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03. 1부 말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지으시고 안식일에 세 가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를 깨닫게 되면 많은 은혜가 임하기 시작할 것이다.
* 우리의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을 영적싸움으로 바꿔라.
창2장 안식일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주셨다.
인간에게는 정서가 있다. 절대 어떤 분위기나 기분, 감정에 따라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 앞에서 온갖 원맨쇼를 하는 정서를 갖고 있다. 기분 따라 감정 따라 사람들에게 좋게 하려다가 이상한 꼴을 당한다. 이 정서를 다스리는 힘이 없으면 삶의 규모가 나오지 않는다.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눕고 싶으면 눕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낮과 밤을 주신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각을 주셨다.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 이 세 가지가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죽는 날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창3장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탄에 의해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실패의 원인과 알 수 없는 인생의 여러 문제가 들이닥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이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교회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녔는데도 요8:44가 나타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살인자, 욕심쟁이, 비 진리...” 우리 몸에서 사건을 통해 그 정체가 발견된다. 그래서 요8:44에 대한 실체를 알았다면 창3:15 그 이후를 알게 된다. 뱀이 예수님의 뒤꿈치를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기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더욱 밟았다. 사람들은 뒤꿈치를 물리면 ‘내가 물렸네!’ 하고 정서가 불안해지고, 삶의 규모가 무너지고 온갖 생각이 다 찾아오는데 예수님은 마귀를 탁 잡아버리고 십자가에서 아예 죽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온 문제와 사건을 통해 창3장의 실체를 깨닫고 그 이유를 알고 실천하면 뱀의 머리는 박살난다.
마12:28~32 하나님의 성령,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없다.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지 않는 증거는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된다. 우리 정서가 이상해진다.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고 정서가 불안하고 안절부절 이다. 사건만 일어나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온대간대 없다. 창3:15 여자의 후손되신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12:28~32에 성령을 훼방하는 자,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사건을 통해서 창3장의 실체를 알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는 증거 있는 증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인생의 여러 가지 사건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까지 가는 증인으로서의 축복을 받은 증거이기에 밟고 싸우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따라가는 자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아무나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알고 체험해야 따라가는 것이다. 창3장을 아는 자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창3장의 실체를 알고 사건을 통해 무시로 성령 안에서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창3:15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문제나 갈등, 시험 드는 일이나 낙심 앞에서도 그 사건을 통해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고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집안에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성경은 기록했다. 사건을 통해 이 강한 자를 결박하고 밟을 때 모든 관계 속에서 친척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이다.
창3장은 육신적 자아중심으로 살도록 사탄이 완전 길들여놓은 것이다. 그래서 자아중심은 합리주의다. 내 유익에 따라, 필요에 따라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자꾸 인본주의로 인해 수치심과 부끄러운 일들이 찾아와 결국은 숨어버리기도 하고 문제가 일어나면 끝이라고 포기한다. 합리주의나 세상의 것을 선택하지 말고 창3:15을 선택해라. 하나님은 누가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고,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주라고 말씀했다. 양보하는 자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면 하나님이 막아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 밟으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원한 언약, 그리스도로 지속하면 지속하는 만큼 굳은 마음이 제거된다. 왜 사람이 감정에 따라, 기분에 따라 정서가 불안해지는가?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로 길들여지고, 창3장 함정에 빠져 자아중심으로, 하나님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기준, 표준, 수준은 늘 흥분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원죄가 있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욕이 올라온다. 이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밟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욕 나오는 일만 찾아온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내버리면 즐거워지고 기뻐진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굳어져버린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하라는 것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영혼 속에 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데 이것을 모르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골방에서, 여러 종교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로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더러운 것을 내어 쫓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헤맨다. 그러면서 사람은 점점 더 완악해져, 행19:8~10 하나님이 원하셔서 탄생된 예수사랑교회를 향해 비방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무기로 주셨다.
막3:14~15 하나님이 원하셔서 부른 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부터 건설한다. 내 몸에 하나님이 함께 하면 “전도도” 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 받으라고 주신 창3:15로 지금 너는 뱀의 머리를 밟을 지어다. 너는 너와 네 가정에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구원의 방주를 지어라!’ 이렇게 자기에게 전도하면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시험과 갈등, 낙심이 찾아올 때마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사용한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노예에서 해방을 받는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하나님이 십자가 피 흘리시며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로 왕권과 제사장권, 선지자권을 잃어버리지 말고 사용해라. 벧전2:9 우리는 왕 같은제사장, 이 시대 빛을 발하여 어둠을 밀어내는 선지자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한다. 어둠과 캄캄함이 만민을 덮고 있지만 하나님이 빛의 운동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성령을 부어주셨다. 우리가 이것을 상실하지 않으면 우리의 정사가 계속 아름다워진다. 하나님 자녀 된 신분권세가 우리 정서에 와 있으면 얼마나 멋있어지겠는가? 그러면 삶의 규모가 있어 정시기도와 무시기도로 날마다 기도하고 생각을 계속 바꾸기 때문에 우리 몸이 굉장히 멋있어진다.
이 축복이 롬16:7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임했다. “... 그들은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그들의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은 바울보다 더욱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계복음화 하자. 중국 제자들이 이번 아프리카 사역에 함께 동참한다며 저렇게 작은 나라를 돕는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깨닫고 중국의 문화 속에서 해방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사천성에 대학 부총장이 옷에다 직접 글을 써서 나에게 선물을 해준 적이 있다. 어떻게 작은 나라에서 자신들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있냐며 정말 감격해하며 나에게 그 옷을 입혀주었다. 나는 그 때 중국의 정신을 봤다. 하나님이 진짜 제자를 중국에 숨겨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중국을 통해 예루살렘과 애굽을 지나 아프리카 땅 끝까지 갈 것이다. 내가 2016년도 바누아투에서 죽다가 살아왔을 때, 굉장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이 미안했다. 그 이후로 정말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놓고 진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왔다. 그래서 다문화, 다민족, 제자들을 부지런히 키워서 파송해야겠다는 강력한 마음이 온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전쟁하는 최고의 군사로 부르셨기에 이 땅에 흑암권세를 꺾어버리고 사망권세 묶인 자들을 풀어주는 군사가 되자. 그래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도적, 사망권세 잡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버려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임에도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혼미케 하는 놈이 이 세상 신, 세상 임금이다.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있던 왕권을 창3장 사건을 통해 빼앗겨 버렸다. 이것을 다시 되찾아라. 그러면 세상 신, 마귀로부터 시달림을 당하지 않고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아들들에게 순복하게 된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임을 당하면 안 된다. 속이는 자, 방해자, 어둠의 세력에게 우리는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가정 안에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 신이 우리 가정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 자녀에게 적대감을 갖지 마라. 적대감이 왔다는 것은 우리 집안에 악한 귀신이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먼저 흑암을 결박하는 기도를 사용해라. 그러면 우리 입에서 고백이 나온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영적싸움을 진행할 때 하나님은 사역하시고 하늘의 천군천사가 움직인다.
하나님의 방법을 봐라.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이 땅에서 영적싸움을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싸움을 하지 않는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만큼 영적싸움을 하면 하나님이 노아처럼 통째로 응답하실 것이다. “...땅에서 이룬 것같이 하늘에서도 이뤄지이다” 하늘에서도 전쟁을 일으켰지만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긴 마귀, 이 놈을 우리가 밟자.
이것을 정말 알면 우리의 정서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야 삶의 규모도 아름다워진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싶어서 뜨는 것이 아니라 기도 때문에 눈을 뜨는, 모든 삶의 규모가 기도로 연결된다. 그래야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은 요14:14, 15:16, 16:24에 반드시 “내 이름으로” 영적싸움하라고 말씀했고, 영적싸움 하는 자에게는 열매가 있을 것이며, 기쁨이 충만케 되리라 말씀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망하는 것은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는 일은 한 맺히는 일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바른 삶이 아닌 바른 언약이 필요하다.
나름대로 바른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는 죽는 날까지 합리주의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다. 자기 생각대로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자는 마귀의 영을 가진 자다. 그래서 고후11:14 자기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
원죄를 가진 인간은 절대 바른 삶을 살 수 없다. 바른 언약을 가지고 있어야 정서와 삶의 규모, 생각이 바뀐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언약을 주시고 원래 인간, 새 언약의 백성으로 바꿔주셨다. 바른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 자녀로 바꿔주신 것이다. 바른 언약이 아닌 바른 삶으로 사는 것은 죽는 날까지 마귀의 심부름만 할 뿐이다.
롬16장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은혜와 응답과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 짓밟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1인칭으로 적용한 사람에게는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지어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창3:15의 원리대로 행했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바른 삶을 살려만 하면 죽는 날까지 갈등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바른 언약을 가진 자는 갈등이 찾아와도 자녀 된 신분권세로 자신을 바꾸지만, 바른 삶을 살려고 하는 자들은 원죄로 인해 갈등뿐이다. 그래서 갈등이 늘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엉뚱한 말만 한다. 포럼을 하면 얼마나 엉뚱한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엉뚱한 일에 의해 늘 시험이 들어있다. 그래서 “집사님 포럼 한 번 하세요.” 하면 “할 말 없어요. 못해요!” 한다. 갈등의 결과는 시험이고 엉뚱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늘 표어처럼 하는 말이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끊으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구원을 받고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데, 그리스도 하나면 ‘어떻게’ 라는 말은 필요 없다.
우리는 지금 네피림 시대에 살고 있다. 우상 숭배, 종교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말로 뉴 에이지 라고 하지만 결국은 귀신들린 자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 세상은 무속과 점술, 미신이 난무하게 되었고, 이것을 가진 자들이 ‘문화’ 라는 것으로 포장하고 문화 행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 안에 창3:15을 주셨다. 언제든지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기에 ‘나 자신을 완악하게 만들고 정서 불안으로 나를 낙심케 하며 갈등하게 만들고 시험 속에 빠뜨리는 저주의 질병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삶에서 떠나갈지어다. 우리 가정 속에 적대감을 갖게 하고 가족끼리 원수 되게 하는 흑암 저주는 지금 우리 가정에서 떠나갈지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 가정을 해방하셨다!’ 이렇게 선포하고 함께 그리스도를 노래해라.
우리는 아무것도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되어 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인쳐 주셨기에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우리 가정에 적대감을 갖게 만들고 끊임없이 싸우게 만드는 모든 흑암권세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깨어질지어다!’ 선포하면 정말 될 수밖에 없다. 영적싸움을 하면 안 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된다. 마귀의 영적 세계는 정말 잔인하다. 절대로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그런데 영적 세계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진짜 망한 후에 그리스도하려고 하면 입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힘이 있을 때, 지금, 그 이름을 불러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정서, 삶의 규모,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연결시키면 말씀으로 싸우게 된다.
* 예배 때 주신 말씀을 기도로 만드는 사람은 100% 승리한다.
그런데 예배 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 놓고도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다. 그 밀가루를 반죽해서 수제비를 하든, 칼국수를 하든 빵을 먹든 하는 것이다.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놓고도 그 말씀을 기도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늘 밀가루만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다. 말씀을 기도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면 어느 날 수제비만 만들던 사람이 바게뜨 빵을 커피와 함께 우아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자꾸 변해간다. 무시로, 정시로, 집중으로 하면 상상하지 못한 응답이 시작된다. 우리교회는 이런 변화의 간증이 정말 많다. 다른 교회 있다가 우리교회 오신 성도님이 있었는데, 그 분은 정신병 약을 많이 먹어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어서 평생소원이 발가락에 있는 발톱을 깎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고 그리스도만 부르고 있으면 가스 빠져나가니까 그리스도 많이 부르고 약도 갖다 버리라고 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자신이 발톱을 깎고 있다고 간증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육신적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들이 지속이 안 된다. 예배 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장 잘 훈련시키는 곳이 새가족반 이다. 그리고 예수사랑교회 안에 진짜 숨겨진 제자들을 만나 다락방을 하면 살아난다. 그런데 발톱 깎고 매니큐어 바르면 세상으로 자꾸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다락방을 하고, 새가족반, 로마서 16장 주역 제자반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미친다. 정서가 좋아지면 해보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져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5년 후에나 교회를 오는데, 그 때는 배 뿐만 아니라 얼굴도 부어있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나는 이런 영적세계를 철저하게 당해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래서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반드시 복음화, 전문화, 세계화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전부 전도로 연결되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 나는 창3:15을 가지고 이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눈을 뜨고 감는다. 말을 하고 싶고 화를 내고 싶고 흥분하고 싶은데 창3:15을 나에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마16:16을 신앙고백 하는 자들에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천국열쇠를 소유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반드시 되는데도 불구하고 안 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할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3장에서 시작된 못난이 이기 때문이다. 진짜 별 볼일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인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셨다. 그래서 우리 자신과 많이 싸우면 침묵할 수도 있고, 삶의 규모와 생각도 바뀐다. 불신자가 당하는 운명, 사주, 팔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 받았다. 우리에게 자녀 된 신분권세는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축복을 받은 그리스도 하나를 반드시 재생산, 재창조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 영원한 성령,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소유한 나에게 승리와 열매가 충만하며,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할 때 하나님은 보좌에서 역사하시며, 말씀을 이루는 천군천사들이 활동하며 나를 돕는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에게 천국 시민권이 주어졌고,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함께 하신다. 그래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화, 전문화, 세계화 하는 것이다. 세계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화를 하고 삶의 규모를 찾는 것이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이 세 가지를 철저하게 전문화, 복음화, 세계화 시켰다. 우리의 정서가 말씀이 아닌 자아중심으로 가면 절대 복음화 세계화 전문화를 할 수 없다. 감정 따라 사는 자가 어떻게 전문인이 될 수 있는가? 절대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과 만남이 세계복음화였다. 그래서 말씀을 기도로 만들어 놓았다. 삶의 규모는 영적전쟁을 해야만 시작된다. 그래야 우리 생각이 바뀌고, 그 때 전도가 시작된다. 이것을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들이 롬16:7에 기록된 것이다.
롬16:7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서를 말씀으로, 기도로 연결한다. 영적싸움을 통해 삶의 규모를 만들고, 전도라는 절대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라고 한다.
문제 앞에 절대 속지 말고 내가 가진 영적문제를 찾아 싸워라. 그리고 삶의 규모를 갖춰라. 반드시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영적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반드시 싸워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 이것을 영적싸움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서, 삶의 규모, 생각이 바뀐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전도자가 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바른 삶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원죄의 문제에 있던 나를 창세기 3장 15절의 비밀을 소유한 새 언약의 사람으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시대 하나님 나라까지 증인의 축복을 주셨기에, 내게 찾아오는 문제와 갈등 앞에 합리주의와 인본주의로 끌고 가며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게 하는 마귀를 밟고 싸우는 영적싸움 속에 날마다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이제, 나의 정서를 예배 때 말씀으로 기도로 연결시키고, 영적전쟁으로 전도가 절대 계획이 되는 삶의 규모를 만들어, 생각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 복음화 전문화 세계화가 시작되게 하시고, 내 자랑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친척과 같은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