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종교적 방해를 뚫고 진행되는 로마 복음화의 역사"
(행 25:1-12)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믿음을 가질 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이번 미라클 오케이 어학당에 남전도회가 헌신을 하는데, 가르치는 학생들을 전부 한국어 3급 시험에 통과시켰다. 남전도회 회원들이 그 헌신 속에 기뻐하고 행복해했고, 나 역시도 그 소식을 듣고 기뻤다.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는 일 속에는 빛의 캠프가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일어나 빛을 발하면 열방의 재물들이 네게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 복음 가진 자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의 순례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다가 영원한 나라로 가야 한다.
*우리가 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 머리부터 깨뜨려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몸에는 원죄가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창3장 사단에 의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든 몸이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권세, 지옥권세 잡은 사단에 장악된 저주의 몸이 되었다. 그래서 운명의 굴레 속에 저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몸부림치며 종교를 찾는 것이다.
종교는 재앙 중 재앙이다. 개인과 사회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개인은 재앙을 받게 된다. 훌륭한 종교를 선택하고 정의와 공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사악한 자가 될 뿐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종교 사상은 세상 풍습을 좇는 네피림 사상에 장악된 완전한 귀신들림이다. 그래서 온몸이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자신의 숨은 동기를 가지고 인생을 살면서 자신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한 채 거짓말쟁이가 되어 우리의 인생 여정은 의에 원수가 되고 마귀의 자식으로 전락해버리고, 바른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른길을 막는 자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잘 될거야. 나는 복을 받고 태어났어. 내 이름대로 복을 받고 살거야.’ 하면서 스스로 점치는 인생으로 산다. 결국, 우리 몸은 딱 하나, 그리스도만 끊임없이 거부한다. 딱딱하고 완악하고 무서운 세상의 지식으로 인해 우리 몸은 이미 굳어져버려서 그리스도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요8:43,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진리의 메세지를 들을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해주셨다.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들을 수 조차 없다는 것이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자라나 너희 아비의 욕심을 따라 욕심대로 행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다” 그래서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살인의 눈빛과 미움이 작동된다. 사람 속에 진리가 없기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길들여져 있는 것처럼 자신을 속인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살아있을 동안 인간 스스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계명을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것처럼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여 사람을 속인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십계명의 완성자다. 예수님 외에는 십계명의 완성자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자신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다. 정의와 공정, 자유를 외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거짓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면 정의와 공정, 자유, 생명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우리 영혼 속에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이 살아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만 속이는 어설픈 인생만 될 뿐이다. 창3:15 언약을 가진 자는 창41:38 하나님의 신에 충만한 자가 된다. 그리스도 삼중직의 능력이 우리 몸에 작동되고, 우리 몸에 역사해야만 현실이라는 상황의 덫에 걸리지 않고, 묶이지 않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갖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이름이 우리 몸에 살아서 역사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그 믿음을 가지면 현실이 상황이라는 덫에 절대로 걸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형들이 자기를 왕따 주고 죽이려고 하는 현실 상황에 걸려들지 않았다. 만일 요셉이 그리스도의 영에 충만하지 않았다면 현실 상황의 덫에 걸려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노예로 팔려갈 때 상인에게 아버지 얼굴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형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다 말하고 형들을 저주하며 떠났을 것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을 때 탈출 생각뿐이라는 말도,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말도 없다. 요셉은 오직 세계복음화 라는 하나님의 일 속에 있었다. 해와 달, 벼 짚단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그 언약을 품고 임마누엘, 세계복음화의 가슴을 품고 있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에게 복음을 알리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주셨다는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일 속에 있는 자는 먹고사는 문제, 현실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이 없기때문에 현실의 빵 문제, 먹고 사는 문제에 걸려드는 것이다. ‘참새도 먹이시는 그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시기 때문에 그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배부르고 목마르지 않는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의 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창3장 원죄, 저주의 몸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채우기 위해 매달린다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다.
막연히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닌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누려야 한다. 어떤 유명한 아나운서가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자기 어머니가 호텔 미용실에서 사업을 하는데 호텔이 불이 나서 직원이 두 명이 죽고 집안은 쑥대밭이 되는 재앙으로 어머니가 불교에서 갑자기 기독교로 바꿨다고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이상할만큼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병실에서도 늘 기도도 많이 하고 예수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결국 자기 어머니는 병들어 죽었다고 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믿어야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불교에서 그냥 교회로 옮기면 불교사상으로 예수님을 믿을 뿐이다. 신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 절대 응답은 없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리스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음이라” 말씀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저에게 은혜를 주세요’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명령한다. 하나님이 내게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음에도 내 깊은 영혼 속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육신적 반응만 일으키며 육신의 떡만 구하며 사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내게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로 나를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시험과 갈등 속에 남의 말을 하며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하는 흑암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런 영적 전쟁이 우리 삶에 24시 있을 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25시 응답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소유한 자는 현실이라는 덫에 걸려들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늘 쟁쟁거리다가 개죽음을 맞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 아직도 ‘주시옵소서. 역사하옵소서’ 한다면 이런 기도를 빨리 끊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사용하는 권세 기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30,40년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서도 권세기도 하나를 선포하지 못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결단력이 없다. 영적전쟁은 결단력이다. 끊임없이 갱신하는 것이다. 요셉은 창45:5 사람을 향하여 원망, 불평, 시비 이런 말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 모든 생명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현실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고 영적 전쟁으로 모든 것을 통과시켰다. 흑암이 어디 있냐고 말하지 말고, 내 몸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향해 선포해야 한다. ‘내 몸을 흑암으로 장악하여 도무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나를 장악하고 있는 더러운 흑암 덩어리는 내 몸에서 산산이 깨질지어다!’
우리 몸에 와 있는 저주를 몰아내고 죽음의 권세를 몰아내면 하나님의 일이 보인다. 우리 영혼 속에 예수님의 눈을 가지면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마25장, 불쌍한 자를 돕는 것이 하나님과 한 것과 같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안에 기득권을 가진 수많은 교회들은 이상한 말을 한다. 젊은 아이들이 놀러가서 죽은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냐고 비아냥 거리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사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대통령을 세우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놀러 가서 죽었는데 어쩌라고’ 이런 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지 못해서 잘못했다고 해야 멋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정확하게 사과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성도들도 우리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을 장악한 뱀 대가리를 꺾어야 진짜 신앙이 시작된다. 우리는 반드시 후대를 키우고 민족과 국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원시키는 요셉과 같은 인물을 세워나가야 한다. 미래가 없는 교회는 문 닫아야 한다. 200년 기독교 역사 속에 교회가 멋진 국민을 만들지 못한 것은 정말 회개할 일이다. 흑암세력,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권세를 가진 다윗과 요셉과 같은 인물이 일어나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이라는 말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함께’ 라는 말을 쓰시고, 그 말 앞에 자신이 먼저 희생하셨다. 예수사랑교회 가족만이라도 세계복음화를 꿈꾸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현실의 덫에 걸리지 말고,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받아 후대를 키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2022년 정부를 향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라고 한다. 자기 한 사람 회개할 줄도 모르고 갱신할 줄 모르는 완악한 자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창3:15 우리 안에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내 몸에 와 있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만 그냥 앉아 있으면 안 된다. 교회에 왔다면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예배 한 시간을 드려도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이다. 구원받지 않고 교회를 다니면 이웃에게 재앙을 주는 것과 같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나를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면 세상 현실과 상황의 덫에 걸리지 않고, 묶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게 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롬1:16, “예수그리스도, 이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베스도 총독과 유대인, 바리새인과 제사장을 이긴 증거가 무엇이었는가? 창3:15을 가진 바울, 마16:16을 고백한 바울의 상태는 멋지고 당당했다.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살든지 죽든지 심판 앞에 서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예수는 그리스도” 이 복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막는 자가 멸망을 받고 재앙을 받는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우리에게 핍박이 왔다면 천하를 얻는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복음을 막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던 정치지도자들, 아그립바 1세는 행12:23 개죽음을 당했다. 무속과 점술, 우상숭배자들의 말로는 무시무시할 뿐 아니라, 그 시대 자라나는 후대 또한 굉장한 정신문제가 일어나는 재앙을 맞게 된다. 복음을 막다가 죽음을 당한 헤롯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 후손은 완전 멸망을 받게 되었다. 세상 지도자들의 영적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투표도 할 수 없다.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주시고 책임져주신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행28:31 “예수는 그리스도”를 거침없이 가르쳤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 라는 그 비밀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줘야 저주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해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카톨릭의 교리로 하나님을 믿으면 다 지옥 갈 뿐 아니라 현재 상황 속에 재앙이 찾아 들어온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보듬는 마리아에게 우상숭배를 하는 종교다. 오늘날 대한민국 기독교가 카톨릭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 이단들이 종교화 되고 기독교화 되는 시대가 닥쳐왔다. 신천지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이만희를 자칭 성령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하나를 빼먹게 해놓고 그 안에 이상한 성령론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추수꾼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약점을 파고들어 바벨탑을 쌓는 운동에 수많은 영혼을 동참시킨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진리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그런 사이비, 이단 종교들, 교주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만이라도 그리스도 그 이름에 충만하여 예수그리스도에 확신과 체험을 가지고 전 세계 앞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전쟁에 영적군사가 될 때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유대인들의 끝없는 음모 앞에 우리는 영적전쟁을 해야 한다. 자칭 보수라고 하는 자들은 사람을 한 번 찍으면 끝까지 음모를 써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본문에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 2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그리스도를 소유한 바울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자기들이 만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며 이율배반으로 살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이상한 하나님을 없애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다. 뱀의 머리를 진짜 깨뜨리면 내가 만들어놓은 이상한 하나님, 틀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짜 하나님을 믿게 된다. 행24: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여론에 예민해있는 사람들, 정치인과 종교인이 한팀이 되어 있는 것을 오늘날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달랐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메세지를 가슴에 새겨놓고 현실이라는 상황의 덫에 걸리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메세지로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그리스도구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전쟁을 시작할 때 그들에게 오순절 날이 임하기 시작했다.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표적이 따른다. 뱀을 집으며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믿었다.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믿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장악하는 더러운 거짓말쟁이, 더러운 마귀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전쟁을 시작하면 반드시 응답 25시가 온다. 오순절 날이 임하여 성령에 충만하고 꿈을 꾸며 예언하며 환상을 보고 내 것을 내 것이라 말하지 않고 서로 통용하면서 헌금관도 달라졌다. 하나님 앞에 2022년을 결산하는 12월이 되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제대로 헌신했는지 하나님 앞에 결산해보고 2023년을 새롭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내 몸에 있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사용했을 때, 그리스도가 나와 연결되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권위가 나타났다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체험했다. 눅10:17~19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10:21 예수님이 그 사건을 보고 기뻐하셨다. 자기를 빨리 돌이키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세를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고 기뻐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수록 우리를 인정하시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에 기뻐하신다. 눅10:18, 귀신을 내어쫓았더니 사단의 대가리가 깨지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다.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져 깨지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다. 영적전쟁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권위를 우리에게 주셨는데도 영적전쟁을 하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착각할 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 비밀이 숨겨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아멘하고 순종하고 실천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눅10:19은 절대 약속이다. 헛소리 잡소리 개소리 하지 않고 뱀 대가리를 깨뜨리면 모든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불신앙의 소리를 버리는 것이다. ‘시험들었다, 갈등이 왔다. 저 사람 때문에 못 살겠다. 돈이 없다. 옷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어쩌구 저쩌구...’ 이런 소리 하지 않았다. 약속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가 이제 내 몸에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하는 나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창3:15 언약은 ‘권세’다. “뱀 대가리를 내리쳐라” 뱀 대가리를 내리치고 없앨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영적 전쟁은 뱀 대가리를 진짜 내리치는 것이다. 그래야 귀신의 활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뱀 대가리를 내리치지 않으면 그놈이 계속 통치해서 귀신을 떼거지로 보내는 것이다.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거할 때 우리를 결코 해할 자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 그 이름이 하나님의 약속, 능력, 임마누엘, 응답 25시로 성취되기를 축복한다. 각종 이단 사이비 집단이 종교로 인정을 받아 기독교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된 이 시대 우리는 뱀 대가리를 내리치는 영적전쟁의 최고 군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를 흔드는 이단, 사이비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기독교는 침묵만 하고 있다. 기독교는 정치와 종교,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상황 앞에 맞장 떠는 영적인 힘을 가진 군사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 몸으로 싸우지 않고 영적 전쟁을 할 때 흑암은 꺾인다.
유대종교는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는다고 하면서 권력자들 앞에서는 침묵하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 앞에서는 완악한 음모를 꾸미며 암살범을 만들어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사랑이 많고 정의가 흐르고 공정이 있다고 하는 유대 종교가 얼마나 잔혹하고 사악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오늘날도 자칭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사악한 자들로 자리매김하면서 기독교는 이중성의 종교,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바울이 2년 전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예수님이 바울에게 주신 말씀을 바울은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놓았다.
“바울어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거하리라” 바울이 행23:11의 이 말씀을 받고 가슴에 새겨놓았지만 2년 동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벨릭스가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편하게 면회도 하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허락은 했지만, 로마를 향한 문은 2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너는 재벌이 될지어다’ 하면 오늘 밤부터 재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안되니까 내일은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의 메세지를 받고도 절대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때 2년간 누가복음이 쓰여졌고, 3년 동안 로마복음화를 위한 로마서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일 속에 있으면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임마누엘을 누리며 하나님의 역사 속에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 하나님의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된다. 어떤 교회를 갔더니 한 교역자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목사님, 저는 왜 전도 열매가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너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브라함을 한 번 설명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네?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요.” 했다. 말씀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면 수많은 열매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상고하는 사람은 예배 때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몸속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전도를 위한 말씀을 전혀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딤후3:16 하나님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했다. 성령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할 때 성령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일어난다. 교회 카톡방에 올라오는 주일 말씀을 늘 상고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전갈이 없어져야 성령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움직인다. 우리 몸에서 움직이는 전갈은 무서운 것이다.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영적전쟁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더러운 자로 전락해버린다. 이것이 유대인, 종교인이었고, 오늘날 기독교가 되어버렸다.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절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잊지 않았다. 행9:4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땅에 엎드려 고꾸라져서 무너졌을 때 “사울아” 자기 이름을 불러준 그 살아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네가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하나님을 박해하느냐” 이것을 잊지 않았다. 나를 불러주신 그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올바른 사명이 되고 소명의식이 된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그리스도 하나님을 잊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 그분을 잊지 않는가? ‘나를 불러주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이름의 증인으로 나는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그는 행9:15을 잊지 않고 언제나 그분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는 어디에 증인이 되었는가? 세상 살아가는 현실에 능통한 증인인가 아니면, 나를 불러주신 그리스도의 증인인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옛 사람의 틀을 깨뜨려주시고, 사망 권세에 묶인 나를 풀어주시고 해방시켜주신 그 예수님을 나는 내 영혼 속에 잊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일 속에 있으면 어떤 현실의 어려움이 왔다 할지라도 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이단, 사기꾼이 말하는 진짜 이단이 바로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들이다. 행19:9 “예수는 그리스도” 사람들은 그 도를 비방하고 싫어하고 떠난다. 그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마음이 굳어지고 순종하지 않고 교만해진다. 심지어 나를 살리는 뱀 대가리를 깨뜨리는, 뱀 머리를 쳐버리는 영적전쟁이 없으면 그리스도, 그 도를 비방하는 자가 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육이 자극하는 쪽으로만 움직여간다. 그런데 “예수는 그리스도”를 자꾸 부르면 육이 힘을 잃어버린다. 육에서 영으로, 영적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좇아야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된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따라오너라” 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성취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는 역병을 옮기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다.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자들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아니라 우리 몸까지 성전이 되는 그런 축복이 시작된다. 그리스도를 좇아가면 나사렛 이단의 괴수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에게 묶인 자를 풀어주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바울을 향해 역병을 옮기는 자, 성전을 더럽히는 자,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단어로 거짓말을 만들었다.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있으면 내 몸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때문에 이 땅에서 굳이 거짓말 할 이유가 없고 사람을 속이는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냉철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되어야 한다. 행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마귀야 가라” 여기에 힘을 쓰는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 앞에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법 위에 양심이 있고, 양심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마귀야 가라” 이것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욕심쟁이, 살인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벨릭스는 구원받지 못할 일을 선택하고 로마에 가서 사형 언도를 받고 겨우 목숨만 건지는 운명에 굴레에 있었다. 벨릭스가 쫓겨나가고 새로운 총독 베스도가 왔을 때 유대인과 종교인, 대제사장, 벨릭스의 마음을 이미 읽었던 바울이 베스도 앞에서 “나는 가이사 앞에 항소하리라” 담대하게 메세지를 던졌다.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누가복음과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이 하나의 메세지가 남은 것이다.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자기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메세지를 그대로 선포했다.
베스도는 굉장히 애매한 사람이었다. 잔머리가 많고 욕망이 가득하며 간사한 사람이었다. 바울이 이런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빌1:12 “내가 당하는 수많은 일은 전부 다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복음이 살아서 내 몸에 능동적으로 역사하심으로 나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더 위대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벨릭스 총독이 있을 때 2년을 갇혀 지녔고, 베스도 총독에게 1년을 잡힌 이후 바울은 드디어 로마로 가게 되었다. 사악한 자들 앞에서도 자신은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쓰임을 받으려고 준비를 시작했다. 감옥에서 그냥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다가 수많은 묵상 속에 메세지를 작품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알 수 없는 고난은 고난도 아니고 역경, 수모, 억울함도 아니다. 그것은 복음이 진보되는 하나님의 역사다. 바울은 간사한 정치인들, 사악한 종교집단의 시스템 속에서 오묘한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가 2023년도 사악한 종교 시스템에서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할 일이 아니라 빛을 발하는 전도캠프로 전 세계 지교회가 열리는 축복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죄의 삯인 사망의 시스템 속에서, 유일하게 생명의 빛을 공급해주는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들이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전도캠프로 나아가야 한다. 나도 코로나 시기에 성경을 조금씩 읽었더니 두 번이나 전체를 읽을 수 있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니 결국 모든 어려움과 문제, 사건은 영적싸움 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결국 사망권세가 사람을 완전 장악하고 덮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한자, 사단의 머리를 내리치지 않으면 다 당하는구나’ 그래서 2023년에는 반드시 강한 자의 머리부터 내려치는 자가 되자. 성령의 검으로 내려쳐야 한다. 그러면 더러운 귀신들이 우리의 가정을 침범하지 못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잡지 않게 될 것이다.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 되었기 때문에 그 위에 엄청난 집들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갈 것을 알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로 갈 것은 알았지만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로마를 갈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미스터리다. 바울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방법은 정말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로마로 갈 것이라고 굉장히 당당하게 외쳤기 때문에 베스도가 멋있게 로마로 보내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꽁꽁 묶인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게 하는 것이었다. 미지의 불확실 속에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가 잠잠하고 기다릴 줄 아는 힘을 갖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를 생각하며 결단하는 그 힘을 갖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모순된 현실 속에 하나님의 가장 멋있는 계시가 바로 임마누엘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현실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이 비밀을 가져야 한다. ‘어려운 현실 속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구나’ 우리가 여기에서 진짜 선을 좇고 기뻐하는 자가 되고 기도가 되어지면 하나님의 모든 뜻은 이뤄져 간다. 행23:11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바울은 부활 이후 메세지를 접목시켰다. 행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가지고 있다.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그 계시가 말씀을 성취시켜 가는 것이구나’ 행1:8 이 속에 있으면 쇠고랑을 차고,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게 되어도 문제 될 일이 없다.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 불확실한 길을 지나간다 해도 그 길에 그리스도가 함께하면 끝난다.
행25: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바울은 아주 담대하고 똑바른 태도를 가지고 당당하게 외쳤다. 바울의 이 소리를 듣고 유대인과 베스도의 마음은 두려움 반, 근심 반, 여러 가지 시달림으로 가이사에게로 보내기로 상의하고 작정했다. 바울이 죄인이면 죽어야 하겠으나 만약 죄가 없다면 자신을 죽일 수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음에도, 사악하고 불의를 말하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를 더 위험에 빠지게 할까 하는 암살범과 같은 자들이었다.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이익만 생각하며 진리도 없고 사랑도 없고 배려와 이해심도 없는 사악하고 무서운 시대 속에 살아남는 비밀은 임마누엘을 갖는 것이다.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이 방해를 뚫을 수 있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는 진행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세계복음화 237 디아스포라 미션은 성취될 것이다. 이 역사 속에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놓고 나를 부르신 그분을 잊지 않는 귀한 날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정치적 종교적 방해를 뚫고 진행되는 세계 복음화의 역사 속에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진리 속에 답을 가진 자로 참으로 해방을 받은 자로 이제는 전도캠프 할 수 있을 만큼 자격을 허락해 주시고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셨사오니 오직 나를 부르신 예수님을 잊지 않고 언제나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를 사실적으로 믿고 성취시켜 나아가는 믿음의 군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 영적 전쟁을 시작할 하나님의 군사들에게 무한한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은 증거로써 뱀 머리를 내리치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 떠나 저주 가운데 빠져있는 이 몸을 이제는 그리스도로 바꾸는 최고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졌고 권세가 주어졌음을 인정하고, 오늘부터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들을 제어하는 능력의 사람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그래서 악하고 사악하고 잔혹한 종교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메시지를 할 만큼 담대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중성으로 살게 만들어 불신자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게 만드는 이 증오의 시스템 속에서 완전 해방 받을 수 있도록 저들에게 성령 충만을 더하여 주옵소서. 2022년 살면서 결산한 것들을 볼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갱신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도 받지 못하고 저주와 죽음의 권세에 장악된 몸으로 무속과 점술에 빠진 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상태로 교회당만 다니며, 후대에게 엄청난 정신문제와 재앙을 가져다주는 이 시대에, 현실의 상황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는 비밀, 그리스도의 삼중직이 작동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내 몸에 와 있음에도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향해 원망, 불평, 시비, 불신앙하는 헛소리를 끊고, 24시 권세 기도를 선포하고 뱀 머리를 내리치는 영적전쟁 속에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는 갱신과 결단이 날마다 일어나는 25시의 응답을 누리게 하옵소서. 어려운 현실에 문제와 핍박, 사악한 종교 시스템 속에서도 한탄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심을 믿어, 나의 이름을 부르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에 증인되겠다는 소명과 사명 속에 세계복음화의 꿈을 꾸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