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하나님은 지금 일하시는 현재적 하나님
행7:11~16
2019.04.07 1부 말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에게 있는 무기력을 깨뜨려야 한다. 영적싸움이 우리의 체질이 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개인의 거듭남이 없다. 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으로 시달리며 저주와 재앙을 개인이 담당하고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영혼 속에 담겨있다면 반드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축복한다.
*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에덴동산 밖에는 열등의식이라는 재앙이 모든 인간을 덮고 있다.
그래서 인생 마무리 하는 날까지 시기, 질투, 이간으로 장악되어 살아간다. 우리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시기, 질투, 이간만 버려도 엄청난 평안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며 아주 밝은 총명,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몸에 스며들어 사람이 부드럽게 변한다.
시기, 질투, 이간은 하나님을 떠나 생긴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내어 쫓긴 사단이 혼돈과 공허, 흑암이 우리를 교묘하게 시기, 질투, 열등감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내가 여러 가지로 당하고 있다’ 는 것을 스스로 몸에서 느끼며 늘 남과 비교하면서 발동을 일으킨다. 그 흐름을 타면 죽든지 질병에 시달리고 고통을 받는다. 시기, 질투가 몸속에 뿌리내려지면 어느 날 폭발성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폭발과 분열이 일어나고 거치는 자가 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된다. 자신 스스로 낙심과 절망, 시험 속에 빠지기도 하고 원망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무기력의 저주에서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도덕도 보이지 않는다. 양심에 도덕적인 것 하나도 느끼지 못 할 만큼 부패된다. 몸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굉장한 흑암이 나를 끌고가는구나’ 라고만 생각하며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너 죽고 나 죽자’ 한다. 사실은 ‘나 죽고 너 죽자’ 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물귀신 작전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들어간 것을 뽑아내는 것 밖에 없다. 요1:1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권세’ 를 주셨다. 에덴동산 바깥에서 형성되었던 옛 사람의 뿌리를 뽑아내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며칠 전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목사님 한 분이 소천했다고 해서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오랫 만에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런데 신학교에서 배운 모습이 그대로였고,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시기, 질투, 이간, 분쟁, 분열 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창3:15, 하나님이 내게 주신 원시복음이 성취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우리가 사는 여정 속에 인간 갈등, 시기, 질투에 빠질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와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혹시 원수 갚을 일이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원시복음 속에만 들어가야 한다. 참된 행복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언약을 집어넣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하나님이 몸소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당하셔야만 했다.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시기, 질투, 이간, 열등의식, 컴플렉스를 버리지 않으면 훗날 죽음의 공포가 찾아온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면 통장의 돈도, 가족도, 무엇하나 생각나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평생 스며든 흑암덩어리를 버리지 않고 흑암과 놀았기 때문에 흑암이 들어가야 될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원시복음,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흑암과 놀지 말고 흑암의 머리를 상하게 하라는 것이다. 청년의 때에 참된 복음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넣어 옛 사람의 것을 뽑아 버려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죽음의 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는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심각한 저주와 재앙, 고통과 지옥이라는 어둠으로부터 온 몸이 장악되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곤고한 날이 온다. 스티븐잡스는 ‘지상에서 가장 비싼 것이 병원 침상’ 이라고 표현했다. 돈 있으면 운전도 해주고, 비서도 세울 수 있고, 비행기도 탈 수 있지만, 막상 곤고한 날이 찾아와 병이 들어 침대에 누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산을 받아갈 사람은 있어도 누가 자기 몸을 대신해서 아파 줄 사람은 없다.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아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 흙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사람의 근육이나 신경 세포에까지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흙덩어리에 오래 살겠다고 심한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만들어놓으면 굳어져서 침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걸으면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내 몸속에 시기와 질투, 열등의식과 수많은 컴플렉스, 나를 사로잡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마귀야 가라!’ 그러면서 예수는 그리스도를 노래하자.
아무 낙이 없을 때에도 그리스도 이름이 불러진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사22:22~25 잘 박힌 못과 같이 복음의 말씀이 내 영혼에 뿌리를 내린다면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광이 내 몸에 미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은혜와 은총, 지혜가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언제쯤 떠날 것인가 정도는 알고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반드시 그 날이 찾아오는데, 우리가 미리 조금씩 준비해가면서 불신앙의 뿌리를 뽑아내자.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만왕의 왕, 권세를 가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 그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제는 성삼위 하나님이 내 몸에서 원네스 하신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이루신 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기에, 그리스도 하나님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그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예수사랑교회 교역자, 신학생, 목회자가 될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산업인은 산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분명한 답이 나온다. 그리스도의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 생명이 되어주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 롬3:23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재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말씀으로 함께 하시기에, 그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혼과 영과 육과 골수, 모든 것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재창조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이제, 내 몸에는 은과 금이 없어도 괜찮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사단에게 묶인 것들을 풀어내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 이름을 주셨다. 여기에 참된 행복이 확신으로 와야 한다.
요1:12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고전3:16 그리스도가 내 몸에 성전 삼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리스도가 나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이 나를 절대로 인도하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주신다. 어떤 사망의 문제로 묶여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내면 하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무엇 때문에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시고, 이미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의 축복을 받았기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여 세계복음화의 군사가 되어야 한다.
*현실 속에 믿음으로 도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요셉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언제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과거의 사건을 현실 속에 놓고 믿음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현재의 사건 속에 무능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로 그 현재의 무능을 현실화해라. 그러면 막을 자가 없게 된다.
아브라함은 창13:14~18 늘 고생하다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하나님의 말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결단하는 날이 온다. 아브라함이 이 때부터 ‘모든 응답은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 는 것을 체험하여 기록해놓은 것이 창세기다. 부인도 팔았고, 여러 가지 거짓말로 인생을 살고, 그 조카까지 데려다가 꼬셔왔다. 사실 내면에 두려움과 열등의식 때문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서로 부자가 되자 거기에서 시기, 질투가 생기니까 그의 조카하고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 때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나서 부터는 조카와 싸우지 않고 나이 어린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다. 아브라함이 영적싸움의 비밀을 깨닫고 모든 것을 양보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카가 아브라함을 들여다 볼 때 ‘우리 삼촌이 하나님을 믿더니 바보가 되었네, 덜떨어진거 아냐, 미친 짓을 하잖아. 하나님을 따라 다니고 기도만 하더니 사람이 완전 맛이갔구나’ 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조카로부터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동서남북을 바라봐라. 네가 밟는 땅을 다 네가 주리라” 이렇게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양보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응답을 먼저 주지 않으셨다. 먼저 영적싸움부터 시키셨다. 우리 몸속에 뿌리내린 이상한 것만 뽑아내면 우리가 밟는 모든 땅을 하나님이 다 주신다.
그런데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네가 밟는 땅을 다 주리라 하신 말씀을 받았음에도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밟을 땅으로 끌고 가셔야 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적싸움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일꾼들을 데려다가 훈련만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전쟁이 터지고, 조카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때 아브라함이 밟는 땅을 다 장악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가 지금 말씀을 믿지 않아서 시달리는 것이다. 절대 돈 때문에, 문제 때문에 시달리지 마라. 사건이 터진다. 그래서 동서남북, 어디인지 모르고 쫓아다녔는데 전쟁에서 이기는 역사가 일어났다. 318명 중 죽었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말이 그냥 달리고, 칼을 휘둘렀는데 하나님이 그냥 정복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실오라기 하나 취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렸다. ‘아, 내가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역사하시며 우리를 돌봐주시는 구나’ 아브라함은 그때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결단, 갱신을 하기 시작한다.
창26:12 ‘숫양’ 을 체험한 이삭은 100배의 축복을 받았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숫양 때문에 살아났다는 절대 언약을 온몸에서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삭이 양을 칠 때, 양의 소리가 들릴 때 그리스도, 양 털을 깎아서 찌꺼기를 태우는 냄새에도 그리스도, 자기가 숫양으로 인해 살아난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베드로가 닭을 잡아 먹을 때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것이다. 그 이름을 고백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셨는데, 세상의 현실,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부인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이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끼면서 닭을 볼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고백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 속에 늘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다.
* 요셉과 모세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큰 한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원흉으로 완벽하게 부패되어져 가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영적인 힘을 반드시 길러야 한다는 절대적 사명이 있었다. 그래서 오직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충만했다. 창41:38 요셉은 시기 질투 열등의식, 컴플렉스 같은 것이 없었다. 세상적인 어떤 동기가 몸에 없었다. 그래서 이방 나라 사람, 비자도 없고 심지어 노예출신임에도 애굽 왕이 모든 권세를 그에게 맡겼다. ‘내가 직장에서 월급쟁이가 아니라 이 회사를 세계복음화하는 데까지 앞세워 갈 것이다!’ 하며 자신이 하는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제대로 했다. 이것이 요셉을 위대하게 만든 비밀이다. 요셉의 형들의 시기, 질투, 이간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3:15에 충만했다. ‘형들의 시기, 질투, 열등의식으로 인하여 나를 시달리게 만들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하지 못하게 만들고 애굽 땅에 참된 생명운동을 방해하려고 하는 저주의 세력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내 삶에서 깨지고 무너질 지어다!’ 형들의 시기, 질투, 갈등 앞에 창3:15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자식에게 문제가 없으면 기도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 기도를 하지 않다가 사건이 터져서 겨우 기도하는 것이다. 요셉과 같은 영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모세도 불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부터 달라졌다.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절대로 믿었다. 애굽으로 간 이스라엘의 과정을 스데반을 통해 우리에게 메세지로 남기셨다. 성경의 역사를 들어서 증거 하는 내용의 주제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이름에 충만하면 된다. 사람들은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하면서 시기, 질투, 열등의식, 비교의식 이런 남의 말에 잡혀있다. 하나님은 약점 가진 자를 찾지 약점 없는 자를 찾지 않으신다. 지구상에 온전한 자가 없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지구의 아담 후손들은 모두 죄의 삯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렀다. 십자가에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변함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처럼 고난을 당하는 그 역사가 있어야 인간은 저주와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뜻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모두 연약하다. 누구나 열등의식과 비교의식, 시기, 질투, 이간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꾸 연약하다고 하지 말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기억해라.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영혼에 영접하여 내 삶에 이런 일을 만드는 사단의 일을 멸해라.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까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사랑을 주신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며 주저 앉아있지 마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 몸속에 죄악이 솟아오름으로 살아가는 삶이 저주, 고통, 남을 죽이고 미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속에로 들어가면 그리스도 속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있는 나를 해방케 하신다.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구제불능도 괜찮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도 괜찮다.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해도 괜찮다.
요셉이 가졌던 창3:15의 언약이 몸에 와 있다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만 상하게 하면 된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명확한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싸움을 하지 않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다가올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 독사의 새끼며,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가 된다.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되지 말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의 무능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버리고 할 일을 제대로 해라.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대속해주러 오신 분이다. 그래서 내 삶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예수는 그리스도” 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버려라.
행7:9~10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 창3:15의 하나님께서 신비롭고 초월적으로, 온유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심을 스데반의 증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가는 역사적 사건을 요셉을 통해 알게 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얼마나 흉학한 본거지가 우리 몸속에 있는지를 알라는 것이다. 요셉 가정에 엄청난 패륜이 있었다. 요셉은 본처가 아닌 둘째 부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 요셉의 형들이 자기 엄마들로부터 얼마나 요셉을 이간했던지, 끝에서 두 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을 모든 형제들이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하며 늘 잔머리로 살았던 야곱이 삼촌 라반의 잔머리와 함께 움직인 결과 집안이 이상해진 것이고, 그의 형들은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길 만큼 무서운 살인자가 되었다. 그 당시 노예는 당나귀 수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며, 그의 후손까지 노예가 되는 엄청난 저주를 친동생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요셉의 인생여정을 보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구절이 많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그 말씀을 가슴에 담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이 부분에 대해 요셉은 훗날 이렇게 간증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팔려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애굽 땅에 보내셔서 오게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리스도를 고백해놓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사탄아!” 라는 소리를 예수님께 듣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해놓고 사람의 일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소리치셨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어떤 일,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자. “오직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며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가자. 하나님이 예수사랑교회를 세우시고 북한까지 전도하라고 명령을 하셨다. 영세 전에 감추어 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사랑교회에 우리를 다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 속에 있게 되었기에 ‘내 몸의 모든 질병의 저주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지고 세계복음화 하는 날까지 강건할지어다!’ 자신에게 늘 명령하고 선포하는 영적싸움을 지속하자.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원망, 불평도 없는 영적싸움 속에서 은총과 지혜를 얻게 되었다. 은총과 지혜를 주셨다는 것은 참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 속에 있는가? 하나님의 일 속에 있어야 직장 생활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된다. 하나님이 이 산업을 나에게 맡기셨고, 하나님이 이 직장에 나를 보내셨고, 이 직장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한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요셉이 얼마나 참 자유를 누렸는가? 감옥생활에서도 누렸고, 고통이 따르는 일 속에서도 참 자유 속에 있었기에 괜찮았다. 돈, 집, 먹고 사는 것, 시기 질투 이런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고 한번만 뿌리내려라. 그러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때 참 평안과 맑은 총명이 우리 개인과 가족에게 임하게 된다.
수많은 고생과 고통이 끊임없이 요셉을 따라다녔지만, 그는 영적싸움에 성실한 사람이었다. 창39: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스무살의 피 끓는 나이에 그는 수많은 유혹을 이겨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이 승리케 하신다는 믿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돈 많은 주인의 부인이 옷을 벗고 달려오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보고 계신다는 절대적 믿음이 있었기에 큰 죄악과 죄의식 앞에서도 분명한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주인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겼기에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의리 정신이 있었기에 인간관계를 절대 깨뜨리지 않았다.
요셉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보고 계신다’ 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언제나 있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사람들의 고백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다.’ 은총과 지혜가 충만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죽기를 두려워하여 마귀의 심부름으로 지나가는 세월에 후회만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예수사랑교회를 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불신앙과 싸우며 메시아, 그리스도를 따라갔듯이, 영적싸움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육신의 감정에 따라 무능 속에 세상 풍습을 좇는 불신앙을 내어 쫓고 오늘의 문제 앞에 예배 때 들은 말씀에서 이탈되지 않고 사탄의 공격을 밟아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을 갖는 자 되게 하옵소서. 미래적인 것을 현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절대를 회복하여, 오늘의 현실 속에 오직 그리스도로 세계복음화를 꿈꾸며 하나님의 약속, 창세기 3장 15절의 믿음이 응답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