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1 1부 말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를 알면 “예수는 그리스도” 만 나온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속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스도 이름 속에 기도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리스도 이름 속에 예수의 구원이 들어있고, 그 이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축복이 시작된다. 그래서 사단, 악령, 마귀, 귀신, 흑암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는 교회를 너무나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이제 모든 악기를 동원해서 그리스도 그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며 열방에 구원의 소식을 알려야 할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천명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껏 237 나라를 놓고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며 비전과 이미지를 가지고 실현하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로 탄생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왜 축복하셨는지 알면 이유 있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3가지를 개혁하라고 말씀하셨다. 인생개혁이 안되면 인간은 노예로 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문제를 만나도 말씀을 통해 자신을 갱신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를 통해 세계복음화를 이뤄 가신다. 두 번째,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종교 개혁이 있어야 한다. 샤머니즘, 육신의 생각, 인본주의, 프로그램, 율법주의, 신비주의, 박애주의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하나로 모든 답을 끝내라는 것이다. 이상한 신세타령하지 말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 세 번 째, 문화개혁이다. 이 땅의 문화가 개혁되지 않으면 흑암의 나라로 덮인다. 오늘날 3단체가 흑암의 문화로 완전 장악해버렸다. 기독교가 문화를 장악해야 하는데, 기독교 문화가 흑암으로부터 다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는 껍데기 문화를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수준이 떨어지는가? 세상 문화는 사람들의 영혼을 다 뒤집어 놓는데 기독교는 지금 세상의 문화를 따라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것을 위해 예수사랑교회가 탄생했다. 이것을 알고 이 일에 함께 동참하겠다고 갱신하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문을 여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문제를 끝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여기에 대한 확신과 결단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제자들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 어설프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 제자라고 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자가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교회가 진행하는 일은 “죽으면 죽으리라” 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교회는 피하는 곳, 숨는 곳이 아니다. 껍데기를 가지고 노는 곳이 아니다. 참된 진리를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 속에 나아갈 때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시작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겁먹어 예배당이 문을 닫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찬양대가 사라지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이 우리 영혼 속에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롬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살아계신 아빠라 부르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때 롬8:19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굴복해서 경제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밥 먹는 문제 하나 해결되었다고 교만하거나 까불면 안 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굴복시키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땅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에게 굴복되는 것을 정말 깨달으면 우리는 가장 행복한 자가 된다. 이것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는 결단이 시작되길 축복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리스도 이름을 영혼에 선포시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면 네 몸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개인에게 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내 영혼에 담지 못하게 육신적으로 반응을 일으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게 만들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며 세계복음화에 방향을 맞추고 살지 못하도록, 말씀을 성취시키는 모델로 가지 못하도록 내 인생을 가로막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 몸에 임할 지어다!’ 이런 선포메세지가 우리 몸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메세지를 계속 들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 보장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천국이 보장되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한다. 들으면 믿음이 오고, 고백하게 되고, 선포하게 된다. 그러면 움직일 때마다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누리면서 하늘의 천군천사가 동원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받게 된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너는 그리스도의 증거 있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가 움직인다. 행1:8 하나님의 권능이 시작되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 몸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의 권능을 사용할 때 더러운 귀신이 우리 몸에서 떠나간다. 개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없이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은 더 큰 귀신만 들어올 뿐이다. 그래서 예수 믿고 더 악해지고, 사랑도 없고, 회개도 없고 갱신도 안 되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면서 갱신도 하지 않고 자신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정말 구원받았는지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모세는 80세가 되어서야 갱신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마른 지팡이 하나 남은 늙은 고집쟁이가 되었고, 처가살이에서도 인정을 못 받아 노숙자로 전락했다. 결국 80세 때 하나님의 개입으로 갱신하게 된다. 갱신을 모르고 살면 죽도록 고생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갱신이다.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바꾸는 날까지 사단, 귀신, 악령은 우리를 가지고 놀게 된다. 바로 갱신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치유가 일어나고 생각을 고치는 축복이 온다. 생각을 고치는 축복을 받지 못하면 결국 인생 말년에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실패하고, 전 세계로부터 왜 욕을 먹고 있는가? 기독교가 왜 개독교로 전락되었는가? 육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명령한 육신적인 것을 다 쥐고 육신의 생각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기독교를 이상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은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기도하면 삶의 균형은 깨져버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너희에게 쉼을 주는 하나님이다.”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가져오지 않고 육신적으로 기도한다. 기독교는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왜 실패하고, 세계 교회는 왜 문을 닫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왜 이념전쟁으로 서로 갈라지고 싸우는가? 사이비, 이단 교주 하나를 왜 막을 수 없는가?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 없고 입에서 개소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만이라도 어떤 문제가 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시작되어야 한다. 죽을병이 생겨도 일단3일만 침묵하고 있으면 부활의 역사가 시작된다.
*자기 문턱에 걸려있는 문제가 무엇인가? 구원이 뭔지도 모르고 구원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령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특히 전도가 뭔지를 모른다. 전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전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전도 하면 “전도도” 가 나온다. 곧 증인이 된다. 증인은 이말 저말을 섞어 논리적으로 꼬시는 전략을 쓸 필요가 없다. “와, 보라! 나를 따라오너라!” 하는 것이다. 증인은 말이 많을 필요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에 구원을 얻으리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걸으라!”
그런데 자신의 문턱을 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 사람을 괴롭히지 마라. 자신이 안 된다고 남을 괴롭히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이다. 예수사랑교회 가족들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떤 사람이든지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음의 군사가 되자. 자신의 구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죄가 문턱에 엎드려 그 놈에게 잡힌 것이다.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뇨?” 구원의 확신, 사죄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이 없으면 죄의 권세로부터 영혼이 묶여서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관계 하나를 성공할 수 없게 된다. 가인이 구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죄의 권세에 잡혀있으니까 아담, 하와를 괴롭히고 아벨을 괴롭혔다.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고 하셨음에도, 뱀의 머리를 깨뜨리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에 주둥이만 예수쟁이가 되어버렸다. 동생을 앉혀놓고 메세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곧 “죄가 너를 사로잡아 사람을 괴롭히도록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그 죄의 권세를 다스릴 수 있는 언약을 가진 자다.” 말씀을 주셨다. 그런데 끝까지 자신을 갱신하지 않아서 결국은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결국은 박수무당, 점쟁이, 귀신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나’ 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죄의 권세로 장악하고 있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라. 요일3:8 죄를 짓는 자, 죄의 권세에 따라 인생을 사는 자는 마귀의 영향으로부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사랑교회는 인생개혁, 종교개혁, 문화개혁이라는 말씀을 받은 교회,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태어난 교회이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괴롭히지 말고, 여기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님, 여기에 쓰임 받으려면 빨리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주시던지, 병을 치료해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베다니 연못에 38년 동안 누워있던 사람은 그런 원망을 해본 적이 없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그 호수에 누군가 나를 먼저 넣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반드시 살게 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내가 살아서 누운 상태로 맞이하게만 된다면 그것이 내가 태어난 목적이요, 38년 만에 메시아, 그리스도를 만난 증거를 가진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누워있는 사람이 응답을 받는 것이다. 40년 동안 눈을 감고 있는 맹인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일을 나타나기 위해서다” 말씀했다. 이 소리를 들었던 맹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생각을 갱신하면 닫혔던 눈도 열린다. 생각을 치유하지 않고 마귀의 생각으로만 일평생 살아가면 절대로 “죽으면 죽으리라” 는 고백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나’ 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소망이 없어진다.
개인이 완벽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라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성령충만” 완벽하게 살지 말고 이 고백 속에 생각만 약간 바꾸고 그리스도를 노래해라.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은 종말을 맞이하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자다. 어떤 누구도 개인에게 찾아오는 종말을 막을 수 없고 이 땅의 지구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에게 개인의 종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재림주로 오시는 그 만왕의 왕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 생각을 조금씩 바꾸면서 살면 된다. 몸부림친다고 해서 종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 본 그대로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 철장 권세를 가지고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장차 심판의 주를 만나야 하는데 갱신을 하지 않는 다면 참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삶을 요구한 적이 없다. 개인의 종말이 있기 때문에, 그 때까지 끊임없이 문제가 찾아오고 여러 어려운 일들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생각을 약간씩만 바꿔준다면 예수님이 머무르는 처소에 함께 있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생각을 조금씩 갱신하는 사람이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개인의 종말이 오는 그 날까지도 기도 속에 있게 된다. 어떠한 바깥 사정과 환경에도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것 저것 따지지도 않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전혀 기도에 힘쓴다. 바깥 환경에서 막 말을 하고 싶고 성질부리고 싶고 이상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도 전혀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고전9:27, 고전15:31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기도에 힘쓰니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에 모델이 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인생, 종교, 문화개혁을 성취시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 속에 반드시 모델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전도의 문이 열리고 전도의 문이 열려야 하나님의 역사가 성취되고 그 때 매력적인 만남이 오는 것이다. 행2:41~42 “강단에서 흐르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런 멋진 만남이 우리 생애 있어야 한다. 늘 싸우고 이간하고 때리는 만남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을 조금만 갱신하고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벽한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 몸에 죄의 권세가 작동될 때마다 뱀의 머리만 순간, 순간 밟아준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
창3:15이 개인에게 일치될 때 모든 것이 회복된다. 우리 몸에 언약에 일치되면 롬16:20의 주인공이 되고 모델이 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에 일치가 되면 행4:12을 외칠 수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 받을 수 없나니, 천하 모든 사람 중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외치는 것이다. 행9:15 그리스도로 바뀐 사람은 “죽으면 죽으리라” 할 수 있다.
* 사도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메세지를 듣지 않았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는 다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가라, 이 사람은 그리스도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 말씀을 받은 바울은 “죽으면 죽으리라” 했다. ‘도망가라, 피해라, 숨어라, 개소리 해라, 열 받아라’ 이런 것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이런 행동만 한다. 그리스도로 바뀐 사람은 “죽으면 죽으리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죽어야 부활을 맛보고 죽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죽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가를 알고 기록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은 자가 어설프게 교회 다니면서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바뀐 사람은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를 쳐서 복종시키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다. 바깥 어떤 사정과 환경이 엄습해와도 “죽으면 죽으리라” 한다면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죽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죄의 권세가 발작증세를 일으켜서 병원에 끌려 인생을 마감한다. 성질대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훈련을 해라. 그리스도로 바뀐 인생을 살아야 멋있어진다. 그리스도로 바뀌었다는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은 죽는 것이다. 죽어야 부활의 몸으로 산다. 거듭남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 내가 죽으면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이 자신에게 성취된다.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귀히 여기는 자세를 가진 세계복음화 주역 제자들이라면 먼저 자신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가져라 “목사님, 교회는 도둑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하시면 안되요” 하지만, 교회의 감독자는 살아계신 하나님, 불꽃같은 눈동자를 가지신 성령님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자가 있어야 쓰레기를 줍는 자에게 축복도 온다. 교회의 성물을 깨뜨리고 더럽히는 자가 있어야 생각을 바꾸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내가 먼저 깨끗하게 하면 늘 더럽히는 사람이 언젠가는 제자가 된다.
신앙은 갈등이 아니라 결단이다. 마지막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에 성마다 들려서 가는 배를 사도바울이 타게 되었다. 그래서 성마다 내려 이틀씩 머무르는데 제자들이 알아보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행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결혼을 할까 말까 한다면 가지 말고, 예수사랑교회를 갈까 말까 하는 자세라면 오지 않아도 된다. 신앙은 결단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결단하면 예수사랑교회를 향해 가게 된다. ‘저 사람을 내가 만날까 말까’ 갈등을 하면 만나지 마라. 괜히 만나면 아부만 하고 헛소리만 하게 된다. 그런데 결단을 하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할지 하나님께 묻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공부하게 된다. 그런데 늘 만날까 말까 하는 중간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단이 개입하는 것이다. 먹을까 말까 하는 것을 먹으면 체한다. 음식도 결단을 내리고 맛있게 씹어라. 입맛이 있다면 절대 병원 갈 필요가 없다. 입맛이 있을 때 병원에 가면 시험도구만 될 뿐이다. 불신앙의 결과는 굉장히 무섭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요일3:8 만왕의 왕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이며, 막10:45 참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 대속주가 되어 주셔서 우리의 저주와 재앙을 막으셨고, 요14:6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길, 진리, 생명 되어주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신앙의 길이다. 신앙의 길을 선택했다면 절대 그 길을 가야지 왜 어설프게 이것, 저것 다 가지고 노는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면 문제 앞에 피하지 않고 자신을 갱신할 수 있다. 갈1:1 “죽으면 죽으리라” 한 바울의 고백이다.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도가 됐다.” 우리가 가진 신앙의 이 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몸을 주셨다” ‘나 같은 쓰레기를 위해 하나님이 자기 몸을 주셔서 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내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고,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 이 은혜가 크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 일이 없다. 쓰레기 같은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살지 마라. 나는 평생을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살았던 과거로는 1초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구원 받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큰지, 이것만 생각하고 주면 된다. 모든 문제는 나를 갱신시키기 위한 계획이다.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에만 있다. 종교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영적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있다. ‘죽으면 죽으면 된다.’ 하는데 자꾸 피하라고, 숨으라고 이간하고 합리화 하고 주관적인 것을 가지고 논리 속에 빠지게 만드는 자가 있다. 이렇게 해야 교회가 세워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사랑교회는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감독자가 되신다. 갈1:8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그리스도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요18:11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주신 잔을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칼을 칼집에 꽂아라. 창조주하나님이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잔은 죽는 것이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지 말고 정말 내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고 싶다면 자신을 죽이는 일부터 해야 한다.
행21:3~4 하루, 이틀 머무는 동안 전도의 문턱을 넘어서 기회가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바울의 이 사명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그를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행20:22~23 바울에게 당할 환란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에 매인 사람은 바깥에 일어나는 환경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 하나, 여러 일로 복음의 일을 막으려고 하지만 나의 달려갈 길에 내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행21:11 그 때 제자들이 바울의 몸에 띠를 두르고 가지 못하게 붙들었다. 분명 예루살렘을 돌아가면 바울에게 일어난 역사로 인해 포악자들, 이리떼들이 기다리고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나에게 와서 많은 말들을 하지만 사실 나는 듣지 않는다. 대접한 손을 축복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을 뿐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그 고백이 무의미한 것이다” 하셨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면 “죽으면 죽으리라” 가 나와야 한다. 한국 기독교가 이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져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때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 그리 마옵소서. 예수님을 죽이는 자가 있다면 내가 다 죽이겠습니다” “목사님이 눈이 아프다고 하면 눈이라도 뽑아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을 거짓말쟁이, 가짜 교인이라고 한다. 이것을 눈치 채고 성령의 감동 받은 사람들은 행21:14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꼬리를 내리고 그쳤다. 나는 이런 기독교인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이들의 합리적이고 주관적인 역사가 결국 유럽교회의 문을 닫게 했다.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바깥 어떤 환경이 우리 몸을 지배하고 죽인다 할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의 역사가 시작될 때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본문에, 사단의 유혹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갈릴리로, 갈릴리로 말고, 가버나움으로 가라는 것이다. “바울 선생님 십자가를 좀 비켜 가시면 안됩니까?” “목사님 할 일이 많은데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 이런 말들이 다 틀린 말이다. 사람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람에게 뭔가 맞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다 사단의 유혹을 받은 자가 하는 말이다. “왜 당신 같은 분이 무시를 당하면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비켜 가십시오, 피하십시오” 이것이 사단의 유혹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눅9:23~24 “예수님을 따라가려거든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영원히 살리라.” 고생의 자리, 고통의 자리, 환란의 자리를 피하지 않고 그 곳에 있어야 다른 사람까지 살게 된다. 대한민국이 6.25가 일어났을 때 북한에 있는 모든 목사들은 다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 뿌리가 오늘날 70년이 되어도 남북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갱신하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성경의 말씀을 나는 정말 확인했다. 성도들은 다 불타 죽고 총살당해 죽는데, 자신만 살겠다고 처자식들을 데리고 평양 땅을 버리고 합리화하며 남한으로 넘어와서 여기서 땅 장사하고 교회 장사해서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구원자 시며,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다.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들어가도록 그리스도의 새 영을 주셨다.
어떤 환경과 문제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뜻은 “죽으면 죽으리라” 다. 흔들리지 않는 결단과 확신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갈 수 있다. 이렇게 멋있는 능력의 복음으로 인생개혁, 종교개혁, 문화권 개혁을 이루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시고, 이제는 237나라에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인생과 종교, 문화를 개혁할 자로 세계복음화에 꿈꾸는 인생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가진 자는 반드시 응답을 받기에, 외부의 환경과 사정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이 기도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반드시 개인에게 종말이 있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날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결단 속에 내 생각을 고치고 자신의 문턱을 넘어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귀히 여기며 누구를 만나든지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모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JESUS’ LOV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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