하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통일시키려 하심이라는 그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도 성취되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도 그대로 성취되었던 그 말씀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이미 2천년전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은 자 가운데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그 말씀이 현장 속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기록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기록된 것이다. 믿어진다면 그분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다려라. 믿어지면 움직이고 안 믿어지면 가만히 있어라. 그것을 ‘예배’라고 한다. 말씀을 버리고 마귀에게 길들여진 육신의 생각으로 가면 너는 여지없이 정녕 죽는다고 했다.창2:17, 예배 때, 말씀을 받고 네가 이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게 된다면 너는 하늘과 땅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을 내 영혼 속에서 없다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의심’이 오늘 그리스도로 산산이 무너져서 종교와 정치, 사회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를 붙잡는 날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예수님의 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빌라도 총독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나에게 달라, 내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대단한 권력을 갖고 교만한 빌라도 총독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자가 찾아들어가니까 그냥 내놓는다.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지 다른 것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족한다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생활로 음모를 꾸미면서 거짓말로 여기에 와 앉아있으면 더 이상해진다. ‘내가 죽어야 할 운명적 저주를 우리 예수님이 내 대신 담당했으니, 내가 묻혀야 할 내 무덤 속에 우리 예수님을 나는 모실 것’이라는 가슴이 말씀으로 담겨있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내가 죽어야 될 사망의 문제를 우리 예수님이 내 대신 담당하시려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에 누우셨다는 것을 믿으면 겁날 것 없다.
말씀을 따라가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나는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그의 가슴에 박혔고, 이 말씀을 믿는 자였기 때문에 그는 울지 않았고 육신적 반응으로 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준비한 자신의 새 돌무덤을 내어드렸다. 자신의 것을 내놔야 한다. 바자회해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놔야 한다. 무엇이 나를 장악하고 있는지 이것이 무너지면 머리가 좋아지고 성질이 아름다워지고 믿음이 생긴다.
오늘 본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신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무엇이든지 양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왜? 나는 예배로 만족하는 사람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성전 삼아주셨고,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권세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영원토록 그분이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진리의 성령으로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이것을 알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 영안이 어두워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만을 생각하고 허 공속에 헤매게 된다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어두워지고 캄캄한 것이고, 캄캄함의 결과는 잔머리를 쓰는 것이다. 주도권을 잡고 자기가 해야 한다는 주인의식으로 장악되어져 있다. 바리새인, 종교지도자, 성공한 자들일수록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흑암에 잡혀 허공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래서 무엇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영적 감각이 떨어지므로 육신적으로 굉장히 민감해지면서 처절하게 망하게 된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살인자, 비진리 속에 예수만 믿으면서 귀신들려 예수를 흉내내는 스타일로 가게 된다. 영안이 어두워지면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힘을 덧입고 흑암으로 내 영혼을 덮으려고 하는 혼돈과 공허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지길 바란다. 이것이 무너지지 않으면 큰일 난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 받아야 될 구원의 비밀을 놓치게 된다. 구원의 비밀 없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 여러분도 모르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어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채 처절하게 짓밟혀서 허욱적대며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도 못가고 육체를 사탄에게 내어주는 평생 후회할 일들이 생긴다.
영안이 어두워지고 영적으로 흑암에 덮여있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율법적 사고를 가지고 양심에 찔림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죄의식에 빠지고, 점점 자신이 미쳐 가버린다. 인생의 해답도 없이 율법에 눌린다. 예배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버지, 주여 미치겠습니다”하고 1만원 내놓고 해결된 것처럼 한다. 힘없이 쓰러져 가는 과부의 두렙돈도 기억하신다고 해서 겨우 1만원 내놨는데, 밖에 나가보니 내 차를 또 견인해가고, ‘교회가 이게 뭐야, 주차장 하나도 없고...’ 하지만 그리스도로 누리기 시작한다면 주차장이 너무 많이 보인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주차장 문제는 필요 없다. 땅 끝까지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쪽으로 들어간다. 예배로 만족하면 다 끝난다. 견인해가면 ‘아, 하나님의 은혜구나,..’이런 은혜가 넘치길 바란다. 우리 영혼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신다면 두려움은 사라져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뿐 아니라 후사로 부르셨으며 세계복음화 하도록 하나님이 나를 동역자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의 축복을 가지고 가난과 무감각을 무너뜨릴 수 있는 증거를 주셨는데 그것을 갖지 않으므로 비참하게 시달린다.
→ 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기 위해 육신적으로 민감한 바리새인 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음모
62-65절,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거짓말을 봐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혹’이라고 표현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이 유혹인가? 지금 이 말을 하면 이단으로 사람들을 찍어버린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약화시켜서 모든 성도들을 정신문제로 시달리게 만들며 흑암세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주저앉게 만드는 현실을 봐야 한다. 그래서 종교로 빠진 자들은 볼 수 없지만 구원을 얻고 복음의 비밀을 가진 자들은 ‘마귀의 일’을 보게 되므로 우리만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 영안을 열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세상을 유혹시키는 자로 정리했다. 이렇게 구원받지 못하면 ‘종교’는 무서운 것이다. ‘창3장의 저주’는 끊임없이 사람 속에 따라다니면서 엉뚱한 것을 만든다. 예수님이 누우신 무덤에 군대가 지키게 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에다 인생 전체를 투입하게 만들고 낭비하게 만든다. 그리스도가 누우셨는데 지킬 것이 뭐가 있는가? 삼일만 기다려보면 되는데 이것을 못하니 엉뚱한 곳에다 예산까지 낭비한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육신적 반응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육신적인 문제가 온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창3장인지 점검해야 한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갈 것이라고 만들어내는 것 좀 봐라. ‘진짜 그분이 살아계시고 부활하신다면 메시아 하나님으로 모셔야 될 것 아니냐’ 해야 하는데 시체를 훔쳐간다고 한다. 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나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믿으면 되는데 이것을 믿지 않는다. 생사람 잡는 사냥꾼은 이렇게 믿지 않는다. ‘시체가 없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우리가 단단히 지켜야 한다’며 무덤에 가서 돌에다가 철저하게 인봉까지 한다. 그리고 경기병을 세워서 24시간 불꽃같은 눈동자로 단단히 지켰다고 했다. 이렇게 육신적으로 문제가 찾아와버렸다. 이 육신적 두려움은 영적인 문제로 연결된 것이다. 우는 사자가 드디어 바리새인, 종교지도자들을 삼켜버렸다고 했다.벧전5:8 육신적으로 민감해지면 여지없이 사탄에게 잡힌다. 요일4:18,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형벌, 곧 머리가 나빠지고 성질이 더럽고 믿음이 생기지 않고 시달리는 것이다. 욥3:25-26,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했고, 내게 무서운 그것이 내 몸에 완전 처절하게 미쳤구나. 그래서 나는 평강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 저주가 임하였구나...’ 이 육신적으로 민감했던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 때문에 유대인의 저주는 1900년 동안 진행되었다. 23개 나라에서 2천년동안 짓밟히고, 세계2차 대전에는 600만 명이 가스실에서 죽어야했던 그 비참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생사람을 죽이는 사냥꾼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들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자신의 기득권만 챙기면 된다. 죽던지 구원받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교회가 이렇게 무너져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살리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무덤에 누우셔서,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무덤에 누우신 예수그리스도는, 부활을 방해하는 유대인들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고 오셨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사망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려고 우리 예수님은 무덤에 누우셨다. 그냥 누우신 것이 아니라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려고, 또한 입을 벌리며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지옥권세를 단번에 죽으심으로 사망에서, 죄에서 우리를 완전 옮겨주셨다. 누우셔도 그분은 일을 하고 계신다. 이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누리시길 바란다.
→ 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는 의심과 욕심쟁이를 무너뜨리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부활로 살려내라
창2;17,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믿고 따라가야 죽지 않는다. 마귀 말을 따라가면 죽는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면 내가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내 인생을 내어준다면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욕심쟁이를 무너뜨려라. “욕심쟁이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가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사탄의 육신적 생각으로 민감하게 움직이면서 내 자신을 뭔가 채우려고 하는 것을 무너뜨릴 때 성령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고전3:16, 그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 분이 지옥권세를 멸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에 그분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내 안에 생명되신 그리스도의 영이 계신다. 자유와 해방을 받아라.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선포해라.
뭔가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은 예배로 만족해야 한다. 영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금 무덤에 누웠다고 계략을 꾸민다. 그분은 누워계시는 게 아니다. 시체는 누워있지만 영은 살아서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나는 가난하다고 무감각, 무능 속에 주저 앉아있지 말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부활로 다시 한 번 살려내라. 그러면 성령은 우리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직장, 산업, 자녀, 아빠, 엄마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고 종교와 정치의 음모에 속지 마라. 수많은 나라마다 정치를 통해서 ‘기쁘다 예수 오셨다’고 하는 데에는 믿는 자는 아무도 없고 쇼맨십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약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기쁘다 예수 오셨다는 이름도 사라지고 산타클로스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귀신들림으로 끌고 간다. 이런 음모 속에 그리스도의 유일성 속에 예배로 만족하길 바란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는 종교와 정치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이 시대,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어지는 예배로, 인생의 만족감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안이 어두워져서 창3장의 문제로 육신적인 두려움 속에 내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가 되어 허공 속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덤에 누우셔서,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방해하는 내 안에 욕심쟁이와 육신적 반응을 무너뜨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에 만족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