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8 1부 말씀
오늘 본문에, 할례는 아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을 때는 할례 전이다. 할례라는 것은 누가 나를 향해 아무리 이상하고 부족하다고 해도 내 몸에 증표를 보고 언제든지 ‘나는 이스라엘이다’ 하고 믿어버리라는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 양자의 영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만큼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끝난 자들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증거가 ‘영적싸움’ 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도록 우리 영혼을 장악한 더러운 세력을 내어 쫓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기도가 구체적으로 시작된다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게 되는 유일한 비밀은 기도밖에 없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요구하는 행동이 ‘기도하라’ 이다.
믿으면 기도하라는 것이다. 겔37:8~9 마른 뼈들이 서로 붙어지게 되었으나 생기가 없자 하나님께서 그것을 향해 생기를 대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생기가 들어갔을 때 그들이 곧 살아나고 큰 군대가 되었다. 우리 예수님이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말씀했다. ‘너는 영육간에 그리스도로 살아날지어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인생에 원망, 불평 속에서 쟁쟁거리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항상 함께 계심을 인정하며 감사하며 그 이름을 높일지어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영적싸움을 할 때 큰 군대와 같은 영적인 힘이 생기는 것이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 말씀을 누가 하셨는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성취하시는 그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시는 이가 ‘기도하라’ 말씀하셨다. 누가 기도하라고 했는가?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위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기도 하나만 있으면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 기도는 모든 저주를 끊는 것, 기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살아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심에도 누가 그리스도를 종교로 전락시켰는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누가 종교로 전락시킨 것인가?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심각한 정신병자로 전락해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 예수사랑교회만이라도 모델적인 교인들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예수가 누구인가?’ 이것부터 질문해봐라.
인간의 근본문제와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 그 예수님이 누구신가?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는 뱀의 머리를 박살내시려고 오셨다. 이제는 그 사단의 권세를 다 꺾으시고 그 이름 하나를 주셔서 똑같이 사용하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 자기 성질대로 살다가 사단의 밥이 되어 사단이 좋아하는 짓만 하다가 인생을 마무리 한다.
“목사님 그 사단을 과학적으로 증명시킬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의 족보가 성경에 뚜렷하게 나타나있고, 성경에 기록된 예루살렘을 한 번만 가 봐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뚜렷한 증거가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이 갈릴리 출신들이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로마까지 복음화 시켰다.
그리스도 그 진리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자신에게 먼저 적용시켜봐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예수가 왜 그리스도 인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의 성령, 영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머물러 계시면 반드시 그리스도로 나를 변화시키게 된다. 이것이 복음을 적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복음으로 시작해서 율법으로 마치는 이유는 복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들 나름대로 복음으로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복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을 만난 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분명한 사실을 화장실만 가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할례를 주신 것이다. 남자라면 남자답게 가정에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공포해라. 남자들이 찌질하게 사는 이유는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우리 영혼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를 딱딱하게 굳어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악한 자가 장악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로 있다할지라도 그리스도를 10번만 부르면 달라진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누구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왜 이곳에 있느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어디로 갈 것이냐?’ 이 세 가지만 질문해도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가 우리 영혼을 두드려 깨뜨려 버린다. 그러면 진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인생사는 동안 질문하나를 던지지 못하는 사람이 가정에서 어떤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겠는가?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깊이 뿌리박힌 샤머니즘 사상에서 벗어나 올바른 질문 속에 답을 찾아야 한다. 질문 없는 인생은 무능과 무기력, 재앙이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만이라도 깨어있어 멋있는 하나님의 시민이 되자.
하나님은 그리스도 이름을 적용하라고 마12:28~32을 주셨다.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을 적용하지 않으면 옛날보다 더 더럽고 추하고 이상해진다.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자식을 자식대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강한 자,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사단의 권세를 꺾기 위해 죽으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부활했다는 것을 보았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가 복음으로 인생을 사는 자다.
*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생을 살지 않고 율법적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한계가 오는 것이다.
율법적 기준은 육신적 기준과 똑같다. 세상에서 육신적인 도덕과 윤리를 항상 가르치는데도 세상은 언제나 문제 속에 한계가 찾아오지 않는가? 게다가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니 전부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감옥에 갈 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동네에 사로잡혀 미신을 숭배했던 아브라함 가족을 불러 복음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종교의 하나로 보는 다원주의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경공부만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회라면 지긋지긋하다며 교회가기를 싫어한다. 율법으로 장악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항상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측량한다. 그래서 늘 부끄러움 속에 숨어만 있다. 이런 것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내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하면서 더 시달리고, 원망 불평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또라이’ ‘저능아’ ‘불신자 보다 믿음이 없네’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긍정적 마인드라도 가지고 사는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한다고 하면서도 얼굴 하나를 안 펴고 자기 담임 목사를 욕하고 돌아다닌다. 우리가 지옥배경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영적싸움해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야 한다. 자신과 영적싸움을 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정말 실감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해 정말 질문해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의 영혼은 참으로 어디로 가는가?’ 이것을 예수그리스도 부르면서 질문을 하면 이 질문에 대해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면 점점 이상한 상태가 된다. 그러면서 오히려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가 훨씬 낫다고 하는 생각들이 찾아올 수 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하나를 모르면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의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행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여기에 대한 답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인생의 낙오자로, 이상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이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자들과의 싸움이 그리스도로 시작되었다. 그러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이며 오직 그리스도로만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음에도 육신적 반응에 따라, 육신적 감정에 따라 내 인생을 원망 불평으로 끌고 가는 저주의 세력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영적싸움을 실천할 때 있는 자리에서 나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하나님의 나라. 이렇게 영적싸움, 기도로 다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고 말을 하면 그 말대로 자신이 얽히고 걸려 자신의 말에 자기가 끌려 다니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인생의 열쇠이기에 그 말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말, 육신의 언어를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복종시켜라. 이것을 실천하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는 순간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셨다.
창15:6에 아브라함이 창3:15을 적용했을 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창12장 복의 근원으로 시작은 했지만 창3:15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는 창피한 일들이 더 일어났었다. 그런데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밟기 시작했을 때 가병 318명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고, 대제사장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준비해 아브라함을 칭송했다(창14장).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나의 방패, 나의 산성,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믿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시고 그를 친구로 대하셨고 이 약속을 잃어버릴까봐 할례를 증표로 주신 것이다. 곧 할례는 아브라함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쳤다는 증표와 같은 것이다. 남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증표, 약속을 모르고 살면 찌질해 진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늘 복잡하고, 직장 상사 때문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정말 다 끝난다.
창3:15언약 안에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남은 생애를 다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책임져 주신다. 언약을 회복할 때 육신적인 것도 주신다. 그리스도로 모든 저주와 재앙이 해결됨을 믿는 순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복의 근원, 내가 곧 이스라엘, 행복자, 헵시바, 뿔라. 내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 이름을 적용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은 일하신다. 그리스도로 움직일 때 하나님은 땅 끝까지 인도하신다.
롬4:1~8에 믿음으로서 의를 얻는 이신칭의를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그 증거, 증표로 할례를 주셨다. 아담과 하와에서 가죽옷을 입혔더니 벗어버리고, 가인에게 흰 돌을 줘도 잃어버리니까 하나님이 영원히 잊지 않도록 몸에다 새기셨다. 이 증표 곧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기도하는 사람은 벌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이다.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게 아니다. 죄와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다 끝내셨다.
롬4:9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믿는 자의 조상으로 인침을 받은 아브라함은 할례 받기 전부터 창3:15 이 언약을 움켜잡고 행복한 인생으로 시작했다. “이 행복이”, “이 축복과 은혜, 이 사랑이...” 곧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문제가 다 끝난 가자되어 행복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면서 행복자로 사는가?
“돈이 있어야 행복하죠?!” 하지만 돈 있고 몸이 틀어지면 무슨 행복인가? ‘행복’ 이라는 말은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엄청난 말이다. 집이 100채가 있어도 눈이 감기면 무슨 행복인가?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땅 문서가 없어도 밟는 땅이 내 것이며, 통장에 천 원 하나 없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내가 필요할 때마다 공급해주신다. 사람들은 참 복잡하게 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자.
아브라함이 무할례 속에서도 창3:15 그리스도로 시작할 때 행복자가 되었고, 다윗도 창3:15로 시작했을 때 그의 죄를 덮어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셨다. 우리는 1초 전도 과거, 지나간 문제는 다 끝난 것이다. 다윗에게도 수많은 수치심과 죄의 벌이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를 덮어주셨다. 이것일 믿지 않을 때 문제가 오고 들통이 난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신다. 하나님이 덮어주시면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기가 덮으려고 하면 광야의 타조처럼 돌아다니게 된다. 미래가 약속 된 우리는 영원한 복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구원 받는 길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원죄로 인해 장악된 시스템에서 창3:15 언약을 잡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축복은 시작된다. 사람은 언제나 율법 앞에서는 무거운 죄인이 된다. 그래서 항상 은혜 안에 있어야 자유와 해방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으면 살 맛 나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믿음의 계통을 따라 아브라함의 혈통이 되었다.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은혜의 계통을 따라 가게 되었다. 우리에게 이것을 주시기 위해 창3:15이 마1:21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창3:15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은혜의 계통을 따라 온 자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 때 하나님이 “복이 있도다“ 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고 그 은혜의 계통을 따라 그리스도를 고백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복의 계통이 이렇게 맞아 떨어진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대속주로 오셨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허락하셨으며, 사단을 꺾는 능력을 주셨기에 이제는 은혜의 계통을 따라 사단의 머리를 밟아주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내 안에 담으면 이제 너는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가 다 이루셨기에 이 은혜로 시작했으면 그리스도 해라.
이제 율법 앞에 서지 말고 창3:15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나가 죽어라!’ 하는 것은 율법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율법만 심어놔서 기독교인들이 자살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가 다 끝내셨는데 왜 자살하는가? 돈이 없다고 자살할 필요 없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공급해주신다.
*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에 감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감사로 시작하면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육신적인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늘 돈이 없어요, 쌀이 없어요, 집이 없어요 하며 없다는 것뿐인데,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사기도 하고 그 이름 찬양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구석구석 마다 응답이 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언제나 생각 속에 ‘너는 진실해야 되, 바르게 살아야 되.’ 하며 스스로를 육신적으로 컨트롤 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생각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낙심하고 실망하고 원망, 불평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교회를 다녀도 왜 안되지?’ 하며 율법주의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대로 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면 자신도 다른 사람도 다 율법주의로 끌고 간다. 그래서 처음에는 목사님이 너무 좋고 상대방이 너무 좋다가 갑자기 ‘진실해져야겠다’ 이런 생각들이 온다. 생각이 바뀌어야 은혜다. 나는 누가 어떤 장로님에 대해서 말을 하면 “그 장로님이 직분이라도 받았으니 그만큼이라도 사는거다” 라고 말해준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면 다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단어 하나도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래야 한국은 이간이 되지 않고 남북이 대립하지 않는다. 사단, 마귀, 악령이 교회를 쑥대밭을 만들었다.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시키셨다. 그 분이 다 지키셨기에 우리는 거기에 흡수하면 끝난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의다. 할례만 받았다고 의가 아니다.
믿음의 길 두가지가 있다.
첫째, 오직 믿는 믿음이 길은 은혜로서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창3:15을 주셨기에 그 은혜로서 시작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믿음이 ‘의’, 하나님의 의는 ‘약속’ 이고, 그 약속을 믿는 자가 ‘행복자’ 라는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율법은 죄다.
율법은 아주 무서운 죄이다. 스스로 자신이 정죄를 받을 뿐 아니라 자기가 눌려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 율법이다. 또한 죄 뿐만 아니라 범죄를 짓게 된다. 죄의 권세에 잡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 죄는 진노이고, 진노는 형벌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로 시작하면 끝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행복이 있지만, 율법으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의롭게 되는 것 같으나, 처음에는 교회 성도인 것 같으나 점점 무거운 죄인, 진노와 형벌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의가 그리스도로 인침을 받고, 그리스도가 계심을 인정함으로 그리스도로 나를 살리는 자가 은혜 속에 있는 것이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사람들이 인생의 질문 앞에 답을 찾지 못하고 교회를 다녀도 율법의 잣대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죄인의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이제 나는 그리스도를 믿어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 속에 하나님의 후사로, 행복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이 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음에도 육신적 감정에 따라 원망, 불평으로 내 영혼을 끌고 가는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명령하고 선포하는 영적싸움 속에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나를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뚜렷한 신분 속에 하나님 나라를 향해 방향을 두고 모든 육신적인 말을 그리스도로 복종시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음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