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행14:19~28
2019. 12.15 1부 말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기록 목적은 모든 생명이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우리 개개인이 성취시켜 나갈 때 하나님의 축복은 시작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생활로만 머물러 있지 구원을 놓치고 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 고난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무엇과 씨름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육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시간표를 갖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이 홀로 남겨진다. 그 때는 정말 각오하고 마지막 남은 생애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다시 결단을 내리는 날이 되어야 한다.
* 창3:15 예수그리스도로 사단의 세력을 밟는 기도의 비밀을 통해서 구원은 성취된다.
인생에 찾아온 고난 속에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했던 사람이 야곱이다. 창32:24에 야곱은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환도뼈가 나갈 만큼 씨름을 했다. 그 때 야곱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살았던 내 인생이 허무 하구나’ 이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새로운 희망을 얻고 지팡이를 부여잡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했다.
구원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 구원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가 무엇인가? 죄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세상 풍습과 세상 정욕,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이기는 그리스도,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사단을 이기는 그리스도, 이 그리스도가 나의 만왕의 왕이 되어주시고 모든 저주를 없애신 참 제사장이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참 선지자 되심을 알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기도의 비밀을 잃어버리면 구원이 성취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세력이 그리스도 이름을 반드시 밟혀져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성취된다.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며 노예로 전락했고,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때 하나님은 창3:15 복음의 능력, 언약을 놓친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유월절 사건을 통해 우리 개인의 영혼과 내가 살고 있는 가정과 세상, 국가의 통치가, 권력 잡은 자가 우리를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림자를 출3:18 언약으로 주신 것이다. 개인에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자는 모든 저주와 재앙, 전쟁과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19:30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와 내 가문의 모든 저주를 하나님이 도말하셨다. 이것을 알고 내 몸에 하나님의 복음을 성취시켜놓아야 한다. 이것이 내 몸에 들어가면 예배하는 자세도 다르고 교회를 오는 자세, 헌신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우리는 모든 문제 속에서 모든 응답과 축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 기회를 자꾸 놓치고 산다. 내 몸에 하나님의 복음,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시작하면 당연한 축복을 받게 되는데, 내 몸에 와 있는 복음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도 놓치고 하나님의 축복도 놓쳐서 이 땅에 먼저 와 있는 흑암 덩어리가 우리 개인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문제의 틀에서 못 벗어난다. 와 있는 문제를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그 문제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전부 다 믿지 않고 있다. 우리 인생에 와 있는 그 문제를 기도를 통해 해결 받으려고 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문제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눈속임으로 자신이 점을 치듯이, 위로하면서 운명, 사주, 팔자에 살면 사망 권세 잡은 사단에게 불화살을 필연적으로 맞게 된다. 그래서 늘 삶의 필연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로봇이 수술을 하는 시대가 왔어도 정신병이나 개인의 영적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다. 그래서 어느 날 절대적 실패 가운데 가정을 원수덩어리로 만들고 비참한 운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 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내 몸에 담았다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의 기준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천국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 눅9:23~24 나의 자아를 부인하는 자가 천국 가는 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자만이 천국 가는 길을 아는 자다. “주여, 주여” 하고 귀신도 내어 쫓고 온갖 일을 이 땅에서 행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는 자는 천국 가는 길을 모르는 자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보았고, 아니면 자신이 죽었다고 살아났다고 해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았다. 왜 그런가? 육신의 표적만을 추구하는 자는 죽는 날까지 구원의 축복을 놓치고 인생을 살기 때문에 구원의 내용을 몰라 자기 몸에 하나님의 복음을 성취시킬 길이 없는 것이다.
천국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마5장에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 ‘나는 오직, 절대적으로, 당연히,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심령을 가진 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구원을 받기위해 내게 주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가지고 애통하는 것이고, 오직 메시아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 되신 그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는 자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라’ 하면 가고, 그가 ‘머물러있으라’ 하면 머물러 있고, 그리스도가 ‘오라’ 하면 그에게로 가면 된다. 그 뿐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늘 굶주리며 구원을 사모할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에만 목말라 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했다. 안개처럼 잠시 왔다 가는 세상, 세상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게 된다. 세상 아파트가 보이고, 빌딩, 돈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청결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충만하지 못하도록 세상에 물들여져 있는 부패 된 마음들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내 몸에서 무너질 지어다!’ 이렇게 언제나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나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받았다’ 는 그 정직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언제나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음에도 인간관계 하나를 화평케 하지 못하는 찌질함이 우리 몸에 왜 그렇게 가득한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회를 이간하고 씹는 일들이 있다면 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때문에 핍박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핍박을 받으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찾아왔다.
눅4:18에도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성령이 내 몸에 임하였으니 “이는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말씀했다.
그 은혜의 해가 무엇인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이 드디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마1:21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자,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에게는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단의 머리를 밟을 수 있는 임마누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이제는 문제 앞에 떠는 자가 아니라 밟는 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에 그리스도인이 가장 매력적이고 멋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문제 앞에서도 그 문제 하나를 수용하는 능력 자체가 없으면 그건 전도자의 가슴을 가진 자가 아니다.
성령이 우리 몸에 임해야 한다. 뱀의 머리를 밟으실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기름 부으심으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눈먼 자도 고치고 사단에게 포로 된 자, 시달리는 자도 풀어주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풀어주는 자가 되라. 우리 마음에 딱 맞는 사람만 만나는 것은 재앙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천사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내게 없다면 내 것을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천사를 보내셨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뽑아내야 한다.
마6:33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는 기준을 말씀하셨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성취시키는 자’ 다. 우리는 구하는 자가 아니다. 이제는 와 있는 응답을 성취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구원을 받은 자, 곧 성령이 임하는 자는 외부의 공격과 핍박 앞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구원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본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엄청난 표적을 일으켰다. 앉은뱅이에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그 말씀이 그에게 임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라” 했을 때 일어나는 표적을 보고 그 지역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런 표적을 보고도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는 사건이 또 일어난다. 그래서 기적과 표적을 보고 교회를 오는 사람들은 다 가짜다. 먼저 내 몸에 구원이 임해야 한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내 몸에 구원이 임한 것이 기적 중 기적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 내 몸에 구원이 임하지 않으면 표적을 보고도 더 악질로 살아가야 한다. 앉은뱅이는 주저 앉아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두 발로 설 수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더 잔인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구원 받지 못하고 손발이 온전해지면 저주와 재앙의 몸이 되는 것이다.
본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핍박을 당하기 시작한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종교 생활하는 자들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루스드라 까지 추격해왔기 때문이다. 종교사상은 이렇게 무지하고 무자비하고 더러운 것이다. 이들이 루스드라에 와서 선동을 일으키고 바울과 바울은 가짜라고 이간을 한다.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 헤르메스라고 여겼던 사람 선동자들의 몇 마디를 듣더니 다 같이 그 소리에 사람들이 완전 변해버렸다. 자기 몸에 구원을 놓쳐버리고 구원의 내용이 몸에 담겨있지 않으면 작은 소리만 들어도 흥분하고 돌변하여 살인자가 된다. 육신적으로 예쁘고 잘생겨도 그게 전부다. 그 내면에는 작은 소리만 들어도 돌아버리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여기에 인생에 답을 내지 않으면 모든 것에 놀라고 정신병자, 기생충, 좀비로 전락한다. 사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고 그 이름을 부를 때 삶이 부요케 된다.
결국 루스드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거짓된 메세지를 듣고 소리를 지르며 흥분 상태로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인다. 그런데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기적을 행했던 바울이 자신이 돌에 맞을 때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와 가짜의 차이다. 앉은뱅이에게 나타났던 능력을 외부의 공격에 끌어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구원의 힘으로 외부의 공격을 막는 힘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하고, 성령이 임한 자라고 한다.
유대인과 루스드라 사람들이 분명 바울을 돌로 내리쳤는데 돌 몇 대 맞고 바울이 죽어버린다. 그런데 그 당시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결정 없이 사람을 죽이면 죽인 사람이 사형을 당하게 되기에 바울을 죽인 자들이 겁을 먹고 순식간에 성 바깥으로 바울을 내다 버린다. 영적싸움이 안되면 이렇게 흥분하고 불신자들의 소리를 듣고 이상한 행동을 저지르는 마귀의 헌신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8:44에 마귀의 헌신자가 되지 말라고 직접 말씀 하셨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도 내면에서 나온다. 욕심쟁이도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밟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속는 자가 된다. 약1: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그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내면에 계속 쌓여 결국은 나를 덮어버린다. 그래서 죄가 쌓이고 장성하면 사망이 짓누르는 것이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이제 냉철하게 시작해야 한다. 죄의 권세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죄가 점점 확산되고 커진다. 변명하지 말고, 핑계대지 말고, 이유를 따지지 말고 내 자신에게 있는 죄의 권세부터 꺾는 자 되라. 오늘날 중독의 시대 속에 마약과 정신병이 급증하고 있다. 창3장 원죄는 끊임없이 죄를 재생산 시키고 잉태시키는 자다. 우리 몸에 죄가 계속 자라게 한다. 그래서 악한 사람으로 어느 날 변하게 한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은 심지어 살인 원정대를 만들어 바울을 추적할 만큼 죄가 장성했다. 그리고 죽이지 않은 것처럼 성 밖에까지 내다버렸다. 종교사상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바울은 그런 핍박을 당할 때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돌들은 날아오지 말지어다. 저들을 다시 공격할지어다. 엘리사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신 하나님이 지금 내게도 역사하셔서 저들의 눈깔을 뽑아주옵소서 이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내 몸에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성취되어지는가를 언제나 누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모든 문들을 막을 때 막으시고 열 때 열어주신다.
바울이 매를 맞고, 배고프고, 춥고 떨 때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버려두셨다. 왜 그런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버린 바울이 피곤까지 다 풀고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찾아가서 “너희들은 굳게 예수그리스도만 붙잡고 영적싸움에 거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 들어가는 비밀이 열린다. 이 믿음 안에 거하라. 내가 능력을 행했다고 해서 또 그런 능력을 행하려고도 하지 마라. 그리스도 안에 딱 붙어서 자신과 영적싸움 하는 비밀 속에 있으면 하나님 나라까지 들어간다. 이 믿음으로 오직 영적싸움을 하며 살아라”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믿음, 세상의 어떤 환경과 두려움 속에서도 이겨내는 그리스도, 살인마의 탈을 쓰고 공격해오는 그 사단의 역사를 밟는 그리스도, 그 힘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환란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리스도가 내 몸에 성취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땅에 와 있는 창3장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만 해결된다는 것에 결단 내리고 믿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 와 있는 창3장의 흑암의 문제들을 가지고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이 땅에 와 있는 문제들을 가지고 놀라지 말고, 근심하거나 시달리지 마라. 우리 몸에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된다.
바울은 여러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병이 들고 죽을 일을 당하고 매를 맞고 굴욕을 당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수많은 일들이 왔지만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옛 사람인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사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할 것이 하나 밖에 없다. 마12:28~32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문제 앞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을 갖게 하고 문제 앞에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더러운 저주의 영을 예수그리스도로 꺾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불신앙 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마12:28~32의 액션을 성취시키려고 하지 않는 사람, 돌로 치는 유대인들, 군중심리에 따라 불신앙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쓰신다고 했다. 교회 안에 악랄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을 위해 쓰임 받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감사해야 한다. 바울이 드디어 여기에 영적인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사단에게 헌신하는 자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구나,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능력이구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만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그래서 외부 상황에서 오는 고통들은 아무 문제가 될 일이 아니구나. 육체적 고통은 문제 될 일이 아니구나. 이런 환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것이구나.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 이런 것 때문에 괜히 시달릴 필요가 없구나. 이런 것 때문에 내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구나’ 이렇게 내 몸에 와 있는 내적 고통을 뽑아내면 뽑아낼수록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진다.
외부 상황으로부터 근심이 오는 것은 내 몸에 원죄적 체질로 인하여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는 것이다. 내 몸이 왜 불안해서 떨고 있는가?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몸에서 초조해하는 것은 믿음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악령의 역사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고난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요셉이 외부상황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시간표 속에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작품을 만들어가고 계셨다.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형통케 하셨다.” 요셉의 형통이 무엇인가? 형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것, 노예로 팔려가는 것, 모함을 받는 것, 감옥에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형통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을 받는 것, 달콤한 초콜렛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문제는 언약을 잡으라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부모님의 흐름을 내가 그대로 받는다면 나이 먹어 엄청난 질병과 어려움 속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저주가 그리스도 안에 다 해결되어진다는 것, 가문의 저주도 해결된다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다. 문제는 반드시 답이 있다 창3:15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제 앞에서 나만 알 수 있는 힘이 온다. 문제 앞에 창3:15 답을 가진 사람은 말씀과 기도로 성취시키는 것이다. 창3:15을 가지고 복음의 흐름을 타는 사람은 미래도 볼 수 있다. 창3:15을 가지고 내 평생에 남길 작품을 통해 내 자신이 증인이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이어줄 후대 주자까지도 세워나가는 것이다.
창3:15절이 행1:8까지 왔다. 창3:15을 가지고 살면 성령충만 까지 온다. 그래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있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나약한 나를 통해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감동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자가 되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속에 다양한 환란과 어려움이 와도 아무 문제없다는 답을 가진 자라고 확신을 가져라.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데 늘 여 성도들과 이상한 오해가 따려 다녔다. 그래서 사모님과도 늘 싸우고 여러 가지로 힘이 들어 부교역자를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분을 만나 팀사역 속에 ‘자신과의 영적싸움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말씀은 곧 뱀의 머리를 밟는 것이고, 그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선교의 문을 여시는 것이 아니겠냐’ 고 간단한 메세지를 전했다. 그래서 필리핀 선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썽을 많이 피우는 아이들을 필리핀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런 아이들이 이 목사님만 만나면 살아나고 문제가 해결되고, 목회자 자녀들 중에 정신병을 가진 많은 아이들을 그 교회에 보냈는데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후원을 많이 해주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고난을 통해서만이 선교는 가능해진다. 고난은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교만이 있는가? 그래서 고난은 우리에게 굉장한 유익이 되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일들이 찾아오게 되고, 환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함을 느끼게 된다.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 교훈도 하고 권면도 하고 명령도 하고 친히 모범을 보이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희생도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누구에게 부탁했는가?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행14: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 구원 받으라고 나에게 주신 그리스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게 하신 유일한 은혜, 능력, 권세, 삶의 영광 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의 그리스도는 오직 고난을 통해 나의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신다. 그리스도가 항상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부탁해라. 나와 동행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 삶에 유익을 주는 참 왕,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 은혜 속에 그리스도로 충만한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이미 와 있는 흑암의 세력이 개인을 덮음으로 구원의 비밀과 내용을 몸에 담지 않아 종교에 빠져 자신과의 영적싸움이 불가능한 상태 속에 마귀에 헌신하므로 죄가 몸에 나타나 악한 사람으로 개인이 변질된 이 시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나의 모든 운명적 저주를 도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 합니다. 한 주간, 굳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라는 언약의 말씀처럼, 인생의 문제 앞에서 초조해하지 아니하고 기도로 해결 받길 원하오니 유일한 대답, 창3:15,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세상과 사탄과의 영적싸움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어 내 몸에 구원이 임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