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시작된 바울의 위대한 회심
행9:1~9
2015.7.19 주일 1부 말씀
이 본문을 통해 우리 자신이 사울에서 바울이 되는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체험했던 바울과 같이 ‘내 인생의 다메섹 도상’ 을 생각하고 오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행9:2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극악한 사람으로 돌변하고 인생을 살아도 이상하게 살면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며 흥분에 가득 찬 상태가 된다. 우리 영혼에 그리스도가 들어가지 않으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이 된다. 행9:6 그런데 극악한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우리 인생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어느 날 눈이 멀어지고 주저앉고 앞이 캄캄해지면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리스도를 적용하지 않으면 들통 나는 인생, 점점 쪼그라드는 인생이 되지만 행9:9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면 육신적으로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충만해질 만큼 그 이름을 체험하게 된다.
*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심은 시작 된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위대한 회심이 시작되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몸부림쳤던 과거의 신앙은 전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위하여 엉뚱한 짓을 하고 율법이 자기 영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는 살인자로 전락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평생 공부하고 하나님을 섬겼으나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갈1:9.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했던 삶,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서 행한 줄 알았던 율법적인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그의 삶의 목표, 그 모든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이었음을 그는 깨닫게 된다.
이것을 깨닫고 난 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라고 고백하며(고전15:10) 날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그리스도로 시작되었다는 엄청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노예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포로로 끌려가며 전쟁과 기근, 수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했는지 밝히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근본 되시고 절대적 구원자,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잃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쪼그라들고 비참해졌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도바울이 깨달았던 이 복음의 비밀을 기독교가 잃어버렸다.
목사와 신학생, 신학교, 교회는 많지만 성도가 없어 교회당은 텅텅 비어가며 교회당을 이단에게 팔아먹는 이런 시대에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이런 현장에 눈을 뜬 능력의 사람이 되었기에 세계복음화를 꿈꾸며 그 꿈을 소유하는 자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인 나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을 때는 상한 갈대처럼, 꺼져가는 등불같이 삶의 길을 잃고 살았다.
수많은 금식기도와 산기도를 하며 기도원에 전전하면서 수도사처럼 살았다. 그 뿐 아니라 세상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내 육신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열심히 살았던 젊음의 시대도 있었다. 10대는 인생의 진리를 알고 싶어 절간도 가보고 20대는 깊은 방황 속에 있었으며 30대는 하나님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 몸부림을 쳤었다.
그러다가 40대 후반 들어서 이 그리스도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그리스도라는 그 이름을 계속 불렀는데, 오늘까지 하나님은 그리스도 유일성 하나로 그 무엇도 응답 받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응답해 주셨다.
창3:15, 마16:16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가지고 꿈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리스도 그 이름을 통하여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오늘을 주저앉지 말고 반드시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한 갈대와 같이 썩어 문드러지는 처절한 인생에서 어느 날 하나님은 그 이름을 부르는 만큼 반석위에 세워져 가는 인생으로 바꾸셨고 가짜로 살던 인생에서 진짜로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면서 꿈꾸는 인생이 되었다.
내가 교회를 시작했을 때는 사모님과 나, 둘 뿐이었다. 그리스도 이름을 증거 하는 전도 신학원을 세우자며 꿈을 꿨더니 어느 날 제자들이 붙었고 지역에 제자들이 세워지는 전도학교가 지역마다 생겼다. 그러면서 제자를 찾아내는 하나님의 비밀을 정말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바꾸시고 있다는 것이 끊임없이 삶 속에서 체험되어지고 확인되어졌다. 하나님의 환상을 몸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성경의 말씀이 나에 대한 계시라는 것이 믿어졌다. 오늘 나를 바꾸고 복음 안에서 나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며 시작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변화가 분명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깨닫기 전에는 항상 성경은 제쳐두고 환청, 환상만 보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지구상에 환청과 환상을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교주가 됐다. 자칭 성령이라고 하는 신천지 이만희도 마찬가지다. 지금 교회마다 ‘신천지 출입금지’ 라고 붙여놨는데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붙여놓지 않는다. 신천지 사람들이 몇 명 찾아왔지만 힘이 들어 못 앉아있겠다며 맥을 못 추고 나갔다. 예수사랑 모든 성도들은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에 절대 속지 않는다. 박태선의 밑에서 있던 이만희가 지금은 더 세져서 성경도 자기 밑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의 권위를 처절히 짓밟는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 주저 앉아있고 신천지에 빠진 목사들은 3,4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들이 이해가 되는 이유는 내가 40대까지 방황하면서 나 역시 환청과 환상을 보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몸부림 쳤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서운 사단의 전략임을 알았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어도 맹신이고 광신일 뿐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아지경, 해탈로 믿어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보니 모든 사이비 이단 종교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에 목사들이 왜 빠지는지 이유를 찾아내고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 한기총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교회를 향해 오히려 핍박만 하고 있다.
->오늘 이 사울이라는 남자 한 사람도, 그리스도 하나를 깨닫지 못하고 가문대대로 교회당만 다녔더니 극악한 살인자가, 폭력자가 되고 자기 이성을 잃고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자신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종교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오늘 이 그늘에서 빠져나와 복음 안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바울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엡1:3~5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사 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시키신다는 첫 고백이 우리 삶에도 나타나게 된다. 롬16:25~27 바울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모든 답을 내고 유일성으로 자신을 일인칭 했더니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자리에서 나타날 뿐 아니라 사용하는 자신과 모든 성도들에게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적용하면 반드시 꿈이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복음화 할 꿈이 생겼다. 우리는 꿈이 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역사를 바꾸어 가신다. 꿈이 있는 사람이 예수의 포로가 된다. 그래서 청년 예수 하나님이 내 안에서 날마다 꿈을 꾸게 만들고, 꿈이 있게 만들어 주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체험하는 것이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깨달았을 때, 예수의 종이 되고,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쫓아 다녔던 사람이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답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소극적인 사람이 아닌 적극적인 사람을 쓰신다.
거울 앞에 서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누구냐!” 하고 20번만 영혼을 향해서 찔러봐라.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내 안에 성령 계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는 무엇이든지 응답 받는 존재다. 사단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나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모든 말씀을 이루는 천군천사들은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역사할지어다. 너는 세계를 정복할 꿈이 있는 사람이다!”
거울을 보고 이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 받은 사람, 성령 받은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누구냐!” 고 영혼을 향해 적극적으로 던졌을 때 맹~하게 소극적이라면 그리스도로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다메섹이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이름에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불러봐라.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20번도 안 불렀는데 더러운 것이 속에서 올라오고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을 부르는데 혀가 꼬여서 못하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면서 자기 스스로 “부르지마~” 하고 소리쳤다고 했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그 이름을 불렀더니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자마자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 빠져나가면 수치심을 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예수사랑교회 성도가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치매 끼가 온다면 자신의 것을 버리지 않은 것이 들 통 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오기 전에 빨리 불러야한다. 인생은 정말 별 거 아니다. 하나님의 입김만 불어도 사라지는게 인생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데려가지 않는 것은 “변화” 하라는 것이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변화하라는 것이다. ‘내 나이에 부를 것이 뭐 있어? 교회 다니다 말지.’ 하지 말고 아직 쓸모가 있어 부르지 않으신 것이기에 그 이름을 불러 자신을 변화시키고 꿈꾸는 인생으로 시작해야 한다. 미적거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했던 바울은 드디어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를 체험한 바울의 전도 메세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어디서 누구를 만나던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회심의 메시지를 전했다.
행22:4~16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를 박해하고 남자든 여자든 감옥에 쳐 넣었고 죽이기도 했다. 나는 예수를 핍박한 것이 아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을 핍박한 것이었는데 ‘네가 핍박하던 예수라’ 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통해 내가 곧 예수를 핍박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10장,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며 너희를 핍박하는 것은 나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라는 그 말씀이 내게 계시로 성취된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분이 나에게 빛으로 말씀하셨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생명까지도 바친 율법의 완성자라고 생각했기에 무서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분을 향해 찬란한 영광의 빛 앞에서도 나는 당신이 누구 십니까 하고 당당히 소리 질렀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 같으면 숨었을 텐데 바울이 얼마나 힘이 있던지 그 찬란한 빛 앞에서도 당신은 누구 십니까 물을 만큼 하나님을 신뢰했던 바울이었다.
두려움과 죄책감,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인자의 영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들어갈 만큼 기세등등한 바울이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는 말 한마디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다메섹에 들어가면 아나니아를 만나라는 말씀에 반문할 수도 없었다.
아나니아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을 잡아죽이러 갔다가 눈이 멀어져 고통 속에 놓인 바울에게 아나이아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눈은 열릴지어다” 안수 했을 때 바울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나서 자신 앞에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아나니아를 보게 되고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된다.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자들을 잡으러 갔다가 자신이 그 복음 앞에 무릎 꿇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조상 하나님께서 사울이라는 당신을 선택하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기 위하여 그 의로운 분, 그리스도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지금 당신에게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나는 당신에게 전할 뿐입니다.” 이렇게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메시지를 전한 것을 다메섹에 숨어있는 모든 자들 앞에서 듣게 된다. 이 메시지를 듣고 회심과 변화의 역사 속에,
행22장,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천부장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분명한 전도 메시지를 전달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뱀을 밟은 만왕의 왕이 당신 앞에 있으니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이제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하고 불러 내가 아나니아로 부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죄를 자복했듯이 당신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 씻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메섹 도상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이끌어 가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날마다 느끼며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울이 아닌 바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그 그리스도를 느끼고 그분이 살아계심을 날마다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사실이며 증거인 것입니다.”
행26장, 이 메시지를 로마 황제,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말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가 내 영적인 눈을 여사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는 분이었고,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일평생 종노릇하며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처절하고 핍절하게 만들었던 그 사단의 손아귀에서 하나님은 나를 바꿔놓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죄 사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무한한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이 계시를 거역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까지 이 메시지만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적이며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닌 절대적 하나님의 소원을 가지고 여기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종교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그 이름을 너무나 싫어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리스도만 말하는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만 사단의 권세가 깨지며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로만 가난과 질병, 저주에서 해방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로만 옛사람으로 묶여 죄책감과 죄의식, 자포자기 하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상 임금을 이길 수 있다. 일평생 육신적 거짓말만 행하며 불의한 재물로 엄청난 바벨탑은 쌓았지만 날마다 자신을 찾아와 짓누르는 죽음의 그림자, 엄청난 흑암권세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뿐이다.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운명과 사주 팔자를 바꿀 수 없지만 그리스도로만 이것과 맞장 뜰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기독교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원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어떻게 쓰셨는가? 바울의 회심은 하나님의 선교적 경륜에 따라서 이루어진 사건이다.
행1:8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 아래서 시작된 구원 사역과 전도사역, 선교사역, 렘넌트 운동이 바로 행1:8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내 인생에 답을 낼 때 하나님 나라를 놓고 꿈이 있는 자가 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해야 한다. 머무르지 마라. 이것은 절대적이다. 함께 일어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누구를 고용하셨는가? 하나님의 꿈에 누구를 고용하셨는가? 바로 그리스도 그 이름에 답을 내는 사람을 고용하신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구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그 생명과 그 구원이 있을 때 온전한 해방과 참된 자유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회심은 스스로의 회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회개를 시키신 것이지 자신의 의지나 힘이 아니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그리스도가 예수의 생명이다.
하나님은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을 통해서 나 또한 고용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깨달았던 바울은 서신서를 통하여 늘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 “나의 주인은 나를 보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로 되어진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은 흥해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깨달았다면 남편을 주로 칭하시고 남편 또한 아내를 교회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통한 회심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영적싸움을 하면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살인자, 욕심쟁이가 산신이 깨지기 시작하며 우리 안에 청년 예수 하나님이 가족을 위하여 십자가를 담당하신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래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려내는 것이 곧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만남인 것이다. 이 만남이 온전히 시작될 때 날마다 위대한 회심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우리 인생이 두려움 가운데 있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 그리스도 예수를 부르짖고 있는 다메섹 도상에 있는 수많은 예수쟁이들이 있다. 공포에 떨며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 싸움도 하고 찬미도 하며 그 이름을 계속 불렀을 때 극악한 사울이 다가오기도 전에 하나님은 다 꺾어버리셨다.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계속 부르고 있으면 하나님이 꺾으시고 원수를 갚으신다. 주위에 미워하는 사람 앞에 육신적 반응을 보일 필요 없다. 그러면 더 이상하게 문제만 터질 뿐이다. 침묵하고 그 이름만 불러라.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자신을 변화시켜라.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라. 우리 안에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항상 함께 하심을 인정하라.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착각 속에서 자기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이단의 종교에 속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창세전에 나를 예정하셔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새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역사의 증거 되시고 사실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에 답을 내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바꿔 가신다는 분명한 확신 속에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을 위해 나를 부르심을 알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으로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게 하시고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로 분명한 답을 내는 위대한 회심의 역사가 날마다 있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