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권력과 위선적
종교를 이기는 바울의 복음주의
행25:23~27
복음을 전하는 전도제자는 예, 아니오만 하면 된다. 이것으로 결단내리고 자신과 세상과 사탄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행1:8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형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마4:19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다. 요즘 비대면 예배를 통해 교회들은 재정적 위기를 맞아 교역자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한다. 거기서 현재형 증인만 살아남는 것이다. 설교를 잘하는 교역자가 되지 말고 강단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모델,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 강단의 말씀이 내 몸에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 기억된 것을 가지고 현장에 갔을 때 ‘나는 이런 응답과 성공, 승리가 있었다’ 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나는 어려서 가난의 상처 때문에 도벽이 심했고, 남이 쓰는 볼펜을 늘 가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싸움을 했을 때,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너를 보고 계신다’ 는 말씀이 믿어지고 생각이 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도벽은 끊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살아서 생각이 날 때 그 말씀은 사실적으로 성취되어져 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가? “너의 자아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고 기억에 없으면 말씀을 성취시키기보다는 시달리는 자가 된다. 교역자가 사례비 같은 문제에 갈등하고 시험든다면 교역자 자격이 없고 부교역자가 메세지를 잘하려고 애쓴다면 나중에 사기꾼이 된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천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실 것이다” 내가 전도자가 맞으면 하나님은 내게 능력을 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민에게 영접운동을 시키는 전도자가 맞으면 오는 세대와 가는 세대까지 하나님은 내게 은혜를 주신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는 자는 요19:30 모든 것을 완성시키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걸어온 수많은 여정을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끝내셨듯이, 창3장의 옛 사람의 체질을 요19:30의 죽음으로 다 끝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부활로 사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예수를 주로 인정하면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다. 성령, 그 구원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에게는 막16:19 보좌의 축복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통치하고 보호하시고 은혜와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 곳에는 우리의 임금, 심판의 주가 계신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소유하고 전도자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다. 코로나 시기에 오히려 전도가 되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시기에 조용히 사람을 만나서 말씀운동을 펴 주는 것이다. 계15장, 짐승의 표 곧 자기 육체 우상, 세상 시스템에 빠져있어 사단의 영향력에 묶여 모든 것을 놓고 쉬지 말고, 1대1로 만나면 된다.
지금은 영적 전쟁하는 시대다. 우리 몸에 각인된 옛 사람의 틀, 그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세상 시스템의 틀에 갇히면 노예로, 거지근성으로 비참하게 살아간다. 창11장 올무에 걸려들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비 진리, 살인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적인 지식이 끊어지고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하게 되고 과거를 상처로 붙잡고 오늘을 무능과 무식함으로 사는 육신의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미래는 두려움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으면 천사가 활동하고 성령께서 운행하는 귀한 생명이 된다. 시103:20~22 “그리스도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사들의 활동을 통해 여호와 그리스도 이름을 찬미하는 것이다. 버림을 받았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양자의 영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임금을 ‘아빠’ 라 부를 수 있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주셨으며,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성전 삼으시고 영원히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 내가 왜 사람을 낚지 못하고 전도 대열 속에 서지 못하는지를 진짜 알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성령의 권능을 받는 사람으로 바뀐다. ‘전도의 문을 막고 선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내 인생을 장악하고 무능과 무기력, 과거의 상처로, 지저분한 생각들로 이 세상 시스템에 길들여지게 하는 더러운 사단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히 밟힐지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바꿔주셨다고 말씀으로 증거해 주셨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앙하여 운명을 안고 살며 이 세상 수많은 가시들로 찔려 슬픔을 머금고 쟁쟁거리는 저주의 질병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 지어다!’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이다. ‘버러지 보다 못한, 쓰레기 중에도 재생산이 안 되는 나를 하나님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명령한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현장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며 비참함을 당하면서까지 전도와 선교를 위해 열심히 수익을 내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중직자들이 많다. 사람을 낚는 자들에게 천사가 수종 든다. 운명을 안고 과거의 상처 속에 쟁쟁거리는 자를 천사가 수종 드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그리스도 이름으로 현장에서 싸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수종 들게 하신다. 현장에서 응답 받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그의 나라’ 를 안다.
현장에 갈 때 ‘네 영혼이 어찌하여 낙심하며 낙망하느냐,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구원의 사역을 맡기셨다!’ 고후4:4 이 세상 신이 우리 마음을 혼미케 할 때 이 사단을 밟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그리스도 안에서 전도제자로 살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흑암 조직, 모든 세속적인 권력과 위선적 종교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고후11:14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전도하는 척, 선교하는 척, 사람 앞에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에게만 붙어서 아부를 떨고 있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너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멋진 현재형 증인이 될지어다!’ 이렇게 여호와, 싸우시는 하나님, 그리스도를 송축할 때 우리 몸이 지옥배경에서 벗어난다. 눅16:19~31 지옥 배경에 묶여있던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지옥으로 살았다.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지 않으면 구원을 받아놓고 거지로 사는 것이다. 세속적인 권력을 가지고 롬싸롱 문화에 묶여있는 부자 한 사람을 세우지 못하고 위선적 가면을 쓴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나사로는 이 땅에서 지옥배경으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에게 속는 것을 지옥배경이라고 한다. 내 몸이 지옥배경으로 있다면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는 날이 되라. 우리는 천국배경으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이라.”
그렇다면 우리는 나그네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부지런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 단톡방에 올리는 오늘의 메세지를 10명 이상에게 보낼 수 없다면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이 메세지를 받고 ‘아멘’ 으로 화답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 요5:24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롬8:1~2, 골1:13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히2:14~15 사망의 종노릇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 ‘아멘,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다. 사람 영혼에 고전3:16이 들어있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은 상태로 살 뿐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성전이 되었다면 이제 위드(with)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원네스(oneness)의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갖는 현재적 증인이 되길 원하신다.
이런 사람은 요삼1:2 하늘 보좌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는 “사랑하는 자” 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성도, 교역자가 되었으니 “사랑하는 자” 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식주인 가이오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목회자의 가슴에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몸 전체가 강건하길 원한다고 했다. 골1:18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며, 그리스도가 근본 되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만물의 으뜸이시다. 담임목사에게 주어진 이 교회 속에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사랑하는 자’ 라고 축복하면 우리의 삶이 다 달라진다.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하나님과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에 으뜸이 되면, 교회를 살리고 헌신할 때 전도와 선교이 문들은 열린다.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곳이다. 나는 이런 것에 교회와 중직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도움을 청하면 그냥 주면 된다. 있으면 있다고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된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그래서 복음으로만 “예, 아니오”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았더니 하나님이 채울 곳에 채워주시고 쓸 곳에 쓰게 하시고 도울 곳에 돕게 하셨다.
*기독교의 세계관은 하나님의 나라다.
그런데 오늘날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은 하지만 복음 전도, 선교에는 관심이 없다. 종교의 세계관은 맹목적인 것뿐이다. 그러니 분쟁과 분노를 일삼는 세계관에 교회들이 빠져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염려하는 세계관으로 바뀌어버렸다.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하나님께 구하면 모든 응답이 쏟아지는데도 교회가 지금 기도를 잃어버렸다. 그러니 종교의 세계관은 지각도 없고 평강도 없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하니까 시기와 질투, 개소리 헛소리 잡소리가 교회 전체를 장악해버리고 열등의식, 음란과 부패가 가득하며 연애당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와 간구 속에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전도의 문을 막으며 사람을 낚는 일에 무관심 하게 인생을 살게 하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이다.
창3장 근본문제가 치유되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는 자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골3:5 육체가 우상이 되어버렸고, 자기의 지체를 죽일 수가 없다. 창3장의 근본문제가 사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 영적싸움의 시대를 맞이하지 못하면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탐심, 이 우상숭배에 갇히게 된다.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에 완전 장악되어 마25:41 사단과 같이 놀게 된다. 기름이 없는 왼편에 있는 자들, 염소처럼 늘 싸움 박질 하는 체질, 뭔가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름준비하지 않는 곧 성령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여자. 이런 것을 인본주의라고 한다. 자기 감각으로, 잔머리로 생각하는 것, 이런 자들은 왼편에 있는 자들이다. 마귀와 놀았으니 나를 떠나 악령, 귀신들과 놀았던 그 곳에 같이 들어갈 것이다. 우리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나를 갱신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갱신하면 전도의 문, 승리의 문이 열린다. 빌4:13이 우리 몸에 없으면 운명으로 살고, 슬픈 원죄적 고독을 안고 살아야 한다. 남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시달리는 인생으로 전락한다. 갈2:20이 우리 몸에 살아서 작동되지 않으면, 우리 삶에 병이 와서 늘 아프고 알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고 사색에 잡힌다. 그러면 엄청난 전도의 문도 막힌다. 현재형 증인이 될 수 없다면 과거형이 되는 것이다. 무능 속에 다른 것을 하려고 하다 보니 말이 많고 생각이 많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절대적 전도제자가 되어야 한다. 창3장 근본문제를 치유하지 않으면 사단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삶에 함정과 틀, 사단의 올무에 묶어서 날개 짓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포자기, 쓸쓸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상하게 명상을 한다고 하지만 자꾸 다른 복음을 갖는 것이다. 말씀을 현재진행형으로 묵상하지 않으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이 된다. 복음을 대충, 대강, 어설프게 가지고 말장난하는 것뿐이다. 결국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복음이 무엇인가?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이다. 뱀은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놈이 나의 잠재의식, 무의식 속에 들어간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생각들, 높아진 것, 교만한 것, 내가 가진 수많은 생각을 사로잡아 즉각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면 죄와 사망, 지옥권세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요19:30 예수님은 공생애를 십자가 죽음으로 마감하셨다. 갈2:20로 자신을 마감하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제자가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현재 진행이라고 아는 자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과 영적싸움 하는 것을 쉬지 않는다. 그러면 오순절이 임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몸에 임하면 행2:36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그 예수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가? ‘내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 죄의 권세, 사망권세, 지옥권세에서 벗어나도록 그리스도를 내게 주신 것이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는 권능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행2:38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예수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다. 왕, 제사장, 선지자, 그 삼중직의 권세를 가지신 분, 죄와 사망, 지옥권세를 멸하시려고 권능을 주셨고, 사람을 낚지 못하게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도록 성삼위 하나님의 영, 성령,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롬16:20 “사단을 너희 발 아래 상하게 하시리라” 이것이 저절로 되어 진다. 이런 자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어 신분과 권세 하늘 보좌의 배경과 천사의 배경을 가지고 이 세상 누림 속에 사는 것이다. 우리 몸속에 누림의 정도가 얼마나 나오는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 하늘 보좌의 배경, 천군천사의 그 배경, 영적지식이 어느 정도 몸에 있는가? 우리 몸에 누림의 정도가 하나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와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전도제자다. 이런 사람은 산업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하신다’ 는 것을 정말 믿는다. 되어 질 수 밖에 없는 무한한 지혜를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누림이 없다면 이것은 심각한 재앙이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우리의 배경은 영적 여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만 하면 하나님은 모든 문을 여신다. 우리는 이미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기에 일어나 빛을 발하기만 하면 열방의 재물이, 열방의 아들, 딸들이 모이게 된다. 사60:20~22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영적배경의 여정 속에 겁날 것이 없는 누림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지은 죄가 없음에도 죄 없이 고난을 당할 수 있다. 마귀, 악령, 귀신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 속에 응답을 보고 갱신을 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더 큰 은혜를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업그레이드되고 막판 뒤집기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고난 앞에 답답해 할 필요가 없다. 죄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마귀의 일을 멸해봐라.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인데, 기가 죽고 꺾이고 슬프고 연약해지고 짜증낸다면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라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
고난이 오면 마귀의 일을 멸하고 갱신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의 정도를 계속 일으켜라. 사단의 함정에 빠지고 사단의 틀과 올무에 묶여 걸려들면 무엇이든지 세상의 것을 기억하려고 하고, 또 그 기억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거짓말 한 것을 또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지면서 정신문제가 온다. 우리는 모든 문제 끝, 복음으로만 예, 아니오 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자들이 왜 수많은 것을 채우고 기억하려고 하는가. 다 잊어버려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우리는 왜 그렇게 싸우고 열등의식 속에 분냄과 혈기를 가지고 감정조절도 못하고 사는가? 사단에게 잡혔기 때문이다.
옛 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된다. 고후5:17 이전 것이 지나가야 새 것이 된다. 롬16:25 영세 전에 감추어진 이 복음의 스토리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엡1:4이 나의 것이 되면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는 고백이 나온다. 엡1:5 그리스도를 1인칭 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의 스토리가 찬송과 기쁨, 감사로 나오는 것이다. 상대방의 원망 불평하는 모습을 보고도 ‘하나님이 나와 똑같은 사람을 내게 붙이셨구나’ 하고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과 영적싸움을 하면 상대방에게 변화의 시간이 온다. 우리는 현재적 삶에 복음의 스토리가 나타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에 제자가 없다면 어설픈 인생이 된다. 예수사랑교회는 아무나 오는 교회가 아니다. 자신과 세상, 사탄과 영적싸움의 비밀을 알려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아니면 올 수가 없다. 우리교회 왔다간 사람들은 끝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음에도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종교에 길들여졌던 체질에서 벗어나라고 마지막으로 예수사랑교회를 보내셨는데 그것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자들을 보면 그 집안,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것은 하나님이 농담으로 하신 것이 아니다. 수 천 년의 역사를 통해 지금도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지 못하고 갖지 못하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
그래서 교회 행정도 언제든지 전도와 선교로 방향을 틀고 중직자들도 무엇을 따지려고 하지 말고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교역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 교역자가 매일 캠프를 간다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제일 행복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이 결박되고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가 사단의 손에서 풀림을 받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3:15 복음, 이 언약에 대한 전문성, 스토리가 있다. 고전9:27, 고전15:30의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교만할 이유도 없다. 고전15:31 “…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것이 되면 마16:23 사단의 일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사단에게 영향 받지 않는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지 않을 때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않는 자다. 날마다 나를 쳐서 죽이면 전도 제자의 자세가 나온다. 하나님의 절대 복음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노예, 속국, 포로로 사단에게 장악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도제자의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집안은 전쟁으로 돌입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도제자의 자세를 갖추고 현장에서 응답 받지 못하면 집안 전체에 기근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 뿐 아니라 내가 사람에게 전도하지 못하면 사람과의 관계가 어설퍼지는 것을 알았다. 마24:14~23 우리 몸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미혹되지 않는다. 그래서 설교를 잘 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쇼 할 필요도 없고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전도제자로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그리스도를 가지면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 자가 된다.
사단의 정체는 ‘거짓의 아비, 공중권세 잡은 자, 세상 임금, 성도의 대적자, 악령의 졸개를 가지고 미혹의 영으로 귀신들을 활동하게 하는 자,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자,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놈’이다. 엡6:13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셨다. 또, 이 놈은 우리에게 돌덩이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며,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고 끊임없이 미혹하고 유혹한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원수 맺는 일을 하라고 끊임없이 틈을 타고 들어오고, 죄책감과 죄의식, 죄의 권세로 살아가게 하며 불신앙으로 죄를 짓게 만든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만왕의 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염려 가운데 늘 사로잡아간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근심으로 장악하여 종교생활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명령해라. 그러면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현실적 고난 속에 조금도 조급하거나 답답해하지 마라. 깨끗하게, 티 없이 밝고 맑고 깊고 높은, 그래서 의미 있는 그리스도인, 명품의 사람이 되라.
요1:12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가 아니라 영접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엄청난 권세를 갖게 되었다.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고, 막10:45 죄와 사망, 지옥권세를 멸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었으며, 요14:6 하나님 만나는 권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는 롬5:6,8,10 말씀이 우리 몸에 살아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러면 롬8:17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 가 되고, 막3:15, 눅10:19, 마10:1, 눅13:18 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몸에 죽음의 공포, 질병의 두려움, 육체의 연약함이 와도 언제나 권세를 누리는 기도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시작하면 된다.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여 내 몸 속에 똬리를 튼 불신앙, 귀신을 반드시 내어 쫓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고 육신적 이익에 따라 인생을 살게 만드는 더러운 귀신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바울은 자기 몸에서 얼마나 그 귀신을 내어 쫓았는지 행16:18에 선포했다. 예수가 우리의 하나님, 구원자라고 소리치고, 바울을 전도자라고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의 이익에 따라 점을 쳐주는 귀신들린 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그 귀신들린 계집종을 꾸짖었다는 것은 바울이 먼저 자신 속에 있는 사단을 보고 자신에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시여” 외치지만 내면은 바꾸지 않고 부르게만 한다. 그래서 변화 없는 갱신, 회개가 없는 거듭남은 귀신들린 자다. 구원이 무엇인가? 거룩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거룩한 생명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구별된 능력, 구별된 생명, 구별된 구원이 있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 사람 속에서 나가라” 할 때 귀신이 즉시 나왔다. ‘먹기만 좋아하는 똥돼지 귀신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나가라’ 하면 똥배도 꺼진다. 자꾸 이것저것 염려에 잡히지 말고 맛있게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영적싸움 잘하면 복음주의가 된다. 내 몸에 복음이 없으면 분열과 분쟁을 일으키고 막말을 하고 감정 조절도 안 되고 심지어 담임 목사님에게도 욕을 하는 사람이 된다. 목사를 다스리고 심판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꾸 목사에 대해서 말을 하면 자녀들이 그것을 듣게 되고 교회에 불신앙이 오고 강단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 그러면 가정과 개인에게 구원이 끊어지고 인간관계는 더 슬퍼진다. 목사는 기름부은 하나님의 종,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움직여 가시기 때문에 성도는 언제든지 강단 말씀을 응답으로 받으면 된다.
*본문에 죄목이 없는 바울을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려고 몸부림치는 세속적인 권력, 위선적 종교를 들여다볼 수 있다.
세속적인 권력과 위선적 종교에 잡힌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첫 번째 부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전부 시기와 질투, 감정조절이 안되고, 열등의식에 빠져 남의 말만 하는 자들이다. 바울을 증오하는 믿음으로 꽉 차서 점점 사이코패스들이 되어있는 종교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증오심에 불붙어 권력과 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감정 하나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죄목을 만들어서라도 바울을 찢어 죽이자는 것이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을 계속 충동질한다. 왜 그렇게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가? 심판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다시 오신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지어놓은 교회당의 성전세를 받아야 하는데, 부활의 주가 다시 오신다고 하니 성전세를 사람들이 내지 않을 것이고, 또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난다는 이런 잘못된 생각, 증오를 마귀가 집어넣었다. 한국 기독교가 성령도 없는 교수들에 의해 복음을 말하는 목사를 이단이라고 누명을 씌울 때 나는 이미 한국교회는 끝났다고 예언했다. 전도자들에게 누명을 씌어 죽이려고 한다면 복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가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를 따라간 것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나에게 주셨다. 신학자들은 자신의 정신문제로 하나님에 대해 공부해보겠다고 해서 교수가 된 것이다. 그런 자들은 마귀가 없다고 한다. 마귀가 없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왜 구원자로 오시고, 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그리스도 그 이름을 남겨주셨는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하라는 것이 왜 나쁜가? ‘사단 배상설’ 이라며 사단에게 왜 모든 핑계를 대냐고 따지지만, 창3장에 성경은 분명 사단을 폭로했고 하나님은 사단에게 모든 책임을 대라고 분명 말씀하셨다. 멸망의 자식들이 가진 생각은 증오심과 시기, 질투, 욕망 이런 것 뿐이다. 그래서 분노 속에 감정조절이 안되어 살인과 미움으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이 살인이다. 우리는 나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버리면 끝난다. 나를 쳐서 죽이면 집안에 평화가 시작되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면 자녀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내 기준대로, 내 주장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다.
두번째 부류는 로마 총독, 큰 권세를 가진 자 베스도다. 바울을 아무리 털어도 죄목을 찾지 못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녀들까지 털어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쟁이 정치꾼에 속아서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온갖 거짓말과 유언비어에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은 속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정치적 목사에게 속지 말고 그리스도를 붙잡는 전도제자가 되어야 한다. 권력자와 언론인이 죄목을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가이사 황제 앞에 보내야 하는데, 죄목도 없이 바울을 보내면 자신의 무능이 탈로나기 때문이다.
세번째 아그립바 왕이 나온다. 그는 유대왕, 허깨비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나라도 팔아먹고 나라도 없는 자가 유대 왕이라 폼을 잡고 있다. 그리고 실상은 남매지간인 그의 부인은 왕후 행세를 한다. 방청석에 앉은 유대 구경꾼들, 고소한 사람들, 세속적 권력으로 무장된 거짓말쟁이들로 가득한 현장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위선적 가면의 왕관을 쓴 종교인들, 유대인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행1:8 현재적 증인으로서 속쓰림이 있고, 돌아버릴 수밖에 없는 이런 현장에서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다. 죄수복을 입고 묶인 몸으로도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서 있었다. 우리는 ‘누가 나에게 달콤한 말을 해줄까, 목사님은 어떤 정치적 성향의 길을 갈까’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라.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현재적 응답으로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죄수의 몸으로, 내세울 것 없는 용모에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조금 고급스러운 곳에 가서 밥만 먹어도 복음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문을 통해 어떤 상황에도 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말하는 전도자로 결단해야 할 것이다.
바울의 외모는 초라했지만 영적으로는 높은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현장 속에서 행사하며 그 구원과 생명, 권능의 능력을 마음껏 전하는 것이다.
행25:24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자들이 바울을 “살려두지 말아야 할 사람” 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자들 앞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다.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장악하여 복음을 전하는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하고 이유 없는 고난의 문제를 만들려고 한다.
행25:25 “내가 살펴보니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다” 복음을 가지면 영적인 눈이 열린다. 요16:8~11 성령,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을 받은 사람은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된다. 성령의 사람은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문제를 다 끝내버린다. 이것을 복음주의라고 한다. 오늘 여러분에게 큰 은혜와 축복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있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밟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시고 완성케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제는 죄의 권세, 사망 권세, 지옥 권세를 꺾으신 그리스도가 바로 성령의 구원 역사를 이루신다라는 사실을 알았사오니,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좌의 축복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은 영적 전쟁 시대가 도래했다라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사오니, 세속적 권력 위선적 종교 사상 그 거짓말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복음주의자가 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우리 내면을 공격하여 사단의 함정과 세상의 틀과 세상의 시스템 그 올무에 장악되게 만들고 우리를 미혹하게 만드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이제는 요한복음 1장 12절 그리스도를 인하여 영접되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권세 신분이 날마다 살아 역사하여 주옵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든 낙심과 절망하지 않게 하시며, 그리스도인으로 당하는 현실적 고난이 바로 영적 싸움임을 참으로 영적인 눈을 뜨고 이제는 원수들을 제어하는 능력을 그 권세를 사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복음 전도자 바울을 고발한 유대 사람들처럼, 베스도 총독처럼, 또 아그립바왕처럼, 버니게 여왕처럼, 구경꾼들처럼, 마음 속에 이미 악이 있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악들을 뽑아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이 시간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을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세속적인 권력과 위선적 종교를 이기는 복음주의자들이 되어 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를 축복해 주옵소서. 오직 우리들은 너희는 나를 따라 오너라 그리하면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라는 그 언약의 말씀을 사실적으로 붙잡고, 이번 구정 기간에 모든 가족들과 가문을 살리는 전도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사탄이 주는 함정과 틀, 올무를 몰라 상처와 온갖 정신문제 속에 무능으로 오늘을 허비하고 미래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육체의 우상 하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세속적이고 위선적 가면을 쓴 종교지도자들의 설교에 길들여져 이 땅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인생에서 빠져나와 예수사랑교회 흐르는 강단의 말씀을 내 몸에 담고 지금도 현재적으로 역사하시는 말씀 속에 응답과 성공, 승리를 고백하는 복음주의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적 전쟁의 시대에, 하나님은 영적 싸움하는 자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보고 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심을 믿고, 지금도 진행되는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을 잡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접운동 속에 나에게 맡기신 구원의 사역을 이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언제든지 말씀을 현재 진행형으로 받아 하나님의 일을 거부하고 말씀에 불신앙하는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어떤 고난에도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맞추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리며 전도제자의 자세를 갖춰 내 삶에 제자가 일어나는 복음의 스토리가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