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3. 1부 말씀
하나님의 절대 소원은 세계복음화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고 세계복음화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일을 행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계복음화의 길을 떠나게 하신다. 산업을 해도, 공부를 해도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려면 나의 근본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하는 짓은 악하고 강퍅하고 더럽고 쓰레기처럼 사는 것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싸움을 싸우고, 짐승보다 수준 떨어진 짓을 하고 있다. 말씀을 따라가면 이렇게 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러면 영적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적싸움에 충만한 사람에게 성령이 공급된다.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달라고는 하는데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가겠다고 결단하고 자신이 하는 짓을 포기하고 영적싸움으로 가면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래서 24시간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으면 하나님의 25시가 시작되어 하나님의 영원성 속에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신다. 시23:3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을 소생케 하신다고 다윗이 고백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만남이 전도 운동이다. 한 번의 만남이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의 축복으로 오는 것이다.
* 성령충만은 자신과 영적싸움을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 수많은 일들과 이유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많이 올 수 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서 가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언제나 있었다.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받으면 일이 잘 풀린다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합격도 되고 공부도 잘되고 고난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령충만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빌1:12 사도바울은 자신이 당한 수많은 일들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여러 가지 고난, 어려움, 억울함 이런 것이 복음의 진보가 되는 것이다. 자신과 영적싸움 없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영적싸움 없이는 그리스도를 말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온다. 병들었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할 수 있고, 환란의 문제가 내 앞에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리낌 없이 전달할 수 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싸움에 충만한 자들의 증거였다.
창3:15이 능동적으로 우리 몸에서 움직여 뱀의 머리를 밟는 것을 체질화해라. 눈으로 보는 것, 피부로 느끼는 것, 여러 일들 속에서도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면 문제될 일이 없다. 왜 그런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남북 어디를 다녀도 굿뉴스 뿐이다. 언제나 상황을 제압하는 영적인 군사가 되어있고 영적인 힘을 가진 자가 되어있기 때문에 불편할 것이 없다. 순간 찾아오는 아픔과 고통이 있어도 상황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몸에 항상 함께 능동적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셔서 부르셨다면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역사의식 속에 부름 받았음을 느낀다면 눈을 번쩍 떠야 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역사의식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정말 믿어야 한다. 전 세계 제자들은 이 메세지에 눈을 떠야 한다.
하나님이 소명의식 속에 원하셔서 부른 자들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는가?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이라” 성경대로 믿고 실천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명의식,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능동적으로 몸에서 역사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 방언하면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교회가 이렇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으면 이렇게 생쑈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믿어지면 세계복음화의 절대 비전이 우리 몸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대 비전, 부활 메세지를 가진 교회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제자를 삼는 사람들에게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다. 부활 메세지가 이끄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교회를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전을 가지고 이끌림을 받고 있기에 능동적으로 몸에서 움직이게 되어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아라. 그러면 다른 것에 이끌리지 않는다. 다른 생각에 빠지거나 다른 길을 찾는 게 아니다. 이미 와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몸속에 보혜사 하나님의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하셔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고 성전 삼아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집에 있든지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인생에 답을 반드시 내야 한다. 그래야 유일성의 응답이 온다. 유일성의 응답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묶인 것을 푸는 것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3 저주가 풀리는 것이다.
인간은 교회를 다녀도 반역을 일으키는 자다. 자신이 반역자가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곳이 교회가 되어버렸다. 사단의 이름이 반역자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반역자면 우리도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하는 짓이 악한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 고 했다. 사망을 가진 자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또한 반역자로서 우리 몸뚱이에서는 늘 이간의 영이 흐른다. 모든 것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된다. 그래서 거치는 자가 되고 자신이 유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미치게도 만들고 그런 일을 당했다고 울분과 원망, 불평으로 인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미혹의 영에 걸리게 된다. 우리 몸뚱이 하나에 이렇게 엄청난 저주와 재앙으로 충만해져 있다.
내 몸에 이렇게 엄청난 더러운 것이 충만해져 있기 때문에 영적싸움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리낌 없고 담대하게 전할 수가 있다. 누구 앞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는데 뭐가 그렇게 불편한가? 말씀을 따라가고자 결단하고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답이 나온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아라.
내 몸에 와 있는 수많은 상황들로 인해 언제나 내 몸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늘 육신적인 생각과 말만하면서 살아간다. 영적인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경배의 대상이 늘 ‘나’의 육체가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경배의 대상이 내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들에게 한 유언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40년 목회가 너무 고독하고 쓸쓸하고 재미없었으니 너는 목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변하가 없으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거듭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영적싸움으로 충만해진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성령충만을 경건으로 착각한다. 딤후3:5 경건의 모양만 있으면서 경건의 능력 곧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는 돌아서라고 했다. 자신과 영적싸움에 충만하면 성령을 받는다.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인간이 하는 짓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 소명의식, 사명의식을 가진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세상을 정복한 초대교회는 귀신, 악령의 활동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귀신들린 채로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일심, 전심, 지속으로 전달했더니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을 정복한 초대교회 성령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자신들의 몸이 다른 것과 접신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수많은 상황이 올 때마다 귀신에 들린 것이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찾아 접신 된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있어도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 뿐, 우상 숭배에 끌려 다녔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아도 교회당 우상에 잡혀 명상하고 있었다. 명상도 어설프게 하니까 신비주의에 빠졌다. 자신이 신비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가야바 교주가 가운을 입고 신비로운 척 나타나며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신비주의에 빠져 성전에 그냥 주저 앉아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지금까지 사단의 심부름을 했고 사단의 종노릇 한 것이다. 예수님이 요8:43~4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모든 저주를 없애라는 것, 그리스도를 가지고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능력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 그리스도의 역사는 반드시 기도, 영적싸움으로만 충만해진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때문에 소명의식, 사명의식, 역사의식이 생긴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며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를 노래한다.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고 성령충만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를 죽인 그 무시무시한 악한 놈들을 제압해버릴 수 있게 된다. 본문에, 베드로는 몇 개월 전 예수를 잡아 죽인 자들 앞에 서 있게 되었다. 예수님을 죽인 살인의 광기가 가득한 자들 앞에서 서 있다면 얼마나 섬뜩하겠는가. 그런데 무시로 성령 안에서 영적싸움을 하면 이런 상황을 제압할 힘이 생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능력을 주시려고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셨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초대교회는 세상을 정복했다.
성령충만과 그 따르는 표적에 대해 본문에 나타난다. 아무리 예수사랑교회가 비천하고 연약하고 힘이 없고 병든 사람만 꽉 차 있어도 그리스도로 시작하면 일어나게 된다. 여러분의 목사인 나는 인생을 실패한 쓰레기였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고, 나는 배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여러분 앞에 증인으로 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얻은 이후부터였다. 몸도 연약해서 질병으로 주저앉았었고, 내 주위에는 나를 도울 배경과 기댈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리스도 하나로 세계복음화를 여러분과 함께 하는 자가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질병이 엄습하고 고통이 있어도 그리스도 이름을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놓고 어떤 상황도 대처해 나갔다. 질병이 있어도 속지 말고 그리스도를 불러라. 이유 없는 어려움이 있어도 속상해하지 말고 원망도 하지 마라. 사람이 하는 짓은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붙잡아라. 성령충만은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 이름을 대처하는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몸속에서 능동적으로 일어나야 사랑이 생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는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과 생각에 충만해져야 진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온다. 핍박과 환란, 질병, 아픔, 슬픔이 없다면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다.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당해야 성경이 더욱 이해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몸속에 오게 된다.
우리에게 먼저 온 놈이 있다. 혼돈과 공허, 흑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땅에 우리 보다 먼저 온 놈이 있다. 이 놈은 바로 반역자, 이간자, 분쟁을 일으키는 자, 우리를 멸망시키는 자다. 혈과 육의 싸움으로 싸움을 붙이는 전쟁의 광기를 가진 자다.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 인간과 인간을 원수 맺게 만드는 세상 임금이 따로 있다. 그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를 밟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상황을 대처해 갈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상황을 만들어 우리를 실족시켜 완벽하게 멸망시키는 놈이 있는데 왜 영적싸움을 하지 않는가?
초대교회가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았음에도 엄청난 환란을 당했다. 핍박과 위협, 체포를 당하고 사회적 단절을 당하고 이단누명을 쓰고, 무시무시한 위협과 순교까지 당했다. 성령충만이면 되는데 왜 핍박이 있었는가?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데 왜 고난을 당하는가? 이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다. 자신과 영적싸움이 충만해지면 상황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오게 된다.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상대를 볼 수 있는 힘이 없다. 보디발의 아내가 없으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평생 있어야 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 개인이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고 자신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힘을 가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율법주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령충만 하다고 하면서 문제가 오면 자신이 범죄를 저질러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며 이상한 논리로 자신을 끌고 간다. 예수를 믿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끝난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죄를 범해서 위협과 곤고함, 순교를 당해야 하는 일들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몰라 문제만 오면 자신의 죄로 인해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 죄 때문에 문제가 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순간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 문제 앞에, 상황에 잘못된 논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베드로가 칼을 꺼내 귀를 잘랐던 것처럼 육신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 주위에 자신을 괴롭히는 자가 있다고 율법주의로 가면 사람을 죽이게 된다. ‘저 사람은 왜 성실한 나를 괴롭힐까?’ 하고 죄의 논리로 가져가고, 율법주의, 논리로 가면 상대가 죽일 놈이 된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한다. ‘저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악한 놈이 득실거리고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시대 나를 불러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무한한 미래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갖게 하셨다.’ 깨달아야 한다. 요셉은 자신을 괴롭히는 형들과 전쟁하지 않았다. 자신과 영적싸움만 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강간범으로 누명을 썼을 때도 여자와 싸우지 않고 자신과 싸웠다. ‘내가 이 집에서 평생 걸려들어 노예로 있을 뻔했는데 하나님은 문제와 상황을 통해 이 집에서 나오게 하시는구나’ 그래서 노예 신분에 처했을 때도 있었고 감옥에 들어가 인생 공부, 현장 공부도 많이 한 다음 총리가 되었기에 요셉은 교만하지 않았다.
예수사랑교회는 노예로 팔려가도 괜찮고 감옥에 가도 괜찮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되어지는 비밀을 하나님이 주셨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사람은 어떤 고난과 실패, 위협, 죽음의 질병을 당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무시무시한 어려움이 몸을 짓눌러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다. 요19:30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모든 문제를 다 이루셨다.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너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어 놓으셨다.” 그래서 절대 원망하거나 의심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는다면 그리스도로 새롭게 시작해라.
‘내가 죄가 많아서, 무능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엉뚱한 말을 하지 마라.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사람들은 문제가 오면 말을 많이 하고 사람을 의지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만 가지 문제가 있어도 답은 그리스도 하나 분이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 앞에 그리스도로 자신의 그릇을 키워라.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 너무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누나 식당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누나가 등록금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갔지만 빈손으로 동대구 터미널까지 왔다. 그 때 창녀촌 포주 아주머니가 차비를 줘서 서울까지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훗날 갈곳없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공동체도 하게 된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경험과 억울하고 압제당하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셨다. 내가 그런 어려움과 고난, 슬픔, 좌절이 없었다면 목사로 여기에 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사랑 교회 모든 가족들이 패잔병이라도 상관없고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괜찮다.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미래가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령충만한 자들은 핍박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핍박, 환란, 위협, 고난, 가난, 매 맞음, 죽음, 질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이기에 밟으면 된다는 비밀을 가졌다. 우리가 영적싸움의 충만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강한 힘을 주신다.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속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라. 죄를 짓는 자, 불신앙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해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문제, 어떤 상황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임을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문제 앞에 스트레스 받아서 맛이 가고 나이가 들면 중풍, 성인병에 시달리고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걸어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임한다.
행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이방인과 이스라엘 유대인까지 합세하여 예수를 거스르고 죽였던 사람들 앞에 이제는 증인으로 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마귀의 일을 멸하면 끝난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 속에는 무한한 지혜가 들어있다. 그런데 마귀의 일을 멸한다고 하면서 내 생각은 그대로 있고 내 억울함, 상처는 그대로 있다. ‘권세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더러운 마귀, 귀신은 떠나갈지어다!’ 해 놓고 여기에 빠져있다.
마귀의 일은 바로 내 몸에 있다.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 “내가 너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이 내 생각으로 와 있어야 한다. 환란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이 기억나 그 분이 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적싸움을 해놓고 내 생각 그대로 있다. 영적싸움을 한다고 하면서 안 되고 슬프고 답답하고 병이 낫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병이 들었으면 “무릇 살아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 말씀을 믿으면 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질병의 생각에 잡혀있다. 상처와 욕심, 거짓말에 잡혀있다. 마귀의 일을 멸하고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내 계획, 욕심에 그대로 잡혀있다. 결국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생각은 마귀의 자식으로 살고 있다. 생각이 하나님의 자녀이여야 하는데, 말씀을 따라가는 자, 말씀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말씀이 움직여 우리의 혼과 육과 골수를 쪼개 찔러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데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비밀은 지구의 어떤 교회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마귀의 일을 멸했다면 내 욕심, 내 상처, 내 슬픔으로 가지 마라. 내 뜻대로, 내 생각, 내 고집대로 가면 절대 양보, 이해, 배려, 용서, 사랑이 불가능하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합니다” 하면서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말은 하면서도 생각이 이상한 것으로 잡혀있다. 세상을 정복한 하나님의 자녀,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모든 것을 끝냈다. 이제 내 생각을 끝내라.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끝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기도한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하는 일에 힘을 주시고, 밀어주시고, 제가 하는 일에 역사해주옵소서. 제가 가는 길을 인도해주시고 내 사업을 축복해주옵소서~~’ 한다. 이런 사람을 십자가의 원수, 양심에 화인 맞은 자라고 한다.
신앙생할을 어떻게 해야 성령의 충만을 받을 것인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 되신 그리스도로 생각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주시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훨씬 지혜롭다. 우리가 모르는 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고 살지만 하나님은 25시, 영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요셉은 나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형들에게도 원망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두려워 떨지도 말고 한탄하지도 말라고 했다. 형들이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면 형들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애굽으로 갈 수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애굽땅에 팔려가 총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없고 내일 일도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미래를 알고 계시고 자신과 영적싸움에 충만하면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매일 거듭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살아가려고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사람들은 전부 현재라는 상황에 매여 몸부림을 친다. 하나님은 미래를 내다보시면서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신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리스도로 제압하면 된다. 자신과 세상과 사단과 영적싸움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충만을 주시고 그들을 알고 계시며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어떤 상황과 핍박이 와도 하나님의 능력만 받아들여라.
초월하시는 지혜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상황 속에서 믿고 살아라. 문제없이는 전도 제자가 될 수 없다. 창3장을 모르면 전도를 할 수 없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가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지 않고 맛보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말할 수 없다. 성령충만이 오면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성령충만이 오면 올수록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아, 내 안에 능력이 머물러 계시는구나’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마귀는 자기를 폭로하는 자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하나를 몸에 소유하고 있으면 사방에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행4:27~28,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것도 모자라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신들도 죽이려고 모였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무 상관이 없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확신하게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온 겁쟁이, 도망가는 비겁한 자들 앞에서 베드로는 최고의 메세지를 던졌다.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와 연계시켰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지금 우리까지도 죽이려고 하고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 떼거지로 우리에게 밀려들어오고 있다. 자기 유익만을 위하여 먹고 사는 것에 눈이 돌아가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지금 밀려들어오며, 자기 배만을 채우기 위해 사는 자들이 구름떼처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표적이 그리스도로 있고 그 표적이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그 표적이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원수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옵소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너희가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살인의 영이 있음을 나는 말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단에 의해 장악되었지만 너희 여온에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너희도 살게 되는 것이다.
위협이 넘치는 그 상황에도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뤄지게 하옵소서 빌기를 다 했을 때 그들이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 분명해진 증거를 가지게 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역사의식이 있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그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살아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소명의식, 사명의식을 가지고 영적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영적싸움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밖에 없다. 영적싸움이 정말 일어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다. 자신이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짓눌려버린다. 그래서 자유함도 없고 확신도 없게 된다. 말씀을 전해도 승리가 없고 오히려 더 힘들어버린다.
정말 자신과 영적싸움에 충만해라. 영적전쟁을 생각하고 전하면 성령충만이 온다. 자신과 싸우는 영적전쟁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온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의 내게 온다. 영적싸움을 자신과 시작하기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온다. 그러면 뚜렷해지고 분명한 확신이 온다. 오로지 예수그리스도 그 십자가의 고난과 연계된 사건이 가장 높은 가치가 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와도 이제부터 “좋다” 해봐라. 어떤 문제가 와도 좋다. 그리스도 능력 안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어떤 문제 앞에서도 춤추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원죄에 묶여 의미 없는 싸움만 일으키며 자기의 유익을 위해 미혹의 영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나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가며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맛보았음에도 핍박과 환란을 맞이한 초대교회는 어떤 일에도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고 언제나 사탄의 머리를 밟는 영적싸움에 충만했듯이,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 앞에도 영적인 눈을 뜨고 전도제자의 발판을 삼아 자신과의 영적싸움으로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성령충만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뚜렷한 증거를 담대히 말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