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일어나라
행14:8~10
2019. 12.01부 말씀
하나님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일심, 전심, 지속으로 부르면 우리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마리아성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일심으로 들었을 때, 붙었던 더러운 귀신이 떠나갔다고 했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설교 메시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축복한다. 본문은 ‘설교 속’ 에 일어난 이적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해 일심, 전심, 지속으로 들으면 발목에 힘이 없었던 자도 발목에 힘이 생기며 걷는 믿음이 생긴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역사하심을 느끼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곧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절대 답이 되어야 한다.
‘백화점의 왕’ 이라고 불리는 존 워너메이커는 미국에서 초등학교 출신으로 체신부 장관까지 지내게 된 세계적인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도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성경 한 권을 산 것이다. 그가 일을 하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성경을 사려고 했지만 돈이 모자라 다음에 갚아 나가겠다고 하고 성경 한 권을 샀다. 가난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성경을 산 이유가 있었다. 필라델피아 지역에 살고 있는 그가 사람들을 들여다봤을 때 가장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성경을 사서 그 성경 속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두 가지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 가지는 ‘어떤 상황에도 기뻐하면서 웃자’ 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악수하고 인사하자’였다. 이것을 그의 가슴에 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배당이 너무 지저분하고 예배당을 가는 길이 너무 질퍽거리는 대도 벽돌 하나를 깔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일하는 벽돌 공장에서 직접 벽돌을 사서 교회 가는 길에 깔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성도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고 그의 일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그 필라델피아 교회는 더 크고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워너메이커가 벽돌을 깔면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 곳이 나의 터전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워너메이커는 교회당 가는 길목 주위를 모두 사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나타난 증거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체신부 장관직에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 때 그는 “나는 주일을 쉬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주일 메세지를 듣고 6일을 살아야 하고, 이 메세지를 내가 받아 주일 학교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쉬지 못한다면 체신부 장관을 할 수 없습니다.” 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그는 체신부 장관을 맡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의 믿음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찾고 우리 가슴과 생각 속에 담았다면 어떤 결과와 어떤 갱신이 우리 몸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80세 된 노인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가지고 자신을 갱신시켰을 때, 40년간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설교 속에 이적으로 증거 되는 이 진리를 우리가 체험해야 할 것이다. 매 주 마다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 내게 찾아오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구원을 어설프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지만, 그 후에 구원 받지 못한 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에 갖다 달라고 간청을 했다. 하나님이 농담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처절하게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을 어설프게 생각하는 것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야 한다.
우리가 구원 얻을만한 믿음을 가졌다면 반드시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롬10:9~13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요,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 예수그리스도를 노래한다면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나를 부요케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외치고 소리 높이고 찬양하여 증거 있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마10:32에도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다. 한 번의 예배가 우리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한 번 부인했던 그 한 번의 실수가 일평생 고독으로 따라다녔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매일 자신의 영혼을 찔렀다. 과거의 약점이 얼마나 자신을 짓눌렀는지 결국 그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받으라고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나 시인하고 찬양하고 있는지, 우리 영혼 속에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 있는지 점검하길 축복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사단의 시험과 올무 그 자체에 묶인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자마자 주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내가 너를 원해서 불렀다”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너와 함께 있기 위함이여, 내 영혼 속에 구원 얻을 만한 그 믿음을 가지고 전도도 하며 사단의 올무에 잡혀 끊임없이 시험과 갈등과 분노 조절로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둠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를 주기 위함이다” 말씀했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더러운 귀신’ 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이 직접 쓰셨다. 인간들은 자기 몸에 와 있는 것을 ‘더러운 귀신’ 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만이 우리를 진단하셨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게 된다.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이라” 인간이 가장 쓰기 싫어하는 단어를 하나님이 쓰셨다. 이것을 말씀으로 인정하고 시작할 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은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오직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권세를 주셨다.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밟으라는 것과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절대 답이 되어야 한다. 우리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고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 된다면 요일3:8을 성취시키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기에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우리에게 없다면 마귀의 일을 멸해라.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사함을 얻을 뿐 아니라 저주와 재앙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언제나 예배 때 듣는 강단 말씀이 우리 인생에 답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에 답을 내지 못하면 절대 기도로 힘을 얻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했다. 그 은혜와 진리가 우리 영혼 속에 충만할 때 기도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의 전도 속에 흑암을 꺾을 수 있는 권세를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괜찮다. 내게 있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천하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자신을 향해 선포하는 것이다. 행2:38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는 자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이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 메시지 였다.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각인되고 뿌리내려지고 그 이름을 시인하는 체질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을 지금 보고 있는 자가 되었다. 창3:15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저주와 지옥권세, 사단의 권세가 꺾이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이것을 보는 눈이 있다면 지옥권세 잡은 흑암과 사단 세력은 완벽하게 무너진다.
창3:15과 행1:1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이라.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 생명이 맞다면 우리에게 행1:3은 틀림없이 성취된다. 그 확실한 증거로 40일 동안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천명을 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해라”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야 시작된다. 그러면 앉은뱅이도, 문둥병도 상관없고, 온 몸에 암이 퍼진 자도 괜찮고, 불치병, 난치병이 있어도 괜찮다.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치료하실 수 있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말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라. 우리 몸에 그리스도가 각인되고 뿌리 내려지고 체질화 되어졌다면, 하나님의 일을 들은 자가 맞다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그 영을 내 몸에 받게 된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 그 권능이 내게 임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 그 이름에 증거 있는 증인이 된다. 성령이 우리 몸에 임했다면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우리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강한 자, 사단의 권세를 꺾어버려라. 그러면 우리가 상실하고 잃어버렸던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이 세상에 증거가 없다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반드시 우리 속에 더러운 것을 내어 쫓고 이 세상 풍습을 좇게 하는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의 강한 자를 결박할 때 이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고 말씀했다. 그러면 세상 문제 앞에 시달리지 않는다. “너희는 세상에서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가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 중직자 시대를 맞이했고 2020년도를 맞이할 예수사랑 성도들과 중직자들이 세계복음화 할 만큼 빛의 경제를 소유하여 전도와 선교에 쓰임받기를 축복한다. 마12:28~32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반대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일을 해치는 자가 된다. 성령을 훼방함으로 오는 세대와 가는 세대에 죄사함을 받지 못하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밝히 증거 하셨다.
창3장의 비명 소리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죽겠다’ 하며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 우리가 ‘죽겠다’고 하는 말은 “정녕 죽으리라” 는 그 말에 걸려든 것이다. 사단에게 걸려들어 죽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구원 얻을만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갱신을 통해 하나님의 새 힘을 얻을 지어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망각하게 만드는 모든 흑암 조직, 가문에 흐르는 저주, 의심 속에 인생을 망치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매일 ‘죽겠다, 미치겠다, 죽여라’ 하는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끊어라. 예수사랑교회는 이런 말을 하는 교회가 아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나는 교회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 그 권능과 권세를 사용하기만 해도 하나님은 지금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우리에게 창6장 비명 소리가 지금도 우리 영혼 속에서 들리지 않는가? ‘너 때문이다, 너로 인하여 우리 집구석이 안 된다.’ 가정마다 집안 식구가 원수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너 때문에, 너만 없으면’ 핑계만 대고 책임전가 하며 나 중심으로 살게 만드는 이 사단의 강한 성을 깨뜨려라. ‘나는 너 때문에 외롭다. 자식 다 키워놨더니 제 갈 길로 다 가고 나는 너무 외롭다’ 하지 마라. 창6:14 하나님의 일을 하면 외롭지 않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웃게 된다. 하나님의 일이 없기 때문에, 나로 살고 있기 때문에, 창3장의 저주로 죽음의 그림자가 내 몸을 휘어감았기 때문에 비명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창11장의 비명 소리가 엄청나게 귓전에 들리고 있다. 우리 영혼 속에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11장의 고통이 지금 우리 몸에 찾아와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렸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 잃어버렸다. 삶의 모든 균형이 깨져 바벨탑처럼 무너져버렸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라. 창6:14 너와 네 가정에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라. 너는 복의 근원이라.” 우리는 지금 이것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우리 때문에 열방과 이웃의 자녀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 때문에 외롭다, 누구 때문에 미치겠다, 누구 때문에 죽겠다는 언어를 끊고 강한 자를 결박해라.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다’ 하는 것은 자신이 지긋지긋한 것이다. 뒤척거리는 인생에서 벗어나라. 내가 죽고 싶은데 누가 죽여주지 않아서 산다는 헛소리 하지 마라. 구원 얻을 만한 믿음도 없이 헛발질, 헛소리를 하면서 사는 것은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 길이 없어서 교회를 왔다’ 이런 소리 하지 말고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가져라. 무당집을 가보면 전부다 길이 없어서 길을 묻는 것뿐이다. 그래서 굿을 하고 점을 치고 부적을 써놓고 초를 켜서 빌다가 더 이상한 것이 그 영혼 속에 들어가 버린다. 결국은 남는 것이 분노 밖에 없고 외로움과 슬픔, 고독 속에 끊임없이 의심의 생각만 파고 들어올 뿐이다. 그래서 집착하고 이간하고 더러운 성질머리로 살아간다. 이런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무엇인지 루스드라 현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 말씀의 능력이 어떻게 역사했는가? 그 말씀에 대한 그 믿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오는가? 말씀의 능력은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우리 영혼 속에 생길 때 일어난다. 믿음이 어떤 것인가? 앉은뱅이가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으로 받아들여라. 내 인생의 치유자, 내 인생의 해답자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과 받아들이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은 시작된다.
본문에 앉은뱅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발을 전혀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였다. 성경은 그를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자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는 말씀의 능력을 그 몸에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다. 말씀은 조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눈을 뜨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에게 발목에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능력 곧 말씀으로 역사하시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져 있는 영혼 속에 그리스도를 담아 넣어라. 앉은뱅이로 주저앉아있다면 주저 앉아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내 영혼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개인에게 임한 은혜의 말씀을 담고 있으면 이적은 시작된다.
그 앉은뱅이는 바울의 말씀을 “듣더라” 했다. 원문을 보면 그냥 들은 것이 아니다. 복음의 말씀을 알아들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예수그리스도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서 들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아멘, 아멘!” 하면서 들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을 때, 주저 앉아있던 앉은뱅이는 자기 영혼을 다해서 움직였다. 이것을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 그 처절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한 번 시인하는 순간 그 이름이 우리 영혼 속에, 심장에 뛰지 않는 것, 감각이 없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절대로 아무나 알 수 없는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온 것을 절대 은혜라고 한다. 성경 한 권도 없는 시절에 앉은뱅이는 복음을 알고 온 몸으로 아멘하며, 그리스도 이름을 들을 때마다 일어나라고 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의 온몸을 움직였다. 그는 메세지를 한 번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바울을 계속 따라붙으면서 일심, 전심, 지속으로 들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에게서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 계속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일어나 걸으라” 한 것이다. 마음과 열심을 다해 듣고 지속적으로 듣는 것을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듣고 영혼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 바울의 눈에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쳤을 때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일어나게 된다. 앉은뱅이는 바울이 설교를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그의 영혼과 온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일어나라 하기 전부터 메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계속 지속해서 들었을 때, 그리스도 그 말씀과 함께 역사한 것이다. 말씀이 설교이고, 설교가 말씀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완전한 해답을 주는 예수사랑교회 설교가 인생에 답이 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몸에 오면 우리 인생의 그 이상을 품는 일이 일어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페적인 사랑이 우리 몸속에 임하는 것이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은 바로 아가페적인 사랑이 내 마음에 부은바 되어 질 때 그 사랑의 힘을 덧입고 일어나 걷는 것이다. 입술로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자로 받을 수 없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보다 먼저 일어난 것은 말씀의 역사였다. 불치병, 암 병이 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말씀의 역사가 먼저 있어야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통해 치유도 시작되는 것이다. 말씀의 역사 없이 병 나은 사람들은 지금 교회를 거의 다 떠나고 없다. 말씀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있는 사람이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 말씀 속에 일심, 전심, 지속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 생명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변화부터 일어나야 한다. 앉은뱅이가 마음의 변화 없이 나으면 뭐할 것인가? 갱신 없이 일어나는 것은 절간에서도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 갱신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기적을 맛보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을 자초할 뿐이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일어나는 기적은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한다. 사람의 의지와 감정을 말씀으로 바꾸지 못하고 자신의 갱신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근심하고 염려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면 자신이 앉은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앉은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는 그 사람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앉은뱅이라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라고 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버린 것이다. 내가 암이라는 병에 잡혀있으면 그 사람은 암을 치료받을 길이 없다. 우리 마음과 생각에 그리스도가 기억나서 갱신이 일어나고 그리스도가 나를 붙잡고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임마누엘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 불치병은 치유된다.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에 잡혀있으면 그 사람은 단 돈 십 원도 헌신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온 교회 식주인이었던 가이오는 자신이 돈이 많고 돈을 잘 버는 사람으로 잡혀있지 않았다. 사도요한은 가이오를 “네 영혼이 잘 된 것과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한다” 는 말씀으로 훈련시켰다. 그리스도 말씀의 능력이 생명으로 우리 영혼에 충만해지면 세상을 정복할만한 경제의 축복을 저절로 받게 된다. 그래서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는 엄청난 돈을 벌어도 자기는 돈이 많은 재벌가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 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언제나 찬송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체질이 되면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2020년도 3천 제자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세계복음화라는 절대적 행1:8을 목표에 두고 중직자 시대를 맞아 정말 하나님 앞에 헌신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가 가진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했는데 그 바울은 지금 로마 바티칸 앞에 엄청난 동상으로 세워져있다.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 반드시 증거를 주신다.
*우리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세지를 반드시 ‘듣는 자’ 가 되어야 한다.
교회를 나오는 이유는 졸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잠이 온다면 일단 편안하게 자면 된다. 하지만 어느 날 말씀이 들릴 날이 온다. 메세지를 듣는 자가 되면 아는 자가 된다. 그 듣는 자, 아는 자는 그리스도를 보게 되어있다. 한 시간의 예배를 드리면서도 뒤척거린다면 구원 얻을만한 믿음을 내 영혼에서 빼앗아 가는 사단의 전략에 잡힌 것이다. 강단에서 메세지를 하면 어떤 사람은 강단을 비웃고, 어떤 사람은 늘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다 망했는데도,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도 있다. 강단에 서면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다 보인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까지 가진 자들인데도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어느 날 설교를 들을 때마다 그리스도를 자꾸 듣고 그리스도를 알면 어느 날 보게 되는 날이 오기 때문에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강단 메세지를 따라가는 자가 되라.
바울의 설교 중에 앉은뱅이가 눈에 들어왔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앉은뱅이에게 들어가는 것이 보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는 얼굴로 앉아있으면 안 된다. 예배가 끝 날 때가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면 흑암이 그 사람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언제나 예배 설교 말씀이 시작되면 목사와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바울이 앉은뱅이에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보았던 것처럼 은혜가 임하게 된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래서 말씀 속에 구원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통해 중생하는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 때, 구원 얻을만한 믿음이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그 확신을 보고 ‘일어나라’ 는 말을 듣게 된다.
하나님의 이적은 설교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되라. 시81:10에, “나는 너를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예배 때마다 입을 크게 열고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입을 크게 벌리는 그 입에 하나님이 채우신다고 약속하셨다. 시골집에서 자라날 때 보면 처마 밑에 마다 제비집이 있었다. 그런데 막 태어난 제비새끼들이 털도 없고 눈도 못 뜨는데 입만 계속 벌리고 있다. 그런데 입을 벌리는 제비에게는 어미가 늘 벌레를 잡아서 먹이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고 부르면 부요케 된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성령이 내주 인도 역사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을 통하여 이제는 기도 응답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특권이 우리 몸에 임하였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온 사람에게는 영적인 힘이 왔기 때문에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다. 내 심령 속에, 내 영혼 속에 지금 구원을 받고 있는가 들여다봐라. 내 심령 속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가 살아서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스도 이름으로 정말 나는 날마다 ‘너는 일어나라,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고 있는지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는 너를 치료시키시는 만왕의 왕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입을 열고 소리를 내는지 한 번 점검해봐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 그리스도를 듣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이뤄진다. 바울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일어나라” 명령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미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을 주셨다. 마음이 돌작밭으로 있는 사람, 길가밭으로 있고 가시떨기로 있는 자는 불행한 자다. 씨는 확실한데 내 마음이 옥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씨가 몸에서 자라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를 힘입어 날마다 선포해라 ‘내 속에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는 척, 아는 척, 기도하는 척 가면을 쓰고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며 교회를 속이려고 하는 악한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 몸에 임할 지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어야만이 하나님의 능력은 시작된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살아서 작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우리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강한 놈, 사단의 권세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어버려라. 그래서 한 주간 믿음으로 “너는 일어나 걸으라!’ 명령하는 자가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어 죄와 사망에서 빠져나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사랑이 내게 부은바 된, 절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설교를 집중하여 들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영혼과 온 몸이 움직였던 앉은뱅이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 속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듯이, 일심, 전심, 지속으로 말씀을 들어 예수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이 되고 답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동하는 믿음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강단 설교 속에 이적으로 증거 된다는 사실을 붙잡고, 내 몸에서 끊임없이 죽겠다고 하며 너 때문이라고 책임전가, 핑계 대는 강한 사탄의 성을 무너뜨리고 예배 때마다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찬양하며 중직자 시대를 맞아 전도와 선교에 쓰임 받는 전도제자로 세상을 정복해 나가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