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갈 길은
오직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
행20:13~25
2020.06.07 1부 말씀
빌3:14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는 푯대를 향해 가라고 말씀하신다. 경주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푯대를 향해서 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딤후4:7~8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바울이 친히 부탁한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 하나님께 소명과 사명을 받고 행동하는 자에게 어떤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졌는지 말씀했다. 하나님의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목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 우리 예수 사랑 모든 가족들에게도 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고, 이제 영원히 사는 영원한 생명의 시간표를 허락하셨고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 수 있는 영원한 축복까지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의 복음을 만민에게 증거 해야 되겠다는 절대적 천명을 가슴에 담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 역사를 체험해라. 빌2:17~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내 생명 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소유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자신의 피를 이 땅에 다 쏟아낸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한다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을 왜 불러야 하는지 알고 부르면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나를 신뢰하지 말고 성령에 매여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라.
내 자신을 ‘내 것’ 이라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핏 값을 지불하여 하나님이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을 이렇게 바꾸지 않기 때문에 우리 영혼이 치유도 안 되고 응답도 없이 살면서 삶은 쪼그라드는 것이다. 남편, 아내, 자녀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사후세계를 준비할 수 있다. ‘내 남편’, ‘내 아내’ 라는 생각에서 못 벗어나면 하나님의 일은 할 수도 없고 정신질환자만 될 뿐이다. ‘내 자식’ 이라고 생각하고 자녀를 키우면 결국은 원수가 될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그 핏 값을 지불하여 이제 내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도전하는 자가 되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시다. 시작을 알고 그 끝을 아는 자는 두려워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 실망할 것도 없다. 계1:3 성경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읽는 자, 성경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듣는 자,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성경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했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진다면 세계복음화의 배를 타고 출항하는 결단이 시작되어야 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시작이 있으면 그 뱀 대가리는 언젠가 깨질 날이 반드시 온다.
세상 종교들의 세계관을 봐라. 세상 종교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이라고 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다. 수레바퀴 돌듯이 세상이 윤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종교는 죽는 날까지 방황하다가 진리 하나도 못 찾고 비참한 고백을 하다가 간다. 그래서 성철은 “내가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내 한이 만 갈래나 된다. 둥근 수레바퀴에 내 영혼이 걸려 저 수미산에 걸쳐있다” 고백했다. 끝도 없는 영원한 무간지옥에서 고통의 나날을 지내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종교의 세계관을 가지고 어설프게 신앙생활 하면 방황밖에 없다. ‘내 것’ 이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깨뜨려라. 그러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의 끝이 무엇인가?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성령을 부어주고 가르쳐주고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희와 항상 그리스도의 새 영이 항상 함께 있으리라.” 끝을 아는 자는 두려워할 것도 없고 참된 평안이 그 몸에 미치게 된다. 그리스도를 아는 자,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자로 인생이 다시 한 번 새롭게 변화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속히 일어날 일이 있다.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이 시작이 일어나는 자,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 그리스도를 믿고 자아를 부인하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내 자아를 바꾸면 구원을 얻지만, 끊임없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내 것을 강조하면서 인생을 살면 정죄를 받게 된다. 무서운 재앙이 기다린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정말 정신 차리고 해야 한다. 교회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교회는 일곱 영이 운행하시는 곳이라고 말씀했다. 교회가 어떻게 승리하고 교회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말씀했다. 이 세상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교회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해 우리는 분명하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
교회는 세상 시스템에 빠져있지 않고 밖으로 나온 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에클레시아(ecclesia)’ 라고 한다. 곧 구별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창1:2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셨다. 혼돈과 공허, 흑암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셨다. 창3장, 아담과 하와가 저주에 빠져있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창3장 저주에서 불러내셨다. 불러내셔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라” 곧 내 주장이라고 하는 것을 박살내라는 것이다. 이런 자를 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목사나 장로가 교회를 자꾸 ‘내 것’ 이라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오는 것이다. 교회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며 응답을 주시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교회다. 교회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곳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사단이 준 완악한 교만과 욕심쟁이, 거짓말쟁이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박살내는 곳이 교회다.
창4:7 교회를 다니는 가인에게 “네가 왜 낯을 들지 못하느뇨” 말씀하셨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중심으로 살게 만드는 더러운 저주의 영을 그리스도로 밟고 깨뜨리는 영적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낯을 들지 못하는 것이다. 내 몸을 묶고 있는 저주의 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어 쫓지 않으면 죄가 나를 다스리게 된다.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가 지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를 내어 쫓을 때 흑암이 건드리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죄의 권세, 죄가 내 인생 앞에 엎드려 나를 사로잡아 교회 안에서 이상한 자가 되어 교회 바깥으로 다시 나가게 된다. 3저주에서 끄집어내어 이제는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라고 불러내셨는데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진노의 자녀가 된다. 네피림의 문화에서 불러내었는데, 방주를 짓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바벨탑 우상에서 끄집어냈는데도 복의 근원으로 살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갔을 때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 요셉에게까지 축복하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바리새 율법에서 불러내셨다. 노예에서 끄집어내셨고, 카톨릭 교황에서 불러내셨다.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닌 적그리스도다. 십자가를 걸어 놨다고 해서 기독교와 형제지간이라고 착각하지만 십자가를 앞세워 기독교를 오히려 파괴시키는 곳이 카톨릭 교황청이다. 타락한 교회들을 만들어내는 단체다. 하나님은 이런 시스템에서 우리를 불러내셨다.
그래서 변질되고 타락한 종교 앞에서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복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작하면 반드시 끝에 분명한 결과가 나온다. 종교적 가식을 벗어버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 그것이 에클레시아다. 세상은 소멸되고 무너지지만 교회만 남는다. 그것을 그루터기라고 한다. 세상의 시스템은 다 사라져 없어져도 그루터기는 남는다. 지금까지 교회를 어설프게 생각했다면 한 번의 예배를 통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교회는 반드시 새로운 싹이 나고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고 죽었던 몸이 살아나는 축복이 시작된다. 그루터기는 뿌리를 잘 내리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싹이 나고 그 새싹이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어느 날 숲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인내하지 못하고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남은 자가 맞다면, 남길 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전도제자로 쓰시기로 축복하셨다.
그루터기 교회에는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그리스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이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41:10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잡아주리라”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그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사60:1~2 “너는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이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요 캄캄히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삶에서 네 위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60:3의 응답을 주신다. “모든 나라들이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60:4~5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올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몸에 에클레시아로 임하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교회 안에 임한 축복을 받아 가면 된다.
그래서 잘 된다고 교만하지 말고, 밥 먹는 문제 해결되었다고 까불지 말고, 여자 친구 만났다고 여자보다 교회를 무시하면 큰일 난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 이 여자하고 결혼 하겠습니다” 하고 찾아오는데, 자신이 다 결정하고 주례를 부탁하러 온다. 배우자 될 사람을 교회에서 본 적이 없어서 교회는 다니냐고 물어보면 안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왜 불신자와 결혼하려고 하냐고 물으면 자신이 전도하겠다고 한다. 전도가 사람이 힘으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너무 우습게 생각하지만, 교회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 속에 불러내셔서 우리가 교회 안에 있게 되었다면 성령에 매인 자가 되어야 한다.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한다.’ 는 절대 고백이 우리 심령 속에, 심장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이 불러내어주신 에클레시아, 교회 안에 있다면 우리는 배가 고파도 괜찮고 매를 맞아도, 핍박을 받아도 괜찮다. 불신자를 따라가지 말고, 불신세계에 걸려들지 말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자가 되자.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람들은 성령에 매임을 받아 하나님의 완벽한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바울을 통해 증거 한다.
본문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보고를 하러 가려는 내용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환란과 기근을 당해서 먹을 것이 없을 만큼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그래서 오순절에 맞춰 사도바울이 각 지교회에서 연보를 걷은 것을 예루살렘교회에 주기 위해 육로를 통해 사역을 가겠다고 했다. 바울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일곱 명 정도가 있었는데, 한 두 명만 자신을 따라가게 하고, 배를 타고 가는 나머지 사람들과는 앗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자신은 육로로 걸어 다니며 지교회 마다 제자들을 바로 세우고 가기 위해서다. 제자들을 굳건히 세워나가면서 자신의 전도 여정 속에 한 명이라도 사람을 더 만나서 그리스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내가 중국 사역을 다닐 때 중국 목사님들이 그런 모습을 봐왔다. 한 번은 기차로 먼 지역에 전도를 가는데 어떤 분이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박일송 목사님에게 사과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생명처럼 내 말을 사랑하는 목사님들이라 내 말에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영접을 하고 사과도 받아오고 나에게 소개 시켜서 기도까지 받게 했다. 바울도 이런 열정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성령에 매인 사람들, 에클레시아가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은혜의 복음이 가슴 속에, 심장에서 뛰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에베소 교회에 열매를 맺었는지에 대한 복음의 증거와 인격적 신앙을 장로들에게 증언한다. 가는 길에 에베소 교회를 잠시 들려야 하는데 에베소교회로 가면 또 자신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려고 하는 것을 알고 사람들 보내어 에베소 장로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장로들에게 메세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메세지가 논리적이거나 교리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신앙과 행위를 통해 에베소 교회에서 3년 동안 보았을 것이다. 내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어떻게 실천했는지 당신들이 나의 증인이지 않는가? 말로만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으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은 나는 분명히 장로님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내가 3년 동안 에베소 교회에 있으면서 내가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숨긴 것이 없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기도 속에 응답의 제자를 세우는 역할만 했다. 내 생활 자체가 신앙고백이었다.”
자신의 인격적 신앙이 담긴 이 복음의 증거를 장로님들을 청해서 전달했다. 에베소 교회에 세워진 수많은 열매가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지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면 복음을 처음 전달하며 섬겼던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다. 어떤 지교회 든지 이 복음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많은 연보로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도록 더욱 겸손해야 할 것이다.
행20:18~19 바울은 자신이 온 첫날부터 그리스도를 가지고 겸손의 본이 되었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다고 증언한다. 고전9:27 그 당시 유럽이었던 아시아 교회, 마게도냐 교회에서 언제나 복음을 전파한 후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으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 에베소 교회가 크게 부흥되고 돈이 많아지니까 복음운동을 하지 않고 안일해 있는 가운데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낸 것이다. “교회에 정말 돈이 오면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임 받는 에베소 교회가 되라” 이렇게 메세지를 했지만, 이것을 못 알아들은 에베소 교회는 결국 망했다. 이 에베소 교회가 오늘날 터키지역이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 망한다. 남편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끝인데, 남편을 내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들고, 상대방도 힘들어하고 결국은 가정이 원수가 되어 슬픈 허공 속에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귀한 복음의 은혜를 잊지 말고 세계복음화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부활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내 몸에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한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을 쳐서 복종시키고 나를 죽여야 겸손의 본을 가지게 된다.
겸손의 본이 내 몸에 배어있으면 영혼에 대해 눈물이 난다. 행20:19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내 심장이 성령의 매인바 되어 뛰는 것이다. 내 몸에 성령이 매인바 되었다는 것은 영혼구원에 대해 끊임없이 눈물로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영혼구원에 애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참된 전도의 비밀을 말해서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들어가고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게 할 수 있을까?’ 영혼 구원에 대한 애정과 동정에 대한 눈물이 상대방에게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힘들게 교회 온 사람을 쫓아내려고 한다. 자리 없다고, 주차가 힘들다고 하며 쫓아내고, 화장실을 이상하게 쓴다고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한다. 화장실을 이상하게 쓰고 나오면 내가 정리하고 나오면 된다. 나는 화장실을 쓰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용한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온다. 상대방이 치우지 않으면 ‘나의 모든 근육을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자신이 정리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밖에 없다. 바울은 언제나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성령에 매여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울 마음속에 늘 있었다. 우리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성령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 뿐 아니라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로 인해 오는 여러 시험과 환란을 참으며 인내했다. 교회 안에 카톨릭의 교묘한 사상들을 집어넣으려는 것, 유대의 시온사상, 이슬람 사상을 교회 안에 심으려고 하는 것 앞에 각종 이단들이 끌고 가려고 하는 간계들,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상들… 이런 것들 앞에 바울은 인내했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인내 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거리끼는 것이 없이 오직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롬1:16~17 “복음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회개는 창3:15 안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창3:15로 돌아와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든 생각을 깨뜨리라는 것이다. 회개에 대한 믿음과 예수그리스도 대한 믿음을 말한 것 밖에 없다. 창3:15을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이제 사람과 영원히 성령으로 함께 있게 됨으로 우리 몸속에 와 있는 3저주를 풀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 이름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3저주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참 왕, 참 선지자, 참 제사장의 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선포하지 않으면 죽는 날까지 원죄와 자범죄, 가문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힘으로 해보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워라.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일 속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불신앙에 빠지지 말고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힘이 오고 성령에 매인 바 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증거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를 날마다 영접하고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이룬 구원의 축복을 잃어버리지 말고 내 몸에 와 있는 프뉴마(pneuma), 성령의 역사를 계속 실천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바울은 자기 몸에 성령이 연합되어져 성령에 매인 바 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행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눈을 못 뜨도록 나를 다스리려고 하는 모든 흑암 덩어리는 그리스도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일어나 눈을 떠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셨다. 자기 멍에를 짊어지고 어설픈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라. 자기의 멍에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창3장의 원죄, 거기에 심부름하는 자범죄 이것이 자기 멍에다. 우리의 힘으로 가문의 저주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네 멍에를 내게 가져와 너는 쉼을 얻으라” 영적인 것에 눈을 뜨면 성령, 그리스도의 영과 연합하여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면 어떤 문제가 와도 상관이 없게 된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열매를 매어야 하는가? 계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요일3:9~12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에클레시아, 곧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끌린 사람들은 반드시 영적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하겠다.’ 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사람들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종교 생활 속에 방황하며 진리 하나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나를 타락한 종교에서 끄집어내어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주시고 이 은혜의 복음을 만민에게 증거 해야 한다는 성령에 매인 자로 부르시니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핏 값으로 사셔서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나를 신뢰하여 교회를 무시하고 어설픈 종교 세계관으로 교회를 오해하며 불신의 세계를 따라갔던 삶을 버리고 교회 안에 임한 축복을 누려 성령의 매인 자 되게 하옵소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기며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바울의 마음이 동일하게 일어나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 속에서 영혼 앞에 겸손하며 참된 구원의 길을 이뤄가는 자로, 전도와 선교의 문을 열어가는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