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안에서
남은 거룩한 씨
롬9:19~33
2017.11.12 1부 말씀
*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성취자로 기도의 응답자로 전도와 선교의 흐름을 타자
→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해서 그리스도 생명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의(義) 자체가 없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6:23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로 인해 구원을 얻는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긍휼을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확증시켜 놓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름만 찬양하고 그 이름 하나로 인해 감사하고 누려야 한다. 그런 사람은 말씀의 흐름을 타고 응답을 받는다. 즉 하나님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응답을 받으며 전도와 선교의 흐름을 타고 세계 복음화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스도 이름을 소유한 사람은 망하지도 않고 빼앗긴 것도 되찾을 수 있다. 따라서 오직 그리스도만 찬양하고 그 이름 앞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자녀된 신분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리길 바란다. 모든 문제 끝. 너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어떤 문제나 사건 속에서든 기쁜 환경 속에서든 예수는 그리스도. 이 비밀이 우리의 노래가 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부요케 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죄를 사했네/예수는 그리스도 흑암 권세 꺾였네/예수는 그리스도 왕의 왕이 되신 주/그리스도~~”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날마다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되어 간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되어 가고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어떤 질병으로 시달린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영혼에 각인, 뿌리, 체질화시키면 괜찮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름을 믿기 위함이요 그 이름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요3:16 영생이란 새로운 영으로 소생한다는 말이다. 보라 이전 것 지나가고 너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 이니라.고후5:17
이를 위해 먼저 정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생각에 잡히면 그 생각을 따라 인생을 살기에 무엇보다 먼저 정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게 하셨다.’ 정신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 정신 문제에 잡혀 버리면 영적 싸움을 할 수 없고 말씀이 영혼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한 놈이 우리를 지배한다면 삶이 풀리겠는가? 하나님을 믿어도 오히려 어려워진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8:6~7 정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반드시 죽기에, 정신의 문제를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켜라! 그래야 우리의 삶을 흑암이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결박하고 밀어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육신의 문제가 풀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구원을 받았다는 절대 믿음 속으로 들어가 점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 이 비밀을 체험하지 못하면 인생을 제 멋대로 살고 구원 받아 놓고 더 이상하게 산다. 교회 살리고 현장 살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그리스도의 증거 있는 제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 구원 받은 사람이 받은 참된 복은 올바른 신앙고백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구원받은 사람의 참된 복, 신앙고백이 늘 정신과 삶과 육신에 있어야 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것을 고백할 때 사탄의 세력이 결박된다! ‘바요나 시몬아 너는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했으니,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믿으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문제 속에서 흑암을 결박하는 권세, 천국 열쇠를 사용하면 하늘에서 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 구원받은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를 사용하여 죄의 권세를 잡은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면 흑암 권세에게 결박당하고 우리 몸에 지옥 배경이 존재한다. 따라서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언제나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이, 그리스도의 권세가 있어야 한다. 구원 받은 참된 하나님의 생명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왕 같은 제사장의 권세와 권능의 무기가 있어야 이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 성령인도를 받는다. 만약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뱀 머리를 밟는 권세가 없으면 살아가는 날 동안 늘 원망 불평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따지려고 들고 하나님께 원망을 한다. ‘저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은 정신 멀쩡하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아무 이상이 없고, 착한 나에게는 왜 이런 질병을 주고 힘든 삶을 살게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내면에 하나님을 꾸짖으며 주여! 주여!를 부르짖는다. 애굽 같은 나라들은 전쟁을 일으키고도 저렇게 잘 살고 우리는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해 본적도 없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고 소리 지르고 몸부림친다. “왜 바벨론 전쟁을 일삼는 나라의 국민들은 잘 살게 만들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노예로 포로로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야 됩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불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를 모르면. 그리스도가 정신 속에, 삶 속에, 육신 속에 없으면 이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원죄로 인해 사탄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것을 모르기에 더욱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죄의 권세가 지배하고 다스리니 어떻게 되겠는가? 회개를 모르고 산다. 회개를 한다 해도 형식적이다. 아무리 제가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쳐도 ‘죄의 권세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모르면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 인간은 잡혀 있는 생각에 길들여지고 그 생각 따라 일을 자행한다. 그래서 성경 속에 메시아 그리스도로 답을 내지 않고, 상황 속의 예수를 부르다가 안 되면 또 세상을 의지하고 다른 쪽으로 빠지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으로 간다.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들이 영혼 속에, 삶 속에, 육신 속에 찾아온다. 그게 바로 마태복음 24장, 25장에 나타나는 신앙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여 거짓 스승들을 많이 두고 재앙의 시스템 속에서 얻어맞고 있다. 왜 그런가? 천국 복음이 우리의 몸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영혼과 삶과 육신에 천국을 이루어 보길 축복한다.
*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남은 거룩한 씨
하나님의 절대 은총이 본문에 잘 나와 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 속에서 절대 항의를 하거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리스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음을 믿으라는 내용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질그릇이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수 있는가. “왜 나를 이렇게 쪼그라진 그릇으로 만드셨어요?”라고 항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면 토기장이는 한 흙덩어리로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은 자기의 위치를 항상 알고 있어야 된다. 하나님이 빚으신 모양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부터 신앙생활은 시작된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부터 신앙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탄에게 장악되어 그 놈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로인해 살아가는 날 동안 세상 기준에 의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마음에 파고든다. 그래서 정신 문제와 삶의 문제와 육신의 문제로 인해 거의 다 주저앉아 있다.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려고 찌그러진 그릇이라도 그리스도란 보화를 담으면 귀한 그릇이 된다는 말씀을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9장에 태어나면서 부터 소경된 그릇의 사람이 있다.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가 부모의 죄인가 아니면 본인의 죄로 인해서 온 것인가를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 하나님께로 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뜻의 ‘실로암’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창3:15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실로암이라는 곳에 오신다. 그래서 그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그 소경에게 말하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그는 눈이 보이지 않은 채 태어난 것이다. 그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권세, 사망권세로 인해 영원한 지옥에 가야할 운명에서 벗어나도록 새로운 빛의 역사를 불어 넣을 보내심을 받은 실로암, 즉 창3:15 그분을 만나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바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로 인해 말씀을 성취 하는 자가 되었고, 그리스도 이름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사람이 움직일 때 마다 전도와 선교의 문이 열려진다. 이것을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 우리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게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아무리 자유와 해방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을 받으며 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을 받기에 우리 생각대로 해석하면 쪼다가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늘 부터 자기 자신이 해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해석에 따라야 한다. 우리가 해석하려고 하는 게 정신문제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무조건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낄 때 사랑의 에너지가 나오지 않는가. 갈보리 산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무조건 사랑할 분이 계시지 않는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제자에게 다 말씀해주시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숨을 내쉬면서 가라사대 ‘하나님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만 계시면 하나님은 항상 보고 계신다. 어떤 문제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바라보신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 그러니 ‘이런 일은 하나님이 해결 할 수 없을 거야’라고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 예수께서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셨다.마4:19
→ 어떤 그릇이라 할지라도 창3:15만 담으면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일방적이며 능동적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릇은 어떤 모양이 되었든 하나의 형태만 이루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빚으신 그릇.’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어, 반드시 내 그릇에다가 그리스도를 담겠다고.’ 이것만 믿으면 자격이 된다. 중요한 것은 그릇 속에 있는 내용이다. 아무리 찌그러지고 더러운 그릇이라도 하나님이 그 속에다가 보화를 담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쓰레기 같은 그릇이라도 하나님의 보화를 담고 있으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밖에 없다. 롬9:22~23, 진노의 그릇으로 진노아래 네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은혜의 그릇으로 너를 품어버리고 삼아 버렸다. 너를 지명하여 내 것으로 인 쳤다는 말씀이다. ‘이전 것 지나가고 너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보화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삼으셨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하나님이 양자의 영을 넣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상속자로 삼으셨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 창3:15을 입어야 산다. 창3:15을 담는 그릇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쓰임을 받는다. ‘모든 문제 끝!’의 인생이 된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이것을 무엇으로 비유하고 있는가? 예언자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창녀 출신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멜은 결혼을 했음에도 싸가지 없이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결국 애까지 낳아서 데리고 온다. 호세아는 아이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를 부르셔서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지 말고 그 아이를 데려다가 사랑한다고 말해라. 그 자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과 일방적 사랑과 능동적 사랑을 분명히 하라고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 백성이 아니고 내 자식이 아닌 자를 사랑해서 내 백성으로 만들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만약 호세아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습니까? 저런 여자는 목을 잘라야 합니다.”라고 따졌다면 오히려 돌 맞아 죽는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것이 창조적 사랑이다.
→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이 구원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 창3:15을 나타내시기 위해 남은 자로 부르셨다 사10:22 말씀을 인용하여 딱딱하고 강퍅하고 발악 하며 회개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메시를 던지고 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하나님을 떠나 죄의 권세에게 장악되어 정신문제를 앓고 있기에 그 상태에서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몸부림을 쳐도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파멸이 작정된 것이다. 죄의 권세로 인해 정신의 문제, 삶과 육신의 문제 속에 있는데 뭘 다스리겠느냐, 지옥 가는 주제에. 왜 남까지도 지옥에 끌고 가려고 방해하느냐는 말이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9:27
사10:22에 파멸이 작정되었다고 했다. 단 남은 자 거룩한 씨만 구원을 얻게 된다. 홍수 심판으로 다 쓸어 버려야 되지만 하나님이 조금 남기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무너질 수 없기에. 창3:15에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서 남은 자로 삼으셨다. 잘나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창3:15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창3:15을 알아듣게 하셔서 그 의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기 위하여 남은 자, 종자로 남겨 두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까불지 말라는 것이다. 잘나서 그리스도를 주신 게 아니기에. 물 컵이 왜 자신을 항아리로 안 만들어주었냐고 토기장이에게 대들면 토기장이는 집어다가 깨버린다. 물 컵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멘, 저에게 물을 담아 목마를 때마다 마셔주세요”라고 무조건 “오예~”라고 하길 바란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하시면 “오예~” “너의 치료가 급속도로 빠를 것이다.” “오예~” “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되었음이니라” “오예~” 이러면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정신의 문제로 시달리면 ‘그래도 그렇지 아니야! 무슨, 무조건 적인 사랑이야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왜 죽어? 그냥 살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제를 끊임없이 자신이 해석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오늘 생각으로 잡혀 있는 이 저주가 완전히 무너지고 “오예~”가 되기를 축복한다.
→ 하나님은 남은 자, 거룩한 씨를 구원 사역을 위하여 남겨 두셨기에 예수사랑교회가 하나님의 소원, 선교적 사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흉년이 들어도 종자로 남는다. 세상은 흉년이 들면 사람도 잡아먹는데 우리는 구별된 거룩한 종자로 남겨 놓았다. 그렀기에 우리가 아무리 이상해도 하나님의 종자, 거룩한 씨로 남은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불태우지 않으신다. 씨앗을 불태우는 정신 나간 농부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런 종자를 가졌기에 절대 망할 수 없고 불태워지지 않으며 보존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미래적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남겨졌다. 그래서 우리 예수사랑교회가 연합해서 밭고랑에 씨만 제대로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내년에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많이 따거들랑 혼자 먹지 말고 종자로 남겨서 심겼으니까 세계 복음화 선교의 목적을 위해 쓰임 받길 바란다. 남은 자가 의로워 지거나 교만하고 싸가지 없이 굴면 안 된다. 이 가을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도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하지 말고 은혜 속에 충만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우리를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지명하셨다. 구원 받은 자의 참된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흉년이 와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걸 고백해라. 종자로서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면 내년에 또 쓰임 받는다. 우리가 그래서 보통 종자가 아니에요. 영원한 종자 죽지도 않는 종자. 그래서 거룩한 씨앗으로 구속되었기에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하는 생각만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 따라가면 된다.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의로 남은 거룩한 씨가 되었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신의 의와 영적싸움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교회로 일어나자
롬9:30-33 까지 결론이다. 이제 무슨 말을 하겠느냐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는 이제 끊어버리자.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으로 난 의가 된 것이다. 오직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올바른 신앙고백을 통하여 종자로 남겨 놓은 것이다. 믿음으로 인해 종자로 남은 것이지 예뻐서 종자로 남긴 게 아니다. 창조주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서 거룩한 씨로 선택을 받은 것이다. 정신문제 속에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삶의 문제가 와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육신 문제가 와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의로 여기신다.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따라 율법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들의 어떤 행위에 의지하여 부딪히는 돌에 맞아 죽었다. 결국은 자기의 의를 자기의 생각으로 해석을 하다가 버림을 받고 쫓겨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좇지 않은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라는 돌 위에다 집을 지었다. 교회를 튼튼하게 세운 것이다. 그저 그리스도만 들으면 “오예~”라고 한 것이다. 모든 문제 끝!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못한 것이다. 믿음으로 복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사탄의 권세와 죄의 권세 아래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는 종교인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의 성취자로, 기도의 응답자로, 전도와 선교에 흐름을 타는 행복자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저를 지명하시고 선교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 안에 남겨두신 거룩한 씨가 되었기에 날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는 고백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영적 싸움하여 세상을 정복해 갈 수 있도록 성령 충만 주시고 그리스도 위에 집을 든든히 세워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