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굴복시킨 사도바울의 메시지
행9:19~22
2015.02.02주일 1부 말씀
사도바울은 음식을 먹고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인 것을 증거 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 앞에 모든 것이 굴복되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 인생은 다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 되신 그리스도로 되어 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 뿐 이기에 그 이름으로만 응답이 됨에도 한 번의 예배 속에 ‘주일이니까 그냥 예배드리러 왔다’ 생각하며 응답을 놓치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이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울다가도 사탕을 주면 즉시 울음을 멈춘다. 자기체면, 자기 고집이 없기 때문에 즉시 바꾸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즉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영적싸움이 습관화, 체질화 된 사람’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기도만이 우리 안에 종교성을 굴복시킬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답을 낸 이후부터 ‘모든 사람들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강단 메시지’ 만 따라가면서 ‘기도 습관’ 시작되어진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이 시작됨을 확신한다.
행1:8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힘으로 되어 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의 습관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준다면,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 삶을 창3:15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라는 분명한 목적과 방법을 말씀하셨다. 뱀의 머리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육신의 생각,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저주의 영을 그리스도로 꺾어버려라. 오늘 강단 말씀 제목만 붙잡아도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 종교를 굴복시키는 비밀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안에 스며든 종교사상이다. 전통이라고 가지고 있는 유교사상, 쓸데없는 것으로 자꾸 가면을 쓰고 살아가려고 한다. 성경은 가면을 벗으라고 했다. 좋은 학교, 학벌, 좋은 머리, 돈 조금 벌어 놓은 것, 이런 것을 가지고 이상하게 살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킬 때 하나님의 은혜는 시작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체험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기 시작했다(빌3:8).
- 우리 인생을 덮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어둠의 세력이 지금 우리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혼돈과 공허, 흑암으로 개인, 가정,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벧전5:8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했고, 계12:1-2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가 땅으로 내어쫓겨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며, 무수히 많은 이데올로기 사상들이 지금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했다면 복음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는 이끌림을 받지 않고, 불신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자신의 영혼을 빨리 들여다 보고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의 딸들과 연합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지어다.” 이렇게 선포해야 한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하나님이 분명히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세상 풍습 속에 불신앙으로 길들여진 모든 저주의 세력들은 이제부터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말씀을 통해 내 자신과 세상을 알았다면 이런 영적싸움이 영혼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반드시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기도를 통해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모든 불신앙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태우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살려낼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영성’ 이라고 한다. 이런 기도의 배경 없이 뭔가를 해보려는 것은 가면을 쓰고 쇼하는 것 일뿐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가 일어나 세상을 향해 울리는 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가 예배 전에 ‘마귀들과 싸울지라, 영광 영광’ 찬양을 하고 금요철야에 함께 찬양할 때 붙었던 영들이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찬양팀은 찬양하기 전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말 찬양하고 기도하면 금요 찬양 때 한 시간 찬양으로 붙었던 지저분한 것들은 다 타버린다. 모든 기도 속에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의 군대가 동원되어진다.
- 믿음, 그리스도를 선택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3:8. 사단을 이기신 참 왕 되신 그리스도, 이것을 체험하면 마귀가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생긴다. 그래서 언제든지 마귀가 밀려와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밀어낼 수 있기에 인생에 겁날 것이 없고 힘과 용기가 생긴다.
또한 저주와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도 그 재앙을 없애는 참 제사장, 예수그리스도 보혈의 피와 그 살을 먹으면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이 시작된다. 요19:30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을 스스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로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름을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무슨 철학자인척 생각에 젖어있는 것은 정신병, 우울증이다. 이런 것들을 확 뽑아내야 한다. 양치질 하면서도, 비누칠을 하면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해봐라. “목사님 그렇게 한다고 됩니까?”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안에 그 놈, 마귀가 하는 말이다. 우리는 죽고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기에 예수님은 그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데 마귀는 그 이름만 부르지 말라고 한다. 그리스도를 들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온다는 것은 그 놈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고 지금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 놈을 뽑아내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즉각 뽑아내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 고백을 했다면,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고 따라가면 그리스도를 시인했다고 마귀한테 얻어맞고 주님은 우리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따라왔다고 건드리신다. 고집 세고 뭔가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뽑아 버려라. 하나님을 떠나 지옥 배경에서 마귀와 함께 살았던 삶을 버려야 한다. 마귀는 우리를 도와줄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우리를 죽이고 다 빼앗는 평생의 원수일 뿐이다. 그래서 마귀와 함께 하는 자들은 영영한 불, 예비 된 곳으로 보내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완전히 밟아 버려야 한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적인 증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체험하게 된다면, 요셉, 다윗,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가만히 두면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다가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둔 그리스도를 자꾸 말하게 되면 그 이름이 점점 강해진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했다 (롬10:10). 그래서 그리스도를 계속 고백하면 상대방이 아무리 “조용히 해, 그리스도 하지 마!” 해도 우리 안에 그리스도는 더욱 강해진다.
* 그리스도를 체험한 최고의 순간을 기억해라. 바로 “구원의 길” 이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고, 어떻게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야 되고, 어떻게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되는지에 대한 이 구원의 길이 없으면 어느 날 자신이 비참해진다.
바울도 구원의 길을 즉시 받아 증거 했다고 말씀한다.
스데반을 죽이고 예수 믿는 자들을 말살시키려 했던 사람이 바울이었다. 그런데 그가 구원의 길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을 부르시고 예수로 포로 되게 하시고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를 말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나니아를 만나 구원의 길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다.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나면 행할 일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했듯이 누군가 예수사랑교회에 왔다면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다메섹 도상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이 구원의 길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울을 만날 수 있었듯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반드시 각인시켜야 한다. 아나니아가 구원의 길을 설명할 수 있는 비밀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명령하셨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게 만드셨다. 우리 자신이 구원의 길을 설명할 수 있는 비밀을 담고 있으면 하나님은 상대를 꺾어 우리에게 붙이신다. 그래서 체포하려했던 아나니아 앞에 오히려 바울 자신이 무릎 꿇고 안수를 받고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고 사울이 온다는 소리에 두려움으로 떨었던 현장 속에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복음은 오직 하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를 바울이 만났다.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내가 체험하고 알게 되었다. 쓰레기와 같던 나에게 하나님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깨닫게 하셨다. 내가 사단에게 길들여졌고, 저주와 재앙으로 덮여있었고, 지옥 배경으로 끌려 다니며 사단으로 인해 내 인생 영원까지 망치고 멸망 받아야 될 기구한 이 운명의 저주에서 빠져나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내 문제가 끝나게 된 것이다. 그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분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영혼 속에 영접하여 그 이름을 살려내고 그 이름을 말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생명에게 무한한 능력과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만왕의 왕 그리스도 되신다.” 이 구원의 길로 자신을 확신시켜야 한다. 구원의 길로 자신을 확신시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역사적 증거로 체험하게 되었다.
지적인 것만 추구하게 만드는 사단의 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려야 된다. “하나님을 지적인 수준으로만 받아들여 내 영혼을 혼미케 하는 저주의 영아 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자녀들이 그리스도로 결론 내리지 않으면 그런 자녀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그리스도로 확 꺾어버려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도 지적인 것에 자꾸 젖어있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이성적인 분위기에 젖어있다. 예수는 지적, 이성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일단 뱀의 대가리가 박살나야 우리 자신이 살게 된다. 우리 안에 똬리를 튼 뱀의 대가리가 박살나지 않으면 의지력 자체가 없다. 그래서 늘 이랬다 저랬다 반복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야 의지력도 생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이것이 정말 영혼으로 부딪쳐 와야 한다. 그러면서 기도 속에 들어가는 거다.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으로 내 삶에 역사하신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에 있을 지어다!” 롬16:25.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일인칭 했을 때, 이러한 힘이 있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을 체험했다면 “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변화의 역사를 시작 할지어다!” 명령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가지고도 의지력이 없으면 자신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가면 쓰고 외식하는 사람, 속은 썩어가면서 겉만 회칠한 사람이 될 뿐이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다니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람이 된다.
요8:44 우리 안에 욕심을 버려야겠다고 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똬리가 있다.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욕심쟁이는 떠나갈 지어다” 했으면 실천하고 나눠주면 되는데 안된다. 의지력, 유일성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꺾일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영적싸움 하면 된다.
“창세기3장 원죄로 인해 내 자신을 이길 수 없지만, 창3:15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는 박살날지어다. 이제부터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복종시킬지어다. 오늘부터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의 힘을 가지고 생각을 바꿀지어다. 나를 이기는 힘, 종교를 굴복시키는 힘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
*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이름의 능력이 없었던 과거의 나는, 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좋지 않은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열 마디로 싸웠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고 그 이름의 능력으로 옛 사람, 마귀 체질을 꺾었더니 이제 지는 법을 알고 누가 열 마디로 싸우자고 해도 “예수는 그리스도” 하고 끝내는 힘이 생겼다. 어린 시절의 상처 속에 친구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 주고 그렇게도 친구를 좋아했던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서는 그 친구들이 사라졌다. 하나님의 사람이 사람의 딸을 보고 좇아가는 것이 싫어지고 따라가지 않는 힘이 생겼다. 그 시간에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기도로 연결할 때 행복과 기쁨을 느끼고 나를 향한 십자가 구속의 사랑에 젖어 영혼 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이 내 삶에 매력적인 일이 되었다.
-빌3:1~21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이름의 확신에 대한 합리적 이론이 나와야 한다.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합리적인 이론은 우리 영혼 속에서 힘을 얻게 된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최고의 상급이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 계획이다.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통일될 뿐 아니라 만물까지도 복종된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역사적인 증거인 성경을 십자가 중심으로 보게 되었다. 구약을 ‘신약화’ 곧 ‘그리스도 중심’ 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수양으로 인하여 대적의 문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침상에서 말하는 왕의 계략도 파악할 수 있었던 엘리사는 그리스도의 영을 담고 있었기에 욕심쟁이로 이끌려가는 불신자 상태의 사람 속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던 구약의 모든 인물들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구약의 기록된 메세지가 신약화 되는 것, 곧 그리스도로 모든 것이 뚫렸다. 바로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그리스도는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이름, 창6:14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그 비밀이 바로 방주되신 그리스도, 출3:18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산다는 절대적 진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 예수 믿으면 중생해야 된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영생의 법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감화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를 주, 곧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시인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을 슬슬 끌고 들어가는 뭔가 혼미함이 있다. 교역자라고 해도 창3장, 영적 세계만 말하면 눈이 이상해지는데 신기하게도 자신만 모른다. 어떤 분이 3년 동안 강단 말씀이 들리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영적싸움을 하면서부터 머리가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드디어 살아 역사하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가지고 영적 싸움을 시작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면 반드시 깨닫는 것이 있다. ‘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가 살렸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불순종 가운데 역사하는 그의 영을 받고 자꾸 진노의 자녀로 살아갈까. 내가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응답 속에 성질만 더러워질까. 내가 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교만한 것일까’ 이런 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면 어느 날 그리스도인이 되고 바울과 같이 당장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된다. 혼미했던 저주의 영이 떠나가고 우울증이 사라지고 사고 치던 체질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바뀌어 머리가 깨끗하고 맑아져 구원의 길만 남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삶이 영적싸움의 방법으로 바뀌어 지는것이 쉽지 않다. 영적싸움을 그렇게 강조하는데도 왜 우리 자신이 바뀌지 않는가?
다른 곳에 있다가 우리교회로 시집와서 그렇다. 일반교회를 다니다가 이제야 진짜 예수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시집을 왔으면 친정에서 먹던 습관을 다 버리고 시집의 음식 맛을 따라야 하는데 친정집에서 먹던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하니까 시집에서 핍박을 받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 왔으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맛을 내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우리 속에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되고 강한 자를 결박하게 됨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며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정말 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믿었던 스타일 그대로, 무당 하던 사람은 무당스타일로, 절에 다녔던 사람은 염불했던 스타일로 믿으려고 한다.
- 사도바울은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생각이 다 깨졌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았을 뿐 아니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목적을 바꾸는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개의치 않았다. 롬1:16 복음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절대적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과거에 매이지 않았다. 전통과 제도를 뛰어넘어버렸다. 복음으로 자신을 완전 뛰어넘은 것이다.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했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졌다는 확신이 있다면 오늘부터 하나님의 능력은 시작된다.
사도바울에게도 많은 생각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이성적으로 체계화 하지도 못했고 학문화 하지도 못했으며 충분히 이해되고 납득이 된 것도 아니었지만 즉시로 각 회당에 가서 선포한 첫 메시지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되셨다” 이었다. 그 이름, 구원의 길 하나를 확신에 확신 속에 선포했더니 점점 힘을 얻고 그리스도 하나에 모든 것이 굴복되는 것을 체험했다.
성경을 체계적, 합리적, 이성적으로 잘난 척하며 파고들려 하지 말고, 늘 가면 쓰고 외식하면서 하나님과 마음으로는 멀어져 믿는 척만 하려는 저주의 영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 그 이름을 깨닫는 절대적 하나님의 계획을 내 삶에 성취시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역사의 증거로만 알았던 성경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으로 보는 인생의 전환점을 통해 종교를 굴복시킨 메시지, 예수는 그리스도만을 선포했던 사도바울과 같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확신을 가지고 내 인생에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나를 시달리게 했던 지옥배경, 육신배경이 무너지고 기도의 습관 속에 내 자신부터 굴복시켜 내 안에 오직 구원의 길만 남는 그리스도 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