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문턱을 넘어선
불가항력적 그리스도의 증거
행21:37~22:11
2020.07.12 1부 말씀
그리스도 안에서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정말 끊으면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그것을 ‘영적 서밋’ 이라고 한다.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자기 십자가는 고전9:27 교만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멋있게 전파를 한 후, 모든 삶을 다 살았는데, 그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우리 몸속에는 무시무시한 교만이 원죄로 온몸에 퍼져있다. 그래서 눈빛, 손짓, 모든 것이 교만으로 얼룩져있다. 눅9:24에도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자기를 위해 살면, 나를 내세워 인생을 살면 목숨을 잃어버리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생을 살면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 율법의 문턱을 넘어서고 종교의 문턱을 넘어서는 날이 되자.
*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귀를 제거하는 영적싸움을 위한 복음의 절대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에 나는 굉장한 열등감 덩어리로 인생을 살았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고, 형제들 중에서 나는 제일 못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면서 살았다. 옛날 사진을 보면 깡마른 몸에 너무나 볼품없는 얼굴이었다. 또 학교를 다녀도 외우는 것을 못해서 선생님들에게 많이 혼났었다. 그렇게 열등감 덩어리로 자라났다. 그 열등감으로 인해 분노가 쌓였다. 분노 조절 능력이 없어 자꾸만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 했고, 누군가 내 자신을 죽음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열등감 덩어리였던 나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시고, 성삼위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세계복음화의 원대한 꿈을 꾸게 하시고 하나님의 절대 언약을 갖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몸에 원죄로 장악되어 일평생 자범죄 속에 가문의 저주를 따라 열등감 덩어리로 살게 하여 분노 속에 자살하게 만드는 사단의 일을 내 몸에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일3:8 열등감이 찾아오고 분노 조절이 안 될 때마다 끊임없이 이 놈과 싸웠다. “너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내 몸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들고, 혈과 육으로 분노하며 살게 하는 살인자가 마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주가 되셔서 죄와 저주를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끝내셨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 만나는 살 길,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지구상에 어떤 종교도 “나는 에고 에이미” 라고 표현한 자가 없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간들의 ‘에고 에이미라’ 고 말씀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 생명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내 영혼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더니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면을 쓰고 살았던 옛 사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기 시작했고, 고후10:4~5 세상의 모든 이론, 사상, 이념, 철학, 신학 등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복종시키는 훈련 속에 있었다. 이 세상 신이 나를 그렇게 길들여 놓고 나를 혼미케 한다는 것을 고후4:4에 확인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의 지배를 받으며 일평생 종노릇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놈을 내 몸에서 제거하는 영적싸움이 없으면 골3:5, 음란의 세대 속에서 음란에 빠지고 혈과 육, 모든 정신의 문제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 몸을 우상숭배 하며 내 맘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저주와 재앙과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을 우상숭배하면 시14:1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냥 살았다. 이미 마음이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해서 영적싸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사단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 죄의 길에 서지 않으면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에 해답으로 주셨다. 이것을 찾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열등감 덩어리로, 분노 조절이 안 되어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앉으나 서나 감사할 것 밖에 없고, 사람의 입, 눈빛, 몸에서 나오는 것들에 영향 받지 않고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다. 거기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나를 낳았다고 했다!’ 하고 끝내 버린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그런데 이 하나를 갖지 못하면 교회 다니고 망하고 교회 다니고 더 이상해진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는 싫다’ 고 말한다. 그러니 교회는 좋은 인물들을 다 놓치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다음 가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 정의롭게 살아도 사람들에게서 오는 수많은 청탁과 유혹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교회가 답을 주지 못하면, 교회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교회를 싫어한다. 자신의 내면을 한 번만 들여다보면 되는데, 자신을 우상숭배하기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우리 안에 잘못된 소욕, 기질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쁜 기질들이 우리 몸속에 가득 쌓여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공포의식에 사로잡혀있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무엇인가를 느끼는 긴장을 가지고 산다. 우리 내면의 삶을 한 번만 들여다보면 반드시 이것들을 다스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을 구하라. 그러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성령충만을 달라고 청해라. 자신의 내면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너의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네 마음에서 나온다” 렘17:9~11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왜 점점 타락하는가? 마음이 부패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을 받지 않으면 점점 부패되어간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쓸데없는 마귀의 심부름을 하며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 한다. 실컷 남의 새를 품고 길렀더니 어느 날 중년에 인간관계는 다 깨지고 홀로 남게 되었다. 우리 영혼과 마음이 부패되면 인간관계도 다 무너져 버린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생의 막다른 길에 전화를 할 한 사람도 없다. 자고새와 같은 인생, 낳지도 않은 알을 품고 있어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이다.
*내면에서부터 불가항력적 그리스도의 증거를 갖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자.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분이 초등학교 때 삼촌으로부터 성 학대를 받았다. 그래서 삼촌만 보면 무서워서 늘 도망가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도 잠만 자면 늘 거친 산을 넘어가는 꿈을 꾸며 시달렸다. 그러다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늘 성령충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영적싸움을 시작했더니 온 몸이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간증을 했다. 그런 반면에 얼마 전 87세 된 할머니가 남편을 고소했다. 자신이 원한 결혼이 아니라 강간을 당해 결혼 했다는 상처가 일평생 끌고 간 것이다. 사람들은 ‘87세나 되어서 남편을 고발하면 뭐 할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뱀의 대가리를 밟아라” 고 복음의 능력을 주셨다.
한국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죄인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이 생기니까 한국교회가 발악하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는 죄인이 아니라 구원 받을 대상이다. 인간이 왜 동성애가 되는가? 하나님을 떠나면 누구라도 그런 일이 올 수 있다. 원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흑암이 찾아오면 자신과 상관없이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죄 하나를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회자가 너무나 많다. 그러면 동생애자들이 절간을 가야 하는가? 영원한 지옥으로 가야 하는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원죄로 인해 누구나 당신과 같은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우리는 바르게 알려줘야 한다.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나도 과거에는 당신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도 달라질 수 있다. 복음의 능력을 확실히 체험하면 이렇게 된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오직 돈에만 생각이 잡혀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만 인생을 사는 엄마, 아빠들은 돈에 집착하기 때문에 몸속에 화가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자식 때문에’ 라고 핑계, 책임전가 한다. 돈이라는 문제 속에 빠지면 사람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다. 자신은 써보지도 못하고 늘 화가 치밀어 산다. 잡히는 인생을 살지 말고 누리는 인생이 되자.
우리 몸에 요1:12이 왔으면 정말 끝내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러면 그 권세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청소할 것은 청소해야 한다. 잘못된 기질, 성욕, 상처로 인생을 살게 하는 사단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내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고백해놓고 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가? 분명히 고전3:16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고, 요14:16~17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는데 왜 이것을 믿지 않는가? 마12:28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면을 청소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그러면 행1:8 오직 성령충만을 매일 구하게 될 것이다. 권능을 받아야 강한 자, 세상 신을 결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종노릇 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된다. 행2:26 내 마음이 기쁜가? 내 혀가 즐거운가? 썩어지고 부패된 육체가 재생산, 재창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있는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임재 속에 이것을 체험했다.
그래서 행2:36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음이라”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호세아14: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그리스도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인간적 전쟁으로 이기지 않겠다.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이 말씀에 가지가 나온다. 첫 번째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두 번째는 “너는 반드시 말씀, 언약을 가져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절대 언약을 가지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말씀이 육신되신 그리스도로,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모든 불의들을 제거해라.” 네 번째, 늘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던 가난의 저주에서 벗어나, 이제는 입술로 고백만 해도 해결되는 인생이 되었다. 다섯 번째, 앗수르 사람의 구원을 의지할 필요가 없고, 말을 타지 않겠다. 곧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기에 절대로 서두르지 않겠다. 그리고 여섯 번째, 다시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해 신이라고 하지 않겠다. 종교 사상에서 벗어날 것이다. 일곱 번 째, 고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긍휼을 얻은 것처럼, 당신의 집에 나를 들여 영원한 양자의 영, 상속자의 영을 주신 것에 대해 감격하며 살겠다. 이런 가슴이 우리 몸에 있는가? 이런 말씀이 우리 내면에 하나도 없고 원망, 불평, 시비, 지적하는 것만 있지 않은가?
호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 도는 정직하니,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을 대항하지 말고, 하나님께 항거하지 말고, 복음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불가항력적 그리스도의 증거는 내면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빌3:8~21 “내면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 고백했다.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않는자, 그래서 빌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개소리를 들으면 우리 몸이 이상해진다. 사람들이 원죄, 마귀로 인해 귀신들린 상태가 되어 귀신이 뇌파를 흔들어 개소리 하게 만든 것인데, 사람들이 이런 소리에 좌지우지 되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가졌다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가 되라.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가진 자, 이 시대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자다. 전도자는 안색이 변하면 안된다. 그런데 조금만 건드리면 안색이 변한다. 화가 나면 담임 목사도 안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도록 해라. 우리는 위에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고 달려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 마라톤 선수가 면류관을 향해 달려가는데 애기 울음소리 들린다고 가던 길을 멈추는가? 위에서 부르심에 대한 상급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옆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만물을 복종케 하는 이름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복음을 체험한 사람이다.
*유대인의 핍박 앞에 바울은 자신이 ‘예수’ 를 만나 달라졌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사실적으로 전한다.
본문에 유대인들이 사도바울을 어떻게 핍박하는가? “너는 반유대적 사고를 가진 자, 반 율법적 사람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다” 고 죄목을 씌워 바울을 죽이려고 한다. 죄목을 그렇게 씌웠지만 사실 영적으로 보면 시기, 질투다. 나라를 위해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끄집어내려고 하는가? 기득권 세력이 여러 가지 죄목을 씌워 죽이려고 하지만 사실 내면은 시기와 질투다. 사람들은 내면에 시기 질투를 숨기고 다른 거짓말로 죄목을 씌우지만 결국은 다 들통나게 되어있다. 자기 분야에서 일을 잘하면 박수쳐주고 힘주면 되는데 사람들은 또 개인적 윤리를 건드려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고, 죄의 삯은 사망인데 개인의 윤리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다. 기독교가 윤리를 잘 지키는 것처럼 하지만 조그마한 실수와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다. 재정에 돈이라도 많았다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붙어서 교회가 싸움판이 될 수도 있다. 예수사랑교회는 전도와 선교 외에는 돈 쓸 이유가 없어야 한다.
본문을 통해 유대인들이 정치적 특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바울에게 하는 짓을 볼 수 있다. 무너져야 할 것은 무너지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는데 이들은 절대 버리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고도 율법을 버리지 않고 전통과 교리 속에 묶여있었다. 이것을 버리지 않으려면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말하는 바울을 없애야 자신들이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강단에서 자꾸 우리 내면을 건드리면 화도 났다가, ‘목사님이 나를 간밤에 들여다보았나, 목사님은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목사님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정확하게 제거해야 하는 목적이 있었다. 자기들의 율법, 교리, 전통을 버리지 않는 방법은 바울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볼 수 있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쪽은 유대인이었고, 바울이 죽지 않도록 보호하는 쪽은 로마 군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붙잡고 전도의 삶을 살면 하나님은 개입하신다.
바울이 이들을 향해 전도 메세지를 했다. “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리스도를 핍박하지 말고, 하나님을 대항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시고 하나님이 되셔서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의 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예수, 곧 하나님을 핍박했고, 나는 하나님을 대항한 괴수였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명확한 메세지를 던졌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도 자기 앞에서 천사와 같이 평온하게 메세지를 한 것처럼, 바울 자신도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여유 있게, 확신을 가지고 메세지를 한 것이다. 전도는 언제나 마지막 기회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세다. ‘나는 지금 마지막으로 메세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오직 복음, 구원의 길만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빠져 사망권세 잡은 사단이 지옥까지 끌고 들어가는데, 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가 우리의 주가 되면,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 힘을 가지고 사단의 일을 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이루신 복음,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날 동안 자신 안에 부패된 내면의 세계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본문의 메시지의 핵심은 “나는 사실을 말씀한다” 는 것이다. 행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큰 빛 되신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다. 요1:4 큰 빛 되신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를 보호하고 축복하신다. 이 사실을 가져라.
행22: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00야,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핍박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안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로 다 끝내야 한다. 여기에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다.
행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핍박이다.
행22: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그리스도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이 때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가 없어졌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자유가 사라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 내 맘대로 살던 자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시키기 위해서다.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사실대로 말씀하고 있다.
“나도 과거에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너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핍박하지 않는 자, 대항하지 않는 자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 영적싸움 하겠다고 하는 자들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고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 바울은 “나는 다르다”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행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과거에는 잘난 출신을 가졌던 당신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부터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핍박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당신들이나 나나 똑같았고, 열심이 있었고, 고집도 있고 교만도 했던 가말리엘 출신이고, 당신보다 더 극성스러운 사람이었다. 얼마나 극성스러웠던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쳐 넣고 사회에서도 단절시키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옥에 쳐 넣으려고 공문까지 받아서 다메섹까지 돌아다니며 예수를 핍박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다르다.” 이것이 바울의 메세지의 핵심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하나님 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를 만난 것 외에는 내게 여러분과 다른 것이 없다. 예수를 만난 사건 이후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나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은혜의 복음, 그리스도가 내 몸에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르다.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내가 존재하고,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 때문에 당신들과 똑같았던 내가 달라졌다” 고 말씀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3:12을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께 완전 포로가 되어,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이제 내게는 자유가 없다. 질병이 와도 실패가 와도 배반을 당해도 어려운 역경이 찾아와도, 먹을 것이 없어도 매를 맞아도 그리스도께 완전 포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었다. 행26:18~1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되어 이제는 어둠에서 빛으로 완전히 당신들과 다른 신분에 살게 되었다. 사단의 권세에 묶여 일평생 종노릇하며 노예로 살던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죄의 권세에게 평생 사로잡혀 종교로 하나님을 섬겼던 모든 저주와 재앙이 그리스도로 사함을 받아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무리가 되어 무한한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된 것이다.”
행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내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않겠다” 하늘에서 보이신 그리스도 이름을 절대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달라야 한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저버릴 수 없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분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이뤄놓으신 그 축복을 저버릴 수 없다.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길, 진리, 생명 되신 그 하늘의 진리를 저버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이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길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원죄로 장악되어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잘못된 기질과 습관으로 마음이 부패되어 죽음으로 끌려가야 할 인생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를 통해 육체까지도 재생산, 재창조되는 성령충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마귀의 일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항하며 교만과 열등의식, 분노, 상처, 집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면의 세계를 보고, 이것을 다스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는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로 뱀의 머리를 깨뜨려 불가항력적 그리스도의 증거가 내면에서부터 일어나게 하옵소서. 한 시대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 나를 부르셨기에 시기와 질투,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불신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 오직 복음,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전도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