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1부 말씀
이 본문의 사건 이후로 베드로는 돈에 대한 개념을 갖지 않게 되었다. 목사가 교회 돈에 관심을 갖게 되면 ‘속이는 사람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 속에 목사들의 권위를 가지고 엉뚱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 우리는 사람이 권위로 사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영적싸움 속에 신앙생활을 하라.
요셉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세계를 정복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지만 그의 형들과는 신앙생활이 달랐다. 요셉과 그의 형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 는 임재를 느끼며 살았고, 그의 형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던 요셉은 세계를 정복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던 요셉의 형들은 밥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는 거지로 전락했다. 요셉의 형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출발이 강했지만 결과는 완전 역전되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은 목동이었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그래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인도하신다’ 할 만큼 지팡이로 두드려 가면서 길을 가듯 인도를 받고, 막대기로 내칠 수 있는 강한 힘을 느끼며 살아갔다. 이렇듯,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자와 느끼지 않는 자의 신앙생활의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영적싸움을 상실했기 때문에 위선자로 살았다. 우리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살아계신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그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미래는 비참해진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불신앙을 심는 사단이 머리를 밟아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마음과 생각을 기도로 집중하면 성령 하나님은 앞서 진행하신다. 천군천사는 마귀, 악령, 귀신, 사단의 세력보다 두 배가 더 많게 우리를 위해 활동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3:15 그리스도, 하나님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믿고 사단을 결박해라.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문제도 두려워하거나 답답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흉악한지 하나님이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셔야만 했다. 우리 몸이 엄청난 흉악으로 장악되어있기에,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로만 우리 몸을 치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몸을 성령, 하나님으로 함께 해야만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안에 거하라”(요15:4) 말씀하셨기에, 그리스도 안에 거해라.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게 하면 된다(요15:10).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의 권세는 뱀의 머리를 밟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권능이기에, 이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시행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런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몸부림치지 마라. 교회는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내 몸에 거하게 하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면서 길을 떠나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결박하면 하나님은 역사 하신다”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영적 세계로 들어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그리스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그의 인도를 받으면 되는데 인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오는 것이다. 계3:9~10 사단은 조직을 가지고 늘 모여서 회의를 한다.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표시 없이 장악하는 것이 불신앙이다. 불신자에게 불신앙은 인생에 아무 상관이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불신앙이 들어오는 것은 죽음과 같다. 분명한 영적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담, 하와에게 사단이 “나는 마귀야” 하면서 나타나지 않았다. 하와와 가장 친하게 노는 짐승,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온다. 하와와 가장 잘 놀았던 동물이 뱀이었다. 그래서 사단, 마귀가 뱀을 움직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영적세계를 못보고 자꾸 불신앙에 빠진다. 엡6:11, 우리의 대적 마귀는 늘 궤계를 쓴다고 했다. 약점과 단점, 장점을 기가 막히게 알고 파고든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 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3:15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창3:15로 인도를 못 받고, 창3:15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늘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불신앙이 생기면 영이 죽는다. 그래서 마귀는 불신앙을 제공하는 것이다. 강단의 말씀을 따라 살지 말고 ‘나’로 살라고 한다. 늘 내 가까이에서 나에게 속삭인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필요도 못 느끼게 만들고 분위기 따라 자신도 모르게 음악을 틀게 만든다. 우리의 믿음을 자꾸 떨어뜨리는 것이 사단의 궤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힘이 나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전도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하면서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자신에게 전도해라. 창3:15, 시23편이 나의 것이 되자. 다윗은 창3:15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나의 목자’ 라고 표현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 할지라도 자신과 영적전쟁을 하는 나에게는 해를 주시 않으신다!’ 는 확신이 있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많은 환란을 겪었지만, 그 시간조차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고백했다. 형들이 구덩에 던져 넣었을 때도, 노예로 팔려지기 전 상인들이 자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치와 모멸감을 줄 때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꼈다. 그래서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셨고 하나님은 창39:5 “요셉을 위하여”, 요셉의 이름까지 부르시고,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밭에까지 복을 내리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3:15을 소유한 “예수사랑교회를 위하여” 열방의 아들, 딸들이 모이게 할 것이며, 바다의 풍부와 열방의 재물이 예수사랑교회로 모이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큰 축복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셨기에 경쟁자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모든 예수사랑 가족들이 받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목사님 제 나이가 지금…” 이라는 핑계는 대지마라. 들어간 것이 많은 사람은 그것이 빠져나가고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된다. 들어간 것이 많았던 모세는 79세까지 안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오래 가고, 잔머리를 많이 쓰는 만큼 오래간다. 모세는 79세까지 불신앙과 수치심, 모멸감, 좌절감, 낙심, 절망, 고독에 빠져 있다가 80세에 거듭났다. ‘내 나이도 하나님이 쓰신다’ 고 확신하고 결단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해 부르셨기에 성령을 훼방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따라가라.
불신앙, 육신적인 말을 제하고 먼저 입을 다물고 영적싸움을 시작하자. 그러면 영적 세계 속에 자녀 된 신분권세가 온다. ‘나는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 내주, 인도, 역사가 항상 함께 계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인치셨다.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게 임했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연약함과 불신앙은 그리스도로 떠나갈 지어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든 천군천사들은 움직여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이루어갈지어다. 이 땅에 매를 맞고 배가 고프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이미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이 세상을 정복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영적인 세계 속에서 오는 영적인 축복을 정말 받아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자꾸 고백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자꾸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목자가 되시며, 그리스도는 나의 방패가 되시며, 그리스도는 나의 검이 되신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여정이 누림이 되고 힘이 된다.
성삼위 하나님을 누리는 비밀이 무엇인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누리는 비밀이 그리스도다. 한 번의 예배 가운데 앉아있으면서도 피곤하고 힘든 것이 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그리스도’ 를 고백해라. 그러면 자신에게 피곤했던 기억이 없을 만큼 눈이 확 열린다. ‘목사님 밤새 일하고 와서 그렇습니다.’ 한다면 또 불신앙이 들어가는 것이다. 생각에만 멈춰있지 말고 그리스도를 불러라. 그러면 정신문제, 영적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면 우리 삶에 치유와 변화 속에 새로운 은혜가 임한다.
왜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누려야 하는가? 사단이 우리를 지옥권세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는 게 행복이 없는 것이다. 사단의 틀에서 하나님의 틀로,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그리스도로 빨리 옮겨라. 죄와 사망에 묶인 나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서 생명으로 옮겨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사망의 저주를 깨뜨리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망을 담당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에게는 사망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머리를 밟을 수 있다. 그런데 밟지 않으면 사는 날 동안 저주와 재앙 속에 있는 것이다.
*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베드로가 영적전쟁을 하지 않아서 온 결과가 본문이다.
베드로도 이 사건을 통해 영적전쟁을 알게 되었다. 목사가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 말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저주의 말을 통해 성도를 죽이게 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사건 이후에는 전부 살리는 메세지만 했다. 마가가 바울을 배신하고 자기 곁에 왔을 때도 그에게 영적전쟁을 알려주었다.
베드로는 과거에 예수님을 배신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배신하니까 확 돌아버린 것이다. 사람의 상처가 이렇게 무섭다. 상처대로 살지 말고 우리가 가진 상처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복종시켜라. 사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상처를 가진 베드로를 통해 죽은 것이다. 이런 목사를 만나면 성도는 이상해지는 진다. 교회에 헌신하고 이상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헌신하고 심판을 받는 자가 되면 되겠는가? 영적싸움 안하면 성도도 죽고 목회자도 죽는다.
마12:28~32 영적싸움하지 않는 결과는 성령훼방 하는 죄요, 오는 세대와 가는 세대에 죄사함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죄의 저주가 그 사람을 덮는 것이다. 죄의 권세로 해방을 받아야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할 수 있다. 개인이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잊어버리면 집안에 악한 귀신이 들어온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헌신도 하는데 심판을 받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심판에서 해방을 받아야 하는데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해방을 받지 못하고 심판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진다.
눅20:37~41, 마22:41~46 이후에 예수님이 바리새인, 유대인들이 심판을 받는가에 대한 명확한 메세지를 주셨다. 그리스도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심판이요, 재앙, 저주, 지옥이라는 것이다. 모세도 창3:15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창3:15이다. 그 창3:15이 구약에 말씀으로 임재하시고 신약에는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성령을 넣으셨다. 그 임재를 느끼지 않고 영적싸움을 하지 않은 결과가 베드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모두에게 비극을 준 것이다.
눅20: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고백한 것과 같이 내 원수가 누구인지 알고 그 놈이 무릎 꿇을 때까지 한 번 밟아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할 내가 왜 자신으로 사는가? 하나님이 함께 해야 하는 내가 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사는가? 왜 하나님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원수를 발등상이 되기까지 밟아라. 집중해라. 징징거리지 말고, 질질 짜지 말고 진짜 밟아봐라. 사단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나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다윗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다. 사단 권세 아래 있는 나는 끊임없이 죽는 날 동안 계속 속고 살며, 흑암 권세로 묶인 채 질질 끌려가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산다. 그래서 수준 낮은 자는 ‘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나’만 아니까 집착하고 분열을 일으키고 쓸데없는 것을 찾아다닌다. 또 나름대로 수준이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를 철저하게 숨긴다. 인격적, 도덕적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숨겨놓고 사업을 키우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많은 일도 한다. 수준 낮은 사람은 하루 종일 잠만 자지만, 수준 높은 사람은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난다. 수준 높은 사람들은 목표가 성공이다. 그래서 그 성공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수준 낮은 사람들은 성공이 목적이 아니다. 누가 먹어보라는 소리 안했다고 삐지고 열 받고, 직장에서 무슨 말 한마디만 들어도 금방 얼굴색이 변하고, 술 마시고 밤새 딴 짓한다. 수준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에는 얼굴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나이 들어서는 두 사람 모두 중심이 ‘나’ 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나’ 로 살다가 쓸쓸해진다. ‘나’로 사는 사람들은 거듭날 수 없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기는 거듭남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창3장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창3장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일평생 죽기를 무서워하며 사단의 종노릇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나 중심으로 집착과 중독, 분열과 세상의 지식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찾고 두드려도 틀린 것뿐이다. 세상의 문화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틀린 것뿐이다.
인생의 문제는 그 무엇으로도 해결 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는 원죄의 원흉이 된 자였다. 이 원죄 속에 갇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베드로가 정확하게 말을 해주고 영적싸움의 훈련을 시켰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쌍묘의 비극을 맞지 않았다.
아나니아 이름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은 원죄의 원흉으로 장악되었기에 끊임없는 사단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운명 사주 팔자라고 한다. 그래서 시간표에 따라 저주와 재앙이 들이닥친다.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시기 위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임재 하신다. 원죄의 문제는 내가 사는 날 동안 나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후대들까지 영적 대물림은 계속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갈보리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영은 저주와 재앙 지옥배경과 사단의 권세를 꺾는 것이기에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아라. 자신의 몸이 원죄의 원흉으로 장악된 저주를 사도바울은 발견하고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 이것을 하지 않고 움직이면 성령인도를 못 받는다. 언제나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나를 죽이고 걸어가야 성령의 역사, 인도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흑암권세에 장악되어져있는 원흉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따라다니다가 전도와 선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해진다.
행5: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와 진리에 서야 하는데 둘이 한 영이 되어 쌍묘의 비극을 맞이했다. 뱀 대가리를 밟으면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서는데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사단에게 꾀어 사단에게 육체를 내어준다. 하나님이 우리의 육체를 핏 값으로 사서 그리스도의 영을 주셨는데 왜 사단에게 우리의 육체를 내어주는가? 원죄의 원흉으로 장악된 내 몸을 이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해라. 그 임재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 성삼위 하나님,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지 않으면 영적싸움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끌려 다니는 것이다. 삽비라 이름의 뜻은 ‘아름다움’ 이다. 그런데 삽비라가 함께 사단의 꾀임을 당하니까 자신에게 온 기회도 놓쳐버렸다.
수7장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여리고 성을 점령한 뒤 여리고에 있는 엄청난 보화를 보고 외투 한 벌과 금 한 덩어리 조금을 숨겼을 뿐이었다. 하나님은 분명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을 주셨음에도 광야에서 도둑질 하던 체질을 바꾸지 않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성을 간 아간의 시간표는 거기까지였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않고 영적싸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 문제였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영적싸움의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에게 체질화 된 저주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스도의 영을 모르는 자는 선지자 노릇만 하게 된다. 영적싸움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에게 올려놓고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자들, 자기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할 뿐 답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은 전부 선생님, 선지자라 칭함 받기 원하고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한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마23:15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모든 곳을 찾아다니다가, 찾은 사람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내는 자들이라고 말씀했다. 그들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마22:46 이후로는 바리새인의 저주를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몰라 ‘나’로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알면 온 세상이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욕심 낼 필요도 없고 위선을 가질 필요도 없다.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위선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되었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 위선자의 체질을 가지고 산 것이다.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가? 초대교회는 타락하지도 않았고 문제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며 세속에 빠진 교회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위선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위선자로 살지 말고 하나님 자녀 된 신분권세로 거듭나라.
* 자신과 끊임없는 영적싸움이 안되면 위선자가 되어 미혹을 받는 자가 된다.
마24:4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과 이 땅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지 않고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불신자들로부터 미혹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장난을 치고 미혹한다는 것이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는 자들은 미혹하는 자들일 뿐이다.
자신과 세상과 사단과 영적싸움하지 않으면 언제나 ‘나’ 중심이 되고 나밖에 모르는 인생으로 전락한다. 이런 자들이 선지자 노릇 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와서 미혹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재앙이다. 딤후3:1~4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이 조금도 없고 배반하며 조급하며 자고하여 쾌락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많이 한다. 이것이 영적싸움이 없는 자들의 결과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차라리 빨리 데려가신 것이다. 더 많이 당하고 다른 사람을 미혹할까봐서이다. ‘나’로 살게 만드는 사단의 머리를 밟아라. 이런 자들은 결국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이런 자들에게서는 돌아서라고 말씀했다. 딤후3:6~7영적싸움을 하지 않는 자들은 여자가 사는 집을 침입해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혹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여자도 유혹을 당하고 그 유혹에 이끌림을 받아 함께 사단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욕심에 이끌린바가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는 이를 수가 없게 된다. 곧 메세지는 잘 듣는데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었고 먹고 사는 문제도 시급할 정도로 어려웠으며 사회로부터 단절된 상황 속에 이단 누명을 받고 있었다. 엄청나게 무서운 핍박을 당했던 교회가 초대교회였다. 그런데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의 영 하나를 가지고 모든 문제를 통과했다. 그리스도는 바로 세상 신을 밟는 능력, 세상 임금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이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어하는 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고 영적싸움 하는 자들을 향해 살아계신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주신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머리를 쓰지 말고 답답할수록 머리를 돌리지 마라.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는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과 함께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기에 어떤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마10:40 우리가 가는 것은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가는 것이다. 요20:19~23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제일 먼저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평안할지어다”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이제 부활하신 만왕의 왕, 참 하나님이 나를 명하여 보내신다. 그리고 나에게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지어다” 말씀하신다. 이것을 있는 자리에서 늘 느끼며 살아라. 그러면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해도 밥 값 낼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누가 낼까 잔머리쓰지 않는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음식 먹고 영육 간에 치유 받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강건함을 얻어 세계복음화 할 만큼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쫀쫀한 영들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지고 지불한 돈은 천만배가 되어 내게 돌아올 지어다!’ 기도해라. 밥 먹는 것 때문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산을 바치고 저주 받고 심판 받고 죽는 인생이 되었다. 행5:3 자신의 땅인데도 “훔쳤다” 고 말씀했다. 땅을 팔아서 전부 드릴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땅을 팔아서 절반을 가져왔고 나머지 절반은 자녀들을 위해 멋있게 쓰겠습니다.” 하면 되는데 하나님 앞에 멋있게 드리지도 못하고 내 것을 숨기고 훔치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한다. 인색하고 눈치 보면서 뒷담화 까지 하며 온갖 생각으로 잔머리를 굴리는 인생이 되지 마라.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 욕심에 매여 정신을 못 차리면 사람이 혼미해진다.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 중이다. 천국 가기 전까지 이 땅의 교회는 광야교회다. 곧 전쟁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고 천국 가야 한다. 선한 일을 빙자해서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 속에 항상 원죄의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를 타락시키는 사단은 늘 이것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내 몸을 원죄가 장악하여 원흉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 해야 하는 것이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훔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것을 가지고 왜 자꾸 시험당하는 자가 되는가? 자신이 가진 돈으로 왜 시험을 당하는가? 시험을 당하면 사람의 혼이 떠나간다. 그래서 성도는 불신앙 하면 죽어버리는 것이다. 탐욕과 탐심이 가득한 자가 된다. 시험이 들었는데 탐심이 들어온다. 질투를 마음에 품고 그리스도만 하면 더욱 시험에 빠져 자신의 동기에 완전 사로잡힌다. 그래서 팔아놓고 자기 몫을 챙긴다.
행5: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팔아도 되고 팔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팔아놓고 시험과 탐심에 빠지는가.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믿어라. 생각에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 말고 자녀 된 신분이 와 있다면 권세까지 사용하자. 그래서 영적인 세계 속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예수사랑 가족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내 안에 장악된 원죄의 원흉으로 끊임없는 사탄의 속임수와 미혹을 받으며 저주와 재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가며 경쟁자 없는 축복을 받은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소유한 자 되었기에 ‘나 중심’속에 거짓과 탐심과 질투, 끊임없는 위선자로 사는 불신앙과 영적싸움 하여 어떤 문제 앞에서도 성령을 시험치 않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려 나를 위해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성령충만 속에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 싸워 성경적 응답을 누리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JESUS’ LOV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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