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 바울의 터닝 포인트 : BC/AD"
(행 26:12-18)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23년도의 첫걸음을 뗀 1월이다. 예수사랑교회는 “237 디아스포라 미션”이라는 시대적 언약을 붙잡았기 때문에 시대적인 응답을 받는 귀한 2023년이 되길 축복한다. 그래서 어떤 일에도 응답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시작과 끝을 주셨다. 창3:15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응답이다.
우리가 2023년도를 걷는 걸음 속에 뱀의 머리를 밟기만 하면 응답을 빼앗기지 않는다. 창41:38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요셉은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창3:15에 감동된 자로, 하나님의 응답을 빼앗기지 않는 자로 살았다. 자신이 시대적 언약을 붙잡았기 때문에 시대적인 응답이 온다는 절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응답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응답을 가지고 살지 않고 문제를 가지고 산다. 어떤 분이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 찬양을 백 번만 들으면 낫는다고 하면서 같이 따라부르면 50번을 부르기도 전에 더 빨리 효과가 올거라고 얘기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다 이루었다” 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부르면 모든 저주와 재앙이 끊어진다. 어떤 여자분은 귀신이 들려 정신병 약도 많이 먹고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하길래 “예수는 그리스도” 찬양을 많이 들으라고 했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그래서 왜 웃냐고 했더니 자신은 교회를 오랫동안 다닌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확신있게 말했다. “그 이름을 따라 불러라. 계속 그 이름을 부르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노래를 계속 따라 부르면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믿게 된다.” 그랬더니 지금은 약도 먹지 않고 온전해지셨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응답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다 해결해 놓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응답을 가지고 살라는 것은 믿음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믿음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믿음으로 사는 그 끝에는 ‘영원’ 이 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정말 나의 아빠처럼 부를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는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갈등과 위기, 상황 속에 항상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하나님의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기때문에 문제와 상황 앞에 주저앉는다. 마6:31,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는 존재가 아니다. 상황 속에 주저앉으면 안된다. 마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의 인생 여정에 문제를 만나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영적문제를 치유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엄청난 응답의 시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작은 문제만 일어나도 호들갑을 떨고 이상한 상태가 되는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하길래 나는 “잘 가셨네요” 했다. 그런데 또 어떤 분이 “세상에, 그분이 죽었대요” 하길래 그냥 모르는 척하고 “아, 그래요?” 하고 넘어갔다. 잠시 왔다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인데, 죽는 것에 무슨 호들갑을 떠는가? 하나님의 일에 호들갑을 떨면 우리 영혼이 춤을 추게 될 것이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에게는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일이 있다. 우리가 위기를 만나고 여러 시험을 만나면 갱신하면 된다.
우리에게 찾아온 위기와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하실 큰일이 있다. 렘1:5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 성별 된 자들에게는 렘33:3 반드시 큰 역사가 일어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살아계신 너의 아빠에게 부르짖으면 그가 응답하시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은밀한 일을 보여주신다.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나 위기는 항상 나를 바꾸는 터닝포인트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언제나 응답을 가진 삶이 되고 문제가 BC와 AD의 터닝포인트가 되면 창45:5을 고백하는 증인이 된다.
BC와 AD를 가진 자는 사람을 향해 한탄하거나 근심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당신들이 나를 팔고 싶어서 판 것이 아니고,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서 빠뜨린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모든 과거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노예로 팔려가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사는 자 되어야 한다. 사람 때문에 우리에게 와 있는 시간을 소모시킨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이신데, 사람 때문에 시간을 소모하면 기도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 믿음을 상실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한 번도 해보지도 못하고 가정 안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다. 사람 때문에 시간을 소모하는 이유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염려는 불신앙이다. 불신앙이 쌓이면 나 중심의 세속주의로 전락해버린다. BC와 AD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바울은 명확한 자신의 BC와 AD가 있었다. BC와 AD 사이에 뚜렷한 자신의 구원관이 있었다. BC와 AD의 터닝 포인트가 있어야 보좌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창3:15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 삶에 와 있는 복음의 힘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것이 복음의 힘이다. 복음은 사람이 만든 말이 아니다. 동서남북, 기쁜 소식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힘이 공급된다는 것이 복음의 힘이다. 롬1:16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고 말씀했다. 우리에게 왜 능력이 필요한가? “뱀의 머리를 내리쳐라, 마귀의 일을 멸해라. 저주와 재앙을 그리스도로 끊어버려라. 하나님 만나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놓으셨다.” 이 복음의 힘을 가지고 나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은 사악하고 배은망덕하고 잔인한 것뿐이고, 우상숭배, 음란, 하나님 앞에 가장 가증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살인자, 비진리”를 선택하지 말라고, 이것을 없애버리고 바꾸라고 복음의 힘을 주셨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문제 끝”이라고 하고 해결해야 한다. 쓰레기 같고 똥파리 같은 나 중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 몸에 온갖 더러운 똥파리들이 붙은 상태로 예배를 드리면 찬양을 해도 영혼이 없이, 골이 텅 빈 상태로 한다. 분명한 영적 사실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깨어있으라 말씀하셨다. 언제든지 문제가 오면 절대 터닝포인트가 되고 근신하고 자신을 바꾸라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지 않는 만큼 정말 폭삭 망하는 날이 온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놓고 자녀에게 문제가 오면 심각해진다. 나 중심으로 사는 열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위를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해진다. 믿음을 선택하면 변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바울의 BC는 행위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AD,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믿는 것이었다. 우리는 겉만 예쁜 것이 아니라 속이 예쁜 사람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해야 한다. 말씀의 힘으로 “모든 문제 끝”이라고 정말 믿어야 한다. 그러면 말씀의 흐름을 타고 반드시 기도의 힘을 갖게 되고 그 이름의 능력을 알게 된다. 절대 가능의 이름이 “예수는 그리스도” 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를 가진 자는 응답 25시를 가진 자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절대 가능의 고백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내셨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예수를 또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 가능의 이름, 그리스도를 믿고 부를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문제나 갈등, 시험에 매여 살면 더러운 똥파리가 달라붙는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 속에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으며 절대 가능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그런데 자꾸 내 것에 묶이고 상황과 현실, 세상, 사단에 묶이는 자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 오로지 하고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문제 끝, 나는 하나님의 자녀,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러시아 장로님이 러시아에서 이 고백을 계속했더니 율법적 사고를 가진 몇몇 성도들이 주술하냐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저주와 재앙이 들이닥치는 것을 확인했다고 간증했다. 절대 가능의 이름을 믿고 불러주는 사람에게는 오순절 날이 임한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을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러 가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귀신 들린 여자’ 라고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다른 목사님은 전부 인정하는데 나만 인정하지 않는다. 그 몸에 귀신이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이놈을 반드시 뽑아내야 한다. 마12:28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으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이 힘이 없으면 사람은 늘 평상시에 귀신들린 채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늘 업다운이 심하고 몸부림을 치고 발작증세를 일으키는 예측불허의 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되든지 사단에 잡혀 자신을 죽이든지 하는 것이다.
이놈이 똬리를 틀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 “예수는 그리스도” 를 자꾸 불러야 한다. 그래서 일심, 전심, 지속으로 “예수는 그리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충만, 세계복음화” 해야 한다. 이 고백이 바로 언약, 비전, 꿈, 이미지, 실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고백을 사실적으로 하지 않는다. 입술로 고백하지 않으면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렇게 돌변할 뿐이다. 예수사랑교회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만 하기 때문에, 예수사랑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누구든지 가능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오로지 예수는 그리스도’ 하는 사람은 행2:42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서로 포럼하는 것이다. 팀장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이상해도 포럼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기 때문이다. 교역자가 이상해도 포럼을 하고, 주위 사람들이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를 해도 포럼을 한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면 어느 날 말씀의 힘을 갖게 되고 복음의 힘, 기도의 힘을 갖게 되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를 힘쓰게 된다. 이것이 성취되면 행2:46-47 “날마다”라는 응답이 오면서 현장을 정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모든 응답이 있다. 그래서 사단에게 속지 말고 사단의 머리를 내리치는 “날마다” 가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한 번만 바꿔봐라. 내 생각 속에 빠지면 안된다. 하나님의 것을 가져야 한다. 내 생각을 갖지 말고 두 세 사람과 원네스를 해야겠다는 힘을 가져봐라. 우리 마음과 생각에서 원네스가 안되면 응답을 받고도 저주를 받는다. 물질이 와도 원네스가 안되기 때문에 쓸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것은 사단이 준 것이지, 응답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BC와 AD의 터닝포인트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 말씀, 기도가 나의 여정이 되면 정말 멋있어진다.
말씀이 들리고 마음에 새겨지면 드디어 하나님을 본 자가 된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를 보기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영세 전에 감추어놓은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보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나의 구원자 그리스도 보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기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재림의 주, 심판의 주로 오실 그리스도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 비밀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 그분이 하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도로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이름, 미래를 보며 끊임없이 영원한 나라를 놓고 도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보는 수준이 되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이제 “너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해라”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이름을 주셨기에 나의 기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요15: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로 나의 기도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모든 문제 끝”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귀야 가라” 그리스도로 나의 기도를 찾아내면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된다. 지금까지 마귀가 인생의 문을 막았다는 것을 알고 마귀를 깨뜨리면 자연스럽게 문이 열린다. ‘내 인생의 문을 가로막고 끊임없이 내 삶에 실패를 가져다주며 내 인생을 운명으로 끌고가는 모든 흑암세력,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렇게 자꾸 명령하고 내어쫓을 때 똥파리가 오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된다. 우리의 기도제목이 무엇인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나의 교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말씀의 흐름을 탈 수 있는 내 교회가 있을 때 인생의 여정이 참 행복해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흐름을 타고 있으면 천명과 소명, 사명을 갖게 된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포로가 된 것을 아그립바 왕 앞에서 고백한다.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는데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뒷발질을 하면 자신만 당하게 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밟아라” 하셨는데 하지 않으면 당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밭에 쟁기질을 하는 소를 길들이려면 뒷발에 못을 박든지, 탱자나무 가시를 뒷발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 일을 하기 싫어서 뒷발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하지 않게 된다.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없고, 자신을 바꾸지 않고 살면 계속 찔림을 당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스도께 붙들려왔으면 순종하면 되는데 ‘싫어’ 하고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해치려는 것이 있다. 우리 안에 이 무서운 교만과 고집, 자아, 순리를 거스르고 역리로 살고싶어하는 몸부림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짐승과 같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왜 그렇게 추적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을 명확하게 들여다보라고 말씀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밤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대낮, 정오에, 빛이 가장 뜨거울 때, 태양보다 더 찬란한 빛을 보게 하셨다. 빛은 빛인데 어떤 빛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사단과 하나님의 차이를 보고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뒷발질하지 말고, 불신앙, 염려를 선택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엇을 경험했는가? 육안이 아닌 지안, 영안이 열렸다. 영적인 눈을 떠야 어둠에서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골1:13에 명확하게 메시지 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내가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정말 믿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행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이 달라진 이유를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자신은 원래 그리스도 이름을 경험했다고 하는 자들을 잡아죽이려고 대제사장들에게 위임을 받고 돌아다녔던 사람이었고,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옥에 집어넣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사회로부터 단절시키고 유대인의 법에 그들을 돌로 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살육하는 일에 가담했던 사람이었고, 다메섹에도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위임장을 가지고 그곳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후로부터 변화를 받고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이 사실적으로 자신에게 나타났음을 바울은 체험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사실적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주신 창3:15 메시아, 그리스도, 그분이 오셨다는 그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이상하게 믿고 귀신들려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꿈에서 봤다, 환상을 봤다 말하며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온갖 이상한 말들을 다 퍼뜨린다. 창3:15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꿈속에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막 기뻐하다가 그다음 날 이상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예수님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사이비에 빠져있다. 창3:15 역사적 사실로 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철학이나 신화, 꿈이나 환상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로 믿을 때 우리 삶에 사실이 된다.
창3:15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로 체험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전부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어야 한다. 과거의 수많은 상처와 실패, 병든 것과 연약하고 무너졌던 과거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하신 선택적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과거로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절대 강권적 선택으로 뽑힌자이기 때문에 지난날 모든 부끄러운 약점은 축복의 발판, 터닝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 처음 왔을 때는 병든 자, 사업에 실패한 자였다가 많은 응답을 받았는데,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과거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 과거에 수치스러운 것, 부끄러운 약점들이 없었다면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과거의 약점들로 인해 굉장히 연약한 자였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숨었던 자였지만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발견하고 약점과 과거는 축복의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증인이 되었다. 성경에 나타난 영웅들의 과거를 성경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나타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 과거의 아픔과 상처, 실패와 연약함은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는 증인으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강권적 선택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행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그래서 바울 자신은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어찌 거역할 수 있냐는 것이다. BC와 AD의 전환점, 터닝포인트가 분명한데 어찌 거스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위로부터 온 복음의 힘을 어찌 감추고 숨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내게 역사한 것을 어떻게 감출 수 있겠습니까’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숨기지 않으면 내게 능력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축복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나를 왜 핍박하느냐” 말씀하시고 더 이상 바울의 의견을 묻지 않으시고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말씀만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역할 수 없고, 내게 역사한 “예수가 그리스도” 이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가졌다면 딱 하나, 기도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을 거역하지 않고, 그리스도 그 이름이 지금도 사실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나니아에게 하나님은 사울을 꺾어서 보내주셨다. 사울이 무시무시한 위협과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대제사장의 권세를 위임받고 자신들을 죽이러 온다고 하는 자를 아나니아가 만났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은 아나니아는 ‘기도만’ 이라는 비밀이 있었다. 기도만 하는 자,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실적으로 믿는 자에게 이런 사람을 붙이신다. 그래서 극악무도했던 자신이 “예수는 그리스도”로 바뀌었다고 바울이 고백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다면 아그립바 왕도 베스도도 “예수는 그리스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은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그 역사적 사건이 사실로 왔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빌3:14 자신은 푯대를 향해 날마다 달려간다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정말 알아야 한다. 우리 몸에는 원죄가 있다. 그래서 반드시 그리스도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죄사함을 받지 않으면 귀신들이 왕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당에 귀신들린 자들이 가득하다. 예수님 당시 때에도 회당에 들어갔더니 귀신들린 자가 가득했다고 말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사람 몸에 그런 상태가 일어난다. 죄의 권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귀신 동네를 내 몸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믿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속은 가증스럽고, 사악하고 배은망덕하고 욕심쟁이로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회당에 들어가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하면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선한 사람인 것처럼 액션을 취하며 거짓말쟁이로 살아간다. 이런저런 일로 이혼만 해도 정죄의 대상이 되고 심판의 대상이 되고 놀잇감으로 만들어버린다. 또, 죽을 때까지 써보지도 못하면서도 움켜잡고 있다.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행위로 구원을 받은 척한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을 비몽사몽으로 믿으면 안 된다. 예수님을 꿈에서 봤다고 찬양하다가 나중에 똥파리로 전락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된다. 환각 작용을 일으킨 이런 교회로 인해 오늘날 많은 교회가 망해가고 있다.
행26:13~14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본문에 ‘정오’라는 말이 나온다. 대낮에 예수님이 바울에게 찾아오셨다. 캄캄한 밤이 아니다. 분명하 보라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보다 더 밝은 빛을 보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나와 동행하는 자들이 그 엄청난 빛에 둘러싸였다. 이 밝은 빛을 같이 보았다고 바울이 고백한다. 그러나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이것은 바울만 개인적으로 알아들었다. 교회를 핍박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핍박한 것은 사람에게 핍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핍박한 것이라는 마10:40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과정이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그래서 누가 우리를 건드리고 핍박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신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쫄지 말고 놀라지도 말고 “예수는 그리스도”로 당당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뒷발질 치는 자가 되지 마라. “예수는 그리스도” 를 절대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절대가 있으면 주인이 바뀐 것이다. 우리 안에 드디어 주인이 바뀌면 뒷발질 하지 않는다. 전도자 바울의 터닝포인트, BC와 AD의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도자 바울의 터닝 포인트 BC와 AD의 축복이 오늘 우리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에게 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경험하는 축복을 오늘 그리스도 이름으로 체험하게 하옵소서. 극악무도했던 우리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시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 하나님의 일을 놓았사오니 우리가 이제는 그 일속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 속에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과거를 통해서 이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그 고백이 흘러나오게 하옵시고, 현재라는 오늘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사실적인 이 복음을 만민에게 말해줄 수 있을 만큼 구원의 내용이 우리 영혼 속에 춤을 추게 하옵소서. 한주간도 하나님 일, 전도 속에 있게 하여 주옵시고, 나의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 주의 모든 백성들을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문제에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빠져나와 문제가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호흡하는 자로 살도록 나의 교회를 허락하시고, 말씀의 흐름을 타고 천명, 소명, 사명을 갖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강권적 선택 속에 창세기 3장 15절을 부를 수 있도록 나를 부르셨기에, 나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나의 모든 문제와 위기를 하나님이 이미 해결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내 자신을 갱신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의 힘, 복음의 힘, 기도의 힘을 갖게 하옵소서. 문제 앞에 사람 때문에 나의 시간을 소모하는 어리석음을 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을 믿는 자 되게 하시고, 과거는 그리스도를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선택적으로 역사하신 일이기에 나의 과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