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누린 약속의 땅, 벧엘의 축복"
(창/创 28:10-22)
야곱이 누린 약속의 땅, 벧엘의 축복을 우리도 누리는 사람이 되어, 많은 응답을 받기를 축복한다. 야곱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인해 부모와 형제를 등지고, 외롭고 두려운 길을 떠나게 되었다. 오직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 하나만 부르며 가는 여정이었다. 미지의 땅, 광야를 거쳐야 하는 무시무시한 현장을 홀로 걷게 되었다. 지친 나머지 돌 하나를 취하여 돌을 베고 깊은 잠든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야곱은 리브가 어머니가 들려준 언약 하나를 가슴에 새겼다.‘메시아, 그리스도는 네 인생 여정에 마스터키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마스터키를 체험하러 떠난 것이었다. 결국 야곱의 성공 스토리, 리브가의 성공 스토리는 후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리브가의 손자 요셉은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이 되었다. 야곱이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마스터키, 그리스도 이름 하나를 던져주었는데, 그 이름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다. 하나님이 주신 마스터키를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마스터키를 가지고 이기주의로 살아간다. 그러니 사탄의 유혹을 받을 뿐, 응답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가 머무르는 모든 곳은 벧엘이 된다. 우리 예수님도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속에 들어가면 내가 출입하는 모든 문을 마스터키로 열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인생의 모든 문이 열리는 비밀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새 언약의 중보자가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몸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시면 새로운 재창조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시공간 초월의 능력을 사용하는 기도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복된 삶을 누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그루터기들은 세상 속에 위기를 가지고 살고 있다. 시험이라는 위기, 공부라는 위기... 그 위기 속에 언제나 하나님의 25를 느끼면 된다. 하나님의 절대 25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것도 문제 될 일이 없다.
창3:15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이 마스터키다. 야곱은 위기 상황 속에 외롭고 두려운 길을 떠났지만 그 여정 속에 돌 위에 기름을 붓는, ‘나는 뱀 대가리를 반드시 깨뜨릴 것이다’는 비밀을 폭로하게 된 축복이 되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산 돌 이시다!’ 살아있는 돌, 이것으로 뱀 머리를 깨뜨리면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분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새 언약의 중보자, 대 제사장, 만왕의 왕, 하나님 만나는 참 선지자’ 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마스터키 인 것을 체험하고, 창28:18~19를 분명 말씀했다. 자신을 베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나의 참 왕, 제사장, 선지자 되신 당신은 내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고백했다. 창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그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하늘의 문이 열린 곳이라고 선포했다. 자신이 있는 이 자리가 바로 하늘과 직통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 언약, 구원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알면 사람 상태가 온전해지고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창39:2의 비밀,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저주와 재앙을 없애는 여호와, 마귀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만왕의 왕,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호와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내 몸에 3저주가 해결되니 형통한 자가 되었구나’ 내 것이 다 사라지고 그리스도 하나만 남겨놔도 문제될 일이 없다.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알아보게 된다. 창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의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으면 이런 증거가 우리 몸에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엄청난 언약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고, 나를 만난 상대방이 ‘그리스도가 저 분과 함께 하는구나’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전도의 문을 막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처럼 큰 재앙이 없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지 않고,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는 자를 향해 마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말씀했다. 이런 것을 없애지 않고 교회에 그냥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창3:15 하나만 우리 몸속에서 작동되기를 축복한다. 창3:15은 하나님의 비밀이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감춰놓은 것을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나타내주신다고 말씀했다. 다가올 문제들이 사람의 영혼을 어둠으로 덮기 때문에, 그루터기들은 사람 때문에 속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속에 그루터기로 남아있으면 남길 자의 응답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의 문제는 ‘정신병’이다. 유튜브를 통해 엘리트 중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 국회의원들의 청문회와 연설, 다양한 재판 광경, 스포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올림픽 생중계에 심판 세 명 모두 ok 한 것을 비디오 판독으로 보니 손이 살짝 펴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금메달 딴 선수를 실격시킨 것을 보았다. 심판들이 합격을 눌러놓고 불합격이라고 해서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이런 정신병자들이 이 세상에 이미 가득하다. 손흥민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다. 손흥민 선수는 언제나 수문장을 공격하기 위해서 집중하며 뛴다. 그런데 손흥민이 그렇게 뛰어도 다른 팀들이 함께 뛰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 팀은 1등을 못하는 것이다. 다른 팀들은 공격수들이 수문장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공이 어디로 올 줄 알고 같이 움직인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탄과 영적싸움을 하면 같이 싸워야 하는데, 싸우지 않고 오히려 부흥의 길을 막고 전도의 길을 막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런가? 무기력해서 적과 싸운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자기와 관계된 주위의 국가의 이미지가 자기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데, 정신병 선수들과 뛰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정신병동에서 우리들만이라도 살아남자 하고 뛰면 되는데 다들 무기력에 빠져있다. 그래서 도박, 약물, 이런 것에 중독되어 영혼이 빼앗겨버렸다. 그러니 사람들에게는 분쟁과 분열, 다툼뿐이다. 늘 시비 걸고 싸우는 것 밖에 없다. 좀 세련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념으로 또 싸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혼합 속에 진짜 이상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가 교회를 처음 다녔을 때, 한국 기독교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불신자에서 기독교에 들어왔을 때, 내가 본 한국교회는 완전 주술판이었다. 정신병이 올 수밖에 없고, 귀신들릴 수밖에 없는 주술이었다. 귀신을 끌어다가 그 힘을 의지하고 살고 있었다. 제사상만 차려놓지 않았지, 죽은 영혼을 놓고 예배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것은 전부 주술이다.
*창3:15을 사용하는 자는 위기 속에 누리는 자가 된다.
우리가 믿는 분은 여자의 후손 메시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자꾸 다른 이기주의의 힘, 기회주의적인 힘, 물질 만능주의의 힘을 가지고 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다른 힘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언약을 나의 것으로 믿으면 그 속에서 힘이 나온다. 나는 언약을 발견하고 ‘아, 기독교는 완전 주술, 사이비로 전락했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내 가슴에 ‘나만이라도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인생을 개혁시켜야 한다. 운명의 틀에서 벗어나자’ 했다. 그래서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 속에 살겠다고 결단했다. 개혁은 완전 바꾸는 것이다. 불교를 믿었던 주술 방식으로, 불교식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막연한 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이름,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 분이 우리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가 되셨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야곱이 누린 약속이다. 그래서 야곱은 황금마차를 타고 애굽에 들어갔고, 야곱을 통해 열두 지파가 나왔고,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야곱은 인생과 문화를 개혁한 개혁주자였다. 창3장, 위기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뤄지길 축복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위기 속에 헤매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곱은 위기 속에 누림이 있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리스도 이름 하나로 마스터키를 사용했다. 그래서 야곱의 여정은 위기 속에 형통한 자로 가는 것이었다. 야곱은 수많은 문제 속에 응답을 가지고 후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후손들의 길잡이, 이스라엘이라 해라’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위기를 통해 사람과 시대에 대한 답을 가진 증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앞으로 예수사랑 그루터기들은 복음 엘리트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생 여정 속에 왕 앞에, 대통령 앞에, 총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사랑 그루터기들은 완전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세계화 해야 한다.
야곱은 그리스도의 보좌화를 사실적으로 체험했다. ‘아, 그리스도를 가진 나에게는 언제나 하늘 문이 열려있구나. 그리스도 이 언약을 가져야 하나님의 천사가 그 이름을 소유한 사람에게 왕래하는구나. 내가 가진 언약, 그 이름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부터 열리는구나.’ 그래서 그리스도의 보좌화를 누린 야곱은 문제가 오면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곱은 갈등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 많았다.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했더니 시집 못가는 레아가 들어오는 엄청난 갈등 속에 그는 그것을 기회로 잡았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 집안의 두 여자를 모두 아내로 삼아버렸다. 야곱은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20년의 세월을 정말 고생했다. 하나님은 갈등 앞에 자신을 갱신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야곱은 수많은 위기와 엄청난 갈등 속에서도 창3:15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해주셨다. 창3:15을 언제나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돌보신다’는 뜻으로 ‘이스라엘’ 이라고 이름을 바꿔 주셨다. 성령과 악령을 아는 사람은 창3:15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사탄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창3:15,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뱀 대가리를 깨뜨린다.
그래서 성령과 악령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선택한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악령에게 주지 않고 사람에게 주셨다. 사람을 살리는 길을 우리가 선택하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축복을 받는다. 라반이 자기 큰 딸 레아를 야곱의 방에 들여보낸 일 때문에 만약 야곱이 온 집안에 소동을 일으켜도 문제 될 일이 없었다. 라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과 가족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일을 선택했다. 그랬더니 라헬이 시기와 질투를 해야 하는데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분명 연애는 라헬과 했는데 결혼은 자기 언니와 했다. 레아가 눈빛만 이상해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면서, 사람 살리는 길을 선택했더니 레아 마음에 꽃이 피어 오직 야곱만 사랑하는 마음을 넣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선물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도 복음을 선택하고 사람 살리는 길을 선택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실수를 해도,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두고두고 응답하신다. 그래서 이 사람은 행1:8,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놨다.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악령과 성령을 아는 사람이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사람 살리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너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리라 했다. 성령과 악령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사람 살리는 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너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다. 야곱이 이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요셉에게 이 비밀을 심었더니, 이 마스터를 그 심령 속에 심었더니, 그 아들 요셉도 창45:5, 형들을 살려내는 사람이 되었다. 복수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원수 갚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표가 왔음에도 형제들의 옷자락 하나를 잡아당기지 않았다. “형들이 나를 애굽에 노예로 팔고 죽이려고 했지만,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와 당신과 이 나라를 위해 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억울함과 견딜 수 없는 고독, 외로움,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일들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이라고 했다. 이것을 앞서 보여준 사람이 야곱이다. 야곱은 언제나 성공 스토리를 가진 후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창3:15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은 사람이 야곱이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그의 형 에서를 속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셨는가?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미혹을 받았기 때문에 야곱이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큰 자 에서가 작은 자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그런데 이삭은 이 언약을 무시하고 자기 기준에 묶여 장자인 에서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기준, 자기 생각으로 움직이는 불신앙에 잡혀있었다. 하나님은 일점일획이라도 다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다. 그런데 이삭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도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니까 리브가가 정신이 확 든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을 망각하고 저런 불신앙을 할 수 있는가?!’ 리브가는 언약의 스토리를 가졌기 때문에 야곱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성경에 유일하게 한 여자를 데리고 산 남자가 이삭이었다. 하나님의 주신 언약에 일점일획이라도 미혹당하지 않고 그 스토리를 나의 것으로 붙잡으면 반드시 우리 자손들에게 언약의 길잡이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기도로 살게 된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다” 하셨다는 말씀을 리브가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뱃속에서부터 에서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서는 뱃속에서부터 너무나 제 멋대로 살았다. 그런데 야곱은 늘 형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엄마 리브가의 고백을 자기 고백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인본주의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 본문이다.
*에서의 분노를 피해 홀로 하란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 벧엘이라는 장소에서 드디어 창3:15의 그 하나님을 몸소 체험했다.
절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고 반드시 그 말씀 따라가면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도망가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여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롭고 불안하고 고독하고 두려운 여정 속에서 야곱이 무엇을 했는지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다. 야곱은 잠을 자도 그냥 자지 않았다. ‘뱀 대가리를 깨뜨리라고 했으니 그냥 자면 안되지’ 뱀 대가리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돌을 집어 들어야 하는 것이다.
산 돌. 내가 잡아야 산돌이 되고, 내가 품어야 산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 창3:15의 증거를 가진 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야곱도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돌을 베고 잔다. 살아있는 사람이 그 돌을 베고 자니까 그 돌이 산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산 돌이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다. 베드로도 그 산 돌을 표현했다. 야곱은 그 산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창4:15, 하나님은 가인에게 분명히 표를 주셨다. 창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살인자에게도 하나님은 표를 주셨다. 두렵고 무서운 현장에서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표를 간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인 이후에 하나님이 주신 표로 피부가 까맣게 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표를 주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까만 몸을 볼 때마다, 손등이든, 얼굴이든 볼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 그리스도가 들어가면 새 것,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가인은 유리하는 자가 되고,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쳐서 죽일 것이다 해도 하나님은 “괜찮다. 내가 너에게 표를 줄게” 하신다. 그래서 자기 온몸이 하나님이 주신 증표가 되었다.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살인을 당했다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어둠과 캄캄함이 나를 파고들 때, 하나님과 나와 관계를 단절시키고 유혹하는 사탄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오게 하시려고,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려고 창3:15, 마16:16 그리스도를 주셨다.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뱀 대가리를 깨뜨리고 이기는 사람은 예수님께 당연히 나아가고, 그 임재를 느끼고 그 엄청난 하나님의 보좌화가 된다.
벧전2:9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로 신앙생활을 하면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한다. 예수사랑 공동체를 허무는 일이 무엇인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내 기준에 따라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공동체를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다. 왕 같은 제사장은 내 속에 작은 여우를 버리는 일을 잘해야 한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살지 않으면 영적인 길에서 자꾸 벗어나게 된다. 사탄의 유혹에 걸렸기 때문이다. 세상의 욕망과 탐욕, 이기심, 이런 것을 가지고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에서 점점 멀어지니까 거짓말과 속임수, 잔머리를 쓰는 기회주의자로 사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머리가 좋고 똑똑한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을 바보, 멍청이 취급하지만 홀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삶의 의미를 상실해간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자꾸 스스로 깨뜨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공동체 안에 불화와 다툼을 만들어내는 생산 공장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점점 무너뜨린다. 결국 찾아오는 것은 지나친 죄책뿐이다. 그래서 어둠과 흑암으로 자기 영혼을 덮는 것이다. 회복도, 용서도 잃어버리고 용서 같은 것을 경험해보지도 못한다. 그래서 창3장 참된 복음에서 멀어져버린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부르면 되는데, 그 이름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로 인해 예배를 싫어한다. 사탄이 가장 공격하는 것이 예배다. 예배가 싫어진다는 것은 완전 사탄에게 장악된 것이다. 예배 때 들은 말씀을 마음에 담는 것이 기도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담지 못하니까 기도를 하지 못하고, 기도를 하지 못하면 내 안에 보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성경의 본문 말씀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가 약화되는 것이다. 시13:3~4,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사망의 잠에 완전 깨어나야 한다.
야곱의 돌베개는 싸우는 무기였다. 무기를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돌멩이를 가지고 깨뜨려라 하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되는데, 수많은 생각이 눈을 뜨는 순간 우리에게 밀려온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면 직장을 나가기도 힘들고, 약속시간이 있어도 늘 ‘5분만 더, 5분만 더...’ 한다. 영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불러야 한다. 우리교회 그루터기가 거울을 보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적인 힘이 생기는 놀라운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고백했다. 인생 문제 해결은 그리스도로만 문이 열리고 해결되고 답이 된다. 불안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언약으로 지켜야 한다.
창28:10~11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갔다는 뜻이다. 자기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마스터키를 반드시 사용해라’는 말을 듣고 간 것이다. ‘뱀 대가리의 유혹에만 걸려들지 않는다면, 마음과 생각을 언약으로 지킨다면 살게 된다’는 결단이 있었다. 돌베개는 삼중직의 기름부음을 뜻한다. 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하니까, 그리스도 이름으로 움직이는 어마어마한 천사를 보게 된 것이다.
창28:12~13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3:15의 언약을 가지고 꿈을 꾸고 비전과 이미지를 가지고 실현하겠다는 결단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야곱이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것을 실현하니까 드디어 땅에서 하늘까지 연결이 되었다.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이 힘을 사용했더니 하늘에서 땅까지 길이 놓여졌다. 길이 놓이고 하늘 문이 열리면서 사다리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을 가진 천사들이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 “얘가 야곱이야?” 하고 서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인자도 보고 싶어서 내려오셔서 야곱을 보며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니? 이 마스터키를 어떻게 사용할 줄 알았니?” 하신 것이다. 이것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섭섭함도 가질 필요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 응답 받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
야곱은 천사들이 왕래하는 것을 진짜 보았다. 시103:20~22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그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 천사들이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같이 힘을 주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엄청난 천군이 움직인다. 계8:3~5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대가리를 깨뜨리는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막 쏟아 부으셨다. 히1:14,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그리스도인을 섬기라고 천사를 보내셨다. 출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천군천사가 움직이고, 여호와, 인자가 움직이신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아이 좋아라~’ 하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 기뻐하는 표정을 가진 사람에게 돈도 온다. 소망과 희망이 있는 사람처럼 미소를 지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믿어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헬을 줄 때까지, 7년을 하루같이 여기며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고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었던 그 첫 마음만 잊지 않아도 엄청난 응답이 온다. 애굽의 수많은 재앙이 무너지는 이유는 그리스도 하나 때문이다. 창3:15의 하나님에게는 천사, 메신저, 가이드, 구름기둥, 불기둥, 이런 천사들이 어마어마하게 움직인다. 그리스도로 살면 모든 환경이 천사로 바뀌는 것이다. 심지어 불이 꺼지지 않는 가시떨기 나무에서도 여호와의 임재를 느낀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로 살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 되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출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나는 천사들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을 정말 많이 체험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강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나를 건져줄까’ 이런 일을 하면 안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자신이 테스트 하려고 하는 불신앙이다. 우리가 믿음만 소유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야곱처럼 교제를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옛 사람을 깨뜨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몸 가운데 임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내게 주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은 온다.
야곱은 위기 속에서 벧엘을 발견하는 체험을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있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 부터 벧엘을 체험해야 한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이런 신분이 되었기에 이제는 딱 하나만 하면 된다. 분주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집중할 수 있다. 쓸데없이 분주하지 말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시작해라. 그러면 우리가 야곱처럼 벧엘의 사람이 된다. 벧엘의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오늘 야곱이 누린 약속의 땅 벧엘의 축복을 우리들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야곱이 누린 약속의 땅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언약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풍성함이 오늘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해주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광야와 같은 이 거친 삶의 현장에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들에게 회복받고 해답을 얻을 수 있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창세기 3장 15절을 주신 이 약속을, 하나님의 임재가 내 몸에 와있음을 인정하고 믿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체험할 수 있도록 그래서 벧엘의 집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해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더 큰 믿음을 허락해주옵소서. 우리 인생 외롭고 두려운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을 경험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언제나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앞길이 불확실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성령 충만으로 역사해주옵소서. 벧엘에서 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자들과 인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하나님의 소통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시옵소서. 인생 살아가는 여정 속에 오해와 수많은 갈등이 찾아오더라도,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의 이름 그 마스터키를 사용하는 자가 되어 새 언약의 중보자가 우리와 함께함을 인정하는 최고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우리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오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위로 속에 있음을 실감하는 멋진 날이 되게 하옵소서. 벧엘의 축복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사람들이 자기 영혼이 어둠에 덮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영적 무기력 속에 중독과 분열로 정신병이 깊어가는 이 시대, 온전한 상태가 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비밀, 하나님이 주신 절대 언약, 구원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를 알고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몸에 지닌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스터키를 가졌다면, 이기주의와 내 기준으로 제멋대로 사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나의 것으로 붙잡아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로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사용하여 사람을 살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한 주간, 불확실하고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사람에게 위로받으려 하지 않고 언약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 분주한 마음을 버리고 언약에 집중하여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소통과 교제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벧엘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