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이 함께 하시니 주께 딱 붙어있으라
행11:19~30
2015.010.18 주일 1부 말씀
본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독립된 시작을 말씀한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자신들이 왜 기독교인지 조차 모른다. 유대교에 속했던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때문에 분리되었는데 이 비밀을 몰라 논리적이고 합리적, 이론적 사고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 하나로만 해결된다.
오늘 본문 20절/예수의 제자는 오직 예수만 말했다. 26절/복음을 받았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변화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28절/그리스도인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꾸신다. 29~30절/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모든 환경을 무시할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소유한 우리는 이 세상의 빚진 자 이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했기에 “착한 사람” 이라고 말씀했다.
이미 행4:37에서도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신의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내어놓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씀했다.
그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제자들이 바울을 가까이 하지 않았을 때 바울을 옹호했던 사람이었다. 전통 유대인 일 뿐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옥에 심문과 고문을 시켰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는 말을 들어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을 때 착한 바나바는 바울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며 바울의 장점과 진정성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했고,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빛 앞에 변화되고 거듭나 하나님의 일, 전도와 선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바나바가 바울, 그 한 사람을 믿어줌으로 인해 세계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 번의 만남 속에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섬기고 있는 담임목사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담임목사 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가장 슬프고 쪼그라드는 인생을 살 것이다. 여러분의 목사인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빚을 많이 진 자로 살고 있다. 만일 내가 한국 땅에 교회에 관심을 가졌다면 온갖 쇼를 다 해서라도 큰 성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빚을 가장 많이 진 자이기 때문에 미국, 일본, 중국, 유럽 어디든지 가서 제자를 세우려고 노력했고 내 인생에 내 몫을 따로 챙겨서 돈을 모아둔 적도 없다.
오늘 본문에도 나는 세상에서 빚을 가장 많이 진 자라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운명을 바꿔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시고 운명, 사주팔자에 묶여 일평생 밥 먹는 문제 앞에 걸려들어 지옥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분별하게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지옥까지 가야될 기구한 인생의 저주를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예수사랑 성도를 찾았고 지금도 지역마다 참된 전도제자를 찾아 세우고 싶은 마음이 내 영혼에 간절할 뿐이다. 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땅에 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복음화 할 전도제자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내 가슴은 예수사랑 성도를 전 세계로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자신을 바꾸고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그런데 자기 일에 바쁘고 자기 밥 먹는 문제 하나 때문에 쟁쟁거리는 인생이었다면 정말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절대 자기 개인의 동기나 욕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비참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빚을 갚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처절한 죽음을 당하시고 한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그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지 않으시고 죽게 하셨다. 나의 죽음, 나의 고난, 무엇이든지 해결해주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개인의 욕심을 위하여 인생을 살라고 속삭이시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소리가 아니라 마귀의 소리다. 그렇다면 죄를 짓지 말고 육신의 싸움을 그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오늘 복음을 듣지 못하면 정신이 돌고 그리스도가 들어가지 않으면 자살을 하는 이런 상황 속에 먼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참된 하나님의 은혜가 영혼 속에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은혜 사역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만이라도 이 지구에 일천만 전도제자들이 일어나는 그날까지 어둠의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가장 큰 빚을 진 장본인들이기에 ‘나는 전 세계 대학 앞에 미션홈을 세우는 날까지 쟁쟁거리지 않겠다. 나는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될 것이다.’ 이런 가슴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멋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모든 불만, 원망, 핑계, 세상 풍습에 동화되었던 것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그릇을 넓혀야 한다. 우리가 그릇을 넓히는 만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 완전하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의 모든 약한 것을 무너뜨려라
이제부터 우리에게 각인되었던 모든 것을 다 깨뜨려야 한다.
요셉의 형들은 창3장으로 각인되었던 옛 사람,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를 깨뜨리지 못했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오직 성도들이 갖다 놓은 고깃덩어리, 곧 성도들의 헌금에만 관심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이 지교회를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가만 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 엘리는 눈이 멀었고 그 두 아들은 고깃덩이를 팔아먹으며 온갖 타락을 일삼았다. 하나님의 참된 제자들의 삶이 이렇게 타락하고 물질욕에 잡혀있다면 세상에 동화되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제자들은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통하여만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 속에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영적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은 사울 왕처럼 정신질환이 찾아오게 된다. 시기, 집착, 오해 속에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정신병자로 전락했고, 아합 왕은 미친 부인의 말을 듣고 그 말 속에서 끊임없이 난폭해져 결국은 국가도 비참해지고 자신도 쓸모없는 인생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이런 인생에서 빠져나와 국가를 살리고 민족과 세계 뿐 아니라 가문과 가정, 개인도 살리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성경에서 선포한 “영적 전쟁”을 몰라 싸우지 않고 세상과 동화 되어져 비참해졌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졌다면 종말론적 신앙이 시작되어야 한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두고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환경과 사단과 영적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빼앗고 하나님 떠나 일평생 세상에 동화되어져 비참하게 죽게 만들며 가정을 파괴시키고 인간관계를 어둡게 만드는 창3장의 저주, 사단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명령하셨듯이 어둠을 향해 명령할 때 어둠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성도와 목사들이 자신들은 말씀중심으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과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저주와 재앙들이 너무 많다.
잘 믿던 사람이 갑자기 흑암이 되어 이상한 짓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갑자가 사이코가 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강조 하며 하나님의 능력되신 만왕의 왕이 능력과 권능으로 함께 하신다고 하면서도 자신 안에는 이상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며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어느 날은 O.K, 어느 날은 NO하고 어느 날은 시험이 들고 어느 날은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 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의 이상한 약점을 들춰 죽이려고 하고 믿음의 지혜 속에 힘이 생각보다는 사람을 죽이는데 힘을 동원시킨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무수히 많은 방해 속에 어느 날은 육신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무수히 많은 육신 문제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과 함께 한다며 기도도 하고 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긴 하지만 전부다 사단의 소리, 얻어맞았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또 사단과 영적싸움을 한다고도 한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술먹게 하는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이렇게 영적싸움을 하지만 자신은 바꾸지 않고 계속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만 한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완전 할 뿐 아니라 모든 문제를 다 이루셨다.
모든 문제가 다 끝났는데 우리 자신이 안되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약점 때문에, 우리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약한 것이지 그리스도는 약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안된다고 한다. “목사님, 내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 했는데 안되던데요?” 하지만 안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약하고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영혼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짓말쟁이를 그리스도로 정말 밟아야 한다. 자녀들의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한다면 잔소리를 하지 말고 그들에게 부모로서 해야 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만 말하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말을 하지 말고 자신이 그리스도로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흑암세력을 결박해라. 그러면 신앙생활은 탈진 상태가 아니라 빛이 나기 시작하며 우리 영혼 속에 무능과 무기력, 모든 저주와 재앙은 떠나게 된다.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로 안된다고 하는 아주 나쁜 불신앙이 있다. 우리 자신이 약한 것이고 자신에게 믿음이 없는 것인데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비참해진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복음과 율법, 신비주의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올바른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고 하면서도 우리 안에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문제가 온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의 영인가?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로 안된다고 한다. 우리 안에 살인의 영이 있어 사람과 사람을 이간하지 않는가. 수많은 복음의 말이 열려있음에도 자신이 약해서 저지른 문제 앞에 우리는 자기를 변명하며 사람과 사람을 이간한다. 또한 사람을 만나 얼마나 집착하는가?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다가 한 사람이 함께 하면 나 보다 저 사람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친구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수많은 집착이 파고들고 밤새 잠을 못 잘 만큼 분노한다. 우리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로 변화되어져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제 자신을 인정하고 적용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마귀는 날마다 우리를 불신앙하도록 만든다. 때로는 악한 감정으로 인하여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 입에서 마구잡이로 독사의 욕들이 나오게도 한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자신의 약한 정신적인, 감정적인, 육신적인, 영적인 것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큰 일꾼 바나바는 바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바나바는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바울을 보자마자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인 것을 알았다. 우리도 이렇게 보여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의 눈빛이 동기의 사람, 욕심쟁이, 음란한 영, 독사의 새끼, 회칠한 무덤으로, 썩는 냄새로 보이면 되겠는가? 우리의 영혼부터 그리스도로 치유시킨다면 은혜의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인생의 문제 앞에 하나님의 진정한 계획, 전도와 선교를 깨달아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너는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런 성령의 소리가 우리 속에 들린다면 성령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약한 것이다. 성령의 말씀에 순종도 못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응답과 말씀이 성취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나님도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우리 인생에 왜 핍박과 환난, 인생이 쪼그라드는 문제들이 찾아오는가? 이것은 곧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엄청난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제자들이 어디로 흩어졌는가? 저들 마음에 나쁜 선입견을 두었던 사마리아 지역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사람은 생명 앞에 이렇게 간사한 것이다. 그들은 사마리아 인들을 개 취급 했었다.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자들을 잡아 죽인다고 하니까 자기 인격과 상관없이, 자기 선입견, 기준과 상관없이 사마리아 성으로 도망갔다. 인간이 이렇게 약하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 속에서도 일을 하셨다. 그들은 나 하나 살고자 도망갔지만 하나님은 도망간 그 사람을 통해 입을 열게 하셨다. 아무것도 없이 도망가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그리스도 좀 말했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그리스도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또, 자신의 말을 듣고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갔다고 착각하는 더러운 영이 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안된다. 자신이 잘나서 제자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 제자들이 밥 먹고 살기 위해 살고, 목회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비참하고 불쌍한 일이며 성도들에게 들어오는 돈으로 산다면 그 생명은 죽은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위험과 환난, 큰 죽음의 문제가 찾아왔다 할지라도 그 문제나 위기는 우리가 가진 옛 사람의 동기를 뽑아내라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자기 자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가이사랴 고넬료 집에까지 이 복음이 확산될 수 있었고 거의 로마 직전까지 이 복음이 흩어지게 되었다. 스데반의 죽음 속에 환란으로 흩어진 자들을 통해 이 복음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 제 3의 도시들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곧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도, 선교 계획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전도와 선교의 절대적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자신과 환경과 사단과의 영적싸움을 한 메시지가 없다면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선교 계획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비참해지는 인생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와 안디옥 교회, 바나바는 이 하나님의 선교 계획을 보았다.
사도행전의 비밀이 무엇인가?
그들은 위기를 만나면 더욱 성령이 충만했고 죽음의 문제가 오면 자신을 더욱 죽였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의 문제가 오면 도망가려고 하고 피하고 숨지 않는가. 초대교회는 죽음의 문제가 왔을 때 얼마든지 살 수 있는 환경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이름으로 죽어도 살고 그 이름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자신의 몸이 변화되어지는 비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는 담임 목사에 의해, 예수사랑 교회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절대적 계획,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다.
미국 LA에서 한 목사님을 만났었다. 큰 교회와 유치원, 학교 모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기 인생 작은 문제 하나에 걸려 주저 앉아있었다. 세워진 교회를 두고 자랑도 했지만 성도들은 다 나가고 인생은 쪼그라들었다. 하나님의 계획을 전도와 선교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한이 무엇이냐고 묻자 미국의 주류 사회 속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했다. 그런데 갈릴리 촌 놈, 베드로는 로마의 주류 사회까지 파고 들어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 장군에게까지 복음이 들어가게 했다.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할 만큼 엄청난 주류 사회로 들어갔다. 베드로는 전도도, 선교도 모르고 자기 인생 살고 싶어서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전도와 선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일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혼 하나를 두고 얼마나 깊은 기도를 했던지 쌍방의 계시가 올만큼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주셨다. 우리가 생명을 위하여 전도하고 선교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 계획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 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모든 문을 여신다. 베드로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고 결단할 때 응답의 문들이 계속 열리게 되었다. 인간의 지혜와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고 하나님 스스로 전략,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도망 다니면서도 전도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다. 절대적 성령의 인도는 우리 인생의 문제 앞에서 열리게 된다. 그래서 행8:4 엄청난 환난과 문제 앞에서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여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자신을 지켰을 뿐 아니라 그 이름 하나로 생명이 살아나게 되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가 진짜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기뻐해라.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내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흩어져 도망 다니면서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왜 내가 고생해야 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했는데 왜 국가가 전 재산을 몰수해 가는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왜 나를 잡아 죽이려 하는가? 나는 도대체 뭔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 드디어 영적인 세계를 본 것이다. ‘아, 내가 전쟁을 하지 않았구나, 영적 전쟁을 하지 않았구나.’
억지로 된 현실 속에서 “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 40,50년, 4대째 하면서 안 된다면 이 “왜?”를 현실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성경은 인류 역사를 “영적 전쟁” 으로 표현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가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다. 이 창세기 3장의 저주, 사람의 영혼 속에 장악된 것을 꺾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죽는 날까지 사단의 소리만 듣고 사는 것이다. 창6장 네피림의 저주를 그리스도로 밟지 않으면 늘 제 맘대로 살게 되며 창11장, 악한 사단의 머리통을 밟지 않는다면 이 땅에 동화되어 살 뿐이다. 그래서 죄의 권세, 사망 권세, 음부의 권세가 그 영혼을 장악하고 죽어가는 그 날까지 마귀의 소리만 말하다가 간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귀신을 내어 쫓으며 앓고 있는 개인의 영적인 문제를 사로잡아 박살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70인 제자, 열 두 사도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비밀을 가르쳐주셨다.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되니까 그 삶에 안주하고 이론적이고 논리적, 합리주의가 나오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문제 속에서 흩으셨다. 왜 이런 것이 찾아왔는가? 예루살렘교회는 이미 유대 사상으로 가득했었다. 유대 전통 제도가 틀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하는 복음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과거 유대교 사상, 선민사상들이 장악하여 서로 논리와 이론적, 합리적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전도와 선교 속에 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뽑아서 흩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하고 준비하면 된다. “내가 미션홈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하지 말고 전도와 선교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며 말씀에 순종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처소를 짓고 계신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길, 진리, 생명 되신다. 이것을 믿는 자를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엡2:8,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은혜 속에 기뻐하는 자가 되었다면 주께 딱 붙어 있으라
행11: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예루살렘에서 파송을 받은 바나바의 신앙고백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이런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아무리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맛이 간 사람을 만나도, 진짜 쓰레기 같은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나를 변하게 하신 그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반드시 하실 수 있다.” 이런 믿음이 우리 영혼에서 흘러 넘쳐야 할 것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면 인간적인 편견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저 사람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이 바로 전도와 선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진짜 기뻐하고 있는지, 그래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사랑교회에 붙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 주께 붙어 있으라 했다. 예수사랑교회 오면 나는 딱 가지를 부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붙어있어라. 시험이 들고 기분이 나빠도 붙어 있어라. 어느 날 되어지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는 여러분을 욕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빚을 많이 진 자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목사로 쓰셨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사용하신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최고의 날이 되길 축복한다.
우리가 이 시대 진정한 기독교인이다. 과거에 이 초대교회는 유대교 안에 속한 기독교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들을 “예수당”, “예수쟁이” 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인” 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기독교가 분리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만 높이고 예수 중심으로 살게 된다면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며, 이것이 전통이고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기쁨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 중심으로만 생각을 가졌기에 예수그리스도밖에 모르는 것이다.
오늘부터 이제는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모른다고 고백해라.
누군가 왜 이렇게 무기력하냐, 과거에 사기꾼 아니였냐,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냐 어떤 말을 해도 “저는 예수 밖에 모릅니다.” 이렇게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시작된다. 그래서 창3장의 저주가 개인과 가정, 산업, 자녀들에게서 완전히 무너져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뿐 아니라 이제는 남편과 자녀들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해라. 그러면 이제 우리 자신을 보고 “그리스도인(christian)” 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어둠의 현장 속에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 빚을 진 자로서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변화되도록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바울을 도왔던 은혜의 사람 바나바와 같이 전도자와 함께 주께 딱 붙어 있어 이 세상에 가장 큰 빚을 진 자로서 우리 안에 마귀가 주는 동기와 욕심, 세상 풍습에 동화되었던 삶 속에 ‘안된다’ 고 하는 무기력과 무능력, 수많은 약점을 무너뜨리고 오직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자신과 영적전쟁을 통하여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전도와 선교의 계획을 발견하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후사된 자로서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