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배척하는 인본주의를 버려라"
(막/Mark 6:1-6)
“너희에게 새로운 시작이 펼쳐졌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주신 말씀인데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옛 신분과 새 신분이 있다.
옛 신분이란 사람의 몸이 더러운 귀신에게 장악된 상태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구원하시고 새 신분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옛 신분,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 못하도록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게 새 신분으로 변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원하는 제자를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원하셔서 불렀다. 옛 신분으로 살면 더러운 귀신들린 상태로 사탄의 종노릇하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며 삶이 무너진다. 따라서 새로운 신분을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함께 하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들린 상태다. 옛 신분을 가지고 성공했다고 여기면 착각하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은 우리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우리의 옛 사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더러운 귀신을 뽑아내는 길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고 전도도 한다. 자신을 전도하기 시작한다. 그 말은 자신의 영혼을 치유 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살리는 ‘전도’도 할 수 있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
이 말씀은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꾀려고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열두제자를 부르실 때 하신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가 원네스, 임마누엘, 위드의 하나님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죽는 날까지 말쟁이들 설교에 현혹되어 인생을 낭비하고, 삶의 유산이 재앙이다.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말에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 오늘날 왜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복잡한 설교를 들으려고 하는가?
그리스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기에 그런 설교자들의 말을 듣고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종교 우상을 섬기고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다. 사람의 말을 계속 들으면 멘탈이 붕괴되어 점점 정신병을 앓게 된다. 게다가 온갖 질병에 걸리고 만다. 결국 경제 문제까지 오는 것이다.
사탄은 눈에 보이지 않게 공중파가 움직이는 것처럼 공중 권세 잡고 움직인다. 안방, 핸드폰, 가방 안에까지 공중 권세 잡은 마귀는 파고 들어와 있다. 무엇으로 파고 들어와 있는가? 불신앙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응답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지금까지 먹여주심에도 한 번도 감사하지 않는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입으로만 고백 할 뿐, 그분을 못 느낀다. 그래서 도망가고 배신하고 인간관계를 다 깨뜨린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안과에 가서 눈 검사를 하면 왼쪽 눈의 시력이 더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햇빛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눈도 어두워져 사회에서 공동체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전혀 모른 채 그저 밥 세 끼 먹는 무능과 무기력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못한다. 불신앙하면 어떤 사실에 대해 확인도 하지 않고 조급해진다.
조급해지면서 갈등의 폭이 커진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업다운이 심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불신앙으로 사람의 영혼을 장악하였기에 영안이 닫혀있다.
→하나님과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육신의 눈도 아닌 지식의 눈도 아닌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너희는 나를 따라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을 따라갈 수 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달리다굼, 일어나 걸어라!’고 말씀하셔도 못 알아듣는다. 우리 몸에 쌓여있는 불신앙의 저주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너진다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 본문에서 이런 메시지를 예수님이 고향에서 하셨음에도 못 알아들었다.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고 계심에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해서.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점술과 미신과 제사 속에 갇혀 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 이방인들이 지금 예배한다고 하는 그 예배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을 모르면 다 미신 종교에 빠진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7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는 교회를 다녔고 신학교도 졸업한 사람들도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사람의 몸을 어떻게 장악했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놓았음에도 영적인 눈이 안 열려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게 아니라, 귀신에게 예배하다가 귀신병에 걸리기에 사이비, 이단 교주들이 급증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제 장로님 한 분이, 큰 형님이 암에 걸려서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의 시간표가 다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형님이 통증과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기에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잠을 푹 잘 수 있다고 하자 메시지를 들어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듣자마자 잠이 들었다고 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는 진노의 자녀로 살게 한다. 우리의 영혼에 틈을 타고 들어와 혼미케 하기에 세상의 메시지를 들으며 산다. 사람의 말에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 하나님을 몸에 영접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것이다.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한 목회자가 정년퇴임 후 이상한 말을 했다. 내용인즉은 성경은 사람이 기록했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70명이 6천 년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게 성경이다.
시대 시대마다 선지자들, 제사장들, 왕들을 통해서 연대별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신약에 오신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그리스도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한 사람이 바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가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신약 27권에 기록되어 있다. 4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가 그 내용이고, 종말을 앞두고 성도들이 어떻게 영적 전쟁을 승리할 것인가가 기록된 게 요한계시록이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이 BC와 AD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전 세계 앞에 보여준 게 바로 갈보리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말하는 겁니다, 탄생에서부터.
온 인류가 저주와 재앙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밀은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능력인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적인 눈이 어두운 유대인들에게 준 메시지가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한 미래까지 영원히 동일하시다였다. 일체성을 가졌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신앙생활 습관이 귀신에게 예배하고 점술과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이다. 귀신 들려 논리정연한 철학적 메시지를 하는 사람들이 어둠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골로새서 2장 8절, 철학은 진리가 없는 논리적 사고다. 결국 속임수라고 했다. 사람들을 올무 시스템에 집어넣기 위한 계략이라고 했다. 이것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르는 것이라는 했다. 그게 가톨릭,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 따라가자.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요 그분만이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면 귀신들을 내어 쫓는 권능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 내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라면 약한 것들을 고치는 권능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스도로 새롭게 도전하고 시작할 수 있다
→약점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극복하는 하나님의 힘, 그리스도를 주셨기에 다시 한 번 새 것으로 도전하고 시작하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옛 사람이 지나가고 새 것이 된다.
영적 상태를 가장 잘 누리고 영적인 눈을 뜬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은 세상 사람들은 갖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였다.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되면 시대를 바꾸는 정복자가 된다. 무일푼이어도 하늘 보좌의 힘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땅 끝까지 전달할 순례자다. 본문을 보면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비웃는 그들을 예수께서 이상히 여기셨다.
이스라엘은 지구 역사에 가장 처절하게 저주받은 나라로 성경과 역사에 기록돼 있다. 모세는 그리스도 이름만으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해방시켰다.
모세가 하는 일을 방해한 애굽의 왕은 재앙을 받았다. 약 3500년 전 무너진 애굽은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그 당시 전 세계를 통일한 찬란한 애굽의 모든 시스템들이 주저앉은 것이다. 그 당시 유럽 전체에 기근이 들면 모두가 애굽으로 가는 시스템이었다. 먹을 것이 풍부한 애굽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애굽이, 그리스도 이름 하나에 감동된 모세를 방해할 때마다 재앙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 예수사랑 가족들, 전 세계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몸에 새기면 시대를 바꾸는 정복자가 된다.
→영적인 눈을 떴던 사도 바울이 고백한 단어를 꼭 기억하자.
그가 종교생활 할 때는 눈이 열리지 않았다. 그가 가진 지식의 눈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들여다봐도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다.
사도행전 9장 15절, 영적인 눈이 열려야 육신의 눈, 지식의 눈도 열린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택한 그리스도의 그릇이라 말씀하셨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내가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요. 땅 끝까지 이르러 시대를 바꾸는 그리스도의 그릇으로 나를 택하셨구나!’ 오늘 이 말씀 들으면 죽을병에서 생명이 자라난다. 나는 여기의 증인이다.
사도행전 26장 18절,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메시지를 선포했다. 십자가의 도를 남기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다. 창세기 3장 15절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만난 것이다. 모세가 그리스도 이름에 감동되어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끄집어내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육신의 눈이 아닌 지식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을 뜨게 하셔서 내 몸이 어둠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공중 권세라는 말은 흑암세력이다. 어두움과 캄캄함이 우리 몸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에 오직 그리스도가 안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이면 질병이 축복이고, 정신병이 축복의 발판이 되고, 실패가 그리스도를 증거 할 기회가 된다. 그리스도는 나를 창조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나를 새 것으로 바꾸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빛을 몰라 어둠과 캄캄함에 갇혀 있었구나.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의 빛임을 바울은 알았던 것이다.
어둠에 있는 옛 것이 새 것으로 옮기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로만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야 사탄의 시스템 속에서 해방 받는다.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전도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못 박혀 죽으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된다.
“너의 구원자 그리스도 그분만 인정해라. 그분만 생명의 빛이라는 것을 공포해라. 그리스도 그분만 항상 함께 계셔서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과 교제하지 않으면 사람과 교제하다가 슬픈 고독이 몸부림치는 시간표를 맞이한다. 현대과학으로 못 고치는 병에 걸리면 이런 고백을 한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이런 노래를 누가 부르게 하는가? 위로를 받으려고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노래들이 몸에 쌓여있는 것이다. 결국 한강으로 발길을 옮기게도 한다. 아니면 아침에 출근하려고 하는데 넥타이가 밧줄로 느껴져 ‘목매고 죽자. 인생 더럽구나. 인생 정말 쓰구나.’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이게 인생이다. 그 시간표가 오기 전에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자.
그러면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으며 견고케 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 하나님의 지혜를 전도의 미련한 것에다가 두었다. 십자가의 도를 남에게 전달하고 자신이 망하지 말고 십자가의 도로 자신을 전도하면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는 일어나 걸어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끝은 무슨 끝이야, 지랄하고 있네.’ 이렇게 하는 놈이 더러운 귀신이다. 그 말이 나오면 갈등, 시험, 두려움, 염려 등을 사로잡아, 마귀야 가라고 명령하자! 지속적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하기에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시대를 바꾸는 정복자가 된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사람들은 7초의 기적을 맛보는 고백을 제일 싫어한다. 위로 중의 위로가 7초의 기적이다. 하나님은 7초의 기적을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고 계시는데 왜 못 알아듣는가?
고린도전서 1장 24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견고케 하신다.로마서 16장 25~27절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미래를 본 자요, 미래를 아는 자요, 미래를 누리는 자요, 미래에 경쟁할 자가 없다고 확신하고 오늘 기쁘게 산다. 예수사랑교회는 237 디아스포라 미션 속에 이미 들어갔기에 하나님은 죽을병도 치유하시기에 재창조의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시기를 축복한다.
육신적으로 눈이 어두우면 생활하기가 불편하다. 또한 지식의 눈이 어두우면 사회생활하기가 어렵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둘째 사망의 길로 간다.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간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몸에 재앙이 오는 이유를 모른다. 영적인 눈이 닫히면 어둠과 캄캄함과 사탄의 권세와 질병과 가난이 파고든다.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은 병명을 모르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질환이 왜 생기는지를 모른다.
우상숭배하고 우상을 향하여 찬양하는데도 왜 국가는 무너지는가?
바로 흑암 세력이 사람과 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더러운 불신자의 운명에 머뭇거리지 말고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배척하는 인본주의를 버려라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을 모르면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요3:16
인본주의적 사고는 하나님을 비웃게 만든다. 영적인 세계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을 아는 영적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구원을 못 받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육신 관점에 머물러 있다.
“저 예수는 목수야. 목수의 아들이고. 우리 이웃에 사는 사람이야.”
예수님의 시간표가 왔음에도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인본주의 관점에서 머물러 있다. “그냥 우리 형님이야.” 예수님을 이웃 사람정도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권능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축복한다.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분이 왜 오셨는가? 세 가지만 믿자.
요한일서 3장 8절, 불신앙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마귀는 끊임없이 인본주의 관점에 머물게 하여 영적 세계에 무지하게 만들기에 먼저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우리 인생의 기구한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새로워진다.
이것을 믿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사탄, 마귀, 악령,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몸에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더러운 귀신으로 인정하는 순간 귀신은 나간다는 것이다. 종교의 영으로 깊이 명상하는 사람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몸 속에 드나드는 영적세계를 본다.
못 고치는 병에 걸린 사람은 몸속에 더러운 뱀들이 버글버글하다. 나는 어릴 때 멀미를 심하게 해서 자동차를 타본 적이 없다. 차 휘발유 냄새를 맡으면 토했다. 그리고 얼굴에는 하얀 버짐이 피었고 몸은 굉장히 말랐었다.
나의 어머니는 미신적으로 강했기에 용한 무당을 집에 데려와 나를 가마니 위에 눕히고 굿을 했는데 심하게 구토를 했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해충이었지만 나는 그게 뱀으로 보였다. 그 후부터 나는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육신적으로는 해결이 되었는데 정신의 문제가 더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절에 들어갔다.
‘왜 인생이 행복이 없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진리를 찾았다. 지금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그리스도만이 진리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마귀를 멸하는 그리스도를 온 몸에 각인하길 바란다. 마귀를 멸하지 않으면 일평생 사탄의 종노릇한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갇혀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무저갱에 간다. 마귀를 멸해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우리의 대속주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불신자의 운명의 굴레에서 끄집어내기 위하여 대속물로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알고 불러야 한다. 그분이 십자가 도를 통하여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분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종교 찾아다니고 미신, 귀신 들린 사람들, 점쟁이들 찾아다니지 말고 요한복음 14장 6절, 오직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자.
그러면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영혼의 치유가 일어난다. 거듭나는 눈, 마음과 생각이 생긴다. 창세기 45장 5절, 당신들의 형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나를 미친놈, 교만한 놈이라고 나를 어렵게 했지만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애굽 땅에 보낸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면 ‘자손에게 자녀에게 암의 저주를 남기지 않고 끊어버리자!’로 시작하는 것이다. ‘술 중독, 마약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나는 그리스도만 부를 것이다.’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배척하는 인본주의를 버려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는가? 인본주의는 육신적 관점에 머물게 하여 미신 종교, 귀신 들린 자의 말을 듣고 미혹한다. 제발 귀신 들린 자들의 말을 듣고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라. 성경에 기록된 창세기 3장 15절의 흐름을 타고,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면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면 부르는 만큼 변화와 치유를 맛보고 건강해진다. 그리스도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권능과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본문 1~2절,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능으로 사람들이 놀랐음에도 영적 진리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창세기 3장 원죄 속에 갇힌 인간의 근본은 배척하고 비웃고 인간적 관점에 머무른다. 오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를 불신앙의 눈으로 보기에 ‘목수의 아들, 이웃 오빠, 우리 형님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간적인 말만 하는 것이다.
본문 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창세기 3장 15절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누군 줄 알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기에 예수님의 권능을 제한시키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사고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못 뜨게 한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기에 사탄은 이렇게 사람을 움직인다. 예수님을 육신적 관점에서만 보지 그 이상의 것을 못 보게 한다.
육신의 관점으로 예수님을 본 유대인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았다.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스라엘은 사탄의 종노릇만 할 뿐이다. 그들의 후손은 지금도 전쟁의 불길 속에 파묻혀 있다.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정복자들의 말로가 너무나 비참해져 있다.
→ 하나님의 권능,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나타내 보이심에도 육신적 관점에 머물면 영적인 눈을 열지 못한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다윗의 가문, 요셉의 혈통으로 오셨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하고 결혼식 올리기 전에, 동침하기 전에 처녀인 마리아의 배에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이다. 그것을 요셉도 알고 마리아도 알고 그의 가족들은 성경대로 진행되고 있는 역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육신적 관점, 인본주의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다. 바로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권능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라는 곳까지 못 넘어간다. 모든 문제 끝! 고백하고도 육신적 관점에서 죽을병이면 죽어야지 생각한다.
구원 얻을 사람과 구원 얻은 사람만이 이해되는 부분이 본문말씀이다.
→ 유대인들이 어떤 실수를 했는가? 그들의 인간성이 더럽고 나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어두운 게 문제다. 육신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자기를 넘어설 수가 없다.
‘저 예수는 목수 하던 사람이요. 목수의 아들이요. 요셉의 아들이라. 나보다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나의 형님일 뿐이다. 우리와 늘 같이 살아왔던 사람인데 뭐가 일어나겠냐.’ 권능이 나타나고 지혜가 나타나고 지금 하나님의 힘이 느껴지는데도 육에 머물러 있다. ‘어찌 저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냐. 우리를 구원할 자요. 마귀의 일을 멸하실 자요.’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리스도 이름 부른다고 뭐 금방 뭐가 일어나?’
→ 사람이 왜 망하는 것을 모르면 후대와 자녀들도 망한다.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내어 마귀의 종노릇, 율법의 종노릇, 지식의 세상의 종 노릇 한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사탄을 이기는 두 가지의 일만 하자. 그리스도로만 사탄을 이긴다. 사탄은 질병을 안겨주는 놈이다. 심령을 빼앗고 멸망시키려고 저주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놈이다. 세상 풍습을 좇고 육신적 눈과 지식의 눈으로만 살아가게 만드는 놈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의 일을 멸하자.
또 마귀는 인간관계를 승리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인생 살면 사는 만큼 원수만 맺는다. 이제부터는 원수 맺지 말고 사람을 살리고 인간관계에서 승리하는 멋쟁이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나에게 고발이 많이 들어온다. “목사님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고, 이런 사람입니다…”
부부 관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모든 걸 서로 덮어주는 것이다.
육신의 것, 세상적인 것을 덮어주지 못하면 마귀의 일을 멸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시대의 전도자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시대를 바꾸는 정복자들이라면 인간관계부터 성공하기를 축복한다.
그리스도의 권능을 배척하는 인본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육신적 관점에서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이 하는 일을 보다가 서로 원수 맺는다.
→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인본주의에 머물러 있으면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 권능 알고 사람 관계에 승리하는 비밀을 알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한다.
우리가 육신적, 세상의 방법으로 살면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어느 날 자녀들에게 영적인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다. 탈선과 방황과 게임, 마약 중독에 빠져든다.
→ 예수사랑교회는 영혼을 치유하는 교회,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다. 영안을 열자.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자. 창세기 3장, 하나님 떠난 원죄가 지금 내 몸을 장악하여 노예로 끌고 가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 마을 사람들이 영안이 어두워져 저지른 실수가 무엇인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병들, 병명을 알 수 없는 정신의 문제가 있음에도 구원을 받지 못하기에 권능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견고케 되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 안전지대가 없는 이 시대에 불안, 낙심, 절망 속에 살다가 병들면 큰일 난다.
요셉은 형들이 그렇게 자기를 잔인하게 대했어도 창세기 3장 15절의 영적인 눈을 뜨고 성공자가 됐다. 그리스도의 권능은 요셉 자신의 영혼을 치유시키는 권능인 것을 확인했다. 그런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인간관계에 승리했다. 심지어 자신을 강간범으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낸 보디발의 아내까지도 살려주었다. 요셉이 움직이는 곳곳마다 사람 관계에 승리한 증거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눈은 달랐다. 다윗은 영안이 밝았고, 골리앗은 육신의 눈이 밝았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외쳤다. “네가 모욕하는 창세기 3장 15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는 너에게 간다. 골리앗 너는 지금 착각한 거야 이 자식아. 여호와 앞에는 칼과 창으로 대항하는 게 아니야. 이미 나는 창세기 3장 15절에 영적인 눈을 뜨고 사자와 곰의 발톱을 꺾을 수 있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이름의 사람이다. 너는 여호와 앞에 오늘 무릎 꿇는 날이 올 것이다.”
영안이 밝아야 승리한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 아버지 다윗이 나이를 들어가고 어제 죽을지 모르니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전에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신하들이 말을 하자, 압살롬은 영안이 어두워서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압살롬은 한밤중에 반역을 일으켜 다윗의 침실로 쳐들어간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반역을 일으킨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 조용히 도망쳤다. 물론 다윗에게는 능히 싸워 이길 수 있는 특수병들이 있었지만 도망간 것이다. 도망을 가던 도중 시므이라 하는 자가 다윗을 향해 저주를 퍼 부었다. “다윗 너는 이제 여기서 끝났다!”
영안이 안 열린 시므이는 다윗이 끝난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삼하16:7
그때 다윗 옆에 있던 장군이 명령만 하면 단칼에 저놈을 베겠다고 했다. 그 때 다윗은 자신의 아들에게도 배신당했는데 시므이가 저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의 억울함을 그분이 아신다. 하나님은 왜 저 사람의 입을 열어 저런 비난을 듣게 하시는지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인간은 영적인 문제가 풀려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진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 육신적인 축복도 다 따라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배척하는 인본주의를 버리는 생일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마침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영적인 눈이 열리면 아, 정말 귀신들이 있고 악령이 있고 흑암 세력들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오늘 영적인 눈을 사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날을 주셔 감사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문제를 먼저 풀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마귀의 일을 멸하는 주인공이 되게 하옵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나의 대속자 그리스도의 권능을 믿는 자가 되게 하옵시며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따라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육신적인 눈을 뜨게 하셔서 예배에 참석하게 하시고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나에게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이제부터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사오니 이제는 내가 이 사회생활 속에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보아야 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이제는 찾아낼 수 있도록 지식의 눈도 열어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영적인 눈을 뜨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사오니 흑암 세력과 영적 전쟁을 통하여 우리 삶에 무너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남은 생에 세계복음화 선교를 제일 많이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영적인 눈이 병들지 않도록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권능을 배척하는 인본주의로 인해 영적세계에 무감각하여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사탄의 종노릇하는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도록, 예배를 통해 영적인 눈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더러운 귀신이 붙은 옛 신분에서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불신앙으로 파고들어 사람의 말로 위로 받으려 하게 만드는 공중권세 잡은 자를 결박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내 몸에 전도하여, 육신적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나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람의 모든 것을 덮어주어 인간관계에 성공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는 지식의 눈을 열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시대를 바꾸는 그리스도의 그릇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