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약속대로 일어난
표적과 기사들
행5:12~16
2019.02.24. 1부 말씀
한 주간 베트남 선교를 떠나며 베트남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혁신, 쇄신” 이라는 단어로 일어나면서 오랜 이념 전쟁을 끝내고 세계 앞에 서자고 하는 나라였다. 이런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세계도 정복할 것이다. 베트남에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고 이런 제자를 찾을 수 있도록 한 주간 깨어 기도하기를 부탁한다.
*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사건’ 을 아무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가볍게만 여긴다. ‘창3장,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뭐 그렇게 대수롭냐? 인간의 고통이 무슨 창3장의 문제냐?’ 이렇게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말씀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문제는 인간으로 인해 땅까지 저주를 받을 만큼 큰 문제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저주, 재앙, 사망이며, 벌레보다 못한 쓰레기 취급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인과 각종 정신질환, 마약을 통해 전쟁도 하고 사람을 겁 없이 죽이기도 할 만큼, 원흉이 되어 존재하지 말아야 하고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전락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서도 예배 시간조차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일도 하고 싶고 말씀도 듣고 싶고 말씀 안에서 참된 응답 속에서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순식간에 모든 생각을 사단에게 빼앗겨 버린다. 자신의 유익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잃어버리고, 욕심 하나 때문에 30년 지기 친구도 잃어버리고, 작은 욕심 하나 때문에 가족도 버려야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속에서 나를 끌고 가는 무엇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알면 눈에 보이지 않게 나를 사로잡아 저주, 탐심, 욕심으로 끌고 가는 놈을 밟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인간이 사는 날 동안 부패 될 뿐 아니라 지옥 배경 속에서 영원한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영혼을 사로잡아 끌고 가며 우리를 부패하게 만드는 사단의 머리를 밟을 때 끌려가지 않는다.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사단의 머리를 밟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가 무슨 말인지 확인하고 믿는 자 되자. 그러면 예수님의 약속대로 엄청난 권세와 권능이 위로부터 오게 된다. 마16:13 예수님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을 때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 때 베드로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바로 당신이십니다!” 고백한 것은, 교회 속에 지상의 권세를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도, 신비주의도, 박애주의도 사라지고, 선지자 노릇하는 것들이 사라지면서 오직 예수만 보여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확인도 하지 않고 교회당만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종교 시스템이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창3장 문제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감각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말을 알면 “하나님을 떠난 문제가 인간에게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로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와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다” 이 말씀이 부딪치게 된다.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자기 쇄신이 안 된다. 인본주의로 쇄신한 베트남은 경제부흥이 시작되면 정신의 문제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그들의 조상은 마약을 맛봤기 때문에 흥분상태로만 있다. 베트남에도 반드시 그리스도가 들어가야 치유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본주의 쇄신은 잘 살기 위한 것이고 성공만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은 헛수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런 자들을 제자로 세우고 그 나라를 살리는 제2의 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됨의 본 모습이 무엇인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영이 있어야 한다”(고전3:16) 는 것이다.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 고백으로 오로지 집중하고 잡혀있으면 우리는 0.1%의 사람이 된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이 속에만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온다. 이 땅에서 아무리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강한 자를 꺾으신다.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세상이 갖지 않은 평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담기면 설렘과 기다림, 감사와 은혜, 십자가 구속의 사랑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의 모든 일을 완성해 놓으셨듯이, 그리스도의 영을 담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세계복음화를 이뤄 가신다. 그래서 ‘너,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 그리스도로 충만할지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전도로 자신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다.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했다. 내가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가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자신을 향해 명령하고 선포하는 전도가 시작될 때 엄청난 교회의 권위가 지상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발, 말쟁이, 설교 잘하는 자들에게 길들여지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자신에게 정리시켜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권위가 우리 몸에 그대로 성취된다. 우리는 그동안 일반 교회를 다니면서 쥐약 먹는 설교를 너무 많이 들어서 예수사랑교회 메세지를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강단 말씀을 정리하지 않으면 교역자든, 성도든 이상해져 간다. 유럽교회, 미국교회는 성도들을 설교에만 길들여놨기 때문에 문을 닫았고, 한국교회도 그것을 따라가다가 패가망신 할 만큼 비참해졌다.
하나님은 지금 성령, 그리스도로 함께 하신다. 함께 하시는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마10:1을 자신에게 한 번만 적용시켜봐라.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아라. 각종 병과 약한 것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먼저 고쳐라. 그러면 권능을 주시리라” 교회는 이렇게 가야 한다. 그러면 권능을 갖게 되고 눅10:19, 우리 몸에 성취되기 시작한다.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는 자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로 내어 쫓아라. 우리에게 뱀을 밟는 권능을 주셨다. 헛소리 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원수들이 지금 내 몸을 장악하여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정리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혼미케 하지만 더러운 저주의 영을 사로잡아 꺾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주셨다. 흑암의 권세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스도로 내 몸에 주셨다. 이것을 실천하는 자는 결단코 해할 자가 없다.
*교회의 성격은 교회의 능력이 소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위상이 엄청나게 강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세상 앞에 엄청난 교회의 위상이 있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라도 내 몸에 미치면 병이 나을 것 같은 힘을 서로가 받았다. 행5:16, 모이는 교회,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성령충만한 역사가 개인과 가정에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사랑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의 감정이 각 개인의 감정에 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길, 진리, 생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믿음을 통해 감정으로 느껴질 때 하나님을 만난 자가 된다. 이것이 없으면 더러운 귀신에게 장악된 것,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만 하고 다니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감정으로 느끼지 못하면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혼미해진 것, 귀신들린 것, 병든 것, 결국 사단에게 장악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다. 우리 인생에, 마음에, 감정에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가 없다면 거지로 추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몸속에 감정으로 나타날 때 행동이 시작된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소유욕, 탐심과 욕심이 사라졌다. 영적전쟁을 통해, 영적싸움을 통해 쇄신되고 혁신되어졌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몸에 살아나면 정말 우리 몸속에 어설픈 것들이 사라지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이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마1:21로 분명히 오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분이 임마누엘이다. 모든 사람을 죄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임마누엘 그리스도로 오셨다. 그가 임마누엘을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가?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처절한 고난과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다 느끼시고 죽음까지 맞이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문제에는 이렇게 엄청난 저주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내어주셨다. 하나님의 본체시며, 하나님 되신 그분이 하나님 떠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를 낮추시고 영광의 본체를 떠나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우리 감정에 느껴지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벗어나면 위로부터 위상이 강해질 만큼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 몸에 거하게 된다.
하나님의 목표는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모든 불신자들은 마른 나무와 같이 메말라 작은 불화살만 떨어져도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라고 진단하셨다.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우상숭배에 끌려 다니는 존재, 가문의 저주를 남기는 존재, 자녀들에게 핏 값을 지불하게 되는 존재, 정신병으로 일평생 죽기를 무서워하며 욕심쟁이로 살아가는 존재로 깊은 어둠 가운데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고 이제는 우리가 이 명령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문제를 다 이루시고 해결하시고 끝내셔서 이제는 “모든 족속으로 가라” 하셨는데도 실천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하자. 우리 감정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정말 영적싸움을 시작하자.
그리스도의 엄청난 능력과 권세의 비밀을 가진 초대교회였지만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 핍박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다. 믿음 속에는 핍박과 환란, 갈등, 시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는 언제나 두 법이 싸우게 되어있다. 이 뱀의 머리를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내라. 그리스도 속에 시험과 갈등, 낙심이 함께 온다. 하지만 그 핍박 속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에 거기에 표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고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표적이 있고, 감옥에 들어가는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의 표적이 있었다. 그리스도는 능력, 권능, 표적이며, 초대교회는 엄청난 이적도 있었지만 이것과 함께 엄청난 핍박과 환란도 있었다. 왜 그런가? 흩어져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핍박과 환란이 우리에게 왜 찾아오는지 정말 깨닫고 승리 있기를 축복한다. 내가 매를 맞고 있다면 그 속에 표적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일어나자. 야고보는 목 베임으로 죽음을 당했고 스데반은 돌로 쳐서 죽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의 표적이 있었다. 성령충만은 유무상통(有無相通)한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통함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곧 핍박과 고난 속에는 이적과 표적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날로 확장되고 부흥되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환란과 핍박이 있었기 때문에 마가다락방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흩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흩어져 사마리아로 간 빌립 한 사람을 통해 사마리아 성 전체에 그리스도를 알아듣게 되었다. 사마리아 성에 갔더니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보였지만 온갖 더러운 귀신이 들려있었다. 그리스도 없는 쇄신, 혁신은 더러운 귀신으로 서로를 속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인본주의의 결과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생산 공장만 된다. 복음 없는 세상의 쇄신의 결과는 교회와 국가, 인간성이 다 파괴되며, 한계만 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는 역사와 축복이 시작되면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0.1%의 사람이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마음에 낙심도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감정에 느껴라. 초대교회 사람들이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흩어져 안디옥으로 갔을 때 전도와 선교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일에 자원하는 자들이 일어났다. 영적인 눈을 뜬 사람들이 일어난 것이다. 주의 은혜를 보고 주의 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감정에서 느끼는 자들이 0.1%의 사람들이다. 이것을 우리가 소유하고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인간관계가 해결되어 안디옥 교회의 5인1조 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누가 조금 도둑질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조금 실수했다고 나팔을 불고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마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자는 회개할 일이 찾아오고 교회 안에서 못된 짓을 하면 부서질 날이 온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사기꾼이라고 하면 어느 날 내가 사기꾼이 된다. 말을 하지 않고 자신과 영적싸움 속에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나를 세우면 하나님께서 제자로 쓰신다. 5인1조 팀이 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게도냐로 가라”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말했던 것처럼 너는 로마에 가서도 증거하리라”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이 계속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원하는 사람이 된다. 0.1%의 사람은 여기까지 와야 하나님이 쓰신다고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복음의 말씀, 창3:15이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셔서 믿는 사람들 속에 직접 개입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러면 언제나 그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가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이것을 가지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가 나올 때마다 “마귀야 가라”, 남의 말을 하고 싶어 미치는 그 시간에 “마귀야 가라”, 사람을 흉보고 싶은 시간에 “마귀야 가라” 자녀에게 잔소리 하고 싶을 때 “마귀야 가라” 헌금을 할까 말까 하는 시간에 “마귀야 가라” 이것만 되면 어느 날 축복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우선순위가 그리스도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가 즐겁고, 혼자 정시기도 하는 그 시간이 승리의 시간이 된다. 정시기도는 승리를 맛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시기도가 기도의 시간이 아니라 승리의 시간, 응답을 받는 시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 불말과 불병거를 움직이는 시간으로 본다면 기도는 저절로 되어 진다. 정시기도가 되어지면 유일성의 응답과 재창조의 응답은 저절로 온다. 그래서 ‘아, 그리스도 하나만 있으면 끝이구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내 몸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원한 것이구나.’ 이것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만난 자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을 당연히 부를 수밖에 없다. 마귀는 오늘도 나를 속이고 악령은 나를 지배하여 끌고 가려고 하고 귀신은 날마다 내 몸에 붙어 온갖 더러운 생각으로만 가득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만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전달되는 각인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각인되면 뿌리내려지고 열매 맺는다. 열매를 맛보면 지속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 몸에 왔기에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이것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몸에 온 자, 그리스도를 본 자,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자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고 죄와 사망, 지옥 배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을 꺾어버리는 힘을 자꾸 사용해야 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자꾸 별일 아닌 것처럼 차단하게 만드는 놈이 있다. ‘오늘 하나님께 기도할까?’ 하다가도 ‘아이구, 그냥 내일하자’ 한다. 이것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때 ‘마귀야 가라!’ 하고 무릎 꿇을 때 대박이 터지는 인생이 된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서도 혼미해질 때 마귀를 확 꺾으면 큰 은혜가 온다. 말씀을 듣는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눈이 돌아가고 귀가 막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는 예배 시간에 코를 고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영적으로 흑암이 밀려오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몸에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과 영적싸움 해야 한다. 있는 자리에서 사단의 머리를 밟는 사람은 아무리 모자라고 아무 배경이 없고 무식해도 하나님이 쓰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날 자를 쓰시지 이상한 자를 쓰지 않으시기에 언제든지 나를 바꾸고 나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 탓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으며 누구의 말을 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나부터 갖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이 내 몸이 왔기에 나 자신이 고치는 것이다. 나를 고치기 시작하면 ‘아,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을 받았구나. 그리스도께서 위로부터 나를 선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구나.’ 깨닫게 되면서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가는 것이다.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다듬어지고 달라진다면 분명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다.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반드시 바뀐다. 그런데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들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종교의식에만 잡혀 싸움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식 자체도 없다. 복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재산싸움을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결국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거치게 하는 자들,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키며 이간하는 자들이 가득한 것이다. 나는 내 몸속에 있는 것들을 날마다 깨부수는 작업을 시작했더니 어느 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정리되어지면 “너는 나의 참 제자가 되고”, 복음의 말씀이 정리되어짐으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씀이 성취된다. 내 몸 안에서 나를 주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계시기에 현재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나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뱀의 머리를 박살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신 그리스도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우리는 ID카드를 소유한 사람이다. 곧 나를 보면 그리스도가 보여야 한다. 그 ID카드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표적 속에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내면 언제든지 물건을 살 수 있듯이, 그리스도 하나를 우리 마음과 가정에 느끼고 하나님이 주신 ID카드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도 아닌 자에게, 하나님의 일에 감정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은 카드를 주실 이유가 없다. 영적싸움의 행동이 시작되면 ID카드를 받은 자가 된다. 그러면 목사님이 선교를 가신다고 할 때 법인카드를 드릴만큼 쓸 수 있는 세계복음화를 위한 행동도 시작될 것이다.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이상해진다. 하나님이 주신 ID카드를 가진 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서 나름대로 응답 속에 세계복음화를 하라고 카드를 주셨는데 카드 내역을 봤더니 이상한 것만 있다면 하나님이 다시 빼앗아 가시는 것이다.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재 속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에 영적인 눈을 뜨자.그래서 우리가 정시기도 하는 그 시간에 그리스도의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내 입을 열어 그리스도를 시인했다면 그리스도 함께 계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건 속에 역사하시고 현존하신다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영적인 눈을 뜨면 모든 것이 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중환자실을 가보면 숨 쉬는 것도 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숨이 안 쉬어져서 호스를 꽂아 숨을 쉬고 있다. 살아가는 모든 것이 표적임에도 사람들은 뭔가 불과 같은 성령이 임해야 한다고 해서 교회가 이상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표적이다.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격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내 것으로 받으면 몸속에 무수히 많은 증거와 표적을 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꼭 큰 집이라도 갖는 것을 표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과거에 복음을 몰랐을 때 성도들은 끊임없이 나를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육신적인 수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들을 위해 봉사해도 심심하면 낙심하고, 그러다가 이 복음을 만나 인간에게 하나님을 떠난 이 문제는 엄청난 저주, 재앙, 지옥이며 사는 것이 거짓말, 살인자, 욕심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끊기 위해 나 자신과 싸웠다. 그 때 하나님이 내게 알 수 없는 평안과 은혜를 주신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의 권세가 점점 권위로 나타나게 된다. 교만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람이 겸손해지고 낮아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예수사랑성도와 같은 훌륭한 분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배 전에 한 성도님이 약간 다리를 절면서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 무슨 병의 아픔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다리를 강건케 하여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저 생명은 새롭게 재창조될지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교회의 권위로 명하노니 그리스도 이름으로 설지어다!’ 하고 기도했는데 내 마음이 너무 기뻤다. 예수사랑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존귀하기 때문이다. 아무것이 없어도 세계복음화를 위해 예배를 오고, 염려, 근심, 낙심, 절망에 빠져 비참함과 무능으로 주저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으며 앉아있고, 교회의 여러 불편함 속에 수많은 갈등이 와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고 교회까지 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0.1%의 사람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람을 통하여 낙심케 하며 시험 들게 하는 저주의 세력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를 부를지어다. 내 영혼을 낙심케 하며 절망가운데 무가치한 것에 한 맺히게 만드는 저주의 세력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로 일어날 지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신다. 이것이 초대교회, 안디옥교회, 마게도냐 교회, 로마 교회였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일어난 표적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권세와 권능을 개인이 사용하는 자에게 일어나기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사용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이단 누명을 써도, 갈릴리 무식한 놈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모여 집회를 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종교의식 속에 빠져있는 모든 교회들을 쳐들어가서 그들을 바꿔버리자고 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달려 죽인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기꾼들의 말을 듣지 마라.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어야 산다.” 종교개혁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력이 그들에게 용기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성령, 그리스도로 나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을 표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표적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몸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핍박을 피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선포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린 자들을 이제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겨낼 것이다.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이단 누명을 씌운 저들을 향해 우리는 공격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거짓말하며 욕심쟁이로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버리는 저 사기꾼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타파할 것이다. 종교의식으로 사람을 속이는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찾아가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앞에 복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하나로 당당해졌다. 이것을 표적이라고 한다. 눈치 보지 않고 언제든지 공개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부활신앙으로 엄청난 용기와 열정을 갖게 되었다. 매 맞는 것, 죽는 것, 배고픈 것에 관심이 없었고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를 자기감정에 느낀 것이다. 그리스도를 감정에 느낀 사람은 행동을 시작하게 된다. 하나님의 표적이 우리 몸에 함께 한다는 것을 느끼는 기적 속에 승리하기를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떠난 원죄의 원흉이 되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이 살아가며 부패된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으로 지옥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던 인생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참된 평안함을 가진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언제든지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로 영적싸움 할 때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가 내 몸과 감정까지 느껴져 세상을 향한 위상이 높아지는 증거가 말씀을 통해 시작되게 하옵소서. 믿음 속에는 핍박과 갈등, 시험이 함께 있기에, 어떤 문제에도 낙심하지 않고, 지금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육신의 말을 끊어 오로지 기도 속에 들어가게 하시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음성을 듣고 성령충만 속에 나를 통해 세계복음화를 이뤄 가시는 표적과 기사가 내 몸에 함께 함을 날마다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