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생명 얻었다
마28:1~15
2016.03.27 1부 말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수님이 계셨던 그 무덤을 막았던 돌은 로마 군인 수 십 명이 굴려서 막을 만큼 인간의 힘으로 쉽게 움직여지는 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돌은 로마 황제의 도장을 찍어 손만 갖다 대어도 로마법에 걸려 죽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역사적 증거에도 나타났듯이 그 돌은 옮겨졌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이 사실을 확인하러 간 군사령관이 예수를 만나고 믿게 되면서 로마 복음화 곧 세계복음화의 초석이 되었다.
그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숨을 쉬면 죽은 세포도 살아난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육신적, 정신적, 영적으로 질병이 찾아온다. 그 질병은 바로 ‘두려움’ 이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했기에 하나님의 사랑, 부활의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 곧 그 사랑은 영적 전쟁을 말씀한다.
* 사단에게 농락당하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3:15의 언약을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예배에 만족하는 힘을 갖도록 영적 흐름을 타면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살아나게 된다. 예배에 성공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실패를 안겨줄 시간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반드시 예배를 통해서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예배의 만족을 위해 얼마나 예배를 사수할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진다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한 번의 예배 속에서 반드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내가 전도사 시절로 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북한에서 내려와 한국에서도 부자 중의 부자였다. 엄청난 권력과 실력도 있었고 서울 중심에 큰 빌딩도 여러 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성공했다며 자만하며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 번은 내게 이상한 말을 했다. “김 전도사는 부활이 믿어져?”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삽니까?” 했더니 나보고 부활을 증거 해 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장애인, 군부대, 교도소 사역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성경의 그 믿음 그대로를 가지고 버티고 살았을 뿐 사실 부활의 능력이 실제적인 힘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았을 터라 그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2-3년이 지나서 그 분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자기 손자가 죽었으니 자기 가문을 위해서 꼭 기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손자는 서울대를 거쳐 미국에서도 공부를 굉장히 잘한 엘리트였다. 모든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지하철역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들어오는 지하철에 그대로 뛰어들어 죽었다. 그 장면이 지하철 CCTV에 그대로 찍여 있었고 그 죽음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자살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온 집안에 혼란이 찾아오고 그 아버지는 정신적인 문제가 와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소식을 끊었고 집안 전체는 완전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성경은 이것을 보고 영적인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한다.
창3장 사건에 의해 가정과 개인, 사회와 국가가 사단의 속임수에 농락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시기 위해 창3:15,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서 성경 39권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신 것이다.
창3:15의 비밀을 인간이 느끼지 못하고 믿지 않아 물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 물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자는 노와와 그의 가족 뿐 이었다. 노아는 단을 쌓고 여호와 그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이 그를 ‘의인, 완전한 자’ 로 인치시고 그와 함께 동행 하셨다. 물은 곧 세례를 의미하며,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씻김을 받은 자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이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 끌려가 430년 동안 엄청난 저주와 재앙, 죽음의 환란을 당했다.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하늘에 그 소리가 닿았다고 했다. 그 때 하나님은 예수 피를 알아듣는 모세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여러 번 말씀했는데도 늙은 나이에, 인생 마지막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기억한다. 창3:15 예수 피,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러 스스로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모세가 창3:15을 가슴에 담고 그리스도로 자신을 살려냈을 때 두려움과 공포의 현장, 애굽에 들어가 애굽 왕을 만난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피의 제사를 지내지 않아 망하게 되었으니 우리 민족을 데리고 피의 제사를 지낼 것이며 이것을 방해하는 모든 족속은 하나님이 멸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문설주와 인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도록 했다. 창3:15의 비밀인 예수그리스도만이 모든 저주와 재앙을 막는 이름이기에 그 이름을 적용하지 않으면 어떤 강대국, 강한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저주와 재앙을 피할 길이 없으며 창3:15이 적용되지 않으면 사단에 의해 농락당하고 그 나라와 가정까지 저주와 재앙이 들어오게 된다. 이 피의 언약을 무시한 애굽은 결국 망했다는 것이 역사에도 나타난 사실이다.
성경은 이미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 믿지 않고 의심한다는 것을 알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의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담아 의심으로 우리 인생을 농락하는 사단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자 되어야 한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 낼 때 부활신앙이 우리 영혼 속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살아나게 된다.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의 뒤꿈치를 뱀이 상하게 하지만 여기에서 상하게 한다는 말은 그냥 슬쩍 건드려 멍들게 할 정도의 상함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놈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여기에 우리가 의심으로 망가지고 두려움으로 짓눌려 사단에게 농락당한다면 내일의 종말을 맞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고 우리를 농락하는 생각들, 견고한 진을 사로잡아 타파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지금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며 그리스도로 숨을 쉬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 이름을 일심, 전심, 지속으로, 일사각오(一死覺悟)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숨을 쉬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서라!’ 명령할 때 부활의 역사는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실천하지 않았던 그 유명한 재벌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가문에 임했다고 자랑은 했지만 어느 날 신앙도 사라지고 불신앙 속에서 예배도 자신의 마음대로 드리다가 부활 신앙도 맛보지 못한 채 정신병으로 비참해지고 하나밖에 없는 독자는 재앙으로 죽어 가정이 풍비박산 되는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나는 확인했다.
* 부활 신앙을 실재(實在)로 느끼고 영전전쟁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는 역사하신다.
왜 예수만이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가? 바로 창3:15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만이 죄와 사망의 권세, 지옥의 권세와 마귀에게 농락당하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엄청난 권세와 능력을 안겨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어둠아 의심아,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며 그리스도로 숨 쉬지 못하게 하고 내 인생 전체, 내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며 농락당하게 만드는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망각하게 만들어 내 인생을 농락하는 악한 영아 너는 사망의 저주로, 무저갱으로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선포할 때, 바로 창3:15을 말씀대로 실천하며 성취시키는 주인공이 된다.
인생에 왜 두려움이 오는가?
우리 몸속에 견딜 수 없는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무엇인가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 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두렵고, 사람을 만나는데 심령이 오그라들고, 알 수 없는 염려와 낙심, 불안이 날마다 파고들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단으로부터 우리 인생이 지금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달려오는 지하철을 향해 몸을 던지고, 최고의 성공자가 수십억의 돈을 모아놓고도 자기 생일에 인생의 고독과 쓸쓸함을 이기지 못하고 위스키 한 병을 마시고 최고의 아파트에서 한 장의 유서도 없이 떨어져 죽는다. 이런 문제로 사단에게 농락당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박살내라고 하셨다.
“목사님은 왜 그렇게 창3:15만 강조하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창3장은 분명 아담과 하와가 사단에게 농락당한 사건이다. 이들 뿐 아니라 그의 아들 가인도 농락당했고, 아벨은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시체가 되고 그의 후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항하고 저주하는 교만의 백성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창3:15을 놓치고 살아왔던 자신을 향해서 그리스도 외에 길들여진 모든 견고한 진들을 사로잡아 타파시키는 것만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후10:4~5.
우리 인생에 어떠한 상황이 놓여있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에게 속지 말고 사단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창3:15, 마16:16, 내 인생의 주가 그리스도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된다.
그런데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믿어져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實在)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실재로 느끼지 못한다면 늘 눈에 보이는 허상을 좇으며 멍 때리는 인생으로 산다. 그래서 영적싸움이 안 되는 것이다. 허상을 바라보고 생각에만 잠기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우리 자신의 근원, 창3:15이 바로 우리 인생의 실재가 될 때부터 우리 인생의 문은 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떠한 환란, 고난,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요19:30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으로 부딪쳐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내 인생의 죽음까지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음에도 어찌하여 너는 낙망하냐,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서라! 그리스도로 숨을 쉬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오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 영혼 속에서 죽은 세포도 살리신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선포해야 한다. 이것을 부활신앙이라고 하고 종말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
“네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신앙을 가졌고 그 부활의 그리스도를 체험했다면 이제부터 그 예수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신다는 것이다. 이 믿음과 기쁨과 이 역사에 대해 명확히 말씀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1. 보지 않는 것들의 실재를 봐야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과 기도와 감격이 있게 된다. 그래야 예배를 사수하게 되고 한 번의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 인생이 만족되는 것이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인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믿는 각 사람에게 지금 역사하신다. 그리스도로 숨을 쉬고 그리스도로 호흡해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적인 힘이 살아나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눅24:5~6, “...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해 초월적인 하나님의 실재를 움직여 가시는데 곧 마16:16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한 자들을 통해 움직여 가신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을 때는 그 분을 고백만 하게 하셨지만 이제는 우리가 부활의 빛을 그리스도로 보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그리스의 영이 성령 되심을 인정한다면 이제 그분을 느끼면서 호흡하고 ‘일어나 서라’ 고 명령해라.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선포할 때마다 성결의 영 그리스도는 역사하신다.
롬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믿어야 한다.
본문 마28:1~5에, 창3:15 마16:16의 주인공 되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제국에 의해 십자가 처형되어지는 것으로 막을 내린 듯 보이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었다. 하나님 백성의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해결하셨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을 정죄하지 않으신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윤리와 도덕적인 것에도 다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가 맞지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 까지도 도와주기 위해서는 모든 육체의 정욕을 사로잡는 전도제자가 되어야 한다. 눅23장,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과거, 현재, 미래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이 이 부활을 보았다.
갈릴리 촌사람들이 예수를 저주했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 때문에 고기 잡으러 도망가고 숨어 있다가 로마의 군인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모함에 자신들을 붙잡아 거짓증언을 시키기 위해 자신들을 잡으러 다닌다는 상황에서 정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잡은 것이 없지 않느냐, 와서 조반 먹으라 말씀하시고, 도마에게도 찾아오셔서 너를 위해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았던 그 사건을 느끼고 싶다면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라 말씀하셨다.
이 모든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성경 39권을 통하여 하나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셨던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절대적 진실과 사실을 가지고 이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가 흘러넘치자 담대함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담대함이 왔는지 화형 시키고 돌에 쳐 죽인다고 해도 마가다락방에 들어갔다. 이렇게 부활을 느끼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부활은 굿 뉴스 이다. 복음 곧 하나님의 능력은 ‘전쟁을 선포한다’ 는 뜻이다. 그래서 복음은 전쟁이다. 우리 자신에게 부터 전쟁을 선포해라. 그리스도로 숨 쉬고 그리스도로 일어나 서라 고 명령해라.
*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며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모든 종교는 부활이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단에 의해 농락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활을 전쟁으로 선포해야 한다. 언제든지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은 살아서 성령으로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 안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그리스도로 숨쉬기 시작할 때 저주와 재앙과 죽음이 당신을 빗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무릇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축복이 담겨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또 기뻐해라.
부활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 사단, 귀신, 악령, 종교들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부활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외치는 부활을 없애기 위해서 종교는 하나라고 지껄이며 자기들과 한 종교로 취급하며 함께 가자고 속인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음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심기어졌다면 생명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4에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성경은 오래전부터 인간에 대한 해답에 대해 예언하셨다.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부활이 없다고 농락하는 의심의 영, 두려움을 가져다주며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머리를 갈아버려라. 인간의 죄와 저주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 메시아, 그리스도는 반드시 우리를 위하여 오셨다. 이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셨다.
유대인들도 믿지 않기에 바울을 통해 이방의 문을 여셔서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개 같고 쓰레기 같은 이방인인 우리가 지금 받게 된 것이다.
성경의 핵심은 바로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뱀에게 뒤꿈치를 상하게 되는 그 사건이 곧 십자가의 죽음, 그분이 살짝 멍이 들 만큼 기스는 났지만 그 그리스도는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셨다.’ 는 것이다. 이 사실이 바로 굿 뉴스, 기쁜 소식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서 권세가 주어지는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거는 역사적으로도 그 시기를 뚜렷이 나타낸다.
‘본디오 빌라도 때’. 이 부활에 대해서는 육하원칙으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의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사단에게 농락당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했다.
군대가 지키고 큰 돌로 무덤입구를 완전 봉했음에도 이 돌은 움직여졌고 무한한 천군천사의 빛이 임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많은 군인들 중 일부는 돈을 받고 거짓증언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 사실에 대해 총독으로 명령을 받고 조사를 하는 집행관은 오히려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증거이며 사실이다.
부활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스스로 오셔서 스스로 죽으시고 스스로 부활도 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역이었다는 것이다.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롬6:9~10,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살아계심은 하나님에 대해 살아계심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40년 동안 지었던 헤롯 성전이 무너져도 내가 그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겠다는 것은 당신의 사역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10:10, 사단, 마귀, 귀신에게 심령을 농락당하지 마라. 요10:18,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모든 것을 얻어 세워 일으킬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창3:15의 언약 속에 부활을 믿었던 이삭은 제단에 바쳐지기 위해 온 몸이 묶여 아브라함이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 풀려나 아브라함의 품속으로 돌아갔고 그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은 창3:15의 언약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고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믿는 믿음을 통하여 샘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요셉은 창3:15을 믿는 부활 신앙으로 감옥에서 해방 받았을 뿐 아니라 바로왕의 오른편에 앉게 되었듯,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부활신앙이 있어야 하나님 보좌에 예수님과 같이 앉을 수 있다. 그래서 엡2:1,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살리셨다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엡2:3의 진노의 자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엡2:6,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앉히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은 이 시대 부활의 증인, 부활을 본 자가 되길 축복한다.
행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부활의 당위성을 가진 자는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렇게 명령한다. 행17:1~9.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음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물로 드리고 받으셨다. 렘33:1~26, 예레미야의 모든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주신 답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부활의 기쁨과 축복이 마음껏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3장 사건으로 인해 의심과 두려움 속에 사탄에게 농락당하는 영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의 약속대로 오셔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아무 공로 없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증거가 내 안에 있기에 부활의 빛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날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숨을 쉬고 그 능력으로 명령하여 내 자신을 일으켜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도행전1장8절을 성취시키는 삶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