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강 선한 증언을 하신 예수님처럼 주의 명령을 지켜라
딤전 6:13~16
2016.12.28 예수사랑교회 수요예배 말씀
세상의 시스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시키기 위해 만든 작전과 전략이다. 지금 지구상에는 범죄와 정신병이 급증하는 추세인데, 아무리 법을 계속 만들어도 끊임없이 범죄는 증가하고, 집안마다 곳곳마다 정신병자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사회는 중독의 시대로 치달아 가고 있고, 한집 건너 한 집이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가 종교화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멸망시키는 초자연적인 존재 마귀가 사람 속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반드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재앙에서 빠져 나오도록 생명을 주는 곳이 교회다.
사탄의 전략을 모르면 어른들은 어느 정도까지 의지나 깡다구로 버텨본다고 하지만 자녀들은 비참해진다. 지금 중직자의 자녀들이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 깊은 타락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흑암이 쌓여가고 있고, 그것에 길들여지고 있기에 그 결과는 곧 나타날 것이다. 종교성을 가진 기독인들의 자녀들은 마음과 정신과 몸이 다 병들어 있다. 심지어 목사님의 자녀들도 교회를 안 다닌다.
→ 복음을 체험하려면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탄이 자기 속에 활동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이라는 갈등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논리에 빠지는 자녀들이 어떻게 복음을 알겠는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어있다.
‘너의 자아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탄의 일을 멸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만일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우리 안에 사탄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다. 이렇듯 불신앙의 영이 개인을 장악하고 있기에 인간의 삶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다.
사탄은 인간을 잘 알고 있다. 언제 어느 때 공격해야 반응을 보인다는 것까지도 알고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탄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여 방어한다.
→ 언제 인간을 공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마귀는, 분냄, 시기, 혈기, 기분 나쁨, 자존심 상함, 이런 것을 통해 공격한다. 그래서 얼마만큼 예수와 함께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결과 및 미래는 달라진다. 즉 영적싸움을 놓치면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내면이 거듭나기는커녕, 더욱 강퍅해지고 사람과 원수 맺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거부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왠지 이 시대와 맞지 않다는 논리 속에 빠진다. 이런 생각을 타고 사람 속에 들어와 흥분케 하고 분열시키고 남의 말을 하게 만들 때 마다 그 마귀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의심,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합리화 한다. 이 말은 마귀하고 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오늘 부터 어떤 생각으로 인해 논쟁을 하게 될 때 즉각 마귀의 일임을 알고 밟자.
→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마귀에게 잡혔을 때, 하나님이 주신 것은 창3:15뿐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 하나님을 대적 하는 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이간의 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내라! 그렇지 않으면 논쟁에 빠져 합리화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양심에 화인을 맞고 십자가의 원수를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세상의 지식, 사상, 이념 및 자신이 가졌던 가문의 배경을 배설물로 여겼다. ‘내가 이루었다함도 아니요 얻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나는 그리스도 종의 신분을 가지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빌3:12~14 바울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 몸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바쳤다.
→ 거짓의 아비 마귀는 우리 자신을 자세히 볼 수 없도록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부탁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였다. 성령 충만을 받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서 거짓말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영을 내어 쫓아야 한다. 우리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현실에만 깊이 빠져서 오늘에 안주하며 세상적으로 산다. 그 결과가 분열이다.
개인, 가정, 교회 안의 분열. 그 분열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까지 한다. 즉 분열은 정신병에 이르게 한다.
→ 2016년도 마지막 수요 예배를 통해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부탁한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사탄은 초자연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여서 분열을 일으켜 인간관계를 깨트린다. 이런 사탄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내어 쫓길 바란다. 그래서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초월적인 존재, 마귀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 즉 그리스도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한 시간 정도 예배를 드리는데 집중이 안 된다면 먼저 진리를 가지고 마귀를 사로잡아 결박하고 내어 쫓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야 영생을 얻게 된다. 사탄의 세력에게 장악되지 말고 속히 빠져 나와라! 모든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기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재앙으로 인한 멸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아무리 부자, 권력자라 할지라도 겁내지 마라. 그들은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지, 권력은 개미다리 워커에 불과하다. 세상보고 떨지 말고 성공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줄 때, 메시지를 받게 된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아주 깊은 기도를 했다. 자기가 너무 사랑했던 라헬까지 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야곱. 그 이유가 무엇인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생명이라도 부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과 재물을 다 떠나보내고, 압복강가에서 이전에 돌베개를 했던 돌을 세우고 서원했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20년 전,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그 하나님과 얍복강가에서 몸부림치면서 씨름을 했던 것이다. 기도를 하고난 후 형을 만났을 때 자신을 죽일 것 같았던 형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고 입 맞추며 기뻐했다. 사람을 잡고 있는 악령을 결박하여 내쫓는 방법은 기도와 금식밖에 없다. 이것이 비밀이다.
*선한 증언을 하신 예수님처럼 주의 명령을 지켜라
1.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이 하신 선한 증언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13절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디모데에게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하신 선한 증거를 설명해 주고 있다. 요19:5, 본디오 빌라도가 끌려 나오신 예수님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권세를 가진 빌라도가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를 기분 나빠하고 죽이려 하고 저렇게 괴롭히며 이간과 핍박을 하는 것일까? 빌라도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에게는 정치적, 사회적 죄가 없었던 것이다. 재산을 탕진하거나 아니면 남의 재산을 빼앗는다든가 많은 토지를 확보하여 지주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는지 빌라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를 자꾸만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자기들이 재판을 해서 사형을 선고하고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데리고 온 것이다. 예수님을 보고 빌라도는 ‘이 사람을 보라’고 한 것이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분, 뭔가 신비에 쌓여 있는 분임을 알았기에, 예수님 앞에 선 빌라도는 두려움을 느꼈다. 예수님은 빌라도를 다 알고 계셨다.
1) 예수님은 사람을 알고 어떤 일도 상관하지 않으셨다
인간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고통을 받고 두려워하고 남을 죽이고 귀찮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면 침묵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고 다 아시면서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빌라도는 생각했다.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을 만큼 능력도 보이셨는데 왜 그런 분을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는가?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왜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미 빌라도는 아내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의 마음에는 ‘왜’라는 물음이 있었다. 왜 예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죽음을 생각할까? 능력이 있으면서 왜 고난을 당하는 걸까? 그리고 왜 더 이상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 걸까?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시키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요19:10 그래서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른 일도 없고, 확인해본 결과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죽으면 인생 끝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로 부터 얻었던 인기도 사라지지 않겠느냐, 왜 도대체 죽으려고 하느냐, 가지고 있던 그 수많은 선한 의와 거룩한 힘들이 다 없어질 텐데, 그러니 침묵하지 말고 살려줄 권세가 있으니 무엇이라도 말할 것을 빌라도는 예수님을 종용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선한 증거, 즉 침묵 하셨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의 일에 대하여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셨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방의 문제들을 상관하려는 불신앙이 있다. 창조주, 만왕의 왕이 살아계시니 사람을 상관하지 말고 내면을 치유하기를 바란다. 거짓말로 고소하는 사람도 상관이 없다. 채찍질 하고 침을 뱉는 사람도 상관하지 않았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비아냥거림을 당해서 상관하지 않으셨다. 즉 빌라도를 향한 선한 증거가 예수님에게 있었던 것이다.
2) 예수님이 보이신 선한 증언은 행동으로 말씀을 성취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행동으로 나타난 말씀이었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고 그는, 행동으로 말씀을 성취시키신 것이다. 고통의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밖에 없기에 고난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영광까지도 들여다봤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능력이요, 만왕의 왕이시다. 행동으로 나타난 그 말씀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말 없으신 예수님 그 자체가 증거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분이 바로 죽음과 부활을 우리에게 안겨준 증거다.
예수님의 침묵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을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 능력으로 믿었던 것이다. 아가페 사랑과 의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 선한 증거임을 바울은 디모데에게 알려준 것이다. 선한 증거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의인데 그게 침묵이라는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보여준 사랑.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 자기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다. 이기적으로 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가짜다. 형제자매들은 잘 알아야 한다. 복음적 희생이 있는가? 그리스도에 대한 가치를 두고 자기의 희생이 있는가? 그리고 남녀의 사랑보다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희생이 있느냐를 봐야 한다. 꽃은 돈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복음의 절대성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구원의 은혜 속에 있는 사람만이 상대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예수님에게는 복음에 대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 있기에 온 인류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죄인의 누명을 쓰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대신 죄인의 누명을 쓰신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가 ‘이 사람을 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의인이 대신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인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지 않고는 죄인을 결코 살릴 수 없다는 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의 의가 보여야 된다. 요19,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과 사탄의 권세가 그리스도로 산산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구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의(창3:15)를 붙잡고 기도하게 된다. 십자가만 바라보면 순간순간 영혼에 틈타고 들어오는 수많은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아야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다.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 하나님의 빛의 증거가 있어야 어둠이 어떻게 공격해 오는가를 알고 즉시 그 빛을 사용하여 어둠을 밀어낼 수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18-24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사람들은 점점 강해지고 멋있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재벌도 된다. 그래서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는 주관대로 육체 정욕을 위하여 구하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여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주신 죽음의 잔을 마신 것이다.
2.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까지 사명을 다하고 윤리적 법의 기준에 따라 반드시 명령을 지켜야 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했다. 명령은 하는 사람이 기준이지, 명령을 받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다. 그래서 받은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까지 사명을 다하고 윤리적 법의 기준에 따라 반드시 명령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한계까지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싸움을 통해서 믿음의 선한싸움 영생능력을 가지고 반드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절대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면 마귀를 대적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6:14
그래서 아침에 영혼을 깨워야 한다. 그러면 명령을 지킬 수 있다. 구원 받은 사람은 반드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한 재물이 되어야 한다. 흠도 없고 점도 없을 만큼 지키라는 것이다. 다윗은 잠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제 영혼을 감찰하였으나 아무런 흠을 찾을 수 없고,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분은 제 기도를 들으신다고 고백했다.
책망 받지 않도록 명령을 지켜라. 신학생들은 금식기도 및 기도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목사가 되면 비참해진다. 특히 새벽 기도가 체질화되어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 열방의 아들들이 몰려오며, 열방의 재물들이 온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선한 증언을 하신 예수님 앞에서 명하노니 이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당당하고 멋있고 힘 있게 짊어진 것처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절대 빌라도와 흥정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고 침묵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처럼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당당하라는 말이다.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고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의 성전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 앞에 서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면서 침묵했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죽지 않는 영광이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3. 그리스도 앞에 있는 종말론적 영광을 바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딤전6:16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죽음이 없다. 어린 시절, 죽음의 그림자가 제 위를 드리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의를 위하여 살아야 죽음의 저주에서 넘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발버둥 쳤다. 우리 안에 창조주 하나님 만왕의 왕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지옥을 완전 타파하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 앞에 있는 종말론적 영광을 바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을 살아야 된다. ‘디모데여 그리스도안에만 죽음이 없으니 어떤 죽음의 문제가 찾아온다할지라도 떨지 마라.’ 그 죽음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라. 결국 디모데는 주후 970년경에 로마에서 톱에 켜져서 죽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몸속에 지니고 있기에 떨지 말고 당당하기를 바란다.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신 예수님을 본받도록 우리 속에서 움직이는 사탄의 일을 결박하고 내쫓자
죄악을 저지르게 하고 타협하게 만들고, 합리화 하게 하여 논리 속에서 생각으로 끌고 가는 사탄을 꺾어버리면 죽지 않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
“사망아, 질병아, 무능아, 저주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내게서 무너질 지어다.” 영적싸움으로 뱀 대가리를 밟아라. 끊임없이 거짓말로 살게 만드는 ‘거짓의 영’부터 꺾어라. 그러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이것 한번 체험해보지 못하면 죽는 날까지 마귀 심부름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오직 우리는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선한 증거를 생각해야 된다. 그 분은 어마어마한 권세와 능력과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심에도 자기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다. 다음 주에는 그분의 사역에 동참할 때 일어나는 증거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마귀적인 체질이 무너지고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면 부자가 된다. 즉 선한증거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부자가 된다.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한 증거를 주신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죽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영혼에 각인하게 하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언제나 죽음 앞에 종말론적 사고를 하며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시고, 영광을 돌리는 생명적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창3:15로 마귀로 틈타지 않게 하시고, 혈기와 분노와 마귀적인 체질에서 벗어나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는 사람이 되게 하옵시고 영생을 취하여 명령을 지키게 하옵소서.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세계복음화라는 하나님의 소원을 가슴에 담고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영혼을 깨워 기도하는 생명들이 있사오니 후대를 살릴 만큼 전도의 문을 열어 주옵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비밀을 담대히 말할 수 있도록 가정이 미션홈이 되게 하옵시고, 전문성을 회복하여 지역 지역에 전도제자가 세워지게 하옵소서.
하나님, 특히 우리 청년들이 정시기도를 진행할 때 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하옵시고, 전 세계 흩어진 전도제자들이 정시기도 할 때 마다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연약한 질병의 저주들이 떠나가게 하옵시고, 저들의 몸과 정신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사탄의 세력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게 하옵시며 성령 충만을 받고 불치병과 무능과 무기력과 실패가 계속되는 문제들이 해결 받는 시간되게 하옵시며, 저들의 생애 날마다 그리스도를 증거 할 만한 증거들이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