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만 구하는 이기적 종교생활을 버려라
행14:11~18
2019. 12.08 1부 말씀
기적만 구하는 이기적 종교생활을 버려라
행14:11~18 Rev. 김서권
인간은 창 3장 이후 인간성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상숭배하며 엉뚱한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래서 자연의 신비를 보고 신비주의에 빠진다. 모세가 우리에게 준 창3:15의 언약을 믿지 않아 모세의 율법에 빠지고, 복음의 흐름을 타지 않기 때문에 예레미야처럼 박애주의로 인생이 전락되고, 인간성이 변질되어지니까 사람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당은 우상화 되고 있고 사람들은 자꾸 우상을 세우려고 한다. 여기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이다. 한 번의 예배를 통해 구원을 받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축복한다.
복음의 말씀만 각인되면 영육이 강건해지고 범사에 잘되는데, 복음이 우리 몸에 각인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언어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죽는 날까지 구원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쓰는 언어를 교회까지 와서도 계속 쓰게 되고 원망, 불평, 핑계, 책임전가,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만 한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말씀했다.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언어를 제하지 않으면 머리위에 숯불이 놓여 진 것 같이 진노가 임한다고 했다.
*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성이 완전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변화의 역사가 시작될 때 운명에서 빠져올 수 있다.
유튜브에서 우리교회 방송을 오랫동안 들으셨던 장로님이 도대체 강남, 서초에서 마귀, 사단, 악령을 그렇게 말하고, 그리스도 절대 언약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교회가 부흥이 되는지 한 번 와 보셔야겠다고 하면서 직접 우리교회를 방문하셨다. 지방에 있는 큰 교회들도 사단, 악령, 귀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영적인 메세지를 하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데 강남에서 이런 메세지를 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 분은 3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서 신앙생활을 한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그래서 대형교회는 영적인 메세지가 아닌 전략을 짜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고, 이미 목사, 장로, 중직자들이 이상한 말씀으로 길들여져 죽어가고 있음에도 벗어날 힘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런데 어떻게 영적인 메세지를 선포하는 이 교회가 강남 서초지역에 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도들의 얼굴을 확인하러 오셨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정말 힘이 있고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는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예배 끝나고 나가는데 자신이 식사 대접을 하겠다며 타교인인 자신에게 선뜻 밥을 사주고, 비가 오니까 자기의 우산도 내어주는 것에 정말 예수사랑교회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예수사랑교회가 이 시대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축복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장로님께 예수사랑교회를 오시면 사단의 활동이 내 몸에서 어떻게 솟아나는지 볼 수 있다고 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으라고 선포하면 자신의 내면이 보이던지, 아니면 내면에 있는 것이 개소리로 나오게 된다. 교회에 대한 헌신을 말하면 발악하는 사람들도 교회에는 가득하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인간은 창3장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성이 완전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10:38에도 그렇게 선한 일을 한 고넬료도 사단에게 눌려 있는 자라고 말씀했다. 사람들이 왜 선한 일을 하려고 몸부림을 치는가? 근본을 상실한 채, 사단에게 눌려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외식주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가면을 벗어버리면 고통의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창3:15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응답 속에 참된 승리를 체험하게 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요19:30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다 이루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살아나셔서 감람산에서 40일 동안 말씀하시며 행1:8 “오직 성령충만을 받으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그리스도 그 힘의 권세로 인해 바뀌고 정리된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 있는 증인이 되어 만민 앞에, 왕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권세로 충만해지면 우리의 육체가 영적인 존재로 만족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변질시키기 시작하면 두려움 가운데 숨게 된다. 우리 내면에 엄청나게 더러운 것을 숨겨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강한 자, 똬리를 틀고 있는 뱀 대가리를 발견하고 끄집어내고 결박시켜 내어 쫓고 박살내야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3:15 복음을 변질시키면 현실을 자꾸 부인하는 사람이 된다. 현실을 부인하면서 꾸며낸 기쁨으로 살면서 이상한 표현을 하지만 속은 썩어있는 자가 된다. 혼란과 공허 속에 자신도 알 수 없는 슬픈 고독과 원죄적 비극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쓸쓸함을 맞이하며 산다. 그러면 작은 문제 앞에서도 엄청난 무기력과 무능 속에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는 독사가 밑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우는 것처럼 자신을 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성이 변질된 사람들을 향해 진정한 변화, 거듭남이 없다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5: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셨음에도 변화, 거듭남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진노로 살아가게 된다고 하셨다.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내면이 얼마나 이상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염려에 늘 젖어있어 날밤을 세우기도 하고, 근심 걱정으로 인해 우리 몸은 끊임없이 시달리며 깊은 밤들을 고독으로 지새우고 있지 않은가?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의 짐을 다 짊어져 주셨다. 우리 자신의 거듭남이 없으면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에게 인생이 속게 되어 일평생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사단의 헌신자가 된다고 말씀했다. 종교생활에 헌신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이 복음을 가지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고 임마누엘을 누리는 생명이 되기를 축복한다. 사단에게 눌린 것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복음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지 않으면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 마귀의 자식이요, 의에 원수가 되어 바른 길을 갈 수 없는 자” 로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라고 행13:10에 말씀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외관상으로 행복해 보이는지 아니면 진짜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감격이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외관상 행복해 보이는 자들을 향해서 그들의 내면은 괴로움뿐이라고 하나님이 직접 진단해주셨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자신 영혼조차도 전도 할 수가 없다. 자신에게 전도가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 하나를 사로잡지 못하고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교회 일에 관심도 없으면서 교회 안에 작은 일 하나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오면 뱀에 물린 사람처럼 발악을 한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가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도 하나님의 일에 반대하고 거부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외형상으로는 굉장히 경건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다. 내면에 경건은 있는 것 같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등은 들고 있는데 알고 보면 기름이 없는 자와 같고, 귀신을 내어 쫓고 능력도 행하면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천명, 소명,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창3:15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게 된다. 창3:15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행동이 우리 몸에 있다면 사단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앞에 무릎 꿇게 된다. 창3:15의 감정이 우리 몸에 열정으로 살아있고 그 감정이 믿음으로 솟아난다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해가게 된다. 창3:15이 우리 몸에 기억되어있다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가르치게 될 것이요, 후대들의 기억에 남기게 될 것이며 창3:15을 가지고 뱀의 머리를 밟는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는 순종의 능력이 우리 삶에 있어야 한다. 문제에 잡혀 시달리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에 잡혀 그 문제를 기억에 갖지 않도록 성령충만함을 가져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와 저주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다”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날마다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런 말씀에는 아무런 감정과 태도도 없고, 기억과 생각에도 없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면 어떤 기적과 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 내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이구나’ 라는 것에 기쁨과 행복이 없다면 이미 우리 내면을 숨기고 있는 자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맞다면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는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능력되신 그리스도와 성령이 우리 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 몸에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하면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전혀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감화가 그리스도로 내 몸에 없다면 인생 자체가 빗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
본문에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우상숭배로 인생이 빗나간 자들을 말씀한다. 그들은 엉뚱한 것을 숭배하고 있었다. 구원을 받지 못하면 종교생활에 잡혀 사람이 이상해진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 같은 것을 행하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어느 날 망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을 보면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엄청나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그렇게 큰 성전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것을 지어놓고 거기에 위대한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생이 빗나간 우상숭배자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의 사랑,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 불순종 가운데 역사하는 그의 영이 자기를 지배함으로 인생이 빗나가 버린다.
본문에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숭배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재물과 화환을 가지고 와서는 모든 것을 다 장식해 놓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하나님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빗나간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신처럼 군림해있으면서 조직의 두목들이 보디가드로 붙어있다. 그런 목사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깡패 때 칼 맞아서 냉동실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그런 사람들이 찬양 인도를 하고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막 뒤로 넘어가기도 하고 이상해진다. 그리고 목사들이 가진 간증들을 들어보면 폐병 20년을 앓다가 하얀 옷을 입은 분을 만난 이후로 자기가 해결되었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들” 로 생쑈를 하는 자라고 했다. 이런 메세지를 듣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올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은 절대 변할 수 없고 거듭남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구원에 이르는 그 믿음,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을 향해 우상숭배 하는 자들에게 제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전부다 빗나간 우상숭배자들이었다. 로마와 헬라는 오늘날까지도 주피터와 헤르메스 신을 섬기고 있다. 신화로 내려오는 것을 생명 걸고 빗나간 종교생활 속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다. 행14:12 바나바는 쓰스(주피터=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말하는 자라고 해서 헤르메스(허메) 라고 했다. 제우스는 모든 신의 왕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우상 숭배를 몸에서 굉장히 원하고 좋아한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성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는 큰 종교들이 굉장히 많은 것이다. 구원 받지 못한 자에게 자연계는 다 우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서초동에도 아파트 입구에 엄청나게 큰 돌들을 앞에 세워 놨다. 잘 들여다보면 동네입구마다, 아파트 입구마다 무언가를 다 세워 놨다. 서초역 사거리 중앙에 향나무 하나 있는 것도 사람들이 완전 우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이상한 것들을 갖다놓고 제사를 지내고 서초구에서는 거기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하며 나무가 죽을까봐 주사도 주기적으로 맞게 한다.
구원 받지 못한 자는 인간성이 변질되어, 그리스도가 몸에 없음으로 심령이 새로워 질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것이 다 신으로 보이고 우상으로 보인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순간 즉시 두려움이 생기고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숨어버렸다. 숨어서 자기가 섬길 우상, 다른 신을 찾는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다. 그랬더니 하나님을 만나면 끝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라고 한 이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고 엉뚱한 말들만 늘어놓았다. 올바른 인간의 이성을 상실해버렸다. 인간의 이성을 저버리고 상실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된다. 그러면 두려움이 반사작용으로 항상 찾아오게 된다. 그래서 뭔가 염려, 근심, 걱정으로 긴 밤에 잠 한 번 제대로 자보지 못하고 시달리다가 깬다. 언제부터인가 찾아온 이 두려움 때문에 자기 몸에 보이고 들리는 것에 경배부터 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못 벗어난 자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합리성마저도 상실해 버리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아보려는 몸부림이 자기 몸에 늘 배어져있다. 우리는 자기 소원을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내 소원을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존재다. 인간성이 변질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가 우리 영혼 속에 성령의 감동으로 오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소원을 이뤄보려고 몸부림치게 되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자꾸 비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자기 소원을 위해 비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인간이 가진 소원이 무엇인가? 잘 살아보세, 멋있게 한 번 잘 살아보겠다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쌓아놓은 바벨탑에 앉아 있으면 더 시달릴 뿐이다. 서초동에도 빌딩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건물에 이상이 없는지 1층부터 옥상까지 올라가며 다 확인하고 잠시 나갔다가 또 다시 확인해보는 삶을 산다. 주차 관리하는 사람보다 더 시달린다. 내가 늘 가는 목욕탕에 일하는 분이 “목사님, 정말 운명 이라는 게 있나 봐요”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자기 목욕탕에 자주 오시는 큰 병원 원장님이 계시는데 목욕탕을 오면 자신이 척추수술을 1300회 성공적으로 한 사람이라고, 자기가 하면 다 낫는다는 늘 자랑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한 동안 안보이다가 한 달 만에 휠체어를 타고 왔길래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가족들과 리조트에 잠시 쉬로 갔는데 넘어져서 온 몸이 망가져버렸다고 했다.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손발톱까지 썩어 들어가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것을 운명, 저주와 재앙이다. 그리스도 없는 사람들은 100% 불화살 맞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를 장악하고 있고, 우리에 대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아놓고 앉는 순간 떨어뜨리고 아니면 끊임없이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잡고 있고 끊임없이 빌다가 어느 날 그 소원이 오는 순간 숨이 안 쉬어지게 만든다. 이 운명으로부터 장악되고 인간성이 변질되어있는 창3장의 저주를 깨뜨리는 길은 메시아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여기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자꾸 고백하면 저주와 재앙이 사라진다.
영적인 힘이 없으면 육신적인 힘을 빌려서 빌고 매달린다. 왜 사람들이 교회에서 그렇게 빌고 있는가?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알 수 없고 천사도 알 수 없고 하나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왜 그렇게 내지르는가?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육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복음은 영적인 힘이다. ‘내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사망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박살내라!’ 이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 육신적으로 몸부림치지 않는다.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발버둥 치며 빌면서 애원하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 바위에 빌고 허수아비도 세워놓고, 창호지에 붉은 색으로 지렁이 지나간 것처럼 글씨를 써넣은 것을 몸에 집어넣고 빌고 집에 부적만 집어넣고 돈이 들어올 것을 믿고 있다. 장롱 속에 부적을 넣어 속옷이 다 곰팡이 쓸게 하고 어떤 사람은 부뚜막에 물 한 잔 떠놓고 빌고, 밥이 다 되면 밥솥에 십자가를 긋는다. 자신의 소원을 성취시키려는 육신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서 자기 몸으로 발버둥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욕망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놓고 빌어보려고 한다. 자기 소원 성취의 결과가 무엇인가? 결국은 타락과 욕망뿐이다. 그래서 종교 우상에 빠진 자들은 자기 죄를 정당화 하면서 그냥 회개만 할 뿐이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선과 악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자신의 생활을 전혀 고치려고 하지 않고 거듭남은 불가능하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 빌 뿐이다. 진노는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진노의 자녀는 찾아오는 재앙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보고 싶어서 교회가고 헌금하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극단적 향락주의자들은 자기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서 죄가 뭔지도 모르고 정당화한다. 그래서 죄에 대한 가책을 잊고 자신도 모르게 육신덩어리로 무당 춤을 춘다. 교회가면 ‘내게 강 같은 평화~’ 하며 전부다 무당이 춤추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취해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는 할렐루야 하고 버스 탈 때는 자리를 맡겠다며 창문에 자기 가방부터 던져놓는다. 무질서, 무능력 오만가지 더러운 것이 다 나온다. 교회에서 잘못된 것을 배우면 귀신이 들어가고 더 이상해지는 것이다.
* 우상은 뭔가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교회는 죽은 목사님 사진도 크게 붙여놓는다. 어떤 집에는 죽은 남편, 죽은 부인 사진을 갖다 놓고 거기에 상까지 차려놓았다. 무언가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는 것이 우상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이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자기 사진을 엄청 크게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앞에 절하게 만들고 복사해서 집에다가 갖다 놓으라고 한다.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 종교가 되는 것이다. 오래 전에 대기업에 어떤 이사를 알고 지낸 적이 있다. 그 분이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삼각산 기도원에 왔을 때 알게 되었다. 그 집에 갔더니 예수님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 가시면류관의 피가 흐르는 슬프고 고독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거기에 절을 하고 나보고도 무릎을 꿇고 빌라는 것이었다. 그 그림은 어떤 화가가 죽으면서 예수님을 진짜 보고 싶다고 해서 그린 것인데 1억을 주고 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예수님이라고 그 사진을 복사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결국 회사 부도나고 지금은 은평구 어딘가에 기도방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운영이 안 된다고 나에게 얼마 전에 전화가왔다. 예수사랑교회 설교를 잘 듣고 있다고 하길래, 그럼 문 닫고 우리교회 오라고 했더니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했다. 어떤 것이든 무엇을 만들어 섬기면 결국은 종교화되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셨음에도 지구에는 자꾸만 우상이 급증하고 있다. 그래서 박태선, 안상홍, 최태민 이런 죽은 사람들을 섬기며 이상해져가고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이 두 사람을 신비롭게 생각했다. 오늘날 교회들이 병 고침 받은 한 사람을 굉장히 신비롭게 생각한다. 하지만 복음의 말씀이 영혼 속에 들어가 성령이 감동되면 그 힘을 얻고 일어나 걷게 된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일을 했으면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질문을 했어야 한다. 올바른 질문을 하면 올바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주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으라!” 했을 텐데, 이 사람들은 질문도 없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왔다고 하며 재물을 바친다고 한 것이다.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의 변질은 이렇게 잘못된 생각으로 무지에 갇혀있다.
어떤 사람은 전도캠프를 함께 가면 자연을 보고 “어머, 너무 아름답다 할렐루야~” 하는데, 지구상에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은 “나” 다. 나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쓸데없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이 아름다워도 인간을 위한 피조물밖에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을 우상화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자연의 피조물을 보고 자꾸 신비롭게만 생각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못 만난 자들이다.
욥31:26~28, 하나님이 왜 욥을 지키고 보호하시고 축복해 주셨냐면, 욥은 자연의 무한한 신비를 보고 유혹되지 않았다. 벌 받을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자신이 자연인이라고 하면서 자연 세계에 빠져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다 버리는 것을 본다. 교회를 좀 다니다가 병들어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나물 캐먹고 약으로 달여 물마시고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을 안 믿는다. 동방의 의인 욥은 자연의 아름다운 신비를 보고 자기 몸이 유혹되지 않았다. 자연의 신비를 보고 우상숭배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우상숭배는 벌 받을 죄다.
바울은 자신에게 오는 찬사를 극구 사양했다. 만약 내가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면 신문과 방송에 광고를 내지 않았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봤다. 1980년대에 정신지체 장애인 사역을 할 때 사회면에 ‘하늘의 천사, 사랑의 종’ 이라고 하면서 크게 신문 기사에 실린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사랑의 종이 아니라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아서 그 사역이라도 한 것인데 기자들이 그렇게 쓴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군 정부가 그 신문사에 나온 사상은 다 이상하다고 해서 시와 구청, 면에 일하는 공무원들이 차로 밀려왔다. 그래서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천막이랑 집을 다 때려 부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사역이 언론이나 무엇에 나타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사건 속에서 내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다는 소리를 듣고 큰 교회 담임을 맡고 별장에 비서를 두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상속자로, 양자의 영을 허락받는 비밀’을 알려줘도 욕하는 사람들이 있고, 악령, 사단, 너희 아비 마귀 이런 말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아도 육신적으로는 호위호식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내 인생의 전환점이 없었다면 나는 여러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사람들이 몰려와 극찬을 하며 신으로 섬기려고 할 때 그것을 철저하게 사양하면서 “나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다” 하고 소리 질렀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예수그리스도이름이 이 사람을 낫게 한 것이지 내 몸에서 어떤 능력이 나간 것처럼 왜 자신을 주목 하냐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 받으라고, 영적인 성령의 힘을 받으라고 주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사람이 낫고 걷게 된 것이라고 선포한다.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고, 허물도 있고 죄의 권능으로 짓눌려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고 그 힘의 능력을 가지고 나를 변화시키고 거듭남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성령으로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믿으면 믿는 자에게는 영적인 힘이 시작된다. 앉은뱅이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난 것이고, 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나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당신들을 통해 역사하시려고 이곳에 그리스도 이름을 선포하게 하셨다.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당신들도 나와 같은 능력과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바울의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자연계시는 우상숭배가 아니기에 절대 신비주의로 가면 안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연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에게 피조물을 주셨다. 하나님을 충분히 알만한 것을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기에 때문에 하나님이 자연도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 중심으로 움직여 가신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한다.
“창3장 이후 인간성이 변질되어 하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기적만 구하는 이기적 종교사상을 버리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고 우상을 버려라”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던진 구원의 메세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자연의 세계를 신비롭게 생각해서 우상숭배로 가지 말고, 자연의 신비, 아름다움은 우리를 위하여 만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를 느끼는 축복이 날마다 임하길 바란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창세기3장 15절의 복음을 몰라 현실을 부인하고 두려워하며 염려와 근심 속에 인간성이 변질되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내 욕망을 이뤄보기 위해 우상숭배하며 살아갈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이르는 복음의 말씀, 그리스도를 주셔서 운명에서 빠져 나오는 인생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허물 많고 죄와 사망권세, 사단의 권세에 잡혔던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성령의 감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었음에 날마다 감사하며 하나님의 절대 사랑과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뭔가 되어 진 것을 가지고 사람들로 부터 찬사를 받고 흥분하는 교만함이 무너지게 하시고, 기적만 구하는 이기적 종교사상을 버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날마다 그리스도를 느껴 내면이 치유되는 거듭남의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