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종의 자세"
(창/创 24:28-49)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세계복음화 할 수 있도록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로 지금 함께 하신다. 우리 몸에서 이것을 느낀다면 내 몸에 가증스러운 것을 토해낼 것이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것이 내 영혼을 짓누르고 얽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숨길 것 없이 이것을 토해내는 것을 ‘스토리’ 라고 한다. ‘자아’라고 하는 것이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얼마나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마음껏 자랑하고 싶은데도, 막상 사람을 만나면 그리스도 하나가 고백이 안 된다. 그래서 현장에 자주 가서 영접운동을 계속 지속하면 드디어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으려면 반드시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했다. 고난은 얻어맞는 것이 아니다. 인내로 결실하는 자가 고난 받는 자다. 영접운동을 지속하는 사람은 이미 고난을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그 이름에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가를 우리 자신이 몸에서 체험해야 한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인내의 결실을 하지 못하면 배반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했다.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로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나를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내 몸에 불신앙의 찌꺼기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신1:36~38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와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온 축복이다. 나의 자아를 없애버리고 바르게 표현해야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다.’ 그러면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내 인격과 상관없이 성령의 소리를 선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갈렙은 85세 나이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과 영적싸움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로부터 어마어마하게 쓰임 받는 능력자가 되었다. 내 몸에 더러운 찌꺼기를 토해냐는 것, 이것이 어버이날을 맞아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는 비결이다. 우리 몸에 있는 더러운 찌꺼기를 토하면 그리스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창3장을 토해내는 힘을 갖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까지 멸망을 받게 된다. 언제나 우리 몸에 ‘마귀 있다!’ 이것을 토해내야 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자꾸 머뭇거리게 되고 뭔가 어색하게 된다. 자기 것을 토해내지도 않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전하는 사람도 어색하고 듣는 사람도 답답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신과 인내의 결실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자신과 영적싸움이 없는 사람은 배반하는 사람이다. 신1:37, 영적인 비밀을 폭로해주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구원을 못 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더러운 것을 토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메시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창3장 원죄로 인한 죄의 권세, 사망권세, 사탄의 권세로부터 길들여졌던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광명한 천사로 나 자신을 가장하여 하나님을 속인 자, 이렇게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살리셨다’고 자신을 토해내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의 지배를 받아 오히려 진노의 자녀로 살고 있다.
신1:38, 갈렙과 여호수아는 더러운 찌꺼기를 늘 토해내는 가장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되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신을 장악한 분노와 선입견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모든 불신앙의 찌꺼기를 불에 태워버렸다. 율법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창3:15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의 머리를 내리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 땅에서 율법에 길들여지면 율법으로 살아야 의로운 사람, 진실한 사람, 깨끗한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율법의 가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속이려고 하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사람을 속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창세기 3장을 깨뜨리면서 산다’ 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의롭게 여기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권세, 지옥권세, 사탄권세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고,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 에녹은 한 번도 더러운 언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유다서에 기록되어있다. 더러운 언어가 솟구칠 때마다 뱀 대가리를 깨뜨렸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래서 우리가 사탄을 폭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데려가신다.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것, 하나님이 주신 창3:15 언약의 증거를 받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엘리에셀은 종의 자세를 한 번도 잃어본 적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종의 자세를 갖추고 사는가? 너무나 시건방지고 오두방정을 떨고 배은망덕하며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철저하게 속이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지는 않은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언제나 종의 자세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이 복음의 스토리를 갖는 것이다. 내 몸에 세상의 기준에 길들여져 사람들이 알아주기 원하고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이 사라져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엘리에셀은 언제나 머리 숙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라반과 리브가, 그의 가족들이 보았다. 그가 어떻게 종의 자세를 갖추었는지를 본 것이다.
그의 기도의 결과로 이삭의 부인을 얻게 되었다. 자기 주인의 아들의 부인이 될 사람을 얻고자 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묵도하고 찬양하며 기도했을 때, 어떤 응답이 왔는지 복음의 스토리가 본문에 기록된 것이다. 엄청나게 눈치도 빠르고 욕심도 많은 현실주의자 라반이 허락을 했다. 창24:31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사탄에게 길들여진 욕망으로 가득한 현실주의자 라반이 그의 누이 리브가에게 엘리에셀을 통해 이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리브가의 코걸이와 손목 고리의 금덩어리를 보고 엘리에셀의 겸손한 종의 자세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 고백을 한 것이다.
엘리에셀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찬양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자로서 굉장히 당당했다. 교회 안에서만 당당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엄청 멋있게 당당한 사람이었다. 불신자를 만날 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처럼 멋있고 매력적이면서 당당한 그 이미지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축복한다. 창3:15의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냐, 선택하지 않을 것이냐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가 엘리에셀에게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긴 이유는, 창3:15을 바르게 알려줬을 때, 바르게 알아들은 사람이 엘리에셀이었기 때문이다.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고 실패한 베드로와 같지 않았다. 엘레에셀은 퀴리오스, 창3:15 여자의 후손,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정확히 고백하고 실천했다. 이 말씀이 신약에 와서 요일3:8 마귀의 일을 멸하는 능력 그리스도다. 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없으면 기독교인들은 조상죄, 원죄, 자범죄 속에 늘 시달려야 한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왜 갈등과 시험으로 교회 안에서 그렇게 싸우고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는가?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전부 원수 맺을 일 뿐이다. 집안 식구도 원수가 되고, 전부 고향, 성향, 성품...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어떻겠는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지만, 마귀의 일을 멸하면 죄를 짓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상속자의 대열 속에도 들어간 적이 있고, 또 상속자가 이스마엘로, 이삭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영적싸움의 달인이었다. 종의 자세로 있어도, 누가 우리를 종으로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한다. 영적인 왕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의 일만 멸하면 된다. 아브라함이 영적전쟁을 잘 가르쳤더니 엘리에셀 앞에 아비멜렉이 무릎 꿇는 현장을 보았고, 군대 장관 비골이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백성과 군대가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자고 호소했다. 아브라함이 가는 나라들마다 아브라함을 높여주는 것을 보았다. 겁쟁이 아브라함이 영적싸움의 비밀을 가지고 장막에서 영적싸움의 기도를 시작했을 때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그의 종이 발견하고 확인했다. 창3:15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만왕의 왕, 출3:18은 피의 제사로 인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출애굽 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산에서 숫양이 준비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 이름을 붙였다. 막10:45 우리의 대속주가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갈보리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대적의 문을 취하게 되리라” 막을 자 없게 만드셨다.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대적의 문을 취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데 왜 그분을 자꾸 숨기려고 하는가? 우리 몸에 불신앙의 찌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잔머리, 인본주의 그만 쓰고, 종교 생활을 그만 멈추고, 내 몸에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셨다는 고백이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그래야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드디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고 사건마다 아브라함의 일들 속에 개입하시는 것을 그의 종이 보았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알고 길, 진리, 생명의 하나님께 한 달 기간의 맹세를 받고 이삭의 부인을 얻기 위해, 기도 하며 그 여정을 갔을 때 그대로 응답이 되어졌다는 것을 라반과 리브가의 집안 식구에게 다 알려주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아브라함이 체험했더니 이제는 열방이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우리가 뜯어버릴 것을 뜯지 않고 태우지 않으면 흉측한 사람이 된다. 예뻐 보이는 것 같지만 착각이다. 옛 사람의 더러운 것, 덕지덕지 붙은 것을 가지고 살지 말고 확 불태워버려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엄청난 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그 고백을 하고 실패했다. 자신이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진실된 고백을 듣게 하셨다. 육신적 사랑을 없애버리라는 것이다. 친구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도 없애버려라. 오직 아가페적인 사랑, 목숨 건 사랑만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사랑하신다. 지나가다가 그냥 “주는 그리스도시오” 던지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건 사랑, 내 몸과 바꿀 수 있는 사랑, 그 사랑을 하나님은 필요로 하신다. “내가 너희를 위해 내 몸을 주었으니 너도 이제는 네 몸을 나에게 줘라. 그러면 나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짐을 짊어져봐야 아무 필요가 없다. 그래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의 열쇠를 갖게 된다. 우리는 천국 열쇠를 가지고 다닐 사람들이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자들이 아니다. 작은 갈등 속에 있는 엄청난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복음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결과는 옛 사람의 틀 속에 늘 갈등과 시비 속에 사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늘 갈등, 분노, 시비 거리를 찾아냈다. 사울왕도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시비 거리를 찾아내고만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것을 마귀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마귀의 일이라는 것을 전혀 자신이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창3:15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갈등과 시비, 이런 모든 것이 마귀의 것이라는 것을 알면 창3:15 언약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게 된다. 그래서 어린 요셉이 총리의 자리에 오르고 다윗도 20년 만에 왕좌에 앉게 되었다. 사울왕이 다윗을 괴롭히지 않았다면 다윗은 최고의 왕의 자리에 앉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다면 그것이 응답이다. 우리에게 갈등과 시비 거리를 던져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에 우리의 영혼이 좌지우지 된다면 그 사람은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어려움과 환란, 알 수 없는 갈등과 시비 거리가 일어난다면 큰 그릇으로 나를 준비시키면 된다.
*엘리에셀은 수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 시비거리도 많았지만 기도 속에 전무후무한 응답을 찾아내어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종이 되었다.
그리스도로만 운명이 바뀌고 방법이 바뀌고 가문과 자녀가 바뀌고 자신이 바뀔 수 있고 재앙을 막는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에셀 자신의 몸에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후대와 후손을 살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엘리에셀이 알았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세계복음화 할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배할 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던지 하나님이 스테이크를 다 비우셨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성삼이 하나님을 잠시 만났을 때 하나님을 너무나 기쁘게 여기고 경배하고 찬양했던 사람이 바로 엘리에셀이었다.
누가 세계복음화를 하고 있는가? 종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세계복음화를 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신분이 되었음에도 세계복음화는커녕 세계복음화 할 힘도 없이 늘 헷갈리고 갈등 속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모든 문제 끝” 하고 갈등, “마귀야 가라” 하고 갈등과 시험. 이런 사람은 영적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살면 엄청난 열매가 나타난다. 인본주의 힘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생명을 걸면 겨우 먹고 사는 수준이 된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세계복음화 할 힘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집안 전체를 뒤집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랑했더니 호텔비, 밥값도 안들이고 엄청난 대접을 받았다. 세계복음화 할 언약, 하나님의 힘, 그리스도를 갖는 자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어설프게 믿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뜨겁든지 차든지 하지 않고 어설프면 토해버린다고 하셨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기력과 무능 속에서 ‘아파요’ 하지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끝!” 하고 일어나라.
창24:33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세가 이미 달랐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어떻게 가감 없이 메시지를 선포하는지 볼 수 있다.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내 자손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본향까지 나를 이끌어주시는 길과 진리, 생명 되신 하나님을 믿으면 자세가 달라진다. 리브가 가문이 아브라함의 종 앞에 음식을 베풀어 주었지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습니다” 했다.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았다. 엄청난 영적 세계를 알아버렸다. 나와 식사 약속을 하고 내가 조금 늦으면 배고픈 것 하나를 못 이겨서 나한테 열다섯 번 전화를 한 사람도 있다. 영적인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세가 달라야 한다. 가끔은 일부러 약속시간에 늦어보기도 하고 일부러 세시쯤 점심을 먹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배가 고파서 얼굴이 노란 상태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임마누엘이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위대해지고 멋있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숙성되는지 알게 된다. 내 일을 완전 해결하기 전까지는 절대 먹지 않겠다고 엘리에셀이 선언한다.
엘리에셀은 분명한 기도 응답을 자기 몸에서 체험했다. 창24:34~41, 자기 주인 아브라함이 어떻게 재벌이 되었고, 어떻게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이삭이 탄생되었는지 자세하게 메시지를 했다. 자기 주인 아브라함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명확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당신의 사타구니 허벅지에 자기 손을 끌어다가 맹세시켜놓고 기도제목을 주어 이 여정에 왔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지금도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기도하고 있고, 자신 또한 기도 속에 있는데 보좌의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그 기도제목에 응답해주셨다는 것을 고백한다. 자신이 물 긷는 곳에 있는데 여자 아이가 물동이를 메고 와서 나에게 물을 먹이고 약대에게까지 관심을 두고 물을 먹인다면 그 사람이 곧 내 주인 아들의 부인이 될 것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그 응답을 보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자기 몸에까지 전달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아브라함에게 인치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응답을 보고 머리를 숙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수는 그리스도” 찬양했다. 머리를 숙여 경배하고 그 이름을 높여 리브가 앞에서 찬양했다.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시는 그리스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리브가가 이것을 보고 감동한 것이다. 얼마다 하나님을 멋있게 찬양하고 경배했던지 리브가에게 갈등과 의심이 없었다. 엘리에셀을 따라갔던 종들마저 똑같이 일체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했다. 아브라함의 종들에게까지 창3:15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하나님은 이 종에게까지 은혜와 사랑과 긍휼, 자비와 진실과 성실함을 베푸셨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래서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절대 상속자인 이삭의 신붓감을 보고 자기의 친아들보다 더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했다. 자신이 가장 먼저 신붓감을 만나 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는 외상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자신이 쪼그라든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 특히 교역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전도 현장의 문 하나가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자가 가는 곳마다 재앙이 찾아온다. 흑암이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만 된다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종인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요, 나에게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며느리를 내가 보았듯이, 이제 자신에게 확신할 분별력과 판단력, 결단력을 보이라고 메시지를 한다. 창24: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엘리에셀이 아주 강하게 메시지를 했다. 내 주인은 엄청난 갑부, 재벌이고, 리브가는 상속자의 부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힘을 얻은 자가 될 것이고, 열방이 당신의 딸을 통해 축복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대적의 문을 취할 것이며 불가항력적 능력이 시작될 것이니 지저분한 갈등 같은 것으로 시험하거나 테스트 하지 말고 확실하게 결단하라는 것이다. 지저분하게 입으로 하지 말고 마음과 생각, 뇌, 골수에까지 사무치도록 영접하라고 강하게 말한 것이다. 커피 얻어먹으려고, 밥 빨리 먹으려고 대충 영접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욕망의 사람, 잔머리를 잘 쓰는 라반, 계산적인 라반이 엘리에셀이 경배하는 모습과 찬양을 본 다음에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가 맞구나’ 인정할 만큼 상대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늘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어떻게 일을 해야 주인이 인정할 만큼의 사람이 되는지, 상속자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지 본문에 잘 나타난다. 내가 예수사랑교회 교역자로서 어떻게 일을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가? 내가 예수사랑교회 장로로서, 중직자로서, 직분자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가?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종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재상산도 안 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야 하고 벌써 인생을 자살로 마감해야 하고 아니면 중독자로, 운명 사주 팔자에 사로잡혀 마귀에게 질질 끌려 다녀야 할 기구한 운명의 굴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자녀를 삼아주셨지만 이제는 더 낮은 종의 자세로 살기 원하오니 내게 은혜를 주옵소서’ 이 속에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인됨을 철저하게 부인하며 살아야 한다. 엘리에셀은 마귀를 대적하며 아브라함의 말에 순복하며 살았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말에도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며 종의 자세로 살았다.
우리 예수님도 눅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했다. 내 몸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현장에 영접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하고 더럽고 추악한 자아는 욕망과 탐심뿐이다. 이 땅의 욕망과 탐심으로 쌓아놓는 것은 죄가 되고 사라지고 헛된 것뿐이다. 오히려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살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가 되고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된다. 그래서 이런 것을 없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육이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는 언제나 자아를 부인하는 자다. 그래야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
언제나 기도 속에 있었던 엘리에셀은 영적인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분별력이 있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먹지 않겠다는 종의 자세를 보였다. 아브라함이 하시는 그 일에 자신이 동참했기 때문에 그 일을 마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떡 덩어리 같은 것은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삶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에셀은 종의 신분에서도 무한한 하나님 나라의 본향을 얻게 되었다. 그는 우선순위가 뭔지 알았다. 영적인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한다. 언제나 우선순위를 분별하는 일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지금 먹어야 할 것이냐, 말아야 할 것이냐, 술을 먹고 흥분된 상태에서 허락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에서 냉철하고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인지 확실했다. 얼마나 기도 속에 있는 사람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자와 성실함이 끊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종의 자세였다. 영의 양식을 먹지 육신의 정욕, 육신의 안목에 눈이 뒤집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육신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누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가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은 자기를 낮추고 종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엘리에셀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종, 하나님의 종으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창24:35~36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창3:15 언약의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갑부로, 사라에게는 노년에 아들까지 주셨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을 만난 자로, 아브라함의 종, 하나님의 종으로 당신의 집에 왔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의 아들이 40대가 되어 상속까지 마쳤으니 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종의 자세를 갖춰도 리브가 같은 좋은 규수를 만나면 이삭의 며느리로 삼기보다는 자기 며느리로 삼을 수도 있었다. 예물을 주고 가나안에 있는 자기 아들을 데려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잔머리를 쓰고 라반과 계약을 맺었을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전혀 갈등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도자는 동기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제자를 잘 도와주고 생명을 살리겠다는 가슴을 가지고 사람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온라인 시대가 왔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생명들에게 이 메시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앞으로 중국 제자들은 따로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예배처, 성막도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회당전략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엘리에셀은 복음의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라는 것에 대해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교회 안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핵심을 잘 잡고 설명해주는 사람이다. 엘리에셀의 설교는 핵심이 명확했다. 창3:15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고, 아내는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창3:15 여호와의 은혜로 노년에 아들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나를 상속자로 삼을 생각도 하고 여러 불미스러운 불신앙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쳐야 하는 믿음의 결단 속에 숫양을 통해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고, 그 아들은 열방의 복을 받고 대적의 문을 취하는 이 시대 세계복음화 주역의 아들이 되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이방 여자를 상속자로 취하지 말고, 창3:15을 처음으로 주셨던 갈대아 우르, 그 지역에 있는 족보의 딸을 찾으려고 온 것이다. 창3:15을 이어갈 믿음의 족보의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다.” 핵심이 명확하다.
창24:40~42, 창3:15 하나님이 주실 여자, 신부에 대해서 자신이 어떻게 기도 응답을 받았는지 그 증거를 말해주었다. 우선순위에 분별력을 가졌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종의 자세를 갖추고 철저하게 순복하며 자신과 영적싸움을 진행했다. 자신의 신분은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고, 기도 속에 있었더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현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창3:15을 언약으로 붙잡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그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내 삶의 여정은 기도뿐입니다” 엘리에셀은 명확한 고백이 있었다.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종의 자세를 가진 엘리에셀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게 응답해주셨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구별할 수 있는 우리가 날을 선택하여 예배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엘리에셀이 종의 자세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에게 응답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응답해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제나 종의 자세를 갖추고 복음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떠난 창세기 3장 이 원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 운명의 굴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내 몸에 허락해주셨사오니,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종의 자세를 갖추고 오직 내 삶의 여정은 기도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기도하는 종의 자세를 갖추게 하옵소서. 그래서 사람 앞에 복음의 스토리를 가진 충성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던 나를 건지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음에도 세상 기준에 길들여져 사람의 인정만을 바라며 배은망덕하고 시건방지게 구는 나를 불러주시고 성삼위 하나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내 안의 창3장의 불신앙의 찌꺼기를 토해내는 영적싸움의 인내 속에 세계복음화의 결실을 맺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신 만왕의 왕,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주신 창3:15의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기에, 어떤 어려움에도 옛 생각, 갈등과 분노와 시비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너뜨리고 언제나 기도 속에 하나님 앞에 진실한 고백을 하여, 전무후무한 응답을 받는 큰 그릇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나를 본향까지 이끄시는 하나님을 정말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한 증인으로서,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가 되어 불신자의 현장에서도 당당한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갖추고 분별력과 판단력, 결단력을 가지고 동기 없이 복음의 핵심을 명확하게 말해주는 충성된 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