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결단, 전적헌신의 제자도
눅9:57~62
2017.9.10 2부 말씀
하나님은 속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붙잡으면 살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무엇인가?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육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절대 믿음이 온다. 육신적인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믿음이 생기지 않아 늘 흔들거리며 확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뿐이다. 모태신앙이든,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든 자신과의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인상이 더러워진다. 화장실에서 거울만 봐도 자신을 알 수 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 말씀하신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지 않으면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씹어 먹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이 없는 자는 사망권세 잡은 자가 장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고백한 자에게는 “너는 반석이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으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약속하셨다. 십자가 구속의 사랑,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 우리의 삶이 ‘제자의 도’ 를 걷는 길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있는지 점검해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 고백으로 오늘의 삶 속에 자신이 치료 받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먼저 우리 몸속의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을 살려내지 않으면 늘 약국, 병원에 가서 고쳐 달라고 돌아다녀야 한다. 아니면 다른 종교들을 찾아다니면서 병을 고치기 위해 빌던지, 굿을 해야 한다. 고쳐달라고 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살려내면 강건케 된다.
먼저 내 영혼을 살려내는 사람, 이 사람이 ‘제자의 도’를 가진 사람이다. 근본문제를 치료시키는 것은 우리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 장로가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었다. 우리 몸과 영혼 하나를 살려내지 못하면 절대 수용과 초월이 불가능하다. 죽는 날까지 욕심쟁이로 살 뿐이다. 돈은 쓸 때 가치가 있지,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 자신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어 영혼이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주인이 될 수 없다. 세계복음화를 진행했던 주인공, 식주인 가이오는 요삼1:2 나의 영혼이 살아났기 때문에 강건해지고, 내 직업 속에 하나님의 유일성의 응답이 오늘, 날마다 임하게 된 것이라고 고백했다. 근본문제를 치유시키는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영혼이 살아나야 예배를 성공 시킬 수 있다. 영혼이 살아나지 않으면 예배가 짜증스럽고, 조금만 늦게 끝나면 심령이 오그라들고 분이 나고, 초반부터 눈을 감든지 아니면 예배 시간에 늦게 들어와 앉는다. 누가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감지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본인 영혼을 살려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교회당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이런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다. 거듭나는 사람은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바람의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있고 들어갈 수도 있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요3:8. 예배를 성공하지 못하면 세상에 쫓기는 사람이 되고 세상을 좇는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뭔가 살아보려고 하는 ‘열정형 인간’ 이다.
* 본문에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타난다
그 첫번째가 ‘열정형’ 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따라붙겠다고 했다. 자신의 열정을 가지고 진행할 때 안 되는 것이 없는 사람. 그래서 능력과 기사와 표적, 죽은 자도 살려내는 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자신이 VIP호텔에 머물 수도 있고, 들어오는 많은 돈으로 땅들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정형 으로 교회에 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향해 우리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뭔가 얻어 보려는 열정형.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면 “내 것 팔아서 따라 붙으면 됩니다. 당신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면 내가 그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는 영의 열정이 아니라 육의 열정으로 따라 붙으려고 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로 따라 붙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실 하나님이 머리 둘 곳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내 집에라도 유하소서.” 하기는커녕,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내 것을 내놓을 수 없고 예수님이 가진 것이 없다면 예수님 곁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인 영혼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살려내면 예배와 세상과 어떤 자리에서도 성공의 자리를 걷게 된다. 현장을 치료 시킬 수 있을 만큼 전도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세계복음화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237개의 나라에 내 것을 주라는 것이다. 237개국에 다 나눠주면 내 것 다 털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것을 내놓으면 237개국이 정복된다. 237개국을 정복하고 싶다면 내 것 10원 이라도 내놓는 도전을 시작해봐라. 그러면 237개국을 정복할 만큼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따라가는 제자의 도가 맞다면 바람과 같은, 불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237개국을 예언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게 될 것이다. 절제와 결단 속에서 이것이 나타난다. 그러면 전적인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계복음화의 길을 걷도록 문을 열어주신다. 미얀마에 난민들이 엄청난 살육을 당하며 전 세계 유리방황하는 수많은 난민들을 보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한 두 명이라도 한국으로 데려와서 훈련을 시키면 저 민족들이 얼마나 살아날까 생각을 했다. 또한 한국에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서 온 다민족들이 많이 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의 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것에 열정형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것은 내주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열정형 이라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을 꺾어야 한다. 세상을 향하여 쫓는 자들은 잘못된 운명에 의해서 헛인생을 살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대 긴박성을 깨닫고 영적싸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육신적 생각으로 주춤하면 순식간에 불화살을 맞는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마귀의 존재는 언제든지 육신의 생각으로 틈을 타고 들어와 우리를 덮어 버린다. 그래서 말씀에서 벗어나면 얻어맞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이 왜 그리스도를 주셨는가? 인간의 힘으로는 고난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소유하라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권력으로, 돈으로는 재앙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그리스도로 밀어내고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일어나 걸으라” 고 외쳐라. 이것을 실제로 실천할 때 긴박성을 느끼게 된다. 지옥권세 잡은 자가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을 멈추는 절제의 힘을 가져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영혼에 담는 자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은혜와 진리가 우리 안에 충만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언제나 죄의 권세와 싸우는 영적 전쟁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능력의 선물로 받았으니 그리스도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자신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오늘도 똬리를 틀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앙을 지금 당장 치료 시켜라.
우리 영혼이 살게 되면 예배 때 마다 순간 뭔가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교회를 평생 다니면서도 예배 시간만 되면 팔짱끼고 눈감고 ‘주여, 아버지...’ 이런 사람은 이미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조는 사람, 취해있는 사람, 눈이 풀린 사람들은 소매치기의 밥이 된다. 자기 핸드백을 깊이 찢어 지갑을 가져가도 뭔가에 잡혀 모른다. 이렇게 잡혀 있으면 예배를 드려도 안 들린다. 이 때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는 것이다.
예배 때 마다 우리 자신이 일어나는 축복을 받아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 예배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에 담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나에게 적용하게 되면 전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현장에 열매가 항상 있게 되는 것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전도 제자의 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영혼을 살린 주인공들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그 이름으로 손을 얹은 즉 나음이 있으리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맛보고 멋있게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왜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 사는가? 왜 마귀가 주는 힘에 짓눌려 있는가? 우리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켜 세워라. 마12:28, 하나님의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더러운 귀신을 내 몸에서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게 된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인간은 고난의 함정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답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끝나지만 그리스도 그 비밀 속에 답을 내지 못하면 24시간 늘 시달리는 인생이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영적인 문제가 각인, 뿌리, 체질화 되어 속국으로, 노예로,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예배 날에도 엉뚱한 말이 나온다. ‘나도 예배 30년 해봤어. 우리 아들이 목사여, 우리 작은 아버지도 목사고..., 내가 모태신앙이여...’ 이런 언어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리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직’ 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예수는 그리스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심으로 지금, 오늘 속에 나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로 살려 내는 것이다!’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을 구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여 오로지 그 이름에 힘썼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이것은 그리스도로 진행할 여정이다’ 자동차 바퀴가 터져 고치러 가는 것도 ‘이건 하나님의 역사 속의 여정이다’ 해라. 그래서 바퀴 때우는데 거기서 그리스도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인생 여정에 한 번의 만남이 영원한 축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삶’을 그리스도로만 일치 시키면 모든 문제는 다 끝난다. 모든 것에 다 치유가 일어난다. 모든 삶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는 여정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하고 초월하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다. 골2:3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와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해고, 롬10:12 누구든지 그리스도 그 이름을 찬양하고 찬미하면 그 영혼은 부요케 하신다고 약속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바람으로, 그 영으로, 그 생기의 영으로 바람처럼 지금도 움직이고 계신다. 이 땅에 바람이 없다면 사람은 다 죽는다. 바람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생기로 느끼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난다. 그리고 이 세상을 강단 메시지 제목으로 들여다봐라. 이번 주 ‘절제와 결단, 전적헌신의 제자도’ 이 제목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강단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듣게 되고 그러면 귀에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기도 속에 있게 된다. 그러면 숨을 쉴 때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 정도만 해도 우리 영혼 속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면서 저절로 숨을 내뱉게 된다. 이것을 또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절제와 결단이 저절로 오면서 헌신 속에 예수를 따라가는데 아무 문제 될 일이 없어진다. 이 모든 것을 바람으로 느끼는 그리스도의 힘을 가져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은 바람처럼 역사하시고 계신다. 그래서 바람의 원 뜻이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 헬라어로 프뉴마(πνεύμα)로,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역사, 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가슴 속에서 나온 것이 바람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바람처럼 느끼면서 호흡 하면 모든 영혼이 살아난다.
그리스도가 전혀 없었던 현장, 사마리아 성에 제자 빌립이 들어갔더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부 앉은뱅이, 중풍병자, 기쁨이 없는 사람, 조는 닭처럼 이상하게 있었다. 그래서 평신도 빌립 한 사람이 사마리아에 있는 예배당에 가서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일심으로 외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전달했을 때 앉은뱅이와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그 성에, 그 큰 회당에 큰 기쁨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리스도를 부르지 않으면 틀어지는 인생이 된다.
행13장, 그리스도를 ‘일심’ 하지 않은 자가 결국은 예수를 빙자해서 먹고 사는 박수가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하지 않으면 의에 원수가 되고, 영적인 눈이 완전 닫히게 되어, 영적인 눈을 떠야 할 사람들이 흑암으로 인해 눈이 감겨버린다. 행16:16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하지 않으면 어느 날 성도가 점을 치고, 귀신들린 자가 된다. 행19:8~10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2년 동안 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두란노가 다시 일어나는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하지 않으면 어느 날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종교로 바뀐다. 그래서 바울이 행16:31 간수장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일심으로 들어가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
오늘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살은 예방은 가능하지만 치유는 안 된다. 우울증으로 파고들면 조만간 갈 사람들이다. 우울증의 약은 오직 일심으로 그리스도만 먹어야 하고 그리스도만 불러야 한다. 우울증의 전문인이고 우울증을 팔아먹는 전문으로 상대까지 우울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라 해도 그리스도를 찬양할 때 우울증은 떠나간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일심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들이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열정형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두 번째 유형이 ‘회의형’ 이다.
예수님이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지목까지 하셨음에도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서 장사 지내고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지목하셨다면 ‘땡큐, 지저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따라가면 되는데 무슨 회의가 필요한가.
유대인들에게 장례는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면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사람이다.”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결단을 못하고 늘 주저하고 있다. 회의형은 선택은 받았는데 결단이 없어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많은 갈등이 있다면 갈등을 제거하고 결단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헌신하길 원하오니 나의 영혼을 잡아 주옵소서.’
세 번째 유형은 ‘인정형’이다.
인간적으로는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고 세상에 참 보기 힘든 사람, 쉽게 태어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가장 나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생전에 가족하고 상의 한 번 안하다가 결정적 순간만 되면 가족과 상의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남편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여자가 문제만 터지면 “가족과 상의하고 말씀드릴께요.” 이런 식이다. 가족과 상의하는 것은 원수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앞에서는 결단하는 것이다. 가족과 상의해봐야, 집안 식구가 원수이기 때문에 원수 덩어리들끼리 상의를 해봤자 다 다른 결정이 나온다. 남편과 부인이 고향도 다르고, 성도, 자라온 환경과 배경, 성격, 성향 모든 것이 다 다른데 만나서 상의를 하면 하나의 결과가 나올 것 같은가? 그래서 인정형을 끊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하면 “아멘!” 하고 그냥 가면 된다.
눅9:62,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고 하셨다. 출근할 때, 부인과 상의하고 일하러 나가는가?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을 하려고 하면 시비를 걸고 상의를 해봐야겠다고 하고 의논을 한다. 이렇게 상의하다가 악령에 충만해서 악령으로 일치된 자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였다. 하나님 나라에 방해되는 것에 하나가 되면 그것은 쌍묘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육으로 가지 말고 영으로 가라. 이것이 본문의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하나님 나라에는 굉장히 육으로 가고, 세상적인 것에는 자기가 굉장히 영적인 척하다가 이상해진다.
사탄이 깔아놓은 열정형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리고 복의 근원의 형이 되기를 축복한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사할 땅으로 가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해도 “아멘!”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고 시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든지 주님과 함께 가겠다고 고백만 하고 주춤하지 말고 결단 내려라.
‘우리가 묵을 곳이 호텔이 아니어도 괜찮사오니 내게 말씀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내가 말씀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복의근원 형’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으나 복음의 가치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복의근원 형 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가치와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문설주와 인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 모든 저주와 재앙이 넘어간다. 반드시 창3:15의 가치와 내용을 알고 뱀의 머리를 밟아야 한다. 복음의 가치와 내용을 모르면 임마누엘을 잃어버려 결국 노예 되고 포로, 속국 된다. 창3:15의 가치와 내용은 마16:16에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하나님은 “너는 베드로라, 너는 반석이라, 흔들리지만 않으면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한다. 천국 열쇠를 주노니 흔들릴 때마다 사용해라.” 약속하셨다. 확신 없을 때마다 그리스도를 사용해라.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부터 이뤄지기 시작한다. 육신적 삶을 제쳐놓고 이제부터 예수님의 일을 따라가는 날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워봐라.
* 영적전쟁의 군사가 되고 선한 전쟁의 주인공이 되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집안 식구가 원수라 할지라도 육신으로 싸우지 말고 선한 전쟁을 해라. ‘내 남편 안에 역사하는 흑암 조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우리 남편은 그리스도 예수 이름을 부를지어다!’ 선포해라. ‘우리 남편 교회 가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는 하는게 아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남편의 육체 속에 다른 영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것을 결박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와 여정 속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눈이 되길 바란다.
자신과의 영적싸움을 하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여정을 들여다보고 사탄을 결박하면 나로 인해 남편에게 변화가 반드시 오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여자들이 선한 싸움을 하지 않고 육신과 혈기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이상한 형상을 하고 있는 부인을 남편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경기하는 자처럼 선한 싸움을 싸워라. 하나님 앞에서 페어플레이하면, 원칙대로 하나님 자녀답게 살면 남편은 저절로 따라온다. 살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다. 남편을 위해 기도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둘 때가 온다. 아내가 고멜과 같은 이상한 여자라도 살리는 전쟁만 하고 있으면 돌아온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점검해봐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수님을 갈보리 십자가에 매달아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나는 과연 느끼고 있는가? 나는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자신을 점검해봐라.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어설프게 출발하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고 본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아니면 쟁기를 잡고 매일 뒤만 돌아보는 자가 되거나 고백은 해놓고 어느 날 사라져버리는 존재가 될 뿐이다. 내 삶에 뭔가 보상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착각하지 말고 전쟁하면서 따라와라. 너의 자아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좇으라” 말씀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밖에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 이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가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이 바뀌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개인과 가정, 사회에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가진 자의 축복이 시작되길 축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자로 부르셨기에 그분을 따라가라.
내가 사는 것이 상대방이 사는 길이며,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모든 문제는 여정일 뿐이기에 괜찮다. ‘빵 때문에 따라가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문제 끝났음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자가 될 지어다. 환경 때문에 머뭇거리지 말고 너는 환경 앞에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언약의 성취자로 진행할 지어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셔서 나를 부르셨기에 이제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 대표적인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로 시대적인 축복을 받은 언약의 사람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 기념비적인 축복을 가지고, 유일성의 응답을 가지고, 재창조의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을 그냥 따라가지 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창3장 근본문제로 인해 영혼이 처절하게 무너져 있던 나를 하나님 만나는 길, 모든 것을 치료 받는 길을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셨다. 호4:6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슥4:6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신으로만 된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간 지식의 근본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의 도가 시작되길 축복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해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인간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만 필요하구나’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해라. 그러면 절제와 결단이 시작되고, 전적인 헌신의 힘이 감당치 못 할 만큼 밀려오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제자의 도를 걷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러 지금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제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서 틈을 타고 활동하는 마귀가 가져다주는 육신의 생각을 무너뜨리는 영적싸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을 예수그리스도로 살려내어 근본이 치유되어지고 영육이 강건케 되어 지므로 어떤 자리에서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의 응답을 가진 절제와 결단, 전적헌신의 제자도를 가는 인생의 여정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 바람처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호흡으로 느끼고 예수그리스도를 일심으로 부르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육의 열정형, 결단이 없는 회의형,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과 상의하는 인정형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선한싸움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