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누린 근원적 축복"
(창/创 25:1-18)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해놓고도 문제 속에 갇히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자신이 있음을 실감하고, 하나님이 주신 창3:15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조건 없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축복하셨다.
하나님을 육체로 믿으려고 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신앙생활이다. 기독교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왜 영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늘 함께하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그런데 이 땅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육체의 하나님을 믿도록 ‘종교’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도 교회 마당뜰만 밟을 뿐, 실제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누려보지도 못하고 지옥과 같이 살다가 지옥 같은 삶만 살 뿐이다. 우리가 육체로 살면 이 땅은 지옥이다.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살 때 누림 속에 육체도 해방을 받는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멋있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그리스도 한 분만 믿으면 다 해결될 일인데,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문제가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 모든 문제를 다 끝내주셨으니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신앙을 가졌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자손이 자기와 상관없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자손이 많아야 나라가 형성되고 땅을 정복하게 되고 밟는 땅도 넓어진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축복을 다 받은 자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점점 정신병의 상태로 간다. 복음의 말씀을 영혼에 새기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어떤 부인이 나에게, 자신은 예수사랑교회를 다닐 때 한 번도 복음의 말씀을 자신에게 새겨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생기가 새로 주어지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이 땅을 정복하고 에덴의 축복을 상실하게 않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복음에 관하여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영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사랑교회에서 복음의 말씀을 받으면 반드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통해 세상을 정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래서 자신도 살릴 뿐 아니라 가문도 살리고 다른 이웃도 살리는 창3:15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몸에 하나님의 망대가 세워진다.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믿는다. 그래서 요지경으로 사는 것이다. 자신을 믿으면, 자신이 가진 악한 선입견으로 인해 많은 사람을 해치는 자가 되고, 모든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원수덩어리로 산다.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감람산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해주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된다. ‘아,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하나님의 방법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구나’
그래서 세 가지만 하면 된다. 먼저, 자신과 영적전쟁(자신), 내가 살고 있는 요지경 세상 속에 강한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이상한 상태로 전락시키는 것(환경, 세상), 나를 컨트롤하고 있는 사탄의 머리(사탄)를 깨뜨리는 것이다. 이 세 가지만 하고 싶다면 하나님이 주신 창3:15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이 이상한 상태가 되지 않는다. 어느 장로님은 시간이 갈수록 미쳐가는 것을 보았다. 또 교회 안에서 어떤 반주자로 있던 권사님 한 분을 보았는데, 완전 귀신들린 춤을 추고 돌아다니면서 목사님들 세계에서 창녀라는 소리를 듣고 다녔다. 얼마나 심각한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방법, 하나님이 주신 비밀이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교회를 다니면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복음을 교회를 다니는 증거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를 다닌다면 늙어가면 안 된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언제나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아야 한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성령이 내주, 인도, 역사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이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어도 밤낮 기뻐하는 것’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늘 이렇게 찬양할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복음의 말씀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성경을 한 장씩만, 중심을 다하여, 눈을 크게 뜨고 한 자 한 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모든 응답이 있고 살아가야 할 방법까지도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골수까지 치유 받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로 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 모이기를 힘쓰는 언약의 백성들로서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행5:42이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이 가르침을 받고, 금토일 시대 속에 금요일은 기도 속에, 토요일은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주일 예배 때 말씀을 받으면 현장을 정복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괜한 폼만 잡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진짜 증인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한다는 것은 현장을 정복하는 일에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늘 발견하게 된다. 현장 속에서 사람을 만나야, ‘아, 하나님이 창세 전에 나를 예정하사 택하시고 영세 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을 나를 통해 나타내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내가 전도한 이 사람도 하나님이 부르신 거구나’ 이것을 발견하고 한 번의 만남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당위성, 필연성 속에 함께 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나의 생애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기에 나의 죽음도 정하셨다.’ 아브라함은 여기에 누림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에 충만해지면 시한부 인생 속에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았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지 못하면 히9:27에 걸려들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25:41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왼편에 있는 자가 아니라 오늘 편으로 옮겨야 한다. 반드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반드시 해방 받아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마귀와 그 사자들과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여기서 벗어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상급을 주신다. 아브라함은 만남 속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마10:40에 있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아브라함을 영접하는 자는 창3:15 그리스도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영접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기본이다.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아브라함은 인생 여정에 후손들까지, 단 한 사람도 원수를 만들지 않았다. 사라가 일찍 죽은 이유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라가 그들을 용서했다면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시기, 질투하지 않으면 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시기, 질투, 집착, 과거의 상처로 살기 때문에 오래 못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다음 이스마엘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주지 못했던 재산도 선물로 나눠주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고 계셨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넉넉하고 끝없는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하나만 생각하면 매력 덩어리가 아니라 축구공보다도 못한 인생이다. 언제나 사람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일을 잊지 않으면 하나님의 통치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급을 누리게 된다.
바울이 로마서 4장부터 아브라함을 설명하면서 롬6:6 귀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아브라함과 바울이 발견한 비밀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꾸 자신을 믿기 때문에 용서도 못 하고 늘 집착과 시기, 질투, 열등감, 비교의식 속에 이상한 잔머리로 사탄의 공격에 걸려들어 지금까지 고생하는 것이다. 자기를 믿기 때문에, 작은 말 한마디만 들어도 자기 머리를 쥐어뜯거나 자기 몸을 자해한다. 결국 자신 안에 있는 사탄을 발견하지 못해서 늘 종노릇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알았다면 그리스도를 그대로만 믿으면 된다. “다 이루었다.” 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음을 그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 우리는 원래 롬5:6 절대 불가능 속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하나도 이길 수 없고, 세상 환경 하나를 다스리지도 못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특히 영적인 세계를 이길 힘이 없어서 흑암으로부터 24시, 25시 공격을 당하여 우리 몸이 사망의 몸에 고통과 재앙을 받으며 지옥같이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주시려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그것을 믿지 않는다.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연약함이 사라지고 사망에서 생명의 사람으로 바뀐다. 우리는 롬5:8의 죄인 된 출신이기 때문에 사는 것이 죄인이었던 존재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예측 불허의 사람, 정말 쓸모없고 버림받아야 할 죄인이었다. 이 죄인인 나를 살리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과 보호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너무 좋아~’ 그 이름에 리듬을 타야 한다. 말씀의 리듬, 기도의 리듬, 전도의 리듬을 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죄인인 내가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확증을 받은 자가 되었는데 왜 그리스도가 부끄러운가? 죄인으로 살기 때문에, 나로 살기 때문에 부끄럽다고 하는 것이다.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다시 후처를 얻었다. 이것을 보고 율법에 매인 사람은 아브라함을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한다. 롬5:10 우리의 신분은 전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다. 그 속에서 재앙과 저주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
자기 수준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과거를 버리고,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믿어야 한다. ‘하나님 나를 아시죠? 나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헌금과 헌신을 했어요.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시나요?’ 이것을 요지경이라고 한다. 자기 선입견에 잡혀서 신앙생활을 하면 남편과 자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족들을 살인의 눈빛으로 보는 것뿐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공격을 받았더니 한 방에 무너져버렸다. 인간은 절대 불가능하다. 또한, 모든 사람을 네피림이 장악해서 육체로 살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땅 사고 집사고, 남자는 룸싸롱 가고 여자는 명품 사고, 여행가고, 애완동물 키우는 이런 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 귀신이 우리가 키우는 동물 속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 때문에 집 밖에서 키우라고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흑암이 내어 쫓기면 짐승에게 들어간다. 그리스도 이름을 축사한 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래서 집에 있는 애완동물에게 물리기도 하고 시달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결단도 하고 세계복음화의 부르심에 합당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멋스럽게 사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면 인생 여정은 욕망의 칼춤만 출 뿐이다. 늘 욕망이 날개 짓하게 만들어서 우리 삶을 다 비참하게 만든다. 그래서 잠시 행복해 보이지만 죽음 앞에서 종교적 몸부림만 하다가 죽는다. 종교를 생활화하면 문화 우상, 점술 박수 귀신들림으로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가장하는 것뿐이다. 결국, 개인의 문제 해결 없이 사람의 상태가 혼돈, 공허, 흑암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자기 상태를 자신만 모르고 산다. 그래서 늘 유리 방황하면서 불투명한 안개와 같은 인생을 살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시스템에 갇혀 허무하게 가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병으로 인해 우리 자녀들은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면서 탄식 속에 있지만, 그들의 신음 속에 귀를 기울여보지도 못하고 같이 웃기만 하다가, 어느 날 자녀가 자살하는 비참한 일을 겪는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은 무시무시한 경쟁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눅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다. 자녀들이 밥상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 시대 속에서 인생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가 되었다. 우리가 부모라면 정시기도 속에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복음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사명의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자녀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지금 헐떡거리고, 언제 어느 때, 어떤 재앙을 만날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안전지대가 없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달해주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밖에 없다.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 복음의 말씀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셨고, 롬8: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사망 상태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들이 먼저, 자녀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이 가르침을 받은 복음의 말씀을 전달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로마서 16장 주역 제자반, 전도신학원 이라는 예수사랑교회 훈련소를 세웠다. 로마서 16장 주역 제자반에 들어가면 영세전에 감추어놓았던 하나님의 비밀을 1인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다. 전도신학원을 통해 가정과 가문을 살리는 자, 재앙을 막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훈련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있는 것이다. 롬8:9, 그리스도가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롬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우리 자녀들이 예배에 나오는 것이다. 굴복시킬 힘, 영적인 힘을 갖기 때문이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먼저 영적인 존재로서 영이 회복되어야 육체도 누리게 된다. 절대 불가능의 사람이 이제는 절대 가능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후처도 생간 것이다.
*아브라함이 후손 앞에 인생의 마지막을 너무 잘 정리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갑자기 죽지 않고, 정리를 잘 해놓고 죽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영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육체도 영의 힘에 따라와 정리도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이렇게 정리하는 응답을 받는다. 칼빈도 폐결핵과 기관지 천식으로 고통 속에 있었지만 50권의 책을 썼다. 기침이 자기 몸을 강하게 찌를 때마다 기도 속에 있었더니 놀라운 예언서, 예정론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을 때 정리를 잘하고 멋있는 유언장을 남겼는데, 그 유언의 내용이 전부 기도 내용이었다. 육신의 기준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후처를 남겼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인생을 잘 정리하고 갔는지를 봐야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후대에게 근원적 축복을 남겼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손자까지 보고 죽었다. 에서와 야곱이 15세에 아브라함이 죽었다. 이삭과 거리를 두고 살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이 안 되었을 뿐이다. 아브라함처럼 기도로 만나고 후대를 위해 늘 기도하면 된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후대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할아버지 소리 한 번 들으려고 늘 사진을 들여다보고 전화를 한다. 인생의 마감을 알고 잘 정리하는 사람은 노인처럼 살지 않는다. 우리는 노인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가진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3:15,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운명이 바뀐다. 절대 불가능의 사람이 절대 가능의 사람이 된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사탄이 강하게 우리 몸을 육체로 솟구치게 하고 올라오게 할 때마다 언제나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힘을 가진 자, 언약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세계복음화, 237 디아스포라 미션, 5천 미종족을 살리는 예수사랑가족이 되기를 축복한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창3:15을 가지고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성막, 장막, 회막을 가지고 언제나 후대들까지 아브라함의 작품을 따라 하라고 체질화시켰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성취되었다는 것을 정리해놓고 하나님의 품으로 간 것이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사명을 받고 175세 때 생을 마감했다. 아브라함은 100년의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만 믿으면 모든 문제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문제 끝” 하는 사람은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복음화” 정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아브라함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래서 가나안에 정착했다. 어떤 땅인지 몰랐지만, 가나안 땅이었다. 지구의 가장 중심, 멋있는 땅 가나안, BC와 AD의 전환점 그리스도, 창3:15이 태어날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그리스도만 믿었더니 후처까지 보고 갔다. 인생을 한 번 더 살고 싶다면 그리스도만 믿는 자가 돼라.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정말 믿으면 희망이 생긴다. 겸손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말씀이 성취되는 교회에 딱 붙어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성질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에게 엘리에셀과 같은 은혜를 주셨으니, 나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이 성전이 나의 몸이 되길 원합니다’ 하는 것이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후처를 통해서까지 큰 민족을 이루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엄청나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로만 연결하면 그대로 성취된다. 이렇게 위대하고 좋은 말씀을 내 몸에 새기지 않고 그냥 헛소리로 살기 때문에 응답도 없이 사는 것이다. 창대케 하리라는 그 말씀을 아브라함을 통해 그대로 성취하셔서 4300년이 지난 예수사랑교회까지도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셨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방해하는 자들을 저주하고 끝내버리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그 사람도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였다.
아브라함이 잘 하는 것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성막, 장막, 회막을 새기고 살았다. 창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성막, 장막, 회막에서 삼위일체 그리스도 하나님을 알았다. 우리가 이것을 누려야 한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아브라함이 순보가고 순종할 때 불가능의 재앙이 무너지는 응답을 받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조카가 떠난 다음에 아브라함이 불신앙을 끊어버리고 결단했더니 하나님이 창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창13:16~17,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네 자손이 티끌과 같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하갈과 사라, 그두라 이렇게 세 명의 부인을 갖게 되었다. 후처를 두었는가 두지 않았는가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복음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복음을 잃어버리면 하갈처럼 된다. 아브라함이 준 복음을 절대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하갈도, 그두라도 축복을 받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땅과 자손, 미래까지 복의 성취되는 것을 후손에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해놓고, 가문의 축복을 후대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죽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지목했었다. 그런데 임신 못 하는 사라 대신 여종 하갈을 선택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성막과 장막에서 하나님을 향해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며 단을 쌓고 번제만 드리는 일만 했는데, 예배만 즐기고 기도의 흐름만 타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길 원합니다 기도만 했는데 성삼위 하나님이 나그네처럼 나타나셨다.
창17:15~18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에셀과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넉넉한 마음이 나타난다. 엘리에셀 그의 종도 상속자로 주고 싶었고, 하갈이 낳은 아이도 상속자로 주고자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씨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창3:15 생명의 씨,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그 씨를 심는 자는 반드시 사라의 몸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씀했다.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다 성취되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잘 되도록 기도했던 것이 또 창21:17~18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이 기도한 사람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이것이 교회에 흐르는 축복이다. 아이의 이름을 기록하고 결국 그 아이가 이스마엘이 되어 12지파를 거느리는 큰 대부가 되었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는 자녀에게까지 연결되어 응답으로 온다. 그래서 아무리 이상한 자식이라도 나와 상관없이 우리의 기도는 자녀에게 연결된다. 그래서 창25:12~18 이스마엘과 하갈,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이 움직여 가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면서 후처를 기록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힘을 얻은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이 움직여 가신다. 그래서 새 힘을 얻은 증인으로서 절대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혼자 사는 것도, 아이를 못 낳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실족하고 넘어지고 버림을 받아도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새 증거는, 절대 그 사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삭은 헤브론을 장악했고, 이스마엘이 애굽 가까이 있는 데까지 가면서 아브라함은 북쪽 가이사라 빌립보 지역 헐몬산에 흐르는 북쪽을 다 정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후처를 통해 중동지역을 전부 정복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손을 주셔서 정복하게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힘을 얻으면 새로운 증거의 터전이 시작된다. 복음은 무엇이든 우리의 수준과 선입견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힘이다. 이삭 외에는 상속자가 없다는 것까지 하나님은 메시지를 주셨다. 이스마엘은 다른 복음, 후처 그두라를 통해 여섯 명의 자녀들도 틀린 복음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선물을 주셨다. 하지만 선물만 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삭 곁을 떠나 동쪽으로 자손을 계속 뻗는 축복만 받았다. 남쪽 팔레스타인 기구를 만들어서 이스라엘에 적대감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깨우치는 국민으로 있을 뿐이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뤄가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원에 대한 약속을 통해 후처를 얻어도 보호를 받았다. 원수 덩어리 이스마엘도 결국 아브라함에게 복종하여 자기의 장례식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가셨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삭의 결혼 후, 사라도 죽고 아브라함이 홀로 남았을 때 아브라함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38년 정도를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으로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멋있는 인생을 살게 하셨다. 땅을 차지하고 자손을 만들어야 하는 번성의 축복을 받아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이뤄가신 것이다. 창 3장에 갇혔던 요지경의 사람이 창3:15로 영적인 눈을 뜨면 그리스도의 의로 살게 된다. 그리스도로만 해결되고 그리스도로만 가능해지고 그리스도로만 희망이 온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그리스도, 그 자체를 그대로 믿으면 우리는 드디어 육신적인 것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게 된다. 하나님의 의를 따르고 믿었더니 하나님이 이런 사람까지도 나에게 허락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강한 민족을 만드셨고, 그의 후처는 번창하는 족속으로 만들어주셨다. 아랍, 중동에 엄청난 번창의 족속이 살고, 남쪽으로는 강한 족속이 살아서 이스라엘이 믿음이 없으면 덮어버리고 믿음이 생기면 해방되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쓰고 계신다.
강한 족속, 번창하는 족속을 유일하게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은 창3:15의 씨를 심은 사람밖에 없다. 그가 바로 이삭이었다. 창3:15의 씨가 심겨진 이삭에게 “대적의 문을 취하리라” 하셨다. 갈3:28~29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이렇게 근원적 축복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희망이 이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창25: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창3:15 하나님이 약속한 복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창25: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창15:13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 엄청난 재물을 얻어서 나오게 될 것을 다 정리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약속한 그 수가 아주 많았다.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수가 굉장히 높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의 인생 여정에 그리스도로 이뤄진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24시 누리는 인생을 살았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 말씀을 믿어 사라도 애를 낳게 되었고 아브라함 자신도 140세에 힘을 얻게 되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아브라함에게 성취된 이 말씀이 우리 삶에 그대로 성취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누린 근원적 축복을 우리들이 이 시대에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방법을 알게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말씀해주셨사오니,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증인이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모든 것들을 치유하며 골수까지 치유하여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힘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성취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몸이 되었사오니, 하나님의 계획을 현장 속에서 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 속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님의 절대 상급 속에 전도자의 길을 가게 하옵시고, 영접운동을 일으키는 근원적 축복을 통하여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자손들에게도 근원적인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그대로 믿는 자를 통하여 근원적인 축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이젠 알았사오니 그리스도를 그대로 믿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이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육신 신앙에 갇혀 영적인 힘없이 사단에게 늘 공격당하며 지옥처럼 살아야 할 절대 불가능의 인생에서 빠져나오도록, 창3:15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갖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육신의 생각과 선입견, 욕망을 무너뜨리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영접운동을 일으키며 말씀으로 현장을 정복하도록 오직 창3:15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의로만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복음의 힘을 가지고 근원적 축복을 받은 나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기에,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절대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알고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로 새로운 힘을 얻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는 믿음 속에 후대에게 근원적 축복과 영원한 작품을 남기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