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눈을 떠야 보이는 영적인 비밀, 그리스도
행26:13~18
2016.11. 27 1부 말씀
“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행26:19 하늘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거역할 수가 없어서 오늘도 복음을 전하노라고 사도바울은 본문의 결론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명령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할 수 없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
* 하나님이 명령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할 수 없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창세기 3장으로 인해 사탄의 생각이 사람 속에 들어가 사람들은 그리스도만을 거부하는 육체가 되어 있다
왜 하나님이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면 안 되는가? 이미 창세기 3장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 속에 사단의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사단의 생각으로, 사단의 시스템으로 성장하게 되기에 아무리 하나님이 무언가를 다 해 주셔도 거역만 하는 것이다. 엡2:1,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음에도 그리스도를 거역한다고 되어 있다. 그만큼 성령 충만 보다는 사단이 심어주는 육신적 생각에 사로잡힌 게 우리다. 교회까지 와서 앉아 있음에도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육체로 앉아있다. 육체가 된 인간은 자기의 수준으로 신앙에 대해 운운하는데 합리주의가 되어 자신을 위해서 합리화의 옷을 입은 채. 믿는 척, 아는 척, 느끼는 척, 체험하는 척하고 있다. 그리고 감성주의자가 되어 감정적으로 살아간다. 어제는 하나님이 믿어졌다가 오늘은 안 믿어지고, 또 별것 아닌 사람의 말을 듣고 그나마 지금까지 갖고 있던 작은 신앙마저 무너진 채 변명하고 핑계대고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하다. 이만큼 창세기 3장이 우리의 영혼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유리방황하고 있다. 우리 교회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물어오셨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창세기 3장에 각인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답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를 실패하면 모든 것을 실패하게 된다. 특히 복음 가진 교회의 예배를 실패하면 크나큰 실수다. 지금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도 자신의 수준으로 변명하지 말고, 주일 메시지를 자꾸 들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묻지도 않고 저절로 치유를 받는다. 만약 메시지를 계속 듣지 않으면 자꾸만 자신의 수준으로 신앙에 대해서 운운한다.
창세기 3장으로 인해 우리 안에 각인된 원죄는 이기주의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래서 자기중심의 자기수준의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요3: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복음은 틀림없이 누림이다. 그럼 어떻게 복음을 누리고 어떻게 거듭나는가? 자신의 우상사상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려라. 이미 사단의 생각이 깊이 각인된 인간은 육체를 사랑하는 우상 문화에 장악되어 있다. 그래서 골3:1-6,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 또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다.마6:33 땅엣 것은 철학, 이데올로기로 형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길들여진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장악하려는 체질로 굳어져 있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려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절대 신앙이 되지 않고 그냥 제쳐놓고 개기면서 산다.
그리고 나라마다 민족마다 민족주의와 패권주의, 즉 실리주의에 빠져 있다. 그런 사상에 사람들은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관이 없다. 세계관이라는 말은 '눈을 뜬다'는 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눈을 뜨고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너희들은 이미 봉사다.’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영적인 눈을 떠야 하는가? 눈을 안 뜨면 하나님이 안 보이고 안 믿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복음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즉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요3:16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영적인 눈이 자동적으로 열린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내셨다. 이런 복음적 세계관을 가지면, 각인된 옛사람이 새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 현재가 해결되고 미래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진다. 믿어지는 게 하나님의 은혜이며 치유를 받고 있는 증거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의 수준으로 변명하고 합리화 하면서 인생을 산다. 그렇기에 뚜렷한 색깔이 안 나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을 내쫓아야 치유를 받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그리스도를 계속 영혼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치유를 받는다. 영적인 눈을 떴다면, 날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느끼면서 살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힙 입어 우리 속에 더러운 것을 내쫓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마12:28 하나님 나라가 영혼에 뿌리를 내리면 강한 자를 결박하게 된다. 그런데 강한 자가 시키는 대로 하기에 우리의 이상한 수준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나는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견인하시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으면 슬프고 고독한 신세타령하는 인생이 된다. 바울이 왜 고생을 많이 했는가? 가시채를 뒷발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생하는 이유는 거듭남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가정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고통을 받는가? 거듭남의 역사가 없고, 합리주의로 살기에 상처만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면 상처가 사라지고, 남에게 상처 줄 일도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 자신의 비전이 된다. 그런데 상처로 움직이면 콤플렉스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기름 바른 말들을 자꾸 하는 것이다. 오늘 이런 사단의 시스템 속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란다.
→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없으면, 영적인 정지 상태가 된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보이면 기도로 체질을 바꾸기 시작한다. 기도로만 체질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다. “내 이름으로 시작해라.”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16절, '이제부터는 네가 네 발로 설 수 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땅 끝까지 도전하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예수를 믿어도 슬픈 사람이 되고, 자기 수준으로 ‘안 된다’는 말만 하고, ‘좀 이해해 달라’고만 말한다. 하지만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것이 안 되면, 절대 못 일어난다. 사람, 환경을 의지하고, 생각에 잡혀버린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영적인 힘을 얻길 바란다.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체질이 바뀐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가진 사람은 남은 생애에 모든 축복을 받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이 하나님의 힘, 영적인 힘을 받은 자다. 복음에 눈을 뜨고 복음적인 세계관으로 충만해지기를 축복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수준이 정지되어 곤고해지고, 악령으로 충만해진다. 목사라도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에 대해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 절대성이 없으면 되는 것 같은데 박수 스타일로 목회를 한다. 박수 같은 목사들에게 끌려 다니면 성도들은 스스로 점을 친다. 흔히들 긍정의 힘이라고 하는데 '잘 될거야‘. ’괜찮아 질거야.‘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라든가 찬양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거야.'라는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점을 친다. 그러니 처음 상태인 육체 우상에 그대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에는 집중할 수 없다. 즉 부활 이후의 메시지가 삶의 비전이 안 되는 것이다. 자신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합리화의 옷을 입은 채 늘 거짓말만 하다가 스스로 멸망한다.
* 영적인 눈을 떠야 보이는 영적인 비밀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포로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 세 번에 걸쳐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후에 일어난 역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26장에는 다메섹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예수를 만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 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역사가 있었다. 9장에는 의사 누가가, 사도바울이 회심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해 놓았다. 사도행전 22장에는 바울이 1차 선교를 다녀온 후 현장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던 중 체포되어 돌에 맞고 욕지거리를 듣는 등 핍박을 당했는데 그 때 로마사람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해 준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 체험한 바울에게 나타난 십자가의 기초적 신앙
그런 여정 가운데 경험한 사실을 바울은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다. “제가 만나고 체험한 예수가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만난 후 제가 달라졌지요, 오늘 제가 핍박 받는 이유도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압제하고 핍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집어넣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엄청난 권한을 가지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이라는 외국까지 갔을 때, 햇빛보다 더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26장에서는 바울이 유대 나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간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이후로 유대 나라를 떠난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하게 된다. 본문에서 바울은 유대 나라를 통치하진 못하지만 왕의 혈통인 아그립바왕에게 마지막 간증을 호소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예수가 창3장15절 여자의 후손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이심을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강력하게 증거한 사건이다. “옛 사람으로 살았던 제가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옛사람으로 유일성 여호와 하나님을 말했던 제가 드디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180도 완전 달라진 사람의 변화를 지금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어설픈 교리로, 신학으로 배우려고 하지 마라. 예수사랑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무한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내 영혼을 장악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여 옛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나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내 삶에서 무너질지어다.”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심에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저주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바로 본문의 내용에서 영적인 싸움에 절대적이라는 것을 바울은 메시지로 주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라는 비밀을 말하게 된다.
우리는 인생에 분명한 역사적, 사건적 증거와 십자가의 증거와 부활 사건이 기초적 신앙으로 나타나야 한다. 기초적 신앙이 무엇인가? 내가 과거에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를 만난 이후 사단의 일을 멸했더니 하나님의 영적인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세계관이 열린 것이다. 복음의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살아있는 이유가 그리스도 때문이다.’라고 할만큼 되어야 한다. 이게 안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원죄덩어리를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내라! 언제나 예수 십자가 사건이 기초적 신앙이 되어야 한다.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를 나에게 주셨음으로 이제부터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강권적 사랑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은혜가 있었다고 아그립바왕 앞에서 간증을 했다.
→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으니 진리를 향해 걸어가라
그리스도의 포로가 된 사람은 자유가 없다. 그리스도의 포로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에게만 속해있다. 자유하고 싶어도 그리스도에게 잡혀있기에 자신의 수준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아간다. 이게 바로 영적 싸움의 비밀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19절, 하늘에서 내게 보이신 것을 어찌 내가 거역할 수 있는가!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거역할 수 없다. 그리스도 이름이 주어졌고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다면 진리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도둑놈으로, 사기꾼으로 살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으니 진리 속에 설지어다!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고 다스리고 자기 자신을 일으킬 수 있어야 된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명령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절대 버티지 마라. ‘아그립바왕이여 하나님의 절대 명령을 따라가지 않고 버티면 당신도 나처럼 고생한다’는 말을 바울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티지 말고 아그립바왕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회의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이면 반드시 가라. 하나님의 명령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 절대 비전을 잡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기에 자신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런데 자유자로 살면 그게 정욕적, 마귀적이다.
기초적 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십자가의 사건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아그립바왕 당신도 이런 경험을 했다면 저처럼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나타나시고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신 것은 저 하나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온 인류, 모든 나라가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명들이 구원을 받아야 하기에 자신의 자유는 없어야 한다. 바른 진리 그리스도만 사수하고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 옛사람의 수준으로 그리스도를 합리화하려는 옛사람을 깨부수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고, 핍박을 한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신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그것을 향하여 좇아가야 한다. 성령이 계시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메시지를 한다.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너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너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삼으시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16절,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더라.’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할 때 반드시 처음에는 소를 훈련시켜야 한다. 소도 여물만 먹으려고 하지 일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를 훈련시키는 방법이 소 뒷다리 부분에 쇠꼬챙이를 갖다 대는데 그렇게 해 놓으면 소가 흙을 팔 때 일하기 싫어서 뒷 다리를 자꾸 뒤로 찰 때 그 뒷다리가 닿는 부분에 쇠꼬챙이를 있어서 거기에 부딪히면 소가 아파서 놀란다. 여러 번 뒷발질 하다가 아프니까 뒷발질을 안 하고 밭을 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고 부르셨는데도 계속 뒷발질만 했기에 하나님이 가시 같은 고난을 주신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단의 머리를 밟았야 하는데, 오히려 사단이 주는 육신적 생각과 육체적인 우상과 감정에 사로잡혀서 흥분 상태로 인생을 살아 왔기에 하나님이 수많은 가시로 찔림을 주었건만 눈치 채지 못해서 결국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 메시지의 포로가 되었다고 한 번 상상해보라. 재앙의 시대가 도래 했으니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모든 사람들이 악령에 사로잡혀있으니 너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세계관에 영적인 눈을 열어라. 오랫동안 너를 붙들고 있었는데, 너를 택하여 불렀고 창세전에 예정하여 모태로부터 잉태케 했는데, 왜 너는 그렇게 뒷발질만 하고 있었느냐? 사단의 머리를 밟으라고 했지 언제 내가 뒷발질하라고 했느냐? 그래서 가시채에 찔려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그 때 사도바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것이 바울의 끝이었다. 바울이 핍박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왜 끝이었는가? 그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예수가 하나님이시란 말인가? 사도바울에게 십자가 사건, 곧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인가? 그가 창3:15의 주인공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말인가? 신령한 것을 알라고 했다.고전12: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절대 거역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적이냐, 신학적이냐, 복음적이냐 교회에 덕이 되느냐?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얼마만큼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은 변한다. 신령한 그리스도를 가지고 언제나 성령적이냐를 봐야 한다. 그리스도 아니면 성령이 아니다. 몸을 떠는 것은 성령적이지 않다. 그리스도는 객관적이고, 합리성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동사이기에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야 한다. 즉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옛사람, 옛 체질, 옛 종교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럼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주여 누구십니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바울에게는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왜 나는 예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 싸움하지 않는가? 오늘 확인하는 절차가 있기를 바란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함께 하시는데 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는가?
[결론]
→ 예수님이 구원하시고 보내신다 17절-18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내가 이제는 너를 보낸다.” 바울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명쾌하게 나와 있다.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이 말은, 예수가 바울을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다는 뜻이다.17절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 보냄을 받아야 한다. 구원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포로가 된다. 이제는 복음 전하는 일에만 자유가 있는 것이다. 보냄을 받아야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구원 받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영적 싸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가 바울을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매, 구원을 받으니까 ‘그 눈을 뜨게 하여’라고 했다. 새로운 세계관이 열렸다는 말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이 말은,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게 구원의 역사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18절 예수님의 목적은 죄사함을 얻는 것. 죄의 권세, 사망 권세, 사단의 권세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들을 제어하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음이니라. 다른 사람 것을 내쫓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것을 내쫓아라. 반드시 개인은 성화를 해야 한다. 마귀의 일을 멸하면 성화가 시작된다. 그게 거듭남, 거룩이다.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영적 싸움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권세가 충만한 사람에게 ‘기업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할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니 일어나 네 발로 서라. 16절 - 일어나 네 발로 서라. 그리스도가 함께한다면 일어나서라. 이제는 누구 도움 없어도 괜찮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끝나는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그래서 언제나 여러 고생 속에서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고생은 무너지고 새롭게 하나님의 비전의 역사 속에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해야 한다. 배고픔과 매맞음과 투옥당하는 것과 핍박과 환란이 와도 그리스도를 가진 자를 이길 자 없다. 바울이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그립바왕 앞에 포승줄로 묶여서 바울은 말을 하지만, 그는 아그립바왕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묶인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구원 받는다. 이 엄청난 축복을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이 받고 세계관이 새롭게 열리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사탄이 주는 생각으로 육체로 전락한 합리주의 속에 내 수준으로 신앙 생활했던 삶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영적인 눈을 뜨고 새로운 세계관이 열리는 영적싸움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기초로 두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여 거듭남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과거의 상처와 하나님 나라에 비전도 없이 살았던 영적 정지 상태를 기도의 체질로 바꿔 부활메시지를 나의 것으로 잡고 그리스도에 포로 된 자가 되어 하나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로 일어서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