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해결해야 할 영적 대물림의 문제"
(창/创 26:6-11)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영적 대물림의 문제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잠시 애굽 사이로 내려가려 할 때 무엇을 항상 빼앗겼는지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사단은 자신이 이미 망가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뱀 머리를 깨뜨리는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항상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사람이 헷갈린 상태로 그 분위기에 젖게 되면 예배를 상실하게 된다. 하나님이 떠난 인간의 근본문제, 영적 대물림이 바로 예배 실패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집안을 보면 1대, 2대, 3대 째 예배의 실패자로 낙인찍혀있다.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지 못한 이삭은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떤 현장에서든지 드러나타내는 삶을 살았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예배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절대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를 헛되게 만드는 이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큰 구원의 능력을 내 몸에 전도할 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난다고 고백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 창3:15 여자의 배를 빌려 이 땅에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 그 이름을 가지고 “너 구원 받으라” 이렇게 내 몸에 전도할 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난다.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래서 내 몸에 전도하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전도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의 이미지가 귀신들린 상태로 있는 것이다. 내 몸에 전도하는 것, 곧 영적싸움, 영적전쟁이 1인칭되면 롬16:20,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그 사람의 몸에 충만해진다.
그래서 언제나 내 몸에 하나님의 이미지가 있다고 갈2:20에 고백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유일성, 재창조 속에 고후5:17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는 것, 그것이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꾸러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선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 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롬5:6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바람 부는 대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휘몰아치는 대로, 재앙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묶여 한숨만 쉬고 한 점 얼룩으로 끝없는 방황의 길을 가야만 했던 연약하고 경건하지 않았던 내 옛 사람의 틀을 깨뜨리시려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죽으셨구나.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내 인생의 참 기쁨이 있구나.’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그리스도 이름으로 쉬지 말고 기도해라, 범사에 너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정말 나타내라.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다.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해 살아계신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가지고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사랑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삭이 순간 헷갈림으로 인해 이것을 잊어버렸다. 이것이 창3장의 영적대물림이다.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 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나타내지 못하니까 순간 그랄 땅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길들여져 예배를 상실하고 또 한 번의 눈물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삶이 온 것이다. 내 마누라가 아닌 나의 여동생이라고 거짓말로 속이며 살았다가 어느 날 들통나버렸다. 부인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한 번 껴안아주었는데, 아비멜렉 왕이 들여다보는 타이밍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24시 재앙이라는 운명에 굴레에 묶여있다. 벧전5:8,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고, 요10:10 먼저 와 있는 사탄, 악령, 귀신,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케하는 놈이 흑암권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하늘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만 잘하면 재앙과 운명의 굴레에서 당장 해방 받는다. 그래서 롬5:8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헛일을 하게 만드는 사탄의 전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여기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24, 25, 영원까지 그리스도가 사랑의 대상이지, 거부의 대상이거나 시험, 갈등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내 몸에서 임마누엘로 함께 역사하신다. 그래서 그분은 늘 “나와 함께 가자” 하신다.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늘 의식하고 함께 걸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힘을 얻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향해 “나는 너의 동반자” 라고 하신 것이다. 그분을 나의 동반자로 모시면 사랑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는가? 내가 배신하고 실수하고 수많은 약점 때문에 숨으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나의 발을 씻겨주시는 분이다. 죄인의 걸음을 걸었던 그 발을 씻겨주신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하며 팔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발, 원수덩어리의 발을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가 씻겨주셨다. 은 30냥에 팔아넘기려고 이미 작전과 계획을 짜놓고 나가려고 할 때, 마지막에라도 성만찬에 참예하여 내 살과 피를 마시고 가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몸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수많은 교회가 이용해도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발도 씻어주시고 언제나 기다리신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자빠져도 포기하지 말고 그 사랑을 꽉 붙잡고 ‘예수님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이렇게 노래하면, 롬5:10, 원수되었던 나를 찾으신 예수님이 그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시켜 놓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는 원수였고, 멸망의 자식이었고, 재앙과 운명의 굴레에서 영원한 지옥으로 가야 할 인생이었지만, 내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원수 된 몸뚱이가 된 너를 내가 화목케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만 사람들의 길이요 진리 생명 되신다.
이삭이 이 예배를 그랄에서 놓쳤다. 그랄 땅은 사람을 늘 헷갈리게 하는 땅이었다. 예쁜 여자라면 누구를 강간해도 상관이 없을 만큼 사람을 헷갈리게 한 곳이다. 우리나라도 강간죄가 성립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과거에 수많은 어린 여성들이 어려서부터 강간을 당해 어려움과 고통 속에 살았다. 그만큼 두려움의 시대, 흑암 권세가 땅을 덮어 창3장으로, 살인자로 모든 영혼을 움직였다. 그래서 한 때 우리나라는 행방불명이 된 여자도 많았다. 그랄 땅의 사람들은 살인의 광기로 춤을 춰도 문제가 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삭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낳은 아이의 엄마였음에도 흑암의 땅인 그랄 땅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짐승보다 못한 자들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나님은 그런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의 창3:15, 언약의 계승자, 복음의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맞다면 가장 먼저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두려움을 제거하지 못하면 사탄은 우리를 삼켜버리고, 악질을 붙여 고통 받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16:33,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이름을 주셨다.
창3:15을 순간 놓친 이삭이 영적 대물림의 문제에 갇혔더니 그의 신세와 삶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되어버렸다. 세상 신과 싸우라고 이삭 대신 숫양이 번제로 드려지는 것을 알고도 그랄 땅에서 헷갈려 해서 숫양의 번제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그는 24시 숫양의 음성만 들어도 ‘내 대신 죽어야 했던 저 숫양,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데, 그랄 땅의 분위기 속에 순식간에 사람이 헷갈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항상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다. 밥 세끼 먹는 의식주 문제 해결된 사람은 제일 무서운 재앙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밥 먹는 문제 해결했다는 그 안정감 때문에 늘 헷갈리는, 그것이 바로 재앙의 시작이다. 그래서 성경은 “약한 자를 통해 강국을 이루고, 없는 자를 택하사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고 이미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밥 먹는 문제 해결 받으면 자꾸 모래 위에 단을 쌓고 예배드리려고 한다. 그래서 ‘오직’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래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조그마한 바람만 불어도 두려움과 염려, 낙심과 불안이 휘몰아치는 거이다. 그러다가 문제가 찾아오면 순식간에 집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석위에 집을 지어라” 말씀하셨다. 그래야 창수가 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요일2:16에서 절대로 헷갈리지 말고, 이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완전 깨부숴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진짜 헛되고 헛된 육신의 정욕이다. 이것 때문에 내세를 준비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절대 생각도 못하다가 어느 날 숨을 거두는 날이 찾아올 때 아무것도 준비해놓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이 육신의 정욕 때문에 사람들의 눈은 오직 욕심뿐이다. 우리 눈에 욕심이 사라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눈이 옥구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무서운 재앙이다. 귀신들린 여자들을 만나보면 눈알이 얼마나 까맣고 흰자가 깨끗한지 모른다. 눈이 너무 반짝반짝 하는 것도 귀신들린 것이다. 속에서 엄청난 욕심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눈에 왜 욕심이 오는가? 우리 삶에 자랑거리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 그 의에 대한 일을 하지도 못한 채, 어느 날 모든 재산을 남겨놓고 영원히 떠나면 그 남긴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는지 예수님이 물으셨다(눅12:20). 육신의 욕망과 눈의 욕심, 살아가는 삶의 자랑거리는 엡2:2, 공중권세 잡은 자로부터 오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그분을 기억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공중권세 잡은 자가 매일 틈타고 들어온다. 육신의 정욕과 눈에 욕심이 파고들어와 삶의 자랑거리를 만들어놓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성경에서만 폭로한다. 그래서 공중권세 잡은 자에게 붙잡히면 요8:44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비진리” 가운데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몸에 거짓말쟁이가 ‘이번 주 예배 안 드려도 괜찮다, 다음 주에 잘 드리면된다’고 이렇게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우리 몸에서 거래를 한다. 합리화, 핑계거리를 대고 거래를 한다.
헷갈림으로 인해 예배를 잃어버리고 드디어 무시무시한 영적 대물림 속에 이삭이 갇혔더니 죽음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의 삶이 자기 영혼을 덮어버렸다. 언약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로 지탱할 수 있었지, 불신자 상태라면 그대로 죽는 사건이다. 이런 죽음의 두려움을 현대말로 ‘스트레스’ 라고 하는 것이다. 누가 나를 해칠까하는 염려 근심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사탄이 하는 짓이라고 말씀했다. 그래서 두려움과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려고 하는 삶이 우리 영혼에 파고들 때,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한 시대 세계복음화를 위한 산업인으로 부르시고 무한한 응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오늘도 핑계를 대고 예배에 빠지려고 하고 세계복음화, 이 엄청난 예수사랑교회 훈련 속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무능과 무기력 속에 주저앉게 만들어 밥 먹는 문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모든 흑암 조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교회를 다니는 중직자, 성도들이 세계복음화를 하는데 있어서 전도와 선교에 쓰임 받는 경제 응답이 없다면 회개할 일이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은 이런 영적인 눈을 뜨고 다시는 헷갈리지 말고 세계복음화의 목표를 붙잡고 ‘나이와 상관 없다’ 하며 전진해야 한다. “목사님, 제 나이가 이제 80세가 넘었습니다” 이런 말 할 필요 없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은 은퇴도 없고 고문장로, 원로장로 이런 말도 없다. 장로는 죽는 날까지 장로다. 이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천국 기업이 되어야 한다. “목사님, 내가 많이 벌면 한 번 할 겁니다.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지금 작은 것 하나라도 헌신하는 출발이 있어야 한다. 작은 것을 맡겼을 때 충성하여 큰 것도 맡기신다. 그래서 더 이상 징정거리거나 찌질하거나 쫀쫀하지 말고 교회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교회 기름부음 받은 예수사랑교회 중직자, 성도라는 자긍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장로님들은 정말 자존감을 크게 가져야 한다. 나는 총회에서도 어설픈 목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만큼 영권을 주셨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나는 그 하나님을 그냥 믿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절대 불가능을 절대 가능케 하시는 전무후무한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절대 믿는다.
*창세기 3장의 비밀, 영적대물림이 무엇인가?
“너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거짓말이다. 그래서 사람 내면에 죽지 않는다는 거짓말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죽는 존재다. 죽기는 죽는데 내세가 걸려있다. 얼마 전 한국의 큰 스님이 자신은 불교 교리 중 윤회설을 거부한다고 했다. 사람이 죽어서 고양이나 개가 되는 그런 일은 없고 지옥뿐이라고 했다. 만약 그 스님이 ‘그래서 모든 불교인은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 고 했다면 박수 쳤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윤회설로 인해, 이 땅에 육신의 삶에서 선행하며 살면 부잣집 개로 태어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내세를 준비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모든 돈을 지옥가는 것에 쓰는 것이다. 마귀는 죽지 않는다고 우리를 속였지만, 인간은 영적인 죽음과 육신적 죽음 두 가지가 있다. 영으로 살면 육신은 무익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영적 사망상태를 생명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셨다.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하고 깨닫고 예배하면, 세계복음화 훈련 속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
마귀는 또 우리에게 “너희 눈이 밝아질 것이다” 속여, 영적인 눈은 닫아버리고 육안만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귀가 열어놓은 눈으로 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욕심의 눈, 욕망의 눈, 이생의 눈이다. 그래서 우리 눈이,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좌의 역사, 천군천사의 움직임은 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 영적인 세계를 말씀으로 본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는 자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본다고 하는 너희 눈은 지금 맹인이 되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 이 비밀을 내 영혼에 담지 못하면 절대 영적인 눈은 열리지 않는다. 이삭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 그랄 지역에서 헷갈려 하다가 실패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지만 하나님 같이 되지 않고, 하나님 노릇을 하려는 이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네가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니까 늘 하나님처럼 하나님 노릇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교만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노릇을 하는 자를 ‘사탄의 노예’ 라고 한다.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은 ‘이제 너는 내 종이 되라’는 마귀의 말이다. 스스로의 사람으로 교만 속에 나의 기준에 갇히면 그 사람은 일평생 사탄의 종노릇하며 매일 분노와 분열로 살게 되고 집은 늘 분쟁 속에 갇혀있는 ‘집구석’이 된다. 부부간에도 분노와 분열과 분쟁, 자식 간에도 분노와 분쟁이다. 사탄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따라 사는 존재로 전락했다. 자기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상대방을 죽이려고 한다. 선악을 보기 때문에 내 뱃속에서 잉태된 아이까지도 죽이려고 한다. 작은 구멍을 통과해서 살아나온 애를 밟아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엄마의 젖가슴에 기대 젖을 물고 있는 아이를 때리고 싶어 한다. 내 몸에 기스를 낸 놈이라는 생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엄마의 가슴 속에는 그렇게 상처만 쌓여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이성교제를 시작하면 그 때부터 배신감으로 인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며 살아야 하는데,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사니까, 표현은 못하고 미치는 것이다. 남자친구와 실컷 데이트하고 온 딸이 “엄마, 그 남자는 나의 진짜 이상형이야!” 이런 말에 자신의 갈등과 싸우면서 끊임없이 분열만 쌓이는 것이다. 그 분열을 또 교회까지 가지고 온다. 내 유익대로 살지 못해서 쌓이는 분열, 분쟁, 시기, 갈등, 더러운 감정들을 예배 오기 전에 내버려야 한다. 그래야 멋있는 예배가 된다. 그래서 세상을 이긴 승리자들은 롬12:1, 자신을 항상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에 성공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신을 부인하는 예배가 없으면 창3장의 근본문제 제공자인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불신앙하게 하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만들어 영원한 죄악 시스템 속에 운명의 굴레에 갇혀 노숙자로 살게 만든다. 노숙자의 대표자가 석가모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석가모니를 교주로 만든 그의 제자들로 인해 많은 사람을 더욱 저주로 몰아가게 만들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창3:15을 믿지 않는 죄, 불신앙과 불순종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창3장의 이 영적대물림의 문제, 내 몸에 이미 들어와 있는 원죄가 똬리를 틀고 자꾸 내 몸을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늘 두려워하는 것이다.
예배를 성공하지 못하고 세계복음화의 훈련 속에 없으면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기의 아리따운 아내를 자신도 모르게 “그는 나의 누이라” 했다. 어디를 가도 그 말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내 아들이 있는데, 맞선 한 번 봅시다” 하며 공짜 술도 얻어먹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삭은 먹는데도 두렵고 기분이 나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그 이름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이런 팀사역을 해야 하는데, 이삭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에 나의 누이라고 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닌 것이다. 내 몸에 와 있는 창3장의 사탄의 똬리는 이렇게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두려움에 시달린다.
창26: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엄청 헷갈리는 가운데 두려워했다. 이것이 영적대물림이다. 헷갈릴 때는 “예수는 그리스도” 불러라. 그래야 행복해진다. 재앙을 막는 비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창26: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어머니가 묻힌 막벨라 굴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다가 애굽으로 내려가 걸려들었다. 하나님은 “너는 언약의 계승자다. 너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자다. 가나안은 너에게 약속한 땅, 네가 그곳에 있어야 하고, 그곳에 있으면 저절로 민족도 생기고 강국이 생길 것이다. 내려가지 마라”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마지막 남단 끝, 애굽 경계선까지 내려갔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빨리 돌이켜서 예루살렘을 향하야 올라가야 하는데 그랄에 거했다. 그랄은 애굽 옆에 있는 땅이다. 오늘날 가자 지구 마지막 남단이 그 당시 그랄이다. 이삭이 애굽으로 갈까 말까 마지막 코너에 있는 것이다. 그럼 적어도 자신이 애굽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그랄 땅에 머물렀다. 그랄 땅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까 거짓말도 결국 들통나버렸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가에서 계속 내다 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망신을 당한 것이다.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언약의 계승자,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과 권세를 가진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지 않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른 지역에 가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창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아브라함은 이런 말을 들었다. 예배를 드리면 우리 몸에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훈련을 받으면 받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이 하시는 계획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것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랄에 머무르려고 한다. 창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에게 한 이 맹세가 있었기 때문에 아비멜렉은 두 번째 아들에게까지 이 내용을 전달했다. 그래서 이삭을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창21: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다. 그래서 이삭을 살펴만 보고 있다가 리브가가 그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아버지가 이 사실을 몰라 전 재산을 털렸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털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3:15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헷갈리는 것 밖에 없다. 더 이상 헷갈려 하지 말고 예배에 올인해야 한다. 창3장에 직면하게 된 삶 속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벗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창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렇게 모든 것에 두려워진다.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리지 말고 해방 받기를 축복한다. 자신의 문제 해결 때문에 몸부림치며 자기 기준, 방법으로 옷을 입으면 입을수록 고통만 생긴다. 자신의 방법대로 대책을 세우면 끝없는 저주와 재앙이 따라다닌다.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마음과 생각이 상처로 집중되어버렸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 여자, 내 여자’ 해놓고는, 결혼하고 나서는 ‘이 여자’ 라고 한다. 여자는 평생에 상처만 쌓고 살아간다. 그래서 남자 몰래 비자금도 만들지만 남자들은 기가막히게 그 돈을 다 챙겨간다. 여자는 이렇게 운명의 굴레 속에 상처만 쌓아간다. 서로 변명과 핑계 속에 부부관계, 인간관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환경이 파괴되고 땅이 저주를 받고 육신의 문제로 질병이 시작되는 것이다.창3:17~18,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이 저주를 받아 땅에서 나오는 모든 식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질병뿐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먹어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다.
결국 세상에 집중하다가 내세를 준비하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된다.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지옥 열차를 타고 칙칙폭폭 가는데, 그 안에 창4:8 살인의 광기를 자녀로 인해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인자로 전락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정신이 번쩍들었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창4:25, 하나님이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을 놓치면 늘 헷갈려하며 살다가 아담이 맞이했던 그 운명의 저주와 재앙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삭이 거짓말과 실패의 두려움 속에서도 그 이름만 부르면 살았을텐데, 그 이름을 놓쳐서 수많은 날 들을 괴로워만 했다.
괴로워하는 만큼 “예수는 그리스도” 선포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면 되는데 그랄 땅에 죽치고 있었다. 이렇게 캄캄함의 무기력이 무서운 것이다. 우리 영혼을 짓누르고 그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사탄의 권세를 꺾는 비밀은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 엄청난 권능과 권세를 선포하라고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우리에게 주신 권세와 신분인데 이것을 하지 않고 있다면 이것처럼 나쁜 죄가 없다.
이삭이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어도 문제 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예배를 등한시 하고 쓸데없는 곳에서 영향을 받고 그랄의 분위기를 받아 불신앙 속에 갇히게 되었다. 창10: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삭은 그랄 끝자락 까지 와 있는 상태다. 가나안 깊숙한 예루살렘, 안전한 곳이 있는데,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그랄 땅에서 죽치고 있다. 두려움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과 캄캄함, 흑암의 권세가 눌러버리니까 예배까지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삭이 왜 실패했는가? 창26:6 거주하지 말아야 하는 땅, 그랄에 있었기 때문이다. 헷갈리는 땅, 이방인들이 우상과 귀신, 미신에 잡혀있는 그 땅에 거주했다. 비가 더 오지 않으면 비옥한 땅, 애굽으로 즉각 내려갈 것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마음은 늘 애굽 땅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 하셨음에도 이삭은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애굽에는 사탄, 바로 왕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다. 비옥한 땅인 것 같고,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마귀 노예만 있는 현장이다.
마귀는 인간이 하나님을 슬금슬금 믿게 만든다. 확실하고 화끈하게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짓이다. 그래서 사탄은 늘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그리스도 그 이름에 내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게 만들어 재앙 가운데로 콱 끌고가는 것이다. 이삭이 그랄에 거하면서 그랄의 영향을 받게 만들고 성막, 장막, 회막을 다 잃어버렸다. 결국 예배를 실패하니까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사람 때문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 곳 사람들이 “저 미인은 누구지?” 이런 소리가 들렸고, 블레셋 사람과 왕이 보고 있으니까 “나의 누이라” 거짓말을 했다. 아브라함에게 두 번이나 찾아왔던 창3장 가문의 저주가 이삭에게 또 찾아왔다. 마귀는 이렇게 죽지 않는다. 우리가 이 땅 살아가는 날 동안 끝까지 추적한다. 그래서 일어섰다 하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고, 깨어있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 대가리를 깨뜨리라고 하셨다. 바리를 완전 짓이기고 씹어 버려야 한다.
완전 타락과 각종 점술, 무속, 이상한 문화로 복잡하게 뒤섞인 곳이 그랄 땅이었다. 지역마다 역사하는 흑암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브라함도 여기서 당했다. 그랄 땅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삭이 자기 아내로 인해 자신이 죽을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창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나님은 분명 이삭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대로 가지 않고 그랄 땅에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슬금슬금 하나님을 속인다.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을 슬금슬금 속이는 불신앙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창26:3~4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주일에 메시지를 잘 받아 놓고도 가지 않는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이삭이 실패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불순종하며 찌질하고 쟁쟁거리고 쫀쫀하게 신앙생활을 하니까 안전한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찌질하고 쟁쟁거리고 쫀쫀하면 하나님을 드러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면 염려, 갈등, 불신앙 속에 빠뜨리게 하는 사탄의 전략에 빠지게 된다.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를 실패하니까 불안하고 좌절감 속에 주저앉게 되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이제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회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이삭의 실패로 이방나라의 왕에게 책망을 받았지만 진실하신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주셨다. 실패라는 무능 때문에 주저앉지 말고 벌떡 일어나 다시 한 번 예배를 회복하고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회복 속에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셨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되셨음을 고백하는 신앙 속에 승리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영적 대물림의 문제를 창세기 3장 사건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확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대라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응답이 있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 영혼 속에 임재한 그리스도가 전무후무한 응답 속에 있음을 우리가 확신하는 날이 되게 하옵시고, 그리스도 하나님이 내 삶과 나의 기도의 리듬을 통하여 역사해 주신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날마다 우리들에게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이제부터 나를 다스리는 보좌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내 영혼 속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이 영적인 대물림의 문제, 오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되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창세기 3:15의 언약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언제나 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영혼 속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게 만드는 영적인 대물림의 문제가 오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날이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세기 3장 15절로 나를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오늘 그리스도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 받는 기회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창3장의 원죄로 인해 끊임없는 방황의 길을 가야 하는 죄인 된 나의 발을 씻겨주시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영적 대물림에서 벗어나도록 경건치 않은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창3:15,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나를 헷갈리게 하고 예배를 실패케 하며, 구원의 확신을 빼앗아 재앙으로 끌고 가는 사탄의 전략에 속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내 몸에 나타내는 전도로 운명의 굴레에서 해방 받게 하옵소서. 복음의 약속을 받은 창3:15 언약의 계승자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보호하심을 믿어 내 안의 두려움을 없애고, 마귀가 열어놓은 욕심과 욕망 속에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나의 기준에 갇혀 일평생 사탄의 종노릇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창3장의 거짓말에서 빠져나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창3:15로 나를 찾고 어떠한 실수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붙잡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