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이 되어 고백한 예수는 그리스도
행9:19~22
2019.07.14 1부 말씀
평생 종교 생활로 일관했던 사도바울이 창3:15을 발견한 것이 본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제를 놓고 갈등하고 고민하면 실패자가 된다. 문제 앞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도 살리고 자신도 살리는 전도자가 된다.
* 하나님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라는 하나님의 방법을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언제나 십자가 중심으로 살면 문제 될 일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을 상실해버리고 행동하지 않았던 모세는 79세까지 고생하다가 80세에 깨닫고 창3:15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설주와 인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를 때 저주와 재앙이 넘어가는 것이구나, 내 인품과 성품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는구나. 옳고 그름의 관계없이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는 자에게는 성령, 성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라고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셨구나’ 창3:15을 사용하여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셔야 하는가? 나로 살게 만드는 자아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버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 밖에 모르는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 자아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처럼 살게 만든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요19:30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 중심으로 살면 부활하신 하나님이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계시면 성령의 역사를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간단하다. “병든 것들과 약한 것들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음이라” 우리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그 권세를 자꾸 사용하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던 우리의 머리가 맑아지고 깨끗해진다.
성령의 역사를 모르면 죄의 권세를 사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죄와 저주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오히려 신앙생활이 재앙이 된다. 그래서 우리 영혼 자체가 굉장히 틀린 것, 다른 것으로 가거나 다른 세상적인 지식에 섞여 버린다. 그래서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흑암이 쌓여 이상한 돌발사태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돌발인가? 교회를 다녀도 방황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와 사람을 원망한다. 우리에게 방황이 시작되었다면 아직도 운명 사주 팔자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면 살아가는 동안 알면서도 모르는 악한 습관에 따라 불신앙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문에 흐르는 영적인 문제, 조상죄라고 한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가 자녀들에게 찾아와서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그 가정 전체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싹 망해버린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우상숭배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무속인 자녀가 계속 배출되거나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게 된다. 하나님이 왜 제사를 섬기지 말라고 하셨는가? 제사는 귀신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고전10:20 이방인들이 예배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무지한 것을 바리새 사상이라고 한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영적인 상태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창3:15을 가지고 원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행10:38, 엡2:2 사단 권세 아래 묶이게 된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영적싸움을 자신이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인품과 성품에 계속 문제가 찾아오면서 사단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질병으로 시름시름 앓게 된다. 아픈 부위가 또 아프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병원에서 다 나았다고 하는데도 확인을 하러 간다. 요19:30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끝냈다고 하셨는데도 자신이 시달린다. 그래서 요일4:18 십자가 중심의 사랑을 받아놓고도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형벌이 따른다고 했다. 결국 정신적, 육체적 삶에 자꾸 재앙이 표출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방법으로 깔끔하게 들어가라. 그러면 우리 머리가 깨끗해지고 맑아진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음이라”, “복음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바울이 자신이 회심한 증거를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맛보고 싶다면 예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예배를 놓치지 말라는 것은 예배드리러 와서 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붙잡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잡아야 그 사람을 그루터기라고 한다. 남은 자, 남길 자, 남을 자.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 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통해 복음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만민을 위해 기를 높이 드는 자가 되는 것이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꼭 붙잡아라. 창3:15을 실천해라. 성취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을 시작해라.
그러면 최후의 것을 생각하게 되고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것을 버려야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것이다. 바울은 세상의 지식을 배설물로 버리고 그리스도로 바꿨다.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가장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시작했을 때 세상에 막을 자가 없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왜 영적 자존심을 갖지 않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이 영적 자존심이다. 신앙생활에 체험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체험이 와야 하는데 늘 시달리는 몸으로 있다면 이상한 것이다. 시달린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믿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운명을 바꾸지 않고 삶을 바꾸지 않고 미래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바꾸지 않으면 내일과 미래, 눈물이 흐르는 날이 온다. 그러면 모레는 더 큰 일이 오고 그 다음에는 주저앉게 된다. 하지만 밑바닥에서 시작하면 된다. 영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한 번만 출발해봐라. 우리가 시작할 때마다 거울을 보고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선포하면 5초도 안 지나서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거울을 보고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립스틱 바를 때만 거울을 보지 실제로 영적 자존심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출발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출발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출발하지 않고,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고 출발하지 않으면 비참해진다.
사단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다. 그 놈은 하나님과도 전쟁을 한다. 사단의 권세는 이 땅에 내어쫓겨 이간하는 자, 온 천하를 꾀는 자, 세상 임금으로 전락한자, 모든 사람을 미혹케 하고, 모든 사람에게 전쟁을 일으키고 혼란을 주며 우리 몸에 3 저주로 안착해 들어와 있다. 이런 상태로 우리 인간은 지금 헐떡거리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몸에 3 저주가 이미 DNA로 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싶고, 아무리 매달리고 주여~ 하며 방언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이 우리 몸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 다니며 불순종 가운데 역사하는 진노의 자녀다” 하셨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대로 살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우리는 늘 육신대로 산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는데도 마귀의 일은 멸하지 않고 자신이 마귀로 살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주가 되었다고 하는데도 절대 십자가 중심으로 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 생명 되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는데도 그리스도 없이 인생을 산다.
모든 사람들은 원죄로 인해 사단의 영이 각인, 뿌리, 체질 되어있다. 그래서 각종 범죄와 성범죄가 전 세계를 덮어버린 것이다. IMF총재가 뉴욕 맨하튼 호텔에 갔을 때, 룸을 청소하는 아줌마를 보고 갑자기 성폭력자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실하게 정의롭고 올곧게 훌륭한 인품과 성품으로 살고 싶어도 이상한 남자가 이상한 여자를 만나면 순식간에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방송국 앵커도 여자 몰카를 찍다가 걸렸다. 차도 있고 기사도 있음에도 지하철을 타라는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이끌러 이상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사단의 영에 지배당하기 시작하고 사단의 루트가 시작되면 인간은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며 죄의 권세,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은 자살하게 만들고 자신이 쌓아놓은 바벨탑이 순식간에 무너져 깊은 산속에 가서 숨는 것이다. 산속에 숨어 자신이 도를 닦았다고 생각하지만 또 이상한 여자가 온다. 한 부장 판사는 대치동에서 법원이 있는 지하철역까지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에서 여자 사진을 찍다가 걸렸다. 아무 쓸모없는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단의 영에 지배를 당하면 사람이 이렇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 목회자도 성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많은 목사들은 성도들이 자신의 메세지를 들으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사단의 영이 목사들에게 착각의 영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성범죄 시대가 왔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다 걸려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여자를 만나 맛이 가고, 여자는 이상한 남자를 만나면 그 남자가 자기하고 평생 같이 산다는 착각의 병에 걸려서 산다. 여자는 창3장 하나님을 떠난 DNA로 평생 남자만 보면 사모하는 영이 온다. 그래서 얻어맞아가면서 애를 낳고, 빨래하고 밥한다. 울면서 상처로,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분노로 늘 가스 냄새 맡아가며 요리하다가 결국은 폐암에 걸리는 인생을 산다. 남자는 이상한 여자를 만나서 평생 돈 번 것을 다 갖다 준다. 가방 하나, 원피스 하나 사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는 매일 갈아입을 옷이 있어야 하는 존재다. 남자는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창3장 DNA가 이마에 땀이 나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한 남자가 이상한 여자를 만나 태어난 자식이 성질 더러운 가인이고, 강간 당하는 디나 였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해방하셨기 때문에 여자든 남자든 해방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지고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으로 다 끝냈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삶에서 산산이 깨어질지어다! 이상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히죽히죽 웃어도 흥분하지 말고 너는 잠잠히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을 사용할지어다! 이상한 남자를 만나서 운명을 걸지 말고 너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운명을 바꿔라! 부모 탓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출발해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축복이 임마누엘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되고 현장과 시대를 변화시키는 응답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예수는 그리스도” 를 깨달아 전도자 바울이 되었다. 창12:1~3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말씀이 전도와 선교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알게 되었을 때 사울이 바울이 되었다. 그는 결국 세계사와 교회사를 뒤바꾼 자가 되었으며, 로마와 마게도냐를 굴복시킨 자가 되었다. 바울은 한 번도 사람과 싸우지 않았고 어떤 군대를 조직해본 적도 없었다. 어떤 시스템을 만들지도 않았다. 딱 하나,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우는 제자를 찾아 세웠는데 그 제자들이 세계를 정복했다. 그래서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한 것이다. 그 권세와 능력 하나로 세계를 정복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사울을 향해 뭐라고 하셨는가? “그는 그리스도 이름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이 택한 그릇인 바울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 안에 있는 바나바는 택한 그릇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 파송했다. 우리교회 메세지를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있다. 복음과 종교의 차이가 엄청난 것을 그들이 깨닫고 있다. 복음,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성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복음을 모르면 절대 부활하신 하나님, 그리스도가 성령이라고 하지 못한다. 창3:15로 각인, 뿌리, 체질 되지 않으면 부활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절대 성령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바울은 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면 육체가 만족해진다. 예배를 드리면 영이 희미해져서 영이 죽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가 각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하면서 자신을 자꾸 깨워라. 그 이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불러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가 흡족해지고 만족케 된다고 말씀했다. 부활하신 하나님, 성령 그리스도가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고,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오직 복음을 가진 자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충만을 간청하고 죄의 권세, 사단의 권세, 지옥권세, 질병의 권세, 연약함의 권세, 무능의 권세,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게 만드는 것을 자꾸 무너뜨리는 그 권세를 사용할 때 성령이 나와 함께 지금 지배하고 다스리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는 딱 하나,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시인하고 복음을 노래하는 사람, 그 사람의 발걸음과 함께 동행하신다. 사울은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종교 생활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 즉시 그 분이 항상 함께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 가는 그 날 까지 하늘 보좌에서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신다. 이것을 성령, 내주, 인도, 역사라고 한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자기 인생에 중대한 것을 발견한 것이 본문이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교회, 바리새인들이 창3장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역사를 모르고 살았구나...’ 자기 인생에 중대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창3:15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아,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쓸데없는 베냐민 지파로만 살았고, 가말리엘 학문과 그 지식과 수준에만 빠져있었으며, 율법의 전통이라는 함정과 올무, 틀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할례 받은 전통 유대인이라는 자랑은 헛것인데, 이런 육신적인 것을 가지고 인생을 어설프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으로 살았던 것이 서글픈 인생이며, 바리새인으로 사는 것이 재앙이고, 후대가 망하는 지옥이며, 종교생활, 육신적인 것으로 완전 포장되어있는 운명의 저주는 잔인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제일 잔인한 저주는 종교생활이다. 그것은 정말 저주와 재앙이다. 나는 종교 생활이 무엇인지 알고 난 이후부터는 단 1초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종교생활은 딱 한마디로 맞냐, 아니냐의 싸움이다. 매일 맞다, 아니다, 틀렸다 이런 말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야, 나는 그렇게 없이 살아도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아니면 늘 자신을 자랑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늘 의롭게 살았고 율법을 지키며 살았고,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았고 손가락질 당할 일은 하지 않고 살았다는 그런 것이다. 바울은 율법주의 교회, 바리새인 교회가, 이스라엘이 왜 포로가 되고 속국이 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율법이 무엇인가? 운명에 갇힌 생활이다. 이것은 가면을 쓰고 쇼하는 생활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율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과 학문을 통해 조금 아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뒤바꾸는 사실이 온 것이다. 이런 것을 뒤바꾸지 않고는 그 누구도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창3:15 영적 자존심으로 출발해라. 십자가 사랑을 맛 보고도 영적 자존심으로 출발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못 박아야 할 날이 온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가문으로부터 배운 것은 교만, 고집 분이다. 부모가 길러놓은 것이 그것이다. 가문으로부터 교만을 배웠다가 또 좌절을 배우고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다. ‘ 너 같은 자식은 우리 집안에 필요 없다, 나가라!’ 이런 말들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실패하게 만들었다. 호적에서 판다고 하고, 어떻게 너 같은 자식이 내 뱃속에서 나왔는지 참 후회스럽다고 하고, 이런 막말의 시대 속에 자라났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살아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3:15을 받는 날이 되면 배경이 바뀐다. 지옥 배경과 사망권세 잡은 사탄의 배경에서 완전 바뀐다. 운명이 바뀌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삶이 바뀌어서 창3:15 근원이 시작되고 우리의 미래가 바뀌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받았을 때 바울은 즉시로 일어나게 되었다. 드디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종교 생활로는 안 된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증인이 되었다. 운명 사주 팔자 가문의 저주, 자범죄 이런 것을 계속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밟아버렸다.
사울이 붙잡은 창3:15을 우리가 갖게 되면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처음부터 예수사랑교회를 다녔다면 창3:15만 각인 되었을 텐데, 너무 많은 교회를 돌고 돌아서 왔기 때문에 쥐약을 먹은 상태로 앉아 있어서 창3:15이 각인, 뿌리, 체질 되어져 있지 않는다. 우리 몸을 들여다보면 사단의 영이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매일 맞다, 틀리다만 하고 있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맞다, 틀리다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악한 영들과 전쟁하는 것이다. 영적 자존심으로 우리가 출발해야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처음 우리교회를 오면 아픈 사람도 치유를 받고, 밥 못 먹던 사람이 밥을 먹고, 돈이 없던 사람도 돈도 생기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뿌리를 못 내리고 거의 사라진다. 딤후4:10 바울의 제자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갔다고 했다. 수많은 바울의 제자들 중에서도 30여명만 남았다. 그런데 결국 세상으로 갔다가 그 지역에서 한계가 와서 쪽박을 찰 때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이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창3:15이 각인 뿌리 체질되면 드라마틱한 변화가 올 뿐 아니라 매일 크리스마스가 된다. 우리 몸이 새롭게 탄생하는 날이 온다.
우리가 사람을 보면 고민을 하고 열이 솟고 혈압이 높아지고 뭔가 찾아온다는 것은 율법으로 평생 길들여져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자랑이 나를 지켰다는 굉장한 교만에 길들여있다. 그래서 창3:15이 각인되지 않는 것이고, 영적 자존심을 출발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핏 값을 지불하여 예수사랑교회까지 우리를 데려다 놓으셨기 때문에 반드시 창3:15로 이겨야 한다. 이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미치든지, 스스로 죽든지, 집 나가 돌아다니든지, 온갖 병이 걸리든지, 더 이상해진다. 하나님을 떠난 지옥 체질을 해결하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운명을 바꾸지 않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가 올 수 있다. 하지만 바울처럼 갈2:20을 시작해서 나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참 왕, 그리스도를 가지고 사단의 일을 멸하고 내 몸에 그리스도가 사셨기에 저주와 재앙을 없앨 것이라고 선포해라. 불신앙을 할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렸으니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할 것이라고 이것으로 시작해라. 그러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저절로 고백이 된다. 그 고백 속에 다 이루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 그래서 창세전에 너를 이방인의 그릇으로 불렀다는 영적 자존심이 믿어지는 것이다. ‘아, 내가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였구나. 창세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사 모태로부터 조성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태어났구나. 그래서 롬16:25 그리스도가 나의 복음이 될 때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바로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내 몸에 있게 되었구나’
예수 그리스도 만나면 증거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 몸에서 반드시 증거로 나타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결단하고 출발하고 시작해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그리스도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죽어야 한다. 내가 살아나면 자랑할 것 밖에 없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 몸에 교만한 것 밖에 없다. 우리 몸에서 계속 나타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해되고, 용서가 되고, 사람 일들 속에서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핸드폰을 가지고 이상한 여자를 찍고 싶다가도 오히려 전도를 하고 싶어진다. 결국 우리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들을 희생하셨다. 나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많은 것을 예비하셨고, 심지어 복음을 전하라고 빛의 경제까지 우리 때문에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만민이 어둠과 캄캄함으로 덮여있고 가리워 있기 때문에 일어나 빛을 발하여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절대 사명 속에 일어나면 빛의 경제가 오는데 헛되고 헛된 문제 속에 묶여 있다. 영적인 자존심으로 출발하지는 않고 사라지고 없어질 아무것도 아닌 똥을 붙잡고 시달리고 있다.
한 주간 이런 것에 시달리지 말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그 죽음까지도 선택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잠기는 자 되라. 거울을 보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말고 내 자신의 의를 내세우지 말고, 맞다 틀리다 논쟁하지 말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출발할지어다. 잃어버린 것 때문에 사람을 실족하게 만들고, 모함하고 이간하고 더러운 말을 했다 할지라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저주의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에게 떠나가라!’ 이런 힘을 가져라.
이 복음 운동을 시작할 때 이상한 목사 한 분이 있었다. 아무도 이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내 의를 세우기 위해 그 사람을 끝까지 도왔다. 심지어 내가 강사를 박탈당할 만큼 어려움도 있었고, 중요한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그 사람 때문에 엄청난 피해도 당했다. 용서할 수 없는 목사하고 논다는 말에 제가 굉장한 코너에 몰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종교생활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가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내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내가 더 악한 것을 깨달았다. 바울이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 살아왔던 종교 생활은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자기 내면에 깊은 살인자의 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즉시 바꿨을 때 가장 매력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바울은 오직 하나만 고백했고, 영적인 자존심으로 출발했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다시 이 축복을 받아 누리길 축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등록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문제를 다 이루셨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양자의 영을 받았는데도 나로 살게 만들고 나의 의를 내세우면서 인생을 살게 만드는 이 얄팍한 사단의 계략이 우리 몸속에서 무너지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세계복음화 이방인들을 향한 택한 그릇이라는 부름을 받았고 선택을 받았기에 날마다 기적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의 말은 참고하되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는 예수사랑 가족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사람들이 원죄로 인해 사탄의 영에 지배를 받아 각종 범죄를 일으키며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죄의 권세에 묶여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 틀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 속에, 나에게는 인품과 성품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창세기 3장 15절로 뱀의 머리를 밟고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옳고 그름 속에 내 의를 내세우는 살인자의 영, 교만으로 길들여져 저주와 재앙으로 끌고 가는 종교생활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죽여 오직 십자가 중심의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 자존심을 가지고 출발하여 운명과 삶, 미래를 바꿔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한 주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비밀 속에 힘을 얻고 종교를 굴복시키고 세계를 정복한 바울의 믿음이 내게도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