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3:1~12
2015.02.01 예수사랑교회 1부예배 말씀
은과 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중요하다. 이미 만물을 복종케 하여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길들여지게 만든 그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걸으라” 이렇게 노래가 되어 나온다면 끝난 것이다.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이런 힘을 가지고 한 주간 승리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창3:15을 보는 눈을 가져라
세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쉽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인물들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창3:15’을 보는 눈이 있었다. 내가 사는 이 세상 속에 ‘창3:15’을 보는 눈을 가지면 된다. 그래서 오늘부터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의 능력을 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신, 사탄의 권세가 무너져야 되고, 흑암 권세가 꺾여야 되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망권세, 지옥권세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앞에 꺾인다면,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누리게 될 것이다. 예수 생명과 예수 능력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영혼 속에 불붙기를 축복한다.
나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적용해야 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녀 된 신분·권세가 내게 있으므로 너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지어다.” 이 힘이 내 삶에 일어나야 한다.
예수사랑교회에 가만히 붙어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 처음에는 목사님이 너무 미울 수도 있고, ‘조직과 시스템, 전략도 있는데 왜 저렇게 목사님이 그리스도만 할까?’ 이럴 수도 있겠으나 먼저 내가 살고 힘을 얻고 맛을 봐야만 시스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 하나에 사람들이 뿌리를 못 내리는데 뭘 하겠는가? 지금 성도가 사천여명 되는 교회에서 김서권 목사가 안 오면 여기 다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되어진다. 빛만 가지고 있으면 불나방들이 다 몰려오게 되어있다. 절대 좀 설치지도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그리스도라는 능력의 권세를 가지고 여유로움과 평안을 누리기를 바란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실패하고 있는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중에 ‘나를 통하여 하나님 이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를 말할 수 있는 증인되라
우리는 ‘왜 인간이 실패하는가’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실패하고 있다. 딤후3:16,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호흡’으로 되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으면,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온다. ‘루하으’ 즉, 하나님의 생기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오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어설프게 던져버린다. 그래서 말씀이 힘으로, 호흡이 될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걸으라” 말씀이 무장되어야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냥 입술로만 “그리스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너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실제로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능력을 나 자신이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게 아니라, ‘육체’에 부어주셨다. 그래서 오늘 육체 속에 모든 삶 속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생명의 빛이라.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참된 지혜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 되셨음이라. 요1:1, 하나님의 역사를 내가 그 말씀을 통하여 진행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 개인의 스토리는 있지만, 히스토리가 없다. 늘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만 한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히스토리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히스토리가 없으면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 말만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하나님의 호흡이라고 했으니, 내 영혼에 담아야 한다.
→ 그리스도를 알고 말씀을 담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요6:3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한 것이다. 오늘 마음 문을 열고 말씀을 내가 받으면, 생명과 하나님의 능력이 자라나기 시작할 것이다. 말씀의 능력이 생산되어지기를 바란다. 요11:40,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기이한 영광을 너는 보게 될 것이다.
노아가 창3:15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말씀을 떠난 노아 시대 속에,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은 축복해주신 것이다.
말씀을 떠났던 바벨탑 사건, 즉 창3:15을 모르고 말씀을 담지 않으면 그냥 무너지는 것이다. 사탄의 권세가 꺾이지 않으면 말씀이 아무 필요 없다. 다시 말해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흑암 권세를 꺾고, 사탄의 권세와 지옥권세를 오늘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는 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울왕을 선택해서 세우셨는데도 그가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모르니까, 결국 악신이 들리고, 정신 문제로 너무나 많이 시달렸다. 시기나 하고, 질투나 하고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금 나와 함께 늘 따라다니는 놈이 있다. 그래서 무너지게 되어있다. 로마와 앗수르, 이집트 이런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므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적으로 받고 경외하며 살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히11:2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는 바로 치유의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이 직접 의사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분이 오셔서 우리를 치유시키는 방법이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가지고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다. 모든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 하면 되는데 이걸 못하면, 늘 쟁쟁거리고 쫀쫀하고 지저분하다. 전혀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 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떡을 떼며 교제하며 기도에 힘쓰기 시작하면, 내 인생에 히스토리가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히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날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 시간마다 분마다 초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을 향하여 날선 검을 가진 그분이 싸우신다. 진짜 이거 안 하면 얼굴이 맛이 간다. 눈을 뜨면 시커먼 흑암에 덮여 일어난다. 오늘 틀림없이 교회 가지 못하도록 뒷다리 잡는다. ‘아휴, 예수사랑교회 가봐야 그리스도지...’ 하지만 그리스도는 밥 먹는 수준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축복을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가 누려지지 않거들랑 벌떡벌떡 일어나시기를 축복한다.
노아는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는 드디어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너는 신앙고백 해라.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천국 열쇠가 주어졌으니 모든 문을 열어라. 누가 헛소리 잡소리 하거들랑 네 십자가를 지고 너 자신을 부인하면 자존심도 끝난다.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으로 충만해져라
하나님의 선물이 ‘기도’다. 하나님께로부터 선물을 받아야 기도가 되어진다. 일단 모든 불신앙을 자꾸 꺾다보면 하나님의 선물이 온다. ‘초대교회’는 다락방에서 기도로 시작된 것이다. 창3:15이 그대로 성취되면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부활메시지를 붙잡고 마가다락방에 모여 오로지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으로 두려움과 낙심과 절망으로 찾아오는 환경들과 영적인 싸움을 시작했더니, 기도로 시작한 이야기가 그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기도의 습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진짜 우리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육체에 부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의 모습에서 ‘숨은 내면’을 보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진짜 부르셨구나.’ 자기들 영혼 속에 무엇인가 빠져나가는 것들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의 그 숨은 내면은 이런 것이구나.’ 이것이 느껴진다. 이게 안 느껴지면, 교회를 다닐 이유도 없고 예수님이 오실 필요도 없다. 뮤지컬 하는 식으로 “오, 아버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농담하려고 우리 하나님이 오신 것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는 무시무시한 저주가 충만해있다. 이것을 해결해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드디어 기도 속에서 나온 포럼이 서로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제 구시에 기도의 이 습관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하면서 충만해졌다. 이걸 못하고 흉내를 내면 어느 날 이상해진다.
→ ‘운명’에 잡혀 오직 먹고 사는 데 몸부림을 치는 현장을 볼 수 있는 눈을 열고,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선 포하여 생명 살리는 증인되라
제 구시에 기도의 습관을 가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볼 때, 드디어 ‘운명’에 사로잡힌 ‘불신자의 상태’를 보게 된 것이다. 나면서 앉은뱅이는 ‘운명’인데, 이 사람이 평생을 성전 미문에 주저앉아 있는데 뭘 모르겠는가? 늘 오고 가는 걸음 속에 제사장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동전을 던져주면서 “하나님 믿으라, 안에 들어가 앉아있으라”고 말했을 것이다. 오늘 나면서부터 운명으로 잡힌 내 내면의 현장을 보라.
‘운명’은 하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운명에 잡힌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니 계속 주저앉아있는 주제에 기가 막히게 사람을 꼬셔서 평생 아침마다 업어다가 앉혀 주도록 서로 간의 먹고 살기위해 인간관계를 잘 했다. 지금 이런 현장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머리를 쓴다. 오늘 이 사람은 진짜 머리를 잘 썼다. 사람들이 잘 보이는데다 장소를 잘 잡았다. 이게 오늘날 컨설팅이라는 거다.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현장을 사람들은 보게 될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와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을 회복시켜야 되겠다’는 중심을 갖고 성전으로 내려온다. 이게 비밀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인생의 답도 없이 운명에 묶여 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아드리고 실패하고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말씀만 믿고 있구나. 창3:15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고 지금 비참하게 흑암 권세로부터 장악되어 있구나.’ 이걸 보았다. 그래서 그 두려운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난 날 베드로는 성전 뜰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들을 내가 도와줘야겠다, 저들에게 힘을 줘야겠다, 저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줘야겠다’이걸 발견하고 들어가는 순간, 운명에 묶인 앉은뱅이가 보였다. 사람 눈빛만 보면 머리를 숙여야 되고, 모든 게 작아지는 사람이었던 베드로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이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주목하여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생겼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세상을 이유도 없이 강도를 만난 사람”이라고 말씀했다. 누구에게나 어느 날 이유 없이 저주와 재앙이 들이닥친다. 이렇게 강도만난 사람들이 가득한데, 선한 사마리아인 하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강도를 만났는데 레위 제사장들은 그들을 돌봐주지도 않고 위로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간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믿었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그렇다. 말씀은 믿는데,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못 알아본다. 이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행10:38, 사탄에게 묶인 것을 풀어주기 위해 나사렛 예수에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다. 눅13:16, 아브라함의 딸이라 할지라도, 사탄에게 18년 동안이나 묶여있었다. 이 묶여있는 것을 안식일 날 풀어주는 게 당연한 거다. “사탄에게 묶여있는 저주의 질병은 오늘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무능과 질병과 모든 가난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질지어다.” 틀림없이 묶인 것을 풀어야 된다. 엡2:1, 사람들이 육체는 살아있지만 실제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살려내야 한다. “죽은 세포들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살아날지어다.” 시1:1, 불신자들은 바람에 날아다니는 겨와 같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사는 수준이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약4:14, 인생들은 안개와 같다. 먹고 살려고 잔머리 쓰지 말고, 오늘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기를 축복한다.
→ 하나님을 거부하는 영에 사로잡힌 ‘불신자의 운명’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라
메시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불신자들의 모습’을 말씀해주셨다. 너희들이 ‘창3장 저주’로 인하여 주인이 되었다. 원래 인간에게는 주인이 있었다. 창조주 아빠, 나를 창조하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그 하나님이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거절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버렸다. 이게 지금 제일 큰 문제다. 내가 주인이 되면, 성경은 ‘귀신들린 자’라고 말한다. 즉, ‘네피림’, 큰 용사들이 되어져있다. 그래서 내 고집대로 내 수준대로 자꾸 살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잘못 받아들이고 오해하는 영이 있다. 내가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하는데도 이 땅에 ‘바벨탑’을 짓는 영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 예수님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지만 한 번도 밤새 추위에 떠시거나 고통을 받으신 적인 없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냥 가면 다 머무르실 곳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바벨탑을 쌓으려고, 나 자신이 점쟁이가 되어 혼자서 아침, 저녁으로 연구한다. 나도 모르게 ‘우상 문화’에 젖어 들어버린다. 그냥 지금 멋지게 “그리스도” 하면서 살아라. 이 비밀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거짓말쟁이가 된다. 자꾸 하나님을 속인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도, 하나님이 안 믿어진다. 주일, 삼일 밤, 금요철야에 메시지를 그렇게 받아도 메시지가 온데간데 없다. 하나도 안 남고 거부의 영만 있다. 증오의 영, 의심의 영, 답답함의 영, 열 받치는 영, 온갖 더러운 것만 붙어있다.
그래서 엡2:2, 세상 풍속을 좇고, 결국 종노릇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엡2:3, 우리의 마음 상태가 늘 불안하고 염려가 돼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전락해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어느 날 질병이 찾아오는 거다. 분명히 간단한 수술이라 했는데 병원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삶의 균형이 어느 날 무너지고, 행8:4-8 아예 사람 자체들이 더러운 귀신들이 붙어있다. 눅16:19-31, 미래 상태에 답도 없이, 보상도 없이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된다. 사람들이 전부다 지옥행 열차를 기다리고 대기중이다. 지옥행 열차를 타지 마시고, 하나님의 구원 열차를 타시기를 축복한다.
모든 세상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권세를 누려야 한다. 이걸 갖게 되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질병의 저주는 떠나갈지어다. 우리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할지어다.” 이런 굉장한 힘의 능력들이 내 삶에서 일어난다. 이것을 하지 않고 인생을 살면 내 입에서 자꾸만 더러운 말들이 나온다. 마27:25, ‘핏값을 후손들에게 돌린다.’ 이렇게 더러운 인생들을 산다. 철학자나 각종 이데올로기 사상가들을 보면 죽을 때 더럽게 죽는다. 예를 들어, 성철 스님도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있는데도, “내가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내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말했다. 법정스님도 “내가 이 세상 살아가는 날 동안 말빚을 지고 가니 있는 책들 다 태워버려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들은 헛소리 잡소리였다.”고 했다. 심지어 중광스님도 “괜히 왔다가네, 씨발.”이러고 죽었다.
내 속에 있는 놈이 진짜 빠져나가야 참 평안과 기쁨이 온다. ‘내가 너희에게 참 평안을 주노니,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골2:8, 세상 학문, 철학에 속아서 탄식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몸부림치지 말고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되어졌음을 공포해라.
불신자 보는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불신자 보는 눈이 열려야 나 자신을 놓고 기도하게 된다. 제 구시에 기도하니까 지혜의 눈이 열렸다. 약1:5 ‘운명에 묶인 자가 있구나.’이게 보인다. 빌3:7-8, 내가 배운 것, 내가 가진 모든 이데올로기 사상들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내가 그리스도 하나를 얻고 나서, 이제부터 내가 가진 모든 배운 것들, 가진 것들은 배설물이 되는 것이다. 저는 여기 벙커만 오면 올수록 그릇이 커진다. 왜? 세계가 우리의 것이다. 이게 저의 힘이다. 성경에 보면, 열방의 모든 재물이 그리스도를 가진 자에게 돌아오리라. 그래서 “은과 금은 없어도 괜찮다. 나는 부자중의 부자다. 내게 그리스도가 능력으로 머물러계시면 되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 하나면 끝이다.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도 있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해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결단과 믿음
→ 위의 것을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체험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가지고 오셨다. 빌4:13,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움직이는 능력이다. 그래서 그 이름의 능력이 내 삶에 나타나게 하려면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마라. 땅의 것만 생각하고 “그리스도” 해서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굉장히 연약하다. 티비를 보면 티비화된다. 내가 하늘의 것을 자꾸 생각하면, 어느 날 내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권세로 탁 누리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은, 은행의 돈들은 세계복음화 하는데 내게로 올지어다. 그 수많은 돈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을 받을지어다.” 잠시 실수해도 시달리기보다 믿는 게 더 낫다. 이때, 여유로움, 풍부함,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면서 행복해지는 거다. 땅의 것을 생각하면 조급해진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자꾸 위의 것을 생각해야 행복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체험하라. 12절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일을 하신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각 사람에게 능력으로 머물러 계신다. 우리는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 영혼에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운명적 저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먹고 사는 것만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던 우리의 인생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신 그리스도, 창세기 3장15절을 보는 눈을 갖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는 어떤 현장 앞에서도 운명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내 육체에 부어주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생명의 빛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광이 내게 머무르는 증거가 시작되게 하시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결단과 믿음 속에 모든 것이 풀려지는 응답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