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얻은 의롭다 하심
롬4:18~25
2017.06.25 1부 말씀
로마서 4장 전체는 아브라함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역사는 우리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같은 모델이 필요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필요한 존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요한은 요한대로 필요한 존재다. 그 하나님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완전하신 하나님,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나 중심의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나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해라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다면 나 또한 내 자신을 향해 ‘나는 하나님의 자녀’ 라고 명령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어우, 목사님,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핏 값을 지불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음에도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우리 심령 속에 과거를 들추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를 끄집어내어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탄이 들어있다. 하지만 성경은 옛 일을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말씀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말씀하셨기에 육신대로 살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살아야 한다. 우리를 자꾸 들추는 자가 있다. ‘너는 아직 멀었다’ ‘너 같은 푼수가 무슨 일을 하겠냐’ ‘네가 무슨 예수님의 제자냐’ 이렇게 우리 안에서 속삭이는 자를 성경에서는 “강한 자” 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지나간 과거를 축복의 발판으로 만들지 못하고 과거의 상처로, 분노, 슬픔으로 사로잡아가는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로 떠나가라. 궁상맞은 신앙은 그리스도로 산산히 무너질지어다!’ 선포해라.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이라고 했으면 의인이다.
하나님이 대속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를 다 끝내셨기에 오직 그리스도 하나만 우리의 가슴에 담고 믿어달라는 것이 그 분의 소원이다.
이것 하나를 부탁해놓으셨는데 우리는 자꾸만 ‘아니요, 안돼요, 모르겠어요’ 이렇게 살면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다면 인정해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있는 증인으로 삼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믿어라.
‘나는 오늘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되나?’ 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지, 그 하나님이 계신다면 나에게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느끼면 된다. 우리는 수준이 낮으면서도 수준이 높은 척을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폼 잡지 말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라.
아브라함이 받은 의는 오직 딱 하나,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며 가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그 이름을 사용하고 사단을 밟을 때도 있었지만 실수 속에 밟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밟으라고 다시 말씀을 주셨지 아브라함을 질책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실수한 부분까지도 내가 책임져 줄 테니 너는 그냥 밟으면서 가라’ 말씀하셨다. 이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 복음이 선포되는 예수사랑교회를 만난 우리는 이 시대 정말 축복덩어리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헵시바, 뿔라 라고 칭하셨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 하나로 다 끝내버렸다. 이것이 롬4장 전체의 내용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믿는 자만이 성화되어지고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신앙은 성장된다. 우리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종류가 무엇인지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언약 하나로 모든 것이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다.
곧 믿음은 ‘나’ 라는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기준 창3:15을 붙잡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나 중심에서 벗어나 창3:15을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는 창3장 원죄라는 이 운명, 사주, 팔자로 인해 ‘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나 중심으로 운명대로 끌려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개장수에 팔린 개가 끌려가듯이 사탄에게 장악되어 질질 끌려 다니면서 얻어맞다가 한 번 물어보려고 하면 그 때 완전 밟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된다면 섬뜩한 일 아닌가? 이렇게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운명이다. 나 중심에서 벗어나는 길이 창3:15그리스도 메시아다. 이것을 언약으로 잡고 믿고 의지하고 의식화 할 때 흑암권세는 물러간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중심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이제 나를 메시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흡수되어졌다.’ 갈2:20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줄 알았던 사도바울이 예수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율법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생활 윤리, 도덕 속에 빠져 있던 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 중심으로 살았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그런데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하면서도 늘 내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늘 찌질하고 답답하고 인생이 안 풀리고 행복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철학, 자기 사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궁상맞은 자 라고 한다. 궁상맞은 신앙. 사람을 보면 ‘와, 빛난다. 저 사람은 없는데도 왜 저렇게 자유함이 있을까? 복권이라도 당첨이 되었나?’ 하는 느낌을 상대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의 모든 불신앙을 밀어내라, 강한 자를 결박해라. 하나님 자녀 된 신분권세를 회복해라, 우리 안에 성령계심을 믿어라. 그리스도 이름 하나면 끝난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늘 배경을 가지고 움직여라, 있는 자리에서 영적싸움을 실천하면 하늘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움직인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신다. 아브라함은 실수를 하면서도 이 사실을 믿고 붙잡았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너의 자아, 네 중심으로 살았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지속하는 것까지를 말하는데, 지속하기까지 실천해야 한다.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뱀의 머리를 밟아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결박시켜라.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몸에 임하게 된다. 그때까지 머물러 있으면 오순절의 역사가 네게 찾아온다. 하나님이 문 열어 주실 때마다 나아가면 된다. -이것을 실천할 때 믿음은 지속된다.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갈라디아 인들을 향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라고 말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1~3) 고 그들을 고발한 것이다. 복음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기에 복음 외에 다른 것을 강조하는 것은 전부 사이비, 재앙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갈1:7~8)
“목사님 저는 그래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다면 그 양심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말씀하셨는데, 양심으로 들여다본다면 늘 자신이 맞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은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교주가 되는 이단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롬3:23)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다. 이 은혜 속에 머물러 우리가 영적싸움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모든 문을 열어주신다.
*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오직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는 믿음이었다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을 믿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이름에 ‘오직’ 하며 우리가 할 것은 ‘아멘’ 밖에 없다.
창3장으로 덮여 몸부림치며 살아가야 할 인생에게 하나님은 창3:15 이 언약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셨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복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 약4:7 하나님의 말씀, 언약에 순복하는 자는 마귀를 대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창14:14 영적싸움을 일심, 전심, 지속으로 했더니 하나님이 가병318명을 붙이시고, 영적전쟁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군대들을 통해 강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창3:15은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자시라는 순종의 믿음,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을 가진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은 ‘영적싸움’ 하는 행동이다. 나 중심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발광하고 제압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것이 가만히 있어도 우리 삶에 역사가 일어나는 비밀이다. 완전한 행동적인 믿음은 그리스도 비밀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믿었기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창3:15의 언약을 생각으로 알게 되어 그리스도가 이해가 된 것이다.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참 선지자, 모든 저주를 꺾으시고 모든 재앙을 멸하신 참 제사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중심으로 살게 만들어 나를 촐랑대게 만드는 저주의 영을 박살내신 만왕의 왕, 만군의 여호와. 이것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담았다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을 담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언약을 감사로 받아들였다. 나에게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것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실천까지 하고 의식화 하는 과정,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 가슴만 뜨거워져서 아무 내용도 없이 머리는 비어 그냥 “할렐루야 호호, 할렐루야~” 하고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뭐냐고 물어보면 아무 내용이 없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생각으로 창3:15을 알았다. 창3:15이 이해되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가슴에 담고 그리스도 그 이름에 감사하면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계속 의식화 했더니 하나님의 힘이 자신에게 온 것을 체험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신 말씀에도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그 하나님을 이해했기에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도 없이 자기가 돌아다닌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던 말씀을 오해하고 자기가 땅 끝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창3:15, 이 언약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을 알고, 믿고, 가슴에 담고, 느끼며, 감사하면서, 실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아브라함이 가졌을 때 그가 떠나게 된 것이다.
베드로는 왜 축복을 받았는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내가 그물을 내립니다 하고 말씀 앞에 절대 순종하는 믿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의 머리가 비어있으면 이성이 없게 된다. 이성이 없는 신앙은 절대 오래 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언약,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 자체를 능력으로 믿었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아 생산 기능이 죽은 나무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는 ‘아멘’ 했다. 만약 여러분에게 제가 “내년 이 맘 때에 애가 있을 것이다.” 고 한다면 ‘미쳤구만, 저 목사님 맛이 갔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늘 나 중심으로 사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강단 말씀에 흐름을 타고 ‘아멘’ 하면 생산기능이 멈춘 죽은 나무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역사하시기에 강단의 말씀 앞에는 반드시 ‘아멘’ 해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곧 신앙의 근거를 ‘말씀’ 에 두었던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롬4:19~21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며 약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약해지고 확신이 없고 넘어지고 갈등하고 시험 드는 것은 창3:15이 체질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창3:15이 체질화 되어졌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생산성이 없어도 절대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영적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사탄은 말씀을 쪼아 먹으러 온다. 다른 것을 빼앗아가지 않는데 말씀만 빼앗아 간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말씀은 없고 가슴만 뜨거워서 머리는 비고 이성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창3:15로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 교회나 앉아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할렐루야 하고만 있는 것이다. 복음이 없으면 빨리 도망 나와야 하는데 이상한데 가서도 그냥 웃다가만 온다. 복음도 없는 사람이 웃는 것은 실성한 거다.
아브라함은 자기 지식을 제한하는 힘이 있었다.
자기 몸에 모든 생산기능이 끊어졌는데도 자기의 지식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길을 최고의 지식으로 믿었다. 자기 몸에 분명히 나타난 증거가 있음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불가능한 것들도 가능케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지식을 제한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는 절대 지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갈 바를 알지 못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가능하다,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잡았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방법을 포기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언제나 자기의 방법을 절대적으로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시고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왜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제어하고 포기하는가? 인간은 창3장으로 인해 완전한 원죄가 장악했기 때문에 언제나 마귀의 속삭임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귀의 시험이 언제나 자기 몸 전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가끔은 실수를 했다. 편안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탄이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야, 멀리 갈 것 뭐있냐. 조금 떠나서 머물러 있어라’ 이 말에 속아 가는 길에 아버지가 죽는다. 사탄은 우리에게 편안한 길을 제시한다. 꼭 그 길로만 가야 되냐? 꼭 창3:15로만 가야 되냐? 꼭 예수만이 진리냐? 꼭 예수만이 생명이냐? 이렇게 속이고 오직 말씀 한 구절만 뽑아가 버린다. ‘아들을 얻는데 꼭 사라에게서만 나와야 되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기하게 하갈과 눈이 맞는 일이 생긴다. ‘사라도 생식기능이 끊어졌다고 말해주지 않았냐, 아무래도 내 몸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알고 하갈을 데려온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거다.’ 하는데 또 사라도 “첩의 자식도 자식입니다.” 하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찾아왔겠는가. ‘네 몸을 봐라.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못 들은 거다. 네 몸이 생산할 수 있는 몸이냐?’ 마귀의 속임수에 결국은 방법을 돌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마엘은 네 자식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 때 아브라함은 ‘네, 아멘’ 다른 말이 없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복음으로 뻔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수 앞에 ‘나를 쳐 죽이시옵소서. 당장 죽겠나이다’ 죽지도 않으면서 쇼만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쇼하지 않는다. ‘아멘!’ 하고 더 이상 이유가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면 아멘 뿐이었다.
아폴로를 발사할 때 성공 가능성은 사실 40%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안에 탑승한 3명에게 가능성이 100%라고 했다. 사실 100%이 되어 우주선을 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한다. 언제나 부족한 상황에서 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능성이 40%밖에 안 되었던 아폴로가 성공적으로 달에 착륙한 것이다. ‘우리의 불가능을 하나님은 채워주신다’ 는 미국의 절대 복음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완벽성이라는 것이 없다. 언제나 부족한 존재.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세계복음화 모든 사역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
*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의롭다 하신 예수그리스도,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믿고 동참하자
롬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오직 아브라함은 실수 속에서도 예, 아닙니다 뿐이었다. 그 때 하나님은 내어 쫓긴 하갈에게도 먹을 것을 주실 뿐 아니라 이스마엘도 강국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하는 분이 아니다. 누구나 다 살리시길 원하신다. 다만 언약을 잡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다. 아브라함처럼 우리 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 아브라함의 먼저 된 이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모든 백성들에게 주기위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 시대에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끝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죄인을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시는 일들을 믿는 자가 되라.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구원 받은 자들을 통해 흩어진 자들을 찾아 그리스도를 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이 시대 세계복음화라는 하나님의 목표와 소원을 담고 시작하는 교회이기에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만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소개하는 일만 있어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사랑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하나님의 일 속에 있음을 얼마나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있는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 하나를 심어주시기 위해 아브라함까지도 사용하시고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여주셨는데 그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느끼고 의지하고 있는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정말 그리스도에 고정시키고 그리스도를 영혼에 일치시켜라. 하나님이 나를 향해 자녀라고 말씀하셨기에 내 자신을 향해 ‘너는 하나님의 자녀!’ 라고 명령하고 충만하길 축복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입양인 사역과 세계복음화에 동참하자. 그러면 우리가 더욱 겸손한 자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큰 은혜와 축복들이 날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뤄지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내 중심으로 살아가며 운명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언약을 성취하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절대 순종하며 자기 방법과 지식을 포기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로 여겼던 아브라함과 같이, 강단 말씀에 흐름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뱀의 머리를 밟는 영적싸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지속 속에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실감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세계복음화를 진행하는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흩어진 자들을 찾아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