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고 누리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
(창 2:18-25)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기 전에는 아름다운 관계 속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 언약, 창3:15을 소유하고 있기때문에 우리의 인생 여정에 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삶에 복음을 누리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통해 재창조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귀가 장악한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신중해야 한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핵심이 “여호와 하나님이” 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창3:15의 언약을 가지고 있어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없다. 나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내 몸에 영적 문제가 점점 자라나고 확산되어 나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많은 의문이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가 내 심령에 있었다. 내 몸에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많았다. 사람의 약점을 찌르면서 사는 이상한 체질이 내 몸에 있었고, 끊임없이 비난하고 정죄하며 이상한 미혹을 통해 서로 망하게 만드는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내 몸에서 보았다. 성경을 통해 이런 나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진단하고 확인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절대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반드시 내 몸에 와 있는 영적문제와 싸워야 살게 된다’ 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오직’ 하지 않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워도 믿어지지 않고 자꾸 거짓말이 나오는 내 모습을 보았다. 마음은 믿고 싶은데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거짓말이 나오고, 내 영혼에서는 자신의 영적문제와 싸우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언제나 불투명한 육체로 힘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대적자로 사는 것을 내 몸에서 보았다. 그래서 나는 롬7:23~24 말씀을 좋아한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자신을 향해 탄식 속에 있었지만, 롬8:1~2로 명쾌하게 답을 내고 우리에게 진리를 선언해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상태와 영적문제를 아시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메시아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문제를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 해결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이것을 믿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옛 뱀, 마귀 온 천하를 꾀는 자, 사단으로 인해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오지만,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하나님께서 창3:1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내 몸을 장악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셨다!’ 이렇게 명령하고 선포하면서 ‘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되신 예수그리스도만이 내 인생의 길, 진리, 생명되셨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것이구나’ 이 사실이 믿어졌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마12:28~29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내 속에 모든 불신앙을 제거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육체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려고 하는 마귀의 일, 뱀의 머리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깨뜨리는 것이다. 강한 자, 마귀의 일을 결박하는 이름을 사용한 이후부터 나에게 주인이 바뀌었다.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에게 종노릇하며 심부름하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육체의 정욕을 넘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그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재창조하셨다는 것이 정말 믿어졌다. 그래서 늘 고후5:17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보라 나는 이제 다르다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와 보라” 고 소개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와서 보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 여자의 후손 예수님을 와서 보라.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자신에게 이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주셨기에 후퇴하는 인생이 아니라 진보의 인생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의 축복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날 기쁨이 없고 즐거움과 행복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재창조의 역사 속에 기쁨과 행복, 즐거움이 시작된다고 성경은 말씀했다. 창3:15 절대 언약으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회복시키는 자에게는 “네 생애, 이 땅을 마치는 그날까지 돕는 배필을 주리라” 하셨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은 실패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와를 이끌어 오셨지, 아담이 하와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 앞에 이끌어놓으셨더니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절대 성령인도를 받아야 하나님께 이끌려 시험도 잘 보게 된다.
인간은 에덴동산을 상실한 이후 모든 것을 잃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보라” 고 투명하게 말씀하셨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고백으로 세례요한은 목베임을 당해 죽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요1:43~46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이 예수님을 이렇게 투명하게 소개했다. 하나님의 진리는 투명한 것이고 말씀으로 연결되어있으며, 이 말씀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엄청난 능력이다. 오직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내 영혼에 투명해지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속도로 응답을 누리게 된다. 이것을 내 삶에서 사실적으로 맛봐야 한다.
창1:2,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처럼 살려고 하기 때문에 기쁨도 상실하고 행복도 없는, 즐거움 자체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자꾸 찌르는 이유는 자신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약점을 찌르면서 살아가는 노부부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높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할머니가 “여보소 나 좀 업고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안되요?” 하고 묻자, 할아버지가 힘은 없지만, 자존심이 있어서 할머니를 업었다. 할머니가 “무겁죠?” 하고 묻자 할아버지가 “무겁지”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왜 무겁냐고 했더니 얼굴은 철판이고, 머리는 돌덩이고, 간은 부을 대로 부어서 무겁다고 했다.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기분이 나빠서 등에서 내려왔는데, 정상 도달할 때 즈음에 할아버지가 자기를 업어달라고 하면서 할머니를 약 올리려고 “나 가볍지?”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그럼 가볍지요. 머리는 텅 비었고, 허파는 바람이 들어서 뻥 뚫렸고, 양심은 없으니 가벼울 수밖에” 라고 대답했다. 창1:2의 인간은 자신이 피조물의 존재라는 것을 늘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처럼 살려고 하기 때문에 기쁨도 상실하고 행복도 없는, 즐거움 자체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면 재창조의 역사 속에 기쁨과 즐거움, 행복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 절대 군중심리와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창3:15 여자의 후손 그분을 정확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 피조물로서 이 땅에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에 대한 절대가 있을 때 하늘 문이 열린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그 때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너를 택하사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잠시 너에게 주셨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제는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반석과 같은 자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늘과 땅을 통일시킬 수 있는 권세와 언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옛사람을 버리는 갱신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변화가 시작된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 전체에 갱신과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 이 말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내 인생 모든 문제를 끝내신 하나님,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는 것이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사람만이 갱신과 변화가 있다. 절대 마귀의 일을 멸하지 않으면 말로만 할 뿐이다. 마귀의 일이 무너져야 변화는 시작된다. 언약의 본질에서 떠나지 않고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절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언약의 본질, 언약의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인생 여정에 영적인 답을 가지고 살아야 분별력과 판단력, 결단력이 온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 내가 선택하면 실패지만, 하나님이 이끌어서 내 앞에 두면 나는 그것으로 감격하면 되는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목표가 있게 된다. 왜 하나님의 목표를 가질 수가 없는가? 우리의 인생이 복음의 여정이라는 것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음의 여정을 체험하고 맛을 보면 하나님의 절대 목표를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의 목표를 우리에게 투명하게 이끌어놓고 보라고 하신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언약의 본질, 그리스도로 내 몸에 와 있는 창3장, 창6장, 창11장의 저주를 산산이 깨뜨려야 한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영적문제, 창3장의 원죄, 창6장의 네피림, 창11장의 욕망에 길들여진 바벨탑의 저주를 우리 스스로는 절대 이길 수 없고, 자신과 세상과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절대 언약, 창3:15, 마16:16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반드시 우리 인생에 그리스도가 노래가 되고 고백이 되어야 한다.
땅과 하늘에는 엄청난 전쟁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흑암 전쟁. 마24장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 전쟁이 난무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있는데 전쟁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근신하여 있지도 않고 깨어있지도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왜 기도라는 전쟁이 필요한가? 기도 없이는 절대 자신과 세상 환경, 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 속에 있는 봐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 속에는 재앙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는 길,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스도 이름 속에는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는, 전쟁의 광기를 가지고 인간의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저주의 세력에서 해방받고 보호받고 안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대속주가 되어주셨다. 그는 길이요, 진리, 생명이라고 말씀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을 통해 우리 인생에 모든 것이 회복되고 참된 기쁨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응답이 와 있다. 그래서 내 몸에 와 있는 저주와 재앙으로 살지 말고, 내 몸에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응답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전3:16, 지금 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응답 속에서 조금만 기도 속에 있으면 모든 것이 기쁨, 즐거움, 행복인데 기도를 못 하는 것이다. 내 몸에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쟁의 광기를 가진 자, 전쟁이 주특기인 강한 자 마귀를 결박해야 한다. 우리 몸에 지금 강한 놈이 와 있기때문에 자꾸 털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자꾸 우리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우리 집안에 들어와 있는 강한 자를 결박하려다가 맞아 죽는 것이다. 그래서 신고하는 이름을 주셨다. 집안에 강도가 들어왔는데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맞아 죽는 것이다. 마귀는 항상 전신갑주를 취하고 있는데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살기 때문에 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다윗은 왕위에 앉아있으면서도 아침과 낮, 저녁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시5:3, 시23편, 시17:3 늘 이 고백 속에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 언약으로 영원한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원한 축복을 가지고 자신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형상 속에서 하나님의 생기를 가지고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꾸 숨을 내쉬면 우리의 뇌가 살아난다. 뇌가 살아나야 영적 전쟁이 시작된다. 뇌가 썩으면 전쟁을 할 수 없다. 우리 뇌를 살리는 일을 하고 숨을 깊이 들이 마시면 엔돌핀이 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숨을 쉬지 않으면 운동을 해도 스트레스가 쌓여 뇌에 적신호가 켜진다. ‘나도 이제부터 말씀으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하면 갱신이 시작된다. 말씀으로 숨을 쉬면 엔돌핀과 에너지가 형성되어 집중능력이 뛰어나게 된다.
사람들에게 집중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뇌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 집중의 시간표가 없으면 온몸은 분열이다. 자식을 귀하게 키워서 성공자로 만들어놔도 여우같은 여자가 낚아 채버린다. 그날로 부모는 폭삭 망한다. 아무리 자신이 반대를 해도 자식이 좋다고 하면 미치는 것이다. 어떤 검사 엄마가 아들을 검사로 키웠는데 아들이 무용수와 결혼을 한다고 결혼 직전까지 반대를 했다고 한다. 몸 하나로 남자를 사로잡아서 자기를 선택하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아무리 부모가 반대를 해도 소용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이끄셨듯이, 집중이 시간표를 가지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끌어주신다. 내 몸에 집중이 시간표가 없으면 분열이 일어나고 나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다시는 오지 않는 오늘을 위하여” 묵상집을 가지고 꼭 묵상을 시작하면 치유와 능력이 임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성령의 역사를 맛보게 된다. 팔복 묵상을 통해 누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는 성령, 살리는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호흡하고 숨을 쉬면 히4:12의 응답이 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에는 굉장한 치유의 역사와 능력이 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요20:22을 주고 가셨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충만을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숨을 들이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사도행전 1장 8절이 내 영혼에 성취되어 하나님의 절대 목표, 세계복음화를 볼 수 있을만큼 영안을 열어주옵소서. 이제는 복음 때문에 학업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주시고, 복음 때문에 산업을 할 수 있는 산업의 문을 열어주시고, 복음을 위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도록 헌신의 생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복음 때문에 살겠다고 결단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열어주신다. 그런데 나를 위해 살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것이다. 나를 위해 살면 마귀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복음 때문에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성령을 부어주신다.
*인생은 홀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하나님과 연합이다.
하나님이 아담 앞에 사람을 이끌어 와서 연합하라고 하셨다. 연합하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예수님이 지금 나와 연합하고 있음을 믿고 이렇게 정말 고백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예수님과 늘 함께한다고 하고 예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고백하지 못한다. 우리 몸에 강한 놈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내 영혼과 심령을 완전 쪼그라들게 하는 놈이 있다. 예수님에게 느껴야 하는 것을 사람에게 느끼려고 하기 때문에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이다. 인간은 홀로가 아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사람과 연합하는 영접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함께’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임마누엘’의 이름을 주셨다.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절대 원네스 하겠다’ 하고 이름을 주신 것이다. “너와 나는 하나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래서 언제나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이름을 주셨다. 우리가 이 하나를 가질 때 요10:30의 응답을 받는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래서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아브라함은 이 하나의 하나님을 기뻐하고 누리고 즐거워하고, 이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날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영적싸움의 기도를 하면 이렇게 하나가 된다.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사랑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내 영혼을 짜증으로, 분열로 사로잡아가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나를 충만케하옵소서.’ 그러면 피조물로서 기도라는 것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근감을 가지시고 나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늘 입맞춤을 가졌다. 마11:28~29 예수님은 “세상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자들아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져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언제나 너희를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겸손이 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셨다. 우리 영혼에 쉼을 얻는 자 되기를 축복한다.
마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맹세하고 고백했지만 결국 실족 당했다. 하나님은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이 세상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는 길을 분명히 주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무너져버렸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살아 움직였다. 그래서 그 이름을 부를 때 그는 통곡하고 회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길이 절대 홀로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예수님이 마28:20 부활 이후 마지막 승천하시기 직전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너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함께 걷겠다. 임마누엘, 하나의 그리스도로 함께 걷겠다.” 약속하셨다.
우리 인생 여정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함께, 연합으로 걷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행2:36을 새겨놓아야 한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나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렇다면 언제나 행2:38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자, 영적싸움을 하는 자가 진짜 회개하는 자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언제나 인침을 받고 죄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롬1:16~17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주, 그리스도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의인은 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복음으로 가정을 회복시키라고 말씀하신다. 과거에 부산 남포동 위에 삼복도로 지역에 6, 7개월 살아본적이 있다. 판자촌도 많고 남포동과 자갈치 시장,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다녀 보면 찬송 소리가 많이 났다. 불신자였지만 그 찬송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판자촌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보금자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보금자리다. 하나님이 주신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은 사람을 이끌어서 한 몸이 되게 하셨다. 가정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않을 때 예배를 성공할 수 있고 안식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정을 빼앗기면 일곱 귀신에게 내어주고 강한 자에게 다 털린다고 했다.
오늘날 가정이 붕괴되는 이유를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성경은 가정이 붕괴되는 이유가 바로 창3:6~7이라고 말씀했다.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여자에게 포럼해 주지 않았다. “저것을 먹으라고 공격하는 자가 있으니 절대 먹지 마라” 아담이 하와에게 포럼을 해줘야 하는데, 이것을 놓쳤더니 여지없이 틈타고 들어왔다. 가정예배가 왜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포럼해야 한다. 아담이 포럼을 놓쳤기 때문에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부패되어 멸망의 상태로 전락해버렸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럼과 교제가 없으면 이렇게 무너진다. 가정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리나 하나님이 창설하신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하며, 서로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동물에게 생기를 넣어주신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생기를 넣어서 같은 형상, 같은 언어 속에 서로 교제하게 하셨다. 그런데 아담이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짓는 것에는 하와와 마음도 잘 맞고 교제도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공격받는 것에는 교제를 하지 않았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창3장이 우리에게 출현해서 공격한다는 것을 서로 교제하고 포럼했다면 에덴동산에서 조금 더 누렸을 것이고, 가인도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벨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마귀있다!’ 이 포럼과 교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럼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예배가 끝나자마자 포럼을 해도 거의 말씀으로 포럼을 못하고 자신의 상처 갈등, 시험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래서 팀장들이 ‘마귀 있다!’ 선포해줘야 한다. 그런데 위로한답시고 그 말을 들어주면 같이 죽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만 해도 에덴동산의 시간은 굉장히 오래 갈 수 있었다.
오늘 속에 나는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가,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 사는가? 사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산다. 말씀으로 포럼이 안되는 사람은 끊임없이 사랑받기 위해서 산다. 사람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돕는 베필을 허락하셨다. 사람은 서로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잠27:15 “잠 27: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똑똑똑 떨어지지만 사람의 심장을 뚫어버리는 물방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될 수 있으면 가정에서 침묵만 해도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꼭 입을 열어 물방울 역할을 하기때문에 뇌에 고통이 오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이 스트레스 속에 살아간다. 하나님이 이끌어서 왔으면 아담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고 여자들은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 존재인데도, 자꾸 하나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무너진다. 잠19:13에도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말씀했다.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구멍나게 되어있다. 남자들을 걱정하는 여자는 물방울이 되는 것이다. 남자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믿어주면 된다. 남자는 이마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녀야 하는 존재다. 그런 남자를 붙잡으려고 하다가 여자는 물방울이 되는 것이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남자를 길들여놓으시기 때문에 여자들은 물방울이 되지 말고 기도에 집중하는 시간만 가지면 된다. 하나님은 동물들의 모든 표정까지 읽고 표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셨다. 그래서 여자는 육감으로 살지만 남자는 전체를 보고 표현과 감정까지 다 알아버린다. 창3장은 약점을 지적하면서 사는 것이다. 여자의 표현까지 다 보고 느껴서 약점을 지적하려고 하기때문에 남자를 즐겁게 하려면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누리면서 슬기롭고 지혜로우면 된다.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하와를 발견하고 “이끌어오셨다” 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아담의 선택이 아니었다. 잠19:13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죄가 들어오기 전, 최초의 여자는 아주 슬기로웠다. 슬기로운 여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끌림을 받는자다. 여자가 슬기로움을 가지고 있으면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 발견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셨다. 독처하는 가정은 대화가 없는 가정이다. 그래서 반드시 가정 안에 예배를 회복하고 흑암을 무너뜨려야 한다.
남자들은 언제든지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싸우고 대화가 끊어져도 “밥은 먹어야지” 할 수 있어야 한다. 82살 된 노부부가 황혼이혼을 하려고 법원을 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그래도 밥은 먹고 가자” 했더니 그 한마디에 할머니가 감동을 받아서 밥을 자기가 차려주면서도 이혼을 취소했다는 말을 들었다. 남자가 언제든지 리더십만 발휘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남자들은 괜한 폼을 잡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남자들에게 표현하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돕는 표현이 필요한 존재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벧전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불신자 남편이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여자가 조금만 영적싸움하고 집중하는 능력만 가져도 남자들은 금방 구원을 받는다. 사실 남자들은 현장에서 굉장히 불쌍하게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겨우 교회 가보려고 하는 사람한테 왜 교회 안가냐고 또 잔소리를 한다. 교회 끌려오면 안된다. 여자는 남자들이 반드시 구원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물방울처럼 되지 말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여자가 물방울이 되면 남자의 기도를 막는다. 여자가 물방울이 되지 않도록 남자는 여자를 도와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 받아야 할 메세지를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누리는 한 주간이 되길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고 누리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지게 하옵시고, 이제는 가정을 회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럼과 교제가 일어나는 운동이 시작되게 하옵시고, 사단 마귀 있다라는 것을 서로 폭로하고 서로 상처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서로 연약한 자들을 돌보아주는 아름다운 동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 돕는 배필로 사람 관계를 만들어주셨사오니 우리가 언제나 영접 운동 속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할 것인지만 생각하며 기쁨과 즐거움, 행복 없이 살아야 하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창세기 3장 15절,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 속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일삼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사단이 내 몸에 있고, 내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원죄의 체질, 네피림, 욕망의 바벨탑의 저주가 나를 장악했다는 것을 깨달아, 언약의 본질, 창세기 3장 15절로 강한 자 마귀를 결박하는 영적싸움과 말씀으로 숨을 쉬는 집중의 시간 속에, 나에게 투명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를 누리며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을 이끌어가심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따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의 축복을 누려, 가정에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하고 포럼하며 사탄이 있다는 것을 폭로하여, 연약한 자를 돕는 동역자, 모든 사람과 연합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