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세상의 멍에를 풀어주라
행15:6~11
2016.01.31 1부 말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20:31.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사단으로부터 곤경에 처해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 곧 그 분 자체가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인간을 장악하고 죽이려 하는 흑암의 세력, 뱀의 대가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만왕의 왕 그리스도로 오셔서 이 세상 임금이 쫓겨 갔기에 하나님의 그 힘을 덧입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그 힘의 능력을 사용하는 만큼 변화는 시작되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육체를 사단에게 던져주기 때문에 인생에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생의 문제 앞에 정시기도와 무시기도, 집중기도 속에 들어간다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더 큰 응답으로 인도하신다.
* 그리스도를 바르게 이해하고 누릴 때 인생의 참 성공자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조용히 그 분의 역사만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 광야에 내버려두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냐며 시비를 걸고 원망, 불평 하는 것들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의 생각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가고 싶어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에 인도하시고 필요에 따라 골짜기로, 사막으로 인도해가시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꾸 불신앙을 한다. 그래서 그 노예체질과 불신앙의 체질을 제거하기 위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40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마시고 입히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풍습에 매이지 말고 나보다 앞서가신 예수님,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조용히 따라가면 된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그 분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약속하셨고 그 분이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어떤 존재였는가? 꺼져가는 등불, 상한 갈대, 생기 없는 뼈, 이 땅에서 보잘 것 없는 나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모든 문제를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약속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고, 이 땅에 정말 마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영적싸움을 하게 되면 일어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행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베드로는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만 바르게 이해한다면 모든 재앙이 무너지고 우리를 묶고 있는 운명, 사주, 팔자에서 완전 해방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지옥 권세를 멸하기 위하여, 사단에 묶인 우리를 풀어주기 위하여, 사망권세 잡은 그 운명에서 완벽한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창3:15의 주인공으로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정말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위기를 만나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할 때 창3:15을 말씀으로 주신 창조주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약속하신 창3:15 그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 성자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셔서 그냥 떠나지 않으시고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성령 하나님 그리스도. 그 하나님 그리스도가 영접되어진 생명들과 함께 있기에 산 자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를 ‘그리스도인’ 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신앙이 출발되면 아픈 것이 축복이고 병든 것이 은혜며 누구로부터 고통을 당해 거듭나게 만든 날이 최고의 날이 된다. 그리스도가 산 자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그래서 가난해도 은혜가 되고 부자가 되어도 내 이라 말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은혜가 임한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렇게 느끼지 않으면 돈 조금 벌어놓고 건방지고 교만해져 추한 모습을 나타내며 집안 전체에서 왕 노릇 하려다가 이상해져 인격 자체가 다 찌그러진다. 그러나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산 자의 하나님으로 우리 영혼 속에 담으면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바르게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를 바르게 누리는 것은 방종과 다른 말이다.
바르게 누린다는 것은 절대 누구에게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 저 인간 때문에 돌겠다 하는 것은 누림이 아니라 책임전가, 남에게 핑계 대는 사단의 체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으니 내가 여호와를 목자로 하겠나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바르게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시달릴 때만 붙잡고 조금 문제 있으면 ‘주여!!’ 하면서 응석부리고 때 쓰는 유치원 수준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를 누리면 시기해야 할 상황에 하나님을 누리게 되고 사람의 말을 듣고 분쟁해야 할 시간에 멋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영원하며 변함없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절대적인 주가 되셨고 ‘와서 조반 먹으라’ 하시며 배신했던 베드로에게까지 찾아가서 사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내 어린양을 치고 먹이라고 명령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누린다면 우리 인생의 여정 속에 불신앙이 찾아오고 다른 생각들이 올 때마다 사단만 결박하고 산자의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믿음과 행위는 각각의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누리고 증인된 삶이 시작될 때 참 성공은 우리의 것이 된다.
‘주여, 성공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누리면 창조주 아빠, 그리스도의 증거를 갖게 되기에 증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 성공이 시작되면 모든 지옥 배경이 산산이 무너지고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성령의 역사를 맛보고 우리가 머무르는 그 곳에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가 시작된다. 복음, 창3:15을 이해하고 누리고 전달하느냐에 따라 모든 문제는 풀린다.
그리스도를 담았던 요셉은 17세 나이에,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늘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변명하지 않는가?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 형 들이 전 재산을 빼앗아 내가 이렇게 가난해졌다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과거로 인해 탄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과거는 축복의 발판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창3:15의 언약을 가진 자는 상처를 묶어놓지 않고 기억에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다 풀 수 있어야 한다. 그 과거의 상처를 풀지 않겠다는 것이 불신앙이다. 그렇게 불신앙을 하는 사람은 광야생활을 통해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나가기 전에 창3:15로 각인되어야 이 세상에서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세상에서 힘들 수밖에 없다. 세상은 모든 것이 다 먹고 사는 문제, 육체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각인되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육체 덩어리를 노예로, 세상의 종으로 던지게 된다. 고전5:5. 인생은 짧다. 인생 다 지나가고 말년에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80세가 넘어도 데려가지 않고 훈련시키신다. 그래서 언제나 고백해라.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에게 나오는 바리새인적인 끼들이 사라져야 한다
본문에 나타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자기들도 멍에 매기 힘든 그 할례를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방법이 이방인과 음식을 먹지 않는 것,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진 전통, 규례, 제도, 법도까지 다 알아야 하며 율법을 모르고서는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 백 가지를 잘하고 한 가지만 잘 못해도 죄를 범하게 되는 율법. 이런 것으로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멍에를 씌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리새주의적인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 선교를 향한 예수사랑교회에 이런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인으로 믿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다. 요19:30,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끝내셨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영적싸움을 하면 모든 응답을 받는다. 성령 자체가 그리스도, 성자 자체가 그리스도, 성부 자체가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맛보면 그리스도만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문화, 풍습, 습관, 관례 속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 신, 사단의 전략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전부다 혼미케 만들어 이 세상의 문화에 길들여 복음의 본질을 잃게 했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도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먼저 들어왔다.
한국 기독교의 시작은 강화도에 외국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그 당시는 아무도 서양인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였는데 강화도에 한 지주가 이유 없는 배앓이를 하자 그 선교사를 불렀다. 그 당시는 엄청난 어둠의 세력이 장악한 시대였기 때문에 예수 십자가의 권세만 사용해도 나음을 받았다. 그래서 그 지주가 그 선교사에게 복숭아밭을 하사하고 거기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한 아이가 덜 익은 복숭아 두 개를 따서 옷에 감췄다가 선교사에게 들켜버렸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그 아이에게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법을 어겼다고 하면서 그 아이 이마에 ‘도둑 도’ 자를 찍었다. 이것이 한국에 흐르는 기독교사, 율법의 역사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려면 착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가 그리스도’ 인 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누리고 전달할 메시지가 있다면 성령의 사람이라고 약속하셨다. 종교인들은 죽은 자를 섬기고 믿지만 우리는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많이 부흥을 해서 추도 예배를 드리지 않지만 과거에 목사들은 죽은 자를 위해 예배를 인도하러 다니느라 많이 힘들었다. 지금도 대형교회는 교회를 위해 일을 많이 한 분들을 위해서는 추도 예배를 드려준다. 우리는 죽은 자를 섬기고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고전10:20, 이방인들에게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예수사랑교회에 만약 추도예배가 있다면 이제는 다 끊어야 한다. 그리스도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면 모든 저주와 재앙이 끊어지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사단은 결박된다.
유대인들과의 해답도 없는 변론과 말싸움 속에 야곱과 베드로가 긴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가 결국은 베드로가 일어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사람들 앞에 외식과 가면 속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신앙으로 겉으로만 몸부림 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이상한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 진리, 율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무엇에 속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변론하는 이유는 그들 내면에 딱 하나,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도 ‘내가 예수사랑교회 7년차다, 넌 2년 차면 좀 더 굴러봐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이다’ 한다면 이런 외식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바로 이해시켜 줘라. 그리스도를 바르게 이해하면 재앙은 무너진다.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우월감, 명예와 지위를 지키겠다는 인간적인 방법이 있었다. 한 마디로 악의 세력, 요8:44이 그대로 그들 내면에 깔려있었고 똬리를 틀고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정직하다면 왜 다투겠는가?
서로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면 절대 ‘일치’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이해하고 정직할 때 재앙은 무너진다.
바울이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만 구원이 임한다고 말 하자 이것을 알지 못한 유대인들이 추상적으로 변론을 한다.
왜 그렇게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냐 할례도 받고 십계명도 말해주지 않으면 전부 죄 가운데 빠진다는 결론 없는 변론을 늘어놓고 있는데 베드로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일어나서 자신의 체험적 신앙을 고백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따라가고 어떻게 예수를 배신했는지, 그런 자신을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시고 어떤 말씀을 주셔서 자신이 어떻게 거듭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사실적인 경험과 체험을 말한 것이다. 언제나 앞서 모든 것을 이루신 그 그리스도를 자신은 보았고 경험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이미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율법을 몰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것을 베드로 자신은 보았고, 욥바에서도, 가이사랴에서도, 안디옥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 너무 기뻐하시며 이방 사람들에게 그 구원의 역사가 성령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했다. 이 일에 쓰임 받기 위해 갈릴리 출신, 무식한 자신과 같은 사람도 선택하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 안에 머물러 계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성령의 사람이 되었기에 어떤 문제 앞에서도 사단과 영적싸움을 하여 어둠의 세력이 결박되는 것을 베드로 자신이 알고 체험하고 확인했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무식하고 가난한 갈릴리 출신이라도 상관없다. 하나님은 앞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사랑교회를 보내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만 말하는 예수사랑교회로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이일을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역사하심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달은 자의 미래는 하나님이 이끄신다
행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갈보리 십자가로만 해결된다는 그리스도를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 이다. 그런 자는 재앙을 면할 수 없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 이다.
행15:7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τον λογον του ευαγγελιου και πιστευσαι)
헬라어로 성부 로고스 하나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그리스도를 듣고 믿어져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을 들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온다. 복음의 말씀이 아닌 것은 쥐약을 먹는 것과 같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고 그리스도를 좋아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셨다. 예배 때 강단에서 복음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한다. 담임 목사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 복음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이 임하는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된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 직통하는 길이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예수사랑교회 예배 말씀을 듣다 보면 어느 날 묶인 것이 풀어지고 다른 생명들도 풀어주는 자가 된다.
행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이방인들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그리스도를 좋아할 수 있고 성령이 역사해야만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고백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노래 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를 가진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언제든지, 어떤 문제 앞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할 수 있다. 아무 문제도 없이 살다가 죽는다면 그리스도를 부를 이유도 그 권세를 사용할 이유도 모른 채 구원 받은 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전쟁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는 누려진다.
행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으시는데 누가 이방인들을 차별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묻지 않으시는데 누가 과거를 물을 것인가? 왜 이방인들의 과거를 가지고 그렇게 쟁쟁거리냐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음식을 먹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것이 풀어지면 먹으라고 해도 먹지 않는다. 재앙에 덮여있던 이상한 문제 속에서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운명에 묶여있는데 할례를 주고 십계명을 지키고 율법 속에 들어가라고 하면 안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묶인 것을 다 풀어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셨듯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방인들을 묶고 있는 것도 풀어주자는 것, 이런 가슴이 전도 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묶이고 과거에 밀려 앞으로 걸어간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달았다면 미래가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영원하신 그리스도, 영세 전에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다면 미래가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르시고 선택하신 자이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있기 때문에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다. 오늘 속에 그리스도를 가졌다면, 그리스도가 나를 밀고 가산다면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다. 만약 과거가 우리를 밀고 있다면 가지 말고 멈춰라. 그리고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잠시 멈춰 사단을 결박해라. 가난을 견딜 수 없어 일어나고 싶다면 멈추고 시기심이 나서 견딜 수 없다면 멈춰라. 우리가 복을 받고 싶어 전도하러 간다면 멈춰라. 그리스도는 미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누리고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증거 있는 증인이 된다면 그 분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이 축복을 모든 생명들이 누리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육체를 세상의 종으로, 사탄에게 내어주어 일평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광야와 같은 인생 속에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세상 이길 힘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원한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말씀을 강단 말씀을 통해 바르게 이해하고 누림으로 문제 앞에서도 누구에게도 핑계대지 않고 무가치한 변론과 다툼을 무너뜨려 인생의 묶인 것이 풀어지는 증거가 있게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멍에까지도 풀어주는 자, 재앙을 끊어주는 자로 그리스도를 믿는 절대적 믿음 속에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