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야곱이 누린 만남의 축복"
(창/创 29:1-20)
야곱이 누린 만남의 축복은 ‘변화를 받으라’ 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야곱은 복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 몸에 원죄로 와 있는 거짓말쟁이의 영이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았다. 거짓말쟁이가 자기 몸을 끊임없이 연결시켜 놓고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래서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고생했다. 사람이 거짓말에 매이면 사람과 자꾸 결합되어 세상에 구속된다. 그래서 뱀 머리를 깨뜨리는 의무를 자꾸 잃어버린다. 벧엘도 세워놓고, 하늘 문이 열리는 것도 알았고, 인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꿈을 통해 체험했지만, 내 몸이 거짓말쟁이에 묶이면 영적싸움의 의무를 잃어버리고 자꾸 딴 짓을 하며, 창3:15,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상황이 온다.
라헬을 끌어안고 입 맞추며 울어야 할 시간표가 아닌데 또 한 번 연출을 한다. 라헬과 입 맞추고 끌어안고 울어준 그 대가로 7년 동안 노동의 의무를 져야 했다. 야곱이 ‘하나님이 라헬을 나에게 부인으로 주셨구나’ 하고 엄청난 착각을 일으켰다. 라헬 또한 언니가 있는데도 야곱을 들여다보는 눈빛이 달랐다. 두 사람의 관계가 멋있어 보였지만 이곳에는 엄청난 불신앙과 인본주의가 있다. 그래서 야곱에게 노예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의 권세, 사망권세로 우리 영혼에 엄청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다가 사람에게 유익을 얻고자 하고 실수를 범하게 된다.
*창3:15흐름의 시작이 바로 엡6:18이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깨어 구하는 이 비밀부터 찾아내야 한다.
기도에 힘쓰는 비밀을 소유하지 못하면 엡6:16, 불붙은 화전이 내 심장을 찔러 자꾸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는, 힘쓰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싸움하는 의무를 주셨는데, 이것을 자꾸 거부하 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야곱이 모든 것을 기도로 바꾸는 체질이 안 되기 때문에 순간순간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스토리를 성경은 기록했다.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왜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는가? 모든 것을 기도로 바꾸는 힘을 발휘하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 여정에 다양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힘을 가지라는 것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가장 뛰어넘어야 할 학업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에게 찾아온 상황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데, 이 힘이 없으면 학교생활이 안 되고 학교를 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받아놓고도 거짓말쟁이에 묶여 딴 길을 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와 연관되어야 하는데, 늘 사탄에게 불화살을 맞은 육신의 생각으로 결단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쁜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영적싸움의 의무를 저버리면 창3장, 영적인 불신앙의 질병이 계속 우리 몸에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정신의 문제가 되든지, 바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육신의 질병으로 크게 시달리는 인생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힘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힘을 받기 위해 ‘오로지’ 기도 속에 한 번 있어보면, 위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되어지는 축복이 시작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어떤 상황에도 그리스도는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 이 비밀을 야곱이 알았다면 라헬과 입맞추고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그런 감정 따위의 일은 필요 없었다. 하나님의 진짜 깊은 섭리를 봐야 하는데, 미래를 보지 못하니까 그냥 라헬을 끌어안아버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상형이라는 것에 걸려들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이상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갈팡질팡 하며 헤어질까 말까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택했다면 그냥 붙어있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도 속에 있으면 해결된다. 시28:1~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절대 내게 잠잠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끌어내신 분은 어떤 상황에도 언제나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이것을 믿으면 상황 속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만 오면 거짓말인 내가 호들갑을 떤다. 거짓말쟁이인 내가 사람과 연결을 시켜서 그 관계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잔머리만 쓴다. 끊임없이 사람과 결합되어 인간관계 속에 서로 구속되고 원수덩어리가 되어 불편한 관계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가다가 고독사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내 영혼 깊숙한 곳에 지성소로 항상 함께 하시는 그분의 이름, “예수는 그리스도”를 불러야 한다. 그러면 위에서 내린 그 하나님의 힘이 내 안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엄청난 지성소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그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자기 아들을 버리고 우리를 선택하여 우리의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지성소, 벧엘을 만드셨다. 어떤 분이 진솔하게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그 모든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에게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을 가졌다면, 엄청난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가졌다면 당신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말해줬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오늘날 왜 자기 욕심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가? 사탄이 심어놓은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비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는 지성소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평안해야 한다.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삼촌이 평안하냐, 너희도 평안할지어다” 말은 했지만 사실 자신은 시달리고 있었다. 오늘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믿는 자가 아니라 어설픈 자가 된다.
그러면 믿는 자는 누구인가? 자기 몸을 산제사로 지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구약에는 양을 자기 대신 제물로 드렸고, 신약은 내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해결하셨다. 이제, 그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내 몸에 지니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전리품을 취하지도 않고 오히려 멜기세덱에게 십의 일을 제물로 드렸다. ‘내가 죽어야 하는 엄청난 저주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셨으니, 내 인생 여정 속에 예배 할 때마다 나는 십의 일을 드려야겠다.’ 내 마음이 하나님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이것이 십일조다. 야곱도 드리겠다고 서원은 했는데, 다 떼먹고 말년에 1,2,3차 에서에게 자기 재산을 보내면서 깨닫고, 브니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마5장 팔복을 소유한 자들이다. 마6장, 이제는 주기도문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하나님이 내 생명 대신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고, 나와 같은 자를 구원시키기 위해 나를 부르셨으니 내가 거기에 응답합니다.’ 이것이 헌금이다.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늘에 쌓아두면 사탄이 틈타고 들어오지 않는다. 사탄은 우리가 거짓말로 살 때 틈타고 들어온다. 제일 무서운 거짓말이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다른 사람에게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보물이 무엇인가? 아파트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보물이 땅에 있다면 땅의 것만 생각하게 된다. 자식이 우리의 보물이라면 자식이 우상이 된다. 아파는 사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교회 근처에 있으면서 제자 키우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네 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셨기 때문에 벧엘의 축복을 받고 싶다면 예수사랑교회에 마음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가 하고 있는 어린이 뜰, 기도의 뜰, 이방의 뜰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고생하지 않는다.
야곱은 서원은 많이 하는데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생하는 인생이 되었다. 미국의 홈런왕이었던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에게 어떻게 하면 홈런을 잘 칠 수 있냐고 묻자, “방망이를 휘두르면 된다” 고 말했다. 휘두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홍해 앞에 세우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들통 났다.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며, 원망, 불평을 했다. 극한 상황에 누가 함께 계시는지, 출애굽을 일으키신 분이 어디 계시는지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 하나님을 우리는 정말 믿고 있는가? 정말 믿는다면 홍해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발을 내디뎌야 하지 않는가? 들어가 보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고 ‘하나님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한다면 심각한 정신병이다. ‘출애굽을 하신 하나님은 홍해도 가르실 수 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창조주, 나의 아빠다!’ 이것을 믿으면 우리는 엄청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야곱은 믿음이 아닌 인본주의를 썼다. 자기 계산적인 사람으로 전락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고생을 한다. 사람들은 자꾸 왜 나 같은 사람에게 홍해가 갈라지지 않냐고 하는데, 홍해는 한 번 갈라졌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강에 가서 한강을 갈라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다리가 다 놓여 있다. 장난삼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왜 지성소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는가? 어떤 극한 상황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 인본주의, 불신앙을 쓰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이 좋은 복음을 가지고 실컷 전도해놓고 사람을 다른 길로 끌고 가지 않는가? 멸망의 길, 저주 받는 길로 인도하면 되겠는가? 이 좋은 복음으로 전도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벧엘에 붙어있겠다 하고 돌베개를 베고 자는 것이 낫다. 사탄이 심어놓은 거짓말로 인해 두려움 속에 죄의 권세가 온 몸을 덮어버리니까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데도 쓸데없이 조급해서 라헬을 만나 7년 도장을 찍어버렸다.
*하나님은 야곱의 부인을 라헬이 아닌 레아로 부르셨다.
모든 성경 주석가들은 라헬이 부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부인은 연약하고 사시가 된 레아다. 라헬은 아리따웠지만 늘 부적을 가지고 다녔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잉태하지 못하도록 그를 격동케 하셨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레아가 낳은 아들 중에 유다가 나왔고, 레위 지파가 나왔다. 라헬이 낳은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 둘 뿐이었다. 요셉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한이 생겼다. ‘언약이 없으면 우리 어머니처럼 살다가 죽는구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어머니는 언약이 없어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3:15의 흐름의 믿음이 바로 우리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창3:15, 이 흐름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인도와 응답이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의 수많은 엘리트들은 하나같이 네피림의 힘을 가지고 몸부림친다. 모든 사람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네피림의 영향을 받아 상태가 이상해졌다. 네피림의 영향 속에 갇힌 사람이 바로 이스마엘, 에서였다. 이스마엘은 순식간에 지역을 장악하고 국가를 세울 정도의 엘리트였고, 뱃속에서부터 행동이 달랐던 에서도 스스로 사냥하고 말도 멋있게 탈만큼 멋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몸부림치는 인생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70%가 몸부림을 치고, 나머지 29.95%의 사람들은 전부 틀린 하나님을 믿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 예수사랑교회는 창3:15의 흐름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다가 다 포기한다. 홍해가 갈라지지 않고 출애굽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구름 기둥, 불기둥의 역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물끄러미 침묵 속에서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 분 앞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7초의 기적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지막하게 하나님 앞에서 읊조려봐라.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안 되는 삶으로 자꾸 빠져 들어간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삶으로 늘 시달린다.
본문은, 야곱이 영적인 단계 속에 들어가도록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영적싸움을 체질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야곱을 훈련 속에 이끌고 계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준 언약이 창12:1~3이었다. “너는 반드시 본향을 떠난 나그네의 삶을 살아라. 이 땅의 소유주가 되지 마라.”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밀이다. 하나님이 보여줄 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전부 이 땅의 소유주로 살고 싶어 한다. 이 땅의 소유주로 살지 말라 하시면서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세계복음화라는 원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주시고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리고 아브라함을 만나는 사람들,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신다고 약속 하셨다. 창3:15 그 흐름의 시작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복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창3:15, 이 흐름의 시작에 있다면 그분이 보여줄 땅을 봐야 한다. 창3:15 그리스도 그 흐름의 시작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자가 되는 것이다. 창3:15 흐름의 시작 속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불가항력적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어디서든지 지키고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분 나쁜 사람을 향해 자기 힘으로 싸우려고 하고 사람 하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 몸에 거짓말쟁이가 자신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도자가 아니다.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창3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야곱은 7년의 세월을 살면서 레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라반 삼촌이 자기 방에 레아를 들여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순종하고 아내를 맞이한 것이다. 우리 몸속에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를 지니고 있다면, 그분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분의 섭리 속에 순복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이런 말을 하면 엄청 시비를 건다. 그들은 창3:15의 흐름에서 시작하지 않고, 원죄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냥 어느 날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교, 공자 사상, 불교 위에, 아니면 한국의 샤머니즘, 미신사상에서 하나님을 그냥 믿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사상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려고 하니까 늘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신학체제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 교리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알고, 이삭과 야곱을 들여다보면서 이 본문을 보면 정말 창3:15의 흐름의 시작이라는 말을 믿게 될 것이다.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3:15의 흐름의 목표가 무엇인가? 번제다. ‘아, 창3:15 여자의 후손, 숫양, 메시아,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졌구나’ 그래서 양의 울음만 들어도 “예수는 그리스도” 양이 눈에만 보여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절대적 신앙을 가졌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다 받은, 멋있는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말년에 영적싸움의 의무를 순간 놓쳤더니, 눈이 멀어 에서를 장자로 선택하려고 하다가 가정에 풍비박산이 일어난 것이다.
창3:15의 목표가 도달한 곳이 롬16:25~26이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 있어도 이 복음이 우리를 견고케 하신다. “창3:15, 이 복음,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이 흐름을 타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엉망이 된다.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영적싸움하는 의무를 절대 우리 기억에서 지우면 안 된다.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이 사람이 행1:8 땅 끝까지 이르러 세계화, 복음화 할 수 있다. 창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항상 너를 위해 네 안에 지성소를 만들라고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케 하는 지성소를 만들라는 것이다. 영적싸움하는 의무를 저버리면, 배은망덕하고 교만하고 눈빛도 비열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거짓말쟁이들의 통로가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끊임없이 생각과 현상과 연관 짓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리스도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지 말고 창3:15 흐름의 시작 속에 있기를 축복한다. 창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는 방주 짓는 결단, 행동을 시작했다. 믿음은 행동이다. 기도도 안하고 무기력한 상태 속에서 입만 움직이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생만 한다.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이렇게 멋있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 인생에 만남의 축복 속에 이런 증거가 일어나길 축복한다.
창14:14~20 아브라함은 가병 318명을 데리고 전쟁 속에 엄청난 승리를 체험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모든 전리품을 다 내놓았다. 그리고 이방 왕이 전 재산을 줄 테니 동맹을 맺자고 하는데도 실오라기 하나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불신자들이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싸우는 곳에, 머무르는 곳에 단을 쌓고 자신이 번제가 되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도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런 아브라함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하나님이 급속히 내려오셔서 멜기세덱이 되어주셔서 떡과 포도주를 내놓게 하셨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 잊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다. 그런데 야곱은 서원만 했다. 14년 떼어먹고, 20년 종살이했다. 이것부터 깨뜨려야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된다. 이것 하나도 못하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이 중요한 흐름을 훗날 야곱이 발견했다. 이삭은 당연히 아브라함의 비밀을 발견했기 때문에 100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하지 않았다. 돌베개 위에 기름을 붓고 뱀 대가리를 깨뜨리겠다고 했지만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살 뿐이었다. 그래서 고생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야곱은 자범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았다. 메시아,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훗날 진짜 하나님을 체험하고 마지막까지 지팡이를 부여잡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세상을 떠났다.
*창3:15 흐름의 시작과 목표가 분명하다면 하나님을 웃게 하는 분명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아리땁고 멋있다고 생각했던 라헬, 매력이 넘치는 여인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이 여자도 독사의 갈퀴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벧엘의 예배와 기도는 하늘 문이 열리는 엄청난 보좌화였다. 보좌화 된 것을 보았고, 그곳에서 인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면, 창3:15 흐름의 시작과 목표가 분명했다면 요6:29의 행동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데 야곱이 이것을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만 살았다. 자기 몸에 거짓말쟁이가 묶고 있어서 자신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직 야곱 자신을 위해 살다가 20년 고생한 것이다.
창29: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기름을 붓고 ‘내가 벧엘로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평강 가운데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면 내가 드리겠습니다’ 예배 하겠다, 십일조 드리겠다, 하나님을 높이겠다, 영광을 돌리겠다 하고 출발을 했다. 광야를 멋있게 출발한 것이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양떼를 몰고 오는 것을 보았다. 라반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야곱은 양떼를 모는 하란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쓸데없는 상관을 했기 때문이다. 왜 너희들이 양떼에게 풀을 뜯어 먹게 하지 않냐, 양을 돌보지 않고 물을 먹이지 않냐 는 등, 상태가 이상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상태다.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객지에서 온 촌놈, 두려워서 떨고 있는 놈이 남의 일에 상관을 한다. 그러니까 양떼를 치던 목자들이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데, 라반의 명성이 있으니 쉽게 죽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돌을 옮겨주면 좋았을 텐데, 라반의 딸이 양떼를 몰고 오니까 라헬 앞에서 폼을 잡기 위해 그제 서야 돌을 옮겨줬다. 목자들이 죽이려고 했다가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하니까 그냥 두고 간 것이다.
사람들은 라헬이 야곱의 아내 될 사람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레아였다. 사람이 선택을 하면 이혼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무리 선택을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 속에 있으면 갈라지지 않는다. 벧엘의 예배와 기도는 엄청난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보좌화 된 일, 세계화, 복음화가 이뤄지는 일이었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사람들은 이렇게 지식으로 알고, 체험을 해놓고도 문제만 오면 ‘내가’ 튀어나온다. 이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겨우 밥 좀 먹고 전문성만 생기면 직장 잡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사고 터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지성소를 찾아내야 한다. 창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하늘의 전, 하나님의 문이라고 고백은 다 한다. ‘예수사랑교회는 이 시대 마지막 교회, 하나 밖에 없는 교회, 내가 섬길 교회,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 예수사랑교회와 만남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다가 어느 날 먹을 것이 조금만 생겨도 사라진다. 아니면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려고 다른 곳에 갔다가 망해서 10년 만에 돌아온다.
창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삼중직의 역사는 그리스도다!’ 하며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심도 고백했다.
창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여기가 벧엘, 하나님이 집이다 하며 이름도 바꿔버린다.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런데 물질에 대해서는 굉장히 잔머리를 돌렸다. 하나님을 웃게 하는 야곱이다.
하나님을 더 기쁘게, 더 영광이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몽땅 모아놓았다가 이제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다음 후대를 위해, 성전건축을 위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이런 날이 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야곱은 모든 것을 뚫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선포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재산을 모으면 반드시 할 것입니다.’ 고백했다. 그래서 20년을 어떤 상황에도 병도 없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되었다. 서원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이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뚫는 비밀이다.
극한 상황에서 힘이 든다면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하면 된다. 그러면 죽지 않는다. 그런데 서원기도 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다. 말씀에 결단하여 즉각 행동하는 것이다.
창29: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자기가 목자도 아니면서 주인인 것처럼 상관까지 한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사이코로 보는 것이다.
창29: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목자들이 때를 알고 왔는데 왜 객지에서 온 놈이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하냐하며 칼을 갈고 있다.
창29: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천만다행으로 라반이 오고 있었었다.
창29: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의 눈치가 천단이다.
창29:11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물을 계속 먹이면서 ‘이제 나의 이 헌신을 라헬이 알았을 거야. 이 오빠가 이렇게 멋있는 남자라는 것을…….’ 그렇게 눈빛을 보내고 눈이 맞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맞추고 소리를 내어 울었다.
창29: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드디어 첫 사람을 체험한 라헬이 얼마나 마음에 심장이 뛰었더니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연애함으로 7년을 봉사하게 되었다. 창3:15에 있는 자는 다양한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래서 영적싸움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비밀이다. 그런데 이 비밀이 너무 멀어져버렸다. 라헬을 자기와 결혼할 여자로 봤기 때문에, 이상형으로 봤기 때문에 문제가 왔다.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결혼 대상자로 본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 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복음을 전달하는 관계로 시작해야 하는데, 나의 부인으로 나의 아내로 삼으려고 하는 만남 속에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감성적이고 순간적인 것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개인의 감격 속에만 도취되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의 기대를 넘어 라반의 속임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창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에게 사자 발톱처럼 날카로운 여인과 라반으로 인해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라헬이 그렇게 악랄하게 자기 언니를 괴롭혀도 레아는 끄덕거리지 않았다. 그래서 레아의 배에서 유다 홀이 나왔다. 메시아가 나올 홀, 그리스도가 그 배에서 나오게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라헬에게 복음을 설명했지만, 레아는 받아들이고 라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헬은 자기 스스로 너무 똑똑하고 잘난 여자였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복음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레아는 무엇을 보려고 해도 눈에 초점이 맞지 않으니까 야곱의 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야곱의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야곱도 사실은 ‘레아가 복음을 잘 듣는 여자구나.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하는 참 사랑스러운 여자구나’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라반이 레아를 방에 넣은 것이다. 거기서 유대가 탄생하고 드디어 제사장이 탄생할 자식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런 사건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운명을 바꾸라는 뜻이다. 옛 사람의 운명을 바꿔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각인, 뿌리, 체질화 되면 반석이 된다. 천국의 열쇠를 소유한 자가 되고 마스터키를 가지고 세계화, 복음화 될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영적상태를 바꿔야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하나님을 웃게 만든 야곱. 야곱은 기도의 사람으로 축복덩어리가 되고, 하나님을 향해 경배하는 증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여러 사건을 통해 야곱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의 거듭남, 변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창3:15 그 흐름의 시작과 목표를 알고 마음껏 만남의 축복 속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만남의 축복을 통하여 날마다 우리에게 영적 싸움하는 의무를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영적 싸움하는 전사들이 될 수 있도록 매력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창세기 3장 영적 문제로 우리가 걸려들어 거짓말쟁이가 우리 몸에 묶여있음을 인정하고 오늘부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의 흐름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 흐름의 시작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요, 모든 것을 기도로 바꾸는 체질이 되기를 원하오니, 이 시간 우리들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해주옵소서.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을 주셨사오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도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하실 것을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어려움과 학업과 질병, 이런 여러 가지의 문제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응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위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힘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시며, 하나님이 주신 처음의 복음을 기억하고 이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해줘야되겠다는 절대적 사명이 우리 영혼 속에 솟구치게 하옵소서. 이제는 위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힘이 내 안에 지성소로 와있음을 인정하고, 보좌의 축복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생명들이 되게 하옵시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사용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창세기 3장 15절의 흐름 속에서 그 목표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모든 주의 백성들이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에 발견되지 않은 영적인 문제들까지 치유 받는 한주가 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불신앙, 인본주의와 육신의 생각으로 끊임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만드는 모든 거짓말쟁이의 흑암들이 한 주간 그리스도 이름으로 꺾이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무시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웃게 만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을 떠난 죄의 권세로 인해 사망권세에 잡혀 영혼에 심겨진 두려움으로 인해 내 유익만을 위해 사람을 의지하여 반복적인 실수 속에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의, 창세기 3장 15절의 흐름 속에 나를 해방시키는 지성소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문제 앞에서 내 몸에 원죄로 와 있는 거짓말의 영에 묶여 호들갑떨며 불신앙과 인본주의로 사는 삶을 끊어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영적싸움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어, 어떤 상황에도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하실 기적을 보게 하옵소서. 한 주간,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를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여 말씀에 결단하고 어린이의 뜰, 이방의 뜰, 기도의 뜰을 위해 움직이는 예수사랑교회에 헌신하며 행동하는 믿음으로 운명이 바뀌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