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혈통으로 오신 언약의 성취자, 예수그리스도
행13:16~23
2015.12.06 1부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삼중직을 개인이 체험하지 않았던 사람은 하나님이 폐하시고 적용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신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 인생이 쓰레기가 되던지, 회개만 하다가 비참해지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났다는 지식주의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인생이 된다. 그리스도 삼중직의 비밀이 우리 자신에게 체험되고 누려질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
* 유대인의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한 사도바울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아주 귀중한 이스라엘의 역사까지 끄집어내어 예수를 증거 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 역사 속에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사울은 폐하고 이새의 아들 다윗이 하나님께로 쓰임을 받았다고 말씀한다. 왕권만을 사용했던 사울은 집착과 시기의 질병으로 인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지만 다윗은 왕권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자신에게 정확하게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의 지파’ 만 있고 성(姓)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을 통하여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姓)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다윗의 자손 예수’ 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의 인생 속에 운명에 갇혔다고 털썩 주저앉지 말고, 역사 속에 나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충분히 부르고 믿고 느끼면 된다는 것이다.
행13:22~23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있던 이새의 아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야 되겠다라는 절대적 충성이 있었고, 그는 사람 앞에나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였으며,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길들여지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핑계대지 않고 어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회개의 사람이었다.
행13:14, 사도바울은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구브로를 거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를 했다.
이스라엘 모든 과거의 역사는 기독교에 다 필요한 것을 말씀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집중하면 세상의 모든 과거는 발판이 된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에 설교를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바울의 이 설교가 점점 증거 되어 오늘날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의 역사로까지 끌고 오게 되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 교회당부터 지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했다. 그들의 과거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유대인이 사용하고 있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모든 과거는 기독교의 교회를 위해 예비 된 것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 구주 그리스도를 우리가 갖는다면 우리 인생 앞에 모든 것들이 예비 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의 길만 잘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전도의 문을 여실 뿐 아니라 응답의 문도 여신다. 우리의 인생이 재해석되고 그리스도로 시작되면 구원의 길은 나오게 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 이름은 우리를 어마어마한 사람으로 변화시킨 이름이다.
행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를 할 때 언제나 앉아서 메시지를 하지 일어나지 않는다. 사도행전에 유대인 앞에서 세 사람이 일어나 설교를 했는데 행2장 베드로, 행7장 스데반, 그리고 행13장 바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삼중직,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가 손짓하며 말했다는 것은 “이것은 진짜다, 이것을 담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그리스도 해라!” 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의 초점, “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 삼중직의 비밀을 깨달은 바울은 정열이 넘쳤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깨달아 구원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를 통하여 온 인류에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를 위하여 구원과 영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말씀한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하여 모세, 사무엘, 사사에서 다윗까지, 역사를 통해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역사의 초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며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이 지켜야 하는 역사의식이다.
-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인간을 재해석 했다.
창세기 3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 권세 잡은 사단에게 인간이 장악되어 죄의 권세로 인해 사단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악한 자가 되고 죽는 날까지도 저주의 영으로 지배를 받아 재앙을 받는다. 인간관계 속에서 원수를 맺으며 끊임없이 종교에 미혹되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비참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하신다. 그래서 자신이 창3장에 걸려있다는 것을 인정해라. 창3장에 충만해지면 결국 창6장, 네피림 문화 속에 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귀신 문화 속에서 흥분 상태로 정욕적, 마귀적, 세상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어느 날 세상을 향해 가게 된다. 그래서 창세기11장, 이 땅의 다 사라지는 것을 두고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한다. 종말을 기다리는 땅에 무엇인가를 건설해보려는 욕심쟁이가 인생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 기독교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추상적, 관념적이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산에 올라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목사, 깊은 산에 도를 닦다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들은 전부 이런 식으로 교주가 되었다. 아니면 한국에 폐병 걸렸다가 나은 것 하나로 목사 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엄청난 대형교회를 만들어냈지만 하나님에 대한 내용은 없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래서 성도들을 이상하게 끌고 가고 한국교회는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교리는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역사는 다른 말로 말하면 ‘사실’ 이라는 뜻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기독교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사실을 내가 믿으면 응답을 받는다. 경륜을 말씀하고 있기에 돌발적 사건이 아닌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비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하나님의 사실을 반드시 느끼고 체험하라는 것이다. 태초부터 역사하신 그 하나님의 중심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임을 깨닫게 하신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연이 아닌 온 인류의 역사라고 강조하셨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모든 역사와 경륜 속에 이뤄진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며 그 이름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 하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위하여 역사를 이끌어 오시고 예언하셨으며 예표를 들어 말씀하시고 그림자로 말씀하시고 마침내 실제 사건으로 말씀을 성취하셨다.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믿는 자들을 통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고 범죄 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피 묻은 가죽옷을 입혀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죽으신다는 예표를 말씀하신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이제 뱀의 대가리를 박살내실 만왕의 왕이 이 땅에 오시면 모든 인류에게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고 죄의 권세, 사단의 권세, 사망권세 잡은 자와 악령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실 것이고 사단은 그의 발꿈치를 물어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죽음을 위해 이 땅에 오셔야 한다는 그림자의 말씀을 예표로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바라 볼 때 육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피 묻은 가죽옷을 보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사랑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사람으로 보면 너무 이상한 사람이 많고 부부간이라도 어느 때 보면 ‘저 찌질하고 쟁쟁거리는 것 때문에 미치겠다, 돌겠다.’ 이렇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예수 피 묻은 사람’ 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보시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한 사람이기에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단으로 바칠 때, 아들 되신 숫양이 번제로 드려지는 모습을 통해십 자가 지시는 예수님을 예표로, 그림자로 보여주신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 저주와 재앙이 넘어간 출애굽의 역사도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신다는 그림자, 예표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받아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성경 속의 역사는 알고 있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양에 대한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읽자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빌립 집사를 급히 보내 그 성경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 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 때 그 내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아 그 역사가 에디오피아에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움직여갔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셨기에 그리스도 그 이름을 통하여 나는 응답을 받게 된다.” 이렇게 신앙을 표현하고 믿으면 느끼게 된다.
-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선택하여 예수사랑교회에 앉혀 놨다는 뜻이다.
선택은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무자격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불렀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예수사랑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선택을 받아서 앉아는 있지만 이것은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에 묶여있었듯이 구원과 상관없이 교회 안의 분위기에를 따라 구원과 상관없이 교회에만 앉아있다.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이지만 구원을 받고 못 받고는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고 선택을 받았다는 믿음은 있지만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한 내용과 확신이 없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은 받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할 만큼 잔인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한 것에 대해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애굽에서 열 가지의 엄청난 기적을 보고 홍해를 건넜다면 그 감격이 1년은 갈 수 있을텐데 자신들을 물도 없는 곳에, 광야에 있게 했다고 모세를 향해 돌아버린다. 이런 것이 빠져 나가는데 광야 40년이 걸렸다. 원망, 불평, 환경 탓, 남 탓, 비아냥... 인간의 내면에는 이런 것이 가득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셨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중생을 했느냐, 못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삼중직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은 시작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고,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통하여 죄의 권세를 해결해주시고 내가 죽어야 될 기구한 운명적 저주를 담당하기 위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또한 예수님을 위해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 만날 길이 없던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주셨기에 그 은혜를 받은 자로 언제나 겸손과 온유, 충성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것이다. 이 삼중직의 비밀을 체험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바울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분명 선택하셨지만 구원과는 별개이기에 오늘부터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믿고 실천할 때 하나님의 축복은 시작된다.
*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사울과 다윗에 대한 메시지
하나님이 사울은 폐하시고 다윗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삼상9장에 사울은 부모에게 굉장히 효도하는 사람, 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서는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사흘을 다니고 자신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불안해 할 아버지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효도하고 순종하고 적극적이며 시종을 존중할 만큼의 경건한 사람이었다. 사무엘을 만나 베냐민 지파 중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하자 사울은 부끄러워 숨었다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었던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고 나서 문제가 나타났다. 왕이 되는 순간부터 왕권에 집착하여 굉장히 교만해졌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삼중직이 우리 삶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답게 살았다고 해도 사단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게 된다. 왕권에 집착하여 너무나 교만하고 시기, 질투가 많고 전쟁을 치루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겼음에도 사울왕은 자신의 기념비를 세운다(삼상15:1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하셨다(잠16:18).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면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돌아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세우셨는데 그를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말씀했다.
다윗은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나 볼품없고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그 날’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느 날 사무엘이 찾아온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을 때도 일어나지 않고 또 그 날을 기다린다. 말씀을 받아도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셨는데 언제 왕을 시켜주실지 따지지도 않았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삼중직의 비밀, 창3:15을 철저하게 누리고 느끼고 깨닫고 알았다.
그랬더니 아버지의 양들을 삼키면 곰의 입을 찢을 만큼 왕권이 넘쳐났고 밧세바를 취하는 실수 앞에서도 환경과 밧세바를 탓하지 않았고, 자신의 범죄를 책망하는 나단선지자를 향해 왕권을 사용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며 여자의 후손 메시아, 이천년 이후에 오시겠다고 하신 메시아를 대망하며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죄를 말갛게 씻으실 수 있다며 베개를 적실 만큼 회개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겸손한 사람이다.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
하나님 우리에게 삼중직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자신을 주장하며 사울처럼 목이 뻣뻣한가? 무엇이 우리를 완악하게 하는가? 나라를 위해 충성한 다윗에게 왜 창을 던지며, 악신을 내어 쫓기 위해 연주하는 다윗을 왜 죽이려고 하는가? 우리 영혼 속에 삼중직이 없으면 이렇게 더럽고 추악하며 완악하다. 이런 문제 앞에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사용하는 자는 다윗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 자신의 인격을 재해석해라.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영혼 속에 담아 그리스도 없으면 우리는 일초도 살아갈 수 없다는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막으시고 보살펴 주신다.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삽과 괭이를 들고 가서 싸우지 않았고 광야 40년을 인간의 힘으로 살지 않았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은 되어지는 존재임에도 완악하고 교만하며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마귀에게 잡혀있기 때문이다. 잡혀있는 이 마귀의 일을 멸하는 영적싸움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시작된다.
하나님이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자, 내 뜻을 이뤄갈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날마다 체험했기 때문이다.
만왕의 왕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는 참 선지자,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내게 부족함이 없으며(시23편),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내 영혼을 감찰 하셨으나 내 영혼에서 죄의 흠을 찾지 못하셨으며(시17:3), 참 왕 되신 그리스도,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요새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나의 능력이 되신다는 이 삼중직을 자기 자신에게 누리고 확인하고 체험했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시작하셨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성(姓)을 주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 예수가 드디어 죄에 묶여있는 나를 구원하시려고 다윗의 성(姓), 혈통을 갖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누리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 시작하실 것이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구원에 대한 분명한 내용과 확신 없이 무너지는 이 시대, 다윗의 자손 예수, 왕의 혈통으로 오신 언약의 성취자 예수그리스도 안에 서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자신을 낮추고 부인하는 삶 속에 다윗의 혈통을 따라 예수님이 탄생되었듯이 한 주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움직여지는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시간마다 실천하고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