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바꾸는 힘, 그리스도에
생명 건 전도제자
행15:22~35
2016.02.14 1부 말씀
나를 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하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고통의 풍파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우리에게 주신 창3:15로 능력 대결을 시작할 때, 자신과 현장을 바꿀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
이번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신 분도 있고 가족끼리 여행을 다녀온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바뀌지 않았는지 아마 목격했을 것이다. 불신자들의 육신적인 언어 속에 소망적인 언어는 줄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심령을 빼앗고 멸망케 하는 사단이 네 귀때기에 와 있으니 정말 능력대결해라. 불평하고 남을 비판하고 신세타령 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뚜렷한 싸움의 대상을 알아라.” 이런 말 한 마디 건너지 못하고 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명절이 지나 오면 성도들에게 영적인 힘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 우리는 영적 전쟁, 능력 전도를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세상 풍파에 밀려 허우적대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연약할 대로 연약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마귀의 일을 멸해야만 살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을 만나 육신적인 위로를 하면 서로에게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어둠의 늪 속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같이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래서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자신과 영적싸움을 시작할 때 환경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언약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진짜 응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진짜 응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전부다 육신적인 생각을 하지만 우리 자신이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진짜 응답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칠 때 이삭과 아브라함이 진짜 응답을 체험하고 나서는 그들을 막을 자가 없었다. ‘아, 내 대신 수양,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구나.’ 사망의 법, 죄의 권세에서 일평생 묶여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살아가야 될 기구한 운명의 저주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해결하셨다는 것이 우리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되고 뿌리내려지고 체질화 된다면 어떤 문제나 환경, 상황 앞에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쳐서 복종시키고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죽지 않으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에 대해 뚜렷한 연대, 장소, 동참했던 인물들이 성경에 나와 있고 그들이 직접 보았고 들었던 그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까지 임했기에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달려 죽으신 그 자리를 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핑계, 책임전가, 변명해서는 안 된다.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에 숨는다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축복이 있는데, ‘너 행복자, 너 이스라엘, 영세 전에 택한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면 이제 네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된다.’ 이것이 우리 자신에게서 살아나야 우리 자신에게 영적인 스스로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적인 스스로가 나와 가룟 유다처럼 자살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되고 사람을 팔아먹는 자, 배신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영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영혼 속에 머무를 때, 영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스스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에 부패되어진 것이 새로워지고 영적인 눈이 열려져 정말 멋있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눅10:17~19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에 육신적 위로, 세상의 방법으로 무엇인가 상담하려는 헛소리 잡소리를 끊고 이제는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능력, 오직 그리스도로만 해결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자신을 언제나 바꾸는 힘, 현장을 바꾸는 힘, 사단에게 길들여졌던 옛 사람을 바꾸는 그 힘의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로 주셨다.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 인도를 받는다. 그 때부터 영적인 스스로 사람이 되기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직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적권세를 사용하지 않으면 인생에 지뢰밭을 밟고 수류탄을 맞고 서로 잘 만나서 육신적 위로를 해주던 사람들이 어느 날은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존재가 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생의 연속이 될 뿐이다. 절대적 성령인도를 받았던 요셉은 인생의 문제와 노예로 팔려가는 상황 앞에서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당해 감옥에 가도 그에게는 그것이 시련이 아니었다.
현장을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머물러 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능력대결을 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시간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고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불신앙의 뿌리가 그 때 사라진다.
-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 참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 올바른 언약의 사람이 되었고 그리스도를 소유한 참된 삶을 살면서도 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사람 앞에서 작아지고 육신적 위로나 해주는 불신앙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가? 무엇인가 육신적으로 알아보려고 하고 민감해지는 육신적 신앙을 이제는 영적으로 바꿔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무기를 가지고 기도로 도전하면 모든 것이 풀려진다. 명절이나 휴일이 지나면 영적인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바뀌어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있는 현장에서 늘 기쁘고 감격하며 살아야 한다. 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있는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전달할 때 증거 있는 응답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인생의 고통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만 해결되기에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우리 삶에 성취되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까지 나무 십자가에 달려 처절한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남은 자, 흩어진 자로 나그네 인생을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받았을 뿐 아니라 이제는 옛 사람으로 살게 만드는 마귀의 일을 멸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우리는 연약하고 보잘 것 없고 배경도, 힘도 없기에 오직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성령 충만함 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 영혼 속에 마가다락방을 만들어 놓고 다시 한 번 영적으로 꺼진 불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켜고 새롭게 도전하여 빛의 경제의 축복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딱 하나, 오직 “기도” 뿐이다.
기도 외에는 어떤 능력도, 창조도 불가능하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가난할까?’ 하고 그 사람을 들여다보면 딱 하나, 이 기도가 안 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주셔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을 통해 무능과 무기력을 콱 밟기만 하면 됨에도 기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2017년 구정에 금의환향하고 싶다면 이제는 육신적으로 잠자는 인생이 되지 말고 깨어나야 한다. 초점도, 방향도 맞지 않고 끊임없이 육체의 우상에 묶여 질질 끌려가지 마라. 한 번의 예배 속에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있다면 육신적으로라도 따귀를 때리고 ‘너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정신 차려라. 지금 우는 사자에게 목덜미를 물렸구나. 권세 있는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는 사자, 너 마귀의 입을 내가 찢는다!’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 창3:15이 우리의 목표가 될 때 모든 문제는 풀린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가 있기에 예수님께서 창3:15을 정말 부탁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하면서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고 거울을 보고 또 하고 반복적으로 영적싸움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적 위로와 신세타령하는 저주의 입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닫힐지어다!’
이런 영적싸움 속에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응답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성도는 영적싸움을 할 때, 스스로 삼가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지키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사도행전 15장 전체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얻은 결과를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공회에서 결정된 그 내용을 이방 교회에 다시 가서 전달하도록 하고 이것을 공회에서 확인한 증인들까지 함께 파송했다.
그리스도는 절대적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창3:15, 마16:16, 마28:18~20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로 영적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삼가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지킬 줄 알게 된다는 것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형제간에 싸우고 아귀다툼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에게서 사랑이 나오지 않는 이런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이제 모든 빚을 탕감 받고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다면 간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영적싸움을 통하여 지켜져 간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인생이 잘 되고 평안이 오는 것이다.
행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바울과 바나바의 신앙적 소견, 베드로의 증거도 듣고 예루살렘 교회 1대 감독인 야고보가 내린 마지막 결론의 메시지다.
육신적인 것부터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면 자신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 인, 자율적인 사람이 되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이지 율법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자기 고집, 수많은 편견, 사상, 자신에 대한 우월감 등 수많은 것이 있다. 이미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깊이 뿌리내려 체질화 되어있는 요8:44는 살인의 영이라고 말씀했다. 이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받은 자가 맞고 그 생명이 들어가 그 이름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면 반드시 그 구원의 감격 속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창3:15은 하나님 앞에 정직해지는 영적대결이다.
본문에 베드로, 바리새적인 유대인들까지도 하나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유대인들은 바나바, 바울을 고발한 자들이었다. 할례를 받고 법도와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수많은 사상들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를 고발했던 자들이 하나가 되고 그들과의 합의점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방 교회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제도와 전통, 규례 속에 빠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말 뿐만 아니라 글로 전하는 것 그 뿐 아니라 그 현장의 분위기를 보았던 두 명의 증인들까지 보내어 전달하도록 했다. 바나바와 바울은 고발을 당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고 그들이 다시 가서 말을 하면 힘이 없을 것 같으니까 그 현장을 목격한 두 명의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회에서 진행되었던 그 회의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러 보내는 것이다.
문제될 일도 아닌 것을 문제 삼아 바울과 바나바가 고발당하였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에 그 능력되신 그리스도로 육신이 추구 하는 우상의 재물,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피와 목매어 죽인 것, 세상적인 정욕으로 인해 음행으로 가게 만드는 음란의 영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자율적으로 꺾을 때, 스스로 삼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엄청난 비밀을 선포하게 되었다.
행15: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이 세상에는 문제될 것도 아닌데 문제를 삼아 사건을 자꾸 만드는 자들이 있고 우리를 미혹케 하고 영적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우리 안는 우리를 자꾸 혼미케 하고 합리화의 옷을 입고 살아가게 하며 끊임없이 죄를 범하게 만들고 회개만 하다가 죽기만 바라는 악한 영, 불신앙의 씨가 있다.
행15: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그 다음에 야고보는 결국 바울 바나바를 높이 추켜세운다.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듣고 그들의 팀 사역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들은 언제나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아까지 아니하며 우상의 육체를 따라 음행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은 전도제자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사랑교회에서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영원한 면류관과 짧게 사는 인생을 바꾸면 되겠는가? 지금부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스스로 삼가 잘되는 인생이 될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전적으로 그들의 말을 신뢰하고 그들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들으며 금해야 할 것은 금하라고 말한다.
바나바, 바울, 베드로, 야고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일치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성령이 함께하고 기도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한다는 것을 일치함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우리 안에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영적인 능력 대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며 절대적 복종을 하는 것이다.
29절에 나타난 마지막 결론, 육체를 신뢰하게 만드는 육신적인 것을 스스로 삼가기 시작할 때 잘 되고 평안함이 임할 것이라는 이 말씀이 우리 삶에도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시작하라.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용서해라.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구속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탕감 받았다면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선교 기업이 되라. 오늘 밤 우리의 영이 떠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정말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소망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빌1:27, 오직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고전6:19~20,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하시고 그냥 따라오지 말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곧 언제나 싸울 대상을 명확하게 알고 능력 대결을 시작하게 된다면 날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축복이 예수사랑 가족에게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육신적인 불만과 신세타령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잃어버린 삶을 되찾는 비밀, 하나님의 절대적 언약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내 자신을 죽이고 오직 그리스도 내 안에 살아 내 안의 모든 연약함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르는 절대적 성령인도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했기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수 있는 유일한 비밀, 싸울 대상을 정확하게 알고 능력 대결하는 영적싸움을 통해 육신적인 것을 복종시키며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지킬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 인,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